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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문학사] 질풍노도의 문학 평가A좋아요
    'Sturm und Drang'은 협의로는 18세기 후반에 씌어진 문학작품에 반영된 폭발적이고 혁명적인 정신운동을 의미하고, 광의로는 Goethe와 Schiller가 고전주의로 넘어가기 이전이 Vorklassik에 해당하는 문학작품 사상을 의미한다. Sturm und Drang의 명칭은 Friedrich Maximilian Klinger의 동명희곡의 제목에 따라 후대의 사가들이 명명한 것이다. 또한 이 사상의 추종자들을 일컬어 Sturmer und Dranger라고 부르기도 한다.이들은 계몽주의의 이성만능과 합리주의에 반기를 들고 감정의 해방을 부르짖으면서 개성적, 비합리적, 정열적, 자연적이며, 또한 외국의 모방이 아닌 민족적인 것을 표방하였다. 그리고 독창적인 인간, 즉 천재를 찬양하며 스스로를 천재라고 자처하면서 자유로운 표현을 제약하는 종래의 규칙과 형식을 무시하고 감정의 흐름대로 글을 썼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이 시기를 'Geniezeit(천재 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천재는 예술가와 접목되어 Sturm und Drang 시대의 본질을 이루는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가 되었다. 예술가로서의 천재는 엄격한 예술규범들을 타파하고 스스로 규범을 세워나가는 자이며, 천재가 모범으로 삼는 예술창작은 자연과 민중성을 도입하여 종교적인 속박을 풀어헤치고 자유의 함성을 울려 퍼지게 하는 자이다. 또한 예술에 종사하는 창조적인 천재는 개성에 따라 세계를 창조하는 신적인 존재로 인간 사회의 영도자가 되고 있다. Goethe의 「Prometeus」가 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자조자이자 천재적인 반항자로서 천상의 군주뿐만 아니라 신의 은총을 입고 있는 세속 군주까지 퇴위시킨다.이처럼 천재라는 개념과 결합되어 전개된 Sturm und Drang 운동은 계몽주의의 이성이 지배하는 인위적인 문화를 배격하고 감정우위의 낙관주의적 문화를 추앙함으로써, 정치적 후진성에도 불구하고 독일을 문화 융성기로 접어들게 하였다. 이들은 사회의 폐해나 정치적 모순을 공격하고 개인의 자유를 구가하 계급에 속하는 민중 계층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작품을 통해 봉건체제를 공개적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또한 문예 활동이라는 특수 영역을 확보하여 특권증에 짓눌린 시대상황이나 교회의 권위에 맹종하도록 요구하는 교회에 증오와 비판을 퍼부었다.그러나 그들의 반항은 문학의 영역에만 국한되었을 뿐 현실 생활이나 정치적 혁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사회적 관점에서 문학사를 연구하는 이들은 이 운동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문학이 창조력을 문제로 삼는 이상 이 운동은 인간에게 정신적 활력을 주어 자주적인 창조 활동을 돕고 시민 계급의 해방 투쟁에 추진력을 불어넣었던 만큼 사상적으로 큰 의의를 지닌 것이 분명하다.1. 시대적 배경이 시기에 독일은 정치적으로 낙후되어 있었다. 이는 30년 전쟁(1618-1648) 이후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으로부터 기인된 것인데, 이 조약으로 독일은 300개가 넘는 영방 국가로 나누어져 통치되었으며, 주변 강대국인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의 갈등 구도 속에서 단일국가를 형성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문맹률은 높아서 1770년경까지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의 비율이 인구의 15%정도였고, 2500만 인구 중 순수한 문학 독자는 1%에 지나지 않았다.이러한 높은 문맹률과 국토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독일 문학은 도약기를 맞게 되는데, 그 원인은 경제발전에서 찾을 수 있다. 1770년대 초반은 독일에서 자본주의가 촉진된 시기였다. 수공업은 분업체제로 대체되었으며, 프랑스의 중농주의를 모방한 소지주제의 도입이 주장되었다. 산업 체계의 변화는 생산성 향상을 통해 시민 계급의 사회적 입지를 강화시켰으며, 그들의 정치 의식을 일깨워 사치와 호화로운 생활에 안주하는 봉건 영주 및 귀족과 대립하게 되었다.독일의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은 근대화의 토대를 마련하면서 시민 계급의 사회적 지위를 격상시켰으며 그들로 하여금 문화의 주체가 되게 하였다. 주로 시민 계층으로 이루어진 Sturm und Drang기의 작가들은 스스로 봉건 질서에 안주하기보기반이 되었다.2. 사상적 배경이 운동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던 Rousseau의 근본사상으로부터 연유하는 자연관과 문명에 대한 적대감 및 오만스런 이성에 대한 비판에 자극을 받았다. 루소 자신은 계몽주의자였으나 이성에만 사로잡혀 있던 당시 사상가들과는 달리 감정의 우위와 심정의 권리를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선하게 만들어졌지만 사회가 인간을 사악하고 불행하게 만들었으므로, 잃어버린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서 인간 존재의 근원인 '자연'으로 돌아가 감정과 의욕의 존엄성을 자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인들의 경험론과 감각적 철학, 특히 영국민요와 셰익스피어의 천재적 창작에 강한 자극을 받았다. 그 이유는 셰익스피어야말로 모든 규범을 파괴하고 생각하는 그대로 작품을 쓴 개성적인 작가로 여겨졌고, 인간을 이해하고 파악하려는 그의 탐구적인 문학 태도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의 유물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개인적인 체험과 감정을 주장했던 경건주의나 감상주의 또한 Sturm und Drang에 영향을 준 요소이다.그러나 Sturm und Drang은 독일의 현상이며 독일의 민족운동이었다. '북방의 마법사'라고 불리었던 신비주의적 비합리주의자 Hamann과 이의 영향을 받은 Herder의 사상이 보다 직접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특히 Herder는 독일 문학에 영혼의 심오함과 젊은 Goethe의 천재적 시감을 일깨워 주었다. 그는 Mohrungen에서 태어나 Konigberg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였다. 1770년 눈병 치료차 Straβburg에 갔다가 그곳에서 대학생활을 보내던 Goethe를 만나게 되는데 이는 독일 문학사상 일대의 사건이며, 이해가 바로 Sturm und Drang이 시작되는 해이다. 그의 저작 활동을 살펴보면 그는 작가이기보다는 평론가요 이론가였다. 그의 논평은 Lessing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성에 바탕을 두고 날카로운 추론과 증명을 사용했던 Lessing과 달리 감각에 뿌리를 둔 주관r Volker in Lidern」, 「Fragmente uber die neuere deutsche Literatur」, 「Kritische Walder」등이 있다.3. 문학적 특징Sturm und Drang문학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자신을 능가하려는 충동을 지닌 감정에 찬 초인들이었다. 