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학의 이해분단의 현실과 북한 문학 이해의 필요성이땅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사실은 알고보면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일제의 그 잔혹한 식민통치도 35년만에 벗어났는데 한 핏줄이 갈라진 건 어언 60년이다.조국의 아픔이 60년동안 이어지고 있는 지금 북한 문학을 이해 하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다. 분단의 현실하에 다른 생활을 하지만 북한의 문학을 이해함으로써 정서적으로 가까워 질 수 있다고 생각 하기 때문이다.이는 독일통일의 사례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에 의해 오랫동안 분단 국가로 있던 독일은 정치?경제체제에서는 완전한 통합을 이루었다. 하지만 독일은 통일 후 지금까지 동?서독 주민들 간에 상당히 많은 문화적?심리적 갈등을 겪고 있고, 이것이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형편이다. 남북한 분단을 극복하고 새로운 통일국가를 건설해야하는 우리 민족에게 독일의 통일 및 통일 후의 진행과정은 주목해 보아야 할 대상이다.동?서독의 통일은 오랜기간동안 치밀한 준비 가운데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 이후의 여러문제가 남아 양쪽 주민들 사이에 상호 적대적 감정까지 노출시키는 양상을 볼 수 있었다. 이는 문화적 통합이 단시일 내에 이루어지기 어려우며, 또한 강압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임을 말해준다. 이 같은 점을 염두에 둔다면 통일이 결국은 정치나 경제체제의 통합과 같은 외형적인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통일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문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고 하겠다.남북 문제에 있어 시대적 환경 변화와 사회적 인식 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오늘날, 통일문화 또는 문화통합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과거와 같은 수동적 자세가 아니라 적극적인 계획과 통합의 추진을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이러한 취지로 지금부터 북한 문학의 특징을 살펴보고 우리 문학과의 이질성을 어떻게 극복할지 알아보자.북한 문학의 특징과 이질성우리에게 북한의 문학은 크게 알려 어려웠다. 휴전 당시 많은 유명한 문학인들이 북으로 갔고, 북한에서도 당에 의해 예술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지금에서도 우리에게 북한의 문학은 여전히 생소하다. 따라서 북한 문학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인 주체문학이 어떻게 성립되었으며, 어떤 이념적인 성격을 가지는지 알아보자.북한의 사회주의 체제가 확립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 북한문학은, 사회주의적 가치를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지만 시대적 변화에 따라 다른 전개를 보인다. 첫째가 평화적 조국 건설기, 둘째가 위대한 조국해방전쟁 시기, 셋째가 전후 복구 건설과 사회주의 기초 건설을 위한 투쟁 시기, 넷째가 사회주의의 전면적 건설과 사회주의의 완전 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투쟁 시기이다.이 당시에 써진 문학작품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충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몇 가지 작품을 살펴보자. 강승한의 서사시 ‘한라산’은 4.3사건을 서사적인 시적 형식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집단적인 주체로서의 인민의 계급적 단합과 그 투쟁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의 객관적 인식과 기술이라는 서사시의 기본 요건과는 차이가 있다고 보인다. 이기영의 ‘땅’은 북한의 토지개혁운동을 배경으로 무산계급의 사회적 성장과 사회주의 체제의 확립을 역사적인 필연성으로 해석하고 있다.그런데 1950년대에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북한문학은 상당한 변화가 생긴다.우선 대대적인 문인숙청이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문학 예술가들의 당적 통일성을 파괴하려는 일체의 종파주의적 행위를 거부하고 대중의 혁명투쟁 의식과 전투 의식을 마비시키는 부르주아 문학사상을 분쇄한다’는 사상적 목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월북문인들이 제거된다. 그리고 이어서 ‘천리마운동’이라는 전후 복구사업은 문학 예술인을 동원해 사회주의 체제의 정착을 가능하게 하고, 대중에 대한 사상적 통제를 쉽게 만들었다. 이때부터 써진 문학작품은 김일성의 혁명성에 대한 선전, 전후 복구사업의 성과, 미국에 대한 증오, 남한에 대한 비판 등이 흔히 드러나 있다. 