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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_요점정리
    올바른 예술인식을 위해서는 창작과정과 작품을 분리시켜야 한다. 정신분석학의 공헌은 예술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을 이루는 과정과 창조적 특성이 무엇인지 밝혀주는 데에 있다, 어떤 이는 예술가가되고 어떤 이는 예술가가 되지 못하는지, 왜 예술가가 특정한 형식, 상, 혹은 매개를 이용하여 창작하는지, 이러한 물음이 예술에 대한 일차적인 정신분석학적 관점이라 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으로 프로이트의 학설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많은 비난이 따랐으나 이제는 예술에 있어서건 무시할 수 없는 교설인 것이 사실이다. 간혹 지나치게 모든 것을 프로이트일색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프로이트로 인해 단테의 신곡이나 셰익스피어의 햄릿, 다빈치의 회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를 주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고 부족한 환경 속에서(다빈치의 경우) 무엇이 그로 하여금 위대한 작가로 만들었는가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예술작품의 해석에 있어서 정신분석학의 공헌이 크기는 하지만 예술의 창조성에 대한 해명에는 한계가 분명 있다.인간은 유아기부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 많은 갈등과 욕구불만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이 욕망들에 대한 도피의 방법으로 적극덕인 활동, 즉 공격적인 방어 기제 외에 공상이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비사회적인 성격을 띤 공상으로 좌절된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 분석가들의 일치된 견해로는 예술가가 지니고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공상이하는 것이다. 아동은 자아중심적으로 외부의 모든 대상을 자기식대로 설정하고 욕구불만을 해소시킨다. 모든 갈등과 억압으로부터 구제받는다. 그러나 성인이 됨에 따라 아동은 사회의 제약을 받으며, 행동을 요구받는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예술가는 신경증에 빠지기 쉽지만 그것을 해석할 능력 또한 지니고 있다.프로이트는 예술작품의 연구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부친살해를 다룸은 우연이 아니고 창조적 충동의 근원이 중요한 무의식적인 공상에 사로잡혀있음을 확신한 것이다. 이것은 예술가의 ‘승화에의 능력’에 의한 것이지만 어릴때부터 나르시시즘이 큰 몫을 한다는 것이다. 창조적 인간은 오로지 자기를 위하여 그의 자아(Ego)와 작품에 집중하는 자들이다.프로이트는 후기에 mental personality 의 해부를 시도했다. 그것이 이드(Id) 자아 (Ego) 초자아 (Superego) 의 3개로 구성된 구조이다. 이드란 우리의 개성이 막연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그 대부분은 부정적인 성질의 것이고, 자아와 대조되는 것이다. 자아는 이드의 일부분이 외부세계에 접근하여 그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아 점차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초자아란 자기 관찰이나 양심, 그 이상의 기능을 갖는다.그러면, 이드와 초자아는 예술과 어떤 관계를 갖는가? 프로이트는 “예술은 그 열정, 비합리성 또한 신비함을 이드에서 얻는다. 이드는 우리가 흔히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의 원천으로 보아야 한다.” 또 그는 “그것은 형식을 갖춘 종합과 통일을 자아에 의해 부여받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자아의 특수한 창조물인 이념이니 정신적 소원이니 하는 것으로 동화되어 간다.”초현실주의는 20세기 초 세계 제 1차 대전의 폐허위에서 기존의 합리주의적 사고방식과 사회질서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다다이즘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것이다. ‘다다’란 아무 뜻도 없는 조어로서 부정과 무의미 하무를 파괴적이고 광적인 예술 행위 속에서 추구하려했던 정신을 반영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러한 다다는 부정의 운동이기에 긍정적인 작업구상에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초현실주의는 다다의 무질서 속에서 좀 더 정연한 이념적 체제를 갖고 등장한다. 앙드레 브르통은 1922년 다다와 결별하고 새로운 인식의 방법을 지향할 것을 선언 한다. 새로운 방법이란 논리와 이성의 통로를 거부하고 무의식, 꿈, 광기, 환각의 통로를 통한 직관이나 영감으로서 예술적 형상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브르통은 이것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힘입어 하나의 새로운 예술창조의 인식방법으로 체계화 시켜놓았던 것이다.1924년 초현실주의 제 1선언이 발표되었고 정신치료법으로서 자유연상의 방법을 글을 쓰는 데 이용할 것을 제안하면서 “새로운 순수한 표현의 방법”이라 하고 다. 그것은 “마음이 순수한 자연 현상으로서 이것으로 인하여 사람이 입으로 말하든 붓으로 쓰는 또 가른 어떤 방법에 의해서든 간에 사고의 참된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 이것은 이성에 의한 어떠한 감독도 받지 않고 심미적인 또는 윤리적인 관심을 완전히 떠나 행해지는 사고의 구술”로 정의된다.
