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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리학]철학적 심리학의 성격과 주요학자 평가A+최고예요
    철학적 심리학의 성격과 주요학자 5명을 들고 설명하라심리학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이 발전되어온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다른 많은 학문과 마찬가지로 심리학 역시 인접학문의 발전과 사회·문화적인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되었는데 역사적으로 학문적 뿌리는 크게 철학과 자연과학에 그 기초를 둘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지식이 인간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일상적인 경험, 사고, 관심과 같은 상식수준을 넘어 체계적으로 지식화해서 하나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기원선 5,6세기경 그리스 철학부터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의 철학적 근원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Platon)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서 찾을 수 있다. 플라톤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 세상에 관한 지식을 갖고 태어나는데, 이 지식은 참된 지식이며, 이것은 이성적 思惟를 통해서만 밝힐 수 있다고 보았다.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는 비록 추론의 중요성을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경험주의라고 불리는 철학적 접근으로 지식의 원천으로서의 감각 경험을 플라톤보다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예를 들어, 강한 정서적인 경험을 하는 동안에는 뇌보다 심장이 더 민감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심리학에 기여한 것은 심리학적인 주제에 대해 형식을 갖추어서 깊이 생각한 첫 번째 사람이라는 점이다.중세 기독교 시대 초기에는 심리학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보다는 신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가장 유력한 서구의 권위자는 Saint Augustin(354-430)이다. 젊은 시절 Augustin은 '내일은 죽기 때문에 먹고 마시고 즐겨라'라고 하는 에피쿠로스학파의 추종자로, 젊어서는 방탕했고 그의 이러한 생활은 기독교에 귀의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는 자서전인 『고백(confession)』에서 자기분석을 통해 기억과 정서, 동기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기술하였다. 그는 인간 이성과 동물적 열정, 특히 성욕(Gay, 1986) 간의 지속적인이는 것을 반대하고 현대적이고 지적인 견해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교회 지도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권위에 대한 도전에 위협을 느껴 그의 책을 금서 목록에 포함시키게 하였다.한편, 일부 지식인들은 비록 이성주의보다는 경험주의를 선호함에도 불구하고 데카르트와 함께 심리학적인 질문에 대한 신학자들의 대답을 거부하였다. 이러한 지식인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은 영국의 정치가이며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Francis Bacon(1561-1626)이었다. Bacon은 뛰어난 인물이지만 성격적으로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점은 시인인 Alexander Pope로 하여금 그를 가장 영리하고 현명하며 가장 비열한 인간이라고 부르게끔 하였다(Quinton, 1980).그러나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에서 Bacon은 다른 관찰자들로부터 증명, 체계적 관찰, 회의법을 장려하는 현대적인 과학적 태도를 이끌어 내었다. 그는 쓸모없는 것은 가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영국의 철학자 로크(1632-1704)가 Bacon의 경험주의자로서의 발자취를 따랐다. 로크는, 인간은 감각을 통해 얻어진 인생 경험으로 채워 나가는 백지 상태에서 태어난다고 생각하였다. 데카르트와 같은 이성주의자들은 지식이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 반면에, 로크와 같은 경험주의자들은 지식이란 단지 인생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유전과 인생 경험의 상대적인 중요성에 대한 관심은 본성(nature)과 양육(nurture)의 논쟁으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이성주의와 경험주의 사이의 절충은 독일의 철학자 칸트(1724-1804)에 의해 이루어졌다. 칸트는 지식이란 물리적 환경으로부터의 감각의 조직화와 이해의 생득적 정신 기제에 의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비록 태어난 곳의 언어 경험에 의해 특정한 말을 하지만 말하는 능력과 언어는 타고난 기제에 의존하므로, 동물은 언어를 학습할 수는 없지만 말을 들을 수 있고 언어기제를 지닌 동물들은 경험을 통해 언어의 학습도 플라톤을 비롯한 다른 뛰어난 철학자들은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의 눈에서 발산된 빛에 의해 물체를 본다고 잘못 판단한 것이다. 플라톤은 이데아 이론을 주장하였는데 이데아는 이념이라고도 한다. 이성의 작용으로 얻는 최고의 개념이다. 여기에는 모든 경험을 통제하는 것이란 뜻도 있다 그리스어의 이데아(idea) 혹은 에크도스(ecdos)에서 나온 말. 원래는 모습이라든가 형태라는 의미였다.플라톤은 개개의 이데아 즉 1의 이데아, 삼각형의 이데아와 유일한 선(善)의 이데아로 나누었다. 선의 이데아는 철학의 최고 목표이며 변증법으로써 겨우 포착된다고 했다. 더구나 그것은 계속해서 파악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는 또 그것을 언어, 정의, 그림자, 진실 등의 다섯 단계를 거친 제 5의 지식이라 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는 이데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 정말로 늘 있는 것, 또한 감각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려진 삼각형은 지우면 없어지나 삼각형이란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뜻에서 개물은 이데아를 모방하고 분유(分有)한다고 했다. 