대표적으펴보자. 강승한의 서사시 ‘한라산’은 4.3사건을 서사적인 시적 형식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집단적인 주체로서의 인민의 계급적 단합과 그 투쟁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의 객관적 인식과 기술이라는 서사시의 기본 요건과는 차이가 있다고 보인다. 이기영의 ‘땅’은 북한의 토지개혁운동을 배경으로 무산계급의 사회적 성장과 사회주의 체제의 확립을 역사적인 필연성으로 해석하고 있다.그런데 1950년대에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북한문학은 상당한 변화가 생긴다.우선 대대적인 문인숙청이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문학 예술가들의 당적 통일성을 파괴하려는 일체의 종파주의적 행위를 거부하고 대중의 혁명투쟁 의식과 전투 의식을 마비시키는 부르주아 문학사상을 분쇄한다’는 사상적 목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월북문인들이 제거된다. 그리고 이어서 ‘천리마운동’이라는 전후 복구사업은 문학 예술인을 동원해 사회주의 체제의 정착을 가능하게 하고, 대중에 대한 사상적 통제를 쉽게 만들었다. 이때부터 써진 문학작품은 김일성의 혁명성에 대한 선전, 전후 복구사업의 성과, 미국에 대한 증오, 남한에 대한 비판 등이 흔히 드러나 있다. 대표적으로 이기영의 ‘두만강’을 보면 계급적 모순을 타파하기 위한 농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김일성의 혁명투쟁을 끌어들이고 있다.북한문학은 반드시 당의 정책에 의거하여 창작되어야 하고,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입각하여 혁명적 문학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문학예술은 김일성의 혁명사상을 당의 유일사상으로 구현하고, 민족적인 문예를 모두 김일성적인 것으로 통하게 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런 사실들은 진정한 민족 문학의 발전이나 풍부한 다양성을 통한 문학적 세계의 확립을 저해한다.세계사적 변동과 북한을 둘러싼 정치의 민감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문학은 ‘주체사상’에 입각한 문예이론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미국의 패권주의와 남북의 첨예한 문제인 통일에 대해본 노선이다. 사회주의 위업 수행의 무기라고 일컬어지는 사회주의 또한 북한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이는 주제의 다양성이나 표현 양식으로서의 다양성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주체사상’적 내용을 담아 그것을 다시 구체적 형상이나 미세한 정서적 색깔로 표현해내야 한다고 얘기한다. 다양성을 주제나 소재의 다양성보다는 표현이나 수사의 다양성으로 몰고 가고 있다.1994년 김일성 사후, 3년간의 유훈통치기간을 거친 북한은 김정일 체제를 공식적으로 출범시켰다. 이때 북한은 ‘강성대국’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내걸었다. ‘강성대국건설’은 1998년 후반부터 의 표제어로 떠오른다. 강성대국은 ‘국력이 강한 나라, 그 어떤 침략자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무적의 나라’를 말한다. 이러한 강성대국론은 북한의 현실적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정치사상적 운동은 문예적 측면에서 보면 ‘강성대국문학을 지향하자!’는 논리로 집약된다.결국 강성대국문학은 북한사회가 강성대국을 건설하는 데 사상적 버팀목 역할을 하는 ‘21세기의 태양’인 김정일이 밝혀주는 문학이다. 강성대국문학에는 ‘사상중시?총대중시?과학기술중시’라는 세 가지 중심개념이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한 작품 속에 유기적으로 형상화되어 있지만, 주제의 강조점은 개별 작품들 속에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사상중시’의 문학은 인민들을 주체사상으로 무장시켜 북한 사회의 이념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북한체제의 한계를 반영한다. 90년대 들어 급증하고 있는 인민들의 탈북사태로 인해 북한당국은 사회내부의 동요를 미연에 차단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그 목적으로 동구 공산주의의 붕괴원인을 자본주의 물질문명에 물든 인민들의 사상적 해이에 있다고 진단하고, 북한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인민들에게 강조하고 있다.‘총대중시’ 문학은 선군정치에 대한 문예적 표현이다. ‘총대중시’문학의 핵심은 내부적으로는 ‘오직 한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만’의 주체사상으로 똘똘 뭉쳐 북한의 총체적 위기를 극복흉물스런 괴물로 그리고 있는 박경심의 ‘침묵의 웨침’과 빌 클린톤 대통령과 모니카 루윈스키와의 염문을 풍자하면서 제3세계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지배를 비판한 김송남의 ‘클린톤’이라는 시에서 잘 드러난다.