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권 언어와 문화담당교수:강충룡 선생님학과:불어불문학과학번:9822020이름:권병수“문학을 통해 본프랑스 대혁명과 문화의 관계”구체적인 이야기를 논하기에 앞서 주제는 앞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문학사조와 그 성격의 변화를 통해 본 혁명과 문화와의 관계이다. 이 글에서 먼저 밝히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우선 이 글에 등장하게 될 용어들에 대한 정의이다.흔히 ‘혁명’이라 함은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국체(國體) 또는 정체(政體)를 변혁하는 일. 즉 역사발전에 따라 기존 사회체제를 변혁하기 위해 이제까지 국가권력을 장악하였던 계층에 대신하여, 피지배계층이 그 권력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탈취하는 권력교체의 형식이다.혁명은 개념상 정치혁명과 사회혁명으로 구별되기도 한다.그런데 정치혁명은 일반적으로 그 전후에 사회혁명을 동반하는 것이 보통이다. 혁명의 원인과 혁명이 전개되어 나가는 과정에 대하여 근대국가에서 성공한 4개의 혁명, 즉 영국의 청교도혁명, 미국의 독립혁명, 프랑스 대혁명, 러시아의 공산주의혁명을 분석해 보면. 혁명의 원인으로서는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서 생기는 대중의 불만 증대, 정부의 적자재정, 세금에 대한 불만, 특혜조치, 행정상의 분규와 혼란, 지식인의 이반(離反), 지배계급의 자신감 상실, 사회적 대립의 격화 등을 들 수 있다.또한 ‘문화’라는 용어의 개념 역시 미리 정의하고 넘어가고자 한다.‘문화’라는 용어는 “인류의 지식?신념?행위의 총체”라는 뜻의 사전적 의미를 가지는 단어로 라틴어의 cultura에서 파생한 culture를 번역한 말로 본래의 뜻은 경작(耕作)이나 재배(栽培)였는데, 나중에 교양?예술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영국의 인류학자 E.B.타일러는 저서 《원시문화 Primitive Culture》(1871)에서 문화란 “지식?신앙?예술?도덕?법률?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라고 정의를 내렸다.일반적으로 문화는 첫째, 구미풍(歐美風)의 요소나 현대적 편리성(문화생활?문화주택 등),를 둔 이데올로기의 전형이었다.이 글에서 ‘이데올로기’라 함은 개인적 이데올로기가 조직화되어 형성된 ‘사회적 이데올로기’임을 밝혀두고자 한다.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혁명을 정치적인 관점이나 또는 사회 구조상의 관점으로만 파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분명히 혁명은 정치적?사회 구조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혁명과 문화의 관계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커다란 문제임에 분명하다. 문화의 변화가 시대의 흐름을 통해 다수의 사람들의 사고 방식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런 개개인의 생각이 모여 하나의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게 되어 결국에는 혁명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고로, 나는 이 글에서 프랑스 대혁명 전?후의 프랑스 문학사조의 변화와 그 특징을 분석하여 프랑스 대혁명과 문화 사이의 관계에 대해 조명해 보고자 한다.프랑스 혁명과 그 전?후의 문학사조를 알아보기에 앞서 프랑스 대혁명 사상의 가장 근본적인 바탕이 된 ‘개인’이라는 용어가 힘을 얻게 된 르네상스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물론 ‘개인’이라는 개념은 그 이전 그리스?로마 시대에서부터 있어 왔지만 중세를 거치면서 장원제도와 기독교의 지배아래 전체주의(Totalitarisme)의 그늘아래 그 영향력이 미약했다. 그러나 르네상스라는 대 시류를 거치면서 다시 대두되게 된다.르네상스는 학문 또는 예술의 재생?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프랑스어의 renaissance, 이탈리아어의 rina scenza, rinascimento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고대의 그리스?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이들을 부흥시킴으로써 새 문화를 창출해내려는 운동으로, 그 범위는 사상?문학?미술?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것이었다. 5세기 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그때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야만시대,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로 파악하고 고대의 부흥을 통하여 이 야만시대를 극복하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이 운동은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휴머니즘이라는 말이 생겼다. 르네상스의 인문주의라는 말도 같은 말이다.휴머니즘은 각 시대에 따라 실로 여러 가지 사상형태로 등장한다. 여기서 공통되는 것이라면 겨우 ‘인간다움’의 존중이라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인간다움’이 자주 정반대의 측면에서 추구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은 인간은 인간을 한없이 초월한 것, 즉 신이나 절대자와의 관계에서만 자기의 인간성을 비로소 실현해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이와는 반대로 인간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인간의 자연적 소질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참 인간다움이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과학이나 기술의 합리성을 철저히 추구하는 일이 결국은 인간성을 확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인류는 새로운 기술의 힘을 구사함으로써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틀림없이 한층 커다란 행복을 실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대하여 다른 사람은 그와 같은 행복에 대한 환상은 오늘날 이미 배반당했고,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을 기계문명의 주인공으로 만들기는커녕, 과학기술에 노예화되었으며, 세계의 합리화와 기계화는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과정이므로 이러한 추세에 저항하는 것만이 휴머니즘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반론한다. 이와 같이 현대의 휴머니즘은 혼미상태에 빠져, 그 지향하는 바는 정반대의 방향으로까지 갈라졌다. 다같이 ‘인간다움’을 추구한다 해도 그 인간성을 어떤 방향으로 확충해 나가는가가 문제이다.