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의 역사브루스 스프링스틴록의 황무지였던 80년대에 저항 록으로 기치를 드높인 브루스 스프링스틴.마이클 잭슨으로 상징되는 감각적 음악에 취해있던 80년대 팝계는 저항 로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거친 포효에 경악한다. '록의 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통렬한 비판 의식을 담은 저항적 록으로 팝계를 뒤흔들었다. 그의 앨범 '미국에서 태어나(Born in the USA)'는 경기 침체로 뿌리째 흔들리던 미국 가정과 월남전 참전자 등 사회 소외층의 참담한 실상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노래들로 채워졌다. 미국사회에 대한 역설적 저항의 노래였다.'미국에서 태어나'는 85년 전세계적으로 1천5백만개 넘게 팔렸다. 한 앨범에서 무려 7곡이 빌보드 차트 톱10에 올랐다.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와 타이 기록이었다. 끝 모를 것같던 '스릴러' 열풍이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평론가들은 "미국의 암울한 실상을 록의 폭발음으로 파헤쳤다"고 높이 입을 모았다. 유력지 '뉴스위크'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에게 '가장 위대한 미국의 로큰롤러'라는 극찬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저항 록의 거인' 브루스 스프링스틴도 감각적인 유행 음악 흐름에 홀로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팝계 무게 중심은 곧바로 마돈나의 춤판으로 옮겨앉고 만다.1. 힙합음악과 댄스의 유래힙합댄스에 대해 우리는 단지 힙합음악에 추는 춤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릴적경험에 비추어볼 때, 힙합이라는 음악이 나오기 이전에, 1980년대 Rap Music이라는 흑인음악장르가 팝스계자체를 평정해버렸다.힙합음악과 춤을 이해하기보다 그자체를 느끼기 위해서는 랩음악에 대한 역사를 이해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랩이라는 어원은 본래 흑인 Slang(속어,은어)의 의미로 지껄이다, 떠벌이다. 의미며, 기원적으로 보면 60-70년대사이 소울뮤직에서 간간히볼 수 있는 나레이션이나 50년대 R&B음악에서 샬라라라~, 밥류와리와~등 이러한 것에 기원을 둘 수 있다.최초의 랩음악으로는 Chic그룹의 'Good라는 Slang(속어,은어)탄생시키게 된 것이다.그리고 음악과의 동반자로 힙합댄스는 위 랩문화의 모든정서와 창조물들을 이어받은 90년대의 NEW인 것이며, 힙합음악의 위대한점은 모든음악과 접목 할 수있다는 점 이며, 또한 여러형태의 힙합댄스가 창조되어 질것이다. 다시말해서 힙합댄스의 모체는 랩댄스라고 말하고싶다. 일본의 댄스자료에서 보여지는 70%대부분이 올드랩댄스다.나머지 30%만이 힙합댄스의 형태를 보여주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로 힙합댄스를 추기위해서는 자료보다는 힙합의 본고장인 미국 뉴욕, LA등 스트리트에서 그들과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댄스는 댄스 그자체로 통함을 항상 마음에 새겨두고 랩 그리고 랩뮤직 과 힙합음악 그리고 댄스는 스트리트의 문화임을 명심하자.2. 올드스쿨과 뉴스쿨힙합댄스의 이해1990년대 이후 디지털기술의 탄생은 음악의 표현범위를 무한대로 발전시키고 있다. 물론 음악의 이론은 작곡을 하는데는 필요충분의 요건이지만, 아나로그 사운드에서 디지털사운드의 탄생은 힙합음악을 만드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느낌과 창작을 하게 만들었고 그 힙합음악은 춤을 추는 댄서로 하여금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하였다고 생각한다.다시 말하면 음악이 변하면 춤을 추는 매니아들의 춤도 변한다. 새로운 춤이 있다면 새로운 음악이 항상 그바탕에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듣고 안무를 하는 것이 진정한 안무며, 안무를 만든후 음악에 맞추는 것은 체조일뿐이라고 생각한다.그러한 것이 바탕이 되어 표현의 변화와 변형을 낳은것이라고 생각한다. 올드스쿨힙합댄스는 많이 정형적인것에 비해 뉴스쿨의 힙합댄스는 프리스타일이 많고 비정형적이며 변형성이 많다. 90년대부터의 춤을 뉴스쿨이라고 정의내리는 것은 오만이라생각하며, 그저 그렇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 느낌이 든다.예를 들면 브레이크댄스기술에서 물구나무서서 회전하는 기술을 1990'S라는 기술이 있다. 