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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주의] 등록금 문제를 통한 비민주성 비판과 대안제시 평가C아쉬워요
    등록금 문제를 통한 비민주성 비판과 대안제시학번 : 60011608 이름 : 고나경Ⅰ. 서론-문제제기Ⅱ. 본론1.학교(1) 학교측을 통해 느낀 비민주성(2) 등록금 정책에 대한 지향방향2.학생(1)학생측을 통해 느낀 비민주성(2)대안제시Ⅲ. 결론Ⅰ. 서론대학의 역할에 대해 '무엇이다'라고 한마디로 정의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대학이란 단지 학문만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은 학문의 장일 뿐만 아니라 무수한 사상과 생각이 지배하는 공간으로서 삶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하며 다양한 사람을 접하며 인간관계를 배운다. 즉, 현실의 사회 생활에 뛰어들기 전 새로운 삶을 준비해 내는 시기가 바로 대학 생활이다.대학의 역할 중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사회를 접하기 전, 민주주의를 미리 경험 시킴으로써 올바른 사회상을 제시하는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민주주의는 사회의 구성원이 주인이 되는 사회이다. 이런 의미에서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 되어야 한다.과연 지금 대학교가 학생들에게 올바른 사회상을 제시하고, 또 학생들은 민주주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잘 익히고 있는가에 대해 등록금 문제를 통해 논해보고자 한다.Ⅱ. 본론1.학교(1) 학교측에서 느낀 비민주성민주주의는 사회의 구성원이 주인이 되는 사회이다. 즉, 집단 구성원들의 의사에 의해 합리적으로 운영하는 사회 혹은 이데올로기로 정의 될 수 있다.이런 의미에서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 되어야 하고 학교는 학생들의 의사를 충분히 수렴하여야 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대학 생활을 하며 느낀 점은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라기보다는 학생은 학교라는 한 기업의 이익 추구를 위해 필요한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등록금 인상 사례을 통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매년 학생들이 대학 당국과 등록금 책정에 대해 갈등 양상을 보인다. 이유는 등록금 인상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대학측과 동결 내지 인상을 반대하는 학생측과의 다른 주장 때문이다. 학생들은 대학교 입학 시부터 등록금을 일방적으로 통보 받는다. 처음 합격 통보와 함께 등록금 고지서를 접했을때 좀 비싸다는 생각을 하지만 등록금을 정해진 기간에 납부하지 않을 시 학교에 입학 할 수 없기에 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매 학기 인상되는 등록금은 언제나 일방적인 통보 뿐이었다. 물가 상승에 따른 대학 재정 악화를 구실로 오를줄만 알았지 내릴줄은 모른다. 그러나 과연 대학 재정이 정말로 어려운 것일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경기가 어려워서 등록금을 올린다고 하는데 경기가 좋을때 등록금을 내린적이 과연 있는가? 등록금이 내렸다는 말은 들어본적이 없다. 우리는 우리가 낸 등록금이 어디에 얼마나 쓰였는지, 왜 등록금이 이렇게 인상이 되었는지 타당한 이유도 알지 못한채 항상 학교의 결정에 속수무책으로 따를 수 밖에 없다. 이에 학생들은 항의하지만 학교에선 이 학생들에게 무자비한 처벌과 미 등록시 제적이라는 처벌을 악용하여 학생들과의 대화를 차단하고 학생들의 의사를 무시한다. 과연 이러한 권위적인 학교 태도가 학교의 구성원인 학생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라 볼 수 있는가? 나의 대답은 "NO" 이다.(2) 등록금 정책에 대한 지향방향민주주의적 대학 등록금 정책에 대한 지향방향을 제시해 보도록 하겠다.첫째,학교의 구성원인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주고 협의하에 등록금 인상 적정가를 책정해야 한다.국가에서는 세금을 징수한다.그 세금은 다수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 강압적으로 시행하지만 적어도 국민의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들과의 대화와 토론을 통해 타협하여 결정한다. 즉,사회의 주인인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여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지금 우리 학교는 어떠한가? 학교측은 귀와 입을 막은 채 제적이라는 학칙을 무기삼아 자신들의 정책을 꿋꿋히 수행 할 뿐이다. 