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원명 : Ⅱ. 주변의 화합물 중단원명: 3. 금속의 성질과 이용(1) 교수-학습 과정안단원2. 금속의 성질과 이용본시주제(1) 금속의 특성차시1/2학습목표·금속의 공통적으로 나타내는 특성을 안다.·금속의 특성이 나타나는 까닭을 이해한다.학습자료교재, OHP, 컴퓨터주요수업모형탐구학습모형학습단계시간교수-학습 활동지도상 유의점인사 및출석점검1·인사를 한다.·출석을 확인한다.선수 학습 파악2·주기율표에서 금속에 해당하는 족은?·우리 생활에서 느낄수 있는 금속의 특성은?공통과학에서 배운 것을 상기시킨다.학습목표 제시1·학습목표를 제시한다.문제 파악 및 인식2·물리적 특성과 화학적 특성의 차이는?·금속의 특성이 나타나는 이유는?예를 들어 설명한다.자료 제시5·실제 금속을 보며 스스로 알수 있게 한다.여러 종류의 금속을 제시한다.자료 해석 및 분석25·금속의 물리적 특성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금속의 화학적 특성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금속의 반응성은 어떠한가?·금속의 특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여러 가지 그림을 보여주어서 이해를 돕는다.결과 및 해석5·금속의 물리적 특성 : 고체, 광택, 양도체, 전성 ,연성 등·금속의 화학적 특성 : 산소와 반응하여 산화물 형성, 산과 반응하여 수소발생, 이온화에너지가 작아 양이온이 됨.·금속은 금속결합과 자유전자 때문에 금속의 특성이 나타난다.분류 활동5·물리적 특성 : 녹는점, 굳기, 비중, 색, 전도성, 전성, 연성·화학적 특성 : 산소와의 반응, 물과의 반응, 이온화 경향형성평가 및 차시예고4·형성 평가를 실시한다.·다음 시간의 학습할 내용과 과제 부여한다.(2) 판서계획 및 형성 평가판서 계획대단원명 : Ⅱ. 주변의 화합물2. 금속의 성질과 이용(1) 금속의 특성1. 물리적 특성 : 전성, 연성은 금속만이 가진다.(1) 상태⇒ 녹는점이 높아 대부분 상온에서 고체이다.(2) 색⇒ 대부분 은백색이나 회백색 광택을 가진다.(3) 전도성⇒ 열과 전기의 양도체이다.(4) 전성·연성⇒ 얇게 펴거나 가늘게 뽑을 수 있다.2. 화학적 성질 : 이온화 에너지가 작아 양이온이 되기 쉽다.(1) 산소와의 반응 : 대부분의 금속은 산소와 반응하여 산화물을 만든다.금속 + 산소 → 금속산화물(2) 산과의 반응 : 대부분의 금속은 산과 반응하여 수소기체를 만든다.금속 + 산 → 염 + 수소(3) 이온화 경향rm K>Ca>Na>Mg>Al>Zn>Fe>N i>Sn>Pb>(H)>Cu>Hg>Ag>Pt>Au3. 금속의 특성이 나타나는 이유(1) 금속 결합 : 금속의 양이온과 자유 전자 사이의 정전기적인 인력에 의한 결합으로 전자의 바다에 금속의 양이온이 떠 있는 형태이다.
교육행정 및 교육경영2002년 2학기권기욱교수님화학교육과3학년 자립형 사립고제 1장 이론적 배경1. 이론적 배경탈규제학교와 같은 개념으로 모든 학교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현행 교육관계 법규의 규정에서 벗어나 학교운영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학교이다. 대상은 초중등학교는 물론 공립과 사립학교 모두 해당된다.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지 않고 수익자가 교육비를 부담하고, 교육과정 운영도 학교가 선택하는 자율학교이다. 사립 법인의 재정자립도와 학교경영의 투명성 및 장학제도, 학생후생복지제도 등을 종합 평가하여 학교를 선정한다. 교육부의 심사를 거쳐 시도별로 1~2개가 지정된다. 자율학교의 운영은 교육개혁의 목표가 학교현장에 가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어야 하며, 현행 교육관계법의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규제를 최소화하여 자유롭게 학교를 운영하여 궁극적으로는 각급 학교현장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또한, 다양한 학교운영을 통해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을 확대하고 단위학교의 자율적인 운영을 통해 학생들의 학력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학생들의 다양한 교육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신축성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며, 교사들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노력을 교육활동에 적응할 수 있도록 모든 교육활동에 관한 사항을 단위학교 자체에서 결정하고 조성할 수 있다. 자율학교로 지정되면 교장은 자격유무에 관계없이 유능한 인사를 초빙하여 임용할 수 있고,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편성운영할 수 있으며, 교과서도 국정검정 교과서 또는 인정교과서 외의 도서를 사용할 수 있다. 