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에 대한 세 가지 교훈첫째,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을 자기 백성들 가운데 드러내길 갈망하신다.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예배와 관련이 있으며 또한 자기 집을 찬송으로 가득 채우는 자들이 영광의 길을 예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환영해야만 한다는 것을, 즉 그것을 일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것을 존중해야만 한다는 것을 배웠다.성막에 임했던 구름은 무서운 안개가 아니라 빛나는 임재였다. 연기와 불은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인위적인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러 그것은 전능자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예언으로 자기 백성을 축복하시고자 임재하시는 온화한 불인 동시에 적군과 전투를 벌이시고자 하는 분노가 담긴 전쟁의 불이었다. 이제 선자지는 당신과 나의 집이 그분의 축복의 광채로 가득하고, 원수의 어떤 공격에도 분개하시는 불로써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불로 빛날 것을 예언하고 있다.나도 그분이 우리 교회를 영광으로 방문하시기 이전에는 이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 축복은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적용된다. 내가 개인적으로 경험했다는 점에서 이는 개인적이며, 이를 통해 나의 사역과 내가 섬기는 사람들이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공동체적이다.성경에 나오는 집의 개념을 살펴보면 주님이 당신의 집에 영광을 약속하시면서 보기를 원하시는 더 넓은 차원의 관점을 얻게 될 것이다.집은 부동산을 의미하며, 관계를 의미하며, 책임을 의미하며, 영향력을 의미한다. 이사야가 언급한 “당신 집에 임할 영광”의 예언을 살펴보면 이 축복에 담긴 수단과 의미가 무엇인지 알수있다.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침공한 후 모세의 장막이 어디로 이동하고 어디에 위치했는지에 대해 성경이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주 놀라운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다윗이 지도자로 있을 때 두 번째 성막이 세워졌다. 이 장막은 매우 오래 전에 세워졌지만 가장 정확한 언급은 다윗이 죽은 후에 이루어 졌다. 성경의 예언은 이 장막에 대한 추억과 미래를 모두 말해준다.“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왕위가 견고하여 가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사 심히 창대하게 하시니라 솔로몬이 온 회중과 함께 기브온 산당으로 갔으니 하나님의 회막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것이 거기 있음이라 다윗이 전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장막을 쳐두었으므로 그 궤는 다윗이 이미 기럇여아림에서부터 그것을 위하여 준비한 곳으로 메어 올렸고” (대하 1:1, 3-4)사울의 통치가 시작되기 오래 전, 육신적인 교만과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에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잃어버렸다. 십계명의 돌판을 담은 이소중한 황금 상자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만나기로 택하신 곳이었다. 역사적으로 영광의 구름이 이 언약궤위에 머물렀으며, 이는 하나님께서 “이 상자 안에” 계셨음을 암시한다.어떤 경우에도 이스라엘이 만난 “집의 나병”은 가볍게 취급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특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나님께서 “그 집을 위하여 속할 것이라”(레14:53)고 지시하신 조치는 오늘날에도 교훈적이다. 이 것은 구속적 행동을 요구할 뿐 아니라 영적인 의미도 지닌다.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하나님의 제사 제도의 능력이 필요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분명히 존재하며 동시에 파괴력을 지닌 이것을 집에서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리고 그 존재의 능력은 물리적 세계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이런 나병은 영적 구속을 통해 처리되어야 했다.영적으로 부정한 것들은 한 장소에 머물면 부패한다. 영적으로 부패한 것은 집, 자동차, 사무실, 직장, 학교 사물함등 우리가 다스리는 곳이면 어디든지 머무를 수 있는 영적 차원을 가지고 있다.원수가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며 우리를 지배할 장소를 찾고 있다는 베드로의 말씀에 비춰보면 문제가 해결된다. 즉 우리는 영적 전쟁터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려움 대신에 강건한 믿음을 가지고 이 시대가 명백한 전쟁의 시대임을 깨달아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 삶의 양식을 지배하는 영적 지혜의 훈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레위기의 예는 당신의 집을 “정결하게 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이곳에 기록된 의식이 다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모든 예표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긴 했지만 이것은 오늘날에도 적용할 수 있는 실제적인 원리들을 제시한다. 