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레디메이드 인생》《제향날》《치숙》《논 이야기》들어가며난 아직 문학에 눈을 뜨지 못한 것 같다. 뭐랄까, 닥치는 대로 읽혀지는 그런 느낌을 아직 받아본 적 없다. 아직도 고등학교 때 문학 작품 문단 나눠 소단원 주제 찾아가며 읽던 버릇을 못 고쳐서 그런가 보다. 이런 나에게, 질리도록 외우기만 했던 고등학교 교과서 안의 작품처럼 무턱대고 채만식의 작품을 읽어보라고 대뜸 들이댄다면아마 아무 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떠오르는 것이 풍자소설뿐이니. 재미있을 턱이 있나..문학이란 것이 우리네 삶의 반영이라면, 그래서 문학을 가르치고 싶다면 문학도 그렇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숨쉬며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삶을 나누고 삶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듯, 문학도 그렇게 읽고 그렇게 가르치고 싶었다.그런 의미에서 채만식의 네 작품을 그저 하나의 작품으로가 아니라, 채만식 이라는 사람의 삶과 다리를 놓아 읽는 것은 참, 괜찮은 일이었다.괜찮은 일이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아서 안타까울 뿐이다. 선배가 빌려주신 책들을 손에 물집 잡히도록 며칠 동안 학교와 집으로 들고 낑낑대며 나르기만 하다가, 아 왜 이렇게 채만식 작품은 따분하고 재미가 없냐고 칭얼대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뒤적이며 앉아있던 때가 있었다. 아, 그리고 이런 순간이 올 줄은 알았다. 언제나 마음먹기가 어려운 법이다.채만식이 어떤 일관된 사상이나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작품이 쓰여진 연도를 꼭 고려하여 읽을 수밖에 없었다. 부족하지만, 그의 삶의 흐름의 반영으로 그의 단편들을 해석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어느 작품은 짧게 어느 작품은 길게 정리했지만, 작품과 그 밖 몇 권의 책을 훑어보면서 내가 공감이 되거나 나의 생각이 미쳤던 부분까지만 서술하기 위해 그대로 두었다. 더 생각해 볼 것들이 있다면 함께 이야기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레디메이드 인생, 1934》채만식은 1924년 단편 로 문단에 등단에서 동아 정체성의 확립도 쉽지 않게 만들지 않았을까 한다.그러한 상황 안에서 쓰여진 《레디메이드 인생》을 보자.인테리… (중략) 부르죠아지의 모든 기관이 포화 상태가 되어 더 수효가 아니느니 그들은 결국 꾀임을 받아 나무에 올라갔다가 흔들리우는 셈이다. 개 밥의 도토리다.인테리가 아니었으면 차라리…노동자가 되었을 것인데 인테리인 지라 그 속에는 들어갔다가도 도로 달아나오는 것이 99프로다. 그 나머지는 모두 어깨가 축 쳐진 무직 인테리요 무기력한 문화 예비군 속에서 푸른 한숨만 쉬는 초상집 주인 없는 개들이다. 레디메이드 인생이다.작품 처음, 사장 K가 농촌 계몽을 하러 내려가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P가 코웃음을 치는 장면에서도 보여지듯 채만식은 일제시대 쓸모없는 지식인 생산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밑줄 친 부분에서도 나타나듯 대책없이 그러한 가난한 지식인을 생산해 내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나타낸다.그러나 앞서 언급한 채만식의 당시 삶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때, 레디메이드 인생이 그러한 사회에 대한 비판에 목적이 있기보다 자신을 얽어매는 가난에 대한 회의와 그 때문에 신문사 등을 전전해야 했던 자기 삶에 대한 불안정함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말하자면 그러한 사회 비판들도, 내겐 채만식의 삶의 괴로움, 무기력함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으로 들린다는 것이다.P 가 소 부르죠아 축에 끼이는 인테리가 아니요 노동자였더라면 그 동안 거지가 되었거나 비상 수단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러한 용기도 없다. 그러면서 죽지 아니하고 살아있다.단 돈 20전에 정조를 팔려 하는 창녀를 보면서 씁쓸해 하지만 이내 그것이 그녀의 입장에서는 동정할 것도 나무랄 것도 없는 모습이라고 판단한다.장님이 눈 병 앓는 사람더러 불쌍하다고 할 셈인가.오히려 채만식에게 돈 20전에 정조를 파는 그 여자는 불쌍하지 않다. 물론 순간의 충격에 못이겨 자기가 가진 돈을 그 여인에게 던져버리고 뛰쳐나오지만, 그녀 자신의 사고 방식 안에서 그건 불쌍한 일이 푼이 두 사람 중의 주머니 속에 붙어 있었던지 몇 잔씩의 선물이 들어가도 얼큰하여진 판이다. 뚜벅뚜벅 말이 없이 침침한 거리를 걸어가다가 갈림길에서 하나가 발을 멈추었다. "바로 집으로 올라가려나?" 한 사람마저 걸음을 멈추었다. "응." 그리고는 담담할이만큼 서로 말이 없이 우두커니 서서 있다.그러다가 한 사람의 입에서 땅이 꺼지게 한숨이 나온다. 한 사람 마저 그렇게 한숨을 쉰다.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 둘이 꼭 같은 말을 한다. "몸만 지탱할 수 있다면!" "하느니 그 말일세" "×군이 있는 광산으로 갈까!" "글세 몸이…" "하다가 지친 소갈이 쓰러져 넘어지면 그만이지." "하긴 그래야 할 일이야." "그 길 밖에는 없지." "그렇지"오랜 침묵이 지나간 뒤에"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 두 사람은 또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쉰다. 