    예체능| 2011.04.18| 1페이지| 2,500원| 조회(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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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험론과 인상주의_요점정리
    경험론과 인상주의1) 마음이 산출한 관념으로서의 미 - Francis Hutcheson허치슨에 따르면, “미라는 말은 우리 마음에 환기된 관념으로 생각되며, 미의 감각은 이 관념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능력으로 생각된다.” 우리에게 미의 관념을 환기 시키는 대상들의 속성을 허치슨은 “다양중의 통일 (uniformity midst variety)” 이라 부른다. 즉 한 대상에 속한 부분들 사이의 관계이다. 우리에게 미의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일차적 성질과 이차적 성질이 혼연된 복합 관념으로서 내적 감각인 취미(taste) 혹은 취미능력에 의해 지각된다.미적 지각에 대한 허치슨의 설명에는 세 종류의 관념들이 포함된다. (특정한 속성을 가진 미의 관념)① 일차적 성질, 이차적 성질로 구성된 복합관념→다양중의 통일이라는 관계적 속성 소유② 위의 관계적 속성에 의해 마음에서 환기되는 미의 단순관념.③ 다양중의 통일이 미의 관념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가 형성하는 다양중의 통일에 대한 복합 관념.복합적인 것으로 보이는 허치슨의 미의 관념에 대한 정설은 단순하다. 미의 관념에 의해 환기된 ‘쾌’가 진정한 미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어떠한 대상들이 미의 관념에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중의 통일을 소유하고 있음을 우리가 지각할 수 는 있지만, 이러한 이차적 성질의 원인이 되는 사물의 미시적인 구조를 우리는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자칫, 우리는 허치슨이 미적 지각에 대해 인식론적 설명을 제시한 것으로 결론짓기 쉽다. 하지만 허치슨은 다양중의 통일은 물질의 미시적 구조가 이차적 성질들의 관념을 환기시키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기능한다고 주장한다. (195p참조)허치슨이 예술에서의 재현에 관해 언급한 부분을 보면, 그에게서 모방적인 미의 기초는 여전히 다양중의 통일 이라는 동일한 원리이다. “모방의 미는 원본과 모사물간의 일치 또는 일종의 통일에 기초한다.” 원본과 모사물이 전혀 상이한 종류의 사물들이라는 사실은 다양성을 뒷받침하며, 그와 동시에 각각의 외양이 갖는 유사성은 통일성을 뒷받침하는 것이다.2) 취미의 기준 - David Hume흄은 미에 관한 판단들은 사실이나 견해의 문제가 아닌 ‘정감(sentiment)'으로부터 발생한다고 말한다. 흄은 일관성 있게 만들어야할 두 가지 모순적인 듯한 입장들을 설명한다. ① 취미판단들이 시대, 지역마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비평가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문화, 언어가 통용되는 것. ②보편성을 갖는 듯한 취미판단들. (참고198p)견해의 판단들은 사실의 문제들을 지칭하기는 하지만, 정감은 자신을 지칭한다. “미는 사물들 자체에 있는 성질이 아닌, 다만 사물의 성질을 관조하는 마음에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각 마음은 상이한 미를 갖는다.” 이처럼 흄은 미를 이차적 성질과 동일시하려는 시도를 거듭한다.미적인 장점들을 탐지 할 수 있는 것은 구성의 규칙이나 적용이 아닌 취미의 세련됨을 통해서 이다. 감각기관들이 세련될 때, 동시에 모든 구성물에 있는 모든 요소를 지각할 만큼 정확할 때, ‘취미의 섬세함’(delicacy of taste)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취미의 섬세함에 보태어 고양시키기 위한 훈련과 동시에 편견 추방이 요구된다. 즉, ‘오성의 기민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될 때 취미의 기준은 섬세한 취미를 가진 비평가들에 의해서 제정된다.흄은 취미의 판단들이 산출하는 관념을 정감의 표현으로 확고하게 믿었고 예술적 경험이 갖고 있는 지각 있는 자 만이 예술의 미를 판단하며, 올바른 취미를 갖은 자가 건전한 오성을 갖고 있다고 했다.흄은 미의 문제를 정감의 문제로 보면서 취미판단에서 인간의 본성이 순수하게 유지될 것과 감각기관의 건강을 동시에 요구한다. 그에 따르면, 취미의 기준은 추상적 규범이 아닌 전문가들의 높은 자질에 따라 성립된다. 그것은 공동체의 취미판단을 대신하고 있다. 즉 공통된 오성에 호소하고 있다. 이것은 취미가 선입견이나 개인적인 문제로 후퇴됨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흄은 취미의 합목적성을 견지함으로서 고전주의나 주지주의의 전통 안에 발견된 입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3) 인상주의자들과 환영의 창조앞서 경험주의자들의 설명에서 언급했듯, 우리가 선을 직접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의식이 구성해 내는 것이다. 실제로 선이나 형태는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색을 필요로 하고 그 관계에 의해 성립한다.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인상주의자라 불리는 이들이 자연의 빛을 붓 자국으로 성실하게 켄버스에 옮긴 것이 소위 색조 분리의 법칙이다. 