이렇듯 플라톤은 지식이란 생득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생득론자였으며, 지식은 이성을 통해서만 사용이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성주의자였다. 플라톤의 사상은 과학적 심리학의 형태주의와 피아제와 같은 인지주의 심리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2.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르네 데카르트는 경험주의의 초기 발달 과정에 있어 주요 인물들 가운데 하나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고 연구할 수 있는 조용한 장소를 항상 찾으려 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사교적 생활이나 소란스런 장소를 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조정의 신하이자 군인으로 30년전쟁에도 참전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철학자와 수학자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기록된 바에 의하면 1619년 11월 10일 그가 다뉴브 강변에 있는 겨울 숙사에 있었을 때 한 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다듬어져 분석 기하학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대수적 에 해당된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가 상호작용을 한다고 보았다. 그는 실험적으로 뇌의 기저에 있는 송과선(松果線, pineal gland)을 상호 작용의 위치로 택해 보았지만 이것으로 결코 만족해하지는 않았다. 육체 그 자체는 기계로서, 별과 돌을 포함하는 자연적인 물체와 같다고 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과학적 유물론의 취향을 나타낸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편 그는 인간의 영혼을 기계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동물은 영이 없는 몸체를 가졌으므로 자동인형 또는 기계이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적인 몸체일지라도 동물과 구별되는 비공간적인 실체인 I'ame 곧 영혼 또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영혼은 인식하고 의지력을 발산하며 구조된 관념들을 소유하고 있다. 이 관념들 가운데는 기하학의 공리, 곱셈이나 덧셈에서 볼 수 있는 대수의 공식, 신에 대한 관념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많은 수의 관념들은 경험에서 우러나온다.그처럼 데카르트는 어느 정도 생득적인 관점을 소유하였고 마음과 몸이 상호 작용하는 이원론을 믿었으며, 인간의 몸과 동물에 관한 적어도 과학적 유물론을 견지하였다. 신체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자들이 해부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생리심리학과, 동물과 인간을 비교 연구하는 비교심리학의 사상적 기초를 마련하였다.3. 홉스 (Thomas Hobbes, 1588~1679)토마스 홉스는 인간의 마음이 활동적인 것에 착안하여 이 활동성에 관한 동태적 작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홉스에 의하면 행동의 동기는 쾌락 추구와 고통으로부터의 도피이다. 이 같은 쾌락 추구적 관점은 이미 희랍 철학자들에 의해 서술되었고, 그와 같은 시대의 인물인 데카르트에 의해서도 주장되었다. 데카르트와 홉스는 사랑을 가리켜 적극적인 연정과 쾌락에 연관된 정서요, 미움은 비 쾌락적인 것과 연관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주구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을 행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그들의 이와 같은 관념은 그 후에 제레미 반담(Jerem토머스 모어 경(Sir Thomas More)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정치 형태에 관해 비교적 냉정한 분석을 했다고 할 수 있다.마키라벨리나 다른 많은 염세주의적 철학가들과 마찬가지로, 홉스도 인간의 기본적 성품은 약하다고 간주하고 있으며 인간의 행위 동기는 목마름, 두려움, 배고픔, 자기 우상화 같은 것들로써 가득 차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인간이 타자와 함께 평화롭게 살려고 한다면 인간 사이에 깨기 어려운 계약을 통해 서로를 묶어 놓고 그 기반으로 사회 질서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사실 비난받기 쉬운 데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자기 추구적인 인간의 성격을 논한 프로이드의 개념에서와 같이 훗날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게 되었다.4. 로크(John Locke, 1632~1704)존 로크는 아주 영향력 있는 영국의 철학자이면서도 주로 정치가로서 활약했다. 샤프츠버리의 어얼(Earl of Shaftesbury)이 수상이었을 적에 그는 그의 막료로서 활약했다. 1690년에 로크는 그의 저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에세이』(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를 출간했다. 이 책은 흥미롭게도 그가 속해 있는 비공식적 저녁 토의 모임에 발표하기 위해 준비할 글을 모은 것이었고, 이것이 나중에 문제작이 되었다. 이 글은 비판적 경험주의가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질문, 곧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앎의 방법을 현실적이고 실제 문제에 입각해서 상식적으로 검토한 것이었다.로크에게 있어 관념(idea)은 정신의 기본 단위이자 기본 요소이다. 또한 요소들이 뭉쳐 그룹을 이룬다. 따라서 연상의 원리(principle of association)가 필요하게 된다. 로크는 이 특이한 용어를 그의 저서에 후기판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연상된 관념들은 단순할 수도 있고 복잡할 수도 있다. 관념들은 모두 경험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또는 정신이 그 자체를 되돌아보는 ‘반성 과정’(reflection pro.