그리고는 침묵,"어서 가서 잠이나 자지." " 잘 가게" "잘 가게") 「채만식 전집 10」, 창작과 비평사《제향날, 1937》, 《치숙, 1938》1936년 기어이 채만식은 결단을 내린다. 그의 일생을 통한 '직장인'으로서의 생활은 1936년 신문사를 나오면서 끝을 맺는다.(1939년 , "…병자년 벽두, 마침 조선일보를 물러나오던 기회다")그리고 이 1936년을 기점으로, 그의 생애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일체의 공직을 포기함으로써 생활고는 가중되었지만, 문단 데뷔 이후 10년 생활을 청산하고 스스로 작품 제작을 포기했던 각오를 가난 속에서 재기, 창작에 임했던 점이다. 그리고 이 시기,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숙명여고를 졸업한 김시영을 만나기도 한다.) 「채만식」, 건국대학교 출판부가중될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직업을 그만두었던 것은 문학인으로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을까.그래서인지《제향날》에서 채만식은 네 작품 중에 나름대로 가장 뚜렷하게, 그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상을 보여준다. 남편은 동학란의 주역으로 총살당하고, 아들은 3.1 운동의 주역으로 생이별을 한 최씨라는 여인을 통해 희곡이라사람들이 두 부류로 등장한다. 최씨의 남편 김성배, 아들 영수 모두 현실에 맞서 직접적으로 대항하다가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가족과 헤어져 청국으로 도피 생활을 해야 하기도 했지만, 고통받는 이들은 이 당사자뿐만이 아니다. 현실 인식이 있든 없든,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내하고 견디는 주변인들의 고통 또한 견줄 수 없이 크게 존재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 주변인인 최씨의 입장에서, 그녀의 현실적인 고통이 느껴지게 전개된다.그러나 이것을 채만식이 두 가지 부류로 굳이 나누어 설명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거라고 보지는 않으려 한다. 지식인으로서 온몸으로 맞서든 투사가 되든, 혹은 그 옆에서 진실을 보고 그저 살아가고 견디어 내든, 그 '의로움'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모두 다,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주었듯 역사 앞에서 진실되게 또 부끄럼 없이 살아가는, 그래서 그 끊임없는 고통을 감내하는 프로메테우스인 것이다.프로메테우스 (눈을 치뜨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의를 행한 보갚음! 의를 이룬 보갚음은 엉겁의 고초! 죽지 아니하고 영겁토록 받는 고초! 사나운 수리가 살을 쪼아먹고 까막까치는 눈을 파먹고 귀를 떼어먹고 그러고도 끊이지 아니하는 극형!(천둥 소리 우르릉거리고 번개를 친다. 폭우가 내린다. 폭우 그치고 강풍이 분다. 강풍이 그치고 눈이 내린다.)프로메테우스 (눈이 내릴 때에) 오오 그래도 나는 의를 이루었노라그리고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대신 극형을 감내해야 했던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는, 예상치 못하게 상인의 입을 통해 나온다. 이것은 《제향날》에서 보여주는 지식인의 상이, 그저 과거에 대한 회상과 이상형의 제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상인 또한 일제 치하라는 지금의 현실을, 즉 채만식이 부대끼고 있는 지금을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는 표현인 것이다.영오 그런데 말이유. 우리 선생님도 그러시고 또 우리 반 동무아이도 그러는데 언니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사회주의 한다고 그리겠지?최씨 무엇? 사우주? 그건 무슨 말이라든?영오 나도 모르겠어. 그냥 이애 영오야 치숙》은 풍자라는 기법을 사용하고 지식인을 대상화하여 간접적으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치숙을 읽으면서는 이 풍자라는 기법에 주의했는데, 바라보기에 따라 치숙이 형상화하는 사람의 의미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 만해 보였기에 잠깐 언급해본다.일단, 화자인 '나'는 풍자의 대상이자 채만식에게 있어 비판적 시야 안에 든 사람의 부류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일제 시대에 일신의 안일을 위해서 일본인 주인에게 아부하여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할 생각만 하는, 반민족적 행위를 하는 인물인 것이다.기가 막혀서…하느님이 사람의 콧구멍을 두 개로 마련하기 참 다행이야. (중략) 하하 오옳지! 거 참 그렇겠군. 재갸는 재갸 하는 짓이 옳으니까 남이 하는 짓은 다 글렀단 말이렸다?그리고 우리 다이쇼오도 한 말이 있고 하니가 나는 내지인 규수한테로 장가를 들래요. 다이쇼오가 다 알아서 얌전한 자리를 골라 중매까지 서준다고 그랬어요. 