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스 미디어와 스포츠 문화 -〈 커뮤니케이션과 대중문화 제 2번 과제 레포트 〉{- 참여자 -1998310135 노어노문 김태회2000314868 경제학과 반재훈2002314234 사과계열 유명상2002312420 독어독문 이두일2002314240 인문과학 정성교2002xxxxx 독어독문 신정남{목차Ⅰ. 서론ⅰ. 매스미디어의 개념ⅱ. 스포츠의 개념Ⅱ. 본론ⅰ. 현대 스포츠의 큰 의미인 올림픽과 월드컵ⅱ. 매스미디어와 스포츠의 상호작용ⅲ. 문제제기 및 개선 방안Ⅲ. 결론━━━━━━━━━━━━━━━━━━━《요약 》━━━━━━━━━━━━━━━━━━━매스미디어는 대중에게 신속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과정이다. 미디어는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 규범과 가치를 학습시키고 스포츠, 팀, 그리고 선수에 대한 대중의 견해를 형성케 하거나 왜곡시키기도 한다. 예컨대 스포츠와 관련하여 미디어는 스포츠 경기에 관한 소식을 보도할 뿐만 아니라 스포츠 소비와 경쟁에 관한 가치를 학습시킨다. 매체는 스포츠 보도를 통하여 대중에게 위락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사회화 주관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과거 한 세기 동안 대중매체와 스포츠가 상호 이익을 주고받는 공생 관계로 발전함에 따라 스포츠에 있어 매스미디어는 의사소통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매체, 스포츠, 그리고 광고간의 관계 발전을 통하여 대중매체의 내용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으며, 역으로 스포츠도 미디어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스포츠에 대한 미디어의 영향은 게임의 규칙과 과정을 변화시켰고 스포츠 조직체의 재정적인 후원을 증대시켰으며, 선수의 연봉을 인상하도록 하였고, 스포츠의 직업화와 대중화에 박차를 가하였다. 한편 스포츠가 대중매체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력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그 연계성은 기존체계보다는 훨씬 다양해져서 새로운 경쟁 관계로의 진입이 예상된다.━━━━━━━━━━━━━━━━━━━━━━━━━━━━━━━━━━━━━━━━━━- 서론Ⅰ. 매스미디어(mass media)의 요약는 그것을 보며 즐기게 된 것이다. {) 스포츠 webzine 3월 호 page 23 참조 -이규선 기자-Ⅰ. 스포츠의 어원스포츠의 어원은 라틴어의 물건을 운반한다 라는 뜻에서 전화(轉化)하였다. 13세기경에는 프랑스어인 de(s)port=disport로 되었고, 거의 같은 무렵에 영어인 sporte로 전화 되었는데 지금은 본래의 게임(game)이나 플레이(play)를 대신하여 국제 공통어가 되었다. 어원이 그리스어가 아니라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의 제전경기(祭典競技)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프랑스어나 영어로 전화한 시대는 서민들이 부분적이나마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무렵이며 엄하고 가혹한 작업이나 노동에서 잠시 벗어나 기분전환을 한다 는 뜻으로 쓰였다. 농민, 기술자 등 일반 시민들이 달리고, 뛰고, 헤엄을 치고, 공을 차고, 힘을 겨루고 한 모든 것이 스포츠라고 볼 수 있다.Ⅱ. 스포츠의 의미와 역사적인 측면스포츠의 개념은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영향을 받으면서 변화해왔으며 현대에 이르러 그 의미는 매우 광범위하게 확대되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원시시대의 스포츠가 생계를 위한 신체적 활동이라는 점에 국한되어 있었다면 현대에는 신체활동뿐 아니라 사람의 생활을 보다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정신적, 감성적, 사회적 요구에 의한 활동전반을 말한다.현대에서의 스포츠란 따라서 신체적인 측면만 아니라‘복잡한 현대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각 부문에서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향상시키고 전인적인 인간으로 올바로 성장·발달시키는데 필요한 모든 활동’을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또한 일반적으로 스포츠에는 심한 육체활동이나 연습의 요소도 포함된다. 