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물 산 업목 차생물 산업의 정의 생물 산업의 특성 생물 산업의 범위 1. 생물의약 2. 생물화학 3. 생물 농업•해양 4. 생물공정생물 산업의 바탕기술 생물 산업의 현황 1. 국내 현황 2. 국외 현황 생물 산업의 발전 전망1. 생물 산업이란?Bioindustry은 생명공학기술(Biotechnology)을 바탕으로 생물체가 가지고 있는 기능과 정보를 활영하여 인류가 필요로 하는 유용물질을 생산하는 산업이다.2. 생물산업의 특성기술집약적, 지식집약산업.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른 산업생물산업제품의 선호도 증대를 통해 복지수요 충족이 가능하고, 탈공해와 에너지절약형 생물공정을 활용함으로써 환경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산업.화학합성제품 등은 환경오염 및 폐기물 문제로 규제조치가 취해지고 있으나 생물산업제품은 규제에 대비할 수 있는 산업.세계 각국이 IT산업과 함께 21세기를 선도할 핵심산업으로 인식 최근 인간 지놈 연구의 성과가 이슈 되면서 비약적 성장이 예상.3. 생물산업의 발전단계바이오산업의 발전으로 바이오산업제품 및 서비스가 일상화되는 바이오사회(Biosociety) 도래 전망바이오사회(Biosociety)사회산업1993년 미국이 산업차원의 바이오산업 (Biotechnology Industry)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바이오산업 또는 생물산업(Biotechnology Industry 또는 Bioindustry)산업산업1973년 미국의 S. H. Cohen 및 H. W. Boyer가 유전자조작기술(Recombinant DNA Technology) 개발생물공학기술 (Biotechnology)기술산업1953년 J. Watson 및 F. Crick이 DNA 이중나선구조를 규명함으로써 생명과학의 발전계기 마련생명과학 (Life Science 또는 Bioscience)과학산업주요내용발전단계구분4. 생물산업의 범위생물 산업생물 환경생물의약생물 공정바이오식품바이오 에너지 자원생물 농업•해양생물 화학생물산업 분류체계안(1) 생물 의약생물의약은 유전자조작, 세포융합다소비형인 합성화학 생산기술과 노후화된 합성 화학 제조공정을 미래지향적인 첨단생물전환기술로 대체 가능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생산공정으로 생산된 제품에 대하여 수입을 금 지하거나 환경덤핑을 관세화하려는 국제적인 규약 및 규제 대처 가능생물화학 소재및 제품 개발을 통해 질병의 원인을 규명, 처치함으로 써 궁극적으로 인류복지 증진에 기여(3) 생물농업 • 해양생물농업 : 농업의 생산성 증대에 이용되는 생물학적 물질과 동 식물체를 이용하여 유용물질을 생산하는 분야 생물해양 : 해양생물자원을 활용하여 유용물질을 생산하는 분야정 의미래의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육류와 작물의 대량 생산에 이용중요성미생물 농약 등을 통한 환경보전이 가능낮은 원가 및 높은 생산성을 제공(4) 생물공정배양기술 : 발효공정기술 생산공정기술 : 생물반응기기술 생물분리정제•공정기술 생물 공정전환기술, 검정•측정기술생물산업 각각에서의연구 및 발견을 제품화하기 위한 필수적인 생산공정 관련기술 및 기기류 등 생산관련 기술을 총칭정 의기존 생물산업 제품의 생산성 향상이나 시제품의 상용화 여부 결정의 중요한 역할중요성환경오염물 발생 축소로 환경보전에 기여사용되는 에너지나 원료물질의 Recycle을 통해 실질적인 자원 절약 효과를 도모발 효 공 업발효공업이란 미생물로 이루어지는 화학변화를 이용한 공업정 의알코올 발효아미노산기 발효핵산 발효균체 생산효소 공업미생물에 의한 산업폐기물 처리항생물질 및 생리활성 물질5. 생명 공학= 생물 산업의 바탕 기술 =생명 공학기술의 발전과정기능유전체학 비교유전체학50년대이전50~60년대70년대80년대90년대2000년대전통적 생명공학기술신 생명공학기술기초연구기유전가규명기기술혁신기유전자연구기실용화기발효기술 항생물질기술유전자재조합 세포융합 세포배양 생물반응기안티센스 대량세포배양유전체학 DNA칩 동물복제 생물정보학DNA 이중나선 구조발견생명공학 기술의 응용분야신약개발기술유전체응용기술대량생산 및 분리정제기술유전자 치료 바이오 센서 인공장기 개발기술수산자원개발품종개발기술Biotechnol 국가들도 연구를 활발히 추진 중 인간 지놈 연구와 관련되어 Bioinformatics, Proteomics 등의 타분야 연구도 활발.유전 정보 규명 - 인간지놈프로젝트Structural Geomatrics - 유전자 지도 작성Protiomics - 단백질 유전정보 생체기능간의 관계규명Bioinformatics - 유전정보의 Database화Functional Geomatrics -유전자의 기능 분석응용(의료및 의약분야) - 치료제 및 진단약 - 유전자 치료 - 바이오 칩우리나라는 1996년부터 인간 지놈 연구가 활발해졌다. - 1996년 지놈연구사업단 출범 적은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활발한 연구 수행못함. - 1999년 말 '인간유전체기능 연구사업'을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 사업'의 하나로 선정하고 인간 지놈 연구를 추진 중 - 민간부문 에서는 대기업과 다수의 바이오 벤처기업들이 지놈관련 연구를 진행 중 대기업 : 삼성 ,LG 화학, SK, 한화 등 벤처기업 : 마크로젠, 바이오니아, 바이로메드 등- 황 우 석 -6.