‘과학기술중시’ 문학은 오늘날 북한사회의 식량난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농촌을 ‘사회주의 건설의 , 최전선’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북한은 농업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전투적 개념까지 끌어들이고 있다.이와같이 현재 북한문학은 이데올로기의 물신성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이데올로기의 물신성은 한 사회체제가 처해 있는 총체적 위기를 합리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정치적인 수단을 통해 단시간에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다.현재 북한이 당면한 대?내외적 정치상황에 대한 시대적 대응물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붉은기사상’(1994)과 ‘고난의 행군’(1996), 그리고 강성대구건설(1998)과 선군정치시대(1998)를 거쳐 태양민족문학(2000)으로 이어지는 이데올로기들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대응물들은 주체사상이라는 이념태로 묶여 있다.1967년 이후, 지금까지 북한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주체사상은 북한 인민들을 통합하는 구심체 역할을 해왔다. 이점에서 보면, 앞서 말한 북한문학에 나타나는 이데올로기의 물신성은 90년대 들어 시작된 북한사회의 총체적 위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 동안 북한사회를 지배한 주체사상이 그 한계점에 도달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수령이라는 오직 하나의 목소리만을 갖고 있는 주체사상의 단성주의로는 더 이상 북한문학의 발전을 기대하기가 어렵다.그러나 창작방법의 세계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징후는 필연적으로 개방될 수밖에 없는 북한사회의 역사적 운명에 대한 암시로 볼 수 있다. 이제 북한문학은 서서히 개방에 대비해 자본의 축적과정에 숨어 있는 인민들의 욕망을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이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수용할 수밖에 다.
목 차i 국립극장에 들어서서ii 연극 ‘태’ 소개ⅲ 연극 ‘태’를 직접보며ⅳ 계유정난v 오태석 감독님과의 대화국립극장에 들어서서오늘은 연극영화의 이해 야외수업이 있는 날이다. 토요일이지만 아침일찍 일어나서 수업에 필요한 준비사항은 없는지, 국립극장으로 가는 방법도 다시한번 체크하고 집을 나왔다. 동대입구역에 도착해서 셔틀버스로 갈아타니 국립극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국립극장을 속속들이 견학하며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니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자주 오고 싶어졌다. 야외극장인 하늘극장에서도 교수님의 설명이 이어졌는데 로마시대의 원형극장과 비슷한 형태로 지어진 극장이며 연극을 하다가 비가오게되면 우산을 나누어 준다는 얘기가 인상 깊었다. 악천우속에서도 연극을 멈추지 않고 열정을 쏟아 작품을 완성하는 연기자들의 혼이 느껴지는 듯 해서였다. 간단히 푸드코트로 이동해서 샌드위치를 먹고 연극 ‘태’를 보러 달오름 극장으로 들어섰다.연극 ‘태’ 소개1973년 어느 날 저녁 오태석 감독은 택시 안에 있었다.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당시 유신 철폐를 외치며 저항하던 장준하, 백기완 씨를 체포하기 위해 소급계엄령이 내려졌는데 공교롭게도 이날 아침 데모에 참가한 연세대 의대 본과 학생 8명도 이 때문에 끌려갔다는 소식이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삼족(三族)’이 멸해진 사육신 박팽년의 이야기, 자신이 직접 잘못하지 않아도 덩달아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뜻하지 않게 큰 정치 소용돌이에 휩쓸린 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스쳐갔다.그는 “대통령을 낳은 자궁이 위대하다면 8명의 학생들을 낳은 자궁도 똑같이 위대하니 다른 사람의 생명이라고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희곡을 내놓았고, 그 희곡은 30여 년 동안 우리 연극계에서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그의 대표작 ‘태(胎)’가 되었다.‘태’는 조선시대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죽이고 죽여야 하는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핏줄에 대한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작품. 박중림(박팽년의 아버지)의 손부(孫婦)는 자신이 갓 낳은 아들과 종이 나은 아들을 몰래 바꿔치기 함으로써 삼족을 멸하려는 세조에 맞서 가문의 대를 잇는 데 성공하지만 대신 종의 아들은 죽음을 맞는다. 