학교운영위원회도 학교의 필요성에 따라 자유로이 구성운영할 수 있으며, 학생모집은 교과 위주의 필기고사가 아닌 다양한 전형방법을 통해 지역 또는 전국단위로 선발한다. 다만, 수업료 및 입학금은 정부의 물가인상 억제책 및 다른 학교와의 형평성 문제로 현행 입학금 및 수업료에 관한 규칙에 따라 책정해야 한다. 한국의 자율학교제도와 유사한 외국의 사례로는 영국의 국고운영학교(Grant-Maintai)와 미국의 특허학교(Charter School)를 들 수 있다.2. 자립형 사립고의 설립배경1) 고교 평준화 제도의 보완적 성격1974년 국민의 성원에 힘입어 시작한 고교 평준화는 중학교에서의 입시병을 해소하고 교육의 기회를 균등화하는 데 공헌이 컸다. 그러나 한국 국민에의 열광적인 교육열로 인하여 사립과외의 증대, 공교육의 붕괴로서 더 이상 교육을 공교육에 맡길 수 없다는 일부의 의견과 미래 경쟁화 시대에서의 특성화된 교육으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생겨난 과학고, 외국어고 등의 특수목적고였다. 그러나 입시준비기관으로 그 기능이 전락하는 식의 교육 정책의 실패로 교육부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필요가 있었다. 이에 교육부는 자립형 사립고 안을 상정하였고 1995년 교육부가 이 자립형 사립고 안을 거론한지 6년만에 실행이 결정된 것이다.2) 새로운 교육적 개혁에의 예산 소요에 따른 경제부처의 경제논리상의 정책추진자립형 사립고안은 1995년에 안은 상정되었으나 그간 실행이 미뤄져 오던 중 경제부처의 경제논리상의 요구로 집행하려는 것이다. “막대한 예산이 드는 교육여건 개선사업등 하드웨어 개혁을 받아들일 테니 교육시스템도 개혁하라”는 식의 경제부처의 주문이 있었다라는 것이다. 이같이 교육의 질적인 면과 평등성 문제와 같은 교육적 가치를 무시하고 서 단순히 경제논리, 배분논리 만을 가지고서 문제를 해결할 려는 신자유주의 식의 경제논리로서 도입되었다.제 2장 실태와 문제점자립형 사립고의 실태와 문제점을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을 중심으로 알아보자.1. 찬 성 (正)자립형 사립고를 전적으로 찬성을 하는 입장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함으로써 장점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1) 수월성(秀越性)을 강조하는 우수 인재 확보를 할 수 있다.수월성이라는 것은 잘 할 줄 아는 것을 잘 알게 한다는 의미의 것이다. 이는 특성화 교육으로 자신의 특성을 살려서 그 분야에 전문가로 키워 국제 사회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다라는 것과 접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는 방안으로 ‘영재학교’가 있다. 이것도 자립형 사립고의 문제와 같이 일반학생과의 형평성과 입시 과열이라는 문제 제기에 부닥쳐 고난을 면치 못 하고 있다. 물론 사실 그 문제점으로 제기되는 입시과열이란 것을 보면 지금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영재학원과 아이들이 놀 시간이 없어 일주일에 한번 놀러 간다는 ‘놀이방’의 시대 현실을 접해볼 때 정말 문제가 있을수 있구나라고 생각을 한다.2) 교육 수혜자의 선택권 보장과 교육의 획일성의 탈피평준화, 공교육의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좀더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고 교육의 수혜자인 학생이 교육의 내용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 학습 능률이 상승된다. 이와 교육환경도 수혜자 중심으로 구성되어 다양한 교육환경에서 각각의 인재를 양성하여 궁극적으로 사회의 전체적인 발전을 이루고 세계의 경쟁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다. 이는 즉 교육에도 자유 경쟁 시장 원리가 도입된다고 보는 신자유주의적 관점이다. 물론 선택권의 측면과 특성화의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 특수목적고를 설립하였지만 그것 또한 입시의 준비기관으로 전락하는 실패를 맛보았다. 자립형 사립고의 도입으로 획일전인 공교육이 아닌 교육의 활성화가 될 것은 분명하다.3) 하향평준화의 우려에서의 탈피고교 평준화는 교육의 하향평등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여 궁극적으로 사설과외를 부추겨 공교육의 붕괴를 붕괴했다고 볼 수 있다. 즉 고교평준화는 교육질을 저하시켜 21세기의 시대적 요구와 국제 경쟁력의 약화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자립형 사립고의 도입을 통해 창의력 있는 인재를 육성하여 폭 넓고 자유롭고 다양한 사고를 가진 인재를 양성함에 따라 국가 경쟁력 재고와 21세기의 시대적 요구를 부응 할 수 있게 된다. 