‘인간다움(humananitas)’이란 말을 맨 처음 사용한 것은 키케로라고 하나, 그의 후마니타스란 것은 반드시 인간성의 이상(理想)의 전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인간다움을 나타낸다. 그것은 문명인만이 가질 수 있는 ‘우아함’ 정도의 뜻이었다. 로마인은 ‘인간다운 인간(homo humanus)’이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것은 본시 ‘이방인(homo barbarus)’이라는 말과 상대적인 의미에서 쓴 말이다. 즉 이방인은 풍속습관이 다르고 문화적 교양이 낮은 야만인인 데 비해 자기들은 그리스로부터 이어받은 고전적 그것은 당시 문화적 유산과 혜택을 누리도록 허용된 상류귀족 및 지식인을 가리킨다. 처음에는 살롱을 통해 그 후에는 궁정을 중심으로 형성되어간 사교인의 집단을 떠나서 고전주의를 생각할 수는 없다.17세기 고전주의 문학은 이들 사교인을 위해, 바로 그들 자신에 의해 쓰여진 문학이다. 어떤 의미에서 문학은 사교생활의 연장이었고, 특히 연극은 사회적 의식으로 보기에 합당한 것이었다. 한 사회와의 내면적 공감을 바탕으로 한 이 문학이 이 사회의 정신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고전주의는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대신 기존의 어떤 질서와 전통을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라신을 위시한 고전주의 작가들이 진실다움을 원리로 택한 것은 그들의 문학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작가와 대중 간의 어떤 합의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또한 고전주의 작가들이 양식 또는 이성(le bon sens)을 존중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당대에 통용될 수 없는 개념은 무가치한 것이다. 이렇게 고전주의는 그 시대의 감수성, 취향, 이상 등 정신적 전통 속에 뿌리박고 있다.고전 작가들은 인간 및 현실을 지배하는 어떤 보편적 법칙이 있다고 믿었으며, 따라서 그들의 작업은 이 보편적 법칙을 찾아내고 또한 모든 것을 이 보편적 법칙에 환원시키는 데 있다. 그들의 임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자연발생적 상태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지적구도에 따라 분석하고 재구성한다. 그들은 생성, 변화, 유동의 모습 가운데서 현실을 파악하는 대신 그것의 영원하고 보편적인 도덕에 관심을 기울인다.고전주의 작가들이 고대인을 모방하는 것도 이들의 작품 가운데서 인간 영혼의 영원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삼일치규칙도 이런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24시간 또는 한 장소에 한정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시간과 공간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결국 고전주의 문학은 실존이 아닌 본질의 문학이며, 관념과 개념의 문학이라 할 수 있다.절대왕의 비호 아래 자랐던과 환멸을 불러일으키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꿈, 이상, 환상의 세계에 몰입하고자하는 사상이 나타났다. 즉 근대화?도시화?자본의 축적으로 인한 부르주아계급의 탄생이 낭만주의를 불러들인 원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이 사상에 철학적 바탕을 제공한 것은 계몽주의와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자’란 주장이다. 이것은 전시대의 철학자들이 합리성과 인간의 이성을 신봉하던 자세와는 완전히 다른 주장이었다. 루소는 모든 불행과 죄악의 원인이 문명에 있고 자연 상태의 인간은 선하고 완전하다는 주장을 하였다. 대량생산에 의한 자본의 축적과 도시화, 계약에 의한 인간간의 관계 등이 자연 그대로의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고 역설하였던 것이다. 때마침 태동하던 낭만주의의 기본 생각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철학적 배경으로 자리잡게 되었다.19세기를 맞아 문학의 새로운 독자들이 생겨났으며 그들을 위해 문학의 새로운 전달 수단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문학은 새로운 사회 속에서 증대해가는 독자들에게 적응해야 했다. 사실 이전까지의 문학은 혜택받은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다. 과거의 중요한 문학양식이 희곡이었다는 것은 그것이 대중적인 것이 못 되었다는 사실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소설이라는 문학양식의 성행에 힘입어 독자의 범위가 종래의 귀족으로부터 서민, 노동자로 확대됨으로써 문학은 모든 사회계층을 독자로 가지게 된다.교양을 가진 특권층뿐 아니라 다수의, 도처에 흩어져있는, 작가가 전혀 알지 못하는 독자층을 갖게 된 문학은 이제 특권층 사이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벗어나 자유로운 세계를 개척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작가는 자기 자신의 정신의 자연적 경향을 따라 글을 쓸 수 있게 됨과 아울러 새로운 대중 독자의 요구는 대량 보급수단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신문이 중요한 문화 전달수단이 되었다.이 시기의 문학사조는 사실주의, 자연주의, 상징주의 등이 있는데, 각 사조의 내용과 특징을 살펴보면,사실주의는 낭만주의의 너무도 허황하고 제멋대로인 합니다.
Chapter 5‘근대 정신의 대두’를 읽고학 과:불어불문학과학 번:9822020성 명:권병수1. 들어가면서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이야기 하고 싶은 점은 지금부터 쓰게 될 이 글이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쓰라고 하신 주제에서 상당히 많이 빗나가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평소 흔히들 근대성이라고 일컫는 것들에 대해 많은 수업을 통해 고민한 나는 ‘서양사 강의’라는 이 책을 접하고 또 그 목차를 보는 순간 망설임 없이 근대 정신의 대두라는 부분을 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근대정신 또는 근대성이라는 것을 내가 생각하는 철학적이거나 미학적인 관점과는 다른, 역사적 관점에서의 근대성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따라서, 우선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을 하고, 내가 생각하는 근대정신 또는 근대성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다는 것을 밝히는 것으로 비평을 대신하고 싶다.2. 책 내용 요약14~15세기 이후 프랑스 혁명에까지 이르는 약 5세기 동안, 유럽역사는 ① 지리상발견과 르네상스 ② 종교개혁 ③ 절대 왕정의 설립과 붕괴라는 위 세 가지 급격한 변화로 점철되었다. 이 시기에서 근대정신에 관해 검토되어야 할 주제는① 르네상스로 시작된 인간 중심적이고 합리적인 사유의 발전② 종교개혁 이후 갈등과 분재의 소용돌이 속에서 변화된 종교적 사유③ 국민 국가의 통합에 입각한 정치, 사회적 사유의 발전이다.