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연예정보 프로그램 이대로 좋은가1999162053 손혜진지난 13일 MBC 에선 ‘귀여운 신부 소유진’이라는 제목으로 탤런트 소유진이 CF촬영을 하고 있는 현장이 방영됐다.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탤런트들의 동향을 전달하는 것이 하등 이상해 보일 이유는 없다. 문제는 소유진이 현재 의 공동 MC라는 것. 자사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MC를 맡고 있는 탤런트의 CF 촬영현장을 굳이 ‘정보’라는 이름 하에 전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최근 사례에 해당한다.사실 연예정보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여성 사회자에 대한 홍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는 지적은 최근 들어 부쩍 심해진 현상일 뿐이다. 문제는 제작진 또한 이런 비판의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데 있다.“더 이상 할 얘기도 없고 얘기해야 지금까지 보도했던 내용과 비슷하게 나갈 것”이라며 인터뷰를 거절했던 한 방송사 연예정보 프로그램 담당PD의 발언은 지금까지 이들에게 쏟아졌던 외부의 비판을 제작진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계 일각에서는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비판의 핵심은 연예 가십거리 위주로 프로그램 내용이 채워지고 애초에 표방했던 연예저널리즘은 이미 실종됐다는 것이다.타 방송사와의 차별성이 거의 없다는 지적은 이제 진부한 경우에 속한다. 한 방송사의 연예정보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 타 방송사들이 비슷한 포맷으로 따라가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문제는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연예정보 프로그램 형식이 방송3사의 아침 프로그램은 물론, 평일 저녁 토크쇼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어 지금은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방송사들의 주력상품이 되어버렸다는 데 있다.외부의 비판에 대한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면서 동시에 아직도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내용과 형식이 방송사로서는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비록 최근 조금 약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이들 연예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아직도 20% 내외의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다.자사 프로그램 홍보의 장?최근 연예정보 프로그램들에 쏟아지고 있는 가장 주된 비판은 자사 홍보성 코너가 적정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데 있다. 해당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 출연진들에 대한 소개와 대략적인 줄거리 등을 방영해 예고기사를 내보내는 것은 물론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는 중에도 제작현장을 방문, “보다 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언제 프로그램을 보면 된다”는 등으로 홍보하는 것도 이젠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주된 메뉴가 돼 버렸다.CF 촬영현장 방송 ‘간접광고’ 시비지난 21일 SBS 는 탤런트 송혜교, 김원희, 이나영이 CF 촬영을 하고 있는 현장을 찾아가 이를 방송에 내보냈다. 간접광고 시비는 여기서 비롯된다. 아무리 연예인들의 동정을 다루는 것이 일반적인 내용이 됐다고 하지만 이를 보는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무슨 내용의 CF 촬영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 비판의 주된 이유이다.