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재*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4
검색어 입력폼
  • [촉매 이론]촉매 역사
    A brief history of catalysisBard Lindstrom and Lars J. Pettersson촉매의 태동은 인류의 역사와 그 시작을 같이 한다. 지금까지 여섯 단계로 발전해 온 촉매의 역사를 살펴 봄으로서 촉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한다.제 1 시대 촉매는 인류 연사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아득한 옛날 인류는 발효를 통하여 알코올을 제조하였다. 제 1 시기에 촉매는 과학적인 증명에 의해서 알려졌다기 보다는 산발적인 경험을 통하여 알려지고 사용 되어졌다. 이 시기의 마침표를 찍은 사람은 Jons Jacob Berzelius로서 이 사람은 1835년에 제 1 시기 촉매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촉매에 대한 제 2 시대는 1 시대 촉매와 비교했을 때 체계적인 연구와 촉매 과정의 발견으로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는 촉매가 거의 모든 화학 반응에 적용되며 특정 산업에 적합한 촉매가 개발되면 경제적 수익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Wilhelm Ostwald가 이러한 인식을 만드는 데 공헌하였고, 촉매를 통해 촉진되지 않을 반응은 없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2 시대와 3 시대를 시대적으로 분명히 선을 그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제 3 시대는 상아탑에만 머물던 여러 과학적 지식들이 산업 전반에 걸쳐서 적용되기 시작하던 19세기 말엽부터가 그 시작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이 시대에는 수도 없이 많은 촉매 반응 process 들이 개발되었고, 그것의 경제적 잠재력은 수준급이었다. 산업에서 많이 이용되는 bulk 상태 반응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효과적으로 줄여주는 촉매의 발견과 그 응용이 경제적 측면에서 촉매가 공헌한 이 시대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적용은 세계 제 1차 대전 때 그 빛을 발했고, 질산을 매개로 한 촉발물의 수요가 극도로 높았던 시기였다.제 4 시대는 엄청난 양의 폭약을 필요로 했던 1차 세계 대전이 종식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는 산업의 흐름은 연료 생산과 Fisher Tropsch 와 같은 혁신적인 산업 공정이 개발되었다. 그 중 가장 새롭고 혁신적인 방법은 Fluid Catalytic Cracking Process로서 이것은 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군의 전투기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을 매우 효율적으로 만들었으며 연합군의 전력을 강하게 하였으며, 2차 세계 대전을 연합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그러한 촉매의 발전은 제 5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1970년대 초반으로 추축할 수 있는 제 5 시대의 출발은 화석연료의 효과적인 정제와 고분자의 합성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발전은 유럽과 북 아메리카에 급속도로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수요가 급격히 늘었던 것이 한 몫을 감당한다.그러나, 위와 같은 발전이 환경을 급격히 상하게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새로운 개념의 촉매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시대가 제 6 시대이고, 현재까지 이 시기가 지속되고 있다. 이 시대가 시작되도록 한 두가지 원동력은 첫째 우선 이미 언급했듯이 환경 오염으로 인한 인류의 위기의식과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발생한 여러 분야의 통합 기술 예를 들어 super computer와 같은 기술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기존과는 다른 개념의 촉매가 필요했던 것이다. 특별히 저렴한 컴퓨터 시스템의 개발은 화학 물질의 modeling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러한 연구는 새로운 촉매 시스템의 개발을 보다 쉽게 만들었으며 많은 process를 적용하게 만들었다.자동차의 보급으로 인하여 발생된 대기 오염은 6,70년대부터 급격히 발전되어 온 산업에 발목을 잡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60년대 중반 Engelhard는 배기 가스 후 처리 시스템을 개발하여 현재까지 많은 종류의 제 6 시대 촉매 기술이 발전되었다.새로운 개념의 촉매로서 zeolite는 전 세계적으로 연구 중인데, 대표적인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 Mobile Oil사에서 개발한 ZSM-5-zeolite catalyst(1976)로서 methanol to gasoline process에 응용되었으며, 1990년에는 benzene을 산화시켜 phenol을 생성하는 Fe-ZSM-5 zeolite catalyst가 개발되었다. 