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에 픽션이 가미된 극적 구조 속에서, 죽이고 죽이면서 핏줄을 이어가야만 하는 한국인의 모태 본능과 제의적인 느낌의 혼을 강렬하게 표출하면서, 한국 고유의 전통 미학과 원초적인 생명의지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국립극단의 '국가브랜드' 연극 작품으로 선정돼 무대에 오르게 됐다.오태석 감독은 이렇게 얘기한다. “정치권력에 맞선 자궁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야. 죽은 자 앞에서 누구나 부끄럽잖아. 그래서 ‘죽은 자’들을 보강했어. 함부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그거지. 잉태한 자식을 향한 모정과 한국인의 원형적인 생명의지(모태), 생명의 존엄성을 고스란히 담은 거지.”연극 ‘태’를 직접보며처음 달오름 극장에 들어서서 좌석표를 확인하고 앉았다. 안내원이 돌아다니며 핸드폰 전원을 꺼달라고 얘기했고 엄숙한 분위기가 조성되자 연극의 막이 올랐다. 연극은 계유정난의 소용돌이 속에서 박중림 가문의 대를 이으려는 끈질긴 생명력을 줄거리로 전개되고 있었다. 워낙 비극적인 역사속 장면이다 보니 연극은 조금 엄숙한 분위기였다. 역사물다운 다양한 사건과 인물의 얽힘으로 다소 어렵게 느껴질수도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자들의 연기와 극중 효과들은 정말 탁월했다. 역사 속 인물들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행적을 단순히 서술해 놓은 역사 속의 모습과는 달리 수양대군도, 단종도 모두 인간 냄새를 물신 풍겨냈다. 사극 특유의 어려운 말투나 경직된 어투보다는 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언어를 사용해 극의 이해를 도왔다. “먼 역사속의 주인공들도 나와같은 사람이였구나 생과사의 갈림길에서 여러 고민의 흔적들은 그들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구나”라고 생각하게 했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돋보이는 공연으로 극 중 손부역의 ‘김마리아’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그녀의 비통함을 더욱 애절하게 전달해줬다. “창지야~~~창지야~~~” 같이 본 친구들도 비통한 외침이 연극을 보고 난 후에도 계속 생생하다고 얘기했다. 다소 과장되게 표현된 한복이 눈에 들어왔다. 상복을 입은 배우들의 덩치가 본래보다 2배는 더 커 보이고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천이 아닌 종이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락 사락 하는 종이 부딪힘 소리는 묘한 매력을 뿜어내고, 크게 부풀려진 의상은 한복의 실루엣과 곡선을 더욱 강조시켜줬다. 그리고 중간중간 저승사자들이 나와 죽통과 같이 생긴도구를 상하로 기울이며 나타내는 음향은 정말 이승의 소리가 아닌 듯했다. 역사속의 인물들의 비극이 전해질때마다 들렸던 그 음향효과가 더욱더 사실적으로 죽음을 표현해주었다.“보시오 숙부, 내 몸도 토막내 주시오. 토막 난 어미에게서 나온 육신이니 나도 토막으로 닮게 하여주오.” 세조에게 꽂히는 단종의 단말마가 지켜보는 나로 하여금 애를 끓게 하였다.1974년 초연 이후 여러 차례 무대에 올려져 이미 관객에게 익숙한 공연인 만큼 연출의 노련함이 엿보이는 공연이었다. 하지만, '삶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공연이라는 설명이 다소 쉽게 와 닿지 않는 것은 ‘태’의 매력이자 장점인 상징적인 표현과 어지러울 만큼 복잡하게 얽힌 인물들로 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쉽게 작품의 의미가 읽히지 않는다 할 지라도 연륜이 느껴지는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한국 특유의 색깔이 짙게 묻어나는 공연이기에 관객에게 훌륭한 공연이라는 인상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국립 극장 대표 공연다운 면모를 선보이는 수작이었다.또한 이렇게 높은 수준의 연극 ‘태’를 접하고 이를 이해할 정도로 많이 성숙해진 나의 연극소양을 느끼고 연극영화의 이해 수업을 듣기를 잘했다고 다시한번 생각했던 하루였다.계유정난세종의 뒤를 이은 병약한 문종은 자신의 단명을 예견하고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 우의정 김종서등에게 자기가 죽은 뒤 어린 왕세자가 등극하였을 때, 그를 잘 보필할 것을 부탁하였다. 세 사람 중 남지는 병으로 좌의정을 사직하였으므로 그의 후임인 정분이 대신 당부를 받았다.
