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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문화] 한국 및 일본의 문화유적 사이트 정리
    한국 및 동아시아 고대문화 사이트 정리www.dolmen.new21.org고인돌에 대한 정의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에 분포하고 있는 고인돌 및 문화유산 적 가치, 축조방법 등 일반인에게 다가가기 쉬운 방법으로 설명해 주고 있는 이 사이트는 추천 사이트까지 만들어 놓아 이쪽으로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런데 분포현황 등 여러 가지 자료는 잘 정리되어 있었지만 고인돌에 대한 사진자료 및 북방식 남방식 등의 구분정의가 되어있자 않아 약간 아쉽다.www.avery-stones.co.uk영국 silbury 언덕에 있는 오래된 거석들에 대하여 쓰여 있는 사이트로서 원형으로 나열되어 있는 형상을 띄고 있는 거석들을 하나하나 조사해보는 사이트이다. 이것에 대한 기록들이 지금은 자세히 볼 수 없었던 것이 유감이었고 개별적인 거석들에 대하여는 나와 있으나 전체저긴 양상에 대한 사진이라든지 도면이 없어 아쉬웠다. 그러나 그와 관련된 영국 거석 문화에 대한 사이트 링크가 잘 되어 있어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에는 좋았다.www.gayasa.net/gaya가야의 문화에 대해 유물 고분들이 유적별로 사진이 제시되어 있고, 보통 가야라고 하면 떠올리는 일반적인 상식에 덧붙여 잘 알려지지 않은 이른바 10개 이상의 가야의 소국들이 있었다는 등의 내용들이 있어 일반인들에게는 무언가를 더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무엇보다 가상체험 등 현실적으로 더 쉬운 이해의 장을 마련해 주어 좋았다.www.daangoon.pe.kr단군, 환웅 시대의 신석기 청동기 문명과 유물, 유적 등을 소개해 주는 사이트인데 전체적으로 사이트가 조금 조잡하게 만들어 진 것 같다. 글씨 크기도 너무 크고 적당히 만든 사이트인 것 같아 조금 둘러보기 싫은 생각도 들었으나 그 유적들은 우리가 가볼 수 없는 중국 땅에 대한 정보, 유물, 유적 등을 담고 있어 그 이도는 좋았다.www.teadust.com미국인이 중국 고대 유물들과 왕조들에 대해 조사하고 사진 등을 실은 사이트로서 진나라 시대의 왕조와 도자기 등을 실어놓았다. 시대별로 시대구분 및 정리가 잘 되어있으나 유물 사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고 유적소개 등이 잘 되어있ㅣ 않아 아쉬웠다.www.dandle.co.jp일본의 치브산 고분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는 사이트로서 전방 후원분에 대한 정보를 잘 알 수 있다. 유적의 사진, 유적의 위치 등도 잘 나타나 있고, 동영상 촬영도 되어있어 유적의 전체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www2.city.miyako.iwate.jp/webbase.nsf사키야마라는 곳의 죠몽시대 패총유적에 대해 정리된 사이트로서 패총의 기본 개념에서부터 발굴사진까지 올려놓은 사이트이다. 더군다나 자세한 교통안내까지 나와 있었다. 시대적 상황들이 정연하게 나와 있었고, 자연과학적인 분석의 도표까지 제시되어 있었다. 자연과학과의 접목을 통해 그 시대의 동물들과 식물자료 등의 분석을 통해 식생활을 분석해 낸 것이 특이하다.www.keyton-co.jp오츠카 유적에 대하 발굴현장 자료로서 사진자료 등 많은 것이 정리되어 있는데 고고학 관련 현지 설명회의 자료나 사진등도 공개하고 있어 항공사진 같은 자료 등 흔히 볼 수 없는 자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링크된 여러 자료등을 통해 동시대의 다른 사이트 및 흥미로운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다.
