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탈춤이란탈춤은 그 기원에서 볼 때 생산의 풍성함을 기원하는 원시농요제의나 부락의 안녕, 번영을 비는 부락굿 등이 목표하는 바는 제의를 통한 자연과 인간의 소통, 화해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전승되는 탈춤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축제적 전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현대적인 탈춤의 전승은 약화된 구성원의 결속을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사라져 가는 축제의 의미를 부활시킬 수 있다는데서 그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탈춤은 그 기원을 고대 제천행사에서부터 해 온 집단 놀이로서 조선조 앞에 그 형식을 구체화시켰다. 당시 지배계급의 모순 점을 갖은 해학과 풍자로 표현함과 동시에 피지배 생산 계급인 농민들과 한데 어울리는 가운데 노동 과정에서의 노고를 풀고 때론 지배계급에 대항하고 마을이나 개인의 안녕을 기원하는 하나의 연희 형태였다.탈춤은 희극이다. 그리고 그 속에 민중 생활의 진실된 모습을 담고 있다. 서구의 연극이 구경꾼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연희하는 반면 탈춤의 구경꾼은 탈 춤판 안에 있다. 그렇듯 우리의 민중들과 함께 공감하고 웃고 어우러지는 것이다이렇듯 민중들의 삶 속에서 계급 갈등 서민의 애환, 각종 특권 세력의 횡포를 고발 해 왔던 의식 속에서 민중들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며 참여적인 삶으로서의 문화를 영위해 나갔다.또 우리의 역사속에 투영된 탈은 역사적으로 두더지처럼 땅만 파다가 벌레처럼 죽어간 이 땅의 민중들의 얼굴이며 그 숱한 표정들은 우리 민중의 발자취이자 오늘로 이어지는 숨김없는 얼굴이다. 또한 탈춤의 율동은 이 땅의 황토속에서 살다간 민중들의 육체요, 그 몸짓이며 신바람을 일으켰다가 뒤에는 한 민족의 영혼과 분노와 해학이 어울어지는 민중들의 슬기가 담긴 것이다. 탈춤은 민중들이 자신을 창조하고 그 자체를 보존하는 행동을 기술하고 정당화하고 찬미하기 위한 사고의 영역에서 민중들이 행하는 노력의 총체였다2.탈춤의 이해탈춤은 자연의 재해를 물리쳐 삶의 안녕과 풍요로움을 맞이하는 주술적인 굿이기도 하고 인간 사회의 비정상을 를 엄격히 나눌 수가 없다. 아울러 탈놀이에는 고정된 틀이 없으며, 작품의 내용이 허구적이 사실을 꾸며서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연장으로서, 현실 속에서 함께 놀이하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그만큼 여러 가지의 가능성과 창조적 인 생명력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탈춤 속에 깔린 의식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1)벽사의식∼귀신을 물리치는 의식(2)파계승에 대한 풍자∼지배이념의 무너짐을 폭로(3)지배계급(양반)의 신분적 특권과 무능력을 풍자(4)처첩 사이의 갈등 묘사∼남성의 부당한 횡포 고발(5)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담아냄♠탈춤의 성격(1) 신명탈춤은 탈판 자체가 액을 떼고 복을 빌기 위한 한바탕 놀이판이기 때문에 신명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그 신명은 탈꾼만의 신명도 아닌 구경꾼만의 신명도 아닌 판에 있는 모든 이들의 집단적 신명을 위 한 것이다. 그래서 신명을 사회화해서 피워 내고 서민들은 묵은 응어리를 풀고 삶의 활기를 되찾게 되 는 것이다. 춤이나 노래가 신명(흥)을 돋구기 위한 것이고 대사도 운율을 타는 운문적 성격을 갖는다. 또 탈꾼들이 '얼쑤' '좋다' '잘한다' 하는 추임새를 넣어 준다든가 탈꾼과 구경꾼과의 즉흥적인 질문, 대답 은 醍括?