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에서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며 서로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많은 문제를 느끼곤 한다. 이것은 서로의 인식의 차이에 의해 주로 일어나는데,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없기에 같은 상황이라도 다르게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들은 서로의 관계개선으로 해결을 해야 한다. 많은 문제들은 문제 자체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나의 질적 세계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것이 중요하다.사람의 마음을 여는 열쇠 8가지...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내내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인간관계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남들에게 무심코 했던 말이나 행동 등이 나의 인간관계 개선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지금까지 우리는 문제라 하면 주로 잘못된 것과 동일시하여 생각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잘못이 아니라, 단지 마음의 평화가 깨져서 도움이 필요한 상태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를 소유했음은 마음의 평정이 깨져 불평하거나 짜증나거나 속상하여 감정상으로 불균형이 되어 결국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느껴도 내가 도와줘야 하는 입장이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남들이 하는 행동이나 말에 우리는 자주 짜증이 나거나 마음에 들지 않아 할 때가 많다.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남의 탓을 많이 해왔다. 그러나 이것은 서로의 가치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다. 가치관이 다르면 세상을 보는 방향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따라서 서로간에 갈등이 생기기 마련인 것이다. 이런경우, 상황을 바꾸고자 할 때는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말고 내 자신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 가장 쉬울 것이다. 또한 나는 너 때문에 슬퍼, 너 때위해 상대방의 욕구충족을 방해해서도 안된다. 따라서 자기행동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욕구충족 행동은 언제나 유용한 것이어야 한다. 아무리 이상적인 활동을 할지라도 내 자신에게 또는 다른사람에게 유용하지 않고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면 질적인 것이라 할 수 없다.인간은 주로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행동한다. 모든 행동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변화 가능한 것이다. 또한 생각이 바뀌면 감정도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아는 것 중에서 가장 욕구를 잘 채워주는 경험만 저장한 사진첩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를 위해 우리는 상대방의 좋은 점이나 배우고 싶은 점이 무엇인지를 먼저 잘 살펴보고 나의 사진첩에 저장하곤 한다.내가 세상을 아름답게 봐야만 나의 세상은 아름다워진다. 따라서 나의 지금의 삶의 틀은, 내가 나의 삶을 대접한대로, 나의 삶이 나를 그렇게 대접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것이 나의 행동 선택의 결과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나의 머릿속의 사진첩에는 내가 바라는 방향의 그림이 들어있다. 이는 지금보다 나은 곳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자극을 주고, 꿈꾸고 창조하며 끊임없이 전진하게 만든다. 그러나 현실로부터 그 그림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게 되면, 비현실적인 기대를 걸게 되어 기대만족을 위해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게 됨으로 행복할 수 있는 쉬운 기회마저 파괴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것은 나의 마음, 나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항상 염두해 두고 사진첩속에 옳은 그림들을 넣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제 2장 욕구 강도를 측정하라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은 서로의 욕구의 대상이나 욕구충족 방법, 욕구의 강도 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구는 크게 다섯가지로 볼 수 있다.