대안을 모색하고 다른 사람들도 문제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특히 자유로운 공개 토론은 참여를 이끌어냄으로써 민주사회의 초석을 이루게 하는 표현의 자유는 학교에서 학생 때부터 실습 시켜야 할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인데, 이런 비민주적 행위를 하는 학교에서 과연 학생들이 올바른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배우고 익힐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학교측은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의 의견을 단절하는 이러한 비민주적 행위는 반성해야 할 것이며, 또한 학생들의 대표로 뽑힌 학생회와의 타협을 통해 합리적으로 등록금을 징수 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고 계절학기와 학기 당 시간제 학생에 대한 등록금 징수 방법등 재구성 되어야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심각한 사립학교의 재정난을 인식하고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등록금을 현실화 시켜주든지, 국고지원책을 내놓든지 기여입학제의 대안을 먼저 모색해야 한다.둘째, 등록금 사용 내역과 등록금 사용 계획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설문조사 전문 기관에서 "대학 등록금 인상 방안에 대한 의견은?"이란 리서치를 시행하였는데1.물가가 오르므로 당연한 것이다.40명 (3%)2.10%내외라면 상관 없다.20명 (1%)3.오를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이해한다.1263명 (93%)4.새내기에 한해서는 괜찮다.40명 (3%)이러한 결과가 나왔다. 오를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이해하겠다는 의견이 90% 이상의 지지를 얻었다. 따라서 학교에서 학생들 또는 부모님들에게 등록금의 쓰임을 투명하게 공개하여야 할 것이다.2.학생(1) 학생측에서 느낀 비민주성-학생들의 주인 의식고등학교의 문을 벗어나기 전까지 우리는 사회가, 그리고 어른들이 정해 놓은 제도와 규칙- 설사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 해도 그것을 충실히 따르며 살게 된다. 그것이 미덕이고 아직 성인이 아닌 청소년들의 올바른 모습이라 우린 배워왔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에겐 무의식적 복종이라는 행동이 관성이 되고 우리의 권리에 대해서도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유 없는 학교측의 일방적인 등록금 인상이 있어도, 동아리 방이나 과방 같은 우리들의 공간이 그 어떠한 학생들의 동의 없이 사라져도, 수동적인 관객 이상의 어떤 대응도 우리에겐 없다. 그저 세상이 주는 대로 주어진 대로 그것에 맞춰가며 살아갈 뿐이다. 지금부터 우리가 중요한 것을 간과 있는 것과 비민주성에 대한 심각한 고려를 하고자 한다.매 학기 초가 되면 항상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등록금 투쟁을 위해 학생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우리의 손으로 뽑은 학생회 학생들이다. 그렇지만 학우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래, 너희들은 떠들어라! 난 내 일 한다」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이 문제는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작년에도 그랬다. 모두 등록금 비싸다고 투덜거리고 불평하지만 결국 나몰라라 하는 식의 반응이 대부분이다. 학교에서 비민주적인 행위로 학생들에게 피혜를 끼친다면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텐데 다들 말 뿐인 것이다. 학생들의 저조한 참여 속에서 이뤄지는 투쟁. 대학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학생들의 운동이 이제는 3D 업종처럼 하기 싫어하는 일이 돼버렸다. 이런 작은 주인 의식마저 없다면 어쩌면 우린 주인 이기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회과학| 2004.12.11| 4페이지| 2,000원| 조회(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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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러시아 혁명
    러시아 혁명연구1. 서문정치발전에 관한 연구에 있어서 비교역사모델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발전과 혁명을 연관지어 혁명을 정치발전의 중요한 양상으로 평가하고 판단하여 주 연구의 틀을 혁명에 맞춘 것이다. 기존의 정치발전에 관한 연구에서는 혁명의 의미나 영향에 대하여서는 대부분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으며 정치사상사적으로 수많은 사상가들이 혁명은 역사의 단절이니, 질서를 깨트린다는 등의 판단을 하여왔다. 하지만 비교역사모델 연구자들의 이러한 연구시도는 절대왕권의 몰락이후 빈번하게 있어왔던 여러 가지 혁명의 연구를 유도해 냈으며 이로 인하여 사장될 뻔하였던 수많은 혁명의 성과와 결과 그리고 그 영향들에 대한 인식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이상에서의 정치발전론에 관한 연구방향의 변화는 혁명연구에 커다란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발전연구의 정향과는 관계없이 혁명에 대한 연구는 매우 중요하다. 혁명이 아무런 원인이나 조건없이 일어나는 사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의 사회적 환경이 혁명의 주체에 영향을 끼치게 되고 혁명의 주체들은 인민의 지지를 받게 되거나 성공의 가능성이 있다고 느껴지면 혁명을 단행한다. 