현대의 스포츠는 경기규칙에 따라 승패를 겨루는 신체적 활동이지만, 여기에 참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활동의 강·약도에 따라 레크리에이션 또는 유희로 부를 수도 있다. 한편 신체의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신체활동을 체육이라고 하는데, 체육과 스포츠를 명확히 구분해서 말하기는 어렵다.스포츠 발생의 역사적인 측면에서 강한 국민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스포츠를 장려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목적에 따른 방안으로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게임을 부흥시킴으로써 스포츠의 발달을 도모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을 프랑스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문화 발전에 이바지 하고자 전 인류에게 전 경기를” (All Sports for all) 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영국과 미국을 설득시켜서 1892년에 스포츠 에뜨레틱 협회 연합(Vnion des Dociets des sports Athletiques)을 조직하여 올림픽 부활을 제창하고 올림픽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 평화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설득하였다.{) 현대 사회와 스포츠 -김철 著- page 65 참조〈표2〉 역대 올림픽 개최국과 규모의 변천사{회수연도개최지참가국수인원(명)종목수제1회1896년그리스 아테네133119제2회1900년프랑스 파리21108814제3회1904년미국 세인트루이스1256212제4회1908년영국 런던22266620제5회1912년스웨덴 스톡홀름28256114제6회1916년독일 베를린이 유치했으나 1차 대전으로 유산제7회1920년벨기에 엔트워프29265519제8회1924년프랑스 파리44321119제9회1928년네덜란드 암스테르담46430816제10회1932년미국 로스앤젤레스38136616제11회1936년독일 베를린49430821제12회1940년일본 동경이 유치했다가 핀란드 헬싱키로 변경되었으나 2차 대전으로 무산제13회1944년영국 런던이 유치했으나 2차 대전으로 유산제14회1948년영국 런던58444718제15회1952년핀란드 헬싱키69635818제16회1956년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67355517제17회1960년이탈리아 로마84593317제18회1964년일본 동경94631819제19회1968년멕시코 멕시코시티125747018제20회1972년서독 뮌헨1231008021제21회1976년캐나다 몬트리올94781421제22회1980년소련 모스크바81592121제23회1984년미국 로스앤젤레스140781021제24는 또 하나의 국제 축구대회인 월드컵대회의 탄생을 위하여 세계 각국의 축구 지도자들이 한 데 모일 수 있도록 노력하였는데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1920년 5월 26일 “ FIFA 회원국 축구협회가 파견하는 모든 국가대표팀이 참가할 수 있는 제1회 FIFA 월드컵을 개최한다.”는 안건을 통과시킴으로 인해서 올림픽 경기와는 별도의 월드컵축구대회가 탄생하게 되었다.1930년 제1회 FIFA 월드컵의 개최권은 우루과이에 주어졌다. 유럽의 전후복구사업과 대공황 사이의 기간에 열린 이 대회에 개최 2개월을 앞두고서도 참가신청을 한 유럽국가는 한 나라도 없었다. 쥬리메 회장의 적극적인 교섭의 결과 유럽의 4개국을 포함 13개국이 출전한 가운데 FIFA 월드컵 첫 대회는 1930.7.13 - 7.30.까지 우루과이의 3개 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올림픽 중간 연도를 택해 4년에 한 번씩 개최키로 한 FIFA 월드컵은 프랑스에서 열린 제3회(1938년)대회 이후 12년 동안 전쟁으로 인해 중단되었으며 전쟁의 종식과 함께 1950년 제4회 대회가 브라질에서 다시 개최되었다. {) http://fifaworldcup.yahoo.com/월드컵은 단일 종목 경기이지만 그 세계적 관심도는 올림픽을 능가한다. 월드컵을 주관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에는 UN보다 많은 전 세계 202개 회원국이 가입하고 있다. 