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악마들 서평이번 서평쓰기 레포트에서 내가 선택한 책은 실크로드의 악마들이었다. ‘실크로드’라는 단어만 들어도 뭔가 흥미진진한 이야기 일 것 같은데 악마라는 단어까지들어가 있어 꼭 환타지 소설같은 느낌이었기에 다른 책들보다는 제목부터가 눈에 들어와서 선택하게 되었다.이 책은 유럽에서 저명한 고고학자들의 (혹은 전문 도굴꾼들이라고도 할 수 있으려나??) 발굴과정을 - 파렴치한 부분도 있었지만 - 매우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당시의 고고학적 탐사가 자국을 위한 스파이 활동과 긴밀히 결부되어 추진되었다는 점, 우연에 의한 세계적 유물의 발견, 다양한 개성을 지닌 주인공들의 모험담 혹은 생사를 건 자연환경과의 투쟁 등의 스토리가 한 편의 소설처럼 전개되어서 읽는 동안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스벤하딘부터 시작해서 많은 유럽인 탐험가들이 중앙아시아 지역의 많은 유적들을 '고고학'이라는 명분 아래 마구잡이로 파헤치며 유적들을 훔쳐 갔다. 중국정부가 1930년대 유럽인 탐험가들을 거부하기 전까지 그 탐험가들은 많은 유적들을 훔쳐 유럽 박물관에 가져다놓았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중국인들이 유적의 벽화가 뜯겨 나간 곳이나 기타 등등 유럽인들이 파헤쳐놓은 유적을 보면서 "훔쳐갔어요!"라고 탄식한다며 작가는 말하고 있다.하지만 꼭 훔쳐갔다는 생각로만 볼 것은 아니다. 책의 내용을 조금 옮겨 적으면 다음과 같다.『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도망쳐 왔던 백러시아 군인 4백 명이 중국 관헌들에 의해 6개월 동안 돈황에 강제 수용된 일이 있었다. 그들의 좌절과 무료함이 어디에나 표현돼 있었다. 워너는 아내에게 쓴 편지에 자신의 분노를 이렇게 적어 보냈다. "아름다운 얼굴에 러시아 연대 번호가 갈겨써 있고, 또 한 슬라브족의 욕설이 '묘법연화경'을 설법하는 부처의 좌상의 입에서 죽 흘려 써져 있는 것이 아니겠소.....내가 할 일은 이처럼 빠른 속도로 파괴되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무엇이든, 구하고 보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이오. 수 세기 동안 멀쩡했던 유물들이, 그러나 그 끝이, 지금 내가 이렇게 보고 있는 그대로가 아닌가 말이오." "이런 문화재 파괴 행위에 대한 윤리적 소감을 말하라면, 주저 없이 이 장소를 훌렁 벗겨가 버리고 싶다는 것이다. (p.317)』물론 상황이 위와 같다고 해서 도둑질 자체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구 유럽의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다른 나라 문화재들이 원래 자리에 있었을 때 맞이했을지도 모르는 운명이 지금의 운명에 비해서 보다 행복한 것이 되었으리라고 장담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여하튼, 이 책은 담고 있는 정보도 풍부하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저자의 솜씨도 훌륭하다. 저자는 서양 탐험가들의 문화재 도둑질에 대해서 그것이 도둑질임은 인정하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도둑질에 대해서 나쁘나 좋다 판단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저 도둑질의 자세한 전말을 보여줄 뿐이다.바로 이것,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문제 삼으면서 그 자신은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않은 문제는 제목처럼 실크로드의 탐험가들을 발굴자로서 위대한 영웅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약탈자로 볼 것인가? 에 대한 문제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책을 보고 한번쯤은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이다.저자는 중도적인 입장에서 이 문제를 관조하고자 조심스런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저자도 또한 유럽 한 나라의 국민인지라 영국 박물관에 소장된 실크로드의 유물을 변호하기 위해서인지 이러한 유물 발굴의 합리성을 조금은 부각시키는 듯 했다. 즉 계몽되지 못했던 당시의 중국정부가 고고학적 유물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무지 몽매한 농부들로부터 유물들이 파괴되어 버릴 운명에 처해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결과적으로 영국이나 독일 혹은 프랑스에 의한 실크로드의 유적 발굴에 의해 상당수의 유물이 극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고, 충분히 연구됨으로써 실크로드의 역사가 복원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물론 이것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입장이다. 그 당시 중국의 상황이 땅속에 묻혀 있는 골동품 같은 물건, 캐낸다고 해서 밥이 될 수 있는 그런 물건보다 그 땅을 갈아서 나오는 쌀 한 톨이 더 중요한 시기였고 먹기조차 힘든 사회에서 “유물 보호”란 사치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실크로드 약탈은 유물 보호라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는 정당화 할 수도 있다.(물론 우리나라에서 프랑스의 외규장각 문헌 약탈 문제는 근본부터 다르다는 것을 말해야겠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문헌들을 ‘각’이라는 곳에 보관 중이었지 땅 속에 파묻혀 있던 것이 아니다.)