이는 당시의 시대가 바라는 일이기에 이를 역사의 단절이나 질서의 파괴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혁명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지나치게 크다. 혁명은 연구되어야만 한다. 다시는 그런일이 일어나게 하지 않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과 성격을 분명히 하여 민주주의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이다. 환경과 시대에 따라서는 혁명도 필요할 수 있다. 혁명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매우 크게 작용할 수 있다.최근의 1-200년간에 인류에게 영향을 미친 커다란 혁명들이 많았다. 이는 이상에서 기술했던 것처럼 환경과 시대의 요구에 의하여 일어났고, 현대의 대부분의 정치사상이나 정치체제가 이의 영향을 받았다. 그중 러시아혁명은 그간에 있어왔던 기존의 혁명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20세기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며 세계를 반으로 갈라놓았던 혁명이었다. 이러한 러시아혁명에 관e)의 주도로 활발한 산업화가 추진되기는 했으나, 이러한 발전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기도 하였다. 그러한 문제점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자본주의의 발전을 통하여 농민충과 노동자층의 희생이 강요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러시아에서는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노동운동이 활발해지고 농민 봉기가 발생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민주당과 사회혁명당 같은 비합법 혁명 정당들이 생겨났다. 제정 러시아가 안고 있던 이러한 체제상의 모순은 20세기초에 이르러 결국 세 차례의 혁명으로 폭발되었다. 그 첫 번째 혁명은 1905년에 발발하여 결국 차르 전제정으로부터 입헌체제와 유사한 형태의 양보를 얻어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러시아의 내부모순이 점점 심화되어가고 있던 1917년 2월에 또다시 혁명이 발생되어(2월혁 명) 드디어 차르 체제가 붕괴되고 자유주의자들이 집권하였으며, 그 해 10월에는 사회주의 혁명(10월 혁명)이 발발하여 레닌을 지도자로 한 볼셰비키가 집권하게 되었다.(1) 1905년의 러시아1905년 러시아 혁명의 출발점은 1월 9일에 발생된 "피의 일요일 사건"이었다. 이것은 수도인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가퐁 신부가 주도한 노동자들의 평화적인 시위에 대해 정부가 발포함으로써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된 일을 일컫는다. 이 사건은 전국에 걸쳐 커다란 항의사태를 불러일으켰는데, 모스크바, 리가, 바르샤바, 티플리스 등지에서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기 시작되었다. 1905년 1월의 파업참가자 수는 44만 4천 명으로 직전 10년 평균치의 10배 이상에 달하였다. 이후에 정치적인 구호를 내건 파업이 러시아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1905년 1월부터 4월까지 파업 참여자수는 81만 명에 이를 정도였다. 또한 오를로프, 보로네즈, 쿠르스크, 즉 중앙 흑토 지대에서는 농민 봉기가 시작되었고, 폴란드, 발트 지역, 그루지야 등등 국경 지역에서도 농민들의 봉기가 일어났다.이러한 상황에서 지배층 내에는 국가 통치 구조의 일정한 개혁에 대한 지지 세력이 증가되었다르자면 이제 러시아인들에게 시민적인 자유가 보장되었고, 입법 기능을 가진 국가 두마의 소집이 용인되었다. 그러나 노동자 세력은 이러한 차르의 양보에 만족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12월에는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무장 봉기가 발생하였는데, 정부에 의하여 잔인하게 진압되고 말았다.(2) 1905년 혁명 이후부터 1917년 2월 혁명까지의 러시아1905년 12월에 모스크바 봉기가 진압된 이후에 한동안 농민들의 봉기가 잇달아 발생하였다. 이에 대해 새로이 총리가 된 스톨리핀 등의 강경 진압책에 힘입어, 혁명운동은 1907년 무렵이 되면 점차로 수그러들게 되었다. 정부는 "10월 선언"에서 공포된 바와 마찬가지로, 1906년에 5월에 기본법을 제정하고 의회에 해당하는 국가 두마를 소집하게 되었다. 사회주의 계열 정당들의 선거 보이코트로 인하여 이 국가 두마에서는 자유주의 계열인 "입헌민주당"과 "10월당"이 주도권을 잡게 되었으나, 국가 두마는 전제정 형태의 잔재를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정부와 끊임없는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리하여 초대 국가 두마와 뒤이어 소집된 제2대 국가 두마는 임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제적으로 해산 당하고 말았다.스톨리핀은 1907년 6월 3일에 기습적으로 선거법을 개정하여 마침내 정부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국가 두마를 구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또한 러시아의 농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농민공동체의 해체를 골자로 하는 부농 육성 정책과 혁명정당들에 대한 강력한 규제 정책을 추진하였다. 따라서 정국은 또 다시 전제적인 정권과 혁명세력의 대결이라는 극단적인 대립 형태가 재연되었다. 