    인문/어학| 2004.06.06| 2페이지| 1,000원| 조회(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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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문화] 영화 '영웅' 감상문
    하늘이 내린 영웅을 어이하리-영화 〈英雄〉을 보고-내가 英雄이라는 영화를 본 것은 ‘영상으로 보는 중국문화’ 수업이 처음이 아니었다. 2003년 1월 23일 英雄이라는 영화가 개봉한날 이 영화를 접했다. 영화포스터의‘이연걸, 장만옥’이라는 이름과,‘이연걸과 견자단의 절대무공의 경지, 장예모의 완벽한 연출력, 장예모 무협대작’이라는 글귀를 보며, 이 영화를 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무협영화에다 감독 장예모와 두 명의 배우는 내가 잘 아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연걸은 무술영화 아니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런 풍모에 중국무술의 최고수로서,〈黃飛鴻〉〈The One〉으로 잘 알려졌으며, 장만옥 역시 무협영화에 잘 어울리는 여배우로서, 〈新龍門客棧〉〈東方三俠〉으로 잘 알려졌다. 감독 장예모는 1987년에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영화제에서 금곰상을 수상하였으며, 1990년에 〈국두〉로 칸영화제에서 루이스브뉘엘상을 수상한 중국을 대표할 만한 명감독이다.〈英雄〉은 시대배경이 중국 전국시대 말기이다. 7웅(진, 초, 연, 제, 한, 위, 조) 중 뒤에 시황제로 불린 진나라의 왕인 영정이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서 나머지 여섯 나라의 목을 죄던 때, 강력한 영정을 죽이기 위해 자객으로서 목숨을 버린 ‘은모장천’과‘비설’과 ‘파검’과 ‘무명장수’의 사랑과 배신과 대의명분을 주제로 하고 있다.이 영화는 두 가지로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무협대작’‘절대무공의 경지’라는 영화포스트의 글귀를 볼 때 무술의 달인 간에 뭔가 살벌한 대혈투 장면을 기대해도 좋을 듯한데, 무명과 은모장천의 비무장면을 보면 분명 대단한 혈투인데 몸이나 무기가 부딪치는 것이 아닌 마음만으로 하는 비무 즉 ‘심중비무’를 한다든지, ‘비설’과 하녀 ‘여월’간의 비무는 ‘화폭풍’즉 화면을 붉고 노란 꽃잎으로 가득 채워 그 엄청난 혈투가 마치 꽃잎폭풍 속을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환상적으로 처리되어, 전혀 처절하고 살벌한 분위기를 느낄 수 없게 한 것이다. 이처럼 장면마다 분위기에 맞춰 중국적인 배경음악과 함께 적색, 청색, 흰색, 녹색, 검정 이 다섯 가지색으로 화면 전체를 물들여 관람자들로 하여금 장면마다 색다른 감정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 적색은 질투와 격렬한 감정을 나타내고, 청색은 희생을 나타내며, 흰색은 절실한 사랑, 녹색은 회상, 검정은 진나라의 강한 군사력과 확고한 통치력을 뜻한다고 한다. 색을 이용해 주인공들의 감정과 배경을 만든것은 리안 감독의〈臥虎葬龍〉에서 시도되었던 ‘중국적이고 서사시적인 무협영화’를 한 단계 끌어올려 마무리짓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게 한다.또 한 가지는 정신차리고 보지 않으면 “도대체 뭐가 이리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기만 하는가?”하는 의문과 함께 짜증을 내다가 잠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줄거리가 처음부터 끝가지 영정과 영정을 죽이러 온 무명의 머리싸움 이야기 때문이다. 무명이 영정을 죽일 수 있는 10보 안에 걸어 들어가기 위해 은모장천과 비설과 파검이라는 절대고수들을 죽였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영정이 이 말을 탐정이 추리하듯 삼 단계로 나눠 밝혀내는 과정이 주된 내용인 것이다.이와 같이 이 영화는 몸과 무기가 정신없이 돌아가면서 부딪치고 피가 튀는 처절하고 살벌한 장면이라든지, 처음 몇 장면만 보면 끝 부분을 얼추 그려볼 수 있는 보통의 무협영화가 아닌 것이다. 때문에 ‘12세 관람가’의 딱지가 붙었다. 그러나 무명이 영정을 죽일 수 있는데도 죽이지 않고 돌아서서 죽음을 택하는 장면과, 아무리 일당천의 초절정고수라 하더라도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칼 하나로 막아내는 장면에 대해서 12세 정도의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간다.〈반지의 제왕〉처럼 환타지 영화라면 몰라도. 그래서 중국사람은 뻥이 세다고 했나 보다.〈英雄〉을 통해 관과할 수 없는 것은 첫째,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처절한 세력다툼과 그 세력다툼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데 희생양처럼 몸바쳐진 무수한 자객들의 의리와 충성심이다.