신명을 끄어내는 것이고 점차 고조되는 신명이 탈 판의 마지막에 집단적으로 터져 나옴으로써 집단적 신명을 이루는 것이다.(2) 집단성탈판에서의 집단성은 서로가 공동체임을 확인하고 지향하기 위한 것이다. 원형의 무대는 탈꾼과 구경꾼뿐만 아니라 구경꾼과 구경꾼까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해주며 공동의 관심사를 판에 끌어들여 함께 해결하고자 하고 구경꾼이 단지 구경만을 하는 것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뒷풀이에서 어우러져 대동을 이루는 것은 탈춤이 공동체성을 지향하기 때문이다.(3) 전형성탈춤은 시대의 전형성을 갖는다. 각 등장 인물들은 그 사회성을 대변하고 있는데 등장 인물의 탈을 보더라도 거기에 담긴 사연들을 대강은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탈이 만들어짐에 있어서 한 인물에 대한 인상은 그 사이기도 하다.따라서 탈춤은 관중이 실제로 생활하는 생활공간에서 흔히 생길 수 있는 사건을 내용으로 한 연희임을 알 수 있다. 연희의 장소는 그들의 삶의 현장이고 연희의 시간은 삶의 바로 현재인 것이다. 요컨대 탈춤은 생활의 일부이며 생활이 또한 놀이의 일부가 되는 일치성이 있어서 연희를 한다기보다는 그것으로 생활을 한다는 것이 더욱 정확한 말이 된다.이러한 탈춤은 민중의 실제적인 삶의 모습을 놓고 한데 어울려 논다는 뜻에서 "대동놀이"라는 성격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대동놀음으로서의 축제 판인 것이다. 이러한 축제는 인습적인 타부를 깨뜨리며 전도된 가치를 행동으로 성취하려는 반란이 그 주지가 되어있다. 거기에는 공동의 적을 퇴치하고 공동체적 삶을 영위 그 공감대를 일상 생활선상에서 확충하고자 하는 민중의 의지를 담고 있다.탈춤은 공동체의식의 공유와 그 실현이라는 배경 아래서 진행되어 왔고 탈춤에서의 공동체 의식은 민중들의 실제 생활상의 유대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농사를 위주로 하는 그들의 노동생활은 마땅히 연희를 필요로 하였고 그러한 연희를 통해 그들은 반복적인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아울러 삶의 고통이나 나아가 사회적인 억압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소비적인 유흥거리 일수가 없었고 한바탕 놀아댐으로서 노동생산성을 드높이는 재생산의 틀이자 삶의 지혜였다.아울러 풍년을 비는 그들의 연희는 풍년을 저해하는 적을 공격함으로써 행사될 수 있는 것이어서 하나의 투쟁의 방식이기도 했다.18세기 이후 도시의 대두와 더불어 근대적인 초기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되면서부터 서민 예술의 전반적인 발전추세와 병행하여 탈춤도 그 모습을 달리하게 된다.농촌에서의 탈춤은 연희의 생산자와 수요자가 같은 마을이라는 동일한 생활권 내에 있었다. 생활내용이 엇비슷하고 동질적인 만큼 연희의 내용이나 표현, 그리고 그 유통구조의 폐쇄성을 가지게 되고 도시에서는 개방적인 집단구조에서의 탈춤이라는 이중고조가 공존하게 된다.도시로의 이행과정에서 탈춤의 주도층 내지 후원층으로 상 새로운 충격을 주었는데 실제 70년 대 말부터 탈춤은 여러 예술 장르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기존 서양 무대극이 주류를 이루던 연극 쪽에서는 무대에서의 시간, 공간 개념을 깨뜨리고 관객과의 교감이나 무대장치에 새바람을 일으켜 '마당극' 이라는 새로운 극양식을 탄생시켰다.춤에 대하여는 무용가들이 추는 세련된 감상용의 춤이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면서 신명으로 추는 살아 있는 춤을 요구했다. 