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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칸문화] 발칸분쟁과 알바니아
    발칸분쟁과 알바니아그 전망에 대하여...- R E P O R T -Ⅰ 서 론일찍이 분쟁의 아픈 역사를 경험한 발칸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오늘에 와서도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 차이에 의해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민족주의에 의해 여러 나라들이 독립을 선언하고 떨어져 나갔지만 완전한 한민족 한 국가를 이루어 나가기에는 발칸의 인종지도가 나무나 복잡한 것이 사실이다. 3년 전 코소보에서는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가 충돌하는 대규모 내전이 발발하였고 나토(NATO)의 코소보 평화유지군이 투입되고서야 겨우 사태가 진정되었다. 민족주의에 의거 코소보 내의 알바니아계에 대한 대규모 인종청소를 강행하려 했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은 UN 전범재판소에 기소되어 현재 그 절차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일단락 될 것 같던 코소보 사태는 몬테네그로의 독립선언과 마케도니아 내의 알바니아 반군과 정부군 사이의 충돌로 또 다시 발칸을 세계의 화약고로 만들려 하고 있다. 코소보 내의 문제도 완전히 해결을 본 상태가 아니며 이에 같은 연방 내의 몬테네그로 공화국도 독립을 주장하고 있으며 코소보에서 마케도니아로 도망간 알바니아계 때문에 알바니아 내에서도 반정부군과 정부군 사이에 무력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문제의 핵심은 알바니아 민족에게 있다고 본다. 알바니아인들은 이슬람 교도인 무슬림으로서 발칸유럽의 정교회나 카톨릭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언제나 소수인종으로서 차별을 받아 왔다. 이러한 알바니아인들이 대알바니아(Great Albania)라는 기치아래 각 지역에서 무력충돌을 불사하는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다. 또 하나 알바니아라는 자기네 민족의 공화국이 엄연히 현존하는 데에도 알바니아 공화국은 이러한 발칸사태에 아무 대응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발칸유럽의 제반 문제를 생각하는데 알바니아 공화국과 알바니아인, 대알바니아 건설론을 주장하는 알바니아 민족주의자를 잘 살펴보는 것이 앞으로의 발칸유럽 문제를 전망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코소보 사태보스니아 내전의 종식으로 한동안 잠잠했던 발칸유럽이 다시 불안에 휩싸이게 된 것은 코소보 사태가 발생하면서 부터이다. 코소보는 알바니아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면서 영토는 신유고 연방에 속해 있는 자치주로서 늘 분리독립을 꿈꿔왔다.사태는 98년 3월 초 알바니아 분리주의 반군들이 세르비아 경찰을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세르비아 경찰은 즉각 반격에 나서 반군은 물론 반군 거점 지역의 주민들을 대규모로 학살했다. 이에 맞서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코소보해방군(UCK)을 중심으로 게릴라전을 벌였다. 사태 발생 3개월 사이 세르비아 당국은 이른바 코소보 무장반군 소탕작전을 전개해 2백여 명의 주민을 살해하고 세르비아는 5월 3일 대규모 소탕작전을 전개해 수십 명의 알바니아계 반군을 사살했다.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세르비아의 인종청소를 피해 탈출 러시를 이루게 된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6월 들어 코소보 사태에 대한 개입을 선언하고 나토 병력을 주변에 배치, 세르비아 병력철수 및 잔혹한 인종청소의 중단을 촉구했다.코소보 지역은 본래 세르비아 왕국의 근거지였으나 1389년 터키제국이 이곳을 지배하면서 이슬람계인 자국내 알바니아인들을 대거 이주시켰다. 지금은 알바니아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이 지역에는 세르비아계가 일구어 놓은 수많은 유적지와 교회들이 밀집해 있어 세르비아로서는 성지에 해당하는 만큼 절대 남에게 넘길 수 없는 처지이다. 현재는 유엔 평화유지군 주둔 하에 3년 간 유예시간을 가진 후에 다시 협상을 가지기로 한 상태이다. 코소보 내에는 북으로 프랑스가 서로는 이탈리아 동으로는 미국 남으로는 독일, 중앙에는 영국이 주둔하고 있다.2) 마케도니아 분쟁마케도니아 내에도 알바니아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큰 것이었다. 인구통계로 23%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 수치를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케도니아 내에서도 정부의 유화책으로 인하여 그다지 심각한 갈등은 없었으나 코소보 내 알바니아 반군과 마케도니아 반군이 결속함으로 인하여 무력충돌이 촉발되게 된 자치권 부여, 알바니아어를 공용어로 채용하는 등의 헌법개정을 요구하고 있다.2001년 3월 6일 시작된 무력충돌은 반군이 테토보를 점령하고 나토군의 탱크가 이곳에 배치되는 등 무력충돌이 거듭되고 사태가 급속히 악화되자 미국이 파병을 시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알바니아계의 자치를 허용하고 지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합의안을 마케도니아 정부가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합의안이 내용대로 잘 이루어진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으나 대알바니아를 주장하는 민족주의자들이 마케도니아 내에 존재하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며 언제 내전이 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3) 몬테네그로 독립 문제17세기부터 독립국가 형태를 유지해 오던 몬테네그로는 1918년 니콜라 왕을 마지막으로 유고에 통합됐다. 1946년 유고연방 공화국을 구성하는 6개 공화국의 일원이 되었고 92년 크로아티아와 마케도니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등 4개 공화국이 유고연방을 탈퇴한 이후 세르비아와 신유고연방 구성에 합의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유고연방의 남서부를 차지하는 몬테네그로의 전체 인구 65만명중 90%가 세르바아계에 속하는 츠르나고라인이다. 