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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물리의 특이성
    현대물리의 특이성소 속 : 기계 및 산업공학과담당교수 : 김영태학 년 : 1학년학 번 : 200020035성 명 : 김병건제 출 일 : 2000년 5월 31일[1] A BRIEF HISTORY OF TIME(스티븐 호킹 저 著, 삼성출판사, 1996)[2] COSMOS(칼 세이건 著, 學圓사, 1984)[3] 물리학의 ABC(후쿠시마 하지메 著, BLUE BACKS, 1993)[4] 상대론의 ABC(후쿠시마 하지메 著, BLUE BACKS, 1993)[5] 궁극의 가속기 SSC와 21C 물리학(모리 시게키 著, BLUE BACKS, 1994)[6] 알기 쉬운 양자론(쓰즈키 다쿠지 著, BLUE BACKS, 1994)과학이 설명하려 하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왜 과학을 배워야 하는가.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지식들이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까. 또한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상식적으로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 중에 과연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 것도 있지는 않을까. 이러한 생각들이 과학의 변천사와 그에 따른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는 도중에 갖게된 의문들이다.과학은 아주 자연스러운 명제-'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인간이 아닌 인간을 둘러싼 존재 바꿔 말하면 인간과의 비교대상, 즉 자연을 그 설명의 대상으로 삼고 자연현상을 분류하여 정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되었다. 고대부터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보편적 법칙을 발견하고(주로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예를 들어 홍수의 주기 등)이를 실생활에 이용했으며 이를 위하여 어떤 현상에 대한 이유를 밝히려고 애써왔다. 이러한 지식들이 점차 쌓이면서 이론화, 정의화 되었으며 다시 이러한 이론들이 다음 레벨의 이론으로 올라가는 밑거름이 되어왔다. 이 과정에서 아주 큰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었으니 이를 '과학혁명'이라 한다. 그럼 이 과학 혁명을 통해 바뀌게 된 당시의 생각들에는 무엇이 있으며 전후의 차이로는 무엇이 있을까.우리가 지금 보기에는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들 -물이 흘러가는 것, 비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물리학의 실체였으며 이러한 놀라운 결과에 대해 사람들은 다시 생각의 방향을 바꿔야만 했다. 물리학이나 다른 과학분야에서 말하는 결과라는 것이 정확한 것이 아닌 단지 얼마의 확률을 가진 값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아인슈타인조차 과학은 절대적이며 그 이론이 정확하고 실험의 결과가 정확할수록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의 과학에 대한 관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명한 말이다. 직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정확한 값만 있다면 미래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과학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비록 과학사적으로도 최근에 와서 처음으로 양자론에 의해 깨어지기는 했지만(이것조차 처음에는 아인슈타인이라는 당시의 절대적 지성에 의해 공격받아야 했다) 아직도 상식이라는 이름으로써 그러한 믿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바로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이름으로 과학의 무서움(?)을 표현하곤 했으니 말이다. 객관적이어야 할 과학자들조차 자신의 학문에 대한 믿음으로서 이러한 존재의 가능성을 표현했으니 지금의 관점으로서도 그러한 결정론적인 믿음을 버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이러한 아주 간단한 예조차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의 틀을 깨고 있다. 하지만 이런 흐름조차도 과학사(史)적으로 볼 때 극히 최근에 와서야 카오스이론이라는 형식으로 정립되어진 것이다. 이처럼 그 시대의 사람들이 믿는 패러다임이 바뀌는 데는 정말 어려운 사고(思顧)의 전환이 일어나야만 한다. 그럼 우리가 항상 자주 접하던 '고전물리'와 `현대물리'의 차이는 과연 어디에 있으며 그 사고의 차이가 나타내는 것은 무엇일까.우선 쉽게 생각하여 자연계는 연속인가 아니면 띄엄띄엄한 불연속의 세계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현대에 들어와 결국 양자론이 결말을 지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리스 시대의 사상을 따로 한다면 18세기까지 물질은 연속체라고 생각되고 전에 이에 대하여 처음으로 날카로운 비판의 화살을 날린 사람은 E.마흐 이다. 그는 {역학의 발달과 그 역사적 고찰}이라는 책에서 절대 공간에 대해 비판했다. 물론 아인슈타인도 E.마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아인슈타인이 살던 시대는 뉴턴의 사상에 기본을 두고 이에 따라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에테르의 존재를 밝히려는 시도가 성행하던 시기이다. 당시의 학자들은 기본적으로 뉴턴의 생각에 반대할만한 생각이 없었으므로 이 에테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에 반해 아인슈타인은 모든 관성계가 동등하다는 것이 물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라는 것을 분명히 파악하고 에테르와 같은 절대 정지계의 존재를 부정했다. 이는 바꿔 말하면 300년간이나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던 뉴턴의 사상을 정면으로 뒤엎는 것이었으므로 결과적으로는 대단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수밖에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처음에는 전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로 치부되어질 정도였다.