    독후감/창작| 2004.06.06| 2페이지| 1,000원| 조회(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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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고학] 한국청동검의 계보와 그 동반유물
    韓國 청동검 계보와 그 동반유물Ⅰ. 머리말우리나라 청동검의 원류와 변천과정에 대한 연구는 최근 고고학적인 새로운 발굴 자료에 힘입어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진행 되고 있다. 특히 남부지방에서 출토된 고조선식동검과 마제석검의 동반관계나 한국식 동검과 철기와의 동반관계는 청동기 시대와 초기철기 시대의 구획을 분명하게 하는 등 이 방면연구에 급진전이 기대된다.Ⅱ. 청동검의 계보1. 고조선식 동검먼저 여기서는 청동검의 명칭을 고조선식과 한국식으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그중 한국식 동검이란 지금까지 만주식 요녕식 또는 비파형 동검으로 주로 명칭 되어 온 것인데 최근 전남 우산리 적양동 등 우리나라 남부지방까지 전국적으로 출토되고 있다. 또 경남 진동리 출토의 것은 비파형이 아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과거와 같이 지명이나 형태를 따져서 명칭 하는 것 보다 오히려 당시 이 동검을 직접 사용한 주인공이 고조선인에 해당하므로 그 사람들의 명칭을 따서 고조선식 동검이라 하였다.고조선식 동검을 그 형태에 따라 시기적으로 우선 크게 제 1,2,3기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1)제1기고조선식 동검 가운데 가장 고식에 해당한다. 형태상으로는 길이에 비해 폭이 넓은 느낌을 주며 봉부는 뾰족하고 날카로운데 겨우 돋아났다 할 정도로 짧다. 전방 돌기는 전체 길이의 1/3보다 앞서 있으며 그곳 도신은 둥근 감을 준다. 검신의 최대 폭은 중간에 있고, 기부가 좁다. 고조선의 고지라고 생각되는 요녕성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는데 1980년 6월에 조사된 요녕성 신금현 쌍방유적은 탁자식 지석묘 , 개석식 지석묘, 석관묘가 혼재하고 있는 곳인데, 여기서 고조선식 동검 1점과 함께 미송리형 토기 1점 점토대토기 등이 출토되어 공반 유물을 통한 편년의 검증을 가능케 하고 있다. 그밖에도 같은 특징을 가진 것이 요녕성 등 북쪽지역에서 초기의 것이 출토 되고 있는데 이는 곧 고조선족이 이곳에서 처음 활동하였음을 확인 가능케 하고 있다.2)제 2기이 시기의 동검은 검신 길이가 앞의 것보다 약간 길어지는 경향이 있으며 전방의 돌기는 뒤로 조금 물러나고 검신 최대폭도 기부 쪽으로 내려간다. 경부는 단면이 둥글고 길며 부여 송국리 출토 것은 자루 부분과의 연결을 위한 홈이 파여 있다. 대표적인 것은 요녕지역의 강상, 십이대영자, 오금당, 남산한과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부여 송국리, 청도 예전리의 출토의 것이다. 이 시기에서는 동검 외에 약간 퇴행하는 미송리형 토기와 마제석검, 동경이 출토되어 시기적으로는 제1기 보다는 늦은 단계인 B.C.600~B.C.450에 해당된다고 추측된다.3)제3기고조선식 동검 중에서는 가장 늦은 시기의 것인데 형태상으로는 검신이 변형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대부분 세형으로 전방의 돌기가 생략된 것, 중간에 형식적 이나마 유지하고 있는 것 등 다양하며 전의 제1기 제2기의 동검이 목제자루를 사용한데 비해 이 시기의 것은 T자형의 청동제 자루를 갖는 것도 있다.창원 진동리 유적은 남해안에 근접한 밭둑에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것인데 상성이 유실된 지석묘의 하부에서 고조선식 동검과 유병식 마제석검, 홍도편이 함께 출토되었다. 이 시기 남부지방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는 마제석검과 동경, 홍도 그리고 북쪽에서 출토되고 있는 장구호 옹형 토기의 특징, 또 정가와자 유적에서 출토된 동경의 연대 등을 미루어 보아 대략 B.C450~B.C.300년에 해당하는 유물들이라고 판단된다.Ⅱ.한국식 동검1)제1기이 시기는 지석묘가 끝나고 북쪽으로부터 목관묘가 남부지방까지 유입되는 단계로서 전의 고조선식 동검과는 청천강을 경계로 구분되어 나타난다. 동검은 검신이 넓으며 등대의 능각은 결입부 끝에 머물고 기부는 둥근 맛을 낸다. 경부는 짧고 그 단면은 원형이며 검신중 등대보다 양 도신이 넓은 것도 특징 중의 하나이다. 부여 연화리, 대전 괴정동, 예산 동서리, 연해주 이즈웨스토프 유적에서 출토되는 것이 그 대표적 이다. 그 중 대전 괴정동 출토품은 낮은 구릉 정상부에 독립되어 축조된 석관묘에서 출토되었다. 이 단계는 시기적으로 B.C.300~B.C.200년으로 비정되는데 동모의 공반은 중국 전국시대의 무기와의 접촉을 의미하는 듯 하고 같은 형태의 동검 중 에서는 조금 늦은 시기의 것임을 의미하는 듯싶다. 역사적으로는 연의 요동 점령에서 위만의 남하에 이르는 사정들이 이 단계의 배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2)제2기전기한 제 1기의 특징 위에 봉부가 다소 길어지면서 검신부가 다소 좁아진 형태의 것이라도 말할 수 있는데 동반유물에서 동모 외에 동과가 추가되고 다뉴 조문경은 다뉴 정문경으로 바뀐다. 또 마제석검과 같은 석기는 소멸되고 공령구와 같은 의기가 나타난다. 