    사회과학| 2005.11.26| 7페이지| 1,000원| 조회(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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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수교육의 최근동향 평가C아쉬워요
    * 특수교육의 최근 동향1. 특수 장애를 가진 아동들의 교육을 위한 법적인 발달장애를 가진 아동들의 교육을 위한 관심은 이미 18세기부터 시작되었지만, 법적 조치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초창기에는 장애를 가진 아동들의 인권과 복지에 주된 관심이 있었다. 1948년 처음 세계 인권선언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 정책을 유도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유럽과 미국에서는 장애를 가진 아동들의 교육을 위한 일련의 법률들이 제정되기 시작하는데, 미국에서 가장 획기적인 계기가 된 법률은 1975년 「전장애아 교육법」(EAHCA; 일명 PL 94-142)이라 할 수 있다. 특수교육과 관련된 법들을 재정비한 법률이 1990년의 장애인교육법(IDEA)이다.우리나라에서는 19 세기말에 들어 온 선교사들의 활동에 의해 특수교육이 시작되었으나, 구체적인 법률로 나타난 것은 1949년 말에 제정된 교육법 제81조로서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신앙, 성별,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등에 의한 차별 없이 그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하여 특수학교를 설치한다」라고 하여 특수학교의 설치 의무를 규정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근간이 되는 법률은 1977년 12월에 법률 제3053호로 제정 공포된 『특수교육진흥법』으로 그 동안 수 차례에 걸쳐 개정해 오다가 1994년 마지막으로 개정 확정되었다.2. 통합 교류교육의 강화특수교육에 있어서 최근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통합 교류 교육의 강화라고 할 수 있다. 세계 각 나라에서는 특수한 교육적 요구를 가진 아동들을 일반 학급 또는 일반 학교에서 교육시키고자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특히, OECD에 이미 가입한 나라들과 가입하고자 하는 나라들은 '장애를 가진 아동들의 통합 교류 교육의 정도'가 선진국을 지칭하는 지수 중의 하나가 되기 때문에 더욱 노력하고 있다.통합 교류 교육의 기원은 통합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 논란이 시작된 시기는 20세기에 접어들어서였다. 일찍부터 특수 교육을 체계적으로 기반을 확립했다고 하는 영국은 1920년대에 장애아동들의 일반학급에서 교육이 논의되었고, 특수 교육이 가장 앞섰다는 스웨덴은 1960년대 교육개혁을 단행하면서 통합 교류 교육이 시작되었다. 또한, 통합 교류 교육이 가장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자처하는 덴마크도 1969년 국회에서 학교의 기본 체제 개혁을 단행하면서 시작되었고, 특수 교육에 가장 재정을 많이 투자하고 있는 미국은 1975년 국회에서 전장애아 교육법을 통과시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오늘날은 거의 모든 교육 선진국에서는 특수 장애를 가진 아동들을 일반 학급에서 교육하는 것이 보편화되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한국특수교육 100주년이었던 1994년에 개정 공포된 특수교육진흥법(법제 연구원, 1994)에 특수교육 방법의 확장에 있어서 "일반 학교의 장은 특수교육 대상자 또는 그의 보호자나 특수교육 기관의 장이 통합 교육을 요구하는 경우에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p. 1415)고 규정함으로써 완전 통합의 학습의 장을 만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놓았다.3. 특수 장애를 가진 아동들의 교육의 기회 확대특수 장애를 가진 아동들의 교육 기회는 『의무교육』, 『무상교육』, 『적절한 교육』의 기준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미국에서 1975년 「전장애인교육법」을 발표할 당시 州에 따라 5세부터 18세까지, 5세부터 21세까지, 3세부터 21세까지 교육의 기회가 달라지는 모습을 나타냈다. 따라서, 특수교육 기회의 폭이 넓은 지역으로 이주를 하게되는 가정이 속출하였다. 이런 기회의 불평등은 「전장애인교육법」이 두 차례 개정되면서(1983년, 1986년) 오늘날은 거의 대부분의 州에서 3세부터 21세까지 장애인들이 특수 교육의 기회를 받고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1986년도에 개정된 법률에서는 0세부터 2세까지도 특수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였다. 영국에서는 모든 장애인들에게 의무교육을 보장하고 있으며, 교육 선진국으로 갈수록 장애를 가진 아동들의 교육의 기회 확대는 늘어나고 있다.우리나라 「특수교육진흥법」 제5조에서도 의무 교육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을 의무교육으로 하고, 유치원 및 고등학교 과정의 교육은 무상으로 한다고 밝힘으로써 장애를 가진 아동들의 교육 기회는 법적으로 보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소위 '결정적 시기'라고 불리는 유아기 및 유치부의 특수교육은 포함시키지 않아 실질적인 특수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특수교육 정책이 영재교육이나 학습부진아 교육에 집중되고 있어 다른 영역의 특수 장애를 가진 아동들의 관심, 흥미, 특성들이 반영되지 않는 주지주의 특수교육정책은 매우 아쉬움을 낳고 있다.4. 특수 장애를 가진 아동들의 개별화 교육최근의 동향은 일반 교육이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는 교육'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장애를 가진 아동들의 교육에 그치지 않고, '개별적인 가족 서비스 계획'도 포함하여 특수교육의 범위를 더욱 넓어졌다. 