-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고 싶고 자기 확장을 하고 싶은 생존 욕구(Survival Need)-사랑하고 소속되고 싶은 욕구(Belonging Need)-성취하고 경쟁하고 즐거워진다는 말이 맞는것 같다. 불평하는 것은 신체적으로도 좋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에 휩싸여 있는 사람들은 전염병에 감염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사람들은 자신의 머릿속의 사진이 빈곤하면 주변 자극에 따라 불안하게 흔들리는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욕구를 채우고 싶은 바램을 갖고 있고, 그 바램을 현실에서 이룰 수 없을 때 파괴적 행동일지라도 끊임없이 창조해 내기 때문이다. 범죄행동과 같은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까지도, 나름대로는 언제나 자기 갈등을 극복하고자 최선을 다해 만들어 낸 행동이다.질 높은 삶을 위해 우리는 모델을 정할 수도 있다. 모델의 자질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 특히 마음이 건강한 사람, 조건 없는 사랑과 지지로 나의 특성을 비판없이 인정해 주는 사람, 늘 비젼을 제시하는 사람(매사를 희망적으로 내다보고 긍정적으로 볼 줄 아는 사람 ex)나막신 장수와 짚신 장수의 어머니의 걱정->낙관적, 희망적인 생각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나의 욕구충족 권리를 존중해 주는 사람(모델로 삼고 싶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야 함->소속욕구가 충족되어야 함), 나의 잘못을 또하나의 학습의 기회로 인정하는 사람(내가 잘못했을 때 정직하게 실수한 사실을 말할 수 있게 믿음을 주는 사람), 불평불만 보다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창의적으로 위기관리를 잘하는 능력의 소유자, 창의적으로 위기관리를 잘하는 능력의 소유자 등이 있겠다. 이와 같은 모델, 우리가 닮고 싶어하는 모델은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사람에게서 찾는 것이 좋다.제 4장 문제소유를 가려라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나 내가 서로 성실한 믿음을 바탕으로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우리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할때, 흔히 잘못이 있다 는 뜻으로 해석해 왔는데, 인간관계훈련에서는 단지 마음의 평화가 깨져서 도움이 필요한 상태를 가리켜 문제를 소유했다고 이해하면 된다. 즉, 모든 문제.-비수용감정을 느낄때, 나에게 비수용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함.(상대방응 수용하는 척 가장해서는 안된다)-내가 비수용감정을 느끼고 자신이나 내 주위 환경을 변화시킬 수 없을 때는 현재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 지를 솔직하게 상대방에게 말해줘야 함.-갈등을 느낄 때 힘을 사용하여 상대방에게 해결책을 강요하면 안된다.-분하게 느끼면서도 마지못해 상대방에게 굴복해서는 안된다.-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제3의 방법을 사용할 때 수반되는 필수적인 기술들을 자발적으로 개발시켜서 서로에게 합당한 해결책을 찾는 공동탐색을 해야 한다. 만일 내가 상대방과 민주적으로 같이 살수 있다면 내 자신이 상대방을 성장시키는데 자동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많은 것을 서로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질문은 때로는 위협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계속적인 의사소통을 막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상대방이 후에 보일 반응을 규제하고 선택의 폭을 좁히며 자유의 영역을 줄인다. 생활에서 쉽게 말할 수 있는 칭찬이나 논리적 설득 따위도 어떨때는 문제가 될 수 있고, 비판이나 명령따위도 잘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문제를 가진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는 기술을 크게 두가지, 경청하기와 질문하기로 말할 수 있겠다.*경청하기-정직한 자기 표현이 벌을 받으면 그후 부터는 좋은 인간관계로 발전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기술(경청)은 모든 상담의 기초가 된다.