내지 여자가 참 좋지요. 나는 죄선 여자는 거저 주어도 싫어요.그런데 그를 통해 보여지는 치숙은, 분명히 아주 부정적이다. 그리고 조금만 읽다 보면 금세 '나'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하게 묘사되어 있고, 그 우스꽝스러운 '나'를 통해 끊임없이 비난당하는 치숙은, '나'의 한심함, 어처구니없음이 두드러지면서부터 상대적으로 더욱 강하게 긍정되는 효과를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그런데 헷갈리게 하는 부분이 있다. 어디까지를 '나'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어디까지를 '치숙' 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을지가 말이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는 풍자 기법의 소설 안에서 내가 작가와 호흡을 잘 하지 못해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아무튼 혼란스러웠던 부분을 짚어보자면, 도덕적으로 그다지 정당하지 못한 치숙의 생활 태도이다.1) 그것만 보아도 벌서 그럴 듯 해요. 경제는 아저씨가 대학교에서 경제를 배웠다니까 경 제 속은 잘 알 것이고, 또 사회는 그것 역시 사회주의를 했으니까 그 속도 잘 알 것이고, 그러니까 경제하고 사회주의하고 어떻게 서로 관계가 되는 것이며 어습디다.
황석영, ★작가 소개★黃晳暎. 1943면 만주 출생.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이 당선되어 등단.7, 80년대 마당극을 비롯한 각종 공연활동을 통해 민중문화운동의 추진자로 활약.1989년 방북했다가 이후 독일, 미국 등지에 체류 후 93년 귀국. 복역하여 98년 석방.로 만해 문학상, 으로 단재상 수상.저서로는 , , , , 장편소설 , , , 희곡집 , 산문집 , 등이 있다.★줄거리★공사판을 찾아 근거지 없이 떠돌아다니는 영달은, 이번 마을에서도 공사가 끝나고 어디로 갈지 궁리한다. 그 중에 정씨라는 한 사내를 만나고, 그가 고향인 삼포에 10년 만에 내려가는 길이라는 말을 듣고 딱히 갈 데 없는 영달은 일단 동행하기로 한다. 영달은 한 때 거취를 두고 사랑하는 사람과 잠시 살았던 때를 회상한다. 국밥집에 들러 그들은 그 곳에서 밥도 팔고 몸도 팔던 백화란 여자가 도망갔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시 길을 가는 도중 백화를 만나 셋은 동행하게 된다. 백화의 신세는 영달의 신세와 비슷하고, 둘은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헤어지는 길목에서 백화는 영달에게 자신의 고향에 함께 가자고 하나 영달은 자신이 능력이 없음을 생각하며 거절한다. 영달과 정씨가 함께 삼포로 떠나기 전, 한 할아버지에게 삼포는 10년 전의 모습을 모두 잃었단 이야기를 듣는다. 어느 결에 정씨도 영달과 같은 처지가 되어 삼포 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이 소설은 고등학교 때 배웠던 이효석의 과 얼핏 보기에도 상당히 유사한 내용 구조를 가진다. 우선 작품 전체적으로는 ‘여로 여로(旅路)[명사] 나그넷길. 여행의 노정(路程).’의 전개에 따라 주인공의 심리나 처한 상황 등 다양한 측면을 포착할 수 있는 여로형 소설이며, 영달과 허생원은 모두 떠돌이이다. 그리고 이 두 주인공은 지금의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에 대한 ‘회상’을 하곤 한다.★시공간 분석★1. 그러나 에서는 허생원의 ‘회상’을 통해, 그리고 동이가 그의 혈육이라는 암시를 통해 고달픈 장돌뱅이의 삶이지만 그 속에서 사랑과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때문에 에서 달밤의 사무치는 아름다움을 묘사한 부분은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 으로 시작되는 허생원의 회상과 동화되어, 허생원과 성처녀의 인연을 순수하고 아름답게 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에서 영달의 회상은, 여전히 흐리고 눈이 올 것 같은 날씨로 이어져 그의 사랑이 다시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암시한다.2. 작품의 서두 부분에서도, 은 봉평장 장돌뱅이들이 장판을 걷지만 시끌벅적하고 생동감 있으며, 그들은 내일 또 새로 장이 서는 곳을 향해 저마다 갈 수 있다. 작품 전반적인 배경도 선선한 여름밤이다. 그러나 은 서부 부분에서부터 새벽의 겨울 바람이 매섭게 불어오고, 그 바람에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들판가에서 을씨년스럽게 흔들란다. 그리고 영달은 갈 곳이 없다. 작품 전반적으로도 날씨는 계속 흐리거나 눈이 오고, 개이는 적이 없다. 이러한 상이한 시공간은 두 작품의 상이한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3. 여로형 소설은 특히 서사의 시공간의 역할이 중요시 되는데, 에서는 등장인물들이 길을 가는 도중 그들의 심리 상태,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상황의 암시가 날씨의 변화와 함께 두드러지게 나타난다.1> 영달이가 얼음 위로 미끄럼을 지치면서 말했다.“야아, 그럼, 거기 가서 아주 말뚝을 박구 살아버렸으면 좋겠네”