또한 스톨리핀이 1911년에 키예프에서 암살 당하였고, 1912년 무렵이면 러시아에서 다시 파업이 빈번하게 발생할 정도로 정국이 불안정해 졌다. 1914년에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은 당초에 단기전이 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지루하게 계속되었고, 제정 러시아가 안고 있던 체제의 취약점이 더욱 크게 노출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전선에서의 상황도 악화되어 의 형태가 성립되었으므로, 임시정부로서는 행동에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혼란스런 상황에서 볼셰비키의 지도자였던 레닌이 4월에 귀국하여 "4월 테제"를 발표하였다. 여기서 레닌은 임시정부의 해산, 소비에트 공화국의 건설, 사유 재산의 몰수, 토지의 국유화, 군대-관료-경찰제도의 폐지와 같은 급진적인 주장을 발표하였다. 그의 입장은 간단히 말해 농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하고, 독일과의 단독 강화를 통하여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이었다. 레닌의 이런 급진적인 주장은 심지어 멘셰비키 등 사회주의자들 내에서도 비판을 받았으나, 막연히 점진적인 개혁안만을 제시하고 연합국들과의 조약에 얽매여 전쟁을 중단할 수 없었던 임시정부의 노선보다는 대중에 대한 호소력을 더 가지고 있었다. 점차적으로 사회가 불안정해지자, 사회혁명당에 속했던 케렌스키가 새로이 임시정부의 수반 자리에 올랐으나 임시 정부의 입지는 더욱 약화되었다.(4) 내전기의 러시아마침내 볼셰비키는 레닌의 주도 하에 1917년 10월 24일부터 3일 동안에 무력으로 임시정부를 전복시켰다. 임시정부는 별다른 무력 저항을 벌이지도 못하고 붕괴되었고, 케렌스키는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하였다. 그리하여 레닌을 의장으로 하는 인민위원회가 정권을 장악하였고, 외무 인민위원에는 트로츠키가, 민족문제 인민위원에는 스탈린이 임명되었다. 볼셰비키 정권은 10월 혁명이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제헌의회에서 사회혁명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자 제헌의회를 강제 해산하고 일당 독재를 강화해 나갔다. 그리고 볼셰비키 정권은 레닌의 "4월 테제"에서 표명된 바처럼 독일과의 단독강화회담에 착수하여 상당한 양보를 한 끝에 드디어 1918년 3월에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렇지만 1918년 여름에 발발한 내전과 외국 군대의 개입으로 인하여, 신생 소비에트 정권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반볼셰비키 진영에는 사회혁명당원들, 자유주의자들, 군주주주의자들 등 각종 다양한 세력이 포함되어 있었고, 소련에 침입한 외국 군대에는 영국, 투쟁이 발생하여 기존의 도덕과 질서가 붕괴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업 생산은 1차 대전 전의 1/8로 감소되고 농업 생산 역시 30%나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볼셰비키 정권은 1920년 말 무렵이 되면 백군 세력을 물리치고 내전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우리는 볼셰비키가 결국 승리를 거둔 이유를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로 볼셰비키의 조직력이 백군보다 우세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볼셰비키는 60만 당원이 중앙집권화되고 규율 잡힌 공산당으로 결집되어 있었다. 둘째로, 많은 러시아인들은 볼셰비키 정부가 러시아를 하나의 국가로 단결시킬 수 있는 유일한 정부로 생각하고 있었다. 셋째로, 당시 소련 국민의 다수를 점하던 농민층은 사회주의 혁명으로 인하여 토지를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사회주의 정권은 도전 세력을 물리치고 확고한 권력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3. 러시아 혁명에 대한 평가러시아 혁명은 1917년 10월 25 - 26일에 일어난 단순한 권력장악 사건 은 아니다. 이는 차르체제 전복을 위한 100여년에 이르는 인민들과 혁명가들의 지속적인 노력에 힘입은 것이며, 이에대한 지배세력의 대응의 역사가 있었고, 이 대응책의 작동실패로 인한 역사도 있었다. 이 사실은 러시아에서 오랫동안 있어왔던 환경적인 조건(러시아 내의 후진성과 세계 자본주의 및 제국주의의 동향)에 대응하여 나름의 정치의식을 가진 혁명가들과 인민들이 내린 선택이었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은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과정 속에서 적절한 시기에 구조개혁을 단행하기를 거부해 온 전제정권이 위기수습 능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린 것에서 촉발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사태에 도화선 역할을 한 것이 계급투쟁이론을 강조하는 맑스-레닌주의 혁명 이데올로기였다.맑스가 강조하고 기술하였던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에 관한 이론은, 자본주의사회가 철저히 발달한 곳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공산사회가 온다고 한 것이었는데 러시아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의 실패로 한다.