사실 평준화에의 공교육이든 준공교육이든 간에 보통을 위한 교육이 원칙임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보통이라는 선이 공교육상에서의 수준과 자립형 사립고의 선발된 인원의 수준은 틀리다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로서 하향평준화된다는 것이다.4) 학교간의 경쟁과 특성램을 통한 질의 향상자립형 사립고 이 정책이 시행되고 더욱더 확대된다면 미래에 가서는 자립형 사립고 간의 학생유치를 위한 학교간의 경쟁으로 학교의 시설의 완비와 교사의 질의 향상이 가능해질 수 있다. 그리고 사립의 특성을 살려 자율적으로 각 학교의 교육프로그램을 만듦으로서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2. 반 대 (反)1) 교육기회의 불평등 조장1974년 평준화를 실시한 것도 교육기회의 불평등의 없애고자 하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제도였다. 이 자립형 사립고의 등장은 평준화를 무너지게 만드는 그 시발점이 될 거라는 견해는 지배적이다. 자립형 사립고의 교육기회의 평등을 위해 장학을 15%를 준다지만 애초부터 그 관문을 넘을 수 있느냐의 문제가 대두된다. 물론 자립형 사립고에 진학을 했을 경우에 그 문제는 더욱더 심각해 지는 것을 무시할 수 는 없는 것이다.2) 입시위주의 귀족 학교의 출현서양의 귀족 학교처럼 일부 가문의 자제들만 교육을 받는 교육기관처럼 자립형 사립고의 교육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지도 모르는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교육기회의 불평등과 관계된 문제이기도 하다.3) 경쟁보다는 공동체 교육을 강조현대 사회는 너무나 경쟁적이다. 강조자립형 사립고를 통해 어린 나이에서부터 경쟁의식이 조장될 것이며 우월집단인 귀족학교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과 교류할 수 없는 사람을 만들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4) 되살아나는 중학교 과외열풍자립형 사립고가 설립되면 중3병의 부활과 과외 열풍이 몰려 올 것이다. 이로 인해 중학교에서의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어렵게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중학교를 입시학원으로 전락시켜 중학교에서의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심각히 훼손할 우려가 있다.5) 고교 서열화와 학벌중심의 문화 심화어떤 이들은 지금의 경제발전과 사회의 발전이 전부 우리의 교육열때문이다라는 말을 한다. 이런 교육열은 우리나라의 커다란 병폐인 학연이라는 집단화 현상을 초래했다. 즉 학력과 학벌중심의 사회구조다. 이는 우리사회에서 신분제도에 비유될 만큼 강한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리고 자립형 사립고가 나온다면 결국 이를 중심으로 학교의 서열화가 형성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1998년 비평준화가 사라진 이 시점에서 또다시 일부 고등학교의 서열화가 진행은 더욱 심화될 것이며 이러한 고등학교의 서열화는 필연적으로 중학교의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제 3장 개선방안- 건강한 자립형 사립고의 도입자립형 사립고 시범운영이 처음부터 난항에 부딪혔다. 신청 학교 수부터 미달인 데다가, 그나마도 교육인적자원부에 신청된 학교는 고작 5개교 뿐이다. 본래 이 계획의 대의는 학생의 선발, 교과 과정 등 학교 운영을 학교 자율에 맡김으로써 지난 74년부터 시행되어 온 고교 평준화 정책의 문제점들을 보완하는 데 있었다. 물론 고교 평준화 정책에는 여러 긍정적 측면들도 있었지만, 부득이하게 수반한 교육의 획일화 등의 부정적 측면들을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교육계 내외에서 수차례 환기되었던 시점에서 이 안의 시행 결정은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게다가 자율적인 학교 운영은 그것을 통해 사학이 비로소 사학답게 꾸려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 모든 사학의 공통된 숙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정대상 학교뿐만 아니라, 아예 시범 운영을 희망한 학교조차 극소수에 그치고 마는 이율배반적 현상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무엇보다 대상 학교 조건이 부분적으로는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까다롭다. 사학이란 그 개념상 이미 설립 및 제반 운영에 있어서의 자율권 보장을 전제로 해야만 하는 학교 형태이지만, 우리의 현실상 그 동안 대개는 국공립학교의 역할을 함께 맡아왔다. 이는 국가가 국민에 대해 져야할 책임과 의무를 사학이 자발적으로 대리함으로써 국가의 부담을 엄청나게 경감시켰음을 의미한다. 이제 학교 운영의 주권을 운영 당사자에게 이관한다는 것은 안 해도 그만인 것을 국가가 베푸는 은혜가 아니라 오랫동안 손상 및 억제되어 온 사학의 참모습을 찾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립학교가 이미 대상 자격요건을 갖추 한다.