우리가 보는 자연적 사물들의 형과 색은 우연적인 것이고 순간적인 연합의 형태로 스쳐갈 뿐이다. 인상주의 자들은 이러한 자연의 모습을 충실히 재현하고자 했으며 필수불가결한 것인 ‘빛’에 집중했다.전통적인 의미의 형식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요소를 가미함으로서 그림의 회화적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인상주의자들은 색을 분할하는 방법을 택했고 거기서 최고의 광도를 얻는다고 믿었다. 그들의 자유로운 색채의 구성은 그들의 고유한 형식의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인상주의는 극도로 심리주의적이었고, 개인의 독창성과 개성을 예술적 가치로 생각한다. 또한 천재성에 의지할 뿐 다른 법칙에 의지하지 않았다. 이렇듯, 철저하게 대중에게 외면당한 인상주의는 곧 와해되기 시작한다. 그들이 과학적이라고 생각한 견해는 실재로는 비과학적이었으며, 이것은 근대의 과학주의가 득세하면서 힘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 이다.우리가 세잔을 후기 인상파의 대표적 인물로 꼽는 것은 그가 인상주의의 강령들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로운 천재의 법칙에 의존하는 낭만주의적 제작방식 때문이었다. 그는 시각에 의해 자연을 그대로 지각할 수 있다는 생각들을 의심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사물을 관찰하고 시각뿐 아니라 촉각을 동원하여 대상의 입체성을 묘사하려 하였다. 우선 그가 시도한 것은 조각적 인상주의로 표현될 수 있겠다. 인상주의를 조각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려던 그의 노력은 회화적 환영의 구조로부터 대상으로의 그림, 즉 평평한 표면으로서의 그림 자체의 윤곽으로 전환되었다. 세잔에게 입체성을 획득한 것은 재현적인 회화와 다름없는 것인 것이다. 그가 추구한 것은 실로는 불가능하다 볼 수 있다. 오히려 그가 추구한 것은 대상의 진정한 형태일 것이다. 변화무쌍한 빛의 유희 속에서 사물의 고정됨을 찾는 것 말이다.4)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극단적 경험주의의 입장으로 볼 수 있는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을 살펴본다. 그의 철학의 핵심부는 원시적인 방식, 즉 세계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용어로 기술하고 설명하기 이전의 단계로 만나게 되는 세계를 경험 속에서 포착하려는 시도이다. 형태심리학에 토대를 둔 그는 우리의 원시적인 경험은 살아있는 실체를 통해서 사물들에게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지구 환경의 배경사물들과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지각, 근육운동 기술과 습관의 발달된 행위들 사이의 평행점을 성취하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상호작용을 통하여 한 개인이 세계 안에 존재하는 방식과 일차적 지각 세계자체가 구성되고 제도화되는 것이다.개인은 체현된 사회적 존재가 되고 개인이 지각하는 세계역시 사회적 세계가 된다. 그러므로 각각의 신체적 운동, 개인이 보고 반응하는 각각의 대상, 개인이 수행하는 각각의 행위는 어떤 의미에서 미적인 성취인 것이다. 환경에 참여하는 살아있는 신체는 표현적 매체이며, 그러한 신체로서의 개인의 지각, 느낌, 그리고 행위는 각각의 예술작품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메를로퐁티의 예술작품은 일종의 표현적 신체이다. 그의 일관적 논제는 언어와 회화의 가능성이 인간 신체의 원시적인 표현적 가능성에 달려있다는 것이다.퐁티는 세잔을 찬양했다. 세잔에게서 물감을 가지고 사유하는 철학자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인 듯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참고자료를 통해 살펴보도록 한다.이주영, “현상학적 예술론 - 메를로퐁티의 세잔론” , 『예술론 특강』 12강 시각작용과 가시적 세계는 신체의 운동을 매개로 불과분으로 얽혀있으며 회화의 여러 문제들도 서로를 통제하는 이러한 교섭관계로부터 해명될 수 있다. 일상의 시각도 이미 몸짓과 같이 근원적인 표현작용이지만 회화는 이와 같은 시각의 기능을 더욱 증진시킨다. 화가의 눈은 독자적인 관찰력으로 보통사람들이 못보고 지나치는 것에 가시성을 부여하고 더욱이 그가 본 것을 사물자체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스스로를 묘사하는 것처럼 화상에 투사한다. 거기에서 보는 것과 보이는 것, 묘사하는 것과 묘사되는 것을 판별하기 어려울 만큼 신체의 기능과 직관되는 사물이 일체화되는 것이다. 메를로퐁티가 세잔의 작품을 분석한 결과는 현상학적 예술론의 토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예체능| 2011.04.18| 3페이지| 2,500원| 조회(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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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지킬앤 하이드 감상문
