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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사회] 일본의 연중행사 평가A+최고예요
    일본의 연중행사Ⅰ. 연중행사란 무엇인가?일본에서는 계절의 변화와 맞추어 특정 행사가 매년 같은 시기에 같은 양식으로 반복된다. 이를 연중행사 또는 세시풍속이라 한다. 연중행사는 촌락이나 마을, 또는 사회 집단을 단위로 행해지는 전통적인 관습으로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어 생활에 활력을 제공해 주며 바뀌는 계절을 확인하기도 한다.현대 일본 사회의 연중행사는 전통적인 것과 풍속적인 것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중에서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계에 있고 대중화 된 행사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Ⅱ. 연중행사의 종류1. 신년을 맞이하는 오쇼가쓰(お正月)의 행사한 해의 시작인 설은 연중행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행사이다. 설은 한 해의 신을 맞이하는 행사로서 이것이 잘 치러지지 않으면 그 해가 불행해진다고 믿고 있다. 오쇼가쓰는 새해를 맞는 축하기간으로 흔히 정월(오쇼오가츠)라고 하는데 넓은 뜻으로 그 해의 첫째 달이란 뜻이다.이날은 온 가족이 모여 특별한 음식과 술을 나누어 마시고 지난해 언짢았던 기억들을 잊어버리려고 한다.새해를 맞이하여 일본의 설은 다른 어떤 명절과 경축일보다 다양한 전통장식, 게임, 의상 등을 볼 수 있는 날입니다(1). 가도마쓰(門松)신년의 장식물로서 소나무와 대나무를 잘라 정결한 새끼줄로 다발을 묶어, 가정이나 상점, 빌딩의 문 양옆에 세워 두는 것이 가도마쓰이다. 원래는 정월에 후손들에게 찾아와서 일년 동안의 복을 내려주고 돌아간다고 하는 도시가미(年神)을 맞이하기 위한 의식용 장식물이었다. 도시가마가 틀림없이 자기 집으로 찾아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표시로 갓 베어 낸 소나무와 대나무로 단을 만들어 문 양옆에 세워 놓았던 것이다. 소나무의 의미는 중국에서 전래된 풍습으로 소나무(松)이 장수(長壽)를 상징 것으로 가족들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기 위함이고, 여기에 일본에서는 헤이안 시대(平安時代)부터 대나무(竹)를 첨부하여 새해를 맞는 기쁨을 나타낸다.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커다란 가도마쓰를 장식할 수 없기에 집 현관 )이런 저런 집 안 밖의 준비가 끝나고 진짜 새해가 되면 일본 사람들은 신년 초에 신사나 사찰에 참배하러 간다. 이를 하쓰모데라 한다. 대개 가족들과 함께 가서 신에게 신년 인사를 드리고 가족들의 건강과 자신의 소원 등을 기원하는데 이때 준비해 간 새전(賽錢 : 신불에 참배하며 울리는 돈)을 새전함에 넣는다. 보통 늘 다니던 신사나 사찰을 찾아가지만, 근년에는 유명한 신사나 사찰로 하쓰모데를 가는 참배객이 늘고 있다. 도쿄의 메이지신궁(明治神宮)과 같은 곳에는 정월 초하룻날에 수십만 명이 몰려들어 가족들의 건강과 자신의 소원을 빌며 새전을 던지는 인파로 장관을 이룬다. 신사나 사찰에서는 액을 물리친다는 부적이나 화살 또는 달마(達磨)인형 등을 만들어 파는데 참배객들은 이를 사다가 가미다나 등에 장식을 하며 신년의 경사스러운 분위기를 즐긴다. 하쓰모데는 원단부터 7일 사이에 행하여지고 있다.(5). 오세치요리(御節料理 ; 정월 음식)오세치(御節)요리는 명절에 먹는 요리 특히 현대 일본에서는 정월(正月) 1월1일에 먹는 음식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차례(茶禮)음식처럼 12월30일, 31일에 만들어 1월1일 새해가 된 것을 축하하며 가족들과 함께, 또는 찾아온 손님들에게 내 드리는 특별한 음식이다. 정월에 이 오세치요리를 먹는 것은 신에게 공양했던 음식을 여러 사람과 나누어 먹는다는 의미와 도시가미를 맞이하고 있는 동안에 음식을 만드는 것을 삼가기 위해서이다.오세치요리는 냉장고가 없던 시대에는 며칠 동안 보관하여 먹을 수 있도록 보존이 잘 되는 음식을 만들어 찬합에 담아 포개둔다.오세치요리의 메뉴는 지방마다 가정마다 특색 있게 만들어 주부의 요리솜씨를 자랑할 기회가 되는데, 이 요리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기본 요리의 재료는 무, 당근, 우엉, 두부, 다시마 등이며 이를 어패류와 함께 양념을 넣고 오랜 시간 동안 약한 불에 조려 만든 것으로 조미료와 요리방법에 따라서 특색 있는 음식 맛을 낼 수 있다.이 밖에도 어묵, 콩자반, 생선구이, 멸치조림 등의 음식이 평상시 그다지 청소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정월 전에는 제대로 청소를 해, 예쁘게 장식물을 장식해 둔다고 한다.Ⅲ. 봄에 하는 연중행사1. 성인식(成人式)일본에서 매년 1월 둘째 주 월요일은 성인의 날이다. 1949년(1999년까지는 1월 15일이었음)부터 공휴일로 지정되어 전국 각지 자치단체 주관으로 20세가 되는 청춘 남녀를 축하하는 행사가 개최된다. 만 20세가 되면 선거권이 주어지고 부모의 동의 없이도 결혼할 수 있으며 음주와 흡연이 정식으로 인정된다.2. 세쯔분(節分)세쯔분은 원래 사계절이 바뀌는 계절의 경계를 의미하며, 넓게는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의 전날을 세쯔분이라 하여 1년에 4번이나 있었다. 그 중에서 특히 입춘 전날(현재는 2월 3,4일경)의 세쯔분만이 연중행사로 남은 것은 추운 계절이 끝나는 날로서 특히 기다렸다는 것과 음력에서는 입춘과 정월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중요시되었기 때문이다.이 세쯔분에는 잡귀를 쫓는 뜻에서「도깨비로 분장한 이를 쫓는 예능 형식의 행사」와「볶은 콩을 되에 담아 뿌리는 형식의 행사」2가지를 실시한다.(1). 마메마키(豆まき:콩 뿌리기)일반적으로는 세쯔분의 대표적인 행사로 한 집안의 가장이「복은 집안으로, 잡귀는 집 밖으로」라고 외치면서 되에 들어있는 볶은 콩을 뿌리는 마메마키가 대표적인 세쯔분 행사로 잘 알려져 있다.