월드컵은 일정에서도 15일 정도인 올림픽 개최기간의 2배인 한 달여간 펼쳐진다는 점에서도 지구상 최대 스포츠 축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94년 미국 월드컵 기간 중 TV 시청 인구는 연인원 320억 명으로 96 미국 Atlanta 올림픽의 연 196억 명을 크게 상회했다. 특히 월드컵은 약 3년에 걸쳐 예, 본선 경기가 치러짐으로써 이 기간 중 세계의 이목이 개최국에 집중되어 홍보 효과는 올림픽보다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http://ynucc.yeungnam.ac.kr/~ssps/8-10paper.htmlⅤ. 월드컵에 대한 비판적 시각{알프레드 바알은 그의 저서를점중계(텔레비전의 올림픽 중계에 최초로 통신위성 이용)▼ 1970년 금산위성통신지국국 개통(위성통신을 통한 우주중계 국내에서 수신)▼ 1972년 제 20회 뮨헨 올림픽 개회식 우주중계▼ 1973년 KBS 한국방송공사로 개편▼ 1980년 언론통폐합(종교방송을 제외한 모든 민영방송이 자진해체하고 관영 KBS 와 공영 MBC로 개편)▼ 1982년 프로야구 중계방송Ⅲ.매스미디어와 스포츠의 상호 작용* 미디어(TV방송) → 스포츠현대 사회에서 스포츠는 매스미디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거의 존재할 수 없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스미디어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스포츠는 대중들에게 소개되고 발전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매스미디어의 역할이 없었다면 스포츠는 단지 경기자와 관중들과의 단편적인 행사에 머물고 말았을 것이며, 지금과 같은 사회적 파장이나 정치적, 경제적 파급효과는 가져오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스포츠가 매체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매스미디어는 점차 스포츠를 다양한 차원에서 통제하고 있다.1970년대이래 TV스포츠 프로그램은 점차적으로 대중에게는 비용이 적게 드는 중요한 오락물, 그리고 스포츠 조직체에게는 고정된 중요한 수입원이 되고 있다. 즉 텔레비전은 점진적으로 스포츠와 대중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텔레비전이 스포츠를 지배하기 전에는 단지 스포츠를 증진시키고 게임에 대한 참가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스포츠의 규칙, 구조, 일정 등에 대한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에 의하여 경제적 통제가 주어지자 텔레비전 시청자에게 흥미를 끌고 광고 수입을 더 많이 올리기 위하여 스포츠에 다음과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1 축구와 야구 경기에서 동점인 경우 단판 승부제(sudden death)도입2 시청률이 높은 시간대의 비율과 광고수입을 올리기 위하여 저녁시간대에 경기 개최3 시범경기나 리그의 게임 수를 늘리고 시합에 적절한 팀 수를 늘림으로참조
서론: 주술의 정의와 분류주술이란 사람들이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초자연적 힘이나 초자연적 존재를 동원할 수 있다고 믿고 이와 관련된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이러한 주술은 크게 질병을 치료하거나 현재 시도하고 있는 일의 성공을 기원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백주술과 반대로 남을 해치거나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흑주술로 나누며 주술이 어떤 원리를 따르고 있는가에 따라 크게 동종주술(모방주술)과 전파주술(접촉주술)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동종주술은 주술사가 어떤 현상을 모방하여 자기가 소망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말하자면 비를 내리는 시늉을 하면 반드시 비가 내린다고 믿는 것이 그것이다. 러시아의 도르파크 근처 마을에서는 비가 오지 않아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세 청년이 나무 위에 올라가 한 명은 천둥소리를 흉내내고, 다른 한 명은 번갯불을 형상화하고, 나머지 한 명은 사방에다 물을 뿌림으로 해서 비가 오는 시늉을 흉내낸다고 한다. 