    지킬박사와 하이드씨1866년 쓰여 진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는 익히 알고 있는 소설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원전을 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것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믿는 것에 대해 사실은 겉만 알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리라.지킬은 사회에서 인정받는 의학 박사로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과학에 출중하고 근면함과 지혜로움을 갖춘 선한 아이로 자랐다. 하지만 그는 때때로 쾌락의 유혹을 참을 수 없었고 그러한 욕망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고 스스로 숨겼다. 후에 그는 차츰 성공한 사회인으로 자리 잡고 심각한 이중생활에 빠져있게 된다. 자신이 정한 높은 사회적 기준에서 볼 때 그것은 숨기고 싶은 수치심을 안겨주었으며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은 타락한 삶의 결과라기보다는 자신의 완벽성이라 말한다. 그런 그는 자신을 철저하게 인간의 두 성향, 선과 악으로 구분하고 두 인격에 대해 모두 충실하게 대한다. 지킬은 인간의 의식세계에 대해 연구하여 자신이 가진 지성의 두 가지 측면, 도덕적인 면과 이성적인 면 모두에서 진리에 접근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얻은 것이 자신의 삶을 파멸에 이르게 한 약물이다. “인간은 하나가 아니라 온전한 둘이라는 사실을 나는 깨닫게 된 것이다. 내 지식의 한계가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에 난 둘이라고 밖에는 말 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내면에는 각양각색의 서로 다른 독립된 자아들이 서로 다투며 공존하고 있다고 믿는다.” - p99 지킬이 발명한 그 약은 인간의 육체를 송두리 체 흔드는 위험한 것으로 목숨까지 위협하는 성질의 것이다. 지킬은 그 약을 먹음으로 에드워드 하이드와의 이중생활이 시작된다. 초기에는 자신은 지킬이고 자신의 숨겨진 이면이 하이드로 (여기서 하이드는 지킬 안의 악의 요소가 전면으로 드러난 것이다.) 어느 정도의 자제력을 유지하지만, 점차 하이드가 내면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하이드의 존재는 살인, 폭행을 서슴지 않는 자로 사회에 드러나고 지킬의 친구인 변호사 어터슨까지 하이드의 존재를 알게된다. 그러면서 지킬은 하이드를 내면 안에 가두고 자제하지만 그 악은 이미 자제력을 잃은 상태로 수시로 등장하게 되고 그가 원하지 않을 때도 등장하게 된다. 마지막 남은 해독제를 위해 의사 친구인 레년 박사의 죽음을 초래하게 되고, 지킬은 자신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지만, 바로 다음날 약과는 상관없이 하이드로 깨어난다. 자신을 되찾기 위해 약을 만들려는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독제를 만들지는 못했고 이미 그는 지킬과 하이드를 오가며 자신을 잃어버린 체 마지막으로 하이드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물론 마지막은 자살로 보인다.
    독후감/창작| 2010.03.14| 2페이지| 2,000원| 조회(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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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방가르드의 개념 요약
    The Ideal of Avant-Garde2장에서 칼리니스쿠는 아방가르드의 개념을 보다 적극적으로 현대미술의 딜레마와 결합시킨다. 그가 파악하기에 아방가르드란 보다 급진화 되고 대담하게 유토피아적으로 변화된 모더니티의 변형물이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구성요소들을 모던정신으로부터 빌려와서는 부풀리고 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모더니티에 비해 더 독단적, 급진적이지만 동시에 후자의 시간개념과 연루된 모든 해결 불가능한 딜레마에 직면하여 그것과 유사한 발전과정을 겪게 된다.칼리니스쿠는 군사적 비유를 통해서 전위적인 역할을 하는 예술행위를 지칭하는 데 쓰이는 이용어가 지금의 방식을 취하기까지 오랜 전사를 개괄한다. 르네상스시기까지 소급되는 문학, 예술영역에서의 이 용어의 사용이 오늘날의 방식에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 급진적인 정치사상의 맥락에서 전위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던 이 용어가 19세기 초반 문학과 예술의 전위적 사명을 이야기하는 데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아방가르드와 정치의 끊을 수 없는 복합적이며 모순적인 관계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즉 아방가르드의 반엘리트주의적인 엘리트주의의 모순뿐 아니라 예술의 정치에의 참여 혹은 종속의 문제들이 생겨나는 것이다.이러한 모순은 1870년대 무렵에 생겨난 사회형태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의 정신을 예술형태로 이전시키려한 예술적 아방가르드라고 할 만한 작가들의 집단(랭보)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의 격렬한 미적 극단주의의 열풍을 겪는 과정에서 점차 최초의 정치적 혁명주의로부터 멀어져가는 가운데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그리하여 1920년대에 이르면 아방가르드는 대체로 과거를 거부하고 새로움을 숭배하는 재 유파를 포괄하는 예술적 개념의 성격을 띄게 된다. 