이곳에 나타난 대부분은 정화와 찬송의 원리들이다.나병에 걸린 집에 관한 말씀에서 집의 벽을 긁어내는 행위는 거주지에서 합당치 못한 것을 제거하거나, 물리적으로 이를 정결하게 하는 것으로 이는 첫 번째 정화의 원리에 해당된다. 뒤이어 드려지는 희생제물은 두 번째 찬송의 원리를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에도 우리의 입술과 행동, 찬송과 경배를 통해 적용할 수 있다. 이 두 원리는 십자가를 통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근거로 적용이 가능하며, 이 두 원리는 십자가를 통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근거로 적용이 가능하며, 이 두 원리를 통해 집을 정결하게 할 수 있다.그리스도 예수와 하나님 말씀의 반석 위에 서는 것만이 집이 생존할 수 있는 확실한 기초이다. 이런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첫째, 당신의 집을 예배로 채우라둘째, 당신의 삶의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평가하라집에 나병을 가져오는 더러움이나 부정함 혹은 악과 육성의 근원이 무엇이든지 간에 해답은 언제나 궁극적으로 우리 주 예수의 능력 안에 있다.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마28:18)를 받으셨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주님께서 죄와 사망 그리고 지옥에 대해 갈보리에서 승리하신 결과로 선포하신 것이다. 주님의 보혈과 십자가는 그 모든 세력을 이겼고, 주님의 부활은 그분의 왕 되심을 입증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정사와 권세를 벗으시며,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다(골2:15). 이제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시키셨다”(엡1:22). 주님의 사역 목적은 당신과 나를 해방시키는 일이다.“영광!” 이말은 감탄사일 수도 있고, 하나님의 방문, 영감 혹은 조명의 말일 수도 있다. 이 말은 이 책의 주제이며 또한 수많은 다른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영광은 초월적이어서, 이를 완전히 묘사하기란 불가능하다.나는 전도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은 성도들의 삶에서 예배의 영을 깨우는 것이란 사실을 믿기 시작했지만, 그 이유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물론 예배를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나의 확신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었다. 성경을 연구하면 나는 “예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할지라도 영혼 구원의 전도자가 되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 확신하게 되었다.예배는 전도보다 더 중요하다. 예배는 구속받은 자들이 마실수 있는 생수의 근원이며, 이를 마심으로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는 충만함을 유지할수 있다.예배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것이다. 교회가 살아계신 그분을 찬양할 때 그리스도를 높이시려는 성령님을 통해 그분의 임재가 능력 가운데 나타난다.하나님의 카보드는 궁극적인 현실이다. 인간의 반응을 더디게 하는 유일한 원인은 우미 모두 안에 잠재되어 있거나 아니면 활동 중인 인간적 교만의 잔재 때문이다. 이것은 보이는 세계가 “진짜”이며, 보이지 않는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 할지라도 어쩐지 “진짜” 같지 않다는 생각속에 나타난다.예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카보드의 무게를 깨닫고, 그들의 삶을 통해 거룩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자들이 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온전함과 충만함으로 그들의 공허함을 채울 때에 그 결과로 거룩한 자들이 생겨난다.
제1부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제1장 정치?경제를 통합하는 신세계질서“미국의 1달러짜리 지폐 뒷면에 - ANNUIT COEPTIS - 라고 씌어 있는 이 글은 - 신은 우리에게 번영을 약속했다 - 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 .Novos ordo seclorum - 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라틴어에서 온 말이며, 영어로는 - New World Order - , 우리말로는 - 신세계질서 - 로 번역될 수 있다. 라틴어 - 노브스 오도 세크로움 - 이라는 뜻은 -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는 자유, 곧 하나님의 속박에서 벗어난다. - 라는 뜻이다. 이 문구는 1934년 미국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를 만드는 일의 성공을 기념하여 피라미드와 함께 적어 넣은 것이다. - 피라미드 꼭대기의 빛을 발하는 전시안은 일루미나티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뜻이고, 구체적으로는 세계정부를 수립해 1인 독재를 하는 것을 나타낸다. 피라미드 속에 - MDDCCLXXV - 라고 쓰여 있는데 로마자로 1776년을 나타낸다. 1776년은 미국이 독립된 해임과 동시에 일루미나티가 정식으로 창립한 년도이다. 피라미드는 13층이며 프리메이슨이 가장 신성시하는 숫자 13을 나타낸다.