자료를 통해 이기술은 1980년에도 있었지만 1990's의 많은 발전과 변형은 90이후에 자리잡은 것이다. 스트리트춤에 정의를 내려서는 에 대한 의견은 상업적이냐 아니냐로 분분했다. 어찌되었든 Heavy Metal이란 장르가 살벌하기만 하지 않고 멋진 멜로디로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음을 보여 주고 결과적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시켰다는 점만은 사실이다.역시 5년여만의 반가운 재기작인 본작으로 과거의 팬들이 모두 만족해하고 즐거워하고 있다. 이들도 사운드는 80년대 초반보다는 80년대 후반, 90년대 시절의 연장을 들려 주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첫곡의 가사가 초기 작품의 연장 스토리인 점이나 좀 더 꾸밈없는 자연적인 모습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목표점은 훨씬 과거로의 복귀를 의도하고 있는 듯하다.이제 복고풍이 되어 돌아온 이들의 음악에 더 이상 상업성 운운하는 시비를 붙이기 힘들 것이다. 결국 그들의 음악은 그 자체로 그들이 하고자 했던 음악이었음이 세월이 흐른 뒤에 얻어진 객관성에 의해서 증명된 것이다.Motley Crue [ New Tattoo ]90년대 들어 Heavy Metal이 몰락하는 데에는 시대적인 흐름의 영향도 있기는 했지만 대표 그룹들의 핵심 멤버들이 탈퇴하는 표면적인 요인도 크게 작용하였다. Iron Maiden, Judas Priest 모두 핵심인 보컬이 탈퇴하며 지지도의 폭락, 활동의 침체라는 커다란 시련을 겪게 되었으며 여기 소개되는 Motley Crue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실 보컬 빈스 닐(Vince Neil, v)의 복귀는 이보다 훨씬 먼저 이루어졌었다. 하지만 그 때 발표된 [Generation Swine]은 과거의 사운드보다는 당시 유행하는 Alternative적인 요소를 많이 보여 주었으며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었다. 그리고 나서 이번에는 토미 리(Tommy Lee, d)가 탈퇴하는 사건을 겪기까지 한다. 본 앨범은 올해 발표된 일련의 복고풍 앨범들 중에서 가장 과거로 많이 돌아가버린 음악과 사운드를 들려준다. 먼저 언급된 앨범들이 80년대 초반 전성기보다는 어중간한 80년대 후반 정도로 복귀가 되었다면 이 앨범에서 들려주는 사운드는 80년 하는 걱정을 송두리채 날려버린다. 가장 전성기에 필적한 사운드로 분명하게 회귀, 부활한 앨범이다. 'The One You Love to Hate'에는Bruce Dickinson이 찬조 출연해서 듀엣으로 불러 주고 있기까지 하니 가히 80년대 Metal의 진수를 다시 보여 주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다.조지 윈스턴의 음악에 대하여...."주변에서 좋다고 하길래 음악에서 위안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 주저하지 않고 사서 들었다. 예상대로 참 편한 음악이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뭔가 사색에 잠기게 하는 힘이 있었다. 처음 느껴보는 이성적인 연주 음악이었다." 지난 86년 오랜만에 만난 한 친구는 조지 윈스턴의 음반 12월(December)에서 받은 감동을 그렇게 표현했다. 이성적인 음악? 애매한 듯 하면서 꽤 적절한 묘사라고 생각을 했다. 그 친구만이 아니라 당시의 많은 음악 팬들이 그와 비슷한 느낌을 얘기하곤 했다. 그렇듯 확실히 다른 느낌 때문에 정말 다수의 대중들이 조지 윈스턴의 투명한 피아노 공명음에 너도 나도 '접속'되었다. 피아노 연주음악으로는 이전 그 어디에도 그런 것은 없었다. 피아노 연주곡이 감상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편안함과 애잔한 무드 등 지극히 감성적인 것들이다. 실제로 조지 윈스턴에 앞서 국내에서 인기를 누렸던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나 프랭크 밀즈의 를 통해 우리의 음악 수요자들은 '낭만'을 얻었다. 조지 윈스턴의 것은 그러나 분명히 종이 달랐다. 팝 연주음악의 고전적인 분위기라 할 낭만과 감성의 수준에서 머물지 않았다. 의 대표적인 곡인 추수감사(Thanksgiving)나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Variation on the Canon by Pachelbel)에는 그것들 뿐 아니라 '사색과 명상'이란 고부가가치가 있었다. 지친 사람들을 보듬는 감성의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제와 내일을 추스르게 하는 '이성'의 중력까지 갖춘 것이었다. 