-사람은 누구나 자기 마음이 모습을 보게 되는 순간 깨달음을 얻고 감정의 홍수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문제를 소유했다는 것은 감정의 홍수상태에 빠져있다는 의미이다. -> 상대방을 감정의 홍수상태에서 물을 빼주려면, 상대방의 이야기와 부호로 보여주는 행동에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자체가 상대방을 도와주는 것이 될 수 있다.-상대방을 진실로 도와주기 위해서는 그가 마음속으로 부터 무슨말을 하려는지 열심히 이해하고 알아맞춰 보면서 들어야 한다. 감이 자기 행동을 스스로 평가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평가 질문을 하면서 자신의 선택과 책임에 대한 자각을 높이게 된다. 그러나 평가질문을 하기 전에 상대의 괴로운 마음을 읽어 주는 반영적 경청기술이 필요하다.-계획 :실행할때 얻어지는 효과에 중점을 두고 끝까지 실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자세한 질문은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계획을 수립하게 도와준다. 결과 중심보다는 진행 중심적인 계획을 세워 실현 가능한 것에 중점을 두도록 한다.-재평가 : 계획이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건전한 효과를 가져다 줄것임을 상기시키며 끝까지 이행하도록 돕고, 강화하여 이를 통해 책임감을 증대시켜 주어야 한다.스스로가 계획을 실행하겠다고 약속했음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계획을 어길경우의 결과를 경고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행동 선택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재확인 할 수 있게 한다.*반영적 경청(토마스 고든이 창안)이 필요한 이유-상대방이 느끼는 바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됨.-감정에 대한 윤리성을 강조할 필요가 없어진다. (감정을 갖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뜻)-경청자와 발신자 모두 따뜻하고 친밀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반영적 경청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는 기술이 되기 보다는 상대방이 스스로를 거울처럼 보게 해주는 기술이다.-상대방도 내 말을 경청하기 시작한다.(상대방이 내말을 경청해 주지 않을 때는 그를 탓하기 전에 내가 훌륭한 경험자가 되지 못했었음을 반헝해야 한다.)-상대방 스스로 문제해결책을 찾게 해준다.-나는 상대방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더욱더 신뢰 할 수 있게 되어 즐겁다.-감정이입이나 상대방이 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반영적 경청은 상대방에게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추측해 보는 것이다.반영적 경청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경청기술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반영적 경청을 사용하는 시기와 사용할수 없는 경우를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연습을 해야만 잘할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반영적 경청이 처음에는 인위적으로 느껴진다는.
공동육아란 무엇인가?1. 아동과 육아에 관한 사고의 전환(1) 부모는 누구나 육아전문가?자녀 양육의 문제는 오늘날 거의 모든 가정의 가장 심각한 과제 중에 하나가 되었고,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고 있다고 스스로의 삶의 의미를 아이들에게 걸고 있기도 하다. 이전의 우리의 사고에 의하면, 아이는 부모의 자녀이므로 부모가 일차적인 양육 책임을 지고, 만약 이것이 실패한 경우만 사회(정부)가 보호 지도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인식에는 첫째, 부모는 당연히 아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데 반해, 아동은 미숙하고 미성년자라는 것, 둘째로 부모는 아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양육을 할 것이며 다른 어떤 주체보다 양육의 책임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러한 전제들은 전적으로 부모 중심적, 혹은 가족 중심적인 아동관·양육관의 기초가 된다. 이러한 사고는 아동의 권리나 요구를 무시하고, 아동양육을 단지 부모의 권리이자 의무로 받아들이며, 부모 이외에 누구도 더 나은 양육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주장이 당연하게 받아들여 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들이 반드시 과학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첫 번째 전제를 볼 때, 아동이 신체적·정신적으로 미숙하여 성인의 보호와 지도가 없이는 생존 불가능함은 사실이지만, 그 대상인 성인이 반드시 부모(생물학적인 부와 모)이어야 한다는 근거는 찾기 어렵다. 