국가별 생물산업의 현황미 국 미국은 기초 및 산업기반이 매우 튼튼하고, 대기업 및 벤처기업들이 상호협력하여 산업발전을 리드. 1988년 생물공학경쟁조정법을 제정해 육성기틀을 마련하였고, 1992년 21세기를 향한 생물공학 주도정책을 수립하여 생물공학연구를 지원. 주정부의 활성도가 우수한데, 특히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무역청의 대업계 서비스, 전략기술청의 기술이전 지원, 외국인투자안내센터를 통한 외국자본의 투자유치 촉진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실정. 1,300여개의 기업들에 16만명 이상이 종사하여 신규고용을 창출하고 있으며, 1999년도 생물산업 매출액은 161억 달러, 총수입은 223억 달러, 기술개발비는 107억 달러를 기록 4미국 생물산업 현황 자료 : 미국 Ernst & Young LLP ; Biotech 99, 1998년 / Convergence : The Biote- chnology Industry Report, 2000년 종합1공학연구소·Kazusa DNA연구소 등 전문 연구기관을 설립해 기술개발 및 산업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실정. 1999년에는 경제산업성을 중심으로 5개 관련부처가 신산업 창출을 목표로 연구개발, 사업화, 공중인식까지를 전망하는 생물산업의 창조를 위한 기본전략을 확정. 약 1,100개 기업과 3만명이 생물산업분야에 종사하고 있으며, 1999년도 총 시장규모는 1조 2,409억엔 수준.일본 생물산업 총 규모(단위 : 억 달러) 자료 : 일본 NB Publications, Inc., Nikkei Biotechnology 제 437호, 1999년12,408.811,562.210,871.8합계2,641.52,378.22,705.7의약·정밀제품, 식품·센서, 기기시약·기타바이오관련상품9,767.39,184.08,166.1유전자조작, 세포융합, 세포배양 제품바이오상품1999년1998년1997년시장규모구조내용ㄷ유 럽 유럽은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EUREKA·BRIDGE 등의 생물공학 프로그램 같은 공동협력 프로그램을 수행 중이며, 각국별 경쟁도 병행하고 있음. 1999년 5만명 이상이 생물산업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유럽 생물산업의 총수입은 54억 달러, 기술개발비는 32억 달러 수준. 이중에서 영국은 유럽 생물기업의 거점이고 300개 기업에 14,000명 이상이 종사하고 있는데, 생물공학의 산업적 응용 가속화를 통한 생물산업의 발전을 추진하고 있음. 또한, 독일은 법적 체계 구축과 지역모델을 선정하여 산업화를 촉진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정부차원에서 연구분야 1순위로 선정하여 집중 투자하고 있는 실정임.유럽 생물산업 현황 자료 : 영국 Ernst & Young International Ltd., European Life Sciences 99, 1999년 / Evolution : European Life Sciences Report 2000, 2000년53,511명45,823명39,045명종업원수(Employees)31억 7,033만 달러 (31억 6,400만 유로)23억 3 기술개발비는 1,779억원이고, 기술경쟁력은 선진국의 약 60% 수준임.국내 주력업종 분포 2003 년 국내 생물산업은 생물의약 바이오 식품 업종에 종사하는 생물산업체 비중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음.2003 년도 국내 생물산업부문 투자현황 2003년도 투자 규모 (수입품 판매업체를 제외) 는 평균 8.44억원으로 2002년 같은 유형의 투자 규모인 8.24억원에 비해 2.37%증가 미국의 2002년 생물산업체의 생물산업 부문 투자규모 평균인 266억원과 비교할 때 매우 저조2003년도 한국 생물산업 규모 2003 년 국내 생물산업 생산 규모는 2조 791억원으로 2002년의1조 8,934억원대비 9.8% 증가 2003년 국내 생물산업의 총 공급 (생산 및 수입) 규모는 2 조 5,923억원으로 2002 년 실태조사 결과 (주류 비포함 ) 인 2 조 3,427억원과 비교 시 10.7%증가 수급규모 요약.국내 생물산업 규모의 분야별 비중 생산액 국내판매액 수출액 수입액(2)국내 생물산업의 전망연구개발 결과를 산업화시켜 시장규모를 확대 산업기반 구축 새로운 산업으로서 생물산업의 성장 및 발전을 이룩 선진국 모방제품 위주 개량 또는 신기능제품 개발 확대 생물의약품 중심의 산업화가 다양해지고 생물공정을 산업화 시장규모도 꾸준히 증가하여 향후 2003년의 시장규모는 2조 5천억원 규모로 예측. 우리나라 생물산업의 시장규모 전망 (단위: 억원) 자료 : 산업연구원, 생물산업의 발전전략, 1999년150,00063,00025,00011,000금액2013년2008년2003년2000년연도(3)국내 생물산업의 발전목표첫째바이오 제품과 서비스가 일상화되는 바이오 사회(Biosociety)대비 생물산업을 21세기 핵심 전략산업으로 선정해 비교우위분야를 중점육성함으로써 2010년까지 선진국 수준으로 육성둘째신규 또는 신기능 바이오제품을 개발 또는 창출해 지적재산권을 확보하고 세계시장에 진출하여 수출산업으로 중점 육성(4)국내 생물산업의 발전전략단계별 추진전략 수립 및 시행신규 또는ow}