    사회과학| 2002.12.14| 7페이지| 2,000원| 조회(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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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법] 국제법 평가C아쉬워요
    2. 국제법의 연원(20)국제법의 법원은 과거로부터 자연법이나 실정법 학파에 의해 그 의미가 정립되었으며 이것이 국제법의 연원과 혼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국제법의 원인과도 혼동되어 법적 확신 을 중심으로 각국의 특성에 맞게 그 뜻이 결정되었다. 국제법의 연원적 성격을 띄는 국제법의 인식자료는 국제법과 많은 부분을 같이 하지만 그 자체가 곧 국제법의 연원이 아니라는 점에서 국제법의 연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국제법의 법원의 의미는 전통적으로 조약과 관습이었으며 최근 힘의 논리에 따라 강대국의 국내법이나 법리 혹은 이념과 정책목표가 기초를 이루며 최근에는 학자의 창의적 이상에서부터 소수 민족의 발의까지 국제법의 법원이 되고 있다.조약은 역사적으로 보나 실정법상으로 보나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국제법의 연원이다. 이 조약은 국제사회가 다원화, 조직화되기 때문에 그 비중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조약은 양국간에 체결되는 양자 조약과 수개국 간에 체결되는 다자 조약으로 구분된다. 특히 다자 조약은 계약적 성격을 띄는 양자조약보다 입법 조약의 성격이 강하므로 그 구속력이 강하다. 양자조약과 다자 조약 외에도 최근에는 국제연합총회의 결의가 새로운 조약성격의 연원으로 부상하였다. UN총회의 결의는 많은 국가의 결의가 입법적 조약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조약과 동등하게 그 효력을 인정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 예로는 군축, 해양법, 조약법, 외교·영사 관계 협약 등이다.(결의나 권고는 기간성격상 조약의 성질과 구속력이 없다)국제관습법은 일반적 관례나 습관, 관행이 아니고 국제 사회에서 법으로서 수락된 일반 관행의 증거로서 존재한다. 또한 수락된 관습법은 국제 조약과 동등하다는 원칙이 준수되어 왔고, 국제사법재판소에서도 국제 법규 다음으로 국제관습법을 중시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관습은 관계 국가의 재량에 의한 해석이나 행사가 많고 적용에 차별의 가능성이 많기에 실정법에 우선하지 못한다. 몇몇 학자들은, 국제 관계 영역에서 수개의 국가가 합의하거나 일정기간 반복하는 것 혹은 관다. 사무국은 몬트리올에 있으며, 1947년에 유엔 전문 기구가 되었다.국제민간항공기구는 세계 전역을 통한 국제 민간 항공의 안전하고 정연한 발전을 보장하고 평화적 목적을 위한 항공기의 설계와 운송 기술을 장려하며, 국제 민간 항공을 위한 항공 노선, 공항 및 항공 기술의 발전을 촉진한다. 안전하고 정확하며 능률적이고 경제적인 항공 운송에 대한 세계 각국 국민의 요구에 부응한다. 불합리한 경쟁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낭비를 방지하고 체약국의 권리가 충부히 존중되도록 하며, 체약국이 국제 항공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갖도록 보장한다. 체약국 간의 차별 대우를 금지하고 국제 항공상의 자유 항행과 안전을 증진하며, 어떠한 상황하에서도 민간 항공기가 군용기에 의하여 격추되지 않도록 보장 조치를 강구한다. 조직은 총회와 이사회, 각종 위원회 그리고 사무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역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ICAO의 법률적인 기능은 대부분 정치적인 성격을 띄지 않는 고도의 기술적인 문제에 있다. 그러면서 그 활동에 심각한 정치적인 의견차이에 대한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국제적인 기준과 권고실행에 있어서, ICAO에 의한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SARPS (International Standard And Recommended Practices)에 따라 실행된다. 조직당국은 협약 제37조에서 유래된 SARPS가 채택하였다. 각 체약국은 그들이 추구하는 고도의 수준의 규정, 표준의 통일과 항공기, 직원, 항로, 보조 운항에 관한 조직을 위하여 공동으로 협력하고자 한다. 이 목표를 의해 ICAO는 시시각각으로 필요성이 증대되는 SARPS를 다음과 같이 채택하고 개정한다.ICAO 제1차 총회(1947년)는 ICAO의 내부사용을 목적으로 하여, “Standard(국제표준)”와 “Recommended Practice(권고관행)”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Standard”; 그 통일적 적용이 국제항공의 안전과 질서를 위하여 필요 (necessary) 하다고 인정되고, 회원국 영해에 대해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국가는 영해 내에서 배타적 어업통제권, 경찰권, 연안 무역의 권리, 재판 관할권, 추적권 등의 권리를 갖는다. 