①마메마키(豆まき:콩 뿌리기)입춘 전날 밤에 볶은 콩을 됫박에 담아서 일단 가미다나에 공양한다. 도시오토코(年男 : 그 해의 간지에 출생한 남성)이나 야쿠도시(厄年)의 남자가 현관에서 '오니와토코 ; 귀신은 밖으로'라고 2번외치면서 현관 밖으로 뿌리고, 다음에 '후쿠와쿠치 ; 복은 안으로'라고 역시 2번 외치면서 집안을 향하여 콩을 뿌린다. 각 방의 창에서도 같은 행동을 되풀이한다. 콩을 뿌린 뒤 귀신을 쫓아내고 복이 나가지 않도록 문을 닫은 후 올 일년간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면서 가족 각자가 자신의 나이만큼 볶은 콩을 먹는다. 지방에 따라서는 이 때 볶은 콩을 한 알 더 먹으면서 올 한해을 제일(除日)로 삼아 부정을 물리치고 액막이를 하는 날로 알려져 있다.)에 물가에 나가 목욕재계하고 술을 마시며 액을 막는 행사가 있는데, 이것이 일본에 전래되어 삼월 삼짓날의 액막이가 되었으며, 일본에서는 인형으로 몸을 문질러 신체의 부정을 인형에 옮겨 이를 바다나 강에 흘려 액막이를 했다.이와 함께 예로부터 일본에 전해 오던 인형 놀이가 합쳐져 히나마쓰리가 되었다.에도시대 초기(1960년 전후)에 궁정이나 막부에서 3월 3일의 명절에 히나 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또 에도의 3대 장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에는 여자 어린이가 태어나면 히나인형을 선물하는 풍습이 생겨났고, 17세기 중엽부터는 3월 3일이 히나마쓰리로 정착된 것으로 보여 진다.①히나인형(雛人形 : 히나마쓰리 때에 장식하는 인형)히나인형이라는 명칭은 에도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헤이안 시대에는 그 전신이라고 할 '히이나'를 사용한 놀이가 있었다. '히이나' 는 작고 귀엽다는 뜻의 고어로 귀족 가정에서는 작은 종이인형을 사용해서 소꿉놀이 등을 하였고 이를 '히이나 놀이' 라고 불렀다. 이는 원래 3월의 세쿠(節句)와 관계는 없었지만 액막이용 인형과 합쳐져 히나인형의 골격을 형성했다.에도시대에 들어서 3월의 세쿠가 활발해져 히나마쓰리가 널리 일반화되자 공예품으로서의 히나인형 발달과 함께 화려하게 변모하였고 메이지시대 이후에는 상점에서 히나인형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호화롭게 장식하는 형식으로 고정되었다.②히나인형의 장식법히나인형은 계단식 장식대인 히나단에 진열한다. 히나단을 꾸미는 방식이나 규모는 지방마다 그리고 집집마다 다르다. 히나단의 장식법은 처음에는 천위에 인형과 간단한 가구의 모형을 놓는 단순한 것이었는데 에도시대 중부터 히나마쓰리가 정착되면서 히나인형의 종류, 세간 등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에 따라 단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는데 18세기 중반에는 2, 3단, 이어서 18세기 후반에는 4, 5단, 19세기에는 7,8단이 나타나게 되었다.관동지방(關東地方)에서는 기본적으로 5단이나 7단 끼운다. 이들이 자주 묘지에 간다는 사실은 슈퍼마켓이나 꽃집에서 보면 잘 알 수 있다. 참배용 꽃을 따로 팔기 때문이다. 처음 슈퍼에서 그 꽃을 보고 무척 궁금했는데 근처 묘지에서 보니 그 꽃이 꽂혀 있었다. 400에서 600엔 정도로 초록색 잎파리와 국화와 다른 몇 송이를 간단하게 묶은 것으로 특별한 날이 아니면 대개 이것을 사서 들고 간다.오히간노히가 되면 슈퍼마켓에서는 특별한 떡을 판다.오하기(お萩)와 바타모치(ばた餠)이다. 오하기는 찹쌀밥 뭉치의 겉에 단팥고물을 둘러씌운 것이고, 바타모치는 반대로 팥고물을 안에 넣고 겉에는 찹쌀밥 그대로 뭉친 것이다.5. 하나미(花見)(1). 회계년도의 시작 입학 입사4월은 일본의 회계년도가 시작되는 달이다. 입학식, 입사식이 열리는 계절이기도 하며 어색한 교복 또는 양복을 입은 신입생과 신입사원들의 풋풋한 모습이 눈에 띄는 시기이다. 이렇게 새로운 시작을 장식하는 것이 벚꽃이다.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가 되면 각지에서 꽃놀이 행사가 열리는데 회사의 꽃놀이 행사에는 신입사원들이 첫 업무로서 대활약을 하기도 한다. 유명한 꽃놀이 장소에는 많은 인파가 몰리기 때문에 밤벚꽃놀이의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아침부터 양복에 넥타이 차림으로 벚꽃나무 아래에 앉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신입사원도 자주 볼 수 있다.(2). 꽃놀이일본에서 벚꽃은 3월 하순부터 4월에 걸쳐 북상하면서 꽃을 피운다. 꽃이 피고 약 일주일이면 만개하는데 이 때가 되면 술과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여 꽃을 감상하면서 연회를 갖는다. 이것이 꽃놀이이다. 일반적으로 벚꽃나무 아래에 돗자리 등을 깔고 그 위에서 연회를 갖는데 낮뿐만 아니라 밤벚꽃을 감상하면서 밤에 꽃놀이를 갖는 이들도 많다.이 꽃놀이는 헤이안(平安)시대부터 궁정에서 즐긴 귀족 놀이로 알려져 있는데 가마쿠라(鎌倉)시대 이후에는 무사집안 사이에서도 유행했다. 근세 초기에 장군 등이 벚꽃의 명소에서 현란한 의상을 입고 가무 등을 곁들여 즐긴 호화찬란한 꽃놀이는 에도(江戶)시대 서민들이 즐긴 화려한 꽃놀이의 기모저모
    사회과학| 2003.09.29| 17페이지| 1,000원| 조회(2,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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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 사회 의식] 전통상례에 대하여