저자 역시 과거 제국주의가 자행했던 유적 약탈에 대해 그 당사국의 한 시민으로서 저자는 모국의 범죄행각을 반성하며, 세계시민들에게 널리 환기시키는 역할을 이 책을 통해서 하고 있다.그리고 절충적인 입장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것은 유럽에서 홀대받는 실크로드의 유적을 다시 중국에 반환하자는 입장이다. 중국은 자국의 유적이므로 유럽에서 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해서 보호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이다. 나도 이 생각에는 충분히 동의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유럽의 국가들이 지금까지 보존?보관했다는 이유로 중국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면서 유물을 돌려줘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삼국사기에 있어서의 역사서술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23년에 김부식에 의해 완성되었다. 만출 된 사서지만 시대에서 멀리 떨어지게 됨으로 해서 상세를 결하고 정확하지 못한 점이 많다. 특히 지나친 유가윤리와 중국 중심의 사상에 사로잡혀서 건조하고 왜곡된 역사상을 심었다는 비평을 들어왔다.1. 찬술의 경위『삼국사기』도 다른 여러 사서와 마찬가지로 군왕의 명령에 의해 찬술된 사서로 김부식은 감수국사의 지위에서 편찬사업의 총재역할을 담당했고 그외 11명이 열기되어 있다. 『삼국사기』의 편찬도 중국의 영향으로 일종의 사관제도 아래서 수행되었다. 개인의 이 아니라 여러 사관에 의한 로 여러 사관에 의한 분찬이기 때문에 편찬의 일은 어느 정도 기계적인 일이 되며 소요 시일도 짧아 2?3년으로 성서가 되어 나온다.이런 영향으로 고려에서도 이미 국초 10세기 중국식인 사관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는 김부식이 감수국사로 임명되고 일군의 사관이 배치된 가운데 찬진이 명해진 것은 틀림없다. 김부식이 감수국사를 겸임한 지 10년 후에 『삼국사기』가 완성되었지마는 이 일 자체가 10년 걸렸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김부식이 시중에서 퇴임한 인종 20년 이후에야 『삼국사기』편찬에 전념한 것으로 추측하면 대략 3년이 걸린 것이 된다. 『삼국사기』가 완성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70세의 고령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전서를 집필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적어도 그가 일인칭을 사용하고 있는 부분은 분명히 그 자신의 집필에 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즉 본기?열전의 여러 곳에 삽입된 논찬과 그리고 지의 서론 해당부분이 그것이다.사실 자체의 서술은 70세의 김의 집필에 계한다기 보다는 그를 도왔던여러 참고들의 집필에 계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실자체의 서술도 대부분 이미 기존하는 문헌들을 수집?편성?초록?배열하는 기계적인 일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편사자의 견해가 반영될 수 있는 방식으로서는 오직 기입될 사실들의 선택?삭제 그리고 편목과 인물의 칭호등에 대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사료를 불록했다든지 또는 황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삭제해버렸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왕의 칭호를 원형대로 사용한 것, 삼국의 시조설화를 그대로 재현 시킨 것을 보아 김부식은 산삭에 있어서도 상당한 조심성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의 상대 부분이 불합리하고 불가신한 기사를 많이 갖고 있음은 사실이지마는 이것은 결코 김부식 등이 함부로 사실을 변개?날조한 때문이라고 볼 것이 아니라, 그에 선행되는 사료와 사서에서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던 것을 김부식 등이 오히려 버리지 않고 그대로 채록한 데서 연유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삼국사기』에 김부식 등이 이용할 수 있었던 삼국측 자료는 불과 10지로써 헤아릴 수 있을 정도였다. 이미 빈약했던 자료를 놓고 많은 산삭을 가할 여지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삼국사기』에는 중국측 사서로부터의 많은 채록?보충이 있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중국과 관련된 사건의 기사는 거의 전적으로 중국측의 여러 정사와 『자치통감』『책부원귀』『통전』등에서의 인용으로 채워져 있고 심지어는 삼국 내부의 사정인 지 부분의 여러 기사까지도 이에 힘입고 있다.『삼국사기』가 허다한 결점과 약점을 가진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지마는, 여기에는 본래의 사료가 적었다는 점,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중국측 자료로부터의 보철이 많아졌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니 김부식 등이 사료를 더 넓게 그리고 철저하게 수집?이용하지 못한 잘못은 저질렀다 할 수 있어도, 마치 김부식이 함부로 사실을 날조하고 임의로 신축과 산첨을 마구 가해서 역사상을 전연 왜곡해버렸다 함은 위에서 본 바로서 지나친 혹평이라고 단언할 수 있고, 또 조선시대 사가들이 너무 황탄불경지사가 많다고 비난하는것도 실당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4. 삼국 각국에 대한 자세삼국중에서 신라가 특히 치중되어 왔음은 일찍이 지적되어 왔다. 