또한 이것은 두 번째 전제의 문제점과도 연결됨을 알 수 있다.아이는 당연히 부모가 길러야 한다는 믿음은 현실적으로 볼 때, 그것에 게입되는 요소들이 매우 많다. 예를 들면 병·의원, 대중매체, 놀이방, 유치원, 학교 등이 육아에 직접 개입하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적 산업화에 의해 예전에는 집에서 만들어 써야 했던 육아 용품 등의 대부분이 시장에서 구입 가능하게 되면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공장에서 만들어 시장에 나온 상품들을 선택하는 소비자로서의 역할 정도로 좁혀 졌다. 이렇게 점차 가정밖의 요.(2) 부모중심에서 아동중심으로* 아동의 권리에 대한 개념① 보수적 개념 : 아동의 미숙성을 강조하고 아동을 보호 대상으로 규정하여 아동에게는 보호와 교육의 대상으로서의 권리만을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것. => 아동의 책임은 중요시 되지 않음.② 진보적 개념 : '아동보호'가 아닌 '아동 권리 보호'를 중시. 아동이 성인과 똑같은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를 인정한다는 입장. 성인과 마찬가지로 아동의 인간적 존엄과 자율성을 인정하고 아동도 권리의 주체임을 강조하는 것. => 아동의 책임도 강조됨. (스스로 신뢰와 자발성을 구축할 책임, 건설적인 사회 변화를 담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계발할 책임, 양육을 책임지는 성인에게 혐력할 책임 등)* 사회 복지 제도가 발달한 사회에서 아동 복지의 특징적 변화① 부모의 요구나 권리보다는 원칙적으로 아동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방향으로 발전.② 아동의 요구, 권리, 책임의 개념이 발전하면서 아동 복지가 소수의 피해 아동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아동에게 확대 적용.여기서의 공동육아의 기본 원리는 아동의 미숙성보다는 독자적인 주체성을 강조하는 진보적 권리 개념에서 한걸음 더 진보적인 특성을 띤다. 아동이 사회속의 개체임을 중시하고 그들이 양육되는 사회 환경과 앞으로 만들어 갈 사회의 성격에 주목한다. 따라서 아동의 개체성, 주체성, 육아의 역사성, 사회성을 강조하는 철학적 기반 위에 공동육아의 의미를 찾는다.2. 공동육아의 이념적 요인(1) 새 육아 체계로의 변화* 현대 사회의 변화에 따른 아동, 육아, 아동 복지 등에 대한 사고의 변화① 아동은 부모의 자녀임과 동시에 성장 과정에 있는 주체적 인간이라는 인식의 강화(아동은 전적으로 무력한 존재가 아니며, 성장의 잠재력을 지닌 적극적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육아는 기본적으로 아동의 성장을 돕는 것)② 육아 담당 주체는 부모를 포함한 성인들과 그들이 만든 사회문화적 구성물(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육아 과정에 직,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힘이 증대되고 있다)③ 육아 과정에서 점차 부모의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전의 공동육아는, 일차적으로 부모가 양육 책임을 지고,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책임질 능력이 없을 경우에만 정부가 맡는 고전적인 '협동육아'의 방식을 택하고 있었으나, 앞으로는 '구체적'인 공동, '참여적'인 협동에 의한 공동육아가 이루어야 할 것이다. 즉, 가족과 사회가 공동으로 육아의 책임을 지며, 양자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통해 미래 사회의 주인공들을 양육하는 것이다.* 공동육아 개념의 이념적 요소① 민주주의 시민 개념: 부모와 아동 모두 사회의 일원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공유하고 사회를 만들어 가는 주체② 미래지향성: 아동은 미래의 주역으로서 성인들에게 건강한 사회제도와 환경을 형성해 줄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부모들이 항상 미래를 염두에 두고 육아를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이러한 불확실성을 공동체적 육아를 함으로써 감소시킬 수 있다. 공동육아는 계획된 미래 사회의 전체적 구도를 전제하고 실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③ 공동체 사회 이념: 공동체적 사회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인류 사회의 가장 이상적인 집단 생활의 형태이므로, 공동육아는 공동체적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공동체적 삶을 익히며 공동체적 사회를 만들어 가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중요하다.