그들은 거의 언제나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과의 모순에 빠지며, 자기 충동에 굴복하여 그들이 숭배하는 존재를 파면시키거나 현실세계의 거대한 힘 앞에 스스로 파멸하고 말았다.천재운동의 새로운 생활감정은 무엇보다도 서정시에서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표현의 가능성을 찾았다. 서정시는 지난 시대의 순수 문학적 시와는 대조적으로 체험문학, 즉 위대한 고백의 단편이 되었으니, 시적 내용이란 바로 자기 인생의 내용이었던 것이다. 괴테의 시 「Prometheus」에서는 Sturm und Drang의 천재 사상이 단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여기에서 보면 천재는 신의 모방자가 아니라 신과 경쟁하는 자로서 찬미가 되고 있다.한편 희곡문학은 자신의 개인적, 사회적 긴장과 대립 및 비극적 생활감정을 더욱 강력하게 표현하는 장르였다. 여기에서는 셰익스피어가 모범이 되었는데, 모든 법칙을 파기해 버린 이 시대 희곡의 특징으로는 누더기와 같은 장면의 기교, 3통일 원칙의 무시, 힘과 정열이 넘치는 녀석들의 찬미, 몸서리 나는 사건의 대두, 기분 내키는 대로의 인간유형, 사건진행에 있어서의 상징적인 우연의 연속, 불완전한 문장, 수많은 감탄사와 지나친 흥분 등을 들 수 있다.소설분야에서는 이렇다 할 만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장황한 서술과 상황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묘사가 당시 문인들의 기분이나 감정 및 예술관에 적합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괴테의 서간체 소설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에서는 극단적인 주관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시대조류에 일치하는 감상주의로 인해 이 장면은 당시의 독일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4. 주요 작이나 실제적 이성의 원칙이 아니라 감정과 직관과 계시에 따라 수행되는 인생을 동경하였다. 자신의 직업등 현실 생활에 극도의 불만을 느끼고 있던 그들은 서로 긴밀한 동맹을 맺고 있었는데, Straβburg 와 Frankfurt에서는 젊은 괴테를 중심으로 하여 Klinger, Lenz, Muller 등이 집결하여 노장그룹(die altere Gruppe)을 형성하고 있었고, Schwaben지방에서는 Schwart와 Bekherlin 그리고 젊은 쉴러 등이 소장그룹(die jungere Gruppe)을 형성하고 있었다. 한편 Cladius는 단지 계몽 사상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Zurich 출신의 Lavater는 스위스 Sturm und Drang의 중심을 이루었다.-Leinhold Lenz(1751-1792)Goethe와 더불어 Sturm und Drang의 중심적 인물이다. Klopstock의 시의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종교적 서사시를 썼으며, Goethe풍에 따라 글을 썼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Goethe의 것과 혼동되기도 한다. 주요 작품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부정하고 셰익스피어를 찬양한 평론 「Anmerkungen uber das Theater(1774)」, 인간의 노예 근성을 고발하고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한 희극 「Der Hofmeister(1774)」, 장교와 상인의 딸과의 정사를 그려 풍속을 비판한 희극 「Die Soldaten(1776)」 등이 있다.-Friedrich Maximilian Klinger(1752-1831)Sturm und Drang이란 사조의 이름을 부여한 장본인이다. 원래 제목은「Wirrwarr」였으나 스위스인 Christoph Kaufmann의 권유로 당시 젊은 문인들이 즐겨 사용하던 Sturm과 Drang이란 개념을 합친 것으로 개칭했다. 셰익스피어를 본받은 희곡을 주로 썼는데, 비극적 정열과 상식을 벗어난 희극성이 혼합된 내용이 당시 문학적 경향과 부합하였기 때문에 그대로 문예사조의 이름
    인문/어학| 2002.05.11| 5페이지| 1,000원| 조회(1,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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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문학개관] 낭만주의 미문학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18세기 말 발생했다. 고전주의는 모방론을 추구하는 문예 사조였다. 즉, 그리스·로마 시대의 고전·비극을 철저히 모방하고, 답습하려 했으며, 상대주의에 입각하여 합리성과 이성을 중시하였고, 작가의 상상력 및 감성의 개입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낭만주의 문학은 표현론적 문학으로서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고전주의 문학에서 그 존재 가치가 거의 없다시피 했던 작가가 작품 활동의 주체로 나서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고전주의는 모방론적 문학이었으므로, 고전주의 문학에 있어서 작가의 역할이란 단순히 고전을 베끼는 데에 지나지 않았으며, 창의성과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주체는 아니었다.'작가'라는 단어에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다', '창조해 낸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고전주의 시대의 작가는 엄밀히 말해서 진정한 의미의 '작가'는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낭만주의 시대가 되면서 '진짜 작가'가 등장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W. Wordsworth는 「Lyrical Balads」의 시문에서 시는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평범한 대상·인물을, 평범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낭만주의 문학은 작가의 개성과 상상혁을 중시했으며, 낭만주의 시대의 작품에는 작가의 주관·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사람으로 John Keats를 들 수 있다. Keats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현실 세계와 상상의 세계의 대립·대조이다. 유한하며 고통과 절망이 가득한 현실에서 무한하고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있는 세계를 상상하며 동경하는 것이 Keats 작품의 주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Keats의 대표적인 작품 중 「Ode to a Nightingale (나이팅게일에게 부치는 노래)」와 「Ode on a Grecian Urn (그리그 항아리에 부치는 송가)」 이 두 작품에 나타난 낭만주의적 특성을 살펴보도록 하겠다.