이탈리아 도시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인문주의 모든 분야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육성해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중세적 교회관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였지만 절대왕정이 심화되면서 자연법 사상은 군주권의 자의적인 행사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고, 궁극적으로 절대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혁명적인 영향을 보였다.이상의 변화동향은 17~18세기 계몽주의에서 종합되었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발전 및 전개라는 상황에서 비롯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도시국가란 중세의 봉건제와 도시의 자치 정부 체제가 혼합된 성격을 띠었다. 르네상스는 교황청의 통제능력의 상실과 각 영을 위한 정치, 외교 및 행정에 필요한 언어와 수사학의 기술을 제공하였다.르네상스는 동로마제국의 몰락으로 활발히 유입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헌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고전주의와 또, 협조와 상호 경쟁의 심화 속에서 인간의 의지와 행위의 중요성이 강조된 인문주의의 양태를 띠고 나타난다.르네상스가 시도한 고전의 부활은 그 정신과 내용에서 이전의 시대와 상이한 보다 세속적이고 대중적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시대와 고대라는 시대와의 거리를 인식하지 못했으며 독자적인 가치기준을 산출해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중세의 고전학자들과 유사했다.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새로운 가치기준, 즉, 새로운 인간관과 세계관을 형성했다. 인문주의적인 가치관에는 주의주의적(主意主義的)이고 도덕주의적인 개인이 상정되어 있다. 인간의 성격이 강조된 것이다. 이 속에는 속인들의 정신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인간에게 보다 합당한 보편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해 줄 수 있었다.알프스 이북의 통합된 국민국가들의 투쟁무대가 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쇠퇴기를 맞이했지만 오히려 북서 유럽의 르네상스를 자극했다. 북서 유럽의 르네상스로 크게 성장한 속어 문학은 각국의 국가적 통합의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그러나 이탈리아의 세속적인 것과는 달리 북서유럽은 그리스도교적 성격이 강했다. 이것은 실용적이던 북서유럽인들의 기질 차이로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16세기에 들어 인문주의의 비판과 관용의 정신은 종교적 열정과 독단에 밀려나고 말았다.인문주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의 발전은 자연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를 동반했다. 근대과학의 발전에 대한 르네상스의 가장 큰 기여는 수학 분야일 것이다. 그러나 근대자연과학의 발전에 분위기를 돋우어 준 산파로서의 의미를 가질 뿐이었다. 오히려 학문보다는 기술의 발전인데,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활판 인쇄술의 발명이다.르네상스는 새로운 관점에서 인간 본성을 탐구하여 그리스도교적인 원죄의식에 반(反)하는 인간권위에 대한 개념을 제공했다. 특히 로크의 인식론은 정치 윤리적으로 깊은 경험적인 감각과 이성의 능력을 통하여 자연에 대한 지식을 축적한다는 것이다.18세기에 들어서면서 정념과 같은 윤리적 촉구의 원천을 확인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성과 감성의 관계에 대하여 일치를 이루지 못하였고 이러한 윤리학적 논의는 다시 쾌락과 고통이라는 주제에 대한 논쟁을 초래했다. 그리고 극단적인 결정론으로 귀결되었다.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유의 발전은 18세기 계몽주의의 진보관에서 절정에 달했다. 계몽주의는 과학혁명에서 확립된 지적 기반을 바탕으로 했지만, 또 한편 절대왕정의 위기를 배경으로 하여 전개되었다. 계몽사상가들의 진보적인 태도는 역사서술에 대한 관심을 중대시켰으니, 그들은 또한 역사 서술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계몽사상가들의 역사에 대한 사유는 딜레마를 동반했다.계몽주의의 기반이 되었던 합리적인 자연관과 인간관이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히면서 계몽주의는 쇠퇴하게 되었다. 근대 유럽의 사회변화를 보다 역동적으로 반영하여 보다 일반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분야는 바로 종교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그리스도교의 인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한 지식인과 민중의 움직임이 결합된 현상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종교개혁을 정치, 사회운동으로 발전시킨 요인은 보다 현실적인 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는 종교개혁이 군주권의 강화를 위한 이데올로기를 제공해 주었다.종교 개혁가들은 대부분 보수주의자로서 하층집단의 봉기로부터 기존의 세속권위를 방어했다. 초기 자본주의로의 길을 걷고 있던 당시의 사회분위기는 종교개혁의 움직임을 더욱 촉진시켰다. 종교개혁은 가톨릭이 교세를 회복하려는 자체 개혁 작업에 나서면서 본격적인 종교분쟁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종교분쟁은 때로는 프로테스탄트의 가톨릭 사이에서 벌어지는 초민족적외관을, 때로는 민족간의 경쟁이라는 외관을 띠었다.비록 교회의 통일은 깨어졌지만 종교분쟁의 소용돌이를 겪고 다시 강화된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간 지성의 증진에는 그다지 기여하지 못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교회를 분열시키고 세속권력을 강화함으로써 새로운 가치체계의양성 속에서도 모든 인간에게는 자연에 의해 주입된 자연종교, 곧 공통된 신념체계가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그 핵심은 ‘제조자로서의 신’의 존재로서, 수학적으로 정리된 자연으로부터 그 건축가인 신에 대한 추론이 이루어졌다. 이는 정통 그리스도교에 근본적인 도전을 가했는바, 이성 앞에서 계시가 방어될 수 있는지를 탐색한 것이었다. 여기서 모든 철학적 설명은 자연과학의 방법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 제시되었으며, 성서는 역사적 근거가 결여된 혼돈으로 치부되었다.이신론은 영국으로부터 시작하여 청교도혁명의 성공과 자본주의의 발전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이후 대륙으로 건너가 네델란드, 독일, 미국 등지로 전파되었다. 그러나 이신론은 조직과 지도력이 미비했으며, 무엇보다도 무지하고 무비판적인 민중에 대한 감정적 충격 결여되어 있었다. 