    Ⅰ. 장례의 의의/유래Ⅱ. 상례절차1. 초종(1) 천거정침(遷居正寢)(2) 유언(遺言)(3) 임종(臨終)(4) 속광(屬 )(5) 수시(收屍)(6) 고복(皐復)(7) 사잣밥 ; 사자상(使者床) 차리기(8) 발상(發喪) - 상주(喪主)(9)호상(護喪), 사서(司書), 사화(司貨)(10) 전(奠)(11) 복인(服人)(12) 치관(治棺)(13) 부고(訃告)2. 습렴(襲殮)(1) 습(襲)(2) 습전(襲奠)(3) 반함(飯含)(4) 소렴(小殮)(5) 혼백(魂帛)과 명정(銘旌)(6) 대렴(大殮)3. 성복제(成服祭)와 상식(上食)(1) 성복(成服)(2) 상식(上食)4. 조상5. 치장(1) 택지(擇地)(2) 사토제(祠土祭)(3) 광중(壙中)(4) 지석(誌石)(5) 천구(遷柩)(6) 견전(遣奠)(7) 발인(發靷)(8) 노제(路祭)(9) 하관(下棺)(10) 평토제(平土祭)(11) 반곡(返哭)(12) 성분(成墳)6. 우제(虞祭)(1) 초우제(初虞祭)(2) 재우제(再虞祭)(3) 삼우제(三虞祭)7. 졸곡(卒哭)8. 부제9. 소상(小祥)10. 대상(大祥)11. 담제12. 길제Ⅲ. 장례상식1. 조문예절(1) 조문시 주의할 점(2) 조문시 옷차림(3) 분향의 요령(4) 헌화하는 요령(5) 조문인사2. 조문 받는 예절(1) 조객을 맞을 준비(2) 조객의 접대(3) 부의(賻儀)Ⅳ. 수의 이야기1. 수의2. 수의감3. 수의의 크기4. 남자의 수의5. 여자의 수의Ⅴ. 통과의례 상례가 가지는 의미□ 목 차Ⅰ. 장례의 의의/유래사람이 태어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그가 일생동안 함께 살아온 가족, 친척, 친구들과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므로 참으로 슬프고 애절하다. 상례란 이렇게 애절하고 슬픈 심정을 질서 있게 표현하는 이별의 예로서 임종에서 염습, 발인, 치장, 우제, 소상, 대상, 복제까지의 행사를 가리킨다.우리나라의 상례는 조선시대 이전에는 불교적 색채가 강했지만 조선시대 이후에는 유학의 영향을 받은 주자가례가 기본이 되었는데 같은 유교의 영향권에 속해 있는 중국과도 다르다.복" 하고 외친다. 죽은 자가 관작(官爵)이 있으면 "00관(官) 0공(公)"이라 하고, 죽은 자가 여자일 때는 남편의 관작을 좇아 "00부인 0씨"라 하고, 관작이 없으면 "유인(孺人) 0씨"라고 한다.이와 같이 고복할 때는 상주 이하 모든 가족이 울음(곡)을 멈추어야 한다. 이것은 떠나려는 혼이 다시 시신으로 돌아와 되살아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살아나지 않으면 정말로 죽은 것이 확인되는 것이다. 고복한 후의 옷(復衣)은 지붕 위에 그대로 놓거나 시체의 가슴 위에 올려놓는 등, 각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또 지방에 따라서는 주소와 관작과 성을 말하지 않고 "복, 복, 복" 하기도 하고, "돌아보고 옷이나 가지고 가시오!"라고 하기도 한다. 죽음이 확인되고 사잣밥을 놓을 때에는 먼 하늘을 쳐다보고 고인을 부르며 땅을 치고 곡을 한다.(7) 사잣밥 ; 사자상(使者床) 차리기고복을 한 다음 밥상에 밥 세 그릇과 술 석 잔, 백지 한 권, 명태 세 마리, 짚신 세 켤레 그리고 약간의 동전을 얹어놓고 촛불을 켜서 뜰 아래나 대문 밖에 차려놓는데, 이것을 사잣밥이라 한다. 전통적으로 저승사자는 세 명이라 여겨 음식과 짚신 등을 3인분으로 준비한다. 사자상 차리기는 염라대왕이 사자(使者)를 시켜 사람의 목숨을 거두게 하는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에 그 저승사자를 대접해 편안히 모셔가게 해달라는 뜻이다.(8) 발상(發喪) - 상주(喪主)고복이 끝나면 아들, 딸, 며느리, 즉 자손들이 머리를 풀고 곡을 하며 옷을 갈아입는데, 남자는 심의(深衣)를 입고 섶을 여미지 않으며 여자는 흰옷으로 갈아입고 모두 맨발로 신을 신지 않는다. 이와 같이 상제의 모습을 갖추고 초상난 것을 밖에 알리는 것을 발상(發喪)이라 한다. 발상과 동시에 상중(喪中), 기중(忌中) 또는 상가(喪家)라고 써서 문밖 또는 길목에 붙인다. 그리고 상을 알릴 때에는 일단 가장 가까운 직계가족부터 알리는 것이 보통이다.이렇게 초상이 나면 예제(禮制)에 따라 상주(喪主), 주부(主婦), 호상(護喪수건을 베나 명주로 만들어서 준비한다.⑬ 시자(侍者)가 손을 씻을 물을 준비한다.위와 같은 준비가 끝나면 시자는 손을 씻고 향탕수를 가지고 들어온다. 이때 상주와 상인은 장막 밖으로 나와 북쪽을 바라보고 서 있게 된다.목욕시킬 때 남자시신은 남자가, 여자 시신은 여자가 시자가 되어 씻긴다. 먼저 향탕수로 머리를 감기고 물기를 닦은 다음, 빗질하여 머리를 올려 조(組)로 묶고 비녀를 꽂는다. 시신의 상체를 정결하게 씻고 닦은 다음, 하체를 씻고 닦는다. 이때 쓰는 향탕수와 수건은 앞에서 준비한 대로 각각 따로 쓴다. 멱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톱과 발톱을 깎고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주워 주머니에 넣어둔다.이렇게 습이 끝나면 시상을 임종했던 방으로 옮기는데,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게 한다. 남은 향탕수와 수건, 솜, 빗 등을 거두어 구덩이에 묻고 소렴을 기다린다.(2) 습전(襲奠)습전(襲奠)이란 죽은 후 처음 올리는 제사를 말한다. 포, 혜, 과일을 상에 차려 시신의 동쪽에 놓고, 짚자리를 깐다. 상주와 아들들은 시신의 동쪽에 자리하고, 주부와 여자들은 시신 서쪽에 짚자리를 깔고 앉는다. 좌포우혜(左脯右醯)라 하여 포는 좌측에, 혜는 우측에 놓으며, 집사자가 손을 씻고 술을 부어 시신의 오른쪽 어깨 가까이에 놓으면 상제들은 절을 하지 않고, 앉거나 서서 애통한 곡을 한다.앉는 좌석의 순서는 3년 복을 입은 남자들 뒤로 남자들만 차례로 기년복(朞年服), 대공복(大功服), 소공복(小功服)의 순으로 서쪽을 향해 앉는다. 여자들도 이에 준하며, 서쪽에 자리하여 동쪽을 향해 앉는다. 다른 성(姓)의 남자들은 포장 밖의 동쪽에, 부인들은 서쪽에 앉은 것이 옛날 관습으로 되어 있다.(3) 반함(飯含)반함(飯含)이란 염을 하기 전에 시신의 입에 구슬 또는 엽전과 물에 불린 쌀을 떠 넣어 주는 것을 말한다. 상주가 손을 씻고 애통하게 곡을 하면서 남쪽으로 나가서 구슬이든 상자를 가지고 돌아오면, 시자가 불린 쌀이 담긴 그릇에 버드나무로 만든 숟가락을 꽂고 따라 들어간다. 그러면(功布)를 걸어놓는다. 공포는 상여의 길잡이로서 도로의 높고 낮음이나 갈림길에서의 방향 등을 알린다. 이 공포를 사상례(士喪禮)에서는 3∼5자의 길이로 만들어 대공포(大功布)로 한다. 명정(銘旌)과 공포를 걸어놓는 앞에 교의(交椅)를 놓아 그 위에 혼백을 모셔놓고, 그 앞에 탁자를 놓아 삼색 과일을 놓고 술잔을 잔대에 받쳐놓는다. 