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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 서양의 오만
    서양의 문화와 역사서구의 오만1. 서론2. 본론1) 그리스 신화를 통해 본 서양의 오만- 민족적 우월성2) 콜롬버스의 발견- 민족적, 문화적 우월감이 낳은 비극: 인디언 문명의 파괴, 노예제3. 결론1. 이번 학기에는 관심이 많았던 서양의 문화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국사건 세계사건 역사를 배울 때 정치사나 경제사보다는 문화사나 비화에 대한 수업을 할 때 흥미를 느꼈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활사를 듣는 것에 막연히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서양의 문화와 역사 수업을 들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 중에 서양(유럽)의 문화적 우월감을 내포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번 레포트를 통해 전에는 별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사실들을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문화는 그 사회의 특성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이다. 문화라는 것은 눈에 보이게 또는 눈에 보이지 않게 타문화에 스며드는 힘이 있다. 서로 다른 두 문화가 만나게 되면 문화적 이질성에 따른 필연적인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개 이러한 갈등은 위에서 말한 문화의 특성에 따라 해결되어진다. 두 문화는 서로에게 융화되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어느 한 문화가 다른 문화에 흡수되기도 한다.역사를 살펴보면 두 문화가 만났을 때 어느 한 문화가 지나친 우월감을 가지고 다른 문화를 폄하하는 일이 있었다. 두 문화의 건전한 융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상대적으로 약한 사회의 고유한 문화가 짓밟히고 파괴되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다음에서는 서양의 문화가 가진 오만성에 대해 살펴보고 이러한 오만성이 다른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기로 한다.2.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의 기원에 관한 내용을 보면 그들의 민족적 우월감을 알 수 있다. 신들에 의해 창조되었던 최초의 인간들은 탐욕으로 인해 타락하고 신들은 이에 분노해서 인간들을 물로써 멸망시킨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의 일족인 데우칼리온(Deucalion,프로메테우스의 아들)과 그의 아내 피라(Pyrrha,에피메테우스의 딸)만은 살아남았다. 제우스의 신탁으로 이들은 등뒤로 돌을 던져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게 된다. 데우칼리온이 던진 돌은 남자가 되었고 피라가 던진 돌은 여자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종족은 튼튼해서 노동에도 알맞았다. 돌에서 생겨난 인간들 이외에 데우칼리온과 피라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도 있었다. 이들은 그리스인들의 선조가 되었다. 큰아들 '헬렌(Hellen)'은 모든 그리스인의 선조이고, 딸 '프로토게네아(Protogenea)'는 제우스와 어울려 서부 그리스인인 '아이톨리아(Aitolia)'족의 조상 '아이톨로스(Aitolos)'를 낳았다. 이와 같이 그리스인들은 다른 민족들처럼 돌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고 데우칼리온과 피라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다. 이를 보면 그리스 민족이 아닌 타민족들은 돌의 후손으로 묘사되고 있다.그리스 신화에 나타나는 이러한 민족적 우월감, 즉 선민 사상은 다른 민족들의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서양 문화의 정신적 모태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문화는 후에 서양의 문화 곳곳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로마 시대의 영향을 받아 그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리스 신화는 현재까지도 유럽인의 문화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의 선민사상 역시 유럽인의 정신에 자리잡게 되었다. 서양인들의 이러한 민족적 우월감은 다른 문화와 만났을 때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우월감으로 작용하고, 타민족의 문화에 대한 오만한 행동도 서슴지 않게 한다.이러한 예는 콜롬버스에 의한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콜롬버스는 1492년 항해를 통해 신대륙에 도착하고 그곳을 인도라 생각한다. 발견이라는 낱말은 사전적으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나 대상을 찾아내는 것을 뜻한다. 신대륙에는 다른 민족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 고유의 발전된 문화가 있었다. 신대륙이라는 땅은 이미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속해 있었고, 유럽인이 유럽의 주인이듯 신대륙의 주인은 흔히 말하는 '인디언' 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콜롬버스는 주인이 있는 이 땅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인디언이 항해를 통해 유럽 대륙에 도착했다고 해서 세계 교과서에 '인디언의 유럽대륙 발견'이라는 용어가 쓰이지는 않는다. 