0. 동학 농민 봉기. 동학농민운동의 전개 과정과 그 결말곡창지대인 전라도는 개항 이후 근대화정책으로 재정이 쪼들린 중앙정부와 수령의 탐학을 가장 심하게 입었고, 쌀수출과 관련하여 일본상인들의 침탈도 다른 지역에 비하여 컸다. 특히 중앙정부와 수령의 수세와 균전세의 징수, 전운의 폐단 등 각종 억울한 세금이 부과되었다. 그래서 중앙정부와 수령, 그리고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남달리 강하여 언제라도 폭동이 일어날 강경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러한 전라도 농민의 강경한 기류에 불을 붙여 놓은 것은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이었다. 그는 만석보의 수세를 강제 징수하고, 아버지의 비각을 세운다고 1천여 냥의 돈을 사취하는 등 온갖 탐학을 일삼았다. 이에 분개한 농민들은 고부 접주 전봉준의 지휘 아래 여러 차례 고부관아와 전주감영을 찾아가서 폐정의 시정을 요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마침내 대규모의 폭동을 일으키게 되었다.1894년 2월, 전봉준은 1천여명의 농민을 이끌고 고부관아를 습격하여 아전들을 처단하고 양곡을 몰수하여 주인에게 돌려주었으며, 무기를 탈취하였다. 고부읍을 점령한 농민군은 정부에 대해서 조병갑의 학정을 시정할 것과 외국 상인의 침투를 금지하라는 등 13개조의 요구사항을 제시하였다. 이에 놀란 전라감사 김문현이 조정에 이 사실을 보고하니 정부에서는 조병갑을 파면하고, 새로 용안현감인 박원명을 고부군수로 임명하여 사태를 수습하게 했다. 그런데 박원명은 광주사람으로 이 지방의 실정을 잘 아는 처지라 농민을 위로하면서 사태를 원만하게 수습했다. 그러나 뒤이어 도착한 안핵사(사태수습책임자) 이용태는 이 사건을 동학인의 소행으로만 돌리고 그들을 색출?탄압하는데 급급하였다. 이에 격분한 전봉준과 농민들은 1894년 4월 ‘보국안민’을 위해 봉기하라는 통문을 사방에 보내 8천명의 대오를 구성하여 조직적인 항거에 나섰다. 대장에 전봉준, 총관령에 손화중?김개남, 총참모에 오지영 등 지휘부는 대개 동학인들이 맡았으나 대부분의 참여자는 일반농민들이었다. 동학의낀 정부는 청에 출병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거류민보호를 구실로 일본군도 출동하여 갑신정변 이후 10년 만에 청?일 두 나라의 군대가 대치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정부와 농민군은 되도록 외세의 개입이 없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휴전교섭을 벌인 끝에 이른바 전주화약(1894. 6. 11)이 맺어졌다. 처음에 농민군은 30여 조의 폐정개혁안을 제의하였으나, 실제로는 12조의 개혁안이 합의되었다. 전주화약에 따라 전라도관찰사와 전봉준은 전라도 53군에 집강소라는 민정기관을 설치하고, 한 사람의 집강과 그 밑에 서기?성찰?집사?동몽 등의 임원을 두었으며, 전주에는 집강소의 총본부인 대도소를 설치하였다. 이때 전봉준은 전라우도(북도)를, 김개남은 전라좌도(남도)를 각각 통할하였다. 개혁안의 내용은 농촌사회문제에 국한된 것으로 세금문제, 신분차별문제, 일본에 대한 경계, 그리고 토지문제가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비록 근대국가건설에 필요한 국가조직이나 국방?재정?상공업?과학기술문제 등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농민들의 요구조건이 근대국가 수립에 필요한 모든 조항을 담은 것은 아니었지만 농촌의 영세농과 소상인들의 생활안정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였다.그런데 왕과 관료들이 불러들인 청군과 이를 따라 들어온 일본군으로 인해, 중앙의 정치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정부나 청나라의 요청을 받은 미국?영국?러시아 등이 일본군과 청군의 공동철수를 요청했으나, 일본군이 거절하고 날로 침략을 노골화했다. 일본은 조선의 내정개혁을 요구하다가 반응이 없자, 군대를 동원하여 궁궐을 점령하여 친일정권을 세우고 조선군을 무장해제 시키면서 청국군을 기습공격하여 ‘청?일전쟁’을 도발하였다. 갑신정변이후 실추된 위상을 일거에 회복하려는 술책이었다. 일본군의 왕궁점령에 분격한 농민군은 이 해 10월 척왜를 구호로 내걸고 재기하였다. 이제는 내정개혁을 목표로 하지 않고 일본과의 항쟁이라는 반외세가 거병의 주요 목표였다.그리하여 10만여 명의 전라도 농민군이 전주 북쪽의 삼례에 싸웠지만 일본군과 이에 야합한 관군에 의해서 실패하고 말았다.가.