먼저 「Ode to a Nightingale」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 작품의 주요 테마는 현실 세계의 Mortality와 Nightingale로 상징되는 상상의 세계가 가지는 불멸성(immortality)의 대립이다.My heart aches, and a drowsy numbness pains동생을 잃은 슬픔과 작가 자신이 겪고 있는 육체적 고통 때문이었는지, 첫 행에서부터 '가슴이 아프고, 마비되는 듯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작가는 독(hemlock)을 마시거나 아편(opiate)을 먹은 듯 무감각하고 답답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으며, 삶과 죽음(망각의 세계)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다.One minute past, and Lethe-wards had sunk:반면에 상상의 세계 속에 있는 thou(Nihgtingale)는 푸른 너도밤나무 숲에서 목청껏 여름을 노래하는 가볍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급기야 화자는 2연에서 포도주를 한 잔 마시고 아무도 모르게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즉 답답하고 고통스런 현실을 벗어나 죽고 싶다고 말한다.That I might drink, and I leave the world unseen,And with thee fade away into the forest dim:화자에게 있어 현실은 '마주 앉아 서로의 신음 소리를 듣는 것'이며, 괴로움(weariness), 열병(fever), 초조함(fret), 슬픔(sorrow)가 가득한 곳이며, 미인의 아름다움 또한 지켜나갈 수 없는 곳이다. 따라서 화자는 떠남으로써(죽음으로써), Nightingale은 결코 알지 못하는 이러한 괴로움들을 자신 또한 잊고 싶어한다.Fade far away, dissolved, and quite forgetWhat thou among the leaves hast never known,이처럼 삶과 죽음 사이를 오락가락하던 작가의 상상력은 달과 요정들이 함께하는 '부드러운 밤'의 어둠 속으로 날아 들어간다. 상상의 세계는 5연에서 향기로운 어두움(embalmed darkness)라는 공감각적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풀과 흰 산사나무, 들장미, 이슬을 머금은 사향장미가 만발하고 벌떼들이 나는 풍경으로 그려내는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화자는 끊임없이 그곳을 상상하고, 편안한 죽음을 통해 Nightingale과 함께 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단지 상상으로만 그에게 허락된 세계이다.Adieu! the fancy cannot cheat so well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상상의 세계는 그가 결코 침범할 수 없는 곳임을 인정하며, Nightingale에게 안녕을 고한다. 그리고는 다시 현실과 상상의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던 처음의 상태로 돌아오게 된다.Do I wake or sleep?이러한 대립 구조는 「Ode on a Grecian Urn」에서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이 작품에서의 대립 구조는 그리스 항아리에 그려진 세계의 영속성과 인간 삶의 유한성이다. 항아리는 더럽혀지지 않은(unravish'd) 신부이며, 시보다 달콤한 이야기를 선사하는 대상으로 표현되며, 항아리 속의 세계는 귀에 들리는(현실 세계의) 음악보다 더 감미로운 선율이 있는 곳, 나무는 언제나 봄의 푸르름을 잃지 않고, 연인들의 아름다움과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곳이다. 반면에 현실 세계는 고통과 슬픔으로 그려지며, 인간의 살아있는 열정(사랑)은 싫증과 아픔만을 낳는 것으로 묘사된다.That leaves a heart high-sorrowful and cloy'dA burning forehead, and a parching tongue.또한 「Ode to a Nightingale」의 3연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실의 아름다움은 지속될 수 없는, 유한하며 덧없는 것으로 표현된다.화자는 끊임없이 항아리 속의 세계를 아름답고 감미롭게 그려가며, 그 속에 있는 경건한 아침과 고요한 마을을 동경한다. 하지만 「Ode to a Nightingale」에서도 그렇듯이 화자는 그것과 온전히 하나가 되지는 못하며, 상상할 수는 있지만, 들어갈 수는 없는 세계를 앞에 두고 괴로워하게 된다.Thou, silent form, dost tease us out of thoughtAs doth eternity : Cold pastoral!여기서 'cold'라는 형용사는 'other woe'라는 표현과 더불어 아름답지만 결코 현실이 될 수는 없는 항아리 속 풍경에 대해 한탄하는 표현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끝까지 그 아름다움을 찬양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인문/어학| 2002.05.11| 3페이지| 1,000원| 조회(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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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철학] 교육받은 사람의 의미 평가B괜찮아요
    교육 받은 사람의 의미에서 본 지식의 정당화TV News나 신문의 사회면 등을 보면서 어른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도대체 왜 저래?" 워낙 많이 들어서 그냥 흘려버리기 쉬운 말이다. 실제로 나 자신도 누군가를 가리켜 그와 같이 이야기했던 적이 여러 번 있으며, 무슨 관용적 표현 쯤이라도 되는 듯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레 사용하게 되는 말이다. 그런데 교육학을 조금이나마 공부하고 보니 이런 짤막한 말 한 마디의 뒤에 숨겨진 의미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일단 위의 "배운 사람이..." 하는 말 속에 있는 '배우다'를 '교육 받다'라는 말과 동일한 것으로 규정하고서 시작하겠다. 물론 교육이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수동적인 과정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위와 같은 발화에서는 '배움'이라는 단어가 '교육'을 대체하기에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배운 사람'과 그 사람의 '행동'을 관련시킨 것 자체를 이미 '배움'을 지극히 사전적인 의미로부터 확장시킨 것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교육과 교육 받은 자의 행동의 관계, 나아가서 이론과 실천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특히 교육학에 있어서 매우 고전적인 주제로서 수많은 저명한 교육학자 및 이론가들이 다루어왔던 문제이기 때문에 이미 폭넓은 연구를 통해 이론적 체계와 철학적 술어들로 규정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교육 받은 사람'의 의미를 규정하는 것보다는 그 말이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사용되고, 또한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보는 방식으로 이끌어 나가려 한다. 그 과정에서 권위 있는 학자의 이론을 제시하여 이를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으나, 그 권위가 나만의 고유한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에 방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모르는 사이에 그 권위에 내 생각을 맞춰 나가려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가급적 이미 검증되고 정착된 이론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자제하겠다.