이후 많은 논쟁과 불화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도와 이신론자들 사이에서는 ‘자비로운 신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 세계를 고안했다’는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졌다.회의주의 역시 이신론과 그리스도교에 극단적 도전을 가했다. “내가 무엇을 알것인가?”의 몽떼뉴의 결론은 현대적 문제제기의 원천을 제공했다. 그러나 신비주의자들은 합리적이라는 기준에 종교를 종속시키려 하지 않았다.결론적으로 18세기말 전까지 낡은 신앙은 와해되었지만 이성과 과학으로 신과 우주를 설명하려던 사람들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6세기의 종교 분쟁과 17세기의 합리적인 기준에 의한 시험을 거친 뒤 그리스도교는 다시 신비주의의 형태를 띠고 보다 화해적인 태도로 나타났다.중앙집권적 국민국가의 수립 및 이에 따른 왕권의 강화는 정치사상의 발전을 자극했다. 정치적 사유의 주체는 당시 사회의 주요 집단을 이루면서 세력의 역학관계를 이루고 있던 귀족과 부르주아였다. 따라서 정치사상은 왕권의 강화에 대한 정당화와 견제를 동시에 내포하면서 발전하였다. 요컨대 주권론, 그리고 사회계약론을 수용했던 근대 자연법 사상이 근대 서구 사유의 두 흐름을 이루게 된 것이다.주권론과 자연법 이론 중 보다 먼저 발전한 것혁은 세속의 통치자들을 교회의 개입으로부터 해방시켰고 광범위한 사회대중도 동원했는데, 이는 재 세례파등의 원시적 공산주의에서 신성한 왕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사유를 촉진했다.무엇보다도 자연법 사상에는 개인적 권리에 대한 국가의 보호를 요구하는 부르주아의 입장이 내포되어 있었다. 여기서 국가는 단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에 불과하다는 입장이 표명되었다.전반적으로 현실적이었던 계몽사상가들은 절대왕정의 오류를 명확히 파악했지만, 군주들과 교유하면서 특혜를 누렸다. 그들의 날카로운 비판도 기존의 체제를 적당히 유지시키는 선을 넘지는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계몽전제주의의 이념, 곧 개혁은 활발하고 개명된 주권자인 계몽전제군주에 의해서 가장 잘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게 되었다. 계몽사상가들은 계몽전제군주를 지원했고, 유럽 각국에서는 정부조직의 합리화, 세금 감면, 무역에 대한 부담 제거, 법률의 합리화 등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계몽전제군주는 계속 전쟁과 정복을 추구했고, 정치 및 교회 권력의 남용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이 침묵될 수밖에 없었다.경제적으로 볼 때, 16세기 중엽부터 18세기 중엽까지 유럽의 역사는 중상중의 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 주된 관심은 무역균형의 개념이었다. 계몽사상가들은 경제적 사유도 시도했는데, 이는 국가의 경제개입이 강력했던 당시 중상주의 정책에 대한 중산층의 불만을 반영한 것이다.르네상스 이후 증진되어 계몽주의로 절정에 달했던 인간 중심적이고 합리적인 사유는 18세기말 절대주의 사회의 위기와 함께 다시 한계에 직면했다. ‘무한한 이성의 능력’이란 개념은 회의의 대상이 되었다. 이성의 동의어 내지 신 및 그 자비로움의 명백한 증거로 간주되던 자연은 한편으로는 과학적으로 탐구될 어떤 것과 한편으로는 낭만적인 탐닉 속에서 향유될 또 어떤 것으로 분열되었다.그러나 인간 중심적인 합리주의의 정신적, 지적 의미는 지대하다. 특히 이를 종합한 계몽주의는 서구 문명사에서 가장 오래되었던 가치 및 신조들을 비판하려고 노력했.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현대적 고찰학 과:불어불문학과학 번:9822020성 명:권병수Ⅰ. 들어가며흔히 “마키아벨리즘”이라고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려는 태도를 일컫는다. 그리고,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들(특히, 정치인)을 “마키아벨리스트”라고 부른다. 그외에도 “권모술수의 화신” 등 마키아벨리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의 저작을 살펴보면,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그리 단순하고 속류적인 것이 아니며, 다름의 체계와 관점을 가지고 있는 이론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과 “통상적 의미의 마키아벨리즘”은 분명히 구분되는 것이다.일상적으로 잘못 인식되어 있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실제로 어떠한 것이었으며, 이는 “법치국가 사상”의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그의 이론의 토대가 되는 부정적 인간관으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현실주의적 정치사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마키아벨리의 주저인 “군주론”과 “로마사론”을 집중적인 검토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법치국가 사상”의 관점에 비추어 마키아벨리의 견해를 평가해 보고, 특히 홉스, 한비자 등과의 비교를 시도함으로서,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가지는 의미를 심도 있게 고찰해보도록 하겠다.Ⅱ. 마키아벨리의 국가철학 - 현실주의 정치사상1) 마키아벨리가 본 인간의 본성① 마키아벨리의 부정적 인간관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을 직접 검토하기 전에 미리 살펴야 하는 것은 바로 마키아벨리의 인간관이다. 마키아벨리의 인간관은 그의 현실주의적 정치사상에 깊은 토대가 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본성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자인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고 이득에 눈이 어둡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받는자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덜 주저한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일종의 의무감에 의해서 유지되는데, 인간은 지나치게 이해타산적이기에 의해서 파기되고 무효화되어 왔다는 엄연한 현실 속에서(군주론, 121~122쪽), 그리고 악한 자들만이 존재하는 엄혹한 현실 속에서, 군주가 선을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미움을 초래할 수도 있으며(군주론, 133~134쪽), 국가를 파멸의 길로 몰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를 건설하고, 법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악하고 또 그들은 기회가 주어지면 항상 악한 본성을 나타낼 것이라는 것을 가정해야 한다”(Discourses, First Book, Cha.3, p.117)고 본다. 