전통적으로도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고 유고 내전 당시에도 세르비아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밀로셰비치가 독재권력을 휘두르며 연방 전체를 세르비아 국가로 만들려는 야욕을 드러냈고 몬테네그로가 유고 내전 당시 세르비아를 도왔다는 이유로 서방국가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자 상황은 돌변하게 된다. 몬테네그로 내에서는 세르비아에 대한 반감과 분리독립 주장이 공공연히 표출되기 시작했고 97년에 당선된 밀로 듀카노비치 대통령은 친서방 개혁-개방정책을 표방하며 사실상의 독립노선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밀로셰비치 정권은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경제봉쇄와 함께 몬테니그로를 연방정치에서 배제시켰으며 몬테네그로도 이에 대항하게 된다. 현 유고연방 대통령인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대통령도 민족주의자로서 몬테네그로의 독립에 강한 반감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표로 독립여부는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고 그에 앞서 4월 22일에는 총선이 실시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압도적 우위 예상과는 달리 2%의 근소한 차이로 연방 독립파가 우세하게 나타났다.2. 알바니아 공화국과 대알바니아(Great Albania) 민족주의자1) 알바니아 공화국대부분의 발칸 유럽 국가와 달리 알바니아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독재자 호자가 40여 년 간 지배한 공산주의 국가이고, 故 테레사 수녀의 고국이란 점 등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1997년에 발생한 알바니아의 경제적, 정치적 혼란과 1999년 코소보 사태는 알바니아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알바니아는 지중해 일분인 아드리아해를 사이로 이탈리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몬테네그로와 코소보, 동쪽으로는 마케도니아와 경계를 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그리스와 접경을 이루고 있는 나라이다. 알바니아 주민들은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두 부류로 분류되는데 게그 방언을 사용하는 주민들은 주로 북쪽에 거주하고, 공용어인 토스크 방언을 사용하는 주민들은 남쪽에 거주한다. 유구한 문화적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고대 일리리아 제국 이후 알바니아는 국내와 국외의 전제주의 국가들에 의해 지배당한 인질의 역사였다.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알바니아 공화국 자체의 경제적 능력이 너무나 빈곤하다는 것이다. 97년의 국가 전복 사태까지 초래한 정부의 피라미드 금융사건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현재도 별다른 발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알바니아 정부는 코소보 사태나 마케도니아 문제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국제정치학의 기본개념인 힘(Power)의 논리로 비추어 볼 때 알바니아는 세르비아에게나 마케도니아에게 어떠한 입장을 밝힐만한 처지가 못 된다는 것이다. 코소보내의 알바니아인들도 지금 살고 있는 코소보 내에서 살기를 원하지 알바니아 공화국으로 들어가길 원치 않고 있다.또 하나 중요한 것으로 인구 문제인데 알바니아인들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오토만-터키의 지배를 받으면서 교 문화에 이질적인 문화적 특성을 나타내게 된다. 특히 인구문제에 있어서 예전부터 코소보 내에 알바니아이들이 대다수를 차지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세르비아계가 다수였다. 알바니아인들은 산아제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보통 5~8명, 많게는 12~14명의 아이들을 낳는다. 앞으로 몇 세대가 지나면 코소보가 그러했듯이 마케도니아의 인구지도가 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2) 대알바니아(Great Albania) 민족주의자들발칸반도의 여러 국가들, 특히 당사자인 세르비아와 이웃 마케도니아가 경계심을 보이는 부분이 바로 대알바니아 건설론이다. 대알바니아론은 뿌리가 깊다. 지난 1912년 유럽 열강들이 발칸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코소보를 신생 알바니아 공화국에 주지 않고 세르비아 쪽에 안겨주었다. 그때 이래로 코소보는 알바니아민족주의의 큰 관심사였다.1999년 코소보사태 당시 알바니아 무장세력들은 코소보해방군(KLA, 알바니아 약어로는 UCK)이란 이름으로 세르비아 보안군과 경찰에 맞섰다. 마케도니아와 세르비아의 알바니아인들도 해방군을 뜻하는 UC 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프레세보 부야노바치 등 세르비아 접경지역의 알바니아인들이 조직한 UCPMB는 1천에서 2천명의 무장력을 갖추고 있다. 이들 가운데 간부급 상당수가 UCK에서 싸운 전력을 지였다. 마케도니아 북서부 지역의 민족해방군(NAL, 알바니아어 약어로는 코소보해방군과 같은 UCK)도 있다. 마케도니아 남부 스투르가 지역에서도 알바니아인들의 공기가 심상치 않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단순하다. 지금의 정치체제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세르비아 접경지역은 물론 마케도니아 서북부의 테토보 등에 있는 알바니아 민족주의자들은 코소보에 편입되길 바란다. 코소보가 지금은 유엔 보호령 같은 처지에 있지만, 언젠가는 세르비아로부터 독립될 것이란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유고연방으로부터 분리될 때 일부 문제점을 고친 후에 대알바니아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이들 민족주의자들이 계속 코소
    사회과학| 2001.12.13| 6페이지| 1,000원| 조회(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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