신경숙, 외딴방... 을 읽고 있노라면 나는 한없이 내 안으로 침잠하게 된다. 이 책은 결코 분주한 지하철 안이나 한낮의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는 제대로 읽혀질 수 없는 책이다. 이 책은 안으로도 밖으로도 고요하다. 그래서 책을 읽는 우리 역시 우리만의 외딴방에 들어앉아 읽어야만 하도록 만든다. 고요하게 삶을 사색하게 만든다. 이 세상이 숨기고 있는 수많은 골목의 이야기들... 드러내고 싶지 않은 우리들의 치부이지만 결국 그곳이 우리 삶의 터전이며 그 골목 안 외딴방의 이야기는 우리들 삶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분위기는 결코 슬픔이나 외로움이나 절망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삶의 숨기고 싶던 모습들까지 낱낱이 들어냄으로써 우리의 삶을 보다 진실되고 치열하게 만드는 희망의 책이라고 보아야 옳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우리들 역시 각자 자신만의 외딴방을 들여다보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또한 우리들도 이 책의 작가처럼 우리들의 아픈 외딴방을 끄집어내는 작업을 통해 보다 진실한 삶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는지 모를 일이다.이 책에는 꽤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전형적인 모습을 띤다. 여기서 전형적이라 함은 물론 고대 소설 속에서처럼 평면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그들이 이 소설 속에서 있어야할 위치에, 꼭 정확히 제 위치에 놓여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주인공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느 시대든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이다. 어린 자식을 먼 곳에 보내두고 아픈 가슴을 쓸어 내리며 그래도 여전히 가족을 위해 자신의 자리에, 부엌에, 텃밭에, 우물 곁에 있어야 하는 강인한 모성의 모습이며, 또한 애써 덤덤하려 하나 사실은 때로 어머니보다 더 자식들에 대한 애처로움으로 서러워져야 하는 쓸쓸한 부성의 모습인 것이다. 또한 오랜 세월 동안 이 사회의 굴곡진 역사의 안팎에서 그들에게 부여되는 여러 특권만큼이나 수많은 희생의 삶을 살아야했던 우리들의 장남의 모습이 '나'의 큰오빠를 통해서 풍속화'라 함은 그 시대 서민들의 평범하고도 보편적인 그래서 차라리 진실한 삶의 모습들을 그린 그림을 뜻한다. 한국 현대사의 격동의 순간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 지금까지 역사의 뒤편에서만 존재해 왔지만,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분명히 역사적인 존재들이다. '나'와 함께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 - 유채옥이나 미스 리나 노조지부장, 윤순임과 같은 이들이 그나마 이만큼의 한국을 이루게 한 주역들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나'의 셋째 오빠와 같이 수많은 젊은 청년 학생들이 이 사회의 온갖 부조리에 맞서고자 맨손으로 거리에 나섰다가 때로는 좌절하여 돌아서고 때로는 이름 없이 스러지기를 거듭하면서 그나마 이만큼의 한국을 이루게 하였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당시 70년대 말, 80년대 초의 가파른 우리 역사를 그린 풍속화 속의 전형적인 인물들인 것이다.또한 '나'에게는 외딴방에서의 고단한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한 사람들이 있다. 가장 가까이서는 그의 둘도 없는 단짝인 외사촌을 꼽을 수 있다. 나보다 세 살이 위인 '나'의 외사촌은 발랄한 성격의 소유자로 함께 서울에 올라온 뒤로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공장에서도 언제나 함께 하는 친구이지만, 또한 그들이 어려운 순간 순간을 맞닥뜨릴 때면 어느새 언니다운 의젓함으로 '나'를 다독일 줄도 아는 다정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의 고향 친구 창은 서울 생활에 지친 '나'의 마음 속에서 애틋하게 자라나 때로는 '나'를 슬프게도 하고 때로는 기쁘게도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나'의 외딴방에서의 세월뿐만 아니라 이후의 삶에까지도 빛을 준 사람은 바로 최홍이 선생님이다. 모든 것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 싫어진 주인공이 여러 날 학교를 빠졌을 때 '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선생님을 보고 '나'는 '처음으로 공장 속에서 사람을 만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선생님은 '나'에게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건네면서 소설이라는 꿈도 함께 주신다. 고단한 삶을 살 어른이 된 현재의 작가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작가의 글쓰기와 관련된 인물들이다. 먼저 이 글을 쓰도록 동기를 부여한 사람은 영등포여고 시절에 같은 반이었던 하계숙이다. 그녀는 작가로서 유명해진 친구의 기사를 읽고 전화를 걸어왔는데, 어느 날 그녀로부터 "너는 우리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 혹시 네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니? 