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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리] 상황윤리 평가A+최고예요
    상황윤리 - 새로운 도덕과목 : 기독교 윤리학 개론교수 : 정 승 태 님학과 : 기독교 상담학과학번 : 20025020이름 : 박 진 병상황 윤리에 관한 나의 견해는 분명 획기적이고, 새로운 연구의 가치가 있는 학문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아직은 기독교인 혹은 일반인이 이러한 이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개념 정의가 충분치 못한 상태에서 그들의 사고와 생활에 적용시키기에는 문제점과 혼란이 예상되고, 이 이론에 아직 해결하지 못한 부족한 부분들의 연구와 이론의 확립에 필요한 더욱 많은 증거가 될 수 있는 이론적 근거와 명확한 개념정의 등이 먼저 선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상황 윤리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전통이나 원칙에서 떠나서 상황 속에서 옳고 새로운 결단을 내리는 일이 상황 윤리이며, 기본 원리는 보편적으로 옳은 것이나 절대적으로 그릇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또한 본래 선한 것이나 악한 것은 없고 또 선과 악은 본질적으로 나뉠 수 없는 존재이며, 불변하는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며 다만 각기 다른 상황에 따라서 어떤 행위가 선으로도 악으로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미리 정해진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상황 윤리의 핵심은 여섯 가지의 플레쳐가 언급하고 있는 명제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제1명제는 유일한 본래적 선은 사랑이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전혀 본래적 선이라고 할 수 없다.제2명제는 사랑은 크리스챤 결단의 궁극적 규범이다.제3명제는 사랑과 정의는 동일하다, 정의는 분배된 사랑이다.제4명제는 사랑은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좋아하거나 말거나 무조건 이웃의 선을 도모하는 것이다. 사랑과 좋아한다는 것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제5명제는 목적만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고전적 기독교 윤리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이론을 채택하고 있었다.제6명제는 모든 유효한 판단은 그 상황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단은 법규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상황적으로 해야 한다.상황윤리에서는 '사랑'이라는 것이 모든 것에 최우선한다.'사랑'이라는 이외의 규제는 바르지 않은 것이며, 필요하지 않다고 보고 있으며, 사랑은 구체적인 결단을 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모든 율법의 바탕에는 사랑이 전제하고 있다고 말하고 율법과 사랑은 함께 할 수 없으며 사랑의 필요에 의해서만 율법이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상황윤리자들은 모든 인간에 대해서 고정된 원리나 규율에 속박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인격으로 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이 소위 새로운 도덕이라고 불리는 상황윤리는 기독교 윤리학이나 아니면 일반 윤리학의 관점에서 거센 도전과 새로운 탐구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기존의 율법주의 혹은 윤리의 개념에서 설명되지 못하고 또, 이해할 수 없는 여러 특수한 정황들에 대해서 상황윤리는 새로운 패턴과 기존의 윤리학에서 예외라고 생각되어졌던 개념에 대해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상황윤리에서 인간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에 있어 보다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돕고 있는 점은 상황윤리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하지만 그에 반해 소위 위험한 논리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윤리는 반대로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책에서는 우선 도덕적 결단을 하는데 있어서 세 가지 접근의 방식-율법주의, 무율법주의, 상황주의-을 설명하고 율법주의나 무율법주의의 문제점을 상황윤리적 입장에서 논하고 그 반대의 입장을 다시 논하고 있다.그들은 율법이나 법칙의 오류를 나열하고 여기에 인간행동의 선과 악에 대한 판단에 관해서이러한 율법이나 법칙의 평가는 불완전한 것이며, 아가페의 사랑이 인간행동의 선과 악에 대한 판단 혹은 행동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설명할 수 있으며, 이웃사랑의 전제 하에 행해지는 모든 행동의 대해 면죄부를 주고 있음이 가장 큰 딜레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그들 논리에 대한 맹점과 모순점을 이제 하나하나 찾아보자.그들이 말하는 소위 절대적인 선 '이웃사랑'이라는 의미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약하다.이 책 전반에 걸쳐 거론되고 있는 사랑에 대한 플레쳐의 견해 역시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사랑'에 대해 직접적인 의미의 설명이나 정의가 부족한 점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의문점일 것이다.