김부식이 경주인이었다는 데서 그러할 뿐 아니라 신라가 다른 두 나라를 통합하고 오래 존속했으며 신라의 문적이 가장 많이 남, 중국 것을 모방하면 그것이 곧 사대적인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3.중세국가의 기반정리가 끝난 고려는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기까지 몇 가지 문화적 경험을 했다. 첫째로 거란의 침입과 이에 대한 항쟁, 둘째는 중앙집권적 지배체제의 정비과정에서 나타나는 귀족세력과 기층사회와의 괴리성 증대, 셋째는 기층사회가 가진 전통문화와 관료층 중심의 유교정치이데올로기의 충돌 등이 그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층문화의 바탕이 되었던 유교는 불교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아무리 시대의 필요에 의해 유교가 장려되었다고 해도 유교는 교리나 철학면에서 불교에 대항할 수 있는이데올로기로 강화될 수 없었다. 최승로가 불교를 비판한것도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여 정치적 현실은 유교정치이념으로 처리하자는데 불과하였다.당시 유교의 기반이라는 것은 교정분리에서 출발하여 국학 설치와 과거제의 시행, 전시과를 바탕으로 한 중앙집권체제 정비, 불교의 폐단을 보완하려는 점 등에서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은 것이었다. 따라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 治者階級의 정치사상에 불과하였으므로 성립기반 자체가 치자계급에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의 운영원리를 발견하려는 계속적인 노력이 고려유교의 개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하였다.4.문종∼예종간에는 인주 이씨나 해주 최씨가 외척으로 등장하면서 유교정치를 표방하며 중앙귀족세력의 독점과 그 안전을 위한 제도의 강화를 도모하였다. 이때의 유교이념은 최승로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당시의 사회경제 전반이 귀족세력에 천롱(擅弄)되어 커다란 모순을 나타내고 있었고, 이무렵 윤관의 9성축조가 귀족세력의 반발로 실패하고 말았다.이와 더불어 개국 초의 구신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자주성을 상실해 가는 나쁜 의미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인종이 즉위하자 이자겸이 외척으로 득세하였고, 정지상이 이를 완전히 몰아낸 이후에는 정지상과 김부식의 대립이 되었다.윤관의 9성역부터 묘청의 난에 이르기까지 지배층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옹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명분을으로 분명히 자기 의견임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편찬은 전거를 밝혀서 인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자기의 의견을 첨가하는 형식을 취한다. 다만 유감인 것은 인용문중 전혀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도 상당히 있다는 것이다.셋째, 『삼국유사』는 위 같은 저술 방식 때문에 자연히 많은 사료를(금석문, 고문서 향전등..) 수집해야 했다. 일연은 여러 사료를 널리 수집하여 그들 사료사이에 개재되는 차이점을 가리고 나아가서 자기 고증을 첨가하여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3. 역사적 위치위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삼국유사』의 특색은 일연이 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저술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일연은 주제를 스스로 선택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전거에 의해 뒷받침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이뤄진 『삼국유사』를 통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이 점은 『삼국유사』가 다루는 주제의 성격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삼국유사』의 주된 관심은 초인간적이라 말할 수 있는 사실들에 놓여 있었다. 이런 것을 神異를 기록한다 한다. 신이는 비합리적인 사실을 말하고 『삼국유사』는 비합리주의를 정면으로 표방하고 나선 역사서라고 하겠다. 이것은 고려 후기 유교의 도덕적 합리주의 사관에 대한 비판의 뜻으로 저술했던 것이다. 이것은 곧 불교적 입장으로서 유교의 현세주의와 합리주의에 비판적이라는 것이다.일반적 역사적 신이에 대한 기록은 한국 고대사를 자주적인 입장에서 새로이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었다고 생각된다. 한국의 역사는 중국이 아닌 天과 직결되는 것으로 고조선→위만조선→마한으로 이어지는 체계를 세워 그것이 오랜 역사적 전통을 지니고 있고 또 신이한 것임을 자랑스레 기술했다. 원의 간섭이 있던 당시로 볼 때 이것은 민족적 자주의식의 표현이었다. 불교적 신이에 대한 서술은 신앙의 옹호를 위한 것으로 모두 현실세계의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신앙의 세계였다.이같이 신이의 설화로 합리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설화들이 이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고려사회에서 신라출신 정치세력과 신라적인 가치관은 소멸해갔다. 따라서 고려전기 대내적인 신라의 영향으로 이원적인 역사계승의식을 가졌던 고려사회가 이때에 와서 비로소 대내외적으로 통틀어 고구려만을 정통왕조로 보는 일원적인 체계로서의 역사계승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무인정권을 경계로 하여 달라지는 역사계승관은 이규보의 『동명왕편』에 잘 반영되어 있다.3. 