80년대에는 새로운 개념의 촉매가 많이 개발되었는데 주목할 만한 촉매 process로는 Selective Catalytic Reduction (SCR) 방법으로 질산을 통해서 질산 화합물을 조절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오늘날 발전소 뿐만 아니라 대형 선박이나 트럭에 적용되고 있다. 고분자 제조 분야에서도 6 세대 촉매의 역할을 통해서 발전이 이룩되었다. Shell and Union Carbide 사에서 개발한 linear low-density polyethylene 합성법은 고분자의 물성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기술로 후에 polypropylene에도 적용되었고, 계속적으로 homogeneous catalyst 방법은 발전되어가고 있다. 그 외에도 ammonia process라든가 LPG를 이용한 aromatic 물질 제조 등등의 방법에서 촉매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비록 촉매의 발전이 인류의 역사를 이끌었다고 단언할 수 없지만, 짧지 않은 미래에 촉매는 과학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다.NanocatalystReportA brief history of catalysis인하대학교
    공학/기술| 2005.04.12| 4페이지| 1,000원| 조회(670)
    미리보기
  • [교육철학]페스탈로치에 대하여
    페스탈로치의 삶과 교육 방법 (11961279 화고생 심재훈)"그의 생애는 겉으로 보기에는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던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엄청난 교육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후세의 교육이론가와 교육실천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우리 교제에 나오는 페스탈로치에 대한 평가이다. 교원의 성과급 제도가 있는 우리 나라 교육 현실에서 참으로 머리가 숙여지는 인물이라고 생각이 된다.페스탈로치의 생애를 짧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외과의사 였으며, 그의 어머니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인 요한 밥스타인은 페스탈로치가 다섯 살을 막 넘겼을 무렵에 세상을 떠난다. 그래서 페스탈로치는 그의 어머니의 손에서 크게 되었으며, 목사였던 할아버지 안드레아스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 목사가 되려고 시도하기도 했으나, 그 당시에 유행하던 루소의 에밀이나 사회계약론등의 영향을 받아 진보적인 애국단에 들어가 반정부적인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절친했던 친구 메날크가 세상을 떠나면서 페스탈로치에게 그의 길을 수정할 것을 권고 받고, 연상이지만 사랑하는 연인 안나 슐테스를 만나면서 그는 그의 삶의 청사진을 바꾸게 된다.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서 부농이 될 수 있는 계획을 장인 장모에게 제시하고 뮐리겐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고 꿈꾸었다. 그러나 풍족한 삶은 단지 꿈에 불과했던 모양인지 그는 결혼 후 노이호프로 이사해서 농사를 지었으나 실패한다. 도시인으로 살아온 그에게 너무 광대한 농사는 물의였던 모양이다. 또, 그는 성격적으로 급하고 꼼꼼하지 못해서 사업에 잘 어울리지 않았다.그러나 그렇게 급한 성격의 소유자는 무엇인가를 시작하기에 편한 면을 가지고 있다. 가난을 경험한 페스탈로치는 자신의 농장을 빈민학교로 만들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페스탈로치는 생각했다. 그래서 상당히 파격적으로 빈민학교를 운영한다. 우선 아이들에게 바로 사회에서 써먹어서 삶을 영유할 수 있는 기술 교육을 먼저 시켰다. 또 그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여타의 빈민구호시설처럼 좋은 음식으로 배불리 먹이지 않았다. 새장의 새가 비록 배불리 먹지만, 야생에 나가면 굶어 죽기 때문에 그는 밖에서 그들이 먹게 되는 음식을 그들에게 먹였다. 자신의 아이들이 좋은 음식을 먹길 바라는 학부형들은 페스탈로치에게 지적하게 되었고, 리더쉽이 탁월하지 못한 페스탈로치는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여 그 빈민학교는 금방 문을 닫게 되었다.비록 그의 노이호프 빈민학교도 실패하였으나, 농사를 실패하면서부터 쓰기 시작한 저술은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는 게으르고 꼼꼼하지 못하여 문법과 맞춤법에 문제가 있었으나 이자크 이젤린의 도움으로 그는 "은자의 황혼"-은둔자의 저녁시간(이온화 역)을 발표하고, 뒤이어 "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를 발표하여 각광받기 시작했다. "은자의 황혼"을 통하여 페스탈로치는 "인간은 옥좌위에 앉아 있으나, 초가의 그늘 아래 누워 있으나 평등하다."라고 발히고 "모든 어린이에게 하나님이 주신 성스러운 인간성의 힘이 깃들어 있다."는 그의 교육이론을 밝혔다. "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에서는 게르트루트라는 헌신적인 어머니의 노력으로 아이들을 길러내는 모습을 통하여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주창하였다.페스탈로치의 아버지가 임종시 바벨리라는 하녀는 이 집안 식구가 그녀를 필요로 하는 한 그들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다. 페스탈로치는 이 바벨리에게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바벨리처럼 게르트루트처럼 빈민을 위해서 일하고 절대로 떠나지 않았다.