또한 우리 나라의 ‘대추나무 시집보내기’의 경우는 두 갈래의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넣어서 열매가 많이 열리게 하려는 성의 접촉을 모방한 동종주술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아이를 갖고자 하는 여인네가 미륵의 코를 떼어다 먹거나, 성기를 닮은 바위에 걸터앉아 미끄럼을 타는 풍속도 성희를 모방한 모방주술의 일종이며 아이를 난산할 때 남편이 지붕에 올라가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도 순산을 바라는 모방주술이다.다음으로 전파주술은 서로 접촉했던 두 사물은 물리적 접촉이 끝난 후에도 공간을 사이에 두고 상호적 작용을 계속한다는 생각으로 어떤 부분에 대한 작용이 전체에 대해 같은 효과를 초래한다는 신념이다. 이를테면 머리카락이나 의류 등 인체의 일부, 또는 인체에 접촉한 것을 입수함으로서 그 사람의 영혼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상대방에게 어떤 작용을 가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흔히 볼 수 있듯이 자신이 가해를 하고 싶은 상대의 사진을 바늘로 찌름으로써 그에게 고통을 준다고 생각한다던가 병자의 옷에 기도하게 한 다음 그 옷을 입히면 병이 낫는다고 믿는 일 따위가 그런 예에 속한다. 또한 어린아이가 젖니를 가져갈 때 빠진 이빨을 지붕에 던지며 까치야 까치야 헌 이빨은 가져가고 새 이빨 다오 라고 하는 기도는 까치의 부리처럼 단단한 이빨을 원하는 소박한 생각이 주술로 발전한 것이며 사람의 피가 묻은 빗자루나 방아가 도깨비가 된다는 생각도 신체의 일부인 피가 묻음으로써 생명이 부여된다는 주술적인 사고의 표현이이라고 정리해 볼 수 있다.이렇듯 광의(廣義)의 주술에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스스로 버릇처럼 행하는 일상적인 표현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많은 경우에서 주술사들을 매개로 행해지는 주술을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러시아의 전통적 의미의 주술사와 한국의 전통 주술사, 그리고 그들이 행해왔고 지금도 남아있는 주술을 살펴보고 비교해 보고자 한다.본론: 주술을 행하는 매개체: 주술사Ⅰ. 한국의 주술사(呪術師): 무당전통적인 한국 주술사의 대표 격으로 무당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무당이란 신령을 섬겨 길흉을 점치고 굿을 주관하는 사람으로 통상 여성 주술사를 지칭하는 무당과 남성 주술사를 지칭하는 박수를 통틀어 이른다. 이러한 무당은 선령(善靈)·악령(惡靈)과 직접 통하며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졌다고 하는 원시적 샤머니즘의 한 형태로서, 인간과 신의 사이를 연결해 주는 일을 직업적으로 맡는다. 인간의 모든 화복(禍福)은 신의 뜻에 따라 좌우되므로, 재화를 방지하기 위해서 무당들을 통하여 신과 접촉하여 재난을 미리 탐지하고 방지해야 한다고 믿어 왔던 것이다. 무당은 오랜 수련 과정을 통하여 신비한 능력을 신으로부터 받은 반성인적(半聖人的)인 존재이기 때문에 중간에서 인간의 뜻을 신에게 전달하고 소원을 성취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녔고 또 그런 위치에 있다. 질병이 나면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무당은 무당의 정통인 숙련된 큰무당 또는 단골무당과 미숙한 선무당으로 나뉜다. 단순히 무당이라 하면 여무(女巫), 특히 가무(歌舞)로써 강신 하는 무녀를 뜻하나, 일반적으로 남무·여무의 구별 없이 쓴다. 한국에서 무당에 관한 가장 오래 된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사람들은 무당을 통하여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올린다”라는 대목이며, 이로 보아 신라 초기부터 무당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에도 B.C 1년(유리왕 19)에는 왕의 질병에, 고구려의 차대왕·산상왕 때에도 점복적인 예언에 각각 무당이 관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백제 때도 의자왕이 무당을 불러 점을 친 사실이 남아 있다. 