또한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분명 다른 문제”(군주론, 106쪽)이기 때문에, 군주는 필요하다면, 부도덕하게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하며(군주론, 107, 123쪽) 약속을 맺은 이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약속을 지킬 필요도 없다.(군주론, 121쪽) 여기서 마키아벨리의 인간본성론과 현실주의적 정치사상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나라를 지켜야 하는 군주는 부도덕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도 있는 것이다.두 번째로는 인간의 본성은 본래 악하기 때문에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공격적 본성을 제압할 수 있는 “외면적 강제장치”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질서와 이성은 국가라는 “외면적 강제장치”를 전제하는 것이며, 좋은 정치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에 한계를 설정하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법과 권력을 확립하는 정치이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부정적 본성에 근본적 의미와 실체적 성격을 부여함으로서, 국가·법·권력·정치의 강제권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는 홉스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를 건설해야 하며, 이렇게 건설된 국가는 자연상태를 극복하여, 외적의 침입과 인간상호간의 침해로부터 만인을 보호하여 안전을 확보하여 준다”고 한 것과 거의 일치한다.③ 마키아벨리의 이중적인 인간관이 때, 마키아벨리의 인간본성이 주어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도 이러한 목적 하에서, 시급히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방법론으로 제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2)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 정치사상마키아벨리를 서양근대정치사상의 시조라고 보는 이유는 그가 정치영역을 윤리, 도덕, 종교의 영역으로부터 분리해 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에게 던져진 핵심적인 문제는 “정치와 도덕의 관계”였으며,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정치의 탈도덕화”로 대답하였다.그리스 사상가나 중세의 정치사상가들은 정치를 윤리, 도덕, 종교의 하부구조로 보았으며, 그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치영역에서 철학적 진리나 종교적 진리를 구현하려고 했으며, 정치현상을 이러한 원리에 따라 규율하고자 했다. 그들은 도덕과 정치가 일치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에도 정치는 어디까지나 도덕에 종속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플라톤의 경우 정치권력은 선의 이데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며, 그 정당성 역시 철학적 지식에서 나온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란 언제나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아래 “예외적인 통치방법”을 비판하였다. 키케로는 “도덕적인 것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도덕과 이익이 근본적으로 서로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절절함은 도덕적 올바름에 필수적이고, 따라서 관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개인적인 생활에 있어서 모든 비행을 삼가야 한다고 한다고도 하였다.그러나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정치영역은 오로지 물고 물리는 치열한 투쟁이 있는 현실만이 존재하였다. 하기에 추상적인 도덕법칙으로부터 정치의 문제를 사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정치현상을 종교적 가치나 윤리적 고려를 배제한 채, 순수하게 권력의 획득·유지·팽창의 차원에서 조망하였으며, 다른 어떤 제도나 가치보다도 최우선적으로 국가 그 자체를 고려했다. 고전적 정치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진 목적과 공동선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었다면, 마키아벨리의 주된 관심은 “어떻게 하면 국가권력을 다시 확고부동한 토대 위에서는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덕이 중요할 지 모르지만, 정치적 행위자에게는 그와는 다른 정치적인 덕이 요구된다는 것이다.그렇다고, 마키아벨리가 윤리적인 덕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거나 비도덕성이 우월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정치의 영역에서는 윤리적인 덕이 공적인 덕으로 전환되지 않으며, 사적으로는 비윤리적인 행위가 공적 영역에서는 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정치적 행위자는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기존의 도덕률에 따라 행동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새로운 지식이 수반된 독자적인 정치적 윤리가 작용하게 되는 긴장된 분위기에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남을 잘 신뢰하고 약속을 지키는 것이 사적인 영역에서는 유덕한 행위이지만 인간의 이기심과 재화의 희소성으로 인해 폭력과 기만이 난무하고 한 개인의 사활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사활이 걸린 정치영역에서 그러한 행위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공적으로는 유덕한 행위가 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마키아벨리는 지적하고자 했다. 마찬가지로 사적인 영역에서 남을 속이거나 폭력을 수반하는 잔인한 행위는 유덕한 행위가 아니겠지만, 공적인 영역에서는 전체 공동체에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유덕한 행위가 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즉, 마키아벨리는 대부분의 정치적 상황이 불안정하고 유동적이기 때문에 국가공동체와 인민은 사적인 개인과는 다른 방법으로 통치된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었다.그리고 되도록 정치행위자는 통상의 윤리를 좇아서 행동하라고 주문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독자적인 정치적 윤리 보다는 통상적 윤리가 우월하고, 우선적이라는 점을 인정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사악함 그자체로는 권력을 얻을 수 있을지언정 영광을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가 언제나 윤리적인 도덕과 상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정부가 안정되고 확고한 상황에서 운영된다면 정부는 연민, 신뢰, 정직함, 인륜, 그리고 종교와 같은 기존의 덕에 따 다른 한편 그 원리들은 군주에게 명료하고 건전한 지침을 제시하는 동시에 정념이나 일시적인 충동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의지를 표상하는 것이었다. 