빈민을 위한 교육을 주장하는 페스탈로치에게 기회가 왔다. 전쟁 고아들을 위한 고아원인 슈탄스 학교의 책임자를 맡아 줄 것을 추천받았던 것이다. 비록 준비된 사람은 아니었지만, 페스탈로치는 그의 신념을 가지고 그곳에 뛰어들어 아이들을 믿고 사랑으로 대했다. 그의 아내는 상당한 우려를 표했고, 그는 또 한번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비록 아이들을 변화되었지만, 그 고아원은 병원으로 형질이 바뀌었고, 80명의 학생 중 22명을 제외한 이들을 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되었으며, 과로로 인해서 페스탈로치는 지치게 되었다. 잔병이 많았던 페스탈로치에게 무리한 일이었던 모양이다.고아원 원장이 되기 전부터 페스탈로치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상가이며 저술가로 많은 글을 남겼다. 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 2-4부, 긍정이냐 부정이냐, 나의 연구서 등이 이때 나온 작품들이다.이때의 저술한 내용을 보면 그의 초기 작품과 조금 다른 부분을 찾아 볼 수 있다. "은자의 황혼"에서 페스탈로치는 루소와 같이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가장 인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페스탈로치는 "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의 2부에서 4부를 저술하면서 "은자의 황혼"에 나오는 자연과 자연의 길에 대한 포괄적인 믿음이 깨졌다. 동시에 루소와의 결별이 선언된다. 교육을 받지 않은 인간은 인간이 안 된다. 인강은 교육을 받지 않으면 사회 생활을 할 능력이 없다고 그의 생각을 전환한다.1799년부터 페스탈로치는 부르크도르프에서 교사로 일하게 되면서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하고 계속 저술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교육자로서의 신념을 몸소 실천도 하고 글로도 남겨서 자신이 옳을음 보이려 하였다. 비록 1801년 자신의 아들 한스 야코프가 사망하지만, 그는 그의 교육자로서의 진로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정진한다.뮌헨부크제와 이페르텐에 학교를 설립한 페스탈로치는 그의 교육철학에 근거하고, 그의 교육방법을 실천할 수 있는 장소로 그곳을 활용하였고, 그 학교는 유럽 교육의 중심이 된다. 그러나 그의 제자이기도 한 요제프 슈미트는 페스탈로치보다 더 혁명적인 교육을 주장하게 되고 페스탈로치의 학교에서는 그 뜻을 이루지 못하겠다며 몇몇의 교사와 함께 학교를 나오게 된다. 그는 후에 페스탈로치에게로 돌아와서 오히려 큰 화근이 되었다. 페스탈로치는 슈미트를 품어 주었고, 그리고 거의 모든 일에서 슈미트 편을 들어 주었다. 이와 같이 균형이 없는 리더쉽은 교사들 간의 틈을 만들게 된다. 급기야는 16명의 교사가 학교를 이탈하는 결과가 생긴다. 또, 빈민교육을 하고자 했더 페스탈로치의 생각과는 다르게 부유층이 늘어나면서 학교의 체질이 변화되어 갔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페스탈로치는 이페르텐 근처에 글린디에 빈민을 위한 학교를 설립한다. 그러나 행정력이 부족한 페스탈로치는 그 학교를 운영할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여 그 학교는 이페르텐의 학교와 합병되게 된다.이러한 와중에 죽을 때까지 논쟁을 계속하게 되는 니더러와 분쟁이 심화되어서 학교의 공신력을 잃게 되고 법정에 까지 그 싸움은 계속되었다. 비록 그 결과가 그에게 유리하였으나, 양측 다 받은 상처가 무척 컸던 것 같다. 또, 페스탈로치가 사랑하는 요제프 슈미트가 바트주에서 추방당하자 페스탈로치는 학교를 포기한다. 그리고는 노이호프로 돌아간다. 이때 페스탈로치의 나이가 79이다.비록 그는 늙었지만, 결코 인생의 마감을 준비한 것 같지는 않다. 비록 그의 인생을 정리하며 "백조의 노래"라는 저서를 남겼지만, 그는 죽는 순간까지 무엇인가를 했던 것 같다. 1827년 니더러의 영향을 받은 비버가 "페스탈로치 전기에 대한 기고문"을 공개하자 페스탈로치는 그 반박을 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연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병을 얻었고, 81세의 나이로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다.그의 인생은 객관적으로 큰 성공을 얻은 삶은 아니었다. 또한 그의 이론은 100% 참신한 것도 아니었으며, 뛰어난 글을 남긴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이론을 깊이 묵상했으며, 그 묵상한 것을 실천하며 살았다. 또한 그 모든 행위가 자신의 명예나 부를 위하여 한 것이 아니고, 남을 위해서 노력하며 평생을 바쳤다.그의 생애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그의 교육 방법이다. 우선 그는 안방교육의 원리를 강조하였다. 그의 교육 철학이 비록 루소의 것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페스탈로치는 루소의 "에밀"에 많은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가정교육을 상당히 강조했다.페스탈로치는 평생을 빈민교육을 위해서 살았다. 아마 처음 자신이 교육의 뛰어들었을 때에 그 자신에게 한 약속이 그것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가정부 '바벨리'가 페스탈로치의 아버지의 임종시 한 약속을 끝까지 지켰던 모습을 통해서 배웠으리라. 그래서 그가 끝까지 빈민을 위한 교육을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가정교육을 통해 자신이 변화 되었기 때문이다.