조선 초에는 궁중 여인들을 별기은(別祈恩)이라 하여 국내 명산에 무녀를 보내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고, 관에서는 표면상으로는 무속을 금지하면서도 기우제·기양제(祈禳祭)에 무녀를 불러들여 제사를 집행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무당에 대한 인식은 민간신앙으로 깊이 뿌리내렸는데, 오늘날도 대감놀이 등 기복무속과 질병퇴치기도·제액기도 등 재난을 쫓는 무속으로 남아 있다.즉 무당은 역사적으로 우리의 전통 삶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자리에 위치하면서 민중들과 함께 호흡하는 하나의 ‘삶의 도구’이자 ‘종교’로써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질병에 걸렸을 때 마지막 수단으로써 무당을 찾아 굿을 했다는 예에서 보여지듯이 폄하되기 이전의 전통 무속은 신과 인간의 중간 매개체이자 정신적인 연결자로써의 그 독특한 역할을 갖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듯 뿌리 깊은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는 우리의 무당은 일제의 강점기와 이른바 고등종교의 유입기를 거치면서 믿어서는 안될 불길한 의미의 미신으로 폄하 받게 되었고 이는 러시아의 무속에서도 나타나는 가장 큰 공통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이제부터 위에서 간단히 요약한 우리의 무당과 러시아 주술사의 비교를 위해 러시아 주술사를 간단히 살펴보고 그 후 양자를 비교하는 순서를 갖고자 한다.Ⅱ. 러시아의 주술사: 베지마, 베둔주술사 혹은 마술사, 마녀 등으로 일컬어지는 러시아의 주술사 또한 Ved'ma로 불리는 여자 주술사와 Vedun으로 지칭되는 남성 주술사로 나뉜다. 동슬라브인들은 이러한 주술사들이 초월적인 존재들의 힘을 물려받아 신비스러운 영험을 지니며, 그들이 알고 있는 신비스러운 지식을 통해 초월적인 힘과 악령들과 교류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하늘과 땅을 매개하는 고대 부족 사회의 샤만과 같은 기능을 지녔던 이런 존재들의 도움으로 자연과 대기 현상, 농사와 작황, 인간사의 모든 길흉화복을 미리 알 수 있고 재난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러한 주술사들은 질병의 치료를 위한 주술과 세시풍속으로 정착된 제사 등과 같은 민중들의 상징적 의례를 주관하기도 했고, 점을 치면서 미래를 예견하기도 했으며, 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신비로운 지식의 소유자로 등장하기도 했다.무녀 또는 마녀라고도 부를 수 있는 여성 주술사 베지마는 비밀스럽고 신비스러운 지식을 알고 있는 존재로서, 병을 치유하거나 사람의 운명을 예언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며, 사람과 가축들에게도 해를 끼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동슬라브인들은 믿고 있었다. 이러한 동슬라브의 여성 주술사는 사생(私生)을 통한 세습과 기독교를 모독함으로 인해서 탄생되며 결정적으로 악마와의 교류를 통해서 탄생된다고 믿어졌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동스라브인들이 이러한 여성 주술사의 특징으로 믿어놨던 사실들이다. 즉 여성 주술사의 몸에는 다른 인간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꼬리의 존재가 있다는 점과 또한 머리카락이나 몸의 털도 일반 사람들과는 다르게 다리에 털이 나있고 윗입술에는 수염도 나있으며 눈썹도 붙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또한 또 다른 특징의 하나로‘변신’의 가능함을 말하고 있다. 즉 여성 주술사들은 자기가 원하는 존재로 탈바꿈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매나 백조, 고양이, 개, 돼지, 토끼, 두꺼비, 까마귀, 부엉이, 까치 등과 같은 동물이나 파리 거미, 나비와 같은 곤충, 또한 물레의 바퀴나 실타래, 바구니, 건초더미, 등으로도 변신을 할 수 있는데, 보이지 않는 존재로도 몸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고 간주되기도 했다.여성 주술사,‘베지마’와 비슷한 탄생과정과 동일한 기능, 속성을 지니면서, 꼴둔 혹은 볼흐브 라고도 불리던 남자 마법사 베둔 은 베지마 와 쌍을 이루는 존재로 고대 슬라브족들 사이에서 신관 또는 사제 등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종족과 부족의 미래와 운명을 예견하고, 재난에 처했을 때 이를 벗어 날 수 있는 조언과 방법을 제시했으며, 세시 풍속의 의례나 제사 등을 주관하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비슷한 탄생과정과 비슷한 신체의 특징, 변신과 하늘을 나는 것이 가능한 점등 여성 주술사와 비교해 볼 때 별다른 차이점이 없이 동일한 기능과 의미로 존재했다고 정리해 볼 수 있겠다.