냉정하고 계산적으로 특정한 이익(민족국가의 건설)을 추구하는 정치야말로 현실주의적 정치사상의 핵심이었다.이는 폭력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폭력은 무조건 나쁜 것이다”라는 식의 견해는 전통적인 도덕원리에 기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폭력도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적절하게 사용된다면, 오히려 이로울 것이라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폭력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함과 동시에 계속해서 감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마키아벨리는 정치의 핵심을 “외양”과 “상징”으로 파악했다. 다시 말해, 정치는 본질의 영역이 아니라 외양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 행위자로서 통치자는 능란한 위선자요 가장자여야 하며 성실함, 자비, 인간애 및 종교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본다. 마키아벨리는 기만과 폭력이 횡행하는 정치상황에서 정치적 행위자는 정치적 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보호색으로서 능숙한 가장과 위선을 필요한 한다는 의미에서 외양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만약 정치적 행위자가 한결같이 기존의 도덕률을 채택하게 되면, 그의 행위는 적에게 쉽게 노출되고 간파되어 정치적으로 파멸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통치자는 내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적절한 기만과 위장을 통해 외양을 조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이렇게 외양과 상징, 가장과 위선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민의 지지를 확보하고 적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정당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의 위선”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생각이었던 것이다.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목적과 수단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흔히 마키아벨리즘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명제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마키아벨리가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은
욕망과 금기의 아슬아슬한 대립불어불문학과 9822020 권병수1954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의 베스트셀러 "로리타"는 당시 받아들여질 수 없는 파격적인 소재와 노골적인 성적 묘사를 통해 논란의 대상이었지만, 1964년 스탠리 큐브릭에 이어, 1997년 애드리안 라인에 의해 미국에서 제작된 "로리타"는 우리로 하여금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욕망과 그것을 제한하는 금기 그리고 인간의 내면을 투영해 볼 수 있는 정신분석학적 관점까지 많은 것을 담고 있다.분량 관계상 영화의 스토리는 생략하고 영화를 바탕으로 한 분석만 이 글에서는 밝히고자 한다.‘욕망’과 ‘금기’에 관하여햄버트는 어느 지방대의 교수로 임명되어 시골마을에 하숙을 하기 위해 미망인 샤를로트의 집에 방문한다. 그곳에서 정원 잔디밭의 스프링 쿨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에 젖은 12살 소녀 로리타를 바라보고는 지난 시절 이룰 수 없었던 첫사랑의 잔상을 떠올린다.험버트는 곧 샤를로트와 결혼하게 되고 험버트와 로리타는 양아버지와 양딸이라는 관계로 묶이게 된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게 된 것은 바로 아버지와 딸이라는 관계와 거기에 더해 서로가 서로에 대한 욕망이라는 것이다.언어학자 소쉬르는 언어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금기에 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말하자면 아버지와 딸이라는 관계는 서로를 이성으로 사랑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내포 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험버트와 로리타는 이러한 언어적 금기를 무시한 채 서로에게 이성적인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유혹하는 등의 욕망을 표출한다.또 한가지 측면은 딸인 로리타가 아버지인 험버트를 유혹한다는 것은 다분히 오이디푸스적이라 할 수 있다.사람들은 어떤 것이 금지된 것인지 알면서도 그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이런 금기를 깨는 것이 항상 불행한 결과를 초래 한다는 것은 간과한다.‘사랑’과 ‘광기’에 대하여모든 것을 소모시키는 열정으로서의 사랑은 어느 시대에나 나타날 수 있다. 이성이나 관습을 카오스의 도가니에 부어버리는 극단적인 사랑은 시대에 따라 성스런 광기로 여겨질 때도 있다. 특히 낭만주의 시대에는 독특한 사랑을 갈구하는 수많은 초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레프몬또프의 「우리시대의 영웅」에 나오는 주인공 뻬초린에게도 사랑은 광기와 동일한 것이었다.영화에서 40대 남자와 의붓딸로 인연을 맺은 10대 소녀와의 애정 행각은 누가 보아도 사랑이 아니라 광기이다. 광적인 사랑으로 제정신을 잃어버리는 중년남자 험버트는 표면적으로 볼 때 분별 있고 이성적인 교수이다. 윤리적으로 그를 가증스럽고 파렴치한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를 쉽게 그런 인물로 생각할 수 없다. 영화는 윤리와 도덕 이상의 다른 가치를 찾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롤리타는 요정이면서 동시에 조숙한 요부이다. 일찍 성에 눈을 뜬 롤리타는 의붓아버지를 거리낌 없이 유혹하고 농락한다. 험버트나 롤리타는 둘 다 모두 성에 관한 한 아웃사이더이다. 심리학자들은 험버트의 사랑을 완전한 이기심의 한 형태로 보고 있다. 사랑이 종종 신의 위치로까지 높여진 것이다. 롤리타에 대한 험버트의 사랑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 프로이트가 “욕망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대상은 죽음"뿐이라 말했고, 죠르주 빠따이유는 "사랑은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이라고 말하였다. 