Ⅰ. 교육과 학교 교육"배운 사람이 왜 저러나?" 하는 말을 할 때, 그 사람의 머리 속에서 교육은 어떻게 규정되고 있는가? 국어 사전에서 교육을 찾아보니 '일정한 이상 또는 가치를 지향하여 미성숙한 아이나 청년을 지도하여 사회의 유지와 전진을 위하는 의식적인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위의 발화에서 지칭하는 교육은 이런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의미의 교육일까? 아니면, 단지 학교 교육에 국한되는 것일까? 더 나아가서 소위 교육 현장에 몸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우리들에게 있어 교육은 이 둘 중에 어느 쪽에 속하는가?여기서 '배운 사람'이 '학교 교육을 많이, 또한 오랫동안 받은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어떤 근거로 학교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의 행동이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것보다 나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희랍 시대 자유 교육의 개념에서 보면, 지식의 획득이 마음의 선에 도달하는 길이며 나아가 삶 전체의 선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삶의 현장에서 지식과 선한 행위의 관련성을 확인하기란 결코 쉽지 않으며, 희랍 시대의 이러한 규정이 옳은 것이라 하더라도 여기서 말하는 자유 교육과 현재의 학교 교육이 성격상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의문이다.이성호의 라는 책을 보면, '교사가 제아무리 노력해 보아야 별 수 없다'는 신화를 비판하면서, 교사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인격 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바로 교사이므로, 즉각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해도 교사는 장기적으로 아이의 행동과 정서를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학교 교육이 가질 수 있는 학과 외적인 효과에 대한 언급이다. 그런데 같은 책 안에서 '교육의 모든 실패는 교사의 책임이다'라는 신화를 비판하면서는, 어린이가 언제나 교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가족과 동료들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돌릴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얼핏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바로 현재의 학교 교육이 가지는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학생의 행동에 대한 교사와 학교의 영향력은 물론 인정할 수 있는 것이며, 학생들을 학교라는 사회에서 함께 교육하는 이유가 바로 이 영향력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학교 현장의 사정을 고려할 때, '학교 교육을 많이 받았으니까 바르게 행동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학교의 현재는 아주 미미해져버린 학과 외적 영향력에서마저 벗어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만 달성하려는 학생들도 있는 실정이다.아무래도 우리가 빈번히 사용하는 '배운 사람이...'라는 표현은 과거 유교 윤리에 의해 지배되던 우리 나라에서, 충과 효를 가르쳐 실천하게 하는 것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던 서원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Ⅱ. 지식의 성격과 교육의 목적위에서 언급한 희랍 시대 자유 교육의 개념에서는 이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지식의 내재적 가치를 역설하였다. 지식의 가치는 그것을 통해 어떤 다른 목적을 성취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 그 자체에 있으며, 이는 실용적, 직업적 관심사와는 무관하게 정당하다는 것이다. 희랍적 개념에 대한 숭상인지,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개성 창출이나 '안티(Anti-) 문화'의 영향인지, 오늘날에도 지식의 가치 문제에 관해서는 내재적 가치를 주장하는 것이 뭔가 더 고상하게, 혹은 개성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 지식(혹은 학문)의 가치 문제는 대입 논술에서도 반드시 한 번은 연습해봐야 할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는데, 논술 지침서 맨 뒤에 있는 소위 모범 답안을 보면, 지식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는 식으로 글을 쓰는 것이 정답인 것처럼 제시되고 있다. 내재적 가치의 추구가 외재적 가치의 추구보다 더 고상하며 우월하다는 이 맹목적인 믿음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지식의 선험적 정당화 문제가 대두된 것은 지식이 두 가지(내적·외적) 측면 모두에서 가치를 지님을 보이기 위한 것이지, 결코 어느 한 측면이 우월함을 증명하려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인간 생활은 그 자체가 유목적적 활동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반드시 의도하는 목적이 있다. 교육은 실천적 활동이며, 목적적 행동이다. 교육 목적은 교육 활동을 통하여 무엇을 달성할 것인가, 우리가 형성하고자 하는 인간상은 어떤 것인가에 관련된 것이며, 결국 우리는 왜 교육을 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말해 주고 있다.인간은 끊임없이 성장한다. 인간이 성장한다고 하는 것은 선천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능력을 유효하게 활동시켜 개인적·사회적으로 독립된 인간'으로서 적응해 가는 일이다. 따라서 인간의 성장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 간다. 그러나 이 '방향'은 외부에서 설정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 내부에서 자연히 전개되어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교육은 성장 과정의 일부이고 그 자체로는 어떠한 목적도 없다. 그러고 보면 교육 목적은 사회에서 설정한 것이다. 즉, 교육은 하나의 수단일 수 있다. 교육 목적은 결국 사회 현실의 필요에 의해서 있게 되며, 사회적으로 유용한 사람을 만들고 환경의 개조와 발전을 도모하고 일반의 행복을 도모한다. 이는 위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사회의 유지와 전진을 위하여 하는 의식적인 활동'이라는 교육의 사전적 정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인간은 개인으로서 사회 속에서 문화를 계승하고 창조하면서 물질을 사용하여 생활한다. 이 '인간 생활'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하여 사회는 개인에게 일을 시키고 그들을 그 사회의 성원으로 형성하며, 역으로 개인은 사회화되어 가는 중에 자기의 가능성을 실현한다. 교육이라는 것은 이 인간 생활을 유지·발전시키기 때문에 사회와 개인과의 양면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형성의 전체적인 과정이다.