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배경양반관료국가로 출발한 조선 왕조는 19세기에 접어들어 세도정치가 성행하면서 그 부산물로 관기가 해이해지고 탐관오리가 발호하여 삼정이 문란해져 농민생활이 극도로 피폐되었다. 또한, 양반을 정점으로 위계질서의 엄수라는 전제 속에 기반을 둔 조선 사회는 농촌사회의 분화와 신분 질서의 변동으로 그 밑바탕부터 흔들렸다. 이러한 가운데 의지할 곳 없는 농민대중은 동학에 귀의하였으니, 동학은 그들의 고통을 덜어 줄는 안식처요, 불만 해소처였으며, 꿈을 실현시켜 줄 수도 있는 이상의 보금자리였다. 그것은 동학이 그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창도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학의 개벽사상과 평등사상이 광제창생을 위한 반봉건의 투쟁의식을 고취하였고, 척왜양정신이 제국주의의 침략으로부터 보국안민 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동학의 지도자들은 상당한 재산과 학식을 지닌 인사들로서 교리와 교단조직 등도 근대종교에 걸맞게 정비하였다.그리하여 혁명의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었으니, 실제로 동학농민군이 봉기하기까지 이미 삼남일대의 농민대중들에게는 반봉건의 혁명사상과 함께 배외감정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들은 동학사상 자체내에 내포되어 있는 반천주교적 성격과 척왜양사상에다가 2차시위를 거치면서 서울에 왜양의 제국주의 세력이 깊이 침투하여 보국안민에 크게 장애가 되었음을 실감하였으며 그러한 결과로 동학에 적극 호응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봉건체제 아래서 탐관오리의 수탈과 제국주의의 침략이 가중되자 사회적 신분향상을 이룩한 농민대중이 동학에 접근하여 집단시위를 통해 정부에 대항하고 그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투쟁적 활동을 전개한 것이 바로 동학농민운동인 것이다.나. 동학농민운동의 지향점동학농민운동이 지향하는 목표로는 전근대적인 봉건지배체제의 청산과 사회적 모순 및 비리의 제거, 그리고 경제적 폐습타파와 평등의 구현, 정치적?사상적 침략에 대한 척왜양주장과 외세의 경제적 침략에 대한 저항 등으로을 들 수 있다. 먼저 독점상인의 폐지는 각 시전과 도가의 독점판매행위 그리고 보부상의 횡포를 없애야 함을 역시 폐정개혁안에서 밝히고 있고, 채무의 탕감 역시 모든 공사채를 탕감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토지를 평균하게 나누어 경작할 것을 천명했다.넷째로, 척왜양주장은 강령?격문?방문에서 살필 수 있다. 동학농민군이 백산에 발표한 사대강령 중에 왜이를 축출하여 성도를 밝힌다고 선언했으며, 이어서 격문에서 창생을 건지고 국가를 반석위에 두고자 밖으로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구축한다고 밝혔다.다섯째로, 일본이나 서구 제국주의 그리고 청의 경제적 침략에 대한 저항이나 투쟁으로 그들의 약탈적 경제행위를 직접적으로 반대하고 또 외세와 결탁하여 농민생활을 곤궁에 빠뜨리는 간접적 수탈을 배격하는 사례들을 역시 폐정개혁건의안과 폐정개혁안에서 밝히고 있다.다. 동학농민운동의 역사적 의의1894년에 전국을 휩쓸었던 동학농민운동은 수십만의 희생자를 낸 채 좌절되었지만, 우리나라 역사에 매우 큰 의의를 남겼다. 그것은 바로 올바른 역사발전의 방향을 제시하고 반봉건의 민주화 운동과 반외세의 자주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이다.세계 역사에서 근대와 현대는 바로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화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주 독립국가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반외세의 자주독립과 반봉건의 민주화를 이룩하려는 동학농민운동은 올바른 역사발전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비록 일본군과 양반관리들이 손을 잡아 실패로 돌아갔지만 우리 역사는 그러한 방향으로 계속 싸우고 노력하여, 오늘날의 우리나라가 이루어 진 것이다. 동학농민운동이 이룩하려 했던 반봉건의 민주화는 혁명 자체는 실패로 돌아 갔지만 동학농민들이 주장했고 실천했던 개혁의 내용들이 갑오경장이란 제도화로 상당히 실천되었다. 그리하여 평등사회와 근대적인 제도들이 법으로 정해지고 낡은 관습과 나쁜 제도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갑오경장을 추진한 세력이 일본과 손을 잡은 사람들이었고 수천년동안의 습관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없었기 때문 가는 가운데 이웃나라 조선을 사이에 두고 일본과 사사건건 경쟁과 마찰을 거듭하였다. 특히 1884년 조선에서 일어난 갑신정변때에 일본군이 개화당을 지지하자 이홍장은 곧바로 원세개로 하여금 조선에 출병하여 일본을 견제케 하였다. 