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전시안(재3의 눈이 있는데) 삼각형 안에 있는 눈이 빛을 발하고 있다. 이는 인류가 타락하여 하나님을 저항하는 문화에서 비롯되었으며 과학기술의 발달로 새롭게 도전하는 제2의 바벨탑운동으로 볼 수 있다.”외교협의회(CFR, Council on Foreign Relations)“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센트럴 파크 동쪽 68가(街)에는 Harold Pratt House & Hall)이라는 고풍스런 석조 건물이 있다. 이곳은 1921년에 설립된 CFR의 본부이다. 이 건물은 스탠더드 오일 록펠러의 유산 상속자 프라트의 미망인이 기부한 것으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외교정책 싱크탱크로 데이비드 록펠러 재단의 신세계질서를 위한 연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려지면서 드러났다. 서방언론들의 질문에 영국 석유회사는 보안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공공연한 원칙이라며 이 사안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겠다고 했다.”3. 세계단일정부의 단일종교개종 계획“빌더버그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전 세계를 통제하는 데 있다. 그야말로 지구상에 군림하는 신적인 존재로서 그들이 꿈꾸는 세계는 전 인류의 노예화이다. 단일시장과 단일군사조직, 세계은행이 운용하는 단일화폐를 가진 세계유일정부, 가톨릭을 앞세워 대중을 신세계질서로 이끌 세계유일의 종교와 교회를 지향하기 위해 모든 종교를 통합하고 그 외 모든 종교는 말살하는 것 역시 빌더버그의 최종 목표 중 하나이다. 이들은 세계단일정부를 이루기 위해서는 종교적 이질감으로 빚어지는 갈등을 뿌리째 없애고 이들이 꿈꾸는 세계단일정부의 종교가 유일종교가 돼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리고 빌더버그가 중심으로 삼고 있는 종교가 바로 예수회가 변질시킨 가톨릭이다. 빌더버그 그룹 안에는 가톨릭의 한 분파인 예수회 신부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익히 알려진 사실처럼 예수회는 종교개혁(중세 유럽 교황권의 부정과 죄악상을 고발하여 일어난)을 박해하기 위해 종교재판소를 최초로 고안한 스페인의 바스코 지방의 성주 아들로 태어난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Ignatius de Loyola) 수도사가 창설한 악명 높은 수도회로 유명하다.”“빌더버그들에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세계정부는 하나이며, 갈등과 신념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라는 미명 아래 하나의 종교만 추구하고 존재할 뿐이다. 매우 가까운 미래에 만약 세계인 중 어느 누구 하나라도 세계주의자들이 설정한 지상 세계를 거부한다면 종교재판소를 부활시켜(참고로 2,000년 바티칸 교황청은 200년 만에 종교재판 국을 신설하였다) 전 세계인들의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고 탄압할 것이다. 이 종교의 통합에 있어 걸림돌이 되는 개신교의 예수만이 구원에 이른다는 성경의 말씀을 이들은 거부하며, 이제 모든 민족이 하나님 아래 한 가족이라는 새로운 종교통합사상 아래 새롭게 모이고 있는 것“이들은 본부를 미국 예일대학에 두고 엄격한 비밀을 지키고 있으며, 회기 중에는 ‘모소리움’이라고 부르는‘납골당 무덤’에서 1주일에 두 번씩 모인다. 미국에서 윌리엄 러셀(William H. Russell)장군과 함께 미국 국무장관을 지냈던 알폰소 태프트(Alphonso Taft)가 1832년경에 창설하였다. 1856년 코네티컷 주 의회에서 직접 정관을 만들어서 러셀 신탁(Russell Trust)이란 이름으로 등록했으며 활동 내용이나 회계 감사 등 모든 면에 대해서 보고할 의무가 면제되었다. 러셀 신탁이 해골종단의 법적인 명칭인 것이다. 이 조직은 애초부터 심한 인종편견을 갖고 있어서 유색인종이나 다른 인종을 상대로 마약장사를 해 온 조직이기도 하다. 19세기 터키의 아편을 중국으로 밀수입하는 아편장사를 해서 막대한 돈을 벌기도 했다. 러셀 공사가 중국에서 아편장사를 하고 있을 때, 중국의 광동성 본사의 총 책임자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외할아버지인 델라노였고 영국의 귀족들도 이와 함께 손잡고 장사를 했다. 한 번 가입하면 그 자식들도 회원이 된다. 현재 널리 알려진 미국의 유명한 가문들은 다음과 같다. 부시 가문, 록펠러 가문, 해리만 가문, 휘트니 가문, 페인 가문, 밴더빌트 가문, 번디 가문.”10. 타비스톡 인간관계 연구소(Tavistock Institute for Human Relations) 1922년 RIIA(왕립국제문제연구소)는 영국 육군의 존 리스(John Rawlings Reese) 소령에게 서섹스대학(University of Susseex) 부설로 가장 큰 세뇌 공작 시설을 만들라는 명령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시설을 ‘타미스톡 인간관계 연구소’라고 이름을 붙였으며, 이것이 영국의 심리전 방책을 만들어 내는 본산지가 되었다. 그 후 2차 세계대전 중에 타비스톡 연구소의 커트 르윈 박사의 제안에 따라 미국의 CIA 전신인 OSS를 창설하였다. 타비스톡 연구소는 적의 민심교란뿐만 아니라 평화 시에도 일반 대중의 심리를 조종하기 위한 연구에 몰립 된지 30년 동안에 900,000만명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살해당하였다. 네덜란드에서는 알바 공(公?가톨릭신자)의 지시에 따라 36,000명이 보통 집행자들에 의해 신속히 사형에 처해졌는데, 알바 공은 이러한 행위를 자랑했다. 찰스 5세의 치하에서는 50,000명의 프랑드로인들(Flanders) 지금의 벨기에의 서부, 네덜란드 남서부, 프랑스 북부를 포함한 중세기 국가와 독일 사람들이 교수형과 화형과 산채로 매장 당했다.”