그리고 1950년대에 이르면 ‘아방가르드의 죽음’이 야기된다.칼리니스쿠에 따르면 이러한 아방가르드의 진행에는 인간주의의 위기 혹은 이데올로기의 위기라는 사태가 깔려있다. 이는 일종의 묵시론적인 관념을 유포시키며 가치론적 상대주의를 낳는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에 상응하여 아방가르드의 반목적론적인 충동이 나타난다. 이렇게 본다면 최초의 포스트 모더니즘의 대표자들 역시 반목적론적인 충동을 특색으로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아방가르드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는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서화된 연속적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 완전히 정적인 그러한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어쨌든 이들 역시 아방가르드에 의해 자기 의식적으로 그 극단까지 추구된 모저니티의 모순된 시간개념의 결과이다.7. 1960년대 아방가르드 개념의 위기보들레르가 1860년에 예언자적으로 의식하고 있었던 하나의 문화개념으로서의 아방가르드의 내적 모순은 한 세기가 지나서야 광범위한 지적논쟁의 초점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러한 사건은 예기치 않았던 폭넓은 대중적 아방가르드 성공과 그와 병행하여 용어자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광고구로 변형되는 일과 일치해서 일어났다.아이러니컬하게도 아방가르드는 엄청난, 원하지 않는 성공을 통해 자신이 실패했음을 알았다. 이러한 상황은 몇몇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이 아방가르드의 역사적 역할 뿐 아니라 개념자체의 적합성마저 의문시하게끔 만들었다. 많은 작가들에게 아방가르드라는 용어는 용어상의 모순에 기원을 둔 엄청난 오류의 유형으로 환원될 수 있다. 아방가르드 용어가 명칭에 걸 맞는 존재와 의미를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기본적이다. (1)그것의 대변자들이 자신을 시대에 앞서있는 존재로 인식, 이해될 가능성. (2)전통이 우리가 전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족쇄처럼 우리에게 부과하는 정체의 힘, 과거의 전제, 낡은 형식과 사고방식들을 상징하는 적에 대항하는 격렬한 투쟁이 존재한다는 관념.그러나 어떤 조류가 또 다른 조류들을 앞서있다는 것을 확정 할 타당한 근거나 설득력 있는 기준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관점은 레너드 B. 마이어에 의해 제기되었다. 또한 어원적으로 정의된 아방가르드의 두 번째 조건의 존재 또한 의문시 되고 아방가르드의 호전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것은 무제한적 허용시대에서는 이제 파멸적인 것이 된다. 사실 처음부터 예술적 아방가르드는 위기의 문화로서 전개되었다. “아방가르드의 죽음”은 어느 한 시점에서 국한 될 수 없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자발적으로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살 충동으로 추동된다. 예술의 죽음 미학과 완벽하게 어울린다.8. 아방가르드, 탈인간화,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종말역사적으로 아방가르드의 출현과 발전은 근대의 탈 신성화된 세계에서 인간이 겪어야했던 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25년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새로운” 예술 또는 “모던”예술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비인간화를 꼽았다. 그는 그것이 리얼리즘 즉 인간주의의 종말을 가져왔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니체는 1880년대에 인간의 최후와 초인의 출현을 알렸다. 니체의 사고 틀 내에서 신의 죽음과 인간의 죽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신은 죽었고 인간 역시 역사의 무대를 청산해야 했음을 인정했다. 아방가르드의 연구자와 더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현현으로 표착된 인간주의 일반과 종교 및 종교적 인간주의에 대한 죄파의 비판이다. 사회 정치적 아방가르드 사상에 있어 인간개념의 위기를 보여주는 최초의 징후는 마르크스에게서 나타난다. 인간주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며, 마르크스주의가 “과학”으로 선언되는 한 그것은 논리적으로 반이데올로기적이며 함축적으로는 반인간주의적 입장을 취하게 되어 있다. 이데올로기 일반의 위기 특히 인간주의의 위기가 낳은 결과는 일반화된 가치론적 상대주의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위기에는 “반목적론적”충동이 발생한다.9. 아방가르드와 포스트모더니즘“포스트 모던”이라는 형용사는 역사 예언자인 아놀드 토인비에 의해 1950년대 초에 주조되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사회적 불안, 세계대전들, 그리고 혁명의 시대를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부르기로 했다. 