적절한 교육도 IEP 및 IFSP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학부모들의 요구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가장 많이 배울 수 있는 교육은 학습자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교육이다. 장애를 가진 학생의 능력과 필요에 따라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이들의 가정환경까지도 교육 계획에 반영되어야한다. 이는 가장 적절한 교수·학습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학습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한 장애 학생들의 교육을 계획함에 있어서 교사뿐만 아니라 학부모, 사회복지요원, 심리학자, 의사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 요원들이 참여하게 되고, 여기에서 부모는 가장 적절한 교육환경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많은 교사들이 '개별화 교육'을 교사와 학생의 1:1 교육으로만 생각하고 있지만, '학습자 개개인에게 초점을 둔 교육'으로 이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1:1 교육은 개인지도에 해당한다.5. 장애에 관한 인식의 변화특수교육의 동향을 잘 알려주는 것 중의 하나는 장애를 지칭하는 용어의 변화이다.장애를 가진 아동들에게 '특별한' 이름이 따로 부여되었던 까닭은 특수교육에 대한 문제 해결의 기본 통로를 마련해 준다는 데 그 의의가 있었다. 즉, 어떤 기준에 의해 특정 집단을 구성하고, 그 집단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기 위해서 재정적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서 그 집단에 '정신지체', '정서/행동 장애', '지체부자유', 등과 같은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용어들이 오히려 통합 교류 교육을 방해하고 있다고 인식하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장애를 가진 아동들의 교육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표현이 점차적으로 완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다. 더 나아가 영어로 쓰인 글들을 보면, 과거에는 'handicapped children', 'disabled children', 'exceptional children' 등과 같이 사람 앞에 특정장애 이름을 달았었는데 점차적으로 바뀌어 'children with handicaps', 'children with disability', 'children with exceptionality' 등과 같이 바뀌어 가고 있다. 이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전적으로 모든 기능이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보다는 일부 한 기능 또는 중복 기능만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을 나타냄으로써 정상인들과 동등하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적어도 어떤 한 측면에서는 장애를 갖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학| 2002.05.06| 4페이지| 1,000원| 조회(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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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사]삼국유사
    1.일연이 말하는 불교일연국존은 선종산문 가운데서 가지산문 출신이다. 다른 산문 출신인 지눌의 법맥을 이은 것을 자처 하였다. 국존이 다른 산문인 지눌의 법맥을 이은 것을 자처하게 된 것은 혜심의 선문염송에서의 영향과 몽여와 직접 교류를 하였고, 수선사 계통과 관계가 깊었기 때문이다.일연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스님이었다. 오묘한 불교의 이치를 막힘 없이 강론하는 자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깊은 감화를 받았으며, 희망과 위안을 받곤 했다. 이런 까닭으로 만년에는 극진한 예우와 화려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일연이 궁궐에 드나들 때에는 조정 대신들이 옷자락을 걷어올리고 예를 올렸다 하니, 그 영광은 임금 못지 않았다. 그러나 일연은 온갖 영화를 누릴 수 있는 화려한 서울 생활에서 벗어나기를 원했고, 마침내 임금의 극진한 만류가 있었지만 노모가 계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곳에서 수도에 정진하는 가운데 한 생애를 마감했다. 일연은 젊은 시절부터 세상을 뜨기까지 세속적 욕심을 버리고 피나는 고행만을 거듭하며, 오직 한 길만 걸으신 덕 높은 스님이었다.왜, 일연은 화려한 궁궐생활을 등지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것일까?일연은 '생계불감(生界不減) 불계부증(佛界不增)'의 가르침을 홀연히 깨우침으로써 새로운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생계불감(生界不減)'이란 삶의 세계는 줄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죽는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부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줄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불계부증(佛界不增)'이란 부처의 세계는 늘어나는 법이 없다는 의미다. 부처의 세계는 돌아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행한 일에 따라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나므로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연은 삶의 세계나 부처의 세계는 돌고 돌아 어느 쪽이든 줄거나 늘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깨우치자, 세상의 온갖 일이 조금도 꺼릴 것이 없게 되었다고 한다.