이 단계는 함께 출토된 토기등의 특징으로 보아 B.C.200~B.C.100년사이로 비정되며 역사적으로는 위만의 남하에서부터 한사군 설치라는 배경이 상정된다.3)제3기이 단계의 동검은 등대의 능각이 기부에까지 이르며 검신부는 전기한 제2기의 것과 거의 동일하다. 봉부는 짧고 도부가 기부에까지 이르며 기부는 경부와 직각을 이룬다. 또 등대 폭이 검신에 비해 점차 확대되어 가고 개중에는 결입부가 퇴화되어가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있다. 토기는 조합식우각형파수부장경호와 화분형 토기등이 출토되며 시기적으로는 B.C100~B.C.1년 정도에 해당한다고 생각된다.4)제4기전기한 제3기보다 봉부가 길어지고 검신 결입부의 상하절대도 퇴화되어 인부가 직선상을 띤다. 개중에는 등대가 인부 폭보다 넓어지는 것도 있고, 기부에까지 능각을 가진 것, 그저 평평하면서 여러개의 홈을 가지런히 가지는 것 등 변형된 것들이 많다. 주로 목곽묘에서 출토된다. 이 단계는 시기적으로 A.D.1~A.D.100년경으로 비정되는데 그것은 공반 유물인 전한경과 후한경의 연대와 역사적으로 신의 소멸과 후한의 성립 배경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Ⅲ. 공반 유물의 특징1.토기청동기 시대 토기는 신석기시대 토기에 비해 기종과 형태가 다양한 편이며 고조선식 동검 시기에는 소위 미송리형 토기라고 하는 것과 변형 팽이형 토기가 주로 출토되고 한국식 동검 사용기에는 흑색 장경호, 점토대 구연토기 화분형 토기 등이 출토되고 있다. 그 가운데 고조선식 동검 제 1기에는 전형적인 미송리형 토기와 점토대 구연토기가 출토되고 있다. 미송리형 토기는 세죽리 출토 토기를 기준해서 신고식의 구분이 가능하다. 동부가 팽창하고 그 최대경은 아래로 내려가면서 대장파수와 표면에 집선문을 갖는다. 반면에 신식은 경부가 길어지면서 동부는 줄어들고 그 최대경이 중간에 있으며 집선 문양대도 줄어든다. 그런데 제1기 동검기 에는 이런 신고식이 함께 섞여서 출토된다.미송리식 토기가 출토된 미송리 유적은 신석기시대 문화층과 청동기시대 문화층이 상하 층위를 형성하고 있어서 청동기시대로서는 조기의 것이라고 비정되며 제 1기 고조선식 동검 편년에 도움을 주는 것인데 대부분은 그 상한을 B.C.8세기 전후로 보는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 제2기는 전기한 제1기의 신식의 것이 점차 변형된 것으로 경부는 점차 길어지고 동부 최대경은 견부로 이동되며 동부에 있던 파수도 생략된다. 제3기는 직립하는 경부는 길어지고 동부 최대경은 중위에 있다. 옹형 토기는 단면이 원형의 점토대구연부를 갖는다. 옹과 호의 세트의 관계는 제1기부터 시작되지만 이 단계에서는 우연히 짝지어지고 고조선 고지에서는 흑갈색의 장경호가 대부분이지만 남부지방에서는 홍도가 대신하고 있다.다음 한국식 동검 사용기에는 모두 4기로 구분하였는데 먼저 제1기에는 단면원형의 점토대구연 토기에 흑갈색장경호가 세트를 이룬다. 장경호는 구연부가 직립하고 옹은 원형점토대를 갖는 것이 전기한 고조선식 동검 제3기와 연결된다. 이 단계 남부지방에서는 마제석검등 마제석기가 끝나고 홍도도 자취를 감춘다.제2기는 장경호의 구연부가 약간 벌어지고 옹형토기는 단면삼각형의 점토대구연을 갖는다. 평양지방에는 화분형 토기가 보이며 조합식 우각형 파수도 나타난다. 제 3기에는 흑색 장경호와 점토대구연 토기는 소멸되고 우각형 조합식파수 토기와 화분형 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한사군과 관계있는 듯 하며 평양지방의 목관묘, 목곽묘가 이를 설명하여 주고 있다. 제4기는 회청색연질과 적갈색연질의 화분형 토기가 출토되며 무문토기는 대부분 소멸된다. 전국적으로 회청계통 토기의 변혁이 보이는데 남부지방의 경우 철의 개발과 함께 토기에 있어서도 변화를 보이는 시기라고 생각된다.이상과 같이 청동검과 함께 출토된 토기에 있어서도 그 변형 또는 발전과정이 뚜렷이 엿보이지만 우리나라 무문토기 자체의 지방적인 다양성 때문에 개체간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기가 현재의 단계에서는 어려움이 많음을 알 수 있다.2. 기타그 이외에 청동검에 동반하는 유물 가운데 그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은 삼각형 석촉과 동부 유병식 마제석검 등이 있다. 그중 삼각형 석촉은 고조선식 동검 제 1,2,3기에서 한국식동검 제 1기까지 계속 사용되어 다른 청동기시대 유적들과 상호 비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선후의 구별이 가능한 것이어서 청동검의 계보파악에도 일조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유병식 마제석검은 류엽유경식 마제석검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주로 출토되어 북쪽 고조선고지와의 미교가 현재의 단계로서는 어려운 점이 없지 않으나 남부지방에서는 고조선식 동검과 함께 출토되고 있어 상호 편년비정에 중요 역할을 하고 있다.또 한국식 동검 제1,2기에 나타나는 의기 류와 제3,4기에 나타나는 차여구는 당시 정신문화의 흐름과 교통수단의 발전은 물론 우리나라 고유문화와 외래문화를 구분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는 것이다.Ⅳ. 끝맺는 말지금까지 우리나라 청동검의 계보와 동반유물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정리과정에서 느낀 점을 살펴본다면 이렇다.