스포츠신문 보도 검증 않고 재탕 삼탕지난 13일 MBC 에서는 모 스포츠신문에서 보도했던 탤런트 김희선의 생부 소식을 다뤘다. 그리고 지난 21일 SBS 에서는 탤런트 이아현과 홍기훈의 열애설을 보도했다. 이 또한 스포츠신문의 기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특히 연예인의 사생활이나 스캔들과 관련한 기사의 대부분은 스포츠신문의 보도를 다시 확인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어 전파낭비라는 지적도 많다.게다가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세간의 의혹을 바탕으로 작성한 일부 기사까지 검증 노력 없이 방송에서 다루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의혹을 보도했던 많은 부분이 사실보다 과장됐거나 선정적인 제목과는 달리 내용이 없는 것으로 평가받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그러면 이를 개선하기 위한 타개책은 전혀 없는 것일까? 현재로선 상황이 그다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제작진이 이를 비판하는 언론의 보도는 물론이고 시민단체의 모니터 보고서에 대해 “방송현실을 모르는 구태의연한 주장”이라고 일축하고 있기 때문이다제작진들의 주장은 결국 시청자들의 수요에 따라 프로그램의 존재 여부가 결정되어야 함에도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계몽과 규제’라는 방법으로 비난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이 같은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현재의 연예정보 프로그램은 개선될 필요가 많다는 것이 방송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방송사 자체 내에 심의기구가 있는데도 이들의 지적이 프로그램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때문에 방송계에서는 다시 방송사 내부 시스템으로 문제가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악세사리의 변천르네상스에서부터 1970년 이후의 악세사리 역사우리는 이제 패션을 생각할 때 악세사리를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악세사리 하나로도 분위기가 틀려지고 의상을 장식하는 전체적인 요소가 된다.악세사리로는 크게 모자, 신발, 장신구, 기타 등등으로 나누었고, 전체적인 분위기의 흐름을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이번에도 다시 한번 느꼈지만, 패션의 흐름은 반복되는 것을 느꼈다. 과거의 모든 것에 기본 바탕을 두고서 그것의 재창조와 변형, 응용을 하는 것이 의상이나 악세사리나 모두 마찬가지인 듯 싶었다.이번에 르네상스부터 1970년대 이후의 악세사리를 조사하면서 예전, 과거의 악세사리의 디자인과 세공법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오히려 요즘보다 더 나은 듯 하다는 느낌마저 들기도 했다.1. 르네상스 후기 / 16세기르네상스는 서구에서 중세세계로부터 문학, 예술, 및 철학의 꽃을 만발케 한 위대한 문화적, 지적 발전의 한 시기였다. 이러한 배경이 의복에도 영향을 미쳐 풍부한 피복재료와 선명한 색을 갖게 되었으며, 점차 낭만적이고 화려해지기 시작했다.르네상스 의복의 특징 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것으로 소매나 팔품치등에 넣은 슬래쉬를 들 수 있는데, 그 경향이 모자와 구두에까지 나타났다.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운동이 한창이던 15세기 후반을 지나 신체, 의복, 그리고 장신구가 상호조화를 이루는 시기를 맞이하였다.(1) 모 자이 시대에는 모자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거대한 에넹이 완전히 사리지면서, 토크 (toque) 가 나타났다. 이 모자는 머리를 완전히 덮어 목을 가늘어 보이게 한 것으로, 둥글고 높은 크라운을 가진 것과 낮은 크라운과 좁은 브림을 가진 것 등이 있었다. 