대체로 서구문명의 포스트모던단계는 아나키의 시대로 특징지워 질 수 있다. 사회적 조건에서 볼 때, 근대 서구문명은 토인비에게 중산 계급 혹은 부르주아의 시대로 나타난다. 포스트모던시대는 “대중사회”의 출현에 의해 각인된다. 서구역사의 후일의 장은 해체와 파열의 징후들로 가득 차 있는 “고민의 시대”이다. 토인비의 언급에서 “포스트모던”은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함축을 갖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모더니즘 문학에서 구현된 자기 의식적 정신과 완벽히 대조된다. 그것은 “묵시록적이고, 반합리적이며, 뻔뻔스럽게 낭만적이고 감상적이다. 신나는 논리혐오증과 예언자적 무책임성에 바쳐진 시대, 어느 정도든 보호적 아이러니와 너무 큰 자기의식을 불신하는 시대” 이다. 포스트 모던과 모던을 비교하는 것은 신구논쟁간의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논쟁을 취한 형태가 된다. 이는 이합 핫산이 흥미로운 예를 제공하는데 그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의 완전한 규모의 비교, 비록 특별하게 다루지는 않지만, 모든 점에서 모더니즘과 다른 포스트모더니즘이 결코 덜 의미심장한 문화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예시하는 경향이 있는 비교를 행한다. 핫산의 모더니즘 비교는 대륙적 의미에서 역사적 아방가르드를 포함하고 20세기 전반기 서구문화에서 중요성을 갖는 실질적인 것으로 모든 운동과 거의 모든 인물들을 망라하는 훨씬 더 포괄적인 것이다. 이 광범위한 접근은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를 구별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함축적으로 또 때로는 명시적으로 그 두 용어는 동의어로 받아들여진다. 모더니즘에 관한한 다른 언어와 다른 저자들에게서 그것의 특별한 의미가 무엇이든 그것은 아방가르드를 특징짓는 보편적이고도 신경질적인 부정의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다. 일관된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원한다면 아방가르드와 구별 짓는 일이 필요하며, 이러한 기묘한 관계를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아방가르드를 무엇보다도 자기의식적인 모더니티의 패러디 그 자체로 생각할 수도 있다. 모더니티의 패러디로 보여질 때 아방가르드는 모든 모호성들을 예시하며 종종 거칠고 조야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때때로 혼동을 일으킬 만큼 그것의 모델에 가깝게 갈 수 있다. 핫산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비교하면서 모더니즘은 “그 자신의 권위형식들을 창출”했고, 포스트모더니즘은 “사물을 흐트러뜨리는 것에 깊이 연루된 상태에서 아나키로의 경향이 있다”라고 말한다. 확실히 하나의 엘리트 개념이 아방가르드에 포함되어 있지만, 이 엘리트는 그 자체를 포함하여 모든 엘리트의 파괴에 헌신했다. 무엇보다도 명백히 예술자체에서의 위계원칙에 대한 거부를 포함했다. 이런 정신은 아방가르드와 상통하는 것으로 보여지며, 포스트모던의 문화는 대중적이기 때문에 반엘리트적이라는 주장은 상당히 궤변적인 것처럼 보인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은 결코 모더니스트나 아방가르드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정교했던 이들보다 더 “대중적이고” 공중에 접근될 수 없는 것이다.
    인문/어학| 2010.03.14| 3페이지| 2,000원| 조회(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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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센세이션전 : 사치 컬렉션으로부터의 영국 젊은 작가들 평가A좋아요
    센세이션전 : 사치 컬렉션으로부터의 영국 젊은 작가들(Sensation exhibition : Young British Artists from the Saatchi Collection)을 통해 살펴본 예술작품의 가치와 가격사이의 간극들어가는 글1. 영국의 젊은 작가들 yBa2. Sensation exhibition2-1. yBa, 위대한 열정의 지속2-2. 을 둘러싼 스캔들3. 예술작품의 가치와 가격사이나가는 글들어가는 글1865년 화가 난 관람객들은 마네의 올랭피아 앞에서 욕설을 퍼붓고, 우산을 휘둘렀다. 왜 마네의 올랭피아나 풀밭위의 점심식사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무모한 과감함으로 비쳐졌을까? 마네는 전통에서 얻은 주제와 구성을 취했지만 그에 따른 비난은 대단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르네상스로부터 새로운 관점을 끌어내서 동시대의 관습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했던 마네의 주장은 인정받게 되었고, 그러한 전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터부를 깨부수는 과감한 작품들을 꺼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터부를 깨면 사람이 몰리고 사람이 몰리면 돈이 몰린다런던의 광고회사 사치 앤 사치(Saatchi and Saatchi)의 대표 찰스 사치(Charlse Saatchi) 는 이 명제를 최대한으로 이용해 예술작품을 사고팔아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사람 중 하나이다. 