넌, 우리들하고 다른 삶을 사는 것 같더라."는 말을 듣고는 지금까지 차마 끄집어 낼 수 없었던 외딴방의 이야기를 힘겹게, 그러나 무수한 자기와의 싸움 뒤에 용기를 내어 시작하게 된다. 또한 작가가 졸업한 영등포여고 산업체특별학급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한경신 선생님으로부터의 편지는 지금 소박하게 자신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작가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자극이 된다. 그 밖에도 그녀가 글쓰기의 치열함을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충고해 준 선배나, 그녀의 글쓰기가 자칫 자신을 소진하는 행위가 되지 않도록 염려하는 은사, 또한 글쓰는 이의 열정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몸소 보여주었던 '그' 와 같은 인물들이 끊임없이 작가의 글쓰기의 안과 밖에서 관여하면서 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소설 의 특징은 크게 작가 개인으로서의 의미, 글쓰기 자체로서의 의미, 사회적 의미, 철학적 의미라는 네 가지의 틀로 이야기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신경숙이라는 작가 개인에게 이 소설은 단지 아픈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로 남아서 그녀를 가로막고 있는 외딴방을 끄집어내어 스스로를 치유하는 작업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희재 언니의 죽음과 그 죽음을 자신도 모르게 방조하게 되어버린 열아홉의 여름은 그녀로 하여금 희재 언니와 관계된 그 시절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마저 함묵해야 할 것을 강요한다. 그리고 그 여름 이후 천성이 낙천적이었던 그녀는 급속하게 말을 잃고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를 겁내하는 극도의 소극적인 인간이 되어버린다. 그녀 자신도 그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럴 수 없다면 아프게 해왔고 결국 하계숙의 전화는 그녀에게 외딴방에 대한 어떠한 결단을 요구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도망쳤다가는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오는 자기와의 싸움을 반복하는 가운데, 그녀는 마음 속의 닫힌 과거와, 희재 언니와, 또한 자기 자신과 화해하게 된다. 그녀의 과거는 이제 현재를 거쳐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또한 에서는 글쓰기 그 자체에 대한 작가의 치열한 고민이 전개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발등을 쇠스랑으로 찍고만 열여섯 살 그 때에, 생은 독한 상처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러한 삶을 살아가려면 뭔가 맘 속에 순결한 그 무엇을 품고 살아야겠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고 말한다. 그녀가 외딴방 시절을 견뎌내고 이 후의 삶을 지속하는 동안에도 글쓰기는 언제나 그녀의 마음 속에서 순결한 그 무엇으로 그녀를 지탱해왔던 것이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소외에서 벗어나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수단이었으며, 그녀는 오직 글쓰기를 통해서만이 과거의 아픈 상처에, 희재 언니에 도달할 수 있었다. 글쓰기란 뒤돌아보기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문학이 그녀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한다고 할 때 그녀는 자신이 지금 왜 여기에 서 있는지 알기 위해서 과거를 돌아다보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뒤돌아보기는 단지 과거를 돌아다본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그녀는 역사가 정리하고 사회가 정의하는 가운데 소외되어 그 뒤에 흐르고 있는 진실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녀는 문학이란 정리되고 정의된 그 이면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들, 약한 것들을 위해, 정리되고 정의된 것을 헝클어 새롭게 흐르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글쓰기라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실에 다가가고자 한다. 그녀가 소설의 꿈을 품도록 많은 영향을 끼쳤던 그녀의 셋째 오빠는 자신이 문학을 포기한 것은 문학으로는 사회의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하면서, 그녀에게 작가로서 사회를 외면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서 문학은 그저 꿈이었다. 그녀는 문학을 통해 려는 것이다.