베레를 닮은 넓적하고 평평한 카스켓, 부드러운 견으로 안을 댄 테없는 베레모도 많이 애용되었고, 후드의 형태는 16세기초에 사용되었다.섬세한 레이스가 달린 마제 후드나 벨벳 후드가 유행되었다. 프렌치 후드는 앞머리를 드러내어 머리카락을 많이 보이게 하고, 흰 린넨으로 만든 코와프나 금사로 짠 반지 시계 등이 있었다. 진주나 금을 이용한 체인으로 만든 반지를 손가락마다 끼었다.이와 같이 고가의 장식을 좋아했던 이 시대의 사람들은 그와는 반대로 위생관념이 없어서 남.녀 모두가 몸에서 심한 악취가 났고, 그로 인해 향수를 많이 사용하였다.여성들은 향수를 주머니에 넣어 휴대하고 다님으로써 악취제거는 물론, 그것에 보석이나 자수로 장식을 하여 액세서리 역할도 겸하게 하였다.또한 이 시기의 특징적인 것은 남녀가 모두 사용했던 세기 말에 나타난 가면이었다. 이것은 태양열이나 추위에 의해 안색이 변하거나 화장이 지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리고 공적인 장소에서 자기의 존재를 감추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주로 검은색이었으며, 초기에는 계급에 따라 그 크기가 제한되었다가 말기에 가서는 색상과 크기가 다양해졌다.2. 바로크(Baroque) / 17세기르네상스 복식은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데 비해, 바로크복식은 불규칙적인 열정적인 감각으로 장식이 조화되지 않고 채, 단지 호화스러움만을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리본과 레이스가 남용되었고, 1661년에는 그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 법령으로 지정될 정도였다. 한편, 기술과 색상의 발달로 의상에는 화려한 프랑스 자수가 많이 이용되었다.(1) 모 자가발의 유행으로 인해 모자의 사용은 그리 빈번하지 않았다. 남성용으로는 타페타, 벨벳과 양질의 특수한 털로 만든 비버( Beaver )라는, 크라운이 높은 모자가 있었다. 후반이 되면서 머리형을 보호하기 위해 크라운이 평평하고 낮아졌으며 브림이 넓어졌다. 여성들은 보석장식이나 리본으로 묶은 여러색의 가발을 사용하며 분위기를 나타내었다.(2) 신 발남녀를 막론하고 의상의 변천과 함께 신발은 액서세리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남자들의 경우 17세기 초 바지의 길이가 짧았을 때에는 무릎 위까지 오는 장화가 유행하였다가, 바지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길이가 짧은 부츠의 형태로 되었다. 뮬( Mule )은 굽이 높은 슬리퍼로 발이 노출되고 브로케이드( Brocade )로 만들어 모피로 테두리 장택을 증가시켜 얼굴색을 미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주로 검정 벨벳이나 타페타를 잘라 붙였다. 형태는 둥근 것, 별모양, 가늘고 긴 것등 여러가지였으며, 어느 곳에나 그 검은 점을 붙였다.또한 거울 달린 패치상자( Patch box )를 귀중한 액서세리로 가지고 다녔다.그 밖에 손잡이가 금으로 된 깃털부채, 실크로 만든 손지갑, 머프 (Muff)등이 있었다. 머프는 초기에는 여성의 작은 액서세리였으나, 점차 커져서 모피조각을 댄 것을 남성들도 하게 되었다. 17세기 후반, 머플러는 위엄을 갖추기 위한 것이었다. 귀족은 벨벳과 견을 이용하고 안감은 모피로 대었는데, 중유 이하의 서민들은 그와는 현저한 격차가 있었다. 레이스로 장식한 손수건도 중요한 액서세리 중의 하나였다.3. 로코코 ( Rococo ) / 18세기로코코 양식은 프랑스 문화를 중심으로 하여 장식을 중요시 하였다. 균형미를 무시하고 자유로운 형식의 곡선으로 구성된 밝고 화려한 귀족 중심의 문화이다.(1) 모 자이 시기의 모자는 실용적이기 보다는 장식적인 용도로 더 많이 쓰였다. 바로크시대 말기에서부터 쓰여지던 남성용의 납작한 크라운의 모자는 로코코시대에 이르러서도 계속 착용되었다. 브림을 삼각형으로 말라 올린 것으로 금, 은사로 테두리를 장식하였다. 가발의 유행에 의해 모자는 점차 축소하여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기도 하였다. 또, 다른 남성용 모자인 코크드 햇(Cocked hat)은 폭넓은 브림이 넓게 올라가서 앞에서 보면 가운데가 높은 산모양으로 주로 군인들이 사용하였다.한편, 머리 장식의 극치에 달하던 여성들도 말기에 가서는 지나친 가발장식을 피하고 단순한 머리형에 소형 캡(Cap)이 유행하였다. 사뽀(Chapeau)와 본넷 (Bonnet) 약식의 모자이므로 정식모임에 참가 할 때는 리본, 레이스, 깃털 등으로 장식하여 의상과 조화를 이루었다. 