원의 간섭과 역사계승의식고려후기 원의 간섭과 압력은 민족적 위기감을 고조시켜 단일민족이라는 민족의식 형성의 계기가 되었다. 이는 한국사에 대한 인식과 역사계승의식을 민족의 차원에서 생각하게 하는 변화를 일으키게 하였다. 민족의 상징으로서의 단군에 대한 인식은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의식을 확립하게 하였다. 또한 단군에 대한 인식은 단군에서 삼국에 이르는 한국 고대의 역사적 추이를 주목하게 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사에 대한 시야의 확대를 가져왔다. 이는 『삼국유사』『제왕운기』등에서 한국 고대사에 대한 시야가 확대된 점이나 『삼국사기』에서 완전히 무시된 발해에 대해 다같이 서술하고 있는 점 등을 예로 들 수 있다.그러나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모두 한국사를 체계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못한 시대적인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 『삼국유사』는 고조선에서 진한에 이르기까지의 사회적 변동에 대해서 그 역사적 관련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단편적인 관계기사만을 싣고 있다. 반면에 『제왕운기』는 우리나라의 독자성을 강조하고 단군조선-기자조선-삼한으로 이어지는 역사계승을 주장하였으며, 민족공동의 시조로 단군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고구려의 계승왕조로 발해를 의식하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삼국유사』보다 『제왕운기』의 역사의식이 보다 진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고려후기 이민족인 몽고족의 압박을 받게 되면서 고려사회에서는 신라나 고구려라는 특정한 왕조의 계승자가 아닌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하여 한국 역사가 계승되어 내려왔다는 새로운 역사적 자추된다.
중국영화 진송을 보고.....이번에 진송이라는 영화를 봄으로써 내가본 손에 꼽을....중국영화가 한편 늘었다. 진송이 감동적이어서 손에 꼽는다는 소리가 아니라 내가 본 중국영화가 정말 손에 꼽을 만큼 없다는 소리다....^^;;감상문을 써야 한다는 생각 없이 봤다면 (하긴 감상문이 아니었다면 먼지 쌓인 비디오더미에 찾기도 어렵게 꽂혀있는 이 테입을 굳이 보려하지도 않았겠지만.....대여기간도 6박 7일인...) 고건립과 공주이 사랑을 중심으로 비디오를 보고 넘겼겠지만 중국 고대적인 것을 찾아 보고서를 내라는 교수님의 요구에 자막에서 눈 한번 떼지 못하고 초긴장상태에서 영화를 보았다.첫 장면이 만리장성이라..... 진나라적이다. 딱봐도 시황제가 떠오르니까......근데 과연 중국 고대적이라는 것은 뭘까??? 나름대로 고민도 해보고 동양사 개론책도 좀 뒤적여봤지만.....그냥 영화에서 찾은 것 그대로를 쓰는 것이 낳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할 바탕 지식이 없다.ㅠㅠ)첫 번째로 황하에 제를 지내는 것.... 황하에서 발생한 중국 문명을 최초로 통일한(통일할..)진나라가 황하에 제를 지내는 것을 꼽아보았는데 어째든 간에 하늘이나 강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풍년을 기원하는 고대적 방법(중국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이 아니던가? 다분히 고대적 측면을 볼 수 있는 것 같다.둘째는 영정과 건립이 사람을 생매장하고 잡혀있을 때 나눈 말로 "우리가 죽으면 시체는 진나라로 보내질 것이고 진나라로 보내지면 산보다 높은 능에 묻힐 것이다"라며 죽음의 두려움을 달래는 장면인데 산보다 높은 능에 묻히는 왕자에서 왕권의 강화의 측면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것은 약과.. 이후에 더욱 무서운 진나라의 황제권이란 상상을 초월한다.항상 정복사업과 중앙집권화에 치중한 진시황제 때만 특히 더했는지 몰라도 황제의 권한은 무서울 정도다.(한국의 왕들은 그렇게 무섭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말이다.)예를 들자면 한명의 자객이 황제를 죽이려했다는 이유로 3리안의 모든 사람을 죽이고, 돌에 새겨진 진시황 사후에 천하가 다시 분열된다는 비방문에 포로로 잡혀 온 3만의 인구를 처형하려 하는 것과 신하들 또한 황제의 권한의 그다지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 듯, 50만군대냐 100만 군대냐 신하들끼리 싸우면 뭐하나?? 황제 말 한마디면 바로 그것이 법인 것을...세 번째로 건립에게 진나라왕을 죽이러 가자고 한 사람에게 건립이 한 말 " 통일이 되면 좋지요. 악기의 규격이 통일되면 천하의 모든 사람이 좋은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니 통일이 되면 좋다."라는 말에서 춘추 전국시대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른 모든 측면에서도 (도량형, 문자, 화폐 등등)에서도 이런 통일 욕구들이 충만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이것은 시황제가 마지막으로 연나라마저 정복하고 제일 먼저 문자, 화폐, 법률, 도량형 등을 통일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네 번째로 연사신의 알현이 있을 때 옷을 몽땅 벗겨버리고 새로운 옷을 입히는 것으로 암살에 대비하는 모습과 진시황 스스로가 수 십번의 암살 위험에 빠진 것 진송을 만들어 민심을 잡고자 하는 황제의 노력이나 문자, 화폐, 법률, 도량형의 통일을 서두르는 모습 등을 통해 이 시대의 혼란한 사회상을 알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전쟁도 아닌 쓸데없는 트집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서 어떻게 민심을 잡으려고 했는지 너무 모순적인 행동같아서 이해가 되진 않지만....ㅡㅡ;;)