삼색 과일이란 붉은 색 대추, 흰색 밤, 검은색 곶감 세 종류를 말한다.탁자 앞의 향합(香盒)은 동쪽에 놓는다. 날이 어두워지면 탁자에 촛불을 켜고, 아침저녁으로 빗, 수건, 세수할 물을 받들어 영좌 앞에 놓는다. 망인이 살아 계실 때와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으라는 뜻이다.명정(銘旌)은 붉은 비단에 백분(白粉)과 아교를 섞어서 쓴, 고인의 명찰이라고도 할 수 있다.(6) 대렴(大殮)대렴은 소렴이 끝난 뒤 시신을 대렴포(大殮布)로 싸고 묶어서 입관하는 의식으로서, 소렴을 한 다음날, 즉 고인이 사망한 지 3일째 되는 날 새벽 동이 틀 때 하는 의식이다.날이 밝으면 집사는 대렴상(大殮床)을 가져다가 방 동쪽 벽 옆에 놓는다. 거기에 횡포 두 폭을 펴고, 그 위에 장포를 펴놓은 다음 대렴금을 펴놓는다.시신을 들어 대렴금 위에 옮겨놓은 후, 대렴금으로 먼저 발을 싸고, 다음에 머리와 왼쪽, 오른쪽 순으로 여민다. 장포 위쪽 아래쪽을 각각 세 가닥으로 째서, 위·아래 한 가닥씩 묶어 세 매듭을 짓는다.횡포는 각 양끝을 세 가닥씩 쪼개서 소렴 때와 같이 한 가닥은 버리고 다섯 가닥으로 묶어서 다섯 매듭을 짓는다. 이때 횡포로 쓰는 베는 올이 가는 것으로 쓴다.시중꾼이 관을 들여와 대렴상 서쪽에 갖다 놓으면, 집사는 관 바닥에 칠성판을 깔고 그 위에 지금(地衾)을 깐다. 시신을 기울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들어서 관 속에 넣는다. 이때 습할 적에 빠진 머리, 손톱, 생시에 빠진 이 등을 넣은 다섯 개의 주머니를 관 귀퉁이에 넣고, 관 속에 빈 곳이 있으면 망인의 입던 옷을 말아서 채운다. 그 다음 천금(天衾)으로 시신을 덮고 관의 뚜껑인 천개(天蓋)외의 자식 중에 한 사람이 묘지로 내정된 곳에 직접 가서 고인을 편안히 모실 수 있는 곳인가를 살펴보고 정한다. 햇빛이 잘 드는가, 돌이나 물이 없는가, 봉분이 이룰 수가 있을 만큼 흙이 두터운 곳인가를 살핀다.(2) 사토제(祠土祭)장지에 공사를 시작하려면 사토제를 지내야 한다. 이날 상주는 참석하지 않으며, 상주는 조전 상식이 끝나면 친척이나 친지 중에서 사토제 지낼 사람을 선전한다.(3) 광중(壙中)광중이란 시신, 즉 관을 모시는 구덩이를 말한다. 광중을 팔 때는 금정기(金井機)를 땅에 놓고 시작한다. 먼저 나무 네 개를 가지고 정(정)자 모양으로 만드는데, 관의 크기에 맞추어 그 모양을 만들고, 그 모양대로 땅을 판다. 금정기 네 귀퉁이에는 말뚝을 박아서 흔들리지 않도록 하고, 광중을 다 파고 나면 석회에 모래를 섞어 관이 들어갈 만큼 발라 곽(槨)과 같이 만든다.(4) 지석(誌石)성명, 생졸(生卒) 연월일, 행적, 무덤의 좌향 등을 기록하는 것으로서, 돌 두 쪽에 회(灰)로 글씨를 쓰거나, 새기거나, 오지 그릇에 글을 새겨 구워서 광중 앞 가까운 곳에 묻는 것을 말한다. 뚜껑이 되는 돌을 지개석(誌蓋石)이라 하고, 바닥이 되는 돌을 지저석(誌底石)이라 한다.(5) 천구(遷柩)천구란 빈소에서 영구를 대청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발인하기 하루 전날 조전 때 천구할 것을 고한다. 축관이 술을 올리고 북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금이길신 천구 감고(今以吉辰 遷柩 敢告; 이제 영구를 옮김을 고하나이다)"라는 고사를 드리고 일어나면, 상주 이하 일동이 두 번 절을 하고 곡한다. 천구할 시자들이 들어오면 여상제들은 물러가고, 상주와 상인들은 상장을 땅에 대지 않고 들고 서 있는다. 축관이 혼백을 받들고 사당으로 가면 그 뒤에 명정이 따르고, 시자들이 영구를 받들고 사당으로 간다.이때 상제들은 곡을 하며 뒤따른다. 시자들은 영구의 머리 쪽이 북향하도록 사당 문 앞에 놓고, 축관은 집사와 함께 사당에 전을 올리고, "청조우조(請朝于祖 : 할아버님 뵙기를 청합니
    인문/어학| 2002.05.14| 19페이지| 1,000원| 조회(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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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서평 평가A좋아요
    국화와 칼 에 대한 짧은 의견▷되살아나는 일본의 군국주의의 망령일본이 최근 들어 과거 침략자의 얼굴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군국주의 부활을 외치는 일본의 극우보수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그런 와중에 우익세력이 내놓은 왜곡된 역사교과서가 통과되었다. 특히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꾸니 신사참배 까지 이어지면서 우리 국민들의 반일감정들을 격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인터넷에 안티(anti) 일본 사이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하루 조회건수도 수백 건이 넘는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일본에 우호적이던 전후 세대인 젊은이들 사이에도 일본에 대한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일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사람의 대부분이 무조건 일본은 이겨야 한다'는 의식 속에서 살지만 이기기 위해 갖추어야 할 첫 번째 일은 적을 아는 것이건만 일본을 싫어하는 거의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자기가 이겨야 적에 대해 적개심만 있을 뿐 그들의 실체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과거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기 위해서 한국의 마을 단위의 전통문화는 물론이고 한국인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무엇보다 먼저 수집을 했었고, 이는 한국침략에 있어 더 없이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실로 반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일본에 대한 자료수집과 연구는 나중에 놓고 생각하더라도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의 역사에 대한 연구의 대부분도 과거 일본이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많다는 점은 부끄럽기까지 하다.