또 책의 내용을 근거로 그들의 사랑에 대한 맹종을 분석해 보면, 가끔은 주 하나님보다 사랑이 우선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들의 사랑에 대한 관점은 너무나 위험하다.그들 나름으로 십계명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살펴보자.첫째 계명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니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의 내용에 분석을 상황윤리자들은 계명이라 여기지 아니하고 우리는 다 주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에 재고의 가치가 없는 그저 하나의 서술문쯤으로 여기고 있는데, 우리는 여기에 하나의 의문을 던져 볼 수 있다.'과연 이 계명이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통용되는 명령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구약시대에서 이 제일계명과 역시 다른 계명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는 말씀이었지만, 신약시대를 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시대에서 과연 이 계명들은 하나님의 자녀들만 지켜야 하고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신약시대에 이르러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의 사랑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만이 아닌 온 세계의 사람들 또한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또, 만약 상황윤리자의 주장대로 당연한 서술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신자의 배교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그들의 논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은 바로 작은 부분의 사건에 치우쳐 그들의 논리를 발전시켜 큰 부분의 중요한 진리를 간과한 다는 것이다.그들의 계명의 지킴에 대한 예외적인 부분의 허용에 관해서는 동의할 수 있지만, 나머지 계명의 부분들도 그들은 그 계명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그 진리를 훼손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그들의 배교에 관한 문제를 예를 들어 살펴본다면 이에 관한 상황윤리적 견해 또한 모순점을 안고 있다. 과연 신자의 배교는 정당화 될 수 있는가? 그들은 신자의 거짓 배교는 상황에 근거하여 허용될 수 있다고 하는데,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가 주님을 그들이 말하는 상황에 의해 3번 부인하고 그토록 괴로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물론 극한적인 상황에서의 인간의 거짓 배교는 허용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거짓 배교나그 외 민감하고 중요한 신앙적인 문제의 신자의 잘못이 상황윤리적 입장에서 공공연히 허용되고 있다는 인식 또한 들고 있다.또 반대로 죽음의 위기에서도 자신의 신앙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죽음을 택한 순교자들의 행위는 그렇다면 상황윤리적 입장에서 본다면 합리적이지 못한 가치 없는 죽음이었던가?우리는 여기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들이 말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돌이켜 생각해야 할 것이다.그들이 말하고 있는 상황의 대략적인 개념은 윤리적인 개념과 법칙과 원칙적인 논리에 '사랑'이라는 대주제하에 상황은 선행될 수 있는 것이다.이 특수한 상황에서 인간은 보다 합리적이고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이 상황 안에서선과 악의 경계는 구분지어지지 못하고, 그 행위의 수단과 목적에 사랑이 포함되고 있다면 어떠한 행위이든지 간에 그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문/어학| 2001.12.11| 5페이지| 1,000원| 조회(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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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인물] 클레오파트라
    BC.304년 알렉산더 대왕의 디아도코스('후계자'란 뜻으로, 알렉산더의 후계를 다룬 장군들)로서 공식적으로 프톨레마이오스 라지드 왕조를 세운 사람은 라고스의 아들 소테르(구제자), 즉 프톨레마이오스 1세이다.그는 바로 클레오파트라의 선조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이전에도 클레오파트라(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가진 공주가 여섯 명이 더 있었다.이 어린 딸의 증조모는 페르시아 혈통의 시리아 공주인 셀루키데스로 바르바르(야만족)이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리스 혈통을 이어받았다. 곧 이어 아르시노에라는 딸과 훗날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14세가 될 아들 둘이 더 태어나지만, 가족 간의 유대는 전혀 없었다.