위의 일화를 보듯이 일연이 추구하는 불교사상은 선종이다.선종은 학문에 의하지 않고 좌선과 문답에 의해 직접 부처의 마음을 깨닫는 것으로일상생활 속에서 깊은 명상을 통하여 자아(自我)의 참된 모습을 규명해보는 실천행을 직접 몸으로 보여 주었다.2.그리스 로마 신화와 우리나라 신화두 신화를 비교하기 위해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헤라클레스와 우리나라 신화의 주몽을 비교해 보겠다.헤라클레스는 지칠 줄 모르는 연인 제우스와 황홀할 정도의 아름다움을 지닌 알크메나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알크메나는 제우스와의 잠자리 후 다음날 뛰어난 무사인 남편 암피트리온과 동침을 하게 되면서 쌍둥이를 낳게 된다. 불사조의 자식이 이피클레스이다.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인간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남편의 자식들에 대해서 호의를 품지 않았으므로 쌍둥이가 아직 요람 속에 있을 때 두 마리의 독사를 보내어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어린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두 손으로 그 뱀들의 목을 눌러 죽였다. 죽은 뱀들을 양손에 쥐고 앉아 있는 헤라클레스를 보고 놀란 부모들은 당장 에 눈 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불러 물어보았다. 그가 예언하기를 헤라클레스의 앞날은 영광으로 가득 찰 것이며, 신으로까지 추앙될지도 모른다고 하였다.하지만 그의 예언대로 헤라클레스의 앞날이 헤라의 미움으로 인하여 밝지만은 않았다. 헤라클레스가 결혼을 한 후에도 헤라의 미움은 계속되었다.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미움으로 인해 아내와 자식을 자신의 손으로 처참하게 죽이게 되었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죄값을 치르기 위하여 자기가 싫어하는 사촌 형인 에우뤼스테우스의 부하가 되어 그의 모든 명령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때 에우뤼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노역(勞役)'이라는 달성할 가망성이 없는 모험을 그에게 명령하였다. 하지만 불굴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고 드디어 자신에게 부과되었던 모든 과업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그렇지만 헤라클레스에게 휴식이란 없었다. 그를 미워하던 헤라의 음모로 그는 에우리토스 왕의 아들 이피토스를 죽이게 되며, 제우스의 판결로 인하여 1년간 리디아의 여왕인 옴팔레의 종이 된다. 종이었던 헤라클레스는 중요한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옴팔레를 감탄시킨다. 이에 옴팔레는 헤라클레스를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게 된다.죽음 직전에서 자유의 몸이 된 헤라클레스는 올림포스로 올라가게 되고, 올림포스에서 여러 가지 공적을 세우게 된다. 그러던 도중 신들의 부름으로 헤라클레스는 기쁨으로 가득 찬 신성한 정상에서 신들에게 영접을 받게 되고, 마침내 헤라와도 화해를 하게 된다.헤라클레스는 올림포스에서 받아들여진 몇 안 되는 인간들 중의 한 명이 되었고, 그리스인들에게 있어 지성을 겸비한 힘의 화신이 되었다.주몽은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하백의 딸 유화 사이에서 알로 태어나 금와의 손에 키워졌다. 큰 알의 껍질을 깨고 나온 주몽은 골격과 외양이 영특하고 특이했다. 어릴 때부터 기골이 준수했던 주몽은 활 다루기에 능하여 주몽이라 이름 지어졌다. 금와에겐 일곱 아들들이 있었는데 재주와 능력이 모두 주몽에게 미치지 못하여 주몽은 일곱 아들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주몽을 미워하던 여러 아들들과 신하들이 모의하여 주몽을 해치려고 하자 주몽의 어머니 유화가 주몽에게 장차 그들을 조심할 것을 일러주었다. 이에 주몽은 오이 등 세 사람을 벗으로 삼아 도망을 결심하게 되고 고기와 자라의 도움을 받아 뒤쫓던 기병을 따돌리며 강 건너로 도망을 간다.그 후 주몽은 졸본주에 도읍을 정하고 고구려를 세우게 된다.위의 두 신화에 나오는 영웅 헤라클레스와 주몽은 몇 가지 비슷한 점이 있다.우선, 고귀한 혈통을 가지고 태어나며, 남들과는 달리 탁월한 재주를 가지며, 비정상적인 출생을 한다. 또한 버림을 받거나 미움을 받아 고생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위기에 처하지만 그 위기를 극복하고 위대한 승리를 하게 된다.3.알에서 태어난 왕들의 비교1박혁거세 - 진한 땅의 6부 조상들이 알천의 언덕 위에 모여 임금님의 필요성에 대해 의논을 하고 있던 도중 남쪽에 이상한 기운이 땅에 있는 것을 보고, 그 곳을 찾아가 보니 붉은 알이 있었다. 그 알을 깨보니 단정 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를 얻었다. 몸에서 광채가 나고, 하늘과 땅이 진동하고, 해와 달이 밝고 맑아서 그 까닭으로 이름을 혁거세왕이라 하였다.2석탈해왕 - 석탈해는 용성국 사람이다. 용성국에는 28명의 용왕이 있었는데 모두 인간의 태내에서 태어나 5,6세 때 왕 위에 앉았다. 그의 아버지 함달 파왕은 적녀국의 왕녀를 맞이했는데 아들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아 들을 점지해 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7년 뒤에 알을 하나 낳았는데 이 에 함달파왕은 인간이 알을 낳는다는 일을 불길한 징조라고 화를 내 며 궤짝을 짜서 그 안에 알을 넣고 일곱가지 보석과 노비를 배에 실 어 정처없이 흘러가게 하였다. 그 알에서 나온 것이 바로 석탈해였 다. 그 때 함달파왕은 인연이 있는 곳에 도착하거든 나라를 세워 살 아라고 빌었다. 석탈해의 배를 붉은 용이 나타나 수호해 주면서 토함 산까지 왔다. 토함산에 올라 석총을 만들고 모략을 써서 호공의 집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때 남해왕이 석탈해의 슬기 있음을 알고 맏공주 를 아내로 삼게 하니, 이가 아니부인이었다. 석탈해는 궤짝 뚜껑을 열고 알의 껍질을 깨고 나왔다 하여 탈해라 불렸다. 또한 까치의 글 자 작에서 조를 빼서 성을 석으로 했다. 후에 신라의 제 4대왕이 되 었으며, 탈해 임금 또는 토해 임금이라 불렀다.