Ⅲ. 비교우선 모든 차이점을 포괄하는 가장 큰 차이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는 주술사를 바라보는 민간인들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양자가 모두 의미상 신과 인간의 중간 매개자로 위치되어 있고 오랜 역사를 통해 민중의 삶에 친숙한 의미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무당이 인간적인 의미에 더 가까웠다는 것과는 달리 동슬라브의 주술사들은 신적인 의미를 많은 부분에서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실 한국의 무당 역사 어디를 뒤져봐도 꼬리가 달렸다거나 자유자재의 변신이 가능했다는 말은 찾아보기 힘들다. 곧 한국의 무당은‘인간’에 더 가까웠으며 인간의 삶과 함께 하는 인간적인 측면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주술사는 그 탄생과정부터 특이하다. 아들만 일곱이 있는 집의 일곱 번째 아들일 경우, 혹은 날 때부터 이빨이 있었다거나 하는 전승에서 보여지듯이 이는 출생과정에서부터 인간과는 다른 면모를 지니며 또한 위에서 다루었던 신체상의 특징과 ‘변신’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인간보다는 신에 가까운 특성을 더 많이 내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작년 한해를 걸쳐 가장 큰 이슈가 뭐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인은 단연 9.11 테러를 말할 것이다. 그만큼 9.11 테러사태는 작년 한해를 떠들썩하게 했던 어마어마한 사회·문화적인 이슈였지만, 또한 그로 인해서 베일에 가려있던, 혹은 드러나 있었지만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아 외면 당하고 있던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인 여성 탄압의 실상이 전 지구적으로 규탄 받게 되었다.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지금은 어떠한가...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생지옥과도 같은 실상은 세계인의 뇌리에서 너무나‘자연스레’지워졌으며, 이제 또 다시 전 지구인은 앞으로 다가올 월드컵에‘화합’을 구호로 외치며 열광하고 있다. 지구 한쪽에서는 아직도 극도의 빈곤 속에 여성이 짐승만도 못한 대접을 받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화합’을 모토로 매스미디어와 대기업과 국가들이 수 조원을 쏟아 붇는 그야말로 풍요로운‘자본의 잔치’가 그 화려한 막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다 준비된 잔치에 초를 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말로만 세계화와 전지구적인 평화를 외치면서 정작‘우리의 이웃’이 처한 실상에 너무 무감각한 게 아닌가 싶다. 이런 문제는 정말로, FIFA 회장이 개막식 연설에서 의례 하듯이,‘소외된 빈곤국의 이웃들을 한번쯤 생각합시다.’라고‘한번쯤’말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취지로 이 글을 시작한다.이번 서울여성영화제의 주요한 주제는 페미니스트 영화, 비디오와 ‘액티비즘(activism)’이다. 이미 여성영상공동체 부문을 통해 필름 및 비디오 액티비즘을 소개해온 서울여성영화제가 올해 이 부분에 좀더 중점을 두는 이유는 영화라는 매체를 전문적, 상업적 영역을 넘어서 소외된 여성의 삶을 직접적으로 표현해내는 매체로 변모시키려는 의지와 관련을 가진다. 이는 특히 디지털 매체의 보급과 함께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으며, 특히 9.11 뉴욕 테러 사태 이후 문제화되고 있는 이슬람 권 안에서의 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여러 가지 작품들이 소개됐다.로니트 애브니 감독의 라는 작품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평등을 찾아 투쟁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심각한 장애들을 기록한 영화로, WITNESS의 최신 비디오이자 온라인의‘Rights Alert’를 통해 선보인 작품이다. 