    교육학| 2002.05.11| 4페이지| 1,000원| 조회(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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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심리] 교육신화 평가A좋아요
    인간은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생각들을 그대로 믿으려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그 생각들이 실제로는 틀린 것이거나 아직 입증되지 않은 것일 경우에도 이러한 성향은 발휘되기 마련이다. '객관적(일반적)인 것은 옳은 것'이라는 등식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이처럼 일반적으로 옳다고 받아들여지는 생각들은 실제로도 옳다고 증명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자연과학 분야의 여러 가설들이 관찰과 검증을 거쳐 이론으로 정착되는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꼭 특정 학문 분야의 거창한 이론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가설을 세우고 그것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는 일은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일어난다. 친구에게 "…와 ∼가 어제 데이트를 했다던데 그게 사실이야?"라고 질문하여 확인하는 행위도 일종의 가설-검증 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인간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확인·검증하며 산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확인·검증되는 생각들 중 상당 부분은 위에서 예로 든 질문 형태처럼 진실 여부가 분명하고,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만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소한 것들이다. 다시 말해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와는 다른-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모호하고, 매우 많은 사람들에 의해 믿어지는-생각들이 있다는 점이다.교육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의 삶과 계속 관련을 가지는 문제이므로, 교육 분야에도 이처럼 '일반적으로 옳다고 믿어지는 생각'들이 많이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생각을 '신화'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서 신화란 말은 다소 부정적인 느낌으로 사용되었다. 우리 나라의 단군 신화, 혹은 그리스·로마 신화가 허구인 것처럼, 교육 신화도 사실은 허구일 뿐임을 나타내기 위해 '신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 같다. 필자는 아동들을 양육하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적용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에 대해 반증하는 형식으로 글을 전개하고 있다. 여기서는 이 책을 앍으면서 내가 생각한 글의 내용상·구성상 장했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무척 수월했다. 또한 소단원의 제목에서부터, 그 제목이 나타내는 개개의 신화를 반박하기 위해서 제시한 예시까지 모두가 구체적이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교육의 본질적인 측면, 즉 '바람직한 인간 형성'이라는 아주 거창하면서도 딱딱한 부분에 깊이 파고들어 있는 것이 바로 교육신화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러한 묵직한 주제들을 지극히 일상적으로 다루고 있다. 따지고 보면 '교육은 딱딱하고 거창하다'는 생각도 하나의 신화일 수 있겠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교육이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의 삶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서 우리와 늘 함께 하는 문제이므로, 이보다 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문제도 없을 것이다.둘째, 실제로 교육 현장에 적용시켜 생각할 수 있는 예를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신화를 비판하였다. 어떤 유명한 학자의 연구 결과나 주장, 혹은 명확한 통계적 수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글은 상당히 부족한 점이 많은 글이다. 하지만 그런 객관적 자료를 배제한 것이 오히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수긍하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교육 현장이나 생활 속의 구체적인 예는 전체에 적용시키기에는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 여기서 부족하다는 것은 객관성 면에서 부족함을 가리키는데, 글 자체가 객관적으로 당연시되고 있는 인식들을 비판하기 위해 쓰여졌으므로, 객관적 자료보다는 오히려 구체적인 예를 제시한 것이 효과적이었다고 본다.위와 같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데 반해, 내용 면에서 또한 구성 면에서 상당 부분 부족한 면도 발견할 수 있다.첫째, 신화를 반박하는 데에 있어서 근거가 부족했다. 근거에 대한 부분은 위에서 이 책의 장점으로 제시했던 것인데, 그와 동시에 단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필자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때로는 구체적이고 쉬운 예를 제시하여 독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보다 쉽게 수긍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 근거가 구체적이다 못해 지나치게 주관적이거달하는 사람이 각각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다. 필자의 주장대로 우리는 협동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필자가 협동사회와 경쟁사회를 서로 상반된 개념으로 간주하고, 현대사회가 협동사회임을 보임으로써 경쟁사회임을 부인하려 했다는 데에 있다. 서로 상반된 개념이 되기 위해서는 비교하는 기준이 같아야 하고, 그 범위가 같아야 한다. 협동사회와 경쟁사회라는 개념은 각각 다른 범위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다. 위에서 말한 우유를 짜는 사람과 가공하는 사람과 배달하는 사람 사이에는 지극히 협력적인 관계가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 한 분야만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똑같이 목장은 운영하며, 젖소를 키워 우유를 짜고 그 우유를 가공업자에게 공급하는 일을 하는 여러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들간에는 좀더 많은 양의 우유를 생산하고 판매하여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남기려는 치열한 경쟁이 일어날 것이다. 