이때에는 일본이 순순히 물러나서 전쟁으로까지 확대되지는 않았지만 조선을 집어삼킬 욕심에 가득차 있었던 일본으로서는 조선에서의 청 세력을 몰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되어 청과의 전쟁을 준비하게 되었고 반면 청의 입장에서도 항구적으로 조선을 그들의 영향력 아래에 두기 위하여서는 조선에서의 일본 세력을 완전히 물리쳐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히 두 나라는 조선을 사이에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여 결국 전쟁으로 까지 치닫게 되었는데 1894년 조선에서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자 조선정부의 구원요청을 받은 청 조정은 신속히 군대를 파견하였고 일본도 텐진조약에 의거 조선에 군대를 파견하였다. 이때에 언젠가는 청과 한판승부를 벌이려고 군사력을 키워오던 일본이 이때가 적기라고 판단하여 청국함대를 풍도 앞바다에서 공격함과 동시에 선전포고를 하여 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가. 청일전쟁의 경과지난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났을 때 원세개가 이끄는 청국군대는 일본군을 물리친바 있었다. 그러다가 1894년 조선에 동학농민전쟁이 벌어지게 되고 농민군은 진압할 힘이 없어진 조선조정은 어전회의를 열고 청에 원병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되자 청조정의 막후 실력자 이홍장은 원세개로 하여금 병력을 이끌고 조선에 출병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때가 1894년 6월 5일이었으며 순양함 2척이 인천에 도착하고 이어 6월 8일부터 12일까지 섭지초가 지휘하는 육군 2400명이 아산에 상륙하였고 6월 25일에는 400명의 증원부대가 도착하였다. 한편 바다건너 일본은 임시대리공사 스기무라 후카시로부터 조선이 비공식적으로 청국에 출병을 요청하였다는 사실과 아울러 병력이 조선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텐진조약에 의거 곧바로 군대를 조선에 파견하한다.
어린 왕자를 읽고.........어린 왕자는 어릴 때도 읽어봤던 책이다. 그러나 그때는 어려서 그랬는지 별 생각 없이 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을 계기로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어린 왕자에 담긴 깊은 뜻을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어린 왕자의 작가는 생택쥐베리이다. 생택쥐베리는 진짜 비행기 조종사였다. 내 생각엔 생택쥐베리와 어린 왕자에서 나오는 비행기 조종사와 어린 자 둘 다와 비슷했던 것 같다. 어린 왕자는 생택쥐베리가 느낀 어른에 대하여 어린 왕자를 통해 나타내고 있는 것 같고, 비행기 조종사는 생택쥐베리가 가지고 있는 어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어린 왕자에 나오는 비행기 조종사는 현실의 대표적인 어른이다. 그러나 어린 왕자와 함께 지내고 이야기함으로써 점점 어린 왕자를 이해하고 어린 왕자의 관점을 이해하게 된다.어린 왕자는 아주 작은 별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그렇게 작은 별에서 혼자 살라고 하면 만족하지 못 할 것이다. 항상 1개가 있으면 2개를 갖고 싶고 2개를 가지면 3개를 갖고 싶어하는 게 우리의 마음이니까.... 그러나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 만족하고 그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자신에게 활용하고 돌보아 준다. 심지어 꺼진 화산까지도 게으르지 않게 잘 돌보아 준다.이 책에서 나로 나오는 비행기 조종사는 어릴 적에는 정말 상상력이 풍부하고 어린 왕자에 가까운 인물이었으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주위 환경에 의해 전형적인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비행기 조종사는 제2의 어린 왕자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잠시동안 자신을 잊고 살아서 그렇지 원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어릴 적의 보아뱀 그림은 솔직히 내가 봐도 굉장한 상상력이 있지 않고는 알아볼 수 없었다. 나도 벌써 어른 사고를 하는가보다. 또한 어느 천문학자의 옷차림에 대한 사람의 태도가 달라진다. 그림을 알아 볼 수 없고, 천문학자의 옷차림에 대해 달라지는 태도의 이유는 선입견 때문인 것 같다. 무언가를 볼 때 사전에 선입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만약 어떤 사람이 손가락질 받고 있으면, 우린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보기 전에 우리도 같이 손가락질을 하게 된다. 