이 영화는 RAWA(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혁명적인 연합)의 회원들이 일반 카메라와 WITNESS의‘몰래 카메라’로 촬영했으며, RAWA의 회원들은, 최근 미군이 민간 가옥을 폭격하는 현장을 목격한 주민은 물론이고 내전과 털레반의 폐해로 인한 희생자들도 인터뷰했다.이 작품에서는 RAWA가 탈레반 독재정권 아래에서 찍은 자료들과 미국 테러 이후에 아프가니스탄을 찍은 영상 자료들이 현지 여성의 목소리와 겹쳐지면서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는데 특히,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역사, 그리고 그 속에서의 여성의 위치,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여성들의 참혹한 투쟁이 자막을 통해서 소개된다. 현지 여성의 목소리는 영화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고통을 알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지구적 연대를 주장하고 있으며, 같은 맥락으로 RAWA는 성 억압 철폐와 민주주의, 자유, 그리고 외국 군대 개입이 종식되길 요구한다.사이라 샤, 캐시언 해리슨이 제작한 〈베일아래에서의 삶, 가제: 아프가니스탄 탈fp반 정권 하에서의 여성〉(Beneath the Veil)도 비슷한 맥락에서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비참함을 고발하고 있다. 프리랜서 리포터인 사이라 샤는 아프가니스탄 출신 학자인 아버지의 고향이자 가족의 고향인 타흐만에 가기로 결심한다. 파키스탄의 아프가니스탄 난민 캠프에서 시작된 샤 일행의 5일간의 여정은 칸다하르, 카불, 멕시칸에 이어서 타흐만에서 끝이 난다. 그 여정 속에서 샤 일행은 라와 RAWA의 거리 시위, 여성을 공개 사형시키는 축구장, 부르카를 뒤집어쓴 채 카불 거리에서 동냥을 하는 여성들, 불법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미용실과 초등학교, 병원을 본다. 그리고 탈레반 정권에 대항하는 다른 종족들의 지역인 멕시칸을 거쳐서 샤는 가족들의 고향인 타흐만에 도착한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그 곳에는 분수와 과일 나무가 있었던 에덴 같은 정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샤가 도착한 지금의 타흐만은 전쟁으로 인해 정원도 없고 인간 존재도 사라진 채 둔중한 산맥만이 남아 있었다. 히든 카메라와 아나모픽 렌즈 카메라로 촬영하고, 크게 삼부로 구성된 이 영화는 아프가니스탄의 내부에 깊숙이 파고 들어가서 샤의 말처럼 “지옥을 상상할 수 없는 자들에게 지옥이란 이런 것”이라는 걸 눈으로 보여준다.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지금은 21세기이지 암흑의 중세가 아니다. 그런데도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공개사형이 적법하게 일어나며 수도 없는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곳이 있다.우리가 월드컵 분위기에 흥청망청 하고 있을 때 다른 한 편에서는 비인간적인 매질에 무참한 강간에 이유 없는 살인으로 수많은 죄 없는 여성들이 쓰러지고 있다.이런 현실을 최소한 인식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당장에 그들을 위해 할 수 없는 일은 없더라도 최소한 알고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사실 시종 일관 이런 영화제를 통해서야 비로소 그들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게 된 나 자신이 매우 부끄러워 졌다.호주의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의 야만적인 성차별로 인해 여성들이 농장에서 사육되는 동물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고 지난달 10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노동과 교육, 외출이 철저히 차단되는 등 조직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에 의해 각종 성차별을 받고 있다고 특파원 보도를 통해 전했다. 여성의 행동반경은 감옥으로 표현되는 집안으로 한정된다고 한다. 