▷ 국화와 칼 의 저술 배경일본인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그리고 일본문화 특히 정치문화의 특성을 파악하는데 크게 이바지한 책의 하나로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의 『국화(菊花)와 칼-일본문화의 패턴』이 있다.이 책의 저자인 베네딕트 여사는 미국의 유명한 인류학자이며 『Patterns of Culture(문화의 유형)』, 『Race(종족) : Science and politics』등의 대표작이 잘 알려져 있다. 근대을 토대로 문화인류학적인 분석을 가미해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을 출간했고, 이 책은 많은 논란 속에서도 일본연구의 입문서로 자리잡는다. 이 리포트의 주제는 일본인은 진정으로 변할 수 있는가 였다.저마다의 알맞은 위치'와 태평양전쟁루스 베네딕트는 1944년 6월 일본에 대한 연구를 위촉받았다. 이 때는 태평양전쟁 중이라 일본을 이해하는 것이 미국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일로 부각된 상황이었다. 저자는 그 당시 일본에 관한 연구를 다방면에서 얻은 자료나 여러 사람의 경험에 의존하는 등 크게 고심한 그 과정들을 잘 기록해 놓고 있다. 막연하고 혼미한 상태를 거듭한 끝에 필자는 일본인의 행동이 모순처럼 느껴지던 것이 모순 아닌 것으로 느껴지며 서양 사람들의 행동 양식과 분명히 다른 일본적인 것을 발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이 저서에서 그녀는 연구 과제로서의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인을 국화 와 칼 에 빗대어 절묘한 이중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나라꽃인 벚꽃보다도 국화를 더 좋아한다. 그 이유는 다른 꽃들이 피지 않는 차가운 가을에 홀로 피는 국화는 깨끗하고 청결하고, 엄숙하고 고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국화는 일본의 황실을 상징하기도 한다. 고결하고 향기로운 국화와 그런 국화를 좋아하는 부드럽고 온화한 이미지의 일본, 하지만 베네딕트는 또 하나의 일본인의 모습을 결코 놓치지 않고 있다. 온화한 미소 뒤에 숨겨져 있는 일본인의 또 다른 모습, 그것은 잔악하고 호전적인 무사의 모습이다. 예의바르고 겸손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일본인들, 그 속에는 무섭고 날카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국화를 가꾸는 데 신비로운 기술을 가진 국민이며, 동시에 칼을 숭배하며 무사에게 최고의 영예를 돌린다. 이러한 모순이 일본에서 이루어지는 진실이다. 최고도로 싸움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얌전하며, 군국주의적인 동시에 탐미적이며, 불손하면서도 예의 바른, 철저히 훈련된 병사지만 또한 반항적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소한 일본인들이 전쟁을 일으킨 이유로 묘사가 되고 있다.루스 베네딕트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 중에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일본 국내의 계층제도문제를 세계차원에서 실현하기 위함이었었다.태평양전쟁 당시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던 것은 교토대의 철학과 교수들이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일본은 1910년 이후에서부터 1930년대까지 군사적으로도 세계의 강국이었다. 워싱턴 군축회담에까지 미국, 영국과 더불어 참석할 정도였다. 그 군축회담에서 일본은 군축을 강요받게 되는데, 당시 일본의 군사력은 절정에 도달해 있었고, 문화의 문제가 남은 상황에서 교토대의 철학과 교수들은 다음과 같은 이론을 제공하게 된다. 그들은 진화하고 있는 세계 속에서 일본이 진화의 정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서구는 자본주의에 물들어서 퇴폐를 해 있어서 정신이 타락하였고 반면 사회주의에는 인간성이 없으므로, 그들에게서 배울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는 필연적으로 발전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은 국화로 상징되는 정신력과 칼로 상징되는 군사력을 모두 겸비하고 있어 앞으로 새로운 세계는 일본이 이끌어야 하고 그것이 분수에 맞게 자기 자리를 찾는 것이라는 주장이다.이것은 일본이 다른 아시아의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등의 국가들에 비해서 근본적으로 계층이 높은 나라에 속하고 그래서 세계 질서를 일본이 재편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며 침략전쟁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단순히 이것은 일본이 다른 아시아의 국가들은 지배하는 차원을 떠나 일본이 서구의 과학기술과 인본주의의 정신을 결합한 나라로서 일본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문명이다라고 내세우는 것이며, 이것을 교토대의 철학과 교수들이 끊임없이 제공을 했고 이를 군사적인 정권이 수용을 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이런 침략전쟁이 이루어진 것을 베네딕트가 아주 예리하게 그것은 자기 자리를 찾기다. 