    교육학| 2002.10.03| 4페이지| 1,000원| 조회(525)
    미리보기
  • [철학의 이해]존재론-칠판은 존재하는가?
    칠판은 존재하는가?칠판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능력으로는 이러한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이 당위성 밖에 없는 것이 애석할 뿐이다. 논리적으로 존재에 대한 질문들에 솔직히 답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소박하게 칠판이 존재하기를 바랄 뿐이다.만약 칠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이 지금 존재하는 것이 자체가 위태롭다. 나 자신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칠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칠판을 만든 사람은 존재하는가? 이 사람은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칠판의 수요자인 우리는 그 존재가 모호한 사람에게 돈을 줄 수도 있고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상태에 오면, 우리는 모든 물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다는 윤리를 지켜도 되고 지키지 않아도 된다. 이 윤리는 너무 중요하여 강제력을 가진 법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우리는 이 칠판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정 때문에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규제(법이라는 이름의 윤리)를 따라야만 하느냐는 질문이 있다면, 칠판의 존재는 더 미궁 속에 빠진다. 근세에 유럽에서는 '마녀법'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 법은 마녀가 당시의 사람들을 죄악으로 빠뜨린다고 하여 마녀를 없애기 위한 법이었다. 세부적인 법 중에 한가지는 체중이 조금나가는 여자를 빗자루를 타고 도망갈 수 있다고 하여서 화형에 처하는 법이 있었다. 지금 이 레포트를 작성하는 필자가 호소하는 상식의 선에서 마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규제가 있었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규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칠판의 값을 치러야 한다는 규제가 있다고 하여도 칠판이 존재한다는 진리를 선포할 수는 없다.그런데, 칠판과 마녀는 엄연히 다른 존재이다. 칠판은 우리가 분필로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녀는 옛 유럽인들의 두려움 속에서 존재했을 뿐이다. 즉 칠판은 우리의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존재였지만, 마녀는 오감으로 우리가 느낄 수 없는 존재라는 차이점이 있다.칠판이 오감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 우리는 꿈을 꾼다. 그 꿈속에서 우리는 오감으로 무엇인가를 느낀다. 좀 불결하기는 하지만, 젊은 남성의 몽정을 생각해보자. 분명 그 꿈속에서 남성은 자신의 성기능을 자극하는 것을 오감으로 느낀다. 그래서 사정을 하게 된다. 즉 오감으로 느끼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또, 마약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약을 하는 동안에 못할 일이 없었다고 한다. 마약을 하고 꾸는 꿈속에서 그들은 새처럼 날기도 하고, 한 나라의 왕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원수를 처단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칠판과 그 꿈속의 환상들과의 다른점은 무엇인가?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상에서 느끼는 사람들이 똑같은 오감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칠판은 지금 강의실에 250명의 사람이 있다면 모두다 정면에 존재한다고 알게 된다. 그러나 앞에 말한 꿈속에서의 것들은 지극히 개인적일 뿐이다. 그래서 마약 예찬론자들은 범죄자가 될 뿐이다. 그들이 경험한 세계는 범인들이 이해할 수 없으며, 그들은 법정에서 아무리 좋은 변호사를 산다고 해도 마약을 사용한 것 자체에 대한 죄는 유죄로 인정받을 수밖에 없다.그렇다면, 꿈은 항상 개인적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1990년대 초 오빠부대의 위험성에 대해서 경고하게 된 '뉴 키즈 온 더 블록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날 뉴키즈 공연을 보러 온 여학생들은 흥분하여 사람이 죽는 줄도 모르고 열광했다. 그래서 한명의 여학생이 압사했다. 그리고 많은 여학생들이 탈수증세를 보이며 쓰러졌다. 그리고 탈수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계속 하는 말은 '공연을 보고 싶다.'였다. 이렇게 어떠한 군중이 한꺼번에 비정상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을 '집단최면'(정확한 용어인지는 필자도 잘 모름)이라고 한다. 칠판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집단최면에 빠져서 없는 칠판을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뉴키즈 온 더 블록 사건 때 많은 열성 여학생들의 부모들도 그곳에 같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뉴키즈 온 더 블록이 와서 노래하는 것은 그들을 흥분시키는 것이 아니었고, 흥분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10대들의 '광끼'에 불과했다. 그러나 강의실에 앉아있는 학생들의 눈에 보이는 칠판은 비록 색맹인 사람들에게는 꼭 녹색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칠판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모두 다 느낄 수 있다.