예술가는 터부에서 자유로운 작품,?내지는 사람들의 일반적 취향에서 벗어난 작품을 제작하여 자기 미학의 완성을 꾀하고자 하는지 모르나, 거기에 사치와 같은 이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면, 그것은 단숨에 가장 잘 팔리는 작품이 되어 미술관과 예술재단의 수입원이 된다. 그러한 사치의 혁혁한 성과 중 하나가 바로 1997년 이다. 이 전시는 당시 영국에서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으나, 결과적으로 성공리에 막을 내렸고, 많은 스타 작가를 배출하기에 이른다. 사실, 이렇게 한 컬렉터가 한 국가의 미술세계, 작품 경향에서부터 시장에까지 큰 영향력을 갖는 것에 대해서는 윤리적으로 생각해 보아야유럽과 미국을 넘나들며 많은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충격Sensation’을 던져 주었다.? 런던 Royal Academy of Arts에서 17 .Sept. - 28. Dec. 1997? 베를린 Hamburger Bahnhof Museum에서 30. Sep. 1998 - 30. Jan. 1999? 뉴욕 Brooklyn Museum of Art에서 2. Oct. 1999 - 9. Jan. 2000? 캔버라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에서 1999년 11월로 예정되었으나, 취소됨.)2-1. yBa 위대한 열정의 지속전시의 기획자인 노만 로젠탈(Norman Rosenthal)은 “The Blood Must Continue to Flow”)라는 전시 서문에서 “뜨거운 열정은 계속 되어야 한다” 는 제목처럼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을 부각시키려는 내용과 더불어 영국 젊은 작가들이 보여준 열정의 흐름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본 2-1장에서는 의 도록 서문을 간추린 글을 통해 전시가 갖는 위상과 영국에서의 긍정적인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다.로젠탈에 따르면, 은 10년 전 의 연장선상으로 그 중 9명의 작가가 이 전시에 참여했다) 일부 작가들은 수집가인 사치의 취향과 달라 컬렉션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이런 경로로 에 참가했던 일부는 불가피하게 관심 밖으로 사라지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전시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작가들이 으로 이어지면서 영국현대미술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이들은 유럽과 미국을 넘나들며 대서양과 그 외 지역에서 열린 기획전과 개인전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충격’을 주었다.미술은 그 이전의 미술을 바탕으로 일어난다. 영국의 젊은 미술가들은 과거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데, 그전까지 영국 미술은 조각가 헨리 무어(Henry Moore)이래 그들의 영역에만 충실했을 뿐이었다. 그들은 현대미술 개념의 중심이 되는 구조와 언어혁신의 관점에서 볼 때 바깥 세계에 대해서는 다소 무관심한 편이었 로젠탈의 메세지이다.2-2. 을 둘러싼 스캔들은 런던에서의 성공적인 전시 이후, 베를린을 거쳐 1999년 뉴욕으로 건너간다. 뉴욕에서의 전시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는데, 많은 작품의 충격적인 표현방식 중에서도 특히 영국 화가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의 ‘성모 마리아’가 집중조명을 받았다. 오필리는 검은 피부의 성모 마리아를 코끼리의 배설물로 제작했으며, 배경에는 포르노 잡지에서 오려낸 성기 조각들을 붙여놓았다. 전시회에 앞서 뉴욕시장인 루돌프 줄리아니(Rudy Giuliani)는 “구역질이 난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이어 “전시회를 취소하지 않으면, 미술관에 대한 시청의 재정지원금 700만 달러를 동결하는 한편 시청 소유로 되어 있는 미술관 건물 임대 계약을 종료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물론 종교단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해 화가 본인은 코끼리의 배설물은 자신의 뿌리인 아프리카를 상징할 뿐 카톨릭을 공격할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으며, 이러한 그림에 대한 찬반양론 뒤에는 “뭔가 다른 배경이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또한 마크 퀸(Marc Quinn)의 실제 피를 응고시켜 만든 ‘Self’ 등 눈살을 찌푸리게 사는 작품이 일색인 이 전시를 놓고 머뭇거리던 메트로 폴리탄, 휘트니, 구겐하임 등 뉴욕의 대표적인 미술관들도 차츰 예술의 표현에 대한 시 정부의 탄압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또한, 2000년 선거를 앞두고 ‘성모 마리아’논란은 정치 쟁점으로 번지기도 했다. 상원의원 선거에서 뉴욕시장과 맞붙게 될 것으로 보이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부인, 힐러리 여사는 기자회견에서 “전시 작품에 문제가 있기는 하나 시측의 재정 지원 중단 협박은 온당치 못하다”고 말했고, 줄리아니 시장측은 “그러면 카톨릭을 모욕하는 그런 그림을 전시장에 걸어도 된다는 것인가”라고 맞받아쳤다. 