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아주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세계 질서 속에서 일본의 알맞은 위치를 찾는 것이 바로 태평양전쟁이, 사람이 짊어지고 있는 어떤 부담, 채무, 무거운 짐으로서 반드시 갚아야 할 의무를 말한다. 온(恩)에는 천황으로부터 받는 온(恩), 양친으로부터 받는 온(恩), 스승 기타 온갖 접촉에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는 온(恩)이 있다. 이 온(恩)은 부채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반드시 갚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온(恩)에는 갚아도 갚아도 다 갚지 못하는 빚과 받은 만큼만 갚으면 완전히 청산이 되는 빚이 있다. 자신이 받은 은혜와 같은 수량만 갚으면 되는 부채가 바로 기리(義理; 자신이 받은 은혜와 같은 만큼의 수량만을 갚으면 되고 또한 시간적으로 제한된 부채)이다. 기리(義理)라는 개념은 유교에서 받아들인 것도 아니고 불교에서도 아니고 일본 특유의 범주이다. 일본인의 행동 방침을 이해하는 데는 의리 즉 올바른 도리, 세상에 대한 변명 때문에 본의 아니게 하는 일 로 되어 있다. 그 중 이름에 대한 기리(義理)는 사람으로부터 모욕을 받았을 때, 그 오명을 반드시 씻는 의무 즉 보복·복수의 의미를 말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보복은 덕행이 되는 것이다. 47인의 로닌들도 기라 영주를 살인하였지만 결국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영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리(義理)와는 반대로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결코 그 전부를 갚은 수 없는 의무 그것을 기무(義務;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그 전부를 결코 갚을 수 없고 또한 시간적으로도 한계가 없는 의무)라고 한다. 천황이나 국가에 대한 온(恩)의 의무와 부모나 조상에 대한 의무가 바로 기무(義務)에 해당한다. 근대 일본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이러한 감정을 천황에게 집중하도록 하였다. 일본인에게 있어서 최대의 온(恩)은 바로 천황의 온(恩)인 것이다. 그리고 갚아도 갚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기무(義務), 천황에게 향하는 기무(義務), 그것은 무한한 헌신의 의미이다. 그래서 천황은 일본인들에게 있어서는 일본과 결코 분리시킬 수 없는 존재라고 베네딕트는 분석하고 있다. 군국주의자들은 모든 방법으로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호소하고 그것을 인용렷한 목적을 가지고 행해지는 훌륭한 행위가 된다.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의 절반의 성공저자는 일본을 방문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여행하며 경험을 통해서 기술해 나갈 수 없는 형편에서 문화인류학자로서의 자질을 발휘하여 일본에서 자란 일본인들을 만나고 직접 면담하고 일본에서 살았던 서구인들을 만났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씌어지고 제작된 영화들도 보았다. 그녀는 인류학자로서 자신이 가진 모든 연구방법을 통해서 일본에 대해 연구를 하였다. 그리고 서양인들의 눈에는 모순이라고 비쳐진 일본인의 행동이 모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전혀 독특한 것으로서 덕(德)이나 악덕(惡德)이 서양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과 다르며 그것은 불교적인 것도, 유교적인 것도 아니라 일본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저자는 평균적 일본인의 행동과 사고의 틀을 이해하고자 했다.지금까지 살펴본 몇 가지 개념들은 전쟁중의 일본인과 그리고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그들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이해하는데 충분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국화와 칼'은 전후 일본과 일본인을 가장 잘 설명한 상징적인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책을 접하는 동안 어휘라든가 표현들이 어려워서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들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쉽사리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보아온 여타의 어느 일본관련 서적들에 비해서 이 글은 자신의 주관적 감정을 배제하고 있으며 그리고 저자 자신이 미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라도 되는 양, 일본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류학자로서 저자의 이런 노력들은 충분히 이 책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1946년에 출간된 이 책은 일반인은 물론 점령군 사령관까지,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널리 읽혀 일본에 대한 이해를 널리 확산시켰다. 그러나 100쇄를 거듭해 230만 부 이상 팔려나간 이 책은 베네딕트가 일본을 한번도 방문하지 않고 집필한 것으로 찬사 받기에 충분하지만, 조금의.