남·북한 세계사 교과서 고대와 중세의 비교여기에서는 남·북한 교과서의 고대부분과 중세부분에 대한 비교를 한다. 우선 남·북한 교과서의 차례를 비교하고, 이 부분의 전체적인 비교를 서술한 후에 고대에서 2개(주나라, 그리스 민주정치의 발전 vs 고대 희랍나라들) 중세에서 2개 (위진남·북조시기, 수·당나라, 유럽의 십자군 전쟁) 총 4개의 주제를 가지고 좀더 깊게 비교해 보도록 하겠다.1장 원시 공동체사회1. 인류의 발생2. 원시 공동체 사회-원시 무리 생산(석기)-씨족사회-계급 발생과 국가 형성(금속기)2장 고대나라들1. 고대 아세아 아프리카 나라들-고대 애급-서남아세아의 량강류역 나라들-고대 인도-고대 중국2. 고대 구라파 나라들-고대 희랍-고대 로마-고대 문화3장 중세 나라들1.중세 아세아 나라들-중세 중국-중세 몽골-일본-영세 아라비아2. 구라파 나라들-중세 프랑스-중세 영국3. 십자군 원정, 지리적 발견과 식민지 약탈의 시작-십자군 원정-지리적 발견과 식민지 약탈의 시작남한Ⅰ. 시간, 공간, 그리고 인간Ⅱ.문명의 새벽과 고대 문명1. 인류 문화의 기원-인류의 기원-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2. 문명의 발생-문명발생의 조건-메소포타미아 문명-이집트 문명-인도 문명-중국 문명3. 고대 아시아 세계-중국의 고대 사회-진 한 시대의 중국-고대 중국 문화의 발전-고대 동아시아 지역-인도와 동남 아시아-고대 서아시아 세계4. 고대 지중해 세계-그리스-헬레니즘 세계-로마5.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세계-아메리카 대륙의 고대 문명-아프리카의 고대 문명Ⅲ.아시아 세계의 확대와 동서 교류1.동아시아 세계 형성과 확대2. 인도와 동남아시아 세계의 전개3.동서 문화의 교류Ⅳ.유럽의 봉건 사회1. 유럽 세계의 형성2. 서유럽 봉건 사회의 전개3. 비잔틴세계4. 중세 유럽 사회의 변화Ⅴ. 아시아 사회의 성구1. 명·청대의 중국사회2. 조선과 일본의 발전3. 무굴 제국과 동남 아시아의 발전4. 서아시아 전통 사회의 발전차례를 중심으로 해서 남·북 교과서의 고대·중세부분을 개괄적으로 서술하고 중간에 김정일의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에 대한 평가도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헬레니즘 문화에 대한 설명이 없고, 단지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으로부터 300년간을 헬레니즘 시기라고 정의하고 후에 구라파 역사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고만 표현한다. 그리스의 문화부분은 는 여러 방면을 같은 분량으로 서술한다.로마에 대한 북한의 서술은 공화정 발달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하고 포에니 전쟁 과정도 상세하게 서술하며, 포에니 전쟁 승리 후 로마의 분열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김정일의 평가도 수록하였다. 또한 피지배층과 지배층의 상황을 대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스파르타쿠스에 대해서는 남한의 교과서에서는 참고자료정도로 나와 노예의 모습을 보여준 데 반해서 북한에서는 소단원으로 이루어져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진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로마 노예제 공화국을 뿌리 채 흔들어 놓은 사건으로 평가되어진다.그리고 남한에는 없는 로마 제정 수립에 대해 북한에서는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북한은 기독교에 대한 서술이 착취계급에 폭동을 일으키지 말고 순종해야 한다고 기독교는 말하고 있다고 하며 김일성의 의견을 삽입하며 비판하고 있다.북한과 남한의 중세유럽 서술을 비교해 보면 일단 남·북한 모두 서유럽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다. 그리하여 북한의 경우는 대표적으로 대륙의 프랑스와 섬의 영국(앵글, 색슨, 유트) 두나라의 형성과 전개과정을 나라별 서술하고 있다. 반면 남한의 경우는 중세시대 자체의 형성과 전개과정을 2장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 그 다음 북한은 제3절에서 십자군 원정 과 지리적 발견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은 남한의 Ⅳ단원 4장의 중세 유럽의 변질과 연결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나라별 서술이기에 프랑스 단원에서는 절대 왕정 이 영국단원에서는 해외침략 등 그 변화 과정이 이미 설명된다. 또한 남·북한 모두 서유럽 중심 서술이기는 하지만 남한에서는 비잔틴 제국이나 동유럽의 절대주의라는 장과 절에서 동유럽 서술부분이 나온다. 그리고 또한 북한 중세유럽의 시작으로 보았으며 봉건 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세 번째로 어느 단원에서나 빠지지 않는 남·북한의 차이점인 농민과 노비에 관한 서술인데 남한에서는 주나라의 농민과 노비에 대한 이야기가 단지 주의 왕과 제후, 가신단의 영지에서 생산이 종사하고 있었고, 농민은 토지의 수호신을 중심으로 한 촌락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였다. 정도로 짧게 기술한 반면 북한은 주나라 통지배들의 농민과 노예에 대한 착취와 억압청책, 이에 대한 노예들의 반란까지를 한페이지에 걸쳐 통치배들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또한 전시기에 비해 노예제도가 더욱 발전하였다 고 설명하는데 이를 통해 이전시기인 하, 상 시대에도 노예제를 중심으로 그 정치를 평가하고 서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마지막으로 유교에 대한 서술을 들수 있겠다. 