어쩌면 이 때문에 그 무렵 감각적인 발라드가 유행전선을 독점하는 상황에서 그 시대 자의 음악세계가 독특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 뿐이다. 그 차별화된 그리고 '특화'된 연주음을 음악 관계자들은 새시대의 음악이란 의미에서 '뉴 에이지 뮤직'(New Age Music)이란 신조어를 갖다 붙였다.80년대 후반 는 어느 면에서 뉴 에이지 음악으로 선전(?)되면서 한층 음악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 사실이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음악 팬들은, 특히 매니아들은 새로운 경향이라 하면 일단은 귀를 쫑긋 세운다. 조지 윈스턴을 비롯해 강제로 뉴 에이지 사단으로 분류된 음악인들은 이 용어를 극도로 싫어한다. 우선은 그 음악 업자들이 마치 새로운 상품인 듯 과 포장해 손쉽게 마케팅 하려고 만들어낸 음험한 상습분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뉴 에이지가 신을 부정하는 음악이라는 혐의를 받으면서 음악계의 고질적인 종교와 음악간의 논쟁을 야기시킨 것도 크게 작용했다. 두 차례나 내한했던 야니도 이러한 피해에 시달렸던지 자신과 자신의 음악에 절대로 뉴 에이지라는 말을 쓰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한 바 있다. 그걸 떠나서 하기사 어떤 뮤지션이 그 만이 음악으로 얘기되길 원하지 한 장르에 속한 음악으로 구분되길 원하겠는가. 조지 윈스턴은 자신의 고유 음악영역을 을 비롯한 '사계절' 연작 앨범으로 굳게 확립했다. 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알려졌으나 실은 Windham Hill 레이블을 통해 80년에 가을(Autumn) 그리고 2년 뒤 겨울에서 봄으로(Winter into Spring)를 먼저 발표했다. (Longing/Love)을 위시한 서정적인 곡으로 채색된 은 비록 히트하진 못했으나 조지 윈스턴의 앨범 가운데는 물론 재즈사의 명반으로 손꼽힌다.은 그야말로 수채화처럼 맑은 자연의 서정성을 조지 윈스턴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단선율의 피아노 연주로 유려하게 주조해냈다. 자연, 그리고 환경이란 말도 조지 윈스턴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연관 어휘들이다. 실로 '환경음악' 또는 '녹색음악'이 따로 없다. 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이 앨범과 등 전작들이 국내에서 모두 발매되어 지각
< 기자 동래설의 주인공, 기자는 누구인가? >♧ 서론- 요즘 우리 사회에는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이러한 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항시 되풀이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의 반응은 매 번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손에 의해 왜곡된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는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번 기회를 통해 일본 및 주변국가에 의한 우리의 역사왜곡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우리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소중화 사상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한 소중화 사상이 뿌리인 기자 동래설에 대해 그 허구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본론- 우리의 역사를 이야기 할 때 단군신화를 그 시발점으로 하고 있으며 그 이후 위만 조 선이 이어 받은 국가적 운명은 한나라때 한 사군의 설치로 인해 명맥이 끊겼으며 이후 한 사군이 고구려 및 토착세력의 반발에 못이겨 서서히 자취를 감춘후 우리의 국가가 자 리잡았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생각이다. 기자동래설을 말하면서 중국의 은나라시기에 세 명의 어진 인물이 있었는데 미자, 비간, 기자가 그 셋이다. 