중국의 동북공정 작업과 우리의 대비책1. 서론남한지역에서 대표적인 고구려 유적을 찾아볼 수 있는 지역을 찾는 다면, 제일 먼저 충주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충주는 중국 길림성의 집안에 비견해 볼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고구려가 집안에 국내성을 설치하였다면, 충주에는 국원성을 설치한바 있었고, 집안에 고구려의 대표적인 금석문인 ‘광개토대왕비’를 남기었다면, 충주에는 한반도 내의 대표적인 고구려비인 ‘중원고구려비’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5세기 무렵 고구려가 충주에다 국가의 근원이 되는 곳이라는 의미의 국원성을 설치하고 하임궁이란 궁전까지 건설한 것은 삼국 간의 쟁패에서 충주가 가지는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여 중요시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고구려 고도 충주에서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 작업을 바르게 인식하고 그 대처방안 찾아보기 위한 학술회의가 열리게 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현재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동북공정의 실제 목적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남만주지역 특히 옛 간도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을 확정짓기 위한 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현재 중국은 동북재조라하여 앞으로 2008년까지 우리 돈으로 120조원을 투입하여 동북삼성지역에 대한 재개발을 추진하는 한편,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년 동안 1200여명의 학자와 관료 등을 동원하여 3조원을 들인 동북공정이란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절리 알려진 사실이다. 동북공정이란 말 자체가 지역적이고 영토적인 개념이라고 볼 때 그 추진의 목적이 소위 조선족이라 부르는 우리민족이 살고 있는 연변자치지역을 비롯한 그 주변지역을 완전한 중국영토로 고착시키기 위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북한정권이 붕괴되는 경우 남북을 통일한 한국과 연변자치주의 조선족이 자연스럽게 통합되어 옛 간도지역을 포함하는 강격한 대한민국이 대두될 수 있을 것을 가상하고 사전에 그것을 차단하여 완전 분리시키기 위한 작업을 추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8월 23일』(경철화 손인걸편, 연변대학교 출판부)에 자신이 쓴 ‘중국 고구려 연구 10년’이란 회고문과 함께 중국학자들의 고구려사 관계 논문들을 수록하였는데, 여기서 ‘중국 고구려’란 표현을 이미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연구 동향은 2000 대로 접어들면서 더욱 노골화하는 경향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연구는 2000년에 나온 경철화가 편한 『고구려역사여문화』와 2001년에 출판된 마대정이 편한『고대중국고구려역사논총』와 2001년에 경철화 양춘길이 쓴『중국학자 고구려연구문헌목록』(길림문화사출판사) 등이다.중국의 어용학자들이 고구려사 왜곡한 냉용이 도대체 어떤 것들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마대정이 쓴 글의 내용을 소개 하려한다.마대정은 「고구려사 연구에 있어서 몇 가지 관련된 문제들」이란 글에서 “고구려는 한에서 당까지 중국의 동북지구에서 아주 중요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소수민족의 명칭이며, 또한 고구려 인민들이 건립한 정권의 국호이기도 하다. 고구려의 건립은 한 면으로는 고구려 족의 형성과 발전을 가속화하여 고대 중국 동북지구 정치?경제와 문화의 발전을 진일보 추진하였던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는 고구려의 역대 국왕들이 주변의 다른 민족들에 대하여 약탈과 확장정책을 계속하였음을 뜻한다. 따라서 고구려는 주변 타민족의 주민들은 물론 고구려 족 인민들에게까지 심중한 재난을 가져다주었으며 결국은 고구려 족의 해체와 소멸로 이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대부분 학자들은 고구려민족은 우리나라 동북역사의 한 개 민족이고 고구려가 우리나라 동북역사상 소수민족 정권이라고 생각 한다.”고 하였다.이 것은 고구려가 중국의 동북지구에서 건국하여 발전해 나갔던 중국의 일개 지방정권으로, 고구려 자신의 약탈과 확장정책의 추진 결과로 고구려족의 해체와 소멸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의 동북지역에서 고구려민족이 위대한 역사와 문화를 이룩하며 발전해 나갔었지만 당의 통일전쟁에 의해 고구려가 패망함으로써 그것을 이룩한 고구려 보아야 한다.”)라고 한 것으로 볼 때 1990년대 초까지도 순수한 중국의 고구려사 연구가들은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가 아닌 이웃나라역사로 규정하였던 사실을 알 수 있다.