다만 국가는 영해 내에서 무해 항행권에 한해 연안국상의 권능에 제한을 받는 경우가 있다. 영해의 확장적 이론으로는 접속수역, 보존 수역, 대륙붕, 위험 수역, 배타적 경제 수역 등이 있다.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영해의 제도가 있었고 문제가 있었으며 최근 독도문제와 관련하여 쟁점이 집중되고 있다.공해는 영해와 경제 수역 이원에 있는 수역을 말한다. 국가는 공해에 대하여 주권이나 관할권에 속하는 입법, 행정, 사법권을 행사할 수 없다. 공해으 l법적 성질은 무주물, 공공물, 불융통물, 공동 영유물, 국제 공역이다. 공해는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은 공공물이므로 만인에게 개방되어 있고 누구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해양법에 따르면 공해는 연안국 또는 내륙국에 관계 없이 국가에 개방된다. 공해에서의 자유는 항행의 자유, 상공 비행의 자유, 해저 전선 및 송유선 부설의 자유, 국제법상 허용되는 인공 도서 및 기타 시설 건설의 자유, 해양법에 정해진 조건에 따른 어로의 자유, 과학 조사의 자유등을 포함한다. 공해상의 권리로는 평화적 목적 하에서 항행의 권리, 해저 전선 및 송유관 부설권, 해저 자원 개발권, 임검권 등이 있고 공해상의 의무로는 원조 제공 의무, 노예 제도의 금지, 해적 행위의 진압, 어족 및 공해 생물 자원의 보존, 마약 불법거래 등의 의무가 있다. 공해상의 형사 관할권은 선박의 기국 또는 그들의 국적국의 사법 당국이나 행정 당국에 의해서만 제기될 수 있다. 공해상의 군함과 정부 역무에 사용되는 공선은 기국 이외의 어떠한 국가의 관할권으로부터도 완전한 면제를 향유한다. 공해상의 범죄의 처벌은 임검권을 행사하여 해결하도록 한다.영공은 영토 및 영해의 상공에 있는 일정한 고도 내의 공역을 말한다. 영공의 범위는 1944년 시카고 미간항공협정을 채택하여 영역국의 배타적 관할 원칙을 채택하였다. 이는효와 동시에 실시되며, 구속력을 갖는다. 조약의 구속력은 그 조약의 존재와 내용을 존중한다는 조약에 의한 기속적 동의를 의미한다. 이러한 구속력은 신의성실에 충실하자는 도덕률이며 중요한 법철학 개념이다. 근대의 국제법은 조약의 구속력을 몇가지로 정의하는데, 1)조약은 그 자체에 조약의 목적을 이행하기 위한 독자 집행력을 가지고 있는 것과, 2)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집행하기 위해 당사국은 안보리에 제소할 수 있으며, 안보리는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판결을 집행하기 위하여 권고하거나 취하여야 할 조치를 결정할 수 있고, 3)국제연합을 통한 평화적인 방법으로 주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에는 국제법에 의거하여 국제 사법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는 점등을 명시하였다.하자있는 조약의 경우는 조약의 개정이나 수정, 혹은 조약의 무효, 또는 소멸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조약의 개정은 유효하게 체결된 조약의 규정을 당사자간 합의에 의하여 변경하는 행위를 말한다. 조약의 개정은 조약문에 규정하고 잇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조약 체결 절차에 준하여 개정된다. 이는 합의를 도출하는데 많은 시일이 소요된다. 당사국이 다자 조약을 개정하고자 할 때에는 그 제안을 체약 당사국에게 통고하여야 하며, 각 당사국은 체결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조약의 수정은 개정과 유사하나 조약 전체의 일반적인 재심의 경우에 사용한다. 보통의 조약은 관례상 조약문에 수정 조항을 규정하고 있다. 조약의 소멸 및 무효는 당사국의 폐기 및 탈퇴 혹은 소멸 및 정지 그리고 무효 등의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데, 이는 체결국중 어느 한 국의 의도로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없다. 이는 합의와 일반 국제 법규에 의하여 이루어지며, 소멸의 원인은 조약의 폐기, 탈퇴, 종료, 무효에 기인한다. 조약의 폐기는 조약의 일방 당사국이 조약 당사국과의 합의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조약의 효력을 잃게 하는 행위라 하고, 탈퇴는 조약 당사국이 다자체제의 조약의 구속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당사국이 조약의 폐기나 탈퇴를 할 때에는 그 의사를 12자위권은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미주상호원조조약(Inter-American Treaty of Reciprocal Assistance, 1947, Rio de Janeiro)과 기타 지역 기구의 개임을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국제연합의 강제적 분쟁 해결 수단은 비군사적 강제 조치(제41조 안보리는 그 결정을 실시하기 위하여 무력의 사용 이외의 어떠한 조치를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고 더욱이 조치를 적용하도록 국제연합회원국에 요청할 수 있다. 