다시 아인슈타인의 패러독스로 돌아가 보자.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운동의 법칙은 지상의 물체와 천체의 운동이 공통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발견하여, 이것을 역학(力學)이라고 하는 하나의 이론 체계로 완성한 뉴턴의 세가지 운동 법칙을 따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잠깐만 한가지 문제를 생각해 보자. 지면에 대하여 일직선으로 뻗은 곧은 레일 위를 일정한 속도 u로 등속 운동하는 전차가 있다고 하자. 그 전차 속의 사람이, 전차의 진행 방향으로 속도 v로 공을 마룻바닥 위에서 굴렸다고 하자. 마찰력 등의 힘이 전혀 작용하지 않는다고 하면 공은 관성의 법칙을 따라 속도 v로 등속운동 계속한다. 이 공을 지상에 서 있는 사람이 관측하면, 공에는 힘이 작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속도 u+v로 등속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무의식중에 `속도는 그저 덧셈을 하면 된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하자. 이런 단순한 생각이 고전물리학의 생각과 상대성 이론과의 큰 차이가 나게 되는 까 감격에 의해 중력의 이론으로 자신을 나아가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이시하라 {아인슈타인 강연록})"[4]결국 특수성원리를 확장하여,'어떤 좌표계로부터 보아도 모든 물리법칙은 똑같다'고 하는 일반상대성원리를 물리학의 기본 원리로 삼은 것이다. 등가원리와 일반상대성원리,이 이론이 말하는 것 또한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에 수정을 가하는 것이었다. 중력조차도 공간을 순식간에 가로질러 가지는 못하는 것이다. 물질은 그 주위의 공간에 중력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여기서 아인슈타인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중력장에 의한 광선의 휘어짐을 발견하게 된다."일식의 관측이 성공하건 말건 나는 이미 이론 체계 전체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라고 아인슈타인이 베소에게 보낸 편지에서 쓰고 있다.1919년에 아인슈타인이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1919년 5월 29일, 일식(日蝕)을 관측하기 위해 영국에서 두 개의 관측대가 준비되었다. 하나는 A.S.에딩턴이 거느리는 기니 관측대, 또 하나는 A.G.P.C.크롬멜린이 거느리는 브라질 관측대였다.~중략관측 결과는 1919년 11월 6일, 런던에서 정식으로 발표되었다.-감광판을 신중히 검토한 결과...이것들이 아인슈타인의 예언을 입증한 것으로 단언할 수 있습니다. 빛은 아인슈타인의 중력의 법칙대로 편향(偏向)을 받는다는 지극히 명확한 경로가 얻어졌습니다."[4]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과학자의 집단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그의 이론을 알리는 결과를 낳았다."신문의 제목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춤추고 있었다.1919년 11월 7일 : 런던{타임즈}지'과학의 혁명', '우주의 새 이론', '뉴턴설을 뒤집다'1919년 11월 11일 : {뉴욕 타임즈}지'하늘 나라의 빛이 모두 일그러지다', '아인슈타인 이론의 승리'"[4]이와 같은 일이 일반인에게도 큰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었다. 당시의 사회적 정세로 봐서 대립국이었던 영국과 독일의 과학자가 협력했다는 사실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면서 과학에 대한 붐이 일반인에게도 일생각하면 빛이 입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실험이 되는 식이었던 것이다.그 이후 양자역학이 발달하게 된 중요한 계기는 1900년, M.플랑크에 의한 광자의 발견에서 시작되었다. 광자란 빛이 입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해, `광전효과'라고 하는 현상에 관한 논문을 같이 발표했다. 빛의 덩어리성(입자성을 가진 에너지 덩어리)을 광자(photon)이라 이름 붙인 빛의 입자성에 관한 이 논문은 원자의 구조를 해명하는 문제와 결부되어 과학자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즉 학자들은 빛의 성질을 연구하면서 빛의 에너지로서의 특이성 즉 자연계에서 에너지의 불연속성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것이다."물리학의 경우, 기묘한 현상을 볼 수 있은 뒤에야 이들에 대한 이론을 부여하게 되는 일이 많았다. 양자론 따위는 그 것의 전형일 것이다. 흑체복사라든가 원자로부터 나오는 빛의 스펙트럼 등을 설명하는 데에,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고 보어가 말했듯이 '운동량을 1사이클 끌어 모은 것은 플랑크 상수의 정수배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명제는 훌륭하게 자연현상을 설명해 주고 있다."[6]플랑크는 수식으로부터 빛이 띄엄띄엄하다는 것을 제시했는데, '실제로 그와 같다'는 것을 보여 주는 실험이 광전효과이다. 빛을 금속에 충돌시키면 전자가 튀어 나온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할바크스인데, 1902년에 레나르트는 정밀한 실험을 하여 진동수가 일정한 값 이상의 빛인 때에만 이 현상을 볼 수 있고, 또 충돌시키는 빛의 진동수가 클수록 전자가 세차게 튀어 나가는, 즉 튀어 나간 후에도 큰 운동에너지를 갖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와 같은 실험사실을 딛고 서서 1905년에 아인슈타인은 빛이 입자라고 하는 것을 공표한 것이다.여기에는 또 한가지 에피소드가 있다."아인슈타인은 1921년도의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는데, 그의 업적은 '이론물리학의 여러 가지 연구, 특히 광전효과의 법칙의 발견'으로 되어 있다. 이 무렵 그는 상대성이론의 제창자로서 명성이이다.
    자연과학| 2000.10.21| 11페이지| 1,000원| 조회(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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