이후 은의 마지막 왕 주왕이 폭정을 거듭하며 민생을 돌보지 않자 이를 강력히 비판하며 올바른 왕도를 간하다 비간 은 처형당하고 비간은 일찍이 이주를 떠났으며, 기자라는 인물은 조선으로 망명 현 조선 의 정신적 지주로서 문명을 전하고 어진 인물로 남아있게 되어 조선이 제 2의 중화사상 인 소중화사상을 가진 국가로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이후 이런 기자 동래설은 거의 확실한 이론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조선의 유학자 그리고 오늘날 주류사학자들에 이르기까지 1,000년을 넘게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우리나 라에서는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자리잡게 되었로 국가적 차원에서도 평양에 숭인전을 세워 기자를 추모했으며 스스로 생각하기를 기자가 조선에 왔기 때문에 백성들을 교화해 문화국가로 만들었으며 우리 역시 중국에 뒤지지 않는 문화국가가 되었다는 자부심이 있 었다. 또한 민간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변함이 없어서 청주 한씨. 행주 기씨, 태원 선우 씨의 족보에는 기자가 그들의 시조로서 기록되어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런 기자동래 설이 중국측의 음모인지 아니면 우리의 무조건적인 중국문화에 대한 숭배와 흠모인지 보 다도 과연 우리 민족의 민족적 정체성이 어디서 기인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근원적인 모 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모색이 없으니 우리 국민 내부에서조차도 단군에 대 한 서로간의 입장차이로 인해 초등학교에 설치된 단군상에 대한 성격의 해석을 둘러싸고 많은 분쟁이 있었으며 나아가 불미스러운 일까지 생기게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과연 기 자라는 인물이 실제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우리를 교화한 인물인지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기자동래설이 최초로 나타나는 문헌은 전한(前漢)때 편찬된 상서대 전(尙書大全)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길 기자가 은나라 말기 주왕이 폭정을 거듭하 던 것에 대해 간하다 옥에 갇힌 후 주 무왕이 역성혁명을 성공시킨후 신하의 도리를 다 하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조선으로 망명하였으나 주왕실로부터 조선의 왕으로 봉 한다는 소식을 듣고 주왕실에 예의를 표하자 무왕이 그에게 천하를 다스리는 대법인 홍 범을 배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대에 편찬된 이 문헌 이전의 문헌에서는 기자동래설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 대 이전, 즉 진대 의 진시황의 분서갱유이후 선진시대에 대한 학문적, 철학적 접근이 어려운 것은 사학계 의 영원한 난제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존재하고 있는 서적들 중에서 논어 , 주역 , 좌 전 등에서도 기자와 관련된 내용은 나오지만 덕과 인품을 겸비한 학자로서 그를 묘사할 뿐이지 기자의 조선 망명설과 관련된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한 대의 상서대전에서는 과연 어떻게 기자가 조선에 망명하였다는 사실 을 적고 있는 것일까하는 것이다. 여기서 조작의 가능성 역시 고려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정사인 25사 그외에도 현존하는 여러 서적 중에서 조선에 대해서 최초로 언급하고 있는 책은 관자(管子) 와 山海經 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냐 하면 이책들은 전국시대 의 저작이지만 한 대에 편집된 서적들이며 기자가 망명하였다는 기원전 11세기 중국에서 조선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책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부연하자면 중원의 중국인들은 한 대, 빨라야 전국시대에 이르러서야 동북지방의 주세력으로 등장한 고조선에 관한 정 보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 무렵 중국인들은 그 지방에 전해온 기자의 망명전설에 대한 사 실들을 사서에 반영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중국에서는 기 자동래설을 조작했을까. 그 해답은 한 무제의 한사군 설치에 있다. 한 사군의 설치 이후 한나라는 북방의 흉노족과의 기나긴 싸움중에 있었으며 무제 이후에는 이렇다할 전공을 세울 만큼 국가적 여유가 없었으며 드넓은 대륙을 통제하기에는 중앙의 군사력이 지방 곳곳에 까지 미칠 만큼 여유가 없었다. 그러므로 왕조 자체에서 동북지방의 거대한 국가 인 고조선을 통제하기 위해서 무력보다 사대명분론에 입각한 이념적 통치방식을 모색한 것이다. 