    인문/어학| 2003.12.08| 4페이지| 1,000원| 조회(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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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고학] 백제 횡혈식 석실분
    百濟 橫穴式 石室墳Ⅰ. 橫穴式 石室墳의 構造形式墓制的 特性횡혈식 석실분은 石築墓 系統의 묘제로 竪穴式 橫口式 石室墳과 대비되는 묘제이다. 그러나 같은 橫穴式 石室墳 일지라도 構造部位別刑態에서 서로간에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유형을 보다 세분하는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地域 特性, 形式 變化, 發展 및 形式간 변천관계를 고찰하는 근거가 된다. 횡혈식 석실분도 墓制적으로 나름의 特性이 있다. 이는 고유의 特性일 수도 있고 반면에 외부 영향이 결과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횡혈식 석실분의 외형적 환경이나 매장부를 조성하기 위한 기초시설 그리고 시신을 직접 안치하기 위해 마련된 埋葬部로 구분하여 살피고자 한다.1) 외형적 形狀고분 외형의 發生은 屍身을 안치하기 위한 공간을 조성하는 초기 단계에서 비롯되지만 상당히 복합적인 것으로 추정된다.① 입지환경횡혈식 석실분 입지환경은 山地 立地가 공통적으로 지적된다. 그런데 이들의 분포지역을 세분하면 이들 지역에 잔존된 개별 고분의 입지환경은 모두가 동일한 내용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역을 구분하여 같은 지역에 잔존된 다른 묘제와 입지환경과 비교하면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 구분은 한강유역, 금강유역, 영산강유역을 비롯한 남부지역으로 나누어야 할 것이다.한강유역의 횡혈식 석실분은 가락동 방이동의 예가 있고 더불어 중곡동 여주 등지도 알려져 있는데 가락동 방이동 이외는 백제 고분으로서의 성격이 구체적이지 않다. 횡혈식 석실분의 입지는 산으로 보는 데는 문제가 없는데 이들은 40~50m의 丘陵上 혹은 그 斜面에 자리하여 산지 입지라는 일반적 현황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횡혈식 석실분의 입지가 대체로 구릉의 사면 혹은 그 정상부에 남아 있기 때문에 같은 지역의 토광묘나 적석총 입지와 비교하면 山地的 性格이 강한 지역에 자리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한강유역 횡혈식 석실분의 입지를 금강유역의 횡혈식 석실분의 입지와 비교하면 오히려 山地로 보기가 어렵기도 하다. 금강유역의 환경과 비교하면 입지 자체가 거의 평지에 가깝다 가지 환경이 모두 확인된다. 흥덕리 쌍실 고분 이나 남원 초촌리, 대안리 석실분의 입지는 典型的 山地의 예이다. 그러나 평지로 구분할 수 있는 지형에 조영된 자료는 영천리나 송제리 등의 고분이 있는데 이들의 立地가 비록 완전한 평지로 보기는 어렵지만 앞의 경우와 비교할 경우 거의 평지에 가까운 地形이다. 다만 이들도 종합적으로 보면 평야지보다 오히려 丘陵上의 地形으로 볼 수는 있다. 여기에서 산지 입지의 경우는 南向 斜面을 選好한다.백제 횡혈식 석실분의 입지는 地域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산지의 斜面 혹은 丘陵上이나 그 斜面이 선정된다는 공통점이 있다.② 墓室位置횡혈식 석실분의 埋葬主體는 대체로 地下에 마련된다. 이러한 埋葬部의 地下化는 墓室天井이 平天井으로 바뀌면서 묘실 상면에 가해지는 봉분의 중압을 막기 위한 조치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이 되기도 한다. 묘실의 위치는 입지 환경을 전형적 산지와 산지보다는 저평한 구릉이나 평지로 구분하면서 서로 차이가 있다. 산지에 자리한 유형이 지배적인 금강유역의 석실분은 경사면에 잇대어 L字형태 혹은 竪穴의 묘광을 판 후 그 안에 석축으로 埋葬部를 지하에 造營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주 웅진동의 횡혈식 석실분은 대체로 지하에 매장부를 조성한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공주 송산리 석실분도 매장부가 대부분 지하에 조성되었고, 부여 능산리 석실분 매장부도 지하로 조성한 것이다. 특히 익산 입점리의 1호분은 천정을 穹?式으로 조성하고 입구에서 연도를 거쳐 나가는 긴 배수로가 설치된 유형으로 묘실이 240cm의 높이로 만들어 졌음에도 전체 埋葬部를 완전히 地下式으로 아우르는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그런데 매장부가 地下式 혹은 半地下式으로 조성된 자료들은 대체로 한강유역이나 영산강유역에 있는 , 즉 입지환경에서 금강 유역의 고분과 차이를 보이는 지역에서 확인된다. 한강유역의 가락동 방이동 횡혈식 석실분은 半地下式으로 매장부를 조성한 것이 많다. 또한 영산강 유역의 영천리 석실분이나 조산 고분은 異例的으로 지상식으로 조영된 유형들이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先行墓制인 地上式 積石塚이나 土壙墓, 甕棺墓의 築造傳統이 잔존되거나 혹은 이들의 영향에서 나타난 결과가 아닌가 여겨진다.