따라서 그녀가 반영하는 사회의 모습 역시 소외된 이들의 삶의 모습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점에서 외딴방은 사회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그녀가 회상하는 70년대 말 80년대 초, 격동하는 한국 사회는 그대로 그녀 자신의 이야기이고 또한 그녀의 가족과 동료들의 이야기이다. '내'가 경제 계발 논리의 일환인 산특학급에 다니면서 산업역군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하에 온갖 노동력의 착취와 인권의 억압을 견뎌내야만 했던 시절, 10.26으로 박정희의 18년 독재가 끝나고 비상계엄령이 내려지고 그 가운데 신군부의 전두환이 권력자로 등장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서울의 봄은 왔다. 작가는 엄동설한에 핀 미친 개나리였다고 회상한다. 그 서울의 봄 동안 '나'의 공장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로 권리를 주장하는 동료들이 있었고, 집에서는 데모쟁이 셋째 오빠가 돌아와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껏 부풀어 오른 자유의 분위기는 집권자 한 사람 개인의 영광을 위해 수많은 민중의 삶을 짓밟아버린 5월의 피비린내로 일소되어 버린다. 우연히 그 현장을 목격한 안향숙에 의해 비밀처럼 전해듣게 되는 5월 광주의 이야기. 이 후 집권자는 사회 정화라는 미명하에 무고한 민중들을 정화 대상으로 삼청 교육대에 끌고 간다. 그래서 '나'는 그녀들이 가면 늘 연탄불을 제일 먼저 꺼내 주던 가겟집 아저씨를 잃게 되고, 가겟집 할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을 잃게 된다. 또한 사회를 가득 메우는 공포와 억압의 논리는 과외금지령이라는 이름으로 힘겹게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나'의 큰 오빠를 한순간에 실업자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직장폐쇄라는 이름으로 '내'가 다니던 공장을 비롯한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고 그래서 또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만다. 회사측의 횡포에 맞서려다가 21살의 나이에 신민당사 건물에서 투신해야만 했던 김경숙은 '나'와 같은 반 김삼옥의 동료였으며 김삼옥 역시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작가는 지금 그 시절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
꿈 1. hope."너희들은 꿈이 뭐니?"늘 돌똘이 스머프 처럼 맑게 또렷하게, 싱글싱글 웃는 선생님이 계셨다. 그리고 늘 한 번씩은, 이렇게 물어보시곤 했다. 너희들의 삶에서 꿈은 뭐니."검사요" "통역관이요" "현모양처요" "아나운서요" .......대답은 손바닥 뒤집듯 훤했다. 더더군다나 소위 '공부 잘 하는 애들만 있다는' 학교의 고등학생 소녀들의 발상은 그렇게 틀에 재듯 딱 맞추어져 있었다.선생님의 미소는 씁쓸하게 변한다. 내심, 혹시라도 다른 대답이 사막 한가운데 샘솟는 물처럼 튀어 오르진 않을까...기대하셨던 것이리라. 그리고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신다.삶에서, 나의 삶에서 단 한 번 꾸는 '꿈'을 과연 무엇으로 둘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본 적 없느냐고. 어떻게 인생에서의 꿈이, 이상이, 목표가, 뻔한 직업 하나로 이름 지워 질 수 있느냐고. 덩치에 맞지 않게 작은 나무 책걸상 만큼이나 딱딱하게 굳어있던 머리는, 그 순간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멍해진다.그렇게 내 인생에서 내 가슴에서 '선생님' 이라는 존재는, 그 한 분으로 규정 지워졌다. 그리고 선생님과 나, 그 사이에서 어쩌면 일방적일 지도 모르는 교감을 통해 나는 변화했다. 그리고 인위적인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변화하는 나 자신의 경험으로, 먼저 알았다. 교육은 나를, 사람을 변화시키는 구나. 교육은, 사람의 정신을 키우고 가꾸는 일이로구나.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참 가치있는 일이로구나.그것은 어쩌면 감동이었다. 그리고 내 삶에 있어서의 꿈은, 분명히 정해졌다.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사람의 정신을 키우고 살리는 일은, 적어도 아직까지, 내 삶에서 최고의 가치로 두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나의 가치를 위해 '교육' 이라는 매개는, '교사' 라는 직업은, 어떻게 살기 위한 그 무엇으로 '선택'되었다.꿈 2. dream.교사가 되어 아이들의 앞에 서는 꿈을 꾼다. 그다지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함께 꿈성직이다, 전문 교과를 가르치기에 전문직이다, 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왜 노동자라는 관점이 부인되지 않을 수 없는가.그리고 또 이상하다. 교육은 학교라는 틀, 공교육이라는 범위 안에서 평등하게 주어지고, 가진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에 따라 차별이 주어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 분명할진데, '교육 시장화' 라는 말이 대놓고 들린다. 