그들의 말을 상기할 때, 험버트의 파멸은 예고된 것이었다. 롤리타가 사랑의 게임을 즐기는 루살까로, 험버트는 루살까의 노예로 전락한다. 사실 평형을 잃고 서로 공감하지 못하는 사랑은 광기의 또다른 코드인 것이다.이 영화에서 우리는 사회나 현실에 대한 문제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샬로트와 퀼티의 죽는 장면에도 현실감이나 긴장감이 전혀 없다. 오직 현실적인 것은 험버트의 감정과 롤리타에 대한 인물묘사뿐이다. 다시 말해 리얼한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뿐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란 험버트의 사랑처럼 운명적이고 격정적이고 자제할 수 없는 광기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1601년에 쓰여 진 희곡으로써 삼백여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지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여러 비평을 받는 작품이다. 그럼 세계명작 중에 하나로 꼽히는 햄릿은 왜 아직까지도 읽히고 있고 삼백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도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 할 수 있게 만드는지, 이 작품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어떠한 주제를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독자들은 한 작품을 대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기도 하고 겪어 보진 못한 것을 겪어보기도 하면서 책장을 넘김과 동시에 한걸음씩 성숙해 간다. 그럼 독자들로 하여금 성숙하게 만드는 그 요소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작품 속에 감춰져 있는 주제 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작품에 나타나 있는 주제는 독자들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분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독자의 경험, 성격, 태도 등을 토대로 한 작품에서 여러 가지 주제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독자들로 하여금 추측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독서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럼 주제가 바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한다면 이 주제가 형성되는데 큰 몫을 하는 것은 인물, 배경, 어조 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제를 전달하는 데 있어 이러한 다른 요소들은 필수적인 것이다.햄릿을 읽고 난 후 이 희곡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각 독자들마다 조금씩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한 작품의 주제란 어떠한 수학공식처럼 답이 명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에 독자의 경험이나 성격, 태도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견해들이 존재 할 수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작품에 나타나는 인물 에 대한 이해로부터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작품 속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인간 인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을 대할 때 첫인상이라든지 느낌을 가지게 된다. 한 사람에 대한 느낌이란 것은 매dius: 덴마크의 왕)햄릿의 삼촌인 클로디어스는 자신의 친형을 살해하고 왕권과 왕비를 자신의 손에 넣는 인물이다. 그는 친형을 살해할 만큼 커다란 정치적 야망을 가지고 있다. 계산적이고 침착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뛰어난 화술을 항상 사용한다.* 거트루드(Gertrude: 덴마크의 여왕)그녀는 햄릿의 엄마로써 왕(전남편)이 죽음과 거의 동시에 클로디어스와 결혼함으로써 근친상간의 관계를 맺게 된다.* 폴로니어스(Polonius: 재상)오필리아와 레어티즈의 아버지로써 덴마크의 재상으로 등장하는 인물. 권력자들 앞에서 아부를 많이 떠는 인물. 햄릿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오필리아(Ophelia: 폴로니어스의 딸)폴로니어스(재상)의 딸로써 한때 햄릿이 사랑한 여자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와 오빠의 말에 순종하고 순진함을 간직한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오필리아는 그녀의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정신이 나가 호수에 빠져 죽게 된다.* 레어티즈(Laertes: 폴로니어스의 아들)희곡 전체에서 별로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첫 부분에 등장한 후 프랑스에 가 있는 걸로 나온다.) 마지막에 햄릿을 죽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호레이쇼(Horatio: 햄릿의 친구)햄릿에게 있어선 유일한 친구. 햄릿이 곤경에 처했을 때 상담해 주고 조언과 충고를 하는 인물.2. 인물 분석희곡은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막과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장의 길이를 고려해 볼 때 여기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고 그에 따른 의미 또한 가지고 있다. 희곡이라는 것은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고 있다. 다시 말해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어떠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햄릿에 나타나는 특히 중요한 부분을 등장하는 중요 인물들 중심으로 분석해 보았다.1막 1장* 유령(Ghost)1막 1장은 희곡이 시작되는 부분으로써 희곡이 어떠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줄지 준비시켜주는 부분이다. 햄릿의 1막 1장은 음산하고 어두운 분위 we herein barredYour better wisdoms, which have freely goneWith this affair along.' ( I.ii. 10~16)'희곡의 내용을 전혀 모르고 이 작품을 읽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 대목에서는 무엇인가 잘못되어있고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왕의 범행을 모른다 할지라도 형이 죽어 장례를 치루고, 시간이 얼마 경과되지 않은 지금, 형의 부인 즉 형수님과 결혼 한 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눈에는 행복에 또 한 눈은 수심에 차 있다는 것은 상식상 말이 안되는 아이러니 인 것이다. 