    인문/어학| 2002.10.03| 2페이지| 1,000원| 조회(466)
    미리보기
  • [철학] 한국의 현왕은 대머리다. 평가B괜찮아요
    "한국의 현 왕은 대머리다." 이 명제는 참인가? 거짓인가?위 명제를 참인지 거짓인지를 판정하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 질문을 80년대 초반에 했었다면, 이 질문을 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대답을 회피하거나, 묻는 사람에게 사상성을 의심하거나, 앞으로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충고할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빛나는 머리를 보이며 9시 뉴스의 첫 화면을 장식하던 '그분'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대부분 질문자를 빤히 쳐다볼 것이다.그러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질문이 의도하는 바를 인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제 한국은 대통령 중심제의 국가이기 때문에 '현 왕'은 없다. 즉 있지도 않은 사람이 대머리인지 아닌지를 판정하라는 질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현 왕은 대머리다."라는 명제는 참인지 거짓인지를 판정할 수 없다.그런데, "한국의 현 왕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살펴보자. 이 명제를 우리는 상식선에서 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에는 대통령은 있어도 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 문단의 논리에 의하면 '한국의 현 왕'이 없기 때문에 그 존재가 있는 것이지 없는 것인지 판정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딜레마다.다른 생각을 해 보자. '이 종이 위에 글씨는 전혀 적혀 있지 않다.'라는 명제가 있다면, 이 명제는 당연히 거짓이다. 이 종이 위에 글씨가 전혀 적혀 있지 않다면, 이 명제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이 종이 위에 글씨가 적혀 있다는 것을 모를 수는 없다. 읽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존재의 유무는 눈에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에 따라 판정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그렇다면, '한국의 현 왕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는 참이다. 우리가 지금 왕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손에는 박테리아가 살고 있다.'라는 명제를 살펴보자. 이 세상의 생물학자들이 우리 손에 박테리아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씻지 않은 손을 배양기에 넣었다가 빼고, 그 배양기를 알맞은 온도에 방치하면, 곰팡이나 박테리아가 증식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러한 이유는 박테리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명인사가 하는 말이나 과학적 사실로 인정되면 참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저명인사의 말이 다 맞는 것도 아니고, 과학적인 사실이 항상 참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인류의 생활을 바꿔놓은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하나님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라고 얘기했지만, 그의 명제가 거짓이라고 양자역학자들이 증명하였다.이러한 방식으로 '존재'에 대해서 탐구하기 시작하면, 이 세상에서 존재한다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다고 존재한다고 정의할 수 없으며, 촉각으로 느낄 수 있다고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이렇게 불확실한 것들 사이에서 우리 인간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면서 삶을 영위한다. 그 기준을 '상식'이라 표현하자.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만은 거짓이 될 수 없다고 말했던 것처럼 '상식'이라는 기준은 인간사에서 존재의 딜레마를 망각하게 하고 그 존재의 허무함을 극복하게 하는 열쇠같은 것이다.
    인문/어학| 2002.10.03| 1페이지| 무료| 조회(295)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2
2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0
  • A좋아요
    1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1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3월 31일 화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8:50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