③ 封墳封墳 造成은 古墳을 장대하게 표현한다는 목적과 함께 標式施設로 혹은 내부 매장부의 보강시설로 축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백제고분 특히 횡혈식 석실분은 봉분 파악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자료 중에서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은 봉분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백제 왕릉지역인 송산리 고분군과 부여 능산리 고분군을 보면 송산리 고분군은 봉분이 거의 잔존되지 않은 것으로 전한다. 반면에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서는 어느 정도 봉분 형상이 잔존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다만 송산리 고분군과 능산리 고분군은 順次的으로 造營된 것인데 이로 보면 봉분의 잔존 차이가 봉분 조영환경의 변화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유실 등의 요인에 근거한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한편 봉분이 남아 있는 것과 남아 있지 않은 것을 지역적으로 구분하면 주목할 수 있는 내용이 발견된다. 그동안 봉분이 확인된 자료는 한강유역 방이동이나 가락동 석실분과 영산강 유역 석실분을 들 수 있다. 반면에 횡혈식 석실분이 집중적으로 남아있는 금강유역에서는 봉분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따라서 봉분 검토는 먼저 봉분이 造營되었는가 아닌가의 문제부터 실시되어야 하는데 이 또한 어려움이 많다. 특히 금강유역 횡혈식 석실분에서 封墳 不在는 山地 傾斜面에 자리한다는 입지환경을 근거로 본래는 봉분이 조영되었으나 후대에 유실된 것으로 보지만 이에 대한 적극적 論理의 제시도 어려운 형편이다. 그런데 횡혈식 석실분의 전반적 현황을 고려하면 봉분이 남아있는 고분과 그렇지 못한 고분 간에는 분포 및 構造에 나름의 특성이 있다. 우선 封墳 形狀이 남아있는 한강 유역이나 영산강 유역의 자료는 저평한 구릉지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지배적이다. 더불어 이들은 埋葬部를 만들기 위하여 墓壙을 지하로 파기보다는 묘실의 일부를 지상으로 드러내는 , 즉 半地분명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한편 금강 유역의 석실분은 묘실을 완전히 地下로 構築하였기 때문에 묘실의 보호 혹은 보강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견고한 봉분을 구축할 필요가 그만큼 적었고 아울러 봉분의 규모도 상대적으로 미약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이지자체가 산지의 경사면이라는 환경으로 미약한 봉토마저도 쉽게 유실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다만 규모를 갖춘, 즉 왕릉급에 해당하는 고분들은 봉분조성에 특별한 배려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능산리 고분군을 그 대표적 事例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아무튼 백제 횡혈식 석실분에서 봉분은 조성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현존자료의 범위에서 보면 高句麗나 新羅 橫穴式 石室墳처럼 고총고분의 형상과는 다른 형태로 봉분을 만든 것이 아닌가 판단될 따름이다.④ 長軸方向외형의 마지막 내용은 횡혈식 석실분이 처음 축조될 때 墓室方向, 즉 長軸方向은 어떻게 결정하였는가 이다. 백제 석실분이 長軸方向은 風水思想에 입각한 설명 혹은 枕向과 관련한 北枕 思想 이나 立地選定에서 四神思想등이 언급되어 왔다. 이 경우 장축이 어떤 방향으로 선정되는가가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진다.백제 횡혈식 석실분의 묘실 장축 방향은 고분이 입지한 지역의 地形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까지 조사된 고분군의 입지는 대체로 양지바른 남향 사면이다. 여기에 횡혈식 구조의 석실분을 축조할 경우, 묘실 입구를 경사면 하단에 둠으로써 묘실은 자연히 남북의 장축을 가지게 된다. 동일한 고분군 내에서 개별 고분들은 각각의 장축방향에 서로 약간씩 차이가 있다. 그런데 장축 차이는 정확하게 각 고분이 자리한 지형의 경사 방향과 차이가 일치한다. 이는 묘실의 장축을 정확하게 경사방향과 동일하게 배치하기 때문이다. 결국 묘실 장축방행은 고분군이 남향의 경사면에 위치한다는 조건에서 대체로 남북의 장축이 설정되지만 , 구체적 방향은 방위 개념보다는 오히려 지형의 경사방향에 지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한편 이러한 장축방향의 결정은 횡혈식 석실분의가 남향 사면에 입지한다는 환경은 묘실의 장축을 남북방향으로 형성케 된 배경을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를 모든 백제 고분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는 의문이 있다. 