    인문/어학| 2002.03.22| 4페이지| 1,000원| 조회(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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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과 환경] 환경위기 문제와 그 극복
    REPORT과목: 인간과 윤리학과: 심리학과학번: 20121081이름: 김 병 철제출일자: 2001년 5월 22일담당교수: 이 상 봉 교수님환경위기의 문제와 그 극복1. 서론오늘날 우리 인류는 발달된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자연에서 의.식.주 의 재료를 많이 획득하여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을 지나치게 파괴하고 오염시켜 자연의 반작용으로 수많은 생물의 종류가 멸종되어 가고 인류의 생활과 생존마저 위협을 받는 심각한 사태에 놓이게 되어 환경보존은 국가의 시책은 물론 교육의 주요 목표가 되었으며, 환경보존 문제와 그 대책은 인류의 급박하고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1 -자연과학적 지식,기술의 발달은 인간에게 풍족하고 편리한 삶을 누리게 해서 물질적 행복을 선사하였고 자연을 지배하는 주인으로 군림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부차적인 문제로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병들게 해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하여 인간의 삶과 인간사회가 끊임없이 발전하고 번영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인간은 지구라는 생명의 요람 속에서 수 십억 년이라는 기나긴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생존의 터전을 삼아 왔으며 인간 모두가 지구인이기 때문에 지구상의 깨끗한 환경을 가질 권리가 있고 동시에 혼탁한 공기와 더러운 물과 헐벗은 자연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물론 나아가 정화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2.본론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지구환경은 분명히 위기국면으로 간주할 수는 바, 전세계의 자연환경은 지구인 스스로에 의해 회복불능의 파괴에 직면하여 있고, 한계상황을 훨씬 넘어버린 심각한 환경오염은 100만년을 상회하는 역사를 통해 번창해 온 인류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전세계적인 환경위기의 주요한 원인으로 환경개발 세계위원회가 이미 1987년에 환경문제의 구조적 원인으로 인구증가, 식량부족, 에너지사용 증대, 빈곤, 외채 등 경제.사회적 남북격차가 있다고 지적한 바가 있다.환경문제를 논함에 있어서는 주로 오염과 공해를 전제로 한 경우가 가장 많으나 사실상 환경은 자연적 환경과 인위적 환경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며, 자연환경도 대기환경, 수리환경, 토양환경, 주택환경, 생태환경 등으로 나눌 수 있고, 인위적 환경은 법질서를 위주로 한 사회횐경과 경제활동을 주로 한 산업환경, 그리고 교육환경 또는 문화적 환경 등 다양하게 분류하는 것이 원칙이겠으나, 오늘의 환경보전이나 오염문제는 자연환경의 주된 관심사가 되고 있다. 따라서 환경의 변화가 인간생활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효과를 주는 주된 문제를 독물. 화석연료. 핵물질. 인구증가에 의한 환경의 오염으로- 2 -국한 시킬 수 있다.독물에 의한 환경오염은 자연발생적인 것보다 인위적 활동, 특히 공업에 기인하는 경우와 농약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장폐수의 심각성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지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간의 감정싸움에서부터 지방주민들간의 싸움으로까지 확산되고 있을 만큼 산업은 오늘의 환경오염에서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화석연료에 의한 환경오염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거의 모든 에너지원을 거의 완벽하게 석탄, 석유 등의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화석연료에는 대기를 오염시키는 물질로 인해 기후상의 영향을 주는 한편 산소소비로 인한 오존층의 파괴효과는 미래의 중대한 오염으로 주목 받고 있다.핵에너지는 2100년경이면 완전 고갈 될 것으로 예상되는 화석연료의 대체 에너지원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핵실험이나 원전사고 등에서 방사능오염의 직접적이고 대규모적인 피해를 끼친 바 있고 핵전쟁에 의한 핵폭발은 핵겨울이라는 기후급변과 인간을 비롯한 생태계 전체에 파멸을 가져 올 수 있으며 원전에서 생성되는 핵폐기물의 대기 중 방출은 미증유의 대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수반하고 있다. 핵폐기물의 완변한 보관은 여러 가지 여건상 매우 어려울 것으로 추정되어 핵에너지 사용의 위험은 상존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는 인구 집중현상을 초래해서 집중된 인구가 대량의 생활폐수를 방출하게 되는데 이는 공장폐수의 방출 못지 않게 하천, 호수, 내해 등의 부영양화를 촉진시켜 수질오염의 중대한 문제를 유발시키고 있다. 인구의 퍽발적인 증가는 상대적인 주거면적의 축소효과를 가져와 주거의 고층화, 집단화 더불어 녹지공간의 감축에 따르는 생물권의 불균형 즉, 생태계의 피괴효과를 급진적으로 초래하고 있고 건설활동이나 산업경제활동, 호흡을 위시한 생체의 물질대사활동 등을 통한 갖가지 오염의 파급효과도 매우 큰 문제가 되고 있다.인류가 환경오염으로부터 해방되어 인간다운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그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지혜가 동원되어 있다.- 3 -3.결론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환경보전이 중요하다. 우리 인간들의 삶의 중심은 자연이다. 자연을 생물학적 생존권을 갖는 엄격한 인격체로 격상시켜 인간과 자연은 윤리적인 관계를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도 다른 유형의 생물과 마찬가지로 생태계의 법칙에 의해서 지배되었다는 인식하에 생태계보존을 위한 노력을 통해 자연을 보호하자는 윤리관이 정립되어야한다. 그런 다음 정립된 윤리관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참고문헌인간과 윤리출판사: 대구대학교출판부출판년도: 1997년 12월저자: 인성교육교재편찬위원회참고 쪽수: 289~308 쪽- 4 -