중국 정권이 성립한 초기에 등장한 중국의 중학교와 대학교과서의 고구려사에 대한 기술들 역시 모두 이웃나라의 역사라고 인식하여 서술한 것을 볼 수 있다. 1950년대 중학교 세계역사교과서에서 고구려를 고대 조선의 국가로 기술하였고, 중국사교과서에서는 수?당의 고구려와의 전쟁을 ‘대외침략 전쟁’이라고 규정하였다. 1981년 출판된 세계역사 교과서 상권에서도 여전히 고구려를 조선반도 북부의 노예국가라고 기술하고 있다.대학 교과서의 고구려사에 대한 인식 역시 중학교 교과서내용과 대체로 일치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1950년대 중기에 나온 세계중세기사 나, 세계중세기사강의 에서도 기자조선, 위씨조선, 고구려를 모두 조선 고대 국가로 소개하였고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왜곡 현상은 살필 수 없었다.1960년대 중국의 대표적인 통일교과서로 주일양이 주편한 세계통사(중세기) 에서는 기자조선, 위씨조선과 고구려를 모두 조선의 고대국가로서 서술하였으며,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나 국력대해서도 아주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1978년 중국의 교육부분에서 조직한 14개 대학교가 모여서 합편한 세계고대중세기사 에서도 고구려는 중국에서 흥기한 나라이지만 하나의 국경을 뛰어 넘은 민족이라 기술한 것을 볼 수 있었다.마대정은 과거 이와 같은 중국측의 고구려사 기술 태도는 50년 대의 개혁, 발전, 항미원조전쟁 같은 국내외 정치 동향의 영향과 함께 중 조 양국인민의 우호단결이라는 차원에서 우호적으로 기술했기 때문이었고, 또 고구려사나 동북지구 고대 봉건국가와 민족정권에 대한 연구가 미숙했기 때문이었다고 변명 아닌 병명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중국의 고구려사 역사 왜곡에 참여하고 있는 또 하나의 대표적 인물인 양보융은 고구려와 고려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별개의 왕조들이라고 주장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설명하고조선을 건국한 이래로 삼국시대를 거쳐 남북국시대를 지나 발해가 망할 때까지의 오랜 기간 동안 만주지역에 대한 역사적인 연고권을 갖고 있었다. 특히 918년 고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고구려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한 나라임을 국내외에 천명하면서 옛 고구려영토 회복을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의 하나로 정하고 국력을 기울여 추진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려와 고구려가 무관한 별개의 왕조라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잘 못 된 것인지는 고려태조의 발해유민에 대한 특별한 인식과 배려만으로도 알 수가 있다. 927년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키자 태조 왕건은 고구려계 유민 10여만( 20만으로 보는 학자도 있음)을 동포의 자격으로 따뜻하게 맞아들이고, 대광현에게는 왕계라는 성명을 내려 주어 종실의 적에 붙여서 그 선대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그의 막료들에게는 모두 작위를 내려주었다.) 그리고 이들과 힘을 합쳐 후삼국통일을 완수했던 사실만 가지고도 고려의 건국자들이 발해의 지배층과 성격을 같이 하는 고구려계였던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가 있다.그뿐 아니라 고려사의 기록 곳곳에서 우리는 고려가 고구려계승 의식을 갖고 있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다.먼저 고려사 지리지 서문에, “우리 해동은 삼면이 바다에 가리어지고 한구석이 육지에 연접하여 폭원의 넓이가 거의 만리나 된다. 고려 태조가 고구려의 땅에서 일어나 신라를 항복받고 후백제를 멸하여 개경에 도읍하고 삼한의 땅을 통일 하게 되었다. (증략) 그 사이는 서북은 당 이래의 압록강을 한계로 삼고 동북은 선춘령으로 경계를 삼으니 대저 서북의 경계(소지)는 고구려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동북은 이에서 지났다."라고 한 것을 찾아볼 수가 있다.)이 글을 보면, 고려가 고구려 땅에서 일어나 전국을 통일한 나라라는 것과 함께 고려의 북쪽 영토가 옛 고구려 지역으로 크게 북상시킨 결과로 서북은 비록 압록강 유역까지 진출하는데 그침으로서 옛 고구려 경계에까지는 미치지 못 하였지만, 동북면 지역만은 거의 만 여리나 될 정도 북쪽 멀리까지 확장되었번호들이 잇달아 살아서 변방 끝까지 다 설험할 수 없사오니 청컨대 영외의 제번들이 다 주현이 됨을 기다려서 그 뒤에 점차로 원번에게까지 미치도록 하소서.”라고 한 동로병마사가 주청한 기록을 보면, 문종 대 귀순주의 확대 결과로 여파한령 이북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여진족들 까지 고려로 귀순해 옴으로서 고려의 북쪽국경이 양지무제 즉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게 확장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그 결과로 이시기에 고려의 동북 국경은 이미 두만강유역 넘어 까지 확대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가 있다.