백제사회에 方位槪念이 認知되었다는 사실은 建物址나 武零王陵 誌石의 내용에서 확인된다. 또한 일부 횡혈식 석실분은 지형에 관계없이 장축을 남북 방향으로 선정한 것도 있다. 하지만 백제 횡혈식 석실분의 전반적 현황에서 매장부의 장축은 방위보다는 지형에 좌우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나아가 묘실 장축은 고분의 변화 및 발전과정을 추론할 수 있을 만큼 규칙적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요컨대 백제 횡혈식 석실분의 外形的 特性은 나름대로의 獨創性이 있다. 입지환경에서 산지에 자리한다던가 산지중에 남향이 경사면을 선호하는 選地 觀念, 그리고 埋葬部를 地下에 조성한다는 특징, 長軸方向의 설정이 方位觀念 보다는 오히려 築造環境 및 選地思想과 관련되면서 더불어 築造의 便宜에 좌우된다는 특징을 꼽을 수 있다. 다만 封墳 門題는 자료의 한계로 구체적 연구가 어렵지만 대체로 高塚古墳의 造成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이러한 외형적 특성은 대체로 한강유역 금강유역 그리고 영산강 유역으로 지역 구분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역 구분에 의한 요서별 同異門題는 횡혈식 석실분 자체의 발전 변화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각 지역의 토착묘제의 古墳築造 傳統과 有機的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로 말미암아 山地 立地라던가 南向 斜面에 대한 選地思想, 埋葬部의 地下化 長軸 方向의 選定등에 있어 부분적인 변형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2)매장부의 형태백제 횡혈식 석실분은 오형부다는 埋葬主體部에서 보다 분명하고 다양한 특징적 성격을 많이 지니고 있다. 외형적 환경, 즉 입지나 축조환경 등이 어느정도 보편성을 나타내면서 획일적 형태이던가 아니면 형태간 차이가 있더라도 이는 미미한 형태일 뿐이다. 그러나 매장부이 각 구조 요소는 형식 차이를 지적할 수 있을 만큼 차이가 분명하다. 따라서 이런 매장부.
    인문/어학| 2003.10.16| 7페이지| 1,000원| 조회(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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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이도 가운데살막 패총
    Ⅰ. 유적환경행정구역상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속하는 오이도는 동경 126.4 북위 37.2 로 원래 본토 해안에서 약 4km정도 떨어져 있는 섬이다. 지리상으로 볼 때 내륙에서 서해상 으로 진출하기 위해 주요한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오이도 패총은 1960년 윤무병 선생에 의해 처음으로 북부지역 패총(안말 패총) 의 존재가 확인 된 이후 수십 차례에 걸쳐 지표조사 및 발굴 조사가 실시되어 대략적인 윤곽이 파악되었다.오이도의 패총들은 오이도 내 6개 지역 12개 지점에서 확인 되었다. ①섬 최북단 구릉에 위치한 안말 패총 ② 오이도 남단에 형성된 신포동 A, B, C 패총 ③ 오이도와 똥섬 사이의 사구 지역에 형성된 소래벌 패총 ④ 오이도 남서쪽에 위치한 가운데 살막 가. 나. 다 패총 ⑤ 섬 최북단 구릉의 남서 사면에 형성된 뒷살막 패총 ⑥ 오이도와 똥섬 사이의 사구와 이어지는 구릉사면과 사구에 형성된 작은 소라벌 A, B, C 패총이다.자연환경으로는 수심이 얕은 해안에 위치해있고 수온도 계절적으로 변동이 심하다. 넓은 갯벌이 형성되어 있어 이 주변의 신석기 시대 유적은 해양환경에 적응한 결과라는 점에서 이 주변의 자연환경은 중요한 요소이다.Ⅱ. 조사경과1. 가패총가패총은 가운데 살막으로 들어오는 진입도로변 북쪽 구릉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발굴조사 당시 패총은 이미 훼손이 심각한 상태였다. 비록 패총 훼손이 심각한 상태였지만패총의 전체 범위를 확인하기 위해 5×5m 그리드 3개를 구획한 후 , 가-1 피트와 가-2 피트에 남북 방향으로 너비 2m의 트렌치를 설치하여 굴토 하였다. 그 결과 가-1 피트와 가-2 피트에서는 패각층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가-3 피트 남쪽 끝으로 패각층이 일부 확인되었는데, 패각층 내에서는 즐문토기편 몇 점이 수습되었다.2. 나패총해안으로 뻗은 능선의 남쪽 경사면에 가패총이 형성되어 있으며 북쪽 경사면에 나패총이 형성되어 있다. 굴토는 우선 각 피트 내에 4등분한 구역별로 너비 30cm 가량의 트렌치를 약 10cm씩 일정 두께로 바닥면 까지 굴토 하였다. 그 과정에서 층위를 파악 한 후 각 층을 한 층씩 걷어내는 방식을 취했다. 