유교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북한만이 서술되고 있는 부분인데 북한은 춘추시대 유교를 "멸망해가는 노예제도를 바로잡고 인민 대중의 반항의식을 무디게 할 목적으로 유교를 조작", "유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힘을 믿지 못하게 하고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무맥한 존재로 만든다." "허황한 제사놀음", "사회발전을 가로막았다.", "인민들의 자주의식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등으로 매우 부정적이고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이에 비해 남한의 경우는 춘추전국시대까지 유교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또한 한의 발전 단원에서도 "유학을 관학으로 하였다"고 짧게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그리스 민주정치의 발전 vs 고대희랍나라들남한의 (2) 그리스 민주정치의 발전과 북한의 2. 고대 구라파나라들에서의 고대희랍부분을 비교하고자 할 때 크게 폴리스의 성립 및 아테네와 스파르타, 페르시아 전쟁 그리고 페르시아전후의 그리스 세계의 모습으로 나눌 수 있다.첫 번째로 폴리스의 성립 및 아테네와 스파르타부분에서는 크게 나눈 이 틀 안에 해당되는 내용은 크게 다른 것은 없지만 남한은 폴리스의 성립과 아테네와 스파르타라랍-페르샤전쟁이라는 소제목을 두어 48줄에 걸쳐 상세한 전투내용과 병력 그리고 체결하게된 조약에 관한 것까지 페르시아 전쟁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세 번째로 페르시아 전쟁 후 그리스 세계의 모습 부분에서는 그리스의 성쇠라는 소제목아래 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내용에 이어 전후의 그리스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는 남한에서는 페르시아 전쟁이후 델로스의 맹주가 된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주축으로 한 반 아테네 동맹사이에서 벌어진 펠로폰네소스전쟁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는 그 전쟁의 영향으로 그리스 세계가 혼란을 겪게 되었으며 쇠퇴의 길로 빠지게 되었다는 그리스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와는 달리 특정한 문제에 의한 변화를 통해 페르시아전후의 그리스를 그려낸 북한은 노예들의 비참한 처지라는 소제목을 두고 전쟁이후 더욱 발전하게된 노예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예들의 비참한 처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착취계급인 노예주들의 노예에 대한 비인간적인 처우와 횡포를 비교적 자세히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으며 세계사 교과서만이 아닌 남한의 모든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는 과격한 표현은 사용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헐값에 노예를 매매하는 행위를 나타내기 위해 개값보다 눅게 사들였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였고 노예주들이 혹독하게 일을 시켰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마지막 피땀을 다 짜내기 위하여 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남한의 위진남북조시대, 수·당나라 vs 북한의 위진남북조 시대, 수·당나라중세동양사 부분에서는 남·북의 위진남북조시대와 수나라, 당나라 부분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우선 남한은 전체적으로 폭넓게 다루는 반면 북한의 경우는 서술대상이 한정되어 있고, 문화사부분이 남한에 비해 매우 간략하게 다루기 때문에 정치부분은 비교적 자세하게 서술한 편이다. 그러나 위진남북조의 경우 남한은 자세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대략적으로 설명이 된데 반해 북한은 아주 간단히 나와 있다. 양에 있어서도 남한은 약 1페이지에 걸쳐 설명하며 그 뒤에 문화 부분까지 서술되어 있으나 북한은 총 다섯줄이강남을 잇는 대운하를 완성하였다. 라고 서술되어 있고 지도가 첨부되어 있어 그 규모에서 감탄을 보여주고 있고 북한은 그들은 수많은 인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황하와 장강을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해놓고 인민들로부터 수탈한 조세를 수도 장안으로 실어들였다. 라고 서술하고 있어 풍기는 뉘앙스가 많이 다른데 운하가 건설되는 데는 수많은 인력이 강제적으로 동원됐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당시의 입장에서 보면 착취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남한이 그러한 내용을 다루지 않는 데는 그 운하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보다는 그 결과에 의의를 두기 때문일 것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많은 백성과 노예의 착취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에 그것은 우리에게 또한 우리의 후손에게 경이로움을 안겨준다. 크나큰 유산인 것이다. 