“세계 역사에서 가장 잔인한 살상 행위로 꼽히는 1572년 8월 24일의 바돌로매(Bartholomew) 제일(除日)의 대학살이 바로 로마가톨릭교회에 의하여 저질러졌음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프랑스의 어린 왕 찰스 9세의 섭정 태후였던 캐서린(Catherine)은 강력해져가는 개신교도들인 위그노파를 제거하기 위해, 위계(僞計)를 써서 그들을 한 데 모아 놓고, 졸지에 살상을 감행하여 남녀노소 신분여하를 막론하고 ‘위그노면 모두 죽여라!’라고 외치며 파리 시내에서만 일주일 이내에 8,000여 명을 죽였고, 2달 동안 전국적으로 확대한 살육을 통해 8만 명 이상을 죽였음은 가공(可恐)스러운 역사로 기록돼 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러한 살육의 소식을 들은 교황청과 스페인 황실에서는 이를 열광적으로 대환영했고, 로마에서는 이를 축하하는 기념 메달이 발행되었다.”13. 세계주의자의 평화를 위하여 불법화되는 기독교“〈성적지향 차별금지〉 ?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롬 1:27). - ? -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 18:22). - 〈타 종교에 대한 차별금지〉? -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2). - ” 114 바코드부착이 의무화되어 있다. 바코드가 처음 낭온 그 당시엔 그야말로 물류의 혁신이었다. 재고관리에 엄청난 혁명이었기에 당시 월-마트(Wall-Mart) 등 대형마트가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계기가 되었다.”3. 생체칩은 왜 짐승의 표인가?“그럼 왜 이 생체칩이 짐승의 표인가? 이 생체칩은 미국 ADS사(社)가 개발하여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다. ADS사는 미국정부에서 출자한 국영기업이다. 이 생체칩의 상품이름은 베리칩이다. 이 칩은 쌀알만 한 캡슐 속에 넣어서 인체에 삽입한다. 이 칩의 구성은 128개의 유전자 코드/축전지/라디오코일 안테나로 구성되어 있다.”“이 RFID 기술을 통한 통제의 효율성은 시범적으로 동물들에게 삽입하여 효과가 검증되었다. 현재 전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자국 내 동물들에게 이 생체칩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국내에도 가까운 동물병원에서 RFID 기술의 생체칩을 주입하고 있다. 각각의 동물들에게 각각의 바코를 부여해 얻은 정보를 대한수의사회 마이크로칩 데이터뱅크로 모은다.”“또한 이 칩을 받지 않는 자는 2014년 12월 1일 이후 미국 내 관공서 출입금지, 비행기 탑승금지 등의 제한조치가 이루어지며, 2014년 이후부터는 어떤 이벤트와 함께 의무적으로 칩을 받도록 법률적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스케줄은 비단 미국Qq분 아니라 세계를 선도하는 G20 국가도 이와 비슷한 스케줄에 맞춰 진행될 것으로 생각한다.”4. 정부 물품관리 ‘RFID 부착 의무화’“2009년 12월 22일 《다음》인터넷 신문에서는 2010년 1월 1일부터 정부 산하기관을 포함한 2천여 국가기관의 모든 물품에 RFID 태그(전자태그) 부착이 의무화된다고 보도했다. 조달청은 지난 10월 21일 물품관리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각 중앙관서의장은 물품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조달청장이 정한 기준에 해당하는 물품에 대해서는 RFID 태그를 붙여 관리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각 국가기관이 새로 구매하는 물품은 물론, 기존의 보유 물품까지 RFID 태그를 부착해 관리해야 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헌법)제1편 총 칙제1장 명 칭본회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약칭“기하성”이라 한다.제2장 사 명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서 모임을 가지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성숙을 도모한다. 그리고 주님의 지상명령인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 하신 말씀을 준행하여 선교에 이바지한다.제3장 조 직본회는 대한민국 내,성령의 능력을 가진 교회와 회중으로 조직하며 해외에는 지방회를 둔다.제2편 신 조근본 진리의 선언은 “다 같은 말을 하고···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1:10)는 말씀과 초대 교회에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기반으로 하여 하나님의 공동체의 기초로 삼으려는 것이다.우리는 신,구약 성경(66권)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꾼들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기록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오, 정확 무오하여 신앙과 행위에 절대적 권위가 있는 법칙으로 믿는다.우리는 한 분이신 참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며, 자신 스스로를 영원 지존자로서, 천지만물의 창조자로서, 인류의 구속자로서 계시하셨음을 믿는다. “한 분이신 하나님은 성부,성자,성령의 세 위격을 갖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다.제3편 교 회교회는 집회 장소를 말함이 아니요, 성령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니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다(마16:18). 교회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들의 모임이다. 교회 설립자는 예수 그리스도시니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엡4:3)성례는 주님께서 친히 세우신 바 성례식이 있으니 이는 거룩하게 목사가 행하여야 한다. (1.