그러나 두만강 유역을 고려의 동북쪽 영토로 확고하게 확정지은 것은 11세기 예종 때 윤관이 이끈 고려군이 여진족을 정벌하고 그곳에 9성을 축조한 다음, 고려와 금나라 사이의 경계를 확정 짓는 공험진 비를 선춘령 아래에 세우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고려 예종 2년 1107년 윤 10월 윤관을 상원수에 오연총을 부원수에 임명하고 17만 대군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여진 정벌을 한 다음 그곳에 9성을 쌓고 남쪽의 백성들을 대대적으로 사민하여 고려의 영토로 확정하는 작업을 추진하였다.) 그 후 여진과의 평화교섭이 이루어져 구성환부를 결정하게 되었지만 9성을 여진족에게 되돌려 주었다고 해서 이때 영유권까지를 아주 넘겨준 것이 아니었다.구성환부의 책임을 맡기어 파견했던 임의의 묘지명을 보면 그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가 있다. 임의가 예종의 명을 받고 9성으로 가서 고려가 9성을 여진족에게 환부하기에 앞서 9성 지역에 대한 영유권이 어디까지나 고려에 있다는 사실을 여진족들에 주지시키었었고, 여진족들 역시 고려가 9성 지역을 여진족에게 다시 돌려준데 대해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여 끝까지 고려에 충성하여 다시는 침략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였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로 볼 때 고려가 9성을 여진족에게 환부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진족들에게 9성 지역에서 마음 놓고 생활할 수 있는 생존권을 부여한 것일 뿐 고려의 영유권마저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California`s Pacific (캘리포니아 태평양)━━━━━━━━━━━━━━━━━━━(Chip Hooper - 칩 후퍼)■ 개 요사진전시관을 직접 방문 / 관람해봄으로써 사진과 사회학 수업에 의 학습 이해 도모와 함께 더 나아가 전시된 사진에 대해 감상 및 비평을 통해 사진에 대한 실질적인 감상 및 비평 능력을 배양함.■ 관 람 일 자 / 장 소▲ ‘05년 4월 17일 (일) / 김영섭사진화랑 (종로구 관훈동)■ 관 람 후 기▲ 들어서면서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전시회 관람이라는 것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기에 나에게 아직까지 전시회 관람은 생소함으로 가득하다. 특히, 사진 전시회 관람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아무튼 자의든 타의든 이번 수업이 아니었다면 내 평생에 사진 전시회라는 것을 한번도 경험 해 보지 못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관람 몇 일전부터 친구와 함께 전시회 일정을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활용하여 찾아보기 시작했다. 역시 예상대로 쉽지만은 않았다. 사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부족했거니와 사진 전시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아무 런 정보 없이 친구와 함께 무작정 인사동을 찾아갔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 전시관을 찾아봤지만 대다수가 도자기 혹은 그림을 전시한 곳만이 즐비할 뿐 사진 전시관을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변에 좋은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에 물어도 보고 눈에 띄는 전시관에 들어가 물어도 보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사 진기를 들고 사진 촬영을 하는 사람에게 물어도 보며 인사동을 2시간여동안 돌아다 녔을까......3곳에 사진 전시를 하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중 2곳은 『칩 후퍼 -캘리포니아 태평양』이라는 같은 타이틀을 걸고 전시회를 진행중이었다. 결국 친구 와 상의 끝에 『칩 후퍼 - 캘리포니아 태평양』을 관람하기로 결정을 하고는 허름해 보이는 건물에 들어서 계단을 하나. 둘 오르기 시작했다.▲ 본 론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한 여자가 입장료에 대한 설명을 해주면서 하나의 입장권 으로 인사동 2곳에서 전시하고 있는 전시 모두를 관람할 수 있다는 설명을 곁들여 주었다. 사진 전시회에 생소한 나와 친구는 일단 한 곳이 공짜라는 사실이 듣기 싫 지만은 않았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난 후 전시관에 들어선 첫 느낌은 밝은 조명과 새하얀 벽면들......그리고 그 벽면에 걸려있는 10여점에 사진이었다. 