경쟁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쟁취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즉,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 혹은 동일한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 간에 존재한다. 이처럼 다른 기준으로 판단해야만 할 두가지 개념 중 하나를 내세워 다른 것을 반박하는 논거로 사용한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경쟁을 시키면 동기가 유발된다'와 '성적 등급은 동기 형성과 학습 평가에 도움이 된다'에서 제시한 근거에도 문제점이 발견된다. 이 두 신화를 비판하기 위해 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성적을 등급화하고, 상위 등급에 들기 위해 서로 경쟁하도록 하는 것은 상위권에 속한 소수의 학생에게는 학습 효과를 높이는 작용을 하지만, 그렇지 못한 많은 학생들은 '너희나 열심히 해라'는 식으로 경쟁에 무관심하게 되어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그들에게 실망과 좌절을 안겨주어 오히려 공부에 흥미를 잃게 할 우려도 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이 경우에도 위에서 말한 경쟁의 본질을 생각하면 필자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쟁은 동일한 목표를 가진 사에는 상위권에 드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세울 수도 있다. 그러면서 서서히 발전이 이루어진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상위권에 속하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에게 똑같은 학습량을 강요하는 현실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결코 경쟁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위권 학생에게 상위권 학생과 같은 것을 이루도록 무리하게 요구한다면 그가 벅찬 요구를 감당하지 못해서 좌절하게 될 수도 있지만,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에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과제를 부여하고 그들끼리 경쟁하게 한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두 번째로 이 글이 가지는 문제점은 신화라고 할만큼 확고한 신념이 아니거나 일반적으로 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문제들을 신화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필자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신화란 '일반적으로 참이라고 믿고 있는 그릇된 또는 부정확한 신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글에서는 엄밀히 말해서 신화라고 할 수도 없는 것들을 신화라 하여 비판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눈에 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먼저 문화적 신화 부분에 제시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취급한다'에 대해 생각해 보자. 필자는 경제적 능력의 차이와 사회적 지위의 차이, 그리고 개개의 사람이 가지는 독특성을 들어 민주주의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취급한다는 것은 틀렸다고 주장했다. 또한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한 지배가 아니며, 권력을 가진 소수에 의해 지배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왜곡시킨, 다시 말해서 처음부터 틀린 가정에서 출발한 주장이다. 당연히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을 똑같이 취급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는 태어날 때부터 동일한 천부적 인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지, 결코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기회를 가지고 개인이 얼마나 노력하는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도출되고, 그 결과-이를테면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 등-에 따라 각각 다르게 취급한다. 결과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사회주의이지, 결코관성으로 해결될 수 있다'와 '모든 문제는 법으로 처리하면 된다'를 신화로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신화라고 표현해야 할만큼 그렇게 널리·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신념인지 의문이다. 모든 문제를 객관적 기준이나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사회에는 법과 논리보다는 인간 사이의 윤리와 인정으로 해결하는 편이 바람직한 문제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문제를 마치 모든 사람이 참으로 믿고 있는 생각인 양 내세우는 것은 필자의 실수라고 본다. 필자가 적당하지 않은 신화를 제시한 예는 또 있다. '벌은 동기 유발체로서 매우 가치가 있다'가 바로 그것이다. 체벌에 대한 문제는 찬성하는 의견과 반대하는 의견이 끊임없이 대립하며, 교육계에서는 어쩌면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체벌 문제는 신화라고 보기에는 다소 일반성이 약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체벌의 동기 부여 효과에 대해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 교육계에는 특히 많은 것이 사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여기에 신화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아울러 필자가 이 신화를 반박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필자가 말한 것처럼 벌의 효과는 일시적이므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에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장 교육 현장의 질서를 유지하고, 아이들에게 잘못을 빠르고 직접적인 형태로 깨우치는 데에 벌이 상당한 효과를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아이가 모르고 잘못을 저질렀다면, 자신이 그와 같은 행동을 했을 때 남들이 좋아하지 않으며 자신에게도 어떠한 불이익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해줌으로써, 다시 그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또한 필자는 체벌에는 벌주는 사람.