남한은 이러한 차원에서 운하를 바라본 것이고 북한은 만들기까지의 과정에 초점을 두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이런 경우 어느 한쪽의 입장만이 맞다 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다음으로 볼 것이 북한 교과서의 경우 남한에서는 다루지 않는 양제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는데 주로 수탈과 사치에 관한 이야기 이다.수·당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고구려에 관한 서술일 것이다. 중국사에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연관된 역사는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느낌이 많이 다른데 우선 남한의 경우 간략하다 못해 축소된 느낌이 들기까지 한데 반해 북한은 굉장히 과장되어 서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단면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고구려라는 나라명의 출현빈도이다. 남한은 수·당 부분에서만 살펴볼 경우 총 2 번으로 수에서 1번 당에서 1번으로 각각 한 줄씩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총 9번으로 수에서 7번, 당에서 2번 나왔다. 단순히 수적으로 이해하면 북한이 남한에 비해 고구려의 비중이 4배 이상이나 됨을 알 수 있다. 특히 수에서 많이 강조가 되었는데 아무래도 북한이 고구려를 북한의 계통이기 때문에 고구려를 정통으로 보는 것과 연관지어있다.
1. 고장 생활의 변화다음 기준들로 고장 생활 변화모습을 보며 고장이 더욱 편리하게 변하였고 오늘날 우리 생활은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왔음을 이해하고 고장 전통을 이어 발전을 위해 노력하자1) 생활 도구의 변화생활도구의 쓰임을 조사 → 필요성을 이해도구의 변화를 조사 → 도구 발달이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옛날의 생활도구를 찾아봄 → 조상의 슬기에 대해 토론▶ 한 도구의 옛날모습과 이용 모습을 조사해 미래 모습도 상상한다.2) 교통 통신의 변화과거 현재 교통수단 자료 수집분석 →교통방법 변화 모습과거 현재의 교통수단 비교→통신방법 변화과정 이야기교통 통신 발달에 따른 고장생활의 변화 모습 조사▶과거와 현재의 교통수단은 어떤 에너지를 이용해 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지 예측해 본다.▶전화를 예로 들어 통신수단의 발달이 우리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지 조사한다.3) 놀이와 행사의 변화전통놀이를 해보고 느껴지는 조상의 슬기에 대해 이야기한다.관혼상제 관련자료 조사 → 시대에 따른 가정의례 변화 파악고장 행사 관련 역사적 인물, 사건 조사 → 문화전통 계승 필요성 이야기▶과거 놀이와 현재 놀이를 비교하여 차이점을 찾고 달라진 이유 서술2. 옛도읍지와 문화재옛도읍지를 통해 왕조 변화과정을 알고 유물유적을 통해 조상생활을 생각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문화유산을 아끼고 계승 발전하려는 태도를 가진다.1) 옛 도읍지를 통해 본 나라들여러 시대 우리나라 모습과 도읍지를 파악연표에서 나라이름, 역사적 인물 사건 조사→옛 왕조의 변천 과정 파악시대별 도읍지 인지→ 지리적 문화적 특징 파악옛 유물 유적 자료를 조사→당시 생활모습을 파악▶도읍지들이 그 곳에 자리잡게 된 까닭?2) 박물관과 문화재박물관 견학, 문헌자료 조사→박물관의 기능을 이해여러 박물관에 대한 자료 조사→박물관의 종류와 특징을 파악문화재에 관한 자료 조사→문화재 종류에 따라 분류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우리 문화재에는 어떤 것이 있고 지정된 이유에 대해 토의우리 고장 문화 유산을 종류, 시대, 특징, 중요성에 대해 토의조선 후기 암행어사 파련 이유 조사→활동 자료 읽기한글 소설, 판소리, 풍속화 분석→ 조선 후기 농민의 생활모습과 농민의식 파악천주교 수용 전파과정 파악→천주교 박해 이유 알아보기▶조선후기 실학정신과 서민 문화를 당시 예술 문화 작품속에서 찾기2) 자주와 독립을 위해 싸운 조상들19세기 후반 추진된 개혁을 주요 인물을 통해 확인→특징과 의의에 대해 토의19세기 후반 외세 침략 대응 방안을 관련 인물 중심으로 알아보고 문제점 분석일제 침략에 맞섰던 주요 인물의 활동 중심으로 항일 투쟁 과정 알아보기일제 식민 지배하에서 계속 된 민족의 독립 투쟁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조사6.25전쟁 관련 사진 자료와 이야기→피해와 민족통일의 당위성 토의대한민국 성립 이후 대통령들의 주요업적 비교근대 이후 주요 인물 분야별로 찾아 연표로 표현, 그 인물들이 활약한 시대 특징 알기▶서로 대립적 위치에 있던 근대 이후 인물 조사→주장과 행동이 서로 다른 점 조사▶우리나라 근대화와 자주 독립을 위해 활동한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의 생애와 활동 조사(1) 지역과 사회 탐구지역 조사 방법 알고 조사 결과 정리 표현하는 능력 기름→지역 자연, 인문환경, 역사, 지역사회 기구와 기능, 지역사회 문제 파악지역사회현상 탐구를 바탕으로 지역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 제안하고 능동적 태도기름1) 지역의 지리적 환경지역을 이해하기 위해 지역 조사방법 알고 지도 활용여러 자료 이용하여 지역의 자연 및 인문환경의 특성 이해지역 주민이 자연환경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는가 이해2) 지역 사회의 변화와 발전지역 사회 변화 모습 조사하고 배경 설명지역 역사자료 조사하고 보존하는 태도 기름3)지역 사회의 구조와 기능지역 사회의 주요 기관과 기능 조사지역 사회의 여러 기관과 주민 생활과의 관계 이해4) 지역 사회의 문제와 해결지역사회 당면 문제 조사, 원인 분석지역 사회 문제 해결 노력 조사, 적극 참여하려는 자세 가짐▶자신이 살고 이는 지역 사회를 소개할 수 있는 안내문 작성(8) 인간서양 교통로를 지도에서 확인하고 동서 문화 교류 내용과 형태 조사▶전근대 중국의 지배틔 피지배층 생활을 여러 측면에서 비교▶유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의 