침례/세례식 2.성찬식)본회의 절기는 1.성탄절 2.고난절 3.부활절 4.성령강림절 5.맥추감사절 6.추수감사절 이다.교인의 의무는 공동 예배 출석과 십일조와 헌물, 전도, 봉사에 참여하며, 교회의 치리를 복종하는 것이다. 또한, 침례교인이 만 20세가 되면 공동의회의 회원권을 가진다. 교인이 신고 없이 교회를 떠나 의무를 행치 않고 6개월이 경과하면 자격이 정지되고, 1년이 경과하면 자동 제적이 된다.목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장중에 있는 교회의 사자이며(계2:1),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정하여 세우신 복음의 사신이며(고후5:1, 엡6:20), 그리스도의 양 무리를 가르치고 다스리는 감독이요, 나라와 제사장이며(계1:6), 은혜의 경륜을 따라(엡3:2) 목사와 교사로(엡4:11) 교회를 섬기기 위하여 받은 성직이다.목사의 자격은 본 교단에서 인정하는 신학과정을 이수한 후, 신학대학원(본 교단에서 인정하는 해외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자 포함)이나 목회대학원을 졸업한자(군목, 기관목사, 선교사 특례 별도)전도사는 지방회에서 임명을 받아 전도인의 사명을 다하여 교회를 가르치고 권면하여 예배를 인도하는 신성한 직분이다.장로는 교회에서 피택,지방회의 안수로 장립되는 봉사직이다. 담임교역자의 목회를 협력하여 치리·봉사하며, 교인들의 신앙 향상을 위하여 힘쓰되, 특히 병자와 고난당한자를 위하여 심방하고 기도에 힘쓰는 존귀한 직분이다.안수집사는 교회의 택함을 받아 담임교역자를 협력하여 교회를 돕는 귀중한 직분이다.권사는 여자로서 항존직이며 담임목사를 받들어 교회를 봉사하며, 교우를 심방하고 권면하며 특별히 병자와 고난당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에 힘쓰며, 신앙 향상을 위하여 덕을 세우며 충성하는 명예로운 직분이다.서리집사는 담임목사의 임명을 받아 교회 봉사와 교인 심방에 적극 참여하는 귀중한 직분이다.제4편 지 방 회지방회의 구역은 실행위원회에서 확정한 지역으로 하되 행정 구역에 준하고, 단 예외를 둘 수도 있다. 지방회의 조직은 지방회 지역 내의 교역자와 장로로 한다.정기 지방회는 매년 1차, 총회 40일 전에 개최한다.제5편 총 회총회는 선택 받은 성총회라 부르며(히12:23), 본 성회 산하의 모든 교회와 기관의 회중을 총괄하는 최고 기관이다. 총회의 구역은 대한민국 전 지역으로 한다.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와 제사장으로 기름부음 받아 그의 회중을 치리할 조직체로서(계1:6, 요21:5-19), 본 성회의 교역자와 평신도 대표로 한다.교단발전 정책위원회는 교단의 부흥과 발전을 위하여 자문하는 기구이다. 증경총회장, 총회장, 재단법인 이사장, 학교법인 이사장, 연금이사장, 선교사 대표1명으로 조직한다.제6편 재 정재정의 수입은 교인들의 헌금, 교회를 위한 대외적인 보조금, 기타수입이며 재정의 지출은 담임교역자의 감독 하에 확정된 예산안과 재정위원회의 재정 지출 계획에 의하여 재무와 회계가 취급한다. 재정의 착오나 손실이 발생하였을 경우에는 재무(재정담당자)나 회계가 책임을 져야 하고 재정위원회도 공동의 책임이 있다.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6장 박애주의 영성 (이웃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캘커타의 테레사 수녀는 가난한 자, 병든 자, 궁핍한 자들의 눈을 들여다보며 하나님의형상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이렇게 말하면 상담 분야 사람들은‘의존증세’를 잔뜩 우려할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가장 뜻 깊은 길 중 하나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임을 깨달은 사람들이 많다. 박애주의자들에게 있어 남을 돌보는 일은 잡일이 아니라 일종의 예배다. 박애주의자들은 자신의 소명과 기질을 이해하려함에 있어 특히 두 사람 - 모르드개와 예수님 - 을 살펴볼 수 있다.모르드개의 첫 번째 그림은 에스더 2장 7절에 나온다. 거기서 우리는 부모의 강제 이주로 인해 고아가 된 에스더를 거두는 모르드개를 볼 수 있다. 에스더를 위한 모르드개의 수고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녀가 왕궁에 들어간 후에도 그는 늘 에스더가잘 지내는지 깊은 관심으로 지켜보았다. 모르드개의 두 번째 그림은 2장 후반부에나온다. 이번에 모르드개가 챙긴 사람은 왕 이었다. 모르드개는 들은 내용을 고하여 왕이 해를 당하지 않도록 구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사람에 영합하는 자가 아니었다. 3장에 보면 모르드개는 하만 앞에 절하기를 거부하여 하만의 분노를 산다. 모르드개는 남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을 때는 남을 섬겼으나 그 둘이 서로 충돌할 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유사 이래 진정 온전한 인간은 오직 예수님뿐이었다. 그래서 그분께는 이 책에 나오는 영적 기질이 모두 보인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은 긍휼의 완전한 표상이었다. 예수님은 병든 자, 귀신들린 자, 잃어버린 영혼을 돌보셨다. 그분은 제자들에게도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하셨고, 친히 무리를 보시며 몹시 측은해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필요를 다른 사람들의 필요보다 밑에 두셨다. 이 땅을 살다간 그 누구보다도 그분께는 꼭 이뤄야 할 더 중요한 사명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분은 시간을 쪼개 병든 자와 배고픈 자와 제멋대로 구는 무리를 돌봐 주셨다. 소위 ‘영적인 일’도 우리 손에 때를 묻히지 않을 구실은 될 수 없다.