그 동안 몇 번 가보지 않은 전시 관람 경험 때문에 생긴 선입견인지는 모르겠지만 화려하지도 않고 규모면에서도 너무 협소하여 실망감이 먼저 밀려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사진 전시회는 원래 이런것가 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진을 둘어보기 시작했다. 전시 장소가 협소한데다가 관람객 역시 친구와 나뿐이어서 마음놓고 편하게 볼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도무지 어떠한 형식으로 작품 감상에 접근해야 할 지 를 몰랐다. 그저 사진 모두가 흑백사진이었으며 바다와 돌, 새 등을 찍어놓았으며 특 히 특정한 사물을 제외하고는 바다나 혹은 해변 모래들은 그 형체를 정확히 알아보 기 힘들게.......마치 구름과 같은 모습으로 그려냈다는 것 밖에는 몰랐다. 그렇게 어 리둥절한 모습을 하고 이 사진 저 사진을 둘러보며 친구와 웃음 섞인 농담을 주고받 는 도중에 전시회을 관리하시는 듯한 한 분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주었다. 나는 사진 전시회가 처음이며 지금 이곳에 관람을 하러 온 이유도 과제 때문이라는 솔직한 대답을 하면서 작품을 감상하는데 어떤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도 곁들여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분은 『칩 후퍼』의 사진이 이곳에 전시된 이유부터 『칩 후 퍼』가 어떤 사람인지, 또한 몇몇 사진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작품에 대한 감상평 등 을 설명해 주었다. 특히 감상평을 이야기 해주는데 있어서는 자신의 감상평은 단지 자신의 생각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는 아마도 개개인마다 다른 감상을 할 수 있 는 감상에 주관성을 고려하여 말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설명 들을 듣고 난 후 작품 감상 중점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맥이 짚히기 시작했고 내 스스 로 작품을 바라보는 주관적인 눈을 가지고 그 곳의 사진과 함께 다른 전시관으로 이동하여 나머지 작품도 모두 둘러보았다.1시간여 동안 둘러 본 『칩 후퍼 - 캘리포니아 태평양』이라는 전시회는 그 제목 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전시된 사진 모두가 바다의 풍경 / 그 주변을 소재로 작 품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래서 바다의 돌이나 혹은 새 등의 사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는 『칩 후퍼』가 어린시절부터 바다에 대한 동경에서 기인 된 것일 수도 있으나 좀 더 생각해보았을 때 사진의 주제 / 소재 혹은 『칩 후퍼』가 흑백 사진만 을 선택한 이유 등을 보았을 때 그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라든가 신비감 혹은 환상 등을 표현하고자 하는데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이와 함께 사진은 주요 사물을 제외하고 바다라든가 모레 등은 마치 구름처럼 표 현이 되어 있었으며 그래서인지 사진속에 나타내어지는 사물들은 바다에 있다라기 보다는 마치 하늘에 더 있는 듯한 느낌 혹은 마치 두장의 사진을 겹쳐 놓은 듯 한 인상을 받았다. 이는 『칩 후퍼』가 조리개를 장시간 열어놓은 상태로 사진을 찍은 이유에서 비롯된다. 이는 마치 우리가 고등학교 지구과학 시간에 별의 일주운동(?)에 대한 사진 자료에서 조리개를 활짝 열어놓고 장시간 사진을 찍을 경우 별이 하나의 점이 아닌 곡선으로 표현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즉, 출렁이는 바다가 한 순간으로 포착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 모두가 자연스러운 형태로 표현되어진 것으로 생각되 어진다.총 30여점의 사진은 모두가 자연에 대한 환상, 경외감, 신비감 등을 토대로 표현 되어진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가운데 특히 나의 시선을 사로 잡은 것 2점이 있는데 하나는 바닷가의 모래사장 가운데 큰 괴암석이 있는 사진 (사진 - Ⅰ)과 나머지 하 나는 바다속을 찍은 사진 (사진 - Ⅱ)이었다.사 진 - Ⅰ이 사진은 두 개의 전시관 중에 처음 간 전시관에 전시 되어있던 작품으로 처음 접했을 때는 공룡이나 혹은 파충류를 찍은 것이가......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자세히 보면 모래사장에 큰 암석과 함께 뒤쪽으로는 광활한 수평선임을 알 수 있다. 모래사 장과 바다의 수평선은 그 경계가 모호할 뿐만 아니라 사진을 흐릿하게 처리하고 더 불어 모래사장, 바다, 하늘이 흑백 사진속에서 명암차이에 의해 묘사됨으로써 왠지 모를 묘한 기분이 돈다. 그 가운데 큰 암석은 묘사가 너무나도 자세히 되어 있어 처 음에 언급한 것처럼 흡사 동물과 비교될 만큼의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사 진 - Ⅱ이 사진은 『칩 후퍼』가 어린 시절 일화 (12살부터 자신의 집 지하실에 암실을 만들어 사진을 프린트 했다고 함.)