    독후감/창작| 2002.04.10| 8페이지| 1,000원| 조회(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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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자인] 생활과 디자인 평가B괜찮아요
    □제출자 : 건축학부 3학년(961987) 신인철 제출일자 : 2001. 5. 22 시간 : 화 5, 6교시▷주제 : 1. 디자인에 있어서의 실용성과 아름다움{▷제목 :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산업혁명을 거쳐 현대적 관점의 디자인이 시작된 이후 디자인에 있어서 실용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는 현재까지 계속되어 왔다. 디자인의 기본 조건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이 두 가지 요소임이 분명하지만 과연 어느 요소가 더 중요한가 하는 질문을 한다면 언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고 본다. 그만큼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되고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부분인 것이다. 건축과 학생의 한 사람으로서 이 주제에 대해서 자신의 확고한 입장을 밝힌 건축가 한 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정리하고자 한다.▶인공물의 자연디자인은 존재하지 않았던 자연을 만들어 낸다. 아니, 생산이 그렇다. 디자이너는 생산자가 만들어 내는 인공물의 형태와 조건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그러므로 우리가 만들어 낸 세계이고 제2의 자연이다.20세기 초 ‘산업미술’이라는 명목으로 디자인을 시작했던 모험가들은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삶의 모양이 달라진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공물의 형태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이 좋을까. 우리가 무언가를 위해서 디자인을 할 때, 그 무엇은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날 수 있을까.“형태(심미성)는 기능(실용성)을 따른다.”는 생각은 이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된다. 이 말은 미국식 건축의 전형을 구축한 루이스 설리반(Lo uis Sullivan)이 1896년에 리핀코트(Rippincott) 3월호에 손수 게재한 에세이에서부터 유래한다. 설리반은 도시의 상징이 된 마천루를 처음으로 설계하고 실현했던 건축가로 유명하다. 그가 주요 근거지로 삼았던 시카고는 1871년의 대화재 이후 미국식 건축의 거대한 실험장이 되었다. 설리반은 도시의 재건에 열정적으로 참여했으며, 강인하고 굴복할 줄 모르는 하나의 미국적인 인간성의 표본으로서 에인 랜드(Ayn-Rand){빌 스텀프(Bill Stumpf)와 돈 채드윅(Don Chadwick)의 회전 팔걸이 의자 ‘아론(Aeron)’. 란델스의 소파에 비교하여 형식보다는 철학으로서의 기능주의가 어떻게 계승되어 실제와 결합했는지 알 수 있다. (1992){{뉴욕에 있는 미스 반 데어 로어(Ludwig Mies van der Rohe)와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의 시그램(Seagram) 빌딩. 미스 반 데어 로어는 보다 미학적인 형식에 치중한 모더니스트로, 디자인에 대한 인식의 틀을 취미의 문제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1954∼19 58){의 소설 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남긴 말들은 항상 그 자신과 함께 미국인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어 왔다.“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은 주요 인용사전에 수록되어 일반 대중들이 교과서적인 말로 받아들이고 있을 정도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기계 예찬19세기는 과학의 실용화에 대한 논쟁의 시대였다. 인간이 테크놀러지를 지배할 것인지 아니면 테크놀러지가 인간을 지배하게 될 것인지를 놓고 희망과 불안이 교차했다. 설리반이 글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에세이를 보면, “사람이란 어떤 면에서는 언제나 기계의 노예였다.”라는 자조를 읽을 수 있다. 설리반 역시 논쟁적인 입장에서 자신이 설계한 마천루의 양식을 정당화하고 그것이 빚지고 있는 테크놀러지의 속성을 옹호하는 데 글의 앞부분을 할애하고 있다.“상식적으로, 오피스 빌딩은 비즈니스를 위한 장소이다. 고속 엘리베이터의 발명은 수직 이동을 가능하게 했고, 철강의 발달은 거대한 높이로 건물을 세우는 안전하고 값싼 방법을 알려준다. 계속되는 도시 인구의 증가 때문에 많은 사람을 한 장소에서 소화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성공적인 방법은 적층 구조로, 이 결과 나타나는 고층 건물의 외관은 높음, 그 자체만을 표현해야 한다. 이야말로 인간의 드높은 정신에 대한 영광과 존경을 보여주는 것이다.”설리반의 이런 주장은 직접적으로는 그의 사무실에서 일을 했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와, 간접적으로는 시카고를 방문했던 아돌프 루스(Adolf Loos)에게 영향을 끼쳤다. 20세기는 이들을 이른바 ‘모더니즘’의 원류로 기록하게 되었으며 ‘기능주의’라는 명칭으로 이들의 이론을 요약하게 되었다. 건축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산업 생산에 기능주의의 정신으로 배출된 디자이너들이 투입되었고, 모더니즘 디자인은 교육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증폭되어 시장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평가를 받게 되었다.▶기능주의의 딜레마{{시카고에 있는 루이스 설리반(Louis Sullivan)의 카슨 파이리 스코트 앤 컴퍼니(Carson Pirie Scott & Company) 백화점 건물. 모든 층이 마치 벌집과 같이 동일하게 반복되어 위와 옆으로 치솟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1899∼1904){{윌리 란델스(Willie Landels)가 디자인한 소파 'Throw Away'. 기능주의가 어떻게 미니멀리즘으로 이전하는지 보여주는 사례.(1966){{독일의 디자인 연구자 베른트 뢰바하(Bernd Lobach)는 기능주의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1장식이나 놀이와 같이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것으로부터의 해방, 2물리적-경제적인 기술의 공학설계원칙 적용, 3목적에 따라 합리적으로 수단을 선택, 4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 5최소의 제작비와 경영비, 6감정에 끌리는 디자인 배제. 그 결과는 무엇일까? ‘앉는 도구로서의 의자, 읽는 도구로서의 책’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의자는 편안하게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 있는 재료와 구조일 때, 책은 정확한 그리드 레이아웃 속에서 텍스트의 독해력을 높여줄 때, 즉 사물의 도구적인 성질은 극대화되고 다른 성질은 최소화되었을 때 가장 그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이제 세기가 바뀐 지금, 기능주의는 실패한 기획이었다는 판결이 지배적이다. 시장을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연료는 최소한도의 필요가{바우하우스의 가장 대표적인 디자이너인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 euer)의 의자.(1933)아니라 최대한의 욕망이며, 형태는 기능을 따르기보다는 의미와 결합해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해 보인다. 그런데 대부분의 비판은 시각적인 비평으로, 표면에 집착하는 특징이 있다. 