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제의 를 읽고서...- 당대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한 고찰'앵앵전'을 비롯한 당대 소설을 엮어놓은 '당대 소설 개설' 이라는 제목의 책 중에 내가 선택한 작품은 심기제의 이다. 이 작품은 다분히 몽유적인 구도를 취하고 있지만, 결국에 가서는 선교적(宣敎的)인 주지(主旨) 드러나는 작품으로 시대상(時代的)을 풍자하는 일면도 강하게 나타난다.심기제는 그의 에서 어떤 퇴폐적인 사상에 사로 잡혀있던 한 청년의 입을 빌려 "한 남자가 세상에 태어났으면 응당 공명을 세워 출장입상(出將入相)하고, 많은 식구들을 거느리고 살며,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음악을 골라 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가족은 번창하고 가재(家財)는 불어나게 한 다음에야 비로소 행복하다고 말할 수가 있다." 라고 하면서 그 당시 일반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출세욕을 대변하고 있다. 이에 여옹(呂翁)이라는 도사가 그로 하여금 몽유의 형식을 통하여 별세계로 들어가, 속세에서 갈망하는 온갖 소망 즉, 출장입상, 부귀공명, 그리고 최상의 배필을 얻어 자손이 번창하고, 황제로부터 은총을 한 몸에 얻는 등등을 다 누려보게 한 다음 꿈에서 깨어나게 한다. 이때서야 주인공 노생(盧生)은 비로소 인생의 진의를 깨닫고 도사에게 감사하고 돌아간다.이 소설이 쓰여진 시기는 '당대' 였다. 이는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과 또, '소설의 발전'이라는 작품외적인 측면에도 많은 관련이 있으므로 짚어보아야 마땅하다.먼저 작품 외적으로 당나라 시대에 소설문학의 전반이 번성한 이유를 고찰해보겠다.당대의 문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대(前代)의 유산인 사륙변려문(四六變麗文)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중기(中期)에 등장한 한유(韓愈)즉, 한퇴지(韓退之)-유종원(柳宗元)이 고문 부흥 운동(古文復興運動)을 일으켜서 내용도 없고 무기력한 미문을 타파하고, 한(漢) 이전의 내용이 충실하고 힘있는 문장을 부흥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이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은 다음 송대(宋代)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지만, 근대 산문의 기초는 이들 두 사람에 의해서 구축된 것이며, 그 후 1000년 이상에 걸쳐 문장의 시조로서 숭앙을 받게 되었다.그런데 이 고문 부흥 운동에는 하나의 부산물이 있었다. 그것은 당대(唐代)의 문학에 변화를 더해 준 이라고 하는 단편 소설이다.진대(晋代)에 발생한 소설은 소박한 문장으로 괴기한 이야기를 기록한 것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전기문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소설들은 한유-유종원 두 사람을 본받아 참신한 문체를 구사하고, 또 이야기의 구성에도 노력한 창작품이었다. 원진의 이나, 심기제의 또한 저마다의 특색을 발휘하고 있는 단편소설의 예이다.원래, 중국의 전통 학자들은 소설이나 희곡류는 문학으로서 인정하지 않는 것이 통례였지만, 당대의 소설만은 예외로서 그 가치를 높이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이 당대에 소설문학을 자리잡게 한 중요한 원인이 된다.다음으로 소설 내적인 측면에 나타난 '당나라 시대'를 살펴 보겠다.당나라 전기에는 균전제와 조용조법이 시행되고 정치적으로도 안정기였지만, 점차 원정이나 사치한 궁정 생활로 인해 재정의 부족, 무거운 세금에 의한 균전 농민의 몰락, 이에 대신하는 귀족의 대토지 소유의 진전 등의 영향으로 무너져 갔다.'당대'의 일반인들이 공명에 대한 욕망을 지니게 된 것은 '과거'를 통한 지배계급으로의 진출이야말로 그들을 무거운 세금과 숨가쁜 현실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는 탈출구 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주인공인 노생도 '농사'에만 골몰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비참하게 여기고 도사에게 푸념을 늘어놓는다.처음 이 작품을 대할 때는 그 구도가 몽유적 이라는 데에 주목하게 된다. '일장춘몽'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르며 이와 비슷한 구조를 지닌 도교적 느낌의 이야기들의 아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인생무상'의 내용을 다룬 그 것들 과는 사뭇 다른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시대상에 대한 풍자가 중심이며 그것을 포장해 놓은 것이 도교적 색채라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작자의 주지는 그 당시 만연되어 있던 출세욕과 이에 따른 공명심을 강도 높게 풍자 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