한 대에 유학자인 동증서의 건의에 의해 유교가 국교로 되서 명분과 인의예지에 입각한 정치적 이념에 의해 기자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는 지역인 산동성 지역보다도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선에 망명해 조선을 하나의 속국처럼 통제하려는 나름대로 명분적 우 월성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이후부터 나타나가 시작했다. 누군가 역사란 밑돌을 빼내어 윗 돌을 바치는 행위라고 했듯이 기자동래설을 그 이후 동 래설 자체가 더 부풀려져 걷잡을 수 없이 퍼지게 되었고 조선의 국가적 상황과 맞물려 기자의 존재성 여부는 확고한 이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고려 시대 대표적인 사대주의 자인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시 있는 정보를 그대로 수록했다는 평가를 받는 구당서보 다 사대명분론에 입각한 신당서를 인용함으로서 그들의 기자에 대한 신봉은 조작된 기록 조차 신봉하는 무조건적인 영역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조선시대 이르 르면 국호부터 기 자조선의 고국이라는 의미로 국호를 조선으로 택했다는 정도전의 조선경국전 의 설명과 동국세년가 , 동국통감 등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으며 성리학을 제외한 모든 사상을 이단 으로 배격하는 사림파가 정권을 장악한 16세기 후반 이후 기자 숭배는 한층 고조되고 심 화 되어 기자는 이들에게는 명분과 의리의 구현자, 조선도학의 창시자, 왕도 정치의 실천 자일 뿐만아니라 공자·맹자·주자와 같은 성현으로 받아들여져 그에 대한 극단적 숭배 가 행해졌다.
< 면접에 대한 식견 >1. 면접의 준비- 면접시험은 인재 채용시험의 마지막 단계로서 요즘 그 중요성이 한층 더해지고 있는데그 이유로는 면접시험을 통해 응시자의 사람 됨됨이, 잠재적 능력, 사고력, 창의력, 업무 추진력 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각 기업에서 굳이 면접시험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로는 첫째. 대량 채용의 시대에서 소수 정예 채용의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며, 둘째. 기업들이 암기 위주의 기계적인 능력보다는 잠재적인 능력과 의욕을 가진 인물을 면접 시험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셋째. 기업은 자신의 주관이나 개성을 살리면서도 함께 동참할 기업의 전통이나 분위기, 경향에 자신을 적용시켜 변모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기 때문이다. 실제 현장에서 면접시험의 역할은 종합적으로 인물을 판단할 수 있으며 성격이나 성품을 판별할 수 있고, 취직 동기와 취업에 대한 의욕을 확인할 수 있으며 지식과 교양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으며, 언어사용 능력이나 사고력을 관찰할 수 있으며 가치관, 인생관, 사상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며, 협조성이나 지도력 등의 사회적 성격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면접시험이 가지는 문제점 또한 적지 않은데 우선, 짧은 시간에 응시자를 평가하며, 면접관의 주관에 좌우되는 경향이 강하며, 질문 기교가 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면접관의 선입관이 판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요즘의 면접 시험은 크게 개별 면접, 집단 면접, 집단 토론 면접으로 나누어지는데 개별면접에는 단독 면접, 개인 면접이 있으며 개별 면접의 종류로는 자유면접, 표준면접, 압박면접, 비지시 면접등이 있다. 집단토론 면접은 여러 명이 동시에 임하는 면접으로 긴장감은 덜할 수 있으나 개인적인 문제 등에 대하여는 질문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2. 면접 시험의 순서- 개별면접을 예로 들어 설명하며 우선 대기실에서 긴장감을 적당히 유지하고 순서를 기다리며 호명 및 입실 과정에서 면접실로 조용히 들어가서 정식으로 인사를 하고 편하게 앉되 너무 딱딱한 자세는 피하는 것이 좋으며 면접관을 정확히 쳐다보는 것이 좋다. 질의 등답 과정에서 솔직하고 모르는 내용이 나오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재치 있게 대답하며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퇴실과정에서도 나오는 순간까지 긴장감을 풀지 말고 조용히 퇴실한다.3. 