에 대한 것을 증명이라도 해주듯 그의 프린트 기술 을 증명해주는 작품중 하나이다. 처음에는 단순이 바다를 찍은 사진이라고 생각하였 으나 좀 더 가까이에서 보면 단순한 바다 표면이 아닌 바다속을 찍은 사진으로 바닷 속의 물방을 하나하나까지도 놓치지 않는 깐깐함을 볼 수 있다. 전시장을 관리하시 는 말을 인용하자면 “나는 정말 이 사진을 보면 작가의 깐깐함에 짜증이 날 정도에 요”라고 큰 한숨뒤에 웃음을 지었다. 사진에 대해 아는 바 없는 나 역시 어떻게 이 렇게 사진을 직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느낌이 들었다는 것은 그의 프린트 실력이 얼마나 좋은가를 단적으로 입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이 사진은 마치 바다를 잘라서 바다의 단면을 찍은 듯한 사진으로 햇빛이 바닷속에 투과되는 정도에 따라 명암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마치 그림이 아닌가......라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였다.
여성의 자아찾기-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고-‘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소설을 읽고 무척 불편했다. 10여년 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이 소설의 일들이 유효하기 때문이었다. 간 큰 남자 시리즈라는 우스개 소리로 여성위에 군림하는 남자들이 희화화되는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어떤 여성들은 폭력적인 남자들에 의해 삶의 희망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있다. 한 예로 친아버지를 살해한 중학교 소녀의 예기를 들 수 있다. 처음 그 이야기를 접했을 때는 사회가 왜 이렇게 험악해지나 혀부터 차게 되었지만 소녀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보니 그녀는 가정 폭력의 희생자였다.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살기 힘들었을까? 하루하루가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한다니, 죽는 게 오히려 나을 것 같은 삶이었으리라.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남편을 살해한 여성에게는 중형을 선고하고 여성을 살해한 남성에게는 형량이 가볍다. 한 여자의 인생을, 인격을 파괴한 강간에 있어서도 가해자인 남성들이 오히려 당당할 수 있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이렇게 여성은 사회적으로 약자이다. 법이 나서서 관습이 나서서 사회가 나서서 이런 약자인 여성의 인권을 보호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여성은 이래야해 저래야 해 하는 편견으로 더욱 옳아 매고 있다.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세 여인들의 삶은 난 다 좋은 케이스는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여성이 자신의 자아 정체감을 결혼생활이 실패하고 불행해야지 돌아보게 되는 현실은 뭔가 어그러져 있는 듯싶다. ‘혜완’은 능력 있는 여성으로써 기존의 가치관에서는 되바라진 여자, 드센 여자로 표현될 수 있는 성격의 여자이다. 그녀는 일 때문에 아이를 잃게 된다. 그 이후 공동책임자인 남편은 마치 모든 잘못을 그녀에게 돌리게 된다. 그런 와중에 결국 이혼하게 되는데, 혜완의 모습에서 당시 일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느낄 수 있다. 능력 있고 소신이 뚜렷한 여성을 경원하고 있는 시선 말이다. 이제 일하는 여성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은 조금은 긍정적인 듯하다. 이 소설 속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다. 지금의 대중문화에서는 능력 있는 여성이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정말 실제 삶에서도 그러한가. 조금은 돌아보고 싶다. 더 이상 여성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지 않는지를 말이다. 내 결혼한 친구의 예기를 들어보면 정말 황당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편이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늘 반찬은 매 식사 때 마다 새 반찬이어야 하고, 친구들과 모임이 있으면 사정이야 어떻게 되던간에 무조건 못나가게 하고 자신의 의견에 반하면 폭력은 쓰지 않지만 억누르려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 애가 왜 그렇게 살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더랬다. 