또 민요가 전통 시대의 지나간 노래가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정서를 담을 노래이어 야 한다는 새로운 인식과 노래란 몇몇 가수나 작곡자에 의해 만들고 따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만들어 부를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그러나 탈춤이 민중 예술, 민중 문화의 모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문화에 대한 주인 의식, 주체 의식이나 탈춤 구조에 있어서의 종합적 성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이 갖는 공동체를 향한 탈춤 정신 때문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농촌 공동체 사회에서 연희되어진 탈춤이 탈꾼과 구경꾼, 구경꾼과 구경꾼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원형의 무대적 조건에서부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건의 진행, 탈판진 행에 있어서의 구경꾼의 적극적 개입, 뒷풀이에서의 집단적 신명, 이런 모든 것들이 공동체 사회에서 공동체적 삶을 지향했던 탈춤 정신의 표현이었다.6.탈춤의 지역적 분포와 종류우리 역사속에서 전승되어온 탈춤은 시기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다른 명칭과 내용을 보여왔다. 북부지역은 탈춤이라는 명칭으로 전승되어 오며, 중부지역은 산대놀이, 남부지역은 들놀음(야유)와 오광대로 불리워져 왔다.(1)북부지역의 탈춤은 주로 황해도 일원에 분포된 탈놀음을 말하여 분포지역으로는 사리원, 황주, 안악, 재령, 은율, 송화 등지와 기린, 서흥, 평산, 강령, 옹진에 걸쳐 있다.-북청 사자놀음 , 봉산탈춤, 해주탈춤 ,강령탈춤, 은율탈춤(2)중부지역의 탈춤은 흔히 산대놀이로 칭해지며, 서울의 애오번(阿峴), 녹번, 사직, 구파발, 퇴계원, 가믄돌, 노들, 송파, 의정부 등 있어 특징적이다. 즉, 송파산대놀이에는 양주별산대놀이에서 이미 탈락한 초라니, 당녀, 핸산어멈, 신할멈, 무당 탈 등을 따로 갖고 있고, 놀이 과장에서도 이들 탈들이 맡는 역이 신할멈, 무당 탈 등을 따로 갖고 있고, 놀이 과장에서도 이들 탈들이 맡는 역이 따로 있어 비교적 고형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근래에 양주별산대놀이에서 배꼽춤을 왜장녀가 추었으나, 송파산대놀이에서는 해산이어멈이 조산하는 대목에서 소무의 배를 문지르며 배꼽춤과 엉덩이춤을 춘다. 당녀춤은 양주별산대놀이에는 현존하지 않으나 송파산대놀이에는 있다. 초라니탈은 하회별신굿놀이의 초랭이탈과 비교되고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도 우리말에 초라니는 산대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대목이 있는데, 산대에 초라니탈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어 이 역시 고형을 남기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봉산탈춤(1)역사적 유래봉산탈춤은 해서 일대에 분포된 탈춤 중의 하나이다. 이 해서탈춤은 분포를 보면 사리원, 봉산을 중심으로 황주와 서쪽 평야 지대인 안악, 재령, 신천, 장연, 송화, 은율 등지의 탈춤과, 동남쪽 평야 지대인 기린, 신원, 서흥, 평산, 신막 등지의 탈춤과, 해안 지대로는 해주, 강령, 옹진, 송림, 추화, 금삼, 연백 등지의 탈춤으로 크게 셋으로 구분되며, 5일장이 서던 거의 모든 장터에서 탈군들을 초빙하여 1년에 한 번씩은 놀았다고 한다. 이러한 분포로 보아탈군들을 초빙하여 1년에 한 번씩은 놀았다고 한다. 이러한 분포로 보아 해서탈춤은 거의 황해도 전지역에서 놀던 탈춤으로, 그 중에서 특히 봉산탈춤이 대표격으로 된 것은 19세기말 20세기초의 일이며, 특히 일제시대에 들어와서의 일이라고 한다.이 놀이는 세시풍속의 하나로 5월 단오날 밤 모닥불을 피워 놓고 연희되며 새벽까지 계속된다. 5월 단오에 노는 것은 조선조 말이래의 일이고, 그 전에는 4월 초파일에 놀았다고 한다. 양주별산대놀이도 4월 초파일에 등불놀이와 함께 성대히 놀았다고 한다. 양주별산대놀이도 4월 초파일에 등불놀이와 함께 성대히 놀았다고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