이 조치는 경제관계 및 철도, 항해, 항공, 우편, 전신, 무선통신 및 기타 운수통신수단의 전부 또는 일부의 중단과 외교관계의 단절을 포괄할 수 있다)와 군사적 강제조치(제42조 안보리는 제41조에 정한 조치로서는 불충분하다고 인정되거나 불충분한 것이 판명될 경우 국제적 평화와 안전의 유지 또는 회복에 필요한 공군, 해군 또는 육군에 m이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 이 행동은 국제연합회원국의 공군, 해군 또는 육군에 의한 시위, 봉쇄 기타의 행동을 포함할 수 있다)이므로 총회는 안보리로부터 보고만 받게 되어있으며, 단지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는 사태에 대하여 안보리의 주의를 환기할 수 있다. 단, 총회는 안보리가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에 일차적 책임을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평화를 위한 단결 결의에 의거하여 강제적 해결을 모색할 수 있다.2002년 12월 11일 일어난 스페인 선박에 의한 북한 상선의 나포에 대한 국제법적 해석은 위의 조항의 현대 국제법적 해석을 잘 보여준다.미국이 스커드미사일 15기를 적재한 북한 화물선을 억류했다가 풀어준 사건은,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대한 미국의 `예방적 조처'가 국제법적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12일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이, 예멘이 북한제 미사일을 수입하는 것을 막을 국제법적 규정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화물선을 석방했다고 발표한 것은 이를 의미한다. 선적된 스커드 미사일이 합법적 화물임을 인정하고, 북한의 미사일 확산에 대한 미여한다.
    사회과학| 2002.12.14| 10페이지| 2,000원| 조회(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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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균의 홍길동전을 읽고 평가D별로예요
    '홍길동전'은 임진왜란 직후의 사회적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적서 차별의 봉건적 신분제에대한 반항 투쟁을 이왕조 통치에 반대하는 농민투쟁과 결합하여 보여준 작품이다.이 글은 최초의 한글소설로도 잘 알려져 있거니와 작자는 이러한 주제를 취급하면서봉건통치자들의 부패무능을 폭로하고 이상향 건설에 대한 지향도 반영하였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홍길동전'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탐관오리를 혼내주고 백성을 구제해주는 등 당시 핍박받던 민초들의 답답함을 시원하게 풀어주어서가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이 책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았을 고전으로 사랑받게 한 이유라 할 것이다. 이 소설의 사건은홍길동의 탈가, 그의 활빈당의 조직과 투쟁, 율도국이상향의 건설 등 크게 세 개 부분으로엮어지고 있다.첫 부분에서 홍길동은 홍판서라는 명문 거족의 아들이지만 천비 소생의 서자이기 때문에 가정에서는 호부호형조차 할 수 없고, 남다른 비범한 재질을 갖고 있었으나 사회적으로 진출할 길이 막혀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적서차별로 인한 모순갈등으로 하여 탈가하게 된다. 작자는 홍판서 일가의 이와 같은 첨예한 가정적 갈등과 홍길동의 탈가를 통하여 적서차별의불합리한 사회신분 제도에 대한 지대한 불평과 반항사상을 뚜렷이 표현하였으며 그러한 신분적 불합리를 조성한 봉건가족제도의 죄악도 비교적 심각히 폭로하고 있다.둘째 부분은 홍길동의 활빈당 조직과 그 투쟁을 서술한 부분인데 홍길동의 사회체제에 대한개인적인 분노가 사회인식으로 전환되는 장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길동은 적굴에 들어가농민봉기군의 두령으로 된 후 그 봉기군들로서 을 조직하여 합천해인사와 같은 대사찰, 함흥감영과 같은 지방관청을 습격하여 그 전곡과 군기를 탈취한다. 또한 조정에 바치는 봉물 까지도 탈취하여 빈민들을 구제하며 탐관오리들을 처단한다. 작자는 홍길동이라는민간설화 중의 전설적 인물을 빌어 자기 시대 농민봉기군의 두령의 형상을 창조하고 또 민간전래의 활빈당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표방함으로써 홍길동 일당의 농민봉기군으로서의 계급적 성격을 보여주며 특히 탐관오리들의 불의의 재물들을 탈취하여 빈민을 구제하는 것을행동목적으로 하였다는 데서 더욱 뚜렷이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활빈당의 활동은 당대의현실상과 이를 날카롭게 비판한 허균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가혹한 수탈로 토지를 이탈한 流民들은 群盜가 되었고 이들은 임진왜란을 치르면서 부패·무능한 지배층에 대항할 힘과 명분을 자각한 것으로 보인다. 허균이 이 작품에서 실재했던 군도의 우두머리였던 홍길동의 활동을 의적화 했다는 점은 군도가 횡행했던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만하고 생각된다.마지막 부분은 홍길동이 조판서를 除授받고 조선을 떠나 율도국을 건설하는 부분이다.이것은 허균의 유토피아라 할 수 있을것인데, 이제껏 조선왕조의 관리와 특권귀족들을 비웃던 홍길동도 결국은 유교적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는 모습을 보여주고 마는 대목이