이런 방식으로 각 피트를 바닥면까지 굴토하고 난 후 존체 패각의 층위를 서로 연결하며 양상을 살펴보았다.3. 다패총다패총은 나패총 북쪽 계곡 건너편 구릉사면에 형성되어 있다. 도로공사 과정에서 확인되어 추가 조사가 이루어진 곳인데 경사도가 30?가량으로 가파른 지형이다. 도로공사 과정에서 드러난 패각층은 잘게 부서진 굴 껍질과 흑색 부식토로 이루어진 혼토패층으로 이 패각층에서 즐문토기와 함께 백제토기가 수습되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이 혼토패층은 재퇴적된 것으로 판단되었다.Ⅲ. 조사내용1. 가패총층위: 패총이 형성된 구릉은 경사도가 약 10?가량으로 비교적 완만한 편으로, 조사당시 패각층 일부가 단애면에 노출되어 있었다. 패각의 전체 범위를 확인하기 위해 단애면 서쪽 사면에 5×5m 그리드 3개를 구획하여 굴토한 결과 표토층-암갈색 사질 점토층- 황색 점토층 순으로 퇴적되어 있었다. 가-3피트 남쪽 끝에서만 패각층이 일부 확인 되었는데 패각층은 잘게 부서진 굴껍질과 흑갈색 부식토로 이루어진 혼토패총으로 이 패각층 내에서 즐문토기편 몇 점과 후대 토기가 함께 수습되었다. 많이 훼손되어 있는 상태였고 유구는 확인 되지 않았다.유물의 출토 양상을 보면 즐문 토기편, 경질토기편, 등의 토기편이 전부이다.2. 나패총층위:패각이 확인되는 피트의 층위는 Ⅰ층(표토층)-Ⅱ층(굴껍질이 잘게 부서진 흑갈색 혼토층)-Ⅲ층(마모가 심한 굴껍질로 이루어진 황색 혼토패층)-Ⅳ층(백색 순패총)-Ⅴ층(흑색 부식토층)-황생 점토층으로 구분된다. Ⅲ층에서는 즐문 토기도 수습되지만 대체로 회색 또는 적갈색의 경질 토기편이 철제품과 함꼐 출토되고 있어 삼국시대 이후에 형성된 패각층임을 알 수 있다. Ⅳ층을 신석기 씨대 패총으로 볼 때 모두 12개의 패각더미가 평면상 층위상에서 확인 되었다.유구: 4개의 야외 노지 외에는 별다른 유구를 확인할 수 없었고 이중 2개는 땅을 20cm가량 판 후 돌을 채운 형태이며 나머지 2개는 아무런 시설 없이 바닥에 재만 확인되는 형식이다.유물의 종류는 즐문토기편, 경질 토기편, 석부편, 고석편, 원반형 석기, 용도미상 석기등이 있다.3. 다패총층위: 표토층 밑으로 잘게 부서진 굴껍질과 흑색 부식토로 이루어진 혼토 패층이 50cm가량으로 퇴적되어 있으며, 혼토패층에서는 즐문토기 뿐만 아니라 백제토기도 함께 출토되었다. 이 혼토패총은 재퇴적된 것으로 판단된다.유구: 혼토패층 밑으로 수혈주거지 3기가 확인되었다. 이3기 모두 벽선 일부만 남아 있고 3기의 주거지 모두 혼토패층 밑에 있는 관계로 언제 형성된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노지 주변 바닥면에서 즐문토기편이 출토되고 있다는 점에서 신석기 시대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신석기 시대의 주거지라고 하더라도 장기간 거주에 따른 주거시설이라기보다는 굴이라는 해양자원을 채취하기 위한 한정적 행위의 산물, 즉 캠프유적일 가능성이 크다.유물은 즐문토기편과 경질 토기편이 확인되었다.Ⅲ. 고찰주거지 : 다 패총의 주거지는 기둥구멍 등 별다른 시설 구조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의 주거지는 형태, 시설, 투여 노동력 등에서 정주 생활을 위한 주거지라기보다는 일시적인 야영시설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내륙지역의 주거유적과 강화도, 영종도의 주거유적에서 확인된 즐문토기의 문양구성이 비교적 단순한 편인데 반해 이들 소규모 패총유적에서 출토되는 즐문토기의 문양구성은 매우 다종다양하다. 이러한 점은 소규모 패총유적과 여기서 확인되는 주거시설이 주변 여러지역의 집단들이 일시적으로 점유하여 남겨놓은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가운데살막 다패총의 주거시설은 야영시설로 보아야 할 것이다.야외노지 : 나 패총에서 4개의 야외노지가 확인되었다. 이들 야외노지는 크게 구덩이를 파고 돌을 채워서 만든 즙석형 형태와 아무런 시설없이 바닥에 재만 확인되는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즙석형태의 노지는 먼저 땅을 20~30㎝ 가량을 판 뒤 돌을 채워 불로 달구거나, 다른 곳에서 불에 달군 돌을 채운 뒤 음식을 조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운데살막 나패총에서는 모두 4기의 노지가 확인됨에도 불구하고 굴껍질에 불맞은 흔적이 없다는 점은 신석기시대인들의 패각처리방식과 관련하여 이들 노지의 성격을 보여주는 자료로 판단된다. 노지가 확인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맞은 패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패각처리에 있어 불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시사하며, 노지는 패각처리와 무관한 시설일 가능성이 높다.
    인문/어학| 2003.10.16| 3페이지| 1,000원| 조회(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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