    교육학| 2002.05.11| 5페이지| 1,000원| 조회(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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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문학] 20세기 미국문학
    흔히 미국을 대중이 지배하는 나라라고 한다. 매슈 아놀드는 '미국은 몸에 맞는 옷처럼 일반 사람들에게 맞는 정치적, 사회적 제도는 있으나 문화에는 관심이 없는 나라' 라고 평했다. 얼마나 천박한 나라이길래 보들레르가 찬양한 Edgar Allen Poe를 학대했고 Henly James나 T.S. Eliot가 영국으로 귀화했고, Ezra Pound같은 시인이 미국을 떠나 유럽의 보헤미안이 되었겠느냐고 생각한다. Hemingway나 Faulkner도 먼저 유럽에서 평가받은 후에야 비로소 미국인들이 그 위대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른 후 어느새 미국은 정치나 경제에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세계를 제패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주로 1914년에서 1945년에 이르는 시기, 즉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미국 문학의 흐름과 경향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제1차 대전이 끝난 후, 1920년대는 미국에 있어 최대의 번영 시기였다. 1차 대전 시 미국은 1917년에 참전했고 참전 기간은 1년 7개월에 불과했지만, 전쟁은 미국 기업을 소생시켜 불황을 몰아내고 경제력을 강화시켰으며, 국제 사회에서 큰 발언권을 가지게 되었다. 미국은 상공업 중심, 도시 중심의 나라가 되었고 사회적인 풍조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기 시작했으며, 라디오·영화·자동차가 보급되고 규격화된 상품이 대량으로 생산되었다.문학의 세계에 있어서도 유럽을 추종하던 태도가 사라지고 이 번영의 시대를 반영하는 독창적이고 활발한 창작 활동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당시의 파리는 새로 나타난 전위적인 문학·예술 운동의 중심지였고, Gertrude Stein, Ezra Pound, T.S. Eliot 등의 국적 이탈자들은 파리나 런던에 살았으며, 그 후 Hemingway, Dos Passos, William Carlos Williams 등이 파리로 가서 모더니즘 문학을 접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1. 시(Poetry)미국에서 새로운 문학 운동은 시문학 분야에서 먼저 나타났다.미국의 현대시는 1912활의 일부를 감당할 때가 되었다고 굳게 믿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Harriet Monroe는 자신이 시인이 되고자 했던 여성으로 시의 이 같은 역할을 위해 시카고에서 시 애호가들을 찾아서 그들을 설득하여, 1912년 가을에 문예지인 「시가 Poetry: A Magazine of Verse」를 창간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당시 영국에 머물고 있던 Ezra Pound가 적극 지원함으로써 이 잡지는 지방성을 벗어나서 국제적인 운동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이 잡지에 시를 발표한 시인이 당시 시문학계의 주요 인물이 되었다.이 시기의 대표적인 시인으로는 염세주의적인 New England의 시인 Robinson, 소박한 전원시로 New England의 자연과 생활을 읊은 Frost, Carl Sandburg 등이 속하였던 시카고파(Chicago Group) 등이 있다. 또한 Amy Lowell과 Ezra Pound 등에 의해 이미지를 중시하고 새로운 리듬 일상어의 정확한 사용 등을 주장했던 Imagism 운동이 일어나 현대시의 혁신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1930년대에 Stevens, Williams, Ransom 등이 등장하여 신비평(New Criticism)의 모체가 되었다.a. Edwin Arlington Robinson(1869-1935)미국의 현대시가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전에 19세기와 20세기를 연결하는 시인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Robinson이다. 그는 불행한 운명 가운데 태어나 인간의 본성과 운명을 고찰하였다. 침울하고 내성적인 면에서 그는 청교도 조상을 연상시키며, 도덕적 충동의 세심한 분석과 정신적 비극에 대한 예민함 등은 Hawthorne과 비슷하다. 또한 개인주의적 입장에서나 사실을 중시하는 태도, 표현이 검약한 점에서는 Emerson과 Dickinson을 연상시킨다.그는 심리적인 시를 썼으며 환상 너머의 영원한 빛을 추구하는 상태이다. 「Miniver Cheevy」(1910)는 세상에 태어난 것을 한탄하고 옛 것의 미와 가치를 좋아하며, 현다. 또한 「Richard Cory」에서는 이와 대조적으로, 세상의 기준으로 크게 성공하여 남의 부러움을 사는 인물이 자살하도록 묘사함으로써 세속적인 성공에 대한 신랄한 비평을 가하고 있다.b. Robert Frost(1874-1963)Frost는 인간성에 대한 청교도적인 불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Emerson보다는 Hawthorne에 가까워 보인다. 그에게는 자연 현상이 어둡고 위협적인 신비를 나타낸다. 「Design」이라는 소네트를 보면 거미줄에 걸린 흰 나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What but design of a darkness appall? 겁주려는 어둠의 계획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If design govern in a thing so small. 그런 작은 것에도 계획이 다스린다면.하늘의 섭리에는 무엇인가 인간으로서는 완전히 알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그의 시에서는 종종 모순되는 요소가 함께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혼자 있으려는 성향과 이웃과 가까워지려는 희망이 나란히 존재하고, 전통에 대한 두 가지 반대되는 태도가 공존하는 것이다. 