그 사람이 인간적으로는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주위의 환경과 생각이 맞지 않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서 외면을 받게 된다. 그런데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외면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까지도 의심하며 외면한다.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 있는 장미를 정성스럽게 돌보아주지만 장미는 잘난 척을 많이 한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조금은 장미를 미워하게 된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여행을 하는 중에 장미를 그리워하게 된다. 이는 나중에 만난 지구의 여우가 길들인다 는 말을 어린 왕자에게 하게 된다. 길들인다는 것은 자신과 관계를 맺는다는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어린 왕자는 장미에서 자신이 길들여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우리 주변의 사물들에 길들여져 있다. 여기서 길들여져 있다는 것은 예를 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어떤 한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그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즉 사물에 의미 부여를 한다는 것이다. 우린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 의미 부여를 한다. 나의 친구, 나의 부모님, 나의 동생, 나의 연필...... 사람에서부터 사소한 물건에까지......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내가 그것에 마음을 주고 내가 그것을 잘 돌보고 신경 쓰겠다는 것도 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길들여 놓고 신경 쓰지 않고 잘 돌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의 부모님이라고는 하지만 부모님께 신경 쓰지 않고 따뜻한 말 한마디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얼마 있으면 어버이날인데 그날 하루만이라도 부모님의 일을 대신해드려야 했다. 항상 마음으로는 생각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표현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앞으로는 나의 것이라고 단정만 짓지 않고 그것을 가꿀 줄도 알아야겠다.어린 왕자가 여행한 별 중에는 상인이 사는 별이 있었다. 그 상인은 어린 왕자와 대화도 하지 않으려 하고 계속 별 즉 돈만을 세고 있었다. 그는 숫자에 얽매여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상인뿐만 아니라 어른들은 모두 숫자에 얽매여 있는 것 같다. 실제로 현재 어른들도 숫자에 얽매여 있는 것 같다. 항상 얼마만큼 있냐 고 물었을 때 많이 있다 또는 조금 있다 는 것보다는 10개가 있다 는 대답을 좋아한다. 또한 어른 돈을 좋아한다. 사실 어른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 사는 대부분이 돈을 좋아한다. 돈이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런 부분이 많다. 그러나 돈으로 살수 없는 사랑, 우정 등 사람의 감정마저도 돈으로 사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돈의 노예인 것 같다. 항상 돈을 벌기 위한 방법만을 생각하지 얼마나 돈을 가치 있게 쓰려는 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돈을 많이 번 사람은 그만큼 남을 위해서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나에게 지금을 돈을 준다면 그중 70%는 날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곳에 쓰고 30%는 다른 사람 즉, 불쌍한 사람들 도와주고 싶다. 물론 불쌍한 사람들이란 무조건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 과정은 시대의 변천과 시대적 요구에 따라서 변화하고 있다. 이번 레포트에서는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변천과 각 교육과정의 내용에 대한 것과 각 과정이 변화하게된 요인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교육과정의 내용에 대해서는 자료를 비교적 찾기 쉬웠으나 변화요인은 찾기가 어려웠다.1945년부터 1946년은 교육에 대한 긴급 조치 시기로서 일본이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이기 때문에 주된 교육방침은 일본의 색채를 없애고 평화와 질서를 교육 목표로 삼았다.