이전의 많은 이집트 왕가처럼 이 집안도 음모와 야심의 질투로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여인들의 가문 내 역할도 적극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라지드 왕조가 파라오 율법에 따라 남매간의 결혼을 통한 여인들의 왕위계승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죽은 파라오의 장남과 장녀는 결혼을 통해 파라오 부부가 된다.클레오파트라 이전에 걱정될 만한 두 명의 라이벌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페레니케와 클레오파트라 6세이다. 이들은 프롤레마이오스와 그의 누이인 트리파이어(향락의 여인이라는 뜻)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 태어났다.BC.51년, 프톨레마이오스 12세(아울레테스)는 자신의 장녀인 클레오파트라와 장남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게 왕위를 물려줄 것을 유언한뒤 죽음을 맞았다. 18세의 클레오파트라는 라지드법에 따라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열 살이 갓 넘은 아이와 형식적인 결혼을 한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 통치의 전권을 부여맏았다. 이리하여 클레오파트라 7세는 이집트 남부와 북부 전역을 통치하는 '두 땅의 여왕'이 된다.특히 관례에 따라 클레오파트라 7세에게는 '필로파토르(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라는 칭호가 부여되었다. 파라오의 어마어마한 권한을 두 손에 쥔 그녀는 '살아있는 법'이 된것이다.명령, 영화, 가신과 토지를 보장받는 왕권의 신성함이 이집트의 사제들과 그리이오스 왕조가 그 전통을 이어받아 교육을 더욱 강조했다.모든 그리스 계통의 왕조들이 그랬듯 이들도 '엔쿠클레이오스 파이데이아(백과사전)', 즉 폭넓은 지식과 일반 교양을 중요시했다. 따라서 이집트 전역에 걸쳐 초중등 교육기관은 물론, 토착 이지브인을 통치할 그리스인 엘리트 양성을 위한 왕립학교의 설립이 장려되었다. 클레오파트라으 지적인 자질은 매우 뛰어났다.특히 그녀의 외국어에 대한 소질은 천부적이었다. 그녀가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는 에티오피아어, 아랍어, 헤브루어, 시리아어, 메디아어, 파르티아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왕가에서 이토록 유창하게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클레오파트라밖에 없었다.그녀는 이처럼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훗날 이를 바탕으로 외교적인 흥정을 수월하게 해낼 수 있게 된다.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전 1세기에 걸쳐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뒤, 로마는 지중해역의 동부에 진출했다. 마케도니아, 그리스를 정복해 페르가몬 왕국을 멸망시켰고 셀레우코스 왕조의 시리아와 유대를 지배하에 둔 뒤 미트리다테스 전쟁에서도 승리하였다. 이지역에서 우일하게 독립국가로 남은 것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이집트뿐이었다. 이집트는 나일강의 혜택으로 여러 나라 가운데서도 가장 풍족한 나라였다.밀을 비롯한 여러 곡물뿐만 아니라 직물, 올리브, 포도주, 참기름 등이 대량으로 생산되어 부과되는 세금이 전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수입이 되었다.또한 수도 알렉산드리아는 인구 100만을 헤아리는 국제적인 무역항으로 각지에서 상인이 모여들었고, 70만 권의 장서를 자랑하는 무세이온(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는 많은 학자들이 학문 연구로 높은 지적 수준을 자랑하였다.이처럼 풍족한 이집트를 로마가 욕심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무렵 다른 민족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에 대한 이집트인의 불만이 고조되었고 궁정 내부에선 왕권을 둘러싼 항재이 격해졌다. 로마 조정에 의해 왕위를 보장받는 국왕도 나타나 이집트는 더욱 로마에 종속되었다.프톨레마이오스동생과 함께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왕위에 올랐다.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인에 의거한 '국민국가'로서 이집트의 독립을 확보하고-그녀는 다른 왕과 달리 민중의 언어, 이집트어를 할 수 있었다.-나아가 케사르의 협력을 받아 이집트를 속주로 만들고자 한 그의 야심을 버리게 한 것은 그 때문이다.케사르는 클레오파트라의 반대파인 동생 일파를 제거하고 기원전 46년 로마에서 개선식을 치렀다. 32만의 로마 시민은 공짜로 이집트의 곡물과 기름 등을 선물로 받았다. 이때 클레오파트라와 케사리온(케사르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은 로마의 케사르 별장에 체류하였다. "케사르가 궁전을 -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애정 때문에 - 알렉산드리아로 옮기려 한다"는 소문이 로마 시민 사이에 퍼졌다.율리우스력(태양력)이 채용된 것도 이 체류기간중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소개로 알렉산드리아의 학자 소시게네스가 구 로마력과의 차이를 조정하는 어려운 계산을 했다. 이집트력의 합리성과 선진성 을 보여주는 태양력의 채용은 일부 로마 시민의 자존심을 몹시 상하게 했다. 케사르가 암살되고 클레오파트라는 로마를 떠났다.악티움의 패전 위 클레오파트라는 독사에 몸을 물려 자살했다고 한다.당시 이집트는 독에 관한 연구가 잘 되어 있었다. 여왕은 의사와 의논하며 실험을 거듭한 결과, 이집트 코브라의 독으로 가장 깨끗하게 고통없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플루타크는 클레오파트라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혀는 마치 현이 많은 현악기와 같아 쉽게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언제든 할 수 있었다.