긍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웃을 돌봄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성경의 도전은 무수히 많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신약성경을 통틀어 가장 잘 알려진 비유 중 하나일 것이다. 예수님은 많은 가르침을 통해 긍휼을 강조하셨다. 그러니 신약 성경 저자인 그 제자들이 우리에게 이웃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요한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라고 말했다. 바울도 요한과 한 목소리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서로 돌볼 것을 권한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베드로는 우리에게 서로 대접할 것과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사용해 서로 섬길 것을 권한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부작위의 죄(마땅히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작위의 죄와 똑같이 중하게 여긴다.이웃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은 얼마든지 많으며, 박애주의 영성은 그것을 잘 통합한다. 생각해 볼만한 활동들을 몇 가지 꼽아 본다면, 죄수와 자매결연을 맺는 것, 개인적 위기를 만난 친구를 도와주는 것, 돈을 빌려주는 것, 약물 중독과 싸우는 사람을 거드는 것, 구조대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것, 문맹에게 글을 깨쳐주는 것, 매 맞는 여성 보호 시설에서시간을 헌신하는 것, 시각 장애자를 위해 녹음해 주는 것, 피곤한 부모들의 자녀를 봐주는 것 등이 있다. 성령께서 감화하고 인도하실 때, 남을 도우려는 자들에게 펼쳐진 기회의 수는 제한이 없다. 전도의 도입으로 하든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봉사로 하던 그것은 행동화된 복음의 강력한 그림이다.남을 돌보는 것은 선지자적 행위이다. 우리는 자기중심적 동물이라 남에게 관심을 품는다는 것은 비본성적 반응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초자연적 손길에 대한 증거가 된다. 따라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기에 긍휼을 베푸는 그리스도인들은 이기적인 문화와 때로는 이기적인 교회에 예언자로서 말하는 셈이다. 이렇듯 ‘선지자적’ 긍휼은 반드시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서 나와야 한다. 즉 하나님이 나를 한없이 사랑하심을 알기에 남들을 돌보는 것이라야 한다.박애주의 영성의 유혹· 판단 - 우리는 자칫 ‘묵상주의자들은 너무 거룩해 실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 발 앞에 앉아 경배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마르다에게 아주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돌보도록 부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본분을 다하는 길은 각기 다를 수 있다. 타인의 예배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니다.· 이기적 동기로 남을 섬김 -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봉사 욕구를 느낄 수 있다. 질환으로서의 긍휼은 사실상 탈취 행위다. 그것은 기만 행위다. 상대를 사랑하되, 보상으로 자신을 사랑하거나 의존하게 만들려고 그리하기 때문이다.· 편협한 정의 - 행동주의 영성과 박애주의영성에는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다. 박애주의자들은 행동주의자의 동기를 판단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둘은 함께 일할 수 있다. 긍휼의 정의가 편협해 결국 문제 해결을 위한 장기적 돌봄과 문제 경감을 위한 단기적 돌봄의 구분을 놓치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나님 나라 사역에는 양쪽 다 필요하다.
[ 정의롭고 평등한 공동체 형성을 위한 실천적 노력 ]-사회 경제적 양극화 극복을 위한 실천적 방안을 모색하며-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불쌍한 사람들,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밑바닥 사람들,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곧 사회 약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하나님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강한 자와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고(시35:10), 하소연하는 궁핍한 자와 도움 받을 데 없는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사 구해 주시며, 가난에 허덕이는 자들의 생명을 구원하시며, 그들의 피를 소중히 여겨 억압과 폭력에서 그 생명을 건져 주시는 분이다.(시72:12-14)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티끌에서 끌어올리시고 궁핍한 자들을 거름더미에서 끌어내시며(시113:7), 고난받는 자들을 위해 변호하시고 가난한 자들에게 공의를 베푸시며(시14:12), 빈궁한 자들의 송사를 떠 맡으시며 어려운 사람 등쳐먹는 자들의 생명을 빼앗으시는 분이다.