또한 1945년 9월 24일부턴 공립 초등학교를 개교하고 10원 1일부터는 중등학교 이상의 학교에 대해서도 개교하도록 했다.1946년부터 1954년까지는 교수 요목기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교육에 대한 긴급 조치시기에 비해 교과별로 가르칠 주제를 열거나 세부적이게 되었다. 또한 교과의 지도 내용을 상세히 표시하고, 기초능력을 배양하는데 주력하였으며, 교과는 분과주의를 채택하였으면 체계적인 지도에 중점을 두었으며, 그때까지 남아있던 일제의 잔재를 제거하는데 노력하였다.제 1차 교육과정(1954년 ~ 1963년)은 헌법에 따라 정부가 수립됨에 따라 좀더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교과로서 체계를 다 갖추기 전에 6·25사변이 일어나게 되어 교육과정 제정사업이 중단되었다. 이 시기는 최초로 만들어진 법령형태의 교육과정이다. 이 때는 전쟁이 일어난 시기이기 때문에 교육의 과정 또한 현실 생활을 개선·향상시키고, 사회를 발전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이념의 차이로 인한 반공교육과 실생활에 필요한 실업교육을 강조하였다.제 2차 교육과정(1963년 ~ 1973년)은 생활중심 교육 과정 또는 경험 중심 교육과정을 강조하던 시기이다. 이는 학생들이 학교 지도 하에서 경험하는 모든 학습활동의 총화를 의미하며 학생들의 학습경험 여하에 따라서 그들이 어떤 인간으로 성장하느냐가 결정된다고 한다. 교과목으로 조직된 내용보다 학생들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의 개념을 전적으로 받아들인 경험중심 또는 생활 중심 교육과정이다. 아직 교육이 학문적인 것보다는 경험에 의한 지식을 중요시 여기는 시기이다. 또한 일반적인 내용만을 교육과정에서 제시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지역사회에 맞게 이루어졌다. 이는 아직 지역에 따라 많은 경제 문화적인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일률적인 교육과정은 맞지 않았을 것이다.제 3차 교육과정(1973년 ~ 1981년) 때는 생활중심 교육과정을 지양하고 학문 중심의 교육과정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교육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같다. 미국에서 학문중심의 교육과정이 나타남에 따라 우리나라도 이에 영향을 받아 10년간 이론적 연구와 실험을 한 후 학문중심 교육과정을 공포하였다. 3차 교육과정에서는 국민적 자질 함양과 인간교육의 강화와 지식·기술 교육 쇄신을 기본방향으로 했다. 이러한 교육과정은 국민 교육헌장 이념의 구현을 기본방향으로 삼고 있다. 이 시대부터는 경제적인 성장이 이루어짐에 따라 나타나게된 비인간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가치관 교육이 강화된 것 같다. 또한 경제 발전을 위해 지식·기술 교육이 강조된 것 같다.제 4차 교육과정(1981년 ~ 1988년)은 민주 사회, 고도 산업 사회, 건전한 사회, 문화 사회, 통일조국 건설에 필요한 건강한 사람, 심미적인 사람, 능력 있는 사람, 도덕적인 사람, 자주적인 사람을 길러 내는 데 목적을 두었다. 4차 교육과정은 이전의 교육과정이 지닌 문제점들은 보완하고 국민의 정신 교육에 주력을 두었다. 사회가 발전함에 때라 나타나는 사회의 현상들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민 정신 교육을 강화시킨 것 같다. 또한 이제까지 교육부 편수관이 주도하여 개정하던 종래의 교육과정 개정과는 달리 한국교육개발원에 연구 개발을 위탁하여 개발하도록 하였다. 또한 현재의 문제이기도한 과외문제가 이때도 심각한 사회 문제로 과열된 과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교육내용의 양과 수준을 적정화하여 교육 정상화를 이루려고 했다.제 5차 교육과정(1988년 ~ 1992년)은 교육부가 교육철학·학무내용·교육방법의 변화, 경제적 발전과 사회의 변화, 현행 교육과정 고시 이후 7년 경과, 국제 경쟁력 강화의 필요, 교육의 질적 고도화를 내세웠다. 또한 5차 교육과정은 교육과정의 적정화·내실화·지역화를 개정의 방침으로 하고 지속성·점진성·효율성 등을 개정 전략으로 하였다. 이 교육과정에서는 기초교육의 충실, 정보화 사회에 대응하는 교육의 강화, 교육과정 효율성의 제고이다. 5차 교육과정은 교육의 효율을 위해서 교육을 지역화를 강조하였다. 또한 특별활동을 강조하고, 특수 학교 운영지침을 명시하였다. 또한 사회적으로 남녀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어 남녀 공통 교과로 기술·가정 교과가 새로 생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