이러한 왕의 첫 모습은 독자들에게 왕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준다. 이중적이고 부도덕한 인상이 왕의 첫인상인 것이다. 또한 이 부분에서 왕이 햄릿을 덴마크에 머물라고 부탁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그는 화려한 말들로 그의 시커먼 의도를 감춘다. 자신이 살해한 형의 아들이자 왕권을 물려받았어야 하는 햄릿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왕은 그런 햄릿을 잡아놓으려고 한다. 이러한 그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왕이 햄릿을 자신과 가까운 곳에 두고 감시하길 원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햄릿이 희곡의 주인공인 햄릿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이 부분에서 햄릿의 첫 대사가 무엇인지 주목 할 필요가 있다. A little more than kin, and less than kind.'(I.ii.65) 이 대사는 자신의 아버지이자 왕의 형인 선왕의 죽음을 슬퍼하지는 못할망정 자신의 어머니 즉 여왕과 결혼함으로써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자신의 삼촌, 클로디어스를 두고 한 이야기다. 동족보다는 가깝다는 말은 촌수상 자신의 삼촌임으로 동족보다는 가깝지만 자신과는 다른 성품을 가진 인간이기에 동류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햄릿은 아직까지 자신의 아버지가 삼촌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모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햄릿의 첫 대사를 통해 독자들은 햄릿이 왕과 그와 재혼한 자자아낸 것이며 레어티즈 자신의 이익을 위한 행동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레어티즈 외에 이 장에서는 오필리아의 모습을 관찰 할 수 있다. 햄릿이라는 희곡에서는 두명의 여자가 등장한다.(여왕, 오필리아) 이 두 여인은 모두 남성에게 충성적이고 항상 그들에게 복종한다. 이러한 그들의 행동을 통해 셰익스피어가 그리는 그 시대의 여성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만의 의지도 고집도 없는 그들은 사랑에 목메고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미화된 세상에 항상 만족한다. 오필리아 또한 이러한 여성의 표본이다. 자신의 오빠와 아버지에게 충성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실행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약함 을 볼 수 있다. 오필리아의 이러한 모습은 마치 햄릿이 말한 Frailty, thy name is woman'(I.ii.146)을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는 듯 싶다.이 장에서 또 다른 등장 인물은 폴로니어스이다. 앞에서는 폴로니어스의 별 다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지만 이 부분에서 폴로니어스가 어느 쪽 (햄릿을 읽는 독자들은 누구나 이 희곡 속에 막연하게 햄릿 편과 클로디어스라 편이라는 두 부류가 있음을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에 속하는지 독자들은 알 수 있다.When the blood burns, how prodigal the soulLends the tong vows.'(I.ii.116~7)이 부분에서 분명히 나타나듯이 폴로니어스가 햄릿에게 가진 감정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그는 오필리아와 햄릿의 관계를 안 후 자신의 딸에게 햄릿 왕자를 조심하라고 충고한다. 아버지로써 자신의 딸을 우려해서 이러한 경고를 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 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폴로니어스의 발언은 분명 햄릿에 대한 악감정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1막 5장이 부분에서 햄릿은 유령과 만나게 된다. 유령과의 만남을 통해 햄릿은 자신의 아버지가 어떠한 죽음을 당했는지 알게 된다. 햄릿의 아버지였던 선왕은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유령의 대사를 통해 우리는 선왕의 모습을 어렴풋이 상상해 볼 수 있다. 고해성사사람들이 과연 선왕이 폴로니어스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왕비가 알고 있으며 이 계략에 참여했을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가진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나오는 왕비의 대사( I doubt it is no other but the main,/ His father's death and our o'erhasty marriage.'(II.ii.55~6))에서 왕비가 폴로니어스의 계략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왕비는 이 부분에서 진심으로 자신의 아들의 건강을 걱정하고 햄릿의 광기가 자신의 탓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선왕의 죽음에 왕비가 참여했다고 한다면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된다. 우리 속담에 도둑이 제 발 절인다 라는 말이 있다. 그렇듯이 만약 왕비가 선왕의 죽음에 참여했다면 이러한 자리에서 감히 이 대사를 말했을 수 없었을 것이다.2막2장에서는 또한 햄릿의 광기 연기 를 볼 수 있다. 햄릿은 미친 사람처럼 연기를 함으로써 먼저 왕의 경계를 느슨하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미친 사람처럼 연기를 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하는 것을 볼 때 햄릿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What a piece of work is a man,(...) though by your smiling you seem to say so.'(II.ii.278~283) 이 부분에서 햄릿은 인간의 경이로움에 대해 말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인 뜻 이외에 왕과 그의 무리들에게 커다란 비난을 가하고 있다. 인간의 이성은 고귀하고 능력은 무한하고 이해력은 신 같지만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천륜을 어기면서 자신의 친형을 살해한 왕과 온갖 아양과 아부를 떠는 그의 무리들에게 따끔한 일격을 날리는 것이다. 또한 햄릿은 그의 광기가 사실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눈이 가려져 있고 귀가 막혀있는(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만 급급하기 때문에) 자들에게는 이러한 햄릿의 말을 이해 못한다.I am but mad nor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