그런 점은 기능주의를 냉소적인 예술적 이상향으로 발전시킨 듯한 미니멀리즘 디자인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키치에 반대되는 문화적 권력 관계의 시각적 장치로서만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디자인을 스타일과 같은 뜻이라고 여기는 한, 기능주의를 절제된, 또는 기계적인 양식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한 사람의 디자이너가 갖게 되는 기능주의의 진짜 딜레마는 그것이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기능’의 문제로, 이미 디자인 과정에 본질적으로 내재된 표현의 한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기능주의는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기계와 기술에 대한 태도이다. 역사가들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설리반의 명제가 19세기 미국의 조각가 호레이쇼 그리너(Horatio Greenough)가 쓴 형태와 기능(Form and Function) 이라는 책의 주제에 다윈의 생명진화설을 결합시킨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설리반이 글을 썼던 당시 미국에서는 기계적인 대량 생산에 대한 기대가 그 반대의 불안을 설득하고 있었고, 설리반의 생각은 선구적이면서도 꽤 대중적인 심리를 반영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0세기는 결국 테크놀러지의 압도적인 승리였으며 지금도 물론 이런 경향은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예체능| 2001.11.26| 4페이지| 1,000원| 조회(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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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상] 디자인 에세이 평가D별로예요
    이것은 단지 한 권의 책일 뿐이다 It? only a Book한국에서는 미국그래픽아츠협회(American Institute of Graphic Arts) 연감을 접하기 힘들겠지만, 아이가(AIGA) 연감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디자인 개론서이다. 올해의 아이가 연감은 표현력이 뛰어난 디자이너 제니퍼 스털링(Jennifer Sterling)이 디자인했는데, 스털링은 책을 하나의 ‘오브제’로 만드는 데 주력함으로써 책의 모양과 느낌을 완전히 새롭게 창조했다. 이 과정에서 스털링은 연감의 기본적인 형식과 내용을 누그러뜨렸으며 연감을 자신의 표현물로 만들었다. 그 결과는 신랄한 논쟁과 아이가 웹사이트 (www.aiga.org) 상에서 회원들이 불만을 터트리는 것으로 도출되었다.... 전 세계의 디자이너들에게 이번 일은 디자이너의 ‘예술’이 어떻게 중요한 출판물의 메시지를 방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는다. 아이가 연감은 미국그래픽아츠협회 공모전에 출품된 디자인 중 가장 뛰어난 작업을 담은 기록물이자 디자인 유산이며, 출품자들은 그들의 성취를 자랑으로 생각할 자격이 있다. 출판비라는 명목으로 연감의 출판을 돕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지출했음을 감안한다면, 이들 수상자는 그들의 작품이 멋지게 보여지고 정중하게 다루어질 것을 기대함이 마땅하다. 한 권의 연감은 디자인 실험을 위한 실험실이 아니고, 일년 동안에 이루어졌던 가장 뛰어난 작업을 보여주는 출판물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 그 약속은 깨졌다.... 아이가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필자는 (아이가 연감 365: AIGA Year in Design 21을 줄인 말 - 편집부)는 연감의 형식을 재정의하기 위한 가치 있는 시도라고 썼다. 아이가는 전통을 유지하면서 계속 디자인의 한계를 실험하고 있으며, 필자는 다른 아이가의 회원들 역시 이러한 아이가의 목표에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연감은 그 성격상 매우 국지적이며, 편집 및 디자인에 대한 이해력으로 더 잘 만들 수는 있지만, 용인된 기준을 크게 벗어날 수는 없다. 연감은 적합하고, 읽기 쉬운 작품 설명문과 함께 명확하게 보여야만 한다. 또한 연감은 평문, 연표, 디자이너의 해설 등등의 ‘편집 내용’을 포함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작품을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 연감은 잘 디자인될 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나, 그 안의 작품은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여야만 한다.... 모든 연감들이 상당히 비슷하게 보이는 까닭은 주제에 대한 정해진 변형들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 은 정기적으로 다른 디자이너들을 참여시키고 있으며, 그들 디자이너는 타이포그래피를 바꾸거나, 표지 디자인을 실험하고 또한 주요 내용에 변화를 주거나, 또는 그 밖의 방법으로 그 해의 차별되는 모양(look)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들은 연감의 본질, 즉 작품 자체를 망치지는 않는다. 디자이너의 개성이 존중된다고 해도 그것은 기본적인 임무를 희생하는 댓가로 얻어질 수 없다.... 가 실패한 지점은 그것이 플라스틱 표지에 싸여 있어서도 아니고 독특한 그 크기와 형태 때문도 아니며, 더욱이 활자가 괴로우리만치 작기 때문도 아니다.(솔직히, 필자는 장려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활자가 너무 작기 때문에 더욱 주의 깊게 읽었다.) 의 실패는 디자이너의 치명적인 실수이다. 스털링은 작품의 사진 전체를 싣지 않았다. 그녀는 작품마다 1~2 쪽의 충분한 공간을 할애했다. 그러나 그녀는 작품 사진의 부분을 잘라서 세부를 강조하겠다는 발상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마치 이러한 각각의 세부에 대한 부각이 없이는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듯 자신이 작품의 중요한 부분을 부각시켰다고 생각했다. 스털링은 하나의 완성품으로 작품 사진 전체를 게재하지 않았는데, 이는 잘못된 일이다. 바로 이 누락(너무나도 명백한)은 각 디자이너들의 작업이 그저 한 북 디자이너의 예술을 위한 사료(클립아트라고 표현할 수 있는)로 보일 수 있게 만든다. 이런 식의 작업은 음악 샘플링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으나, 진정한 저작업(authorship)은 아니다.... 디자인 저작업은 디자이너들이 스스로 창조한 것이나 혹은 다른 협력자들과의 공동작업을 통해서 창조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 위에 필수적인 작업을 생산하는 재능과 기술을 지니고 있다는 개념을 기반으로 한다. 글, 그림, 음악, 그리고 영화가 기존의 아이디어들로부터 출발함을 인정한다 해도, 진정한 저작업은 독창성을 고려해야만 한다. 독창적인 작업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예컨대 1998년에 출판된 티보 칼맨(Tibor Kalman)의 은 더욱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찍은 수백 장의 사진들을 병치했고, 스털링은 효과를 끌어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창조한 디자인 및 타이포그래피 작품을 징발했다. 칼맨은 새로운 종류의 이야기를 개발해 줄 것을 의뢰 받았고, 반대로 스털링은 디자인을 보여주기 위해 디자인된 책에 다른 사람의 디자인을 구성해 줄 것을 의뢰 받았다. 스털링의 작업은 작품들에 대한 칭송을 가장하여 그 형태가 본질적으로 다른 콜라주를 만들었다. 이는 저작업이라는 용어를 잘못 해석한 것이다.
    자연과학| 2001.11.25| 3페이지| 1,000원| 조회(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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