퍼프 본넷(Puff Bonnet)은 때때로 밀집을 브림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제천으로 주름잡아 한다. 영국의 영향을 받은 사뽀는 넓은 브림을 가진 슷한 형태의 우산이 있었다.4. 엠파이어 스타일( Empire Style ) / 1789 ∼ 1815년고대 그리스의 복식을 재현시키려는 의도에서 장식의 화려함보다는 자연적인 모습을 중시 하였다.(1) 모 자여성의 본넷과 햇은 이 시기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본넷은 얼굴을 가릴 정도의 커다란 브림과 긴 크라운을 가진 것으로 턱 밑에서 넓은 리본으로 묶었다. 카포트( Capotes )라고 불리는 밀짚모자는 1806년에 소개되었다. 다른 본넷보다 크라운이 얕았다. 1803년경에 나타난 사뽀는 크라운이나 브림의 형태에 따라 각각의 명칭도 달라졌다.여자들의 모자는 1804 ∼ 1807년까지는 넓은 브림의 대형모자가 유행하였는데, 점차 고대풍이 무너지면서 크라운이 낮아졌다가 다시 1812년경부터는 크라운이 높아 지고 깃털장식까지 그 높이를 강조하였다. 그 외에 토끄( Toque ), 사뽀( Chapeau )가 이 시기에 애용된 모자이다.(2) 신 발남자용의 부츠는 몇몇 스타일이 있었다. 굽이 낮은 슬리퍼도 역시 사용되었다. 펌프스형 단화는 가볍고 발이 편한 것으로 선호되었다. 그에 비하여 여성용 구두에는 많은 변화가 없었다. 가름하게 생긴 굽이 낮은 펌프스의 일종인 에스까르뺑(Escarpins)과 굽이 없고 단순한 형태의 슬리퍼가 있었다. 부드러운 가죽이나 벨벳 등의 광택이 있는 천으로 자수 등으로 장식을 하였고 가는 끈으로 발목을 묶기도 하였다.남녀가 모두 하얀색의 실크나 울로 된 스타킹을 신었다. 여성들의 양말은 때때로 발등이나 무늬 자체에 수평적인 선들로 장식하기도 하였다.(3) 장 신 구이 시대의 보석은 귀고리, 반지, 시계, 팔찌, 발찌 등을 포함하였다. 남자들은 가끔 장식을 한 시계줄에 시계를 달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 밖에 소지품으로는 지팡이, 남자는 우산, 여자는 파라솔이 있었다.5. 로맨틱 스타일 ( Romantic Style ) / 1815 ∼ 1848년귀족풍의 조이고 부풀리는 형태의 복식이 유행하였다. 1825년 경부터 단순화 되었던 의상이 우아한 1848 ∼ 1870년제 2의 로코코 시대라고 할만큼 우아하고 장식적인 복식이 유행하였다. 또한 재봉틀의 발명으로 봉제의 혁신적인 발전을 가져왔다.(1) 모 자남성들의 모자는 필수적인 것으로 많이 씌어졌다. 정치적인 견해가 더해져 민주주의적 견해가 강해질수록 폭넓은 브림이 접혀 올라간 펠트모가 유행하였다가 반대세력이 커지면서 브림이 좁고 섬세한 곡선으로 된 긴 원통형의 모자가 유행하였다.여성용 모자는 단순하게 정리된 머리를 감싸는 형태로 양쪽 귀밑으로 끈이 달려 턱 아래에서 매듭을 지어 고정하였다. 이러한 본넷 (Bonnet)은 많은 절개선으로 프릴이 층층이 지게 하였다. 샤포( Chapeau ) 형태도 유행하였는데, 브림의 양끝이 올라간 임페라트리스 ( Imperatrice )와 높은 머리의 앞쪽에 가볍게 얹는 작은 사뽀 베르제르( Chapeau bergere )가 있었다.(2) 신 발재봉틀의 발명으로 신발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못이나 징으로 박아 고정하던 것을 재봉하여 실로 고정시키니 그 무게나 모양이 훨씬 가볍고 좋았으며 착용감도 좋았다. 역시, 부츠의 형태가 유행하였는데 부분적인 고무장식이나 끈, 버클, 단추 등으로 여밈장식을 하였다. 길이는 발목까지의 짧은 부츠였다.고무밑창등의 새로운 재료와 스포츠의 보급으로 스포츠화의 발전을 가져왔다. 특히, 여성들의 구두굽이 남성들과 같은 직선에서 곡선으로 바뀌었다.(3) 장 신 구로맨틱 시대와 같이 커다란 목걸이가 유행하였고, 귀걸이는 코와프( Coifs )로 덮혀진 후에 할 수 있는 작은 형태의 것이 되었다. 그 외 부채나 파라솔의 사용이 계속되었고, 진주등으로 장식하였으며,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접어서 들고 다녔다. 파라솔 또한 재봉의 발전에 영향을 받아 많은 주름을 잡아 정교하게 만들어서 사용하였다.7. 버슬 스타일 ( Bustle Style ) / 1870 ∼ 1890년과학과 산업화의 발달로 인해 미국을 중심으로 기성복이 눈에 뛰게 되었고 사회 현상이 변화함에 따라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필요하게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