내세관,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 비교(1) 유럽세계의 형성고대 지중해 문명의 특징과 서양 문화에 미친영향 이해중세 유럽 사회의 발전과 해체 과정 파악→서양 문화의 바탕과 유럽 주요 국가 형성 배경을 역사적으로 인식하려는 태도 기른다.1) 고대 지중해 세계아테네 민주 정치 발전과정과 배경 이해→현대 민주정치과 비교헬레니즘의 의미와 특색 파악로마 공화정과 제정 발전과정 이해→차이점 설명2) 유럽 세계의 성립과 발전게르만족 이동에 따른 왕국 건설과 유럽세계 성립 과정 이해봉건 사회 성립 배경과 주종 관계의 원리 이해, 장원에서 영주와 농노의 생활 상상하기중세 유럽 사회에서 왕권과 교황권과의 관계 변천과 배경 파악중세 유럽 문화 특성과 사람의 사상체계에 대해 토론비잔티 문화 특성과 비잔틴 제국이 유럽 역사에 미친 영향 이해3) 중세 유럽의 변화십자군 전쟁 배경, 결과를 중세 유럽 사회구조변화, 교황권 성쇠와 관련해 탐색장원 붕괴 원인과 자치 도시의 성장 배경을 분석중앙집권국가 등장 배경 열거, 각국 성장 과정 비교▶곡물가격과 임금 관계 중심으로 흑사병이후 농민생활 여건과 사회 구조 변화 추론(2) 서양 근대 사회의 발전과 변화유럽 근대사회 성립 계기 파악, 시민 사회의 발전 과정 이해근대 국민국가 형성과정과 서유럽 세력 팽창하는 세계사적 변화 인식1) 서양 근대 사회의 시작르네상으의 의미와 전개 과정 조사종교 개혁의 진행 과정, 종교 전쟁의 전개 양상과 결과 파악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이 근대 의식 형성에 미친 영향 평가→근대 의식과 문화 특성 추출신항로 개척 상황을 지도에 표시하고 유럽 세계 변화 설명절대 왕정의 특징 파악, 계몽사상의 성격과 시민계급에 미친 영향 추론2) 시민 혁명과 시민 사회의 성립영국 혁명, 미국 혁명, 프랑스 혁명의 원인, 진행과정, 혁명 후 변화를 이해시민혁명과 시민사회 개념과 의미 탐색생산안 모색미래를 준비하는 민주시민 자질과 역할에 대해 토론▶1980년대 중반 이후 냉전 체제 붕괴 과정 연표로 작성, 소련 해체와 동유럽 공산국가 몰락에 따른 유럽 변화를 백지도에 표시-국사영역-(1) 우리 나라 역사의 시작우리나라 역사의 여명기를 조망한다.1) 선사시대의 생활우리민족의 생활터전을 살피고, 우리 민족의 특징을 타민족과 비교하여 설명한다.구석기 시대 대표적 유물들을 통해 그 시대 생활 모습을 말할 수 있다.신석기 대표 유적, 유물을 통해 이시대 사람들이 점차 농경생활을 하며 정착했음을 파악청동기 시대 고인돌, 돌널 무덤에서 청동기와 민무늬 토기등이 함께 출토됨을 말한다.청동기 시대는 농경이 더욱 발달했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모습이 크게 변화했음을 이해▶신석기 , 청동기 시대 사회모습을 비교 설명2) 국가의 성립고조선은 최초의 국가이며, 농경과 청동기 문화 발달과정에서 성립되었음을 설명고조선은 중국과 대립하며 성장, 위만 집권 이후 철기문화 더욱 발달, 한과 중계 무역으로 더욱 번성했음을 파악철기 보급에 따라 만주 한반도 여러 지역에서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성립 설명철기 문화 보급과 더불어 새로 출현한 국가의 지리적 위치를 비교해 그 특징을 설명고조선 이후 성립한 나라의 정치 모습과 사회 풍속은 어떠했는지 설명▶고대 농경 사회에서 제천 행사가 유행한 배경과 성격 추론(2) 삼국의 성립과 발전우리 민족의 적극적 활동에 긍지를 느끼고 민족사에 자부심을 가진다.1) 삼국의 형성고구려는 태조왕 때 국가 체제 확립, 중국과 대립중에 세력 강화 소수림왕 때 불교 수용했음 파악백제는 중국과 교류하며 고이왕때 이르러 국가 체제가 갖추어 졌음을 파악백제 근초고왕 때 마한을 정복하고 요서, 산둥으로 진출해 고구려 견제했고 해상활동으로 국력 신장 시켰음을 이해신라는 이웃 소국을 정복하며 세력을 키웠고 내물왕 때 국가 체제 정비했음을 파악가야는 농업 발달 철생산 수출을 바탕으로 발전했음을 파악▶삼국은 2~4세기 왕권 강화하며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했음을 비교 이 강성해 지자 금의 압력을 받기도 함을 이해▶고려 전기 송에 대한 친선 정책과 거란 여진에 대한 북진정책의 배경 여러측면에서 탐구2) 무신 정권의 성립고려 중기 일부 문벌귀족의 권력 독점으로 사회모순이 커져 이자겸의 난이 일어났음을 이해풍수 지리설을 이용해 서경 천도를 주장한 묘청의 난의 역사적 의의를 말할 수 있다.무신 정변은 문무 차별대우로 일어났고. 이후 고려는 무신 정권시대가 전개되었음을 설명무신정권 수립 후 신분 향상 요구, 수탈에 항거하는 운동이 각지에서 일어났음을 파악▶무신정변을 계기로 변화도니 고려사회 성격을 비교, 분석3) 몽고와의 전쟁과 자주성의 회복몽고의 몇차레 침입에 줄기찬 대몽 항쟁을 벌였음을 파악몽고와 강화 후 일본 원정 협력을 강요당해 일부 영토를 상실했고 내정간섭 받게 됨을 이해권문세족은 보수 집권층, 신진 사대부 개혁 주장하는 신흥 세력이었음을 이해공민왕은 반원 자주정책을 추진했고, 안으로 과감한 개혁정책 시도했음을 파악고려 말 홍건적, 왜구 침입으로 시련을 겪었고 격퇴 과정에서 무인세력 대두했음을 파악▶고려 후기 원과 교류가 사회 문화에 미친 영향 비교 분석-국사 영역-(5) 조선의 성립과 발전조선의 여러 사건을 살펴보며 조선 사회 특성과 발달 모습 파악, 왜란·호란 극복과정을 통해 국력이 국가 안위에 중요한 바탕이 되었음을 이해1)조선의 성립조선왕조는 신진사대부와 무인세력(이성계)에 의해 건국되었음을 이해조선은 건국 후 한양으로 천도했고, 이후 한양은 600년 이상 중심지로 자리잡았음을 설명조선은 친명정책으로 정치적 안정을 꾀하고, 실리를 취하는 외교 활동을 폈음을 이해세종 때 4군 6진을 설치해 국토가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국경선 정해졌음을 파악조선 초 민족의식이 성장하고 이로써 창제된 훈민정음은 민족문화 발달의 토대가 됨을 이해▶고려는 문벌귀족과 불교, 조선은 양반관료와 유교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에 차이가 있음을 추론▶일본, 여진은 교린정책으로 무역을 허용했으나 때로 정벌로 침입에 대비했음을 토론2) 사림 세력의 성장15세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