    독후감/창작| 2002.12.12| 3페이지| 1,000원| 조회(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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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약용의 목민심서 평가A+최고예요
    정약용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실학자, 저술가, 학자라는 이미지일 것이다.내자신도 정약용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이를 넘지 못했다.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조선 후기 실학의 집대성자로 알려진 정약용은 많은 저술과학문적 성취이외에도 이러한 자신의 사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유능한 관리요, 개혁 운동가임을 엿볼 수 있었다. 다산은 어릴적 부친이 지방관을 역임했고, 과거에 급제하여 중앙관리로서의 경험, 곡산 등 지방 관리로서의 경험, 유배지에서의 생생한 체험 등을 바탕으로이 책을 저술하였다고 한다.그래서인지 가장 가까이서 백성과 관리들을 바라보며 느낀 생생한 애민사상과 애국사상이전편에 녹아있는 듯 했다. '목민심서'는 지방장관(목민관)이 지켜야 할 준칙을 서술한 것으로 전체가 12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항목은 6개 항목으로 나뉘어 모두 72개의조목들로 이루어져 있다.각 조의 서두에는 지방 수령으로서 지켜야 할 원칙과 규범들이 간단명료하게 지적되고,그 다음에는 설정된 규범들에 대한 상세하고, 구체적인 설명과 역사적 연원에 대한 분석이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다시 자신의 견해가 피력되어 있다.글 전체를 통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애민사상이었는데, 이와같은 애민사상은 백성들을 다스리려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아끼고 위해 주어야 할 정치의 근본으로 보고 있다는점이다. 이것은 현대적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에도 상당히 근접했던 당시로서는 대단히 급진적인 개혁 성향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다산은 원래 인간이란 모두 완전히평등하고 신분적 차별과 빈부의 차이가 없으며, 지배계급도 후세에 와서 백성 자신들이스스로의 생활 요구에 의해 선발된 것이니 따라서 지배자들은 마땅히 백성을 위해 일해야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식 사회계약설의 주창이라고나 할까? 이와 같은 사상은목민심서 중의 다음 글에서 잘 드러난다."지금 세상에서 지극히 천하고 하소연할 곳 없는 자는 백성이지만, 세상에서 무겁기가높은 산과 같은 자도 또한 백성이다. 백성을 잘 맏들면, 세상에 무서울 것도, 못할 것도없다."이런 것을 보면, 그는 당대로서는 혁신적인 사상과 통팔력을 가지고 부정부패가 만연한조선 후기 사회를 혁명적으로 개혁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근본적인 해결책은실현이 요원한 것이어서 너무나 절박한 현실 앞에서, 현행법의 테두리안에서라도 목민관의양심에 호소해 백성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려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다산은 농민을 부담지우던 각종의 과세제도에 반대하여,법규에 대하여는 '백성을 계몽시키지 않고 형벌을 가한다는 것은 백성을 잡기 위해 그물질하는 것과도 같다.'고하여 어떤 박해와 가렴주구도 반대했다. 또한 다산은 백성을 다스리는관리의 성품을 매우 중요시하여 전편에 걸쳐 각 조항마다 관리들의 품성을 바로잡기 위한문제들을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고을을 다스리려는 자는 먼저 자기 가정 단속으로부터시작한다. 고을을 다스리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니 가정을 단속하지 않고서야,어떻게 고을을 다스릴 것인가!'라고 하면서 수령은 자신을 수양하고 가정을 단속하는 것이
    독후감/창작| 2002.12.12| 3페이지| 1,500원| 조회(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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