북한 주체문학의 성립과 그 성격1.들어가며우리에게 북한의 문학은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그것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 의 정치적 필요성과 관련지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북한을 빨갱이 로 규정하고, 단지 대남 침입 가능성이 있는 적으로 밖에 그려내지 않았다. 그래서 특히나 북한의 예술에 대한 정보는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어려웠다. 휴전 당시 많은 유명한 문학인들이 북으로 갔고, 북한에서도 당에 의해 예술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지금에서도 우리에게 북한의 문학은 여전히 생소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북한 문학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인 주체문학이 어떻게 성립되었으며, 어떤 이념적인 성격을 가지는지 알아보고자 한다.2.1960년대 이전의 북한문학북한의 사회주의 체제가 확립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 북한문학은, 사회주의적 가치를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지만 시대적 변화에 따라 다른 전개를 보인다. 첫째가 평화적 조국 건설기, 둘째가 위대한 조국해방전쟁 시기, 셋째가 전후 복구 건설과 사회주의 기초 건설을 위한 투쟁 시기, 넷째가 사회주의의 전면적 건설과 사회주의의 완전 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투쟁 시기이다.(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2, 355쪽)북한은 1945년 해방 직후 김일성이 권력을 장악하면서부터 체계의 정립을 위해 사상과 이념에 대한 선전 계몽에 앞장섰다. 그를 위해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등이 만들어져서 선전활동에 이용되었다. 이 단체에는 이기영, 한설야, 안함광, 송영같은 월북 문학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이 당시에 써진 문학작품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충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몇 가지 작품을 살펴보자. 강승한의 서사시 한라산 은 4.3사건을 서사적인 시적 형식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집단적인 주체로서의 인민의 계급적 단합과 그 투쟁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의 객관적 인식과 기술이라는 서사시의 기본 요건과는 차이가 있다고 보인다. 이기영의 땅 은 북한의 토지개혁운동을 배경으로 무산계급의 사회적 성장과 사회주의 체제의 확립을 역사적인 필연성으로 해석하고 있다.그런데 1950년대에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북한문학은 상당한 변화가 생긴다.우선 대대적인 문인숙청이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문학 예술가들의 당적 통일성을 파괴하려는 일체의 종파주의적 행위를 거부하고 대중의 혁명투쟁 의식과 전투 의식을 마비시키는 부르주아 문학사상을 분쇄한다 는 사상적 목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월북문인들이 제거된다. 그리고 이어서 천리마운동 이라는 전후 복구사업은 문학 예술인을 동원해 사회주의 체제의 정착을 가능하게 하고, 대중에 대한 사상적 통제를 쉽게 만들었다. 이때부터 써진 문학작품은 김일성의 혁명성에 대한 선전, 전후 복구사업의 성과, 미국에 대한 증오, 남한에 대한 비판 등이 흔히 드러나 있다. 대표적으로 이기영의 두만강 을 보면 계급적 모순을 타파하기 위한 농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김일성의 혁명투쟁을 끌어들이고 있다.3.주체문학의 등장과 그 이념적 성격이러한 문학 전개 양상이 크게 갈라지는 시기가 1960년대 중반이라고 할 수 있다.1960년대 초반까지의 북한문학은 사회주의 이념을 예술적으로 실천하고자 했다고 보아진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김일성의 독재체재가 등장함과 동시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의해 그 개념이 새롭게 규정되었다. 주체적인 것과 혁명적 투쟁의식이 내세워짐으로써 이념성이 강화된 것이다.이는 1970년대에 등장한 주체의 문예이론 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주체의 문예이론은 문학예술의 민족적 형식과 사회주의적 혁명이념이라는 내용을 통합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우선 민족적 형식 이라는 것을 살펴보면, 이는 민족의 전통적 형식과는 거리가 멀다. 북한에서 말하는 민족적 형식이란 김일성의 항일 무장투쟁 시기에 그가 창작하였다는 항일 혁명문학예술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는 김일성의 혁명사상에 근거하여 혁명적 이념을 구현할 뿐이다. 결국 민족적 문예형식이 문예 형식의 민족적 전통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혁명적 투쟁의식의 표현형태로 고정되고 있다.사회주의적 혁명이념 이라는 것도 일반적인 사회주의적 리얼리즘과는 차이가 있다.원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은 계급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투쟁을 구체적인 사회역사적 환경과의 통일 속에서 묘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이를 민족적인 문예의 형식을 통해 사회주의의 이념과 노동계급의 혁명적 의식을 나타낸다고 인식된다. 