집밖을 나올 때는 친척 남성의 안내를 받아야 하고 그 때조차 머리에서 발목까지 내려오는 옷(부르카)을{그림 길거리에서 매맞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평상복 차림으로 길거리에 나올 경우 십중팔구 권선징악단(PVPV) 단원들에게 뭇매를 맞거나 고문당한다. 흰색 양말 착용은 불허되는데 이는 탈레반 정권의 깃발과 같은 색깔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포장도로를 걸을 때는 일절 신발 소리를 낼 수도 없다. 식당 이용이 금지되고 집밖에서 얼굴을 노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거리에서 여성들을 찾아보기란 극히 힘든 실정이다. 소녀들은 가축이나 물건처럼 공공연하게 거래되며 그나마 최근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경제난으로 구매력이 약해지면서 몸값이 곤두박질쳤다고 한다. 1인당 몸값이 종전의 1천800달러에서 100달러 수준으로 폭락한 것이다. 인신매매 시장에 팔려 나오는 소녀들의 연령도 크게 낮아졌다. 과거에는 부모 밑에서 15-16세까지 성장하다가 팔려나갔으나 요즘에는 9세 소녀도 거래된다. 이는 식량난에 허덕이는 부모가 한 명의 밥그릇이라도 줄이려는 계산 때문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이 일자리 창출을 조건으로 경제 지원을 하려 해도 여성 고용을 금지한 정부 정책 때문에 4만 여명에 달하는 전쟁 미망인들이 구걸로 생계를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의 일자리는 예외적으로 의료분야에 한정된다. 여성 환자와 남성 의사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여성이 간호사나 의사로 취업하더라도 차별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남성들이 타는 차량의 동승이 불허되고 병원 건물을 출입할 때도 여성 전용 문을 이용해야 한다. 15세기 가와르 샤드 여왕이 티그리스 강에서 중국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통치할 때만 해도 남성 못지 않은 권익을 누렸던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600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노예와 비슷한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여성들이 비참한 지경에 몰린 것은 지난 94년 이후다. 소련 침공군을 몰아낸 뒤 온건파와 내전을 거쳐 영토 대부분을 장악한 탈레반군이 이 때부터 철저한 반여성(反女性) 정책을 펼친 것이다. 80년대 수도 카불에서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나피사 카디자(40.여)는“과거에 카불은 좋았다. 우리는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 사람들은 먹고 즐길 만큼 돈이 있었다”며 탈레반 집권 후 인권이 급격히 악화됐음을 증언했다. 탈레반 정권이 들어선 뒤 카불대학 여학생 8천 여명이 쫓겨났다. 초·중·고교 여학생 10만 여명의 학업도 중단됐다. 모든 여성 노동이 불법화됐다.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은 길거리에서 자전거 체인 세례를 받아야만 했다. 순식간에 생지옥을 만난 것이다. 여성 근로 금지는 교육 분야의 대 혼란을 초래했는데 이는 수천 여명의 여성 교사들의 공백을 단시간에 메우지 못한데 따른 것이다. 일부 여교사들은 가정에서 소녀들을 불러 공부를 가르쳤으나 살얼음판을 걷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발각될 경우 고초가 간단치 않았기 때문이다. 여성 보건과 교육이 극도로 열악해지면서 유아 사망이 심각해지고 있다. 신생아 1천 명당 250명이 숨지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으며 이는 이웃 파키스탄의 3배나 된다. 국제 비정부단체(NGO)들은 탈레반 정부가 여성 차별을 개선하지 않는 한 의료지원은 무의미하다며 유엔 차원에서 제공되는 기존의 건강시스템을 철회하라는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결국 아프가니스탄 북부 일부 지역을 근거지로 탈레반 정부에 대항하고 있는 아흐메드 샤 마수드(49) 전(前) 국방장관이 권력을 장악하지 않는 한 여성 인권 신장은 당분간 개선될 가능성이 전무한 실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