단지 방문이나 도착이라는 역사적 기록이 있었을 것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라는 용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기존의 신대륙 문화를 인정하지 않은 유럽인의 관점에서 쓰여진 역사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 부당함을 알 수 있다. 서구인들의 오만은 역사적 용어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땅을 '발견'한 그들은 신대륙의 주인 행세를 하면서 타민족과 문화를 파괴하기에 이른다. 이는 스스로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그들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양의 오만은 타민족에 대한 야만적 행위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역사적 비극 중 선진 문명을 자부하는 서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인디언 문명의 파괴와 흑인 노예에 대한 사실을 조사해 보았다.신항로의 발견을 통해 신대륙에 도착한 유럽인들은 자신들과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타민족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들을 야만인이라 생각했다. 인디언들은 서기 6세기 이후부터 마야문명. 아즈텍문명. 잉카문명 등 뛰어난 문화를 창조해 냈다. 이들은 외계인의 작품이라 오해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건축술과 풍부한 황금으로 화려하고 찬란한 석조 궁궐, 신전, 성채 등을 건설했다. 또한 태양신을 주신으로 숭배하면서 다신적 종교를 가지고 있었고, 영생을 믿고 신성한 종교의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일신을 믿는 서양인들의 눈에는 의복을 거의 걸치지 않고 여러 신을 숭배하고 있는 인디언들이 미개한 이단으로 비춰졌다. 미개하고 야만적인 인디언들을 고도의 문명을 가진 자신들이 교화하고 선교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던 것이다.코르테스와 피사로로 대표되는 서양인들은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의 재물을 약탈하고 원주민들을 대량으로 학살했다. 주인이 있는 땅에 들어와 기존의 문명을 파괴하고 원주민들을 금광과 은광에 몰아넣고 죽음에 이르도록 무자비한 노동을 강요했다. 기존의 신전과 성채들은 이단의 표상이라는 명분으로 유물들을 탈취한 후 파괴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기독교의 교회를 세우고 이단재판을 실시해 수많은 인디언을 죽음으로 몰았다. 이 과정에서 인디언들의 저항은 야만스럽고 흉포한 것으로 인식되어졌다. 일부 인디언들의 식인 풍습은 모든 인디언들이 잔인하고 야만스럽다는 생각을 낳았다. 후안 히네스 데 세풀베다라는 신학자는 모든 인디언들이 이런 야만스러운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무기로 지배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인식들이 인디언에 대한 학살을 부추겼다. 서양의 이러한 야만스러운 행위는 선교와 교화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되었지만 이 명분은 인디언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얼마나 오만 방자한 것인가! 인디언들에게도 신성한 종교가 있었고, 그들의 문화적 특성에 맞는 규칙으로 사회가 운영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방인들이 찾아와 문화를 파괴하고 자신들을 노예로 전락시키면서 이방인의 낯선 문화를 강요했으니 인디언들에게는 얼마나 황당한 사건인가. 유럽인들은 새로운 문화를 접했을 때 이들의 고유한 문화를 자신들의 문화적 잣대로 평가하고 상대적이 아닌 절대적 우월감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인디언이 자신들과 똑같이 먹고 자고 생각할 줄 아는 동등한 인격체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미개하고 야만스럽다고 한 인디언들의 식인풍습에 맞먹는 잔인함이, 종교재판이라는 명분으로 기독교에 위배되는 수많은 사람을 불에 태워 죽이고 있는 자신들에게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자신들의 문화만이 진보되었고 개화되었다고 믿는 오만이 타민족에 대한 무자비한 문화적 폭력을 가능하게 했다.신대륙 침탈을 위한 가혹한 인디언 노동력 착취로 수많은 인디언들이 사망하자 스페인은 지속적인 은광개발을 위해 1517년 아프리카의 흑인노예 무역을 시작했다. 포르투갈은 이전부터 이미 흑인노예제를 실시하고 있었으며 17세기에 이르러서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도 이에 합류했다. 16세기 초부터 18세기 중엽까지 유럽의 국가나 개인이 스페인 국왕과 '흑인노예교역계약'을 맺고 아프리카의 노예들을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에 수출하는 독점 계약을 맺은 일이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신대륙으로 옮겨지는 동안 많은 흑인들이 사망했고 이들은 그대로 바다에 수장되었다. 인간이 유럽의 개인 또는 국가의 소유물로 여겨지는 이러한 비문명적 일이 가능했었던 이유 역시 유럽의 오만함에서 찾을 수 있겠다.
    경영/경제| 2001.10.31| 4페이지| 1,000원| 조회(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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