즉 사회주의적 문학예술이란 특정한 국가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민족적인 주체성에 대한 강조의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북한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사회주의적 국가건설의 과업에 따라 문학에서도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독자적인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이를 창작 방법에 적용하는 것이 종자론과 속도전이다. 종자 란 작품의 가장 기본적인 핵이다. 그리고 종자를 바로 잡아야 자신의 사상적 의도를 바르게 전달할 수 있고,작품의 예술적인 형상화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종자란 작품 속에 담겨있는 사상적인 요소이며 미적인 요소이다. 이 종자론에서 가장 중심 되는 것은 사상성 이라 할 수 있겠다. 사상성이란 당의 정책을 반영하고 당의 노선에 의거하여 시대가 제기하는 사회 정치적인 과제에 올바른 해답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2 ,366쪽)종자에 대한 생각은 사상과 직결되며, 종자를 바로잡아야 문학작품을 올바르게 형상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렇게 종자를 바로잡기 위해 문학가들은 사상적으로 자신을 바로잡아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은 독자적으로가 아닌, 당의 정책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또한 종자론과 연결되는 개념으로써 속도전 이 있다. 이는 높은 창작속도를 가져야만 작품의 질도 높아진다는 방법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발전하는 혁명의 현실에 맞게 예술가들이 답보와 침체를 모르고 긴장된 상태에서 창작에 임해야 우수한 작품이 생산된다는 것이다. 이는 예술가들이 창조의 열정으로 혁명사상에만 집중할 때 작품의 질이 높아진다는 주장이고, 속도전을 벌이는 과정 자체를 긴장된 창작전투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동시에 북한 작가들이 공동창작을 많이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문학 100년대표소설 100선 연구 2,3 권1945년 8월 15일 우리민족은 드디어 기나긴 일제치하로부터 해방을 맞이하였다. 해방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한마디로 '새 출발'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방기의 우리 사회는 새로운 출발에 앞서 혼란과 대립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즉, 반도의 허리는 잘려나가고 그 남쪽은 미 군정에, 북쪽은 소련 연방에 편승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사회상에 그대로 반영되어 이데올로기의 혼란과 좌우익의 대립 상황을 만들어 내게 되며, 그것은 48년 정부 수립 이후 극점에 도달하게 된다. 이후 6.25전쟁이라는 민족사상 최대의 비극을 겪으며 우리민족은 처참히 상처받고 피흘렸다.그러나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민족은 꾸준히 희망의 꽃을 피어냈다. 자본주의의 모순속에 빈민의 궁핍을 겪고 군부독재의 억압을 받으며 광주항쟁으로 죽어가면서도 민족은 평화를 부르짖었던 것이다.이러한 시대의 흐름속에서 우리문학도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박경리의 “토지”는 동학농민전쟁과 갑오개혁, 을미의병 등이 차례로 역사의 연표를 채우고 지나간 1897년 한가위에서부터 해방의 감격을 맞는 1945년 8.15까지 격동의 한국근대사가 “토지”의 시간적 배경을 이룬다. 여기에 경남 하동의 평사리를 비롯하여 지리산, 서울, 진주, 간도, 러시아, 일본에 걸치는 방대한 공간 위로 무수한 인간들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토지”는 격변한 우리 민족 근대사의 현실 속에 면면히 이어 내려온 문화 민족으로서의 자긍심과 전통적 정신 세계를 형상화함으로써 한민족의 정신적 위상을 드높인 한국 소설사의 기념비적 작품이다.“토지”는 만석꾼 대지주 최참판 댁의 마지막 당주인 최치수와 그의 고명딸 서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토지의 상실과 회복을 둘러싼 대하 드라마를 전개한다. 치수의 어머니 윤씨 부인이 동학 접주 김개주에게 겁탈 당해 낳은 자식 김환이 의붓형수인 별당아씨와 밤도망을 치는 사건은 장강처럼 흘러갈 소설의 초입에 물살 급한 여울목을 마련해 놓는다. 상피 붙은 담은 탈춤이 생겨나 오래도록 지속되었다는 마지막 대목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민중의 희구와 갈망이 얼마나 뿌리깊은지를 암시해 주고 있다.홍명희의 “임꺽정”은 해방 이전에 발표된 역사 소설 중 가장 규모가 큰 대하 장편소설이다. 1930년대는 ‘역사 소설의 시대’였다. 