그는 New England의 자연에 집중하여, 버려진 것이나 하잘 것 없는 것들을 소재로 사용했는데, 착상은 단순하나 독자를 시인의 철학적 사색에 빠져들게 한다.c. Imagism1908년에서 1912년 사이 런던이 새로이 미국 시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운동을 이름하여 Imagism이라 한다. 이 새로운 움직임이 표방하는 것으로는 일상 언어의 사용, 새로운 감정의 표현을 위한 새로운 리듬의 창조, 자유로운 소재의 사용, 이미지 제시, 견고함과 명쾌함 등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창작적 시도를 할 수 있었으나, 심오한 정서나 사상을 무게 있게 표현할 수 없고 동사가 부족하므로 동적인 감정이 결여되며, 이미지가 단순한 표현으로만 사용되고 그 상징적인 면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Pound는 Image를 '순간의 지적이고 정서적인 복합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라 하였다. 그의 시 「메트로 거치고 있다.The a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무리 속에 홀연한 이 두 얼굴.Petals, on a wet, black bough. 젖어 검은 가지에 핀 꽃잎.Pound에 의하면 이 시는 지하철 역에서 내릴 때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갑작스런 정서를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다가 겨우 색채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는 이미지가 장식으로만 쓰이던 전통에서 벗어나 이미지 자체가 말이며 형성된 언어 이상의 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지식과 생활에 함께 하고 있다고, 즉 독자가 시인의 주변과 그가 알고 있는 역사를 알고 있으며, 시인이 읽은 것 또한 모두 알고 있다고 당연시 하였다. 작가가 자신이 경험한 것을 독자를 위해 재창조해야 독자가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했기 때문이다.2. 소설(Novel)Dreiser에 의해 확립된 자연주의의 기반 위에 Anderson과 Lewis의 사실주의가 등장하였다. 이 시기에는 전쟁으로 인해 종교, 도덕, 사랑 등 모든 것이 상실되었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창작을 통하여 자아를 표현하려는 Hemingway, Fitzgerald, Dos Passos, Faulkner를 중심으로 'Lost Generation'의 문학이 나타난다.1929년 대공황 이후 '위기의 시대'인 30년에 접어들자 미국내에서는 심각한 사회 불안이 일어났고 국제적으로는 파시즘이 급격히 대두되었으며, 문학도 그 영향으로 사회적 성격을 띄게 되었다. 좌익 문예지 「New Masses」,「Partisan Review」등이 나타나서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전개하였고 Hemingway, Steinbeck, Passos 등 문인들도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a. 자연주의(Naturalism)20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은 산업화 기계화에 따른 개인과 사회의 대립이 두드러지고 경쟁이 치열해졌다. 따라서 사회 환경은 인간에게 냉담하고 인간을 파멸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인간 본성의 추구는 거대한리 노력해도 외부 세계에 희생되고 만다는 자연주의를 만들어낸다. 자연주의는 원래 자연과학적 결정론에서 출발하여, 인간을 사회 환경과 유전적 요인의 부산물로서 자유의지를 가지지 못한 존재로 본다. 인간은 외부에 의해 조종당하는 존재로, 도덕적 행위자가 아니며 따라서 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b. Lost Generation-방황하는 세대- Ernest Hemingway(1898-1961)1차 세계 대전의 생존자들은 전쟁의 승리나 명분 있는 패배로 만족감이나 명예를 느낄 수 없었다. Hemingway는 이러한 Lost Generation을 대변하는 작가이다. 그의 생애는 바쁜 활동과 조용한 사색의 양극단을 보여주는데, 이는 남성적이며 간결하고 명쾌한 문체로 표현되었다. 전쟁, 원정 여행, 낚시, 사냥, 권투, 투우 등을 소재로 삼아 자전적 요소를 보여준다.1차 대전의 후유증을 분석한 「The Sun Also Rises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1926)는 등장 인물들을 통해 목표나 그 어떤 환상도 가지지 못하는 상태로 전락하여 죽음만을 유일한 의미라고 생각하게 되어버리는 불행을 그리고 있다. 「A Farewell to Arms 무기여 잘 있거라」(1929)에서 그는 "모든 것이 죽음으로 끝난다는 진실을 받아들이면 인생은 살만한 의미가 있고 순간순간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다"고 결론 짓는다.그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The Old Man and the Sea 노인과 바다」(1952)있다. 산티아고라는 노인의 고집스런 용기와 강인한 힘, 그리고 비극적 종말을 그의 뛰어난 테크닉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Francis Scott Fitzgerald(1896-1940)Fitzgeralds는 미국적인 성공을 향한 꿈, 물질적 풍요에 대한 집착과 그 비극적 결과를 그려낸 작가로서 '재즈 시대'라 불리우는 1920년대의 시대 정신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의 대표작 「The Great Gatsby 위대한 개츠비」(1925)는 이 시대가 전쟁 이후의 물질적 풍요와 그에 대한 욕다.
    인문/어학| 2002.05.11| 5페이지| 1,000원| 조회(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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