면접 시험의 평가요소- 1) 외 모 : 건강, 복장, 태도, 젊음, 명량성, 협조성, 대화법, 호감2) 질의 응답 : 이해력, 판단력, 표현력, 적극성, 계획성, 안정성, 성실성, 사회성,일반 상식, 학식·지성, 인생관·사회관·직업관3) 응모 서류 : 이력서, 특기·면허·자격, 취미4. 면접관의 구성과 심리- 면접관은 인사담당 면접은 3-5년차 되는 사원들이 행하는 면접으로 나름의 의견을 당당하게 개진하면 되며 과장, 부장 면접은 동기. 직종, 의욕 등에 대해 자세한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임원 면접으로 구성되는데 이 단계는 면접의 최종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면접관의 심리는 우수한 인재를 확보해서 회사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사명감이 있으며 면접관들이 싫어하는 인물형으로는 무기력형, 공격형, 후퇴형 등이 있는데 지나친 겸손이나 예절은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으며 자기 주장을 강조하거나 의욕이 없어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5. 면접 시험의 준비와 주의 사항- 임기응변 식으로 적당히 얼버무려서는 안되며 평소에 올바른 대화법의 대화법과 면접 기술을 습득해 놓아야 하고 전공 과목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리가 필요하며 일반, 시사 상식에 민감해야 하며 시사용어 등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면접 직전에 있어서는 자신이 지원할 회사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하며 그 회사의 면접 시험 형태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며 자신의 서류에 대해 일관성 있게 기술해 놓아야 하며 회사의 특성등 회사에 대한 준비, 그리고 전공 및 시사상식에 대한 총정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면접 전날에는 이력서, 자기소개서, 성적 증명서, 졸업 증명서, 건강진단서, 추천장 등의 서류를 챙겨 보고, 회사 안내 책자, 스케줄표, 취직 노트, 지도, 수첩등을 챙겨놓으며 지갑, 도장, 손수건, 휴지, 필기구 등을 준비하며, 전화 카드, 잔돈 등 세심한 부분에까지 세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때 주의 사항으로는 정결한 옷차림과 발랄하고 침착한 태도, 자신 있는 대답이 필요하다.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임하며 조용하면서도 분명하게 대답하며 모르는 건 솔직히 모른다고 대답하며 필요 이상의 긴 대답을 하지 않도록 애쓰며 과장이나 거짓 대답은 피해야 한다.6. 면접 시험 성공비결- 첫째, 깔끔한 첫인상이 합격을 좌우하는데 태도, 머리 모양, 옷차림, 말솜씨 등의 좋고 나쁨이 당락을 좌우하므로 의복과 인사 예절은 중요하며 둘째, 면접관을 자기편으로 만든다. 이는 회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기본 예절에 대해 민감하게 대처해야 하며 자신에 대한 연고가 있더라고 밝히지 않으며 거북스런 질문에는 일단 알아보기 위해 라는 전제를 하는 것이 좋다. 셋째. 한 마디 말로써 평가가 변하므로 긴장 상태에서 말을 얼버무리거나 지나친 전문용어의 사용으로 이해를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속담이나, 약어 등은 쓰지 않도록 한다. 넷째. 위기에 처했을 때는 이야기 할 때는 결론을 먼저 말하고 말을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사생활에 대한 질문이 들어올 때는 거부하는 것이 오리려 낫고,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었다면 면접관에게 말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섯째로 질문의 함정을 파악해야 하는데 회사에 대한 지망동기는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대답하며 동아리 활동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며지지 정당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은 삼가야 하며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질문은 한 번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