파시즘의 압력이 점차 거세져 감에 따라 현재를 정면에서 취급하기가 어려워짐에 역사적 과거를 다루는 경향이 크게 증대되었던 것이다.이러한 1930년대에 범람했던 역사 소설의 대부분은 조선조초 또는 고려 시대, 심지어는 신라 시대 등 아득한 과거를 배경으로 한 것이었는데, 이처럼 먼 역사적 과거의 선택은 현실도피의 방안으로 또는 눈앞의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과 비판이 제약받는 상황을 우회하여 과거를 현재의 비유로 이용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임꺽정”은 토속적인 정서를 표출하는 토속어의 구사가 뛰어나고, 민중의 말투를 통해서 서민들의 생활을 잘 드러냈으며 세련된 묘사로 한층 문학성을 높여주었다. 또한 이 작품은 백정 계급의 인물을 선택하여 긍정적으로 그려낸 민중 의식을 구현하기도 했다. 당대의 다른 역사 소설과는 달리 소외된 하층민의 저항과 사회적 모순을 타파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주제로 하고 있어 왕조사 중심의 역사관과는 크게 다른 면을 보여준다.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여순 반란 사건의 실패로 인해 그 담당자들이 지리산으로 퇴각하는 1948년 10월 24일부터 서막이 전개된다.여순 사건은 제주도 4.3 민중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대기중이던 여수 주둔 제14연대의 하급 지휘관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무장 반란 사건이었다. 1948년 10월 19일에 시작된 이 사건은 비록 1주일만에 진압되었으나 폭동군의 주력 부대는 남로당의 지방 조직 및 농민과 결합하여 산악 지역으로 퇴각함으로써 장기적인 유격전의 양상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는 제주도 4.3 사건과 함께 해방 이후 최대의 무장 반란이었을 뿐만 아니라 농민을 비롯한 기층 민중까지 가담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태백산맥” 에서 작가 조정래는 닫힌 공간에서 진공이라는 열린 공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적 전략을 인간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에서 찾는다.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은 발표되자마자 문단에 상당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그것은 이 소설이 내용과 기법의 다양성 때문만이 아니라 정통적 리얼리즘 소설에 익숙한 독자층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기 때문이다.이야기는 R이라는 3인칭 주인공에게 철저히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주인공 R은 5년 반의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지만, 커다란 문화적 이질감에서 오는 충격에 휩싸인다. 이 “경마장 가는 길”은 R이라는 주인공이 4개월 반 동안 한국에서 보고 듣고 겪게 되는 문화적 체험에서 느끼는 이질적 분위기를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즉,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화적 정체성, 혹은 관습에 대한 비판적 진술이 소설 구조의 심층에 깔려 있다. 그리고 작가는 주인공이 보고 들은, 그리고 행한 것만을 기술하려고 하고 있다. 즉, 주인공의 시각과 청각에 의해 포착된 것이나 그가 행한 것이 아닌, 그 어떤 것도 기록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무엇보다도 이 작가가 철저히 억제하려고 하는 것은 작가 자신의 임의적 판단이나 느낌 따위이다.하일지는 형용사를 될 수 있는 대로 배제하고 유추 또한 억제한다. 이 소설 전체를 통털어 은유가 씌어지고 있는 것은 몇 안 된다. 그만큼 하일지는 인물의 심리를 직접 말하지 않고 형용사나 유추가 최대한 억제된 묘사를 통하여 무비 카메라가 피사체를 포착하는 것과 같은 수법을 쓰고 있다“경마장 가는 길”은 평이한 작품 같으면서도 내부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함정이 많은, 아주 주도면밀하게 짜여진 구조와 테크닉을 지닌, 기괴한 동굴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신경숙은 90년대 초반에 등단하면서 우리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작가이다. 그 새로움은 80년대의 이념적이고 사회적 성향의 소설이 주를 이루던 문단에 극히 감성적이고 개인적 성향의 소설을 내놓음으로서 우리 문단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킨 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작가의 섬세한 시적 문체는 80년대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인물의 삶을 통해 다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최서해의 “탈출기”의 시대적 배경은 암담한 일제시대이다. 