( * '공동체적' 이라는 것의 의미 :㉠ 구성원의 개별적 독자성과 자율성㉡ 구성원들은 부당한 억압과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남녀노소가 평등㉢ 성숙한 개인들간의 자발적 협동과 민주적 참여에 의해 사회가 구성되고 운영됨-> 다양한 사회적 권력에 의한 것이 아닌, 애정과 상호이해에 기초한 사회㉣ 모든 구성원의 개인적 복지는 가족의 책임이 아닌 공동체의 책임㉤ 공동체적 사회에서는 사유재산과 그것의 불평등과 공존할 수 있다.㉥ 공동체 사회를 이루는 개인들의 성향으로는 창의력, 독립성, 협동성, 자발성, 평등주의, 비폭력주의 등의 능력과 가치가 중시된다. )3. 공동육아와 한국 사회* 우리사회에서 공동육아의 실천을 제약하는 장애 요인①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부모중심적 아동경쟁에서의 성공능력은 창의력, 협동성, 독립성을 희생하고라도 키워야 할 양육원리로 자리잡게 되었다.)* 과거에 핵가족보다는 큰 친족집단이나 지역 공동체 안에서 공동육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 졌었지만, 그것은 민주시민의 개념과 제도나 아동 중심적 육아관을 지닌 것이 아니었다. 공동육아를 실현해 보려고 행해지는 오늘날의 노력들이 성공하고, 일반화 되기까지에는 장기간의 시민적 노력과 제도화가 요구되며, 공동육아를 통해 더 큰 공동체 사회를 이루어 보겠다는 소망은 아직 이른 듯 하다.* 공동육아를 위해 필요한 노력① 전국적으로 실시될 '영유아 보육'의 성격을 정책적 차원에서 공동육아에 유사한 형태로 전환하도록 하는 일(시민의 참여와 요구가 중대한 역할)② 민간부문의 노력(지역사회 안에서 소규모의 공동체적 사회, 공동체적 육아를 실험적으로 시도 확산하는 방법, 개별 탁아기관이 그 지역 사회의 요구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주민의 참여를 유도하고 공동 육아의 방식을 특성화 하는 방법 등)급격한 산업팽창과 더불어 기혼 여성의 취업활동이 날로 확대됨에 따라 육아는 피할수 없는 큰 문제이다. 여성의 자아의식, 교육수준 등이 높아 짐에 따라 사회에서도 자연스럽게 점점 더 많은 여성의 인력을 필요로 한다. 이에 따라 어쩔수 없이 육아 문제가 등장하는데, 문제가 된다고 하여 또한 포기하거나 아예 아이를 낳지 않는다거나 한다면 사회존속이 어려워 지는 등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시급히 대책을 마련 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이다. 이것은 부부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회제도적 차원의 도움이 있어야만 한다. 전통적으로 대부분의 육아의 책임을 가져왔던 여성들이 출산후에도 직장에 계속 나가려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가까운 예로, 사촌오빠네 부부를 들어보겠다. 오빠네 부부는 아기를 낳은 지 꼭 한달만에 아기를 지방에 계신 부모님께 맡겼다. 물론 새 언니가 직장에 나가기 때문이다. 한달밖에 안된 아이를 떨어뜨려 놓으려는 부모 마음은 어떨 것이책을 제대로 실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긴 문제들인 것 같다. 수업시간에 공동육아가 잘 이루어지는 다른나라의 경우를 비디오로 본적이 있다. 프랑스, 스웨덴, 독일 등의 나라에서는 직장인 여성이 출산을 한 경우에는 몇 개월, 길게는 1∼2년의 출산휴가가 주어지며, 아이가 충분히 자랄때까지는 근무시간도 줄일수 있고 휴가도 낼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임신 기간동안 정기적인 건강검진, 출산 후 에는 출산 수당, 육아 수당등이 지급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직장 여성들에게는 정말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출산휴가가 2달정도 된다고 정해져 있더라도, 한달이 지나면 월급이 다 나오는것도 아니고, 자신의 자리가 위태롭기 때문에, 회사에서의 이목 때문에 어쩔수 없이 힘들지만 직장에 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아직 나는 직장을 다니지도 않고 아이를 낳아보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공동육아가 사회적으로 잘 실시되는 나라의 모습을 보니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감정은 우리나라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생각일 것이다. 이런 나라들에는 다양한 보육형태가 있는데, 가정에서 개인이 몇몇의 아이를 돌봐주는 그런 가정 보모들까지도 모두 사회에서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종종 들리는, 가정 보모가 아이를 부모가 없는 사이에 구타했다거나 하는 뉴스는 들어 볼 수 없을 것이다. 사촌오빠 부부가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는 것도, 여성에게 출산휴가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우리나라에는 아직 태어난지 얼마 안된 아이를 마음놓고 맡길 만한 곳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래도 안심이 되는 부모님께 맡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이 많으신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 큰어머니는 그 사촌오빠네 아기 뿐만이 아니라, 몇 년전부터 사촌언니의 딸까지 돌봐주고 계신다. 내가 몇 년간 지켜보니, 안타까운 면도 많은 것 같다. 사촌 언니네도 맞벌이 부부다. 그래서 이 아이도 어릴 때부터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요즘처럼 아이들 교육이 빨리다.