그리스인이 아니어도 통역을 두고 말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또한 이디오피아, 시리아, 메디아, 파트티아 등 많은 민족의 말까지 그녀는 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녀 전의 이집트 왕들은 이집트어조차 배우려고 들지 않고 마케도니아어까지 포기한 자도 있었다."(『안토니우스전』) 이렇게 클레오파트라는 놀랄 정도로 여러 언어에 유창했으며 지성이 풍부한 재녀였다.클레오파트라는 재녀일 뿐만 아니라 넓은 통찰력과 정치력을 겸비유혹해 로마인의 힘을 빌어 로마를 정복하고자 하는 대담한 계획을 세웠다.악티움에서 그의 함대의 변절(31년)이 그녀의 제국에 대한 꿈을 조각내 버려, 다음 해 그녀의 자살과 함께 마지막 마케도니아 왕통은 끊어지고 아우구스투스가 프톨레마이오스가(家)의 자리에 올랐다.안토니우스가 자신의 누이인 옥타비아를 정식 부인으로 데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클레오파트라와 다시 결혼하여,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는 사이가 나빠졌다.그러나 BC 43년 되면서, 그들 둘의 사이는 더욱 멀어지게 된다. 발단은 안토니우스가 아르메니아 원정의 성공을 자축해 알렉산드리아 시가에서 개선행진을 벌인 것이었는데, 로마인들은 이 행진을 자신들의 전통적인 개선식을 우스꽝스럽게 흉내낸 불경스러운 행사로 본 것이었다. 또한, 안토니우스가 여제사장에게 맡겨둔 유언장을 옥타비아누스가 공개하게 되는데, 그 내용에 로마인들은 더욱더 충격을 받게되었다. 그 내용은 첫째, 안토니우스가 자식으로 인정하고 유산을 남겨준 것은 모두 클레오파트라가 낳은 자식 뿐이고, 전 부인인 풀비아와 옥타비아가 낳은 자식을 완전히 무시했다는 것이다.둘째는 안토니우스가 자신의 장지를 알렉산드리아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자기가 죽으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오파트라 곁에 묻어달라는 안토니우스의 소원은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진정이었지만, 안토니우스의 유언은 정치적 유언이었기 때문에 안토니우스의 유언장은 로마 민중의 가슴 속에 안토니우스에 대한 배신감과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증오심을 활활 타오르게 하였다.BC 32년, 31세가 된 옥타비아누스는 결전의 시기가 찾아온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국지전의 승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 세계를 누가 수중에 넣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자 그대로의 결전이었다.즉,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다툼은 정치사상의 대립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누가 최고권력자의 자리에 앉을 것인가를 놓고 벌어진 권력투쟁 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민중의 동의를 얻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서, 안토니우스는 로마의 국가간의 전쟁으로 그 양상을 달리하게 되었고, 이제까지 안토니우스와 함께 행동해온 폴리오나 플란키우스와 같은 참모들은 카이사르 휘하에서 싸울 때부터 안토니우스의 동료였지만,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싸움이 로마와 이집트의 대결로 바뀐 것을 알고는 안토니우스를 떠나버렸다.그리고 그들의 이반은 로마 병 사들이 안토니우스를 버리는 발단이 되었다. 옥타비아누스는 이탈리아에서 원정 준비에 전념하고 있었다.여기에서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가 그에게 기대했던 재능을 충분히 발휘했고, 시민들에게 연수입의 4분의 1, 해방노예에게는 연수입의 8분의 1에 이르는 임시 특별세를 부과함으로써 민중의 지원을 얻는데 성공하였다.옥타비아누스는 카피톨리노 언덕에 있는 신전에서 출전을 앞두고 치르는 의식을 진행했다. 이것은 신들에게 로마의 수호를 기원하고, 로마군의 승리를 빌고, 적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의식으로, 공식적인 로마의 적은 클레오파트라였기 때문에 안토니우스의 이름은 한번도 거론되지 않았다. 반면, 안토니우스는 소아시아 서해안의 에페수스에서 사모스섬을 거쳐 서쪽의 아테네로 옮기면서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본영에서의 나날은 화려한 잔치로 끝이 났는데, 걸핏하면 우울해지는 안토니우스의 기분을 북돋우려고 클레오파트라가 밤마다 즐거운 잔치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안토니우스의 해군은 아테네의 외항 피레우스에서, 옥타비아누스의 해군은 이탈리아 남부의 타란토와 브린디시에 집결하는 가운데 BC 32년이 지나갔다.안토니우스의 육군은 중무장 보병 6만 5천 명과 궁병 및 투석병을 비롯한 경무장 보병 2만명, 그리고 1만 2천 기의 기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해군은 60척의 군선과 연락용 쾌속선 5척으로 편성된 함대가 8개, 모두 합하면 520척에 이르는 대함대로 승선 인원만 해도 모두 15만명에 이르렀다. 그 많은 육군과 해군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군자금은 대부분 이집트에서 나왔고, 클레오파트라도 처음으로 자기 돈을 들여 일대 승부로 나아가고 있었다.한편, 로마측 전력은 육군에서는 이집트 쪽과 막상막하였다.
    인문/어학| 2001.12.11| 6페이지| 1,000원| 조회(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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