최근 서울대 입학자의 40% 이상의 부모님이 의사, 검사, 판사 등 흔히 '상위 계급' 이라 하는 직업 소유자라고 한다. 강남과 강북의 수도권 대학 진학률은 4배 넘게 차이가 난다. 제도 교육 안에서 받은 반공 의식의 맹목적인 주입은, 하나의 거대한 폭력이었다고 느껴진다.왜, 왜..nightmare 1. 이론의 악몽하나, 노동력의 재생산 장치로서의 교육현 시대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그리고 노예제 사회의 지배계급과 노예가 그렇듯, 그리고 봉건제 시대의 봉건 영주와 농노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대립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조금은 유화된 듯한, 그러나 자유이면서도 자유롭지 못한 경제 외적 강제로 자본가들에게 얽매여져 있다.우선, 맑스주의적 재생산 이론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맑스는, 하나의 사회구성체가 생산을 함과 동시에 생산의 조건들을 재생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1년도 종속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그 사회구성체가 존재하기 위해서, 그리고 생산할 수 있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종속시키기 위해서 그것은 생산력(노동자에 의한, 노동력)과 현존하는 생산 관계(자본가-노동자)를 재생산해야 한다고 했다.앞서 말했던, 쉽게 예를 들 수 있는 서울대 입학자의 부모 직업 차이, 강남과 강북의 대학 진학 및 학업 성취도 차이, 그것도 큰 범주 안에서 본다면 현재의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재생산되고 있는 현상의 한 부분일까? 이것을 인정하고 들어간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이와 같은 것들은 과연 어떻게 재생산 되는가?맑스는 이것이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고정된’ 직위에 따라 준수해야 하는 적합성의 규칙들- 경제적 분할에 대한 존경의 규칙들, 그리고 결국 지배계급에 의해 세워진 규칙들을 배우게 된다.이 사실을 조금 더 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노동력의 재생산은 그 자격의 재생산만이 아니라, 동시에 세워진 질서의 규칙들에 대한 복종의 재생산을, 한편 착취와 억압의 대리자들에게 있어서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잘 다루는 능력의 재생산을 요구한다.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종속, 또는 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실천’의 재생산을 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라는 이름의 교육을 일단 발견할 수 있다.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란 무엇인가. 말은 딱딱하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교육의 큰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해 내는 것 또한 이 명칭이다.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선, 국가이론을 통해 맑스가 국가는 억압적 국가장치라고 지칭했던 것을 잠시 언급해 보기로 한다. 여기서 국가장치라는 것은‘억압적’이라는 의미를 잠정적으로 내포하는 말로서 국가 권력과는 구분되는 명칭이다. (억압적) 국가장치는 정부, 내각, 군대, 경찰, 재판소, 감옥 등을 포함한다. 여기서 국가 장치란 말에 ‘억압적’이란 단어가 내포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폭력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낸다.이에 반면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종교, 교육, 가족, 법률, 정치, 문화 등의 국가장치로 나타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억압적) 국가장치에 비해 사적인 영역에 다수가 존재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의 본질적인 특징은 (억압적) 국가 장치가 폭력에 의해 가능한 반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어떠한 계급도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 위에 그리고 동시에 그 속에 그들의 를 장악하지 않고서는 지속적으로 국가권력을 보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여기서 보다 더 눈여겨 보고자 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는 교육의 기능이다.이렇게 보면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서의 교육의 기능은에 걸맞은 이데올로기를 실제로 제공받는다. 즉, 피착취자들의 역할과 억압의 대리자들의 역할에 있어서의 미덕을 배우는 것이다. 이러한 미덕은 물론 다른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하지만, 생각해보자. 