    자연과학| 2001.12.04| 29페이지| 1,000원| 조회(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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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사회] 현대경제사회의 문제점과 대책마련
    현대경제사회의 문제점과 대책마련Ⅰ. 서 론한국은 얼마 안 있어서 두 번째의 식민시대를 맞이한다고들 한다. 경제위기로 인한 IMF, 미국, 일본으로부터의 경제지원이 바로 그것이다. 정부의 장기계획에 따르면 한국경제는 대략 2000년까지 연평균 7%이상 성장을 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고도성장의 목표 뒤에는 무엇보다도 매년 신규로 노동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50만명 이상의 근로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줌으로써 사회 안정을 기하려는 정부 당국의 의지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정부가 계획한 대로 7%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거나 1인당 GPD를 선진국 수준으로 높였다고 해서 한국 경제가 모든면에서 잘되어 가고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의 성장경험에서 보았듯이 성장의 대가로 공해가 심화되거나 경제성장이 모든 근로자와 기업인의 자율과 경쟁, 그리고 창의에 의한 결과라기보다는 일부 계층이나 일부 대기업에서 주도 된다면 바람직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와 함께 경제성장과정에서 도시와 농촌의 균형 있는 발전과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 증진도 요구되는 것이다. 7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 급성장을 거듭했던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된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국내외의 여러 변수가 있기 때문에 비전공자인 나의 지식으로 무리가 있지만 간단히 지식의 한도 안에서 써보고자 합니다.Ⅱ. 본 론1.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발전과정현재 위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 과정을 살펴 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우리나라 경제는 60년대의 풍부했던 인력으로부터 시작된다. 즉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과 외국자본도입으로 충당한 자본재를 결합시켜 산출증대를 이끌어온 것이며, 또한 수요측면에서 주된 교역상대국 이었던 미국시장은 한국의 공급능력에 비해 무한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외자도입에 의한 수출지향적인 성장전략은 고성장의 결실 외에 인플레와 외채문제를 야기시켰으나 80년대 초 외채와 인플레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면서 안정성장의 길을 걷는다고 생각된다. 특히 박정희 정권과 5공 군사정권의 수출지향의 지속적인 정책과 독재에서 나오는 추진력, 대기업 육성을 통해서 급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고 본다.이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성장 초반의 의류,신발부터 시작해서 해외 대형 건설, 저가형 자동차 및 가전제품, 메모리 분야 반도체 산업을 통해서 많은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었다.9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는 고도 급성장을 통해서 아시아의 용 이라는 호칭을 받으며 88올림픽을 개최하는 등 외부적으로는 경제 개발국의 모범답안 인 것으로 내부적으로는 선진국으로의 발돋움을 기대하는 국민들의 자부심으로 상당히 밝은 미래를 설계했던 것이다.2. 현 경제 위기의 원인위에서 말한 고도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왜 현실과 같은 경제 위기를맞게 되었을까? 이에는 수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무엇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고 하나의 독립적인 여러 이유만도 아닌 복합적이고도 다양한 흐름의 작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당부분은 과거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먼저 노동여건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성장 초기에는 전후 사정상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풍부한 노동력이 보장 되었고 박정희, 군사정권에서는 노동자의 권리 자체를 강제적으로 억제하는 정책으로 어느 정도 값싼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6공화국 군사 정권 말기에 들어서면서 많은 변화를 보이게 되었다. 이미 어느 정도 성장을 이룩한 상태에서도 노동자들은 충분한 권리와 대우를 못 받았기 때문에 불만은 터져 나왔고 이는 결국 극렬한 노사분규를 거치게 되었다. 또한 배분의 불공평성은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심화되어 잘 사는 사람은 계속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못 사는 사람은 인간다운 삶조차 누리기 힘들 정도로 사회갈등이 커졌다. 