(잠22:23) 하나님은 특별히 고아와 과부를 위해 신원하시는 하나님 (신10:18), 고아들의 아버지, 과부들의 보호자 (시68:5)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고아를 신원하고 과부를 도와 주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따르는 것이고 영적이며 경건한 행위이다(사1:10-17)가난하고 소외된 불쌍한 사람들과 동고동락하셨던 예수께서는 한 율법사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10:25)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눅10:30-37)를 말씀하시면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눅10:37), 곧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곤경에 처한 자, 가난한 나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을 감당할 것을 촉구하셨다. 이를 통해 그는 진정한 영생의 길, 진정한 경건이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삶임을 강조하셨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불쌍한 사람들을 자신과 동일시하기도 하셨다. 그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에. (눅4:18-19) 즉 성령께서는 예수로 하여금 가난하고 소외된 불쌍한 사람들이 부당하게 차별 대우받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 를 선포하도록 동기부여하시고 능력을 부여하셨던 것이다. 이로써 예수의 성육신과 세례와 소명과 선포와 공생애 사역 전체가 성령을 통해, 그리고 성령 안에서 일어났듯이, 성령께서는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 사역을 동행하시는 동반자로 나타나고 있다.앞 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 기독교 2000년 신학 전통에 있어서 성령은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영성의 범주와 제도화된 교회의 영역 안에서 역사하시는 분으로 이해되었다. 즉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의 구원과 성화, 내면적 경건성과 관계하시는 분으로서, 그 활동은 각 개인에게 믿음의 확신과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주는 사역으로 인식되었다.성령의 임재하심 속에서 이루어진 예수의 하나님 나라 의 복음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포되고 있는데, 이는 공관복음서에 있어서 확실한 양식이다.(눅4:18이하, 마11:5) 예수의 복음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가난한 사람들 안에 이미 현존하고 있다. 예수는 복음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져오며 하나님의 나라를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드러낸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아무 조건 없이 선포하며 그들을 복되다고 축복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위에 제시된 누가복음4:18-19에서 �愎纛� 나라 에 대한 기쁜 소식은 주의 은혜의 해 , 곧 희년의 계명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는데, 이 점이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희년은 일곱째 해에 땅을 쉬게하는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 49년을 보내고 50년째에 맞이하는 해로서, 이러한 희년에는 하나님의 정의가 인간은 물론 모든 피조물 안에 회복되어야 한다.하나님의 정의를 모든 피조물 가운데 회복시키는 희년법은 가난한 사람들의 노예화와 인권유린 사회 경제적 양극화 (빈부 양극화) 극복을 위한 일종의 사회개혁 프로그램 동시에, 자연의 모든 피조물의 착취를 극복하기 위한 생태계 개혁 프로그램 이다. 그 하고 있다. 1997년 12월 IMF사태, 혹은 외환위기로 인해 한때 우리나라는 모라토리엄 상태로까지 추락했지만, 재기에 성공하여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는 다시금 세계13위를 회복하였다. 그리고 21세기에는 한국이 동아시아의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많은 이들이 희망에 찬 전망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수백만 명에 달하는 빈곤자들이 아직도 끼니조차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고도의 경제성장과 눈부신 발전의 와중에도 아직 성장의 결실과 발전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도 박탁당한 채 참으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사회 양극화 현상은 비단 한국 사회만의 현실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비정한 현실이기도 하다. 2000년대 들어 글로벌 경제에 국경이 없어지는 와중에서도 국가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회 양극화 현상은 전세계적으로 나날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특히 최든에는 선진 국가는 물론 신흥경제 국가에 이르기까지 전 대륙에 걸쳐 확산되는 세계 경제위기로 인해 빈부격차가 극심해지면서 체제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는 부자와 가난한 자가 명백히 구분되는 가운데 부자는 점점 더 부유해지는 반면, 가난한 자는 갈수록 가난해 지고 있다.아시아를 넘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유럽에서도 사회 양극화는 상당히 심각한 현안이다. 