다른 어떠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도,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의 어린이들 전체를 일주일에 5, 6일 그리고 매일 8시간씩, 그 여러 해 동안 의무적인 청중으로 만들 수 없다.그리고 더 결정적인 것은, 이러한 지배 이데올로기의 주입으로 생산관계 등을 재생산하는 학교 교육의 매커니즘은 스스로 자신을 은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는 중립적이고 이데올로기를 갖지 않는다는’또 하나의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서의 학교의 본질적 모습을 은폐하고 숨겨준다.nightmare 2. 현실의 악몽악몽은 악몽이다. 현재를 억압하는 이론을 현실에 매치시켜 본다는 것은, 신기함과 동시에 중압감이나 패배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이론에 대비해 현실을 바라보는 것은, 꿈을 재는 양팔 저울에서 행복한 꿈을 담은 팔이 악몽을 담은 팔의 무게와 중압감에 훌쩍 위로 치솟을지도 모르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다시 저울을 수평으로 만들고 나아가 반대편으로 팔을 기울게 만드는, 행복한 꿈에 무게를 실어주기 위한 해답, 그것의 열쇠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학생들은 노동자가 자기 직업을 지배하고 있는 것과 같은 정도로 교과과정을 지배한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동기 체계, 보상은 교육의 과정과 명백한 결과가 지닌 내재적인 사회적 이익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석차나 외재적인 보상, 실패에 대한 위협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임금과 실직에서의 부담으로 동기화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학생들은 언제나 꽉 막힌 교실 안에서 시험 문제 하나를 더 맞추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그리고 각 개인이 성취한 결과에 따라 보상을 받는가 혹은 체벌이나 비난을 받는가의 여부4는, 개개인이 그것을 어렸을 때부터 보아오고 경험을 축적해 오면서 당연시 여기게 되고, 심지어 자 못했을 리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교과서를 휘감은 반공 의식은 남한 주민의 의식에 지대한 기여를 했음은 물론이다. 분단 과정에서의 역사적 사실이나 북한 사회에 대한 사실 왜곡, 그리고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고 통일을 이야기하면 빨갱이라는 사고방식을 주입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주입한 반공 의식은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화 투쟁들을 탄압하는 이데올로기적 강력한 무기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런 반공 교육이 경재 재생산, 계급 재생산에 직접적으로 기여한 것은 아니지만, 지배 계급의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학생들에게 주입시킴으로서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로서의 교육의 기능을 톡톡하게 수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but, 그러나..교육이, 그것도 학교에서의 교육이 재생산 기능이 존재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교육 자체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과연 교육은 공교육이라는 형태로 이어져야 하는가 라는 문제로도 발전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리고 맑스가 교육의 재생산 기능을 이야기하면서도 역설적으로, 학교 교육을 폐지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우리에게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아니 무엇보다도 우리가 공교육을 지켜내야 하는 이유는 어쩌면 너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평등이라는 개념, 그 사람이 처해있는 상황이나 부모님의 소득 등에 의해 다양한 삶의 측면에서의 발전마저 박탈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평등을 보장해 주어야 할 항목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왜냐하면 교육은 각 개인의 소득이나 지위, 자아 성취에 가장 중요한 비중을 갖는 자기 계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을 일정 정도의 수준까지, 가정환경 등의 차이에 관계없이 받을 수 있게 하려면 교육에 대한 공적 지원을 통한 공교육은 필수적인 것이다.또한 그러한 지식 교육과 함께, 앞서 '사람의 정신을 키우고 가꾼다' 표현했던 인성 교육의 측면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인성교육은 학생과 교사의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