이는 충분한 기간을 거치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 없이 독재하에서 사회, 문화적인 발전보다 정치적인 계획에 따라 급성장을 통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값싼 노동력만으로 했던 발전은 후발 국가들인 동남아와 중국에 의해서 견제 받았고 문민정부 후에는 노동의욕 상실에 의한 생산성 저하와 실질임금 상승으로 인해 저가시장에서는 동남아국가, 중국등과 경쟁할 수 없는 정도까지 되고 말았다.다음으로 중요한 원인은 뿌리 깊은 정경유착의 부패이다. 얼마 전 있었던 한보비리가 그 전형적인 예로 대기업 위주의 정책, 군사 독재에 의한 타락한 군인들의 정치로 인해서 우리나라는 능력과 기술보다는 정치적 힘을 얻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사회였다. 따라서 기술개발의 비용보다는 정치적인 검은 자금이 우선시 되었고 결과적으로 기술 발전의 한계로 첨단 기술 보유가 힘들어졌다.이는 90년대 들어서 세계적으로 높은 필요도가 생긴 컴퓨터, 반도체 분야에 있어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단적인 예로 휴대폰,PCS등 현재 각광을 받고 있는 신기술 중 기술의 해외 의존도는 80%를 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내가 근무하게 될 대기업의 기간산업회사에도 마찬가지 실정이다.또, 부패한 사람은 사회적 발전보다도 개인적 치부에 급급했기 때문에 국가 경제는 더욱 악화될 수 밖에 없었다.또한 문민정권의 정책 부재와 기업들의 판단력의 문제를 들 수 있다. 문민정부에 들어서 금융실명제등 완전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정책은 이미 군사 독재의 부패하고도 획일적인 정책에 익숙해진 경제문화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했으며 정책에 대한 유지, 관리 능력의 부재로 인해서 기업들은 내외적으로 적응에 실패하였다고 볼 수 있다. 얼마 전 전경련의 실명제 유보 제안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기업들의 경우 해외시장의 수요가 위축된 상황에서 지난 몇 년 동안 이루어진 대규모 설비투자 그리고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으로 인해 산출조정에 실패해 재고가 누적되어 현금흐름에 문제가 발생한 것 역시 상당한 원인이 된다고 한다. 이는 기업금융에 있어서도 단기자금을 조달해서 장기투자를 한 것이 최근 제일은행 및 종금사 등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문제를 야기시킨 한 요인이 되었다.그 외에 국내여건이 악화하는 가운데 국제경쟁 심화로 국제여건도 악화된 것이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과거 고속성장을 가능케 했던 60-70년대의 우호적인 국제여건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상황 이였다고 할 수 있다.현재는 과거 맹방이라고 부르던 미국도 있을 수 없고 세계적으로 정치적 이념을 고려하는 것보다 각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흐름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우리의 시장을 개방하라는 강대국의 압력을 받고 있는 실정으로 앞으로도 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의 인식이다. 성장을 통한 부의 축적은 국민들의 인식까지 변화 시켰고 90년대의 정보 시대에서 더 많은 부를 가진 생활들을 접하면서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부 인양 생각하게 되었다고 본다. 그 단적인 예가 자동차 보유대수와 무선통신 서비스의 이용자 수 증가이다. 이는 생활의 필수품으로 인식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과도한 수요로 인해서 각각 석유 수입과 무선기술 수입이라는 엄청난 무역적자를 가져왔다. 소비향락을 미화하는 경향은 그런 문화를 보고 성장하는 세대들에게 있어서 더욱 큰 문제로 지금보다도 앞으로도 계속 문제로 남을 것이다.결론적으로 말해서 가계의 적자가 모이고 모여서 현재와 같은 국가 위기상황으로 나타난다고 보아도 큰 무리가 아닐 정도이다.Ⅲ. 결론: 앞으로의 대안지금의 국가 위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국민들의 절약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국민들의 희생은 절대 지금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가장 먼저 선결되어야 할 문제는 정치 문화의 발전과 기업들의 시장 경제 적응이라고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은 정치를 위한 정치로는 국민들의 희생만을 요구 할 것이고 설령 국민들의 희생만으로 회복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다시 오늘의 결과를 되풀이할 것이다. 또한 과거방식처럼 단기적인 경기부양정책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해도 다시 동일한 문제가 반복된다고 본다. 정부는 시장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규제위주의 경직성을 청산하며 경쟁의 장애를 제거하는 역할을 하여야 하며 인위적인 시장개입을 자제하고 일관된 정책으로 국민의 신뢰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상황을 시장경제 체제의 현실로 인식하고 적응하는데 힘써야 할 것으로 후진적인 경영형태를 개선하고 부실한 기업들은 시장경제에 따라 정리하는데 어떠한 거부감도 느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또한 현재의 악화된 국제여건을 정상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국제여건의 호전을 기다려 국내경제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일 것이다.
    사회과학| 2001.12.04| 5페이지| 1,000원| 조회(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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