부룩클린 미술관은 “시청의 협박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 1조에 위배 된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결국, 이러한 사건은 오히려 지급했다. 이는 사후에 그들이 얻게 될 이익에 대한 보증금 같은 것이었다. 16만 달러는 사치에게서 직접 왔는데, 이는 그가 이후 광고 수익으로 얻을 것에 비하면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사치의 친구인 유명한 록가수 데이빗 보위(David Biwie)도 7만 5000달러를 쾌척했는데, 이것은 역시 전시 이미지들을 인터넷으로 보급하는 데서 오는 이익을 챙기는 대가였다. 5만 달러를 후원한 크리스티는 결국 11월의 현대미술 경매에서 사적으로 방문한 우량고객에게 전시에 출품한 작가들의 작품을 권하는 데 전시를 활용했음이 드러났다.《뉴욕타임즈》가 계속해서 밝힌 바에 따르면, 전시와 경매회사 간의 내부 거래는 더욱 심각하다. 기사에 따르면 부룩클린의 아놀드 리만(Arnold L. Lehman)관장은 1999년 4월 크리스티의 미국 본부장인 패트리샤 험브레흐(Patricia Hambrecht)를 만나 전시회를 위한 재정지원을 요청했는데, 이때 리만 관장은 전시가 크리스티나 찰스 사치가 늘 원하던 “현대미술에 대한 접근을 전면 재고하는” 가능성에 기여하는 것과 부룩클린 미술관의 컬렉션을 매매하는 일련의 교환에 관해 논의했다. 물론 리만 관장은 재정후원에 관련된 이러한 교환조건을 완강히 거부했지만, 몇 주 후에 크리스티는 부룩클린에서 온 2만 1000달러에 해당하는 작품을 판매했고, 다음달 크리스티의 국제 분과장 크리스토버 다비즈는 찰스 사치에게 크리스티가 을 후원하기로 결정했다고 통보했다.그렇다면, 신성모독 스캔들 후에 크리스 오필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첼시의 개빈 브라운(Gavin Brown)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결과는 솔드 아웃이었다. 그의 어떤 작품은 8만 4000파운드에 팔렸는데, 이전에 비해 4배나 오른 것이었다. 에서의 스캔들 이전과 이후, 이러한 작품 가격의 상승은 어떤 방식으로 설명 될 수 있을까?3. 예술작품의 가치와 시장가격 사이미술시장은 미술 창작에 심각하게 영향을 끼친다.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냈던 편지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면, “너동하고 있다. 그리고 스타일은 전적으로 작가의 ‘사인(signature)’으로 대체되어버렸다. 이는 마르셀 뒤샹의 변기를 미술관이 받아들인 이후 본격적으로 가능해졌는데, 이러한 역할은 오늘날 제도기관의 몫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이제 작품의 질을 보증하고, 검증하고, 승인하는 모든 일은 제도적 틀 안에서만 가능하다. 우리가 예술이라고 하는 분야의 역사는 다만 그것을 정의하고 규정하는 제도적 틀의 역사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또 하나의 가치인 ‘새로움’도 시대의 왜곡을 피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오늘날 예술작품의 상품화를 더욱 가속화하는 것으로 잘못 기능하고 있다. 예술적 형식은 속속 정보에 의해 교체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그것이 무엇이건, 이내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는 상황에서, 예술적 형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무의미하고 전혀 불필요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오늘날 예술작품의 미학적 질을 논하는, 위의 다니엘 부뉴의 다섯 가지 기준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많은 경우 서로를 참조하고 모방하는 작가들은 단지 사인에 의해서만 구분된다. 그 수많은 사인 중에서 어떤 것을 예술로 간주할 것인지는 제도와 기관의 몫이 되었다. 미학적 새로움의 추구는 스캔들과 뒤섞이면서 마케팅전략이 되어버렸다. 가치의 측면은 거의 사라졌고, 평가는 이제 시장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하지만, 미술시장은 공정성에 근거하는 일반시장과는 다르다.창조성에 대한 척도나 기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 존재기반 자체가 와해되기도 했다. 오늘날의 미술시장에서는 새로운 두 가지 기준이 등장하는데, ‘국제적 명성’과 ‘시장 가격’이다. 우선,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화한 시대에 있어 많은 이들을 설득하는 가장 유효한 기제는 바로 ‘국제적 명성’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레이몽 물랭(Raymond Moulin)에 따르면, 오늘날 현대미술품의 가치 평가는 그 작가들의 ‘국제적’ 명성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다면, 그 국제적 명성은 또 어떻게 만들어질까? 여러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최종적인 단계에서
    예체능| 2009.05.04| 10페이지| 5,000원| 조회(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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