모두가 자기 땅을 잃고 만주로 이동하는 민족대이동의 시기로서 공간적 배경은 만주 간도 일대이다. 주인공 박군이 가난한 현실과 사회제도의 모순을 견디지 못해 고향을 버리고 간도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정황을 김군에게 고백하는 서간체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주인공 ‘나’는 작가 자신의 투영이며 식민지 시대의 가난한 조선인, 특히 큰 꿈을 안고 간도로 갔다가 좌절을 맛보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조선인을 대표하는 인물로 보여진다.이 작품의 주제는 억압하는 자에 대한 민중의 저항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최서해의 반항적인 주제의식은 어떤 특정한 사상의 기초위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식민지적 상황에 대한 현실인식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이라 하겠다.일제에 의한 농촌 궁핍화는 ‘토지 수용->동양척식주식회사->식량수탈->고리채’ 등의 과정을 밟아 행해진다. 일본의 한국 토지 조사는 1910년에 시작되어 1918년에 끝난다. 1919년 이후에는 상당량의 토지를 빼앗긴 한국 농민들에게 식량 수탈이 시작된다. 농촌의 궁핍화를 촉진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고리대이다. 그 고리 대금은 대부분 일본 은행의 산업 자금이다. 그 결과 농민의 궁핍화는 극대화된다.전영택의 “화수분”은 재물이 자꾸 생겨서 씨도 줄지 않음을 가리키는 말인데, 실제 화수분의 삶은 가난에 찌들어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됨으로써 그 표현상의 아이러니를 유발한다.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는 벙어리의 비극적 운명과 맹목적 사랑이라는 환상적, 낭만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입체적인 성격 창조와 설득력 있는 사건의 전개를 보여주고 있어 나도향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이 작품은 학대받는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던 벙어리 삼룡이가 세상과 자기를 인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나도향은 식민지 시대 하층민의 애환을 본능적 애정의 문제와 결부시켜 낭만적으로 묘사한 작가로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이다. 이는 이전까지 사상과 예술의 조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던 당시 문단의 한계를 극복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카프문학의 방향 전환 후 신경학파적 문학 성향에서 급격히 발전된 양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심훈의 “상록수” 는 대중적 지지를 얻으며 본격적으로 벌였던 브나로드 운동이 1935년에 이르러 일제의 탄압과 규제 때문에 중단되었으며, 브나로드 운동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자 소설을 통해서라도 이 운동의 정신을 지속시키려한 의도로 탄생된 작품이었다. 심훈의 “상록수”가 나오기 전까지의 계몽소설은 지식인들이 부르짖던 농촌 개혁의 계몽 자체가 관념적으로 흘렀지만, 심훈은 작중인물들을 관념적인 농민운동가가 아닌 실천적인 농민운동가로 형상화시켰다. 그러기에 동혁은 고향 한곡리로 내려가 농우회를 조직하고 밤에는 야학을 실시하는 한편 농우회의 회원들과 공동으로 농사를 짓는 일을 실천한다.계용묵의 “백치 아다다”는 돈에 의해 왜곡되는 인간 심리를 파헤친 작품이다. 1930년대에는 식민지 내에서의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가 어느 정도 정착되는데, 계용묵의 소설은 이를 거시적인 안목에서가 아니라 개개인이 부딪치는 미시적 문제에 집중하여 성실하게 반영하고 있다.우리 문학사에서 1920년대 후반기는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프로 문학이 성행했다. 때문에 1920년대 후반기를 프로문학에 의한 이데올로기 시대라고 한다면, 1930년대는 탈이데올로기 시대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의 강압적인 상황 속에서 작가들의 개인과 사회에 대한 자각이 두드러지게 표출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특히 개인에 대한 자각은 순수문학을 이끈 토대가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강화됨으로써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여 현실 비관적인 프로문학보다, 예술의 순수기능을 강조하는 순수문학이 안전한 지대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이효석의 “메밀 꽃 필 무렵”은 자연으로의 회귀와 동물의 그것과 다름없는 인간의 성욕 등이 수채화 같은 배경에 잘 융화되어 있는 작품이다.김유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