미국의 의회예산국(CBO)이 최근 공개한 2005년 자료에 의하면, 미국에서 소득 최상위 1% 부자들과 최하위 20%의 연평균 소득은 107만1,500달러(전년대비20.1%의 소득증가율) 대 1만5,300달러(1.3%의 소득증가율))를 기록함으로써, 부유층의 소득은 급상승한 반면, 빈곤층의 소득은 거의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미국에서 빈부격차는 단순한 소득금액의 차이가 아니라, 마치 신분처럼 고착화되어 가고 있음을 입증하는 자료들이 계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최근 높은 경제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뿌리 깊은 소득 불평등으로 홍역을 치루고 있다. 특히 지난해 성한 정치권력을 행사하고 세속적인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다. 여기서 문제는 경제적인 부를 대체로 제1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제3세계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부를 나누어 갖기를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요청에 부응하기 위한 일환으로 오느날 제1세계의 교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여러 형태의 재단을 만들어 휴머니즘적인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그러나 제1세계의 다른 일각에서는 획기적인 사회구조의 변화가 없이는,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잘못된 정신상태와 생활습관이 개선되지 않고는 가난의 현실을 단기간 내에 극복하기 어렵다는 명목으로 부유한 이들이 가난한 이들의 부를 나누어 갖기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수의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은 빈곤이 잘못된 사회 경제체제의 구조적 모순, 곧 불공정한 분배와 착취 등에 우선적으로 기인하는 문제라는 인식을 갖기보다는, 죄의 결과나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다. 카톨릭교회는 16세기 이래 시작된 약탈적 자본주의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며, 개신교회는 중상주의 이래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적 세계경제 체제의 왜곡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기독교에 대한 강력한 비판에 봉착하여 최근 들어 서구 세계의 교회들은 전세계적으로 사회 양극화를 양산하는 주된 실체로 지목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세계경제 체제, 곧 경제와 시장의 글로벌화에 대처하기 위해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대부분의 보수적 교회들은 사회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참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실정이지만, 미국의 NCC를 위시한 진보적 교회와 교단들인 연합감리교회, 장로교회는 매우 적극적으로 이와 관련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교회들은 효과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많은 시민사회 단체들이 활동 면에서 미국 교회들에 비해 앞서 나가는 면이 있는 것이 인식한다. 미국 내의 기독교 단체들과 해외 기독교 단체들이 주로 참여하고 있는 Jibilee USA Network'는 경제적 글로벌화가 양산한 가난한 나라들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단체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NCC와 자매단체인 'CWS'도 이 운동에 적극 동참하면서 가난한 나라들의 부채탕감을 위한 기금확보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미국의 NCC가 전개하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업으로 주목할 만한 것은 미가서 6장 프로젝트 이다. 미가서 6장 프로젝트 는 미가서 6:8(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에 의거하여 교회와 성도들이 지향해야 할 신앙생활의 세 가지 본질적 요소, 곧 공동체 안에서 공의를 실천하고(정의), 다른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인자와 자비한 마음을 독려하며(자비), 만물의 주이신 하나님과 함께 매일 동행하는 삶(영적 사도직)을 강조하는 가운데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현장에 적용하도록 동기부여한다.미국의 교회들뿐만 아니라 영국의 교회들도 빈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큰 몫을 감당하고 있다. 이들은 경제적 글로벌화가 그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글로벌화 과정을 바꾸고자 시도하고 있다. 경제적 글로벌화에 대한 영국 교회들의 대응은 국제적 차원과 국내적 차원의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된다. 먼저 국제적 차원에서 영국 교회들은 제3세계의 빈곤 문제에 대해 오래 전부터 다양한 형태의 개발교육을 실시해 왔는데, 글로벌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부채탕감과 경제정의를 중심으로 글로발화의 규칙을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제3세계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교회들은 2015년까지 빈곤을 절반으로 줄이기로 한 국제개발목표 를 추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