특히나 여전히 저런 남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친구의 답변은 그래도 이 사람을 사랑하고 여자가 참아야지 집안이 편하고 좋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늘 자신이 양보하고 남편 눈치를 보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은 억누르며 남편에게 맞추는 모습은 사랑으로 표현하기에는 어색했다. 나 역시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내 나름대로 결혼에 대한 정의를 내려가고 있는데 정말 여성이 양보하고 순종하는 것이 정말 좋은 일이지 궁금하다. 워낙 남성과 여성의 생리적 특성의 차로 여성이 양보하는 일이 당연한 건지 정말 모르겠다. 사회적으로 여성이 남성 밑에 소속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 건지 아님 정말 생득적 차이 때문인지 헛갈린다.‘영선’의 삶은 정말 짜증 그자체이다. 자신을 희생하고 결국 빈껍데기가 되어 정체감을 잃고 자살에 까지 이른 그녀는 정말 같은 여성으로써 정말 닮고 싶지 않은 케이스이다. 혜완의 삶이나 선우의 삶은 조금은 공감가는 부분들이 있고 이해가 되지만 영선은 그렇지 못하다.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만약 그녀의 상황이라면 다시 공부를 시작하겠다. 그래서 잃어버린 꿈과 동시에 자아도 찾고 발견해 나갔을 텐데……. 결국 영선은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이것은 정말 극단 중에 극단이고 정말 최악의 케이스인 것 이다. 그러나 과연 영선의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 소설이 쓰여 진지 10년이 넘어 강산도 변할 시간이 흘러서 과연 지금은 영선과 같은 여성이 없다고 과연 장담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물론 이렇게 극단적인 케이스는 아니겠지만 남성들의 사회적 성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성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물론 서로 화합하는 가정을 위해 서로간의 양보는 분명이 존재해야하지만 그것이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되어선 안 된다고 본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며느리가 되는 것이 여자의 삶에서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여성들은 귀한 자식이고 그렇게 대접받으며 자라온다. 특히나 ‘친정에서는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하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결혼만 하면 손에 물마를 날이 없다. 그것이 당연하고 그것에 이의를 달면 그게 이상해지는 것이 우리 사회이다.나는 지금 결혼할 남자친구가 있다. 4년째 사겨왔고 서로에 대한 신뢰도 있다. 결정적으로 나는 이 남자는 평등하고 인격적으로 나를 대우해 줄거라는(가부장적이지 않은)확신이 있다. 사랑하지만 정말 요즘은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도 하다. 이유를 대자면 자꾸만 미뤄지는 결혼문제 때문이다. 친구네 집에는 형님이 계시는데 역혼을 허락지 않는 시댁 때문이다. 벌써 결혼이 실재적으로 언급됐다가 무산된 것이 2번이고 체감으로 우리들끼리 언급한 것만도 4번이다. 다 미뤄졌다. 나의 입장이나(집이 미용실을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내가 결혼이 미뤄지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관심이 많다. 결코 좋지만은 않은 일이다.)우리 집안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시댁 쪽의 사정만으로 일방적으로 미뤄지고 있다. 언제나 이러한 문제를 어머니는 내가 통보하듯 알려주고 ‘그런 줄 알아라‘ 하신다. 정말 속상해서 말이라도 하고 싶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정말 나만은 이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고부간의 갈등을 겪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며느리라는 것이 여자라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스레 느껴진다. 남자친구 역시 나보고 참으라 하고 막상 결혼이 진행되면 나 역시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잖냐며 내게 역정을 내곤 한다. 정말 화가 난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며느리가 시댁에 대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거나 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더럽고 치사해서 헤어지고 싶어도 너무 오랫동안 만나와서 주변의 시선이 두렵다. 이럴 때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태어난 것이 너무나 화가 나고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