이번 학기에 교육철학 및 교육사 과목을 듣게 되면서 교수님께서 고전을 한권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하셨다. 평소 '고전' 하면, 요즘은 N세대다 뭐다를 한참 외치고 있는 때라서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고리타분하고 내용도 지겹고 재미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어릴적에 동화식으로 짧고 간단하게 나온 것은 꽤 읽어 보았지만 제대로 된 고전을 읽어 본 것은 손에 꼽을 수도 있을 정도로 적을 것이다. 하지만 고전이라는 것, 이번에 이 작품을 읽어 봄으로써 왜 고전을 읽어야 되는지, 고전이라는 것이 왜 지금도 여전히 읽혀지고 읽어야 하는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 과제를 하기 위해 어떤 책을 읽을까 도서관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고전들만 따로 모아놓은 곳에서 이것 저것을 들추어 보다가 이 책을 잡게 되었다. 갑자기 고등학교 때 문학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기억이 난 것이다. 게다가 이라는 제목 또한 내 마음을 끌었다. 책을 읽기 전에 제목만을 보았을 때 왠지 대립되는 두 요소, 즉 이성과 감성의 두 요소에 대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내가 제대로 추측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나르치스라는 냉정하고 매사에 철저한 철학자와 골드문트라는 애욕(사랑과 욕심)과 편력을 일삼는 예술가 두사람의 인생을 비추어 주며 인간의 이면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은 인간이 누구나 한번씩 겪는 일로 앞으로 살아가는 길을 결정하는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은 인간의 이런 생각과 고민을 그대로 담고 있다. 결국 두 사람은 마치 서로 다른 길을 흘러온 두 줄기의 물이 하나로 만나는 것처럼 마지막에는 하나가 되지만 두 사람이 살아오면서 걸어온 길은 판이하게 다르다.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마리아브론 수도원에서의 생활에서 시작이 된다. 학문적 탐구와 경건한 신앙, 소박함과 노련함, 성경의 지혜와 고대 그리스 세계의 지혜..등등의 다양한 양상들이 당시의 지배적인 시대 조류에 따합리주의자는 아니며 그는 오히려 타인의 고유한 성격과 삶을 존중하는 관용의 미덕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나르치스가 자기와는 상반된 성격을 가진 골드문트를 이해하고 평생에 걸친 그의 방황을 끝까지 사랑과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수 있는 것도 그때문이었던 것 같다.나르치스의 이성이 이 세계를 통일된 모습으로 파악한다면 골드문트의 감성은 이 세계를 분열된 것으로 받아들인다 . 골드문트는 어머니와 대지로 상징되는 삶의 근원적 통일성의 상실로 인하여 괴로워 한다. 그의 어머니는 평범한 어머니, 아내의 역할에 어울리지 못하는 집시의 피를 타고 났고, 골드문트의 아버지는 그를 신학교에 입학시킴으로 해서 그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잊고 정상적이고 시민적인 삶의 질서에 순응하기를 바랬다. 따라서 어머니라는 존재는 그에게 있어 그리움의 대상인 동시에 금기의 대상이었다. 그는 어머니를 그리워 할수록 더 깊은 상실의 고통을 맛보게 되었다.골드문트는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인 훌륭한 스승의 마음에 들게 하기 위해 주의깊고 학구적인 학생이 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가 스승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한 소심함은 또한 나르치스가 자기에게 왠지 위험스런 존재일 것이라는 직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어느날 정신의 세계를 추구하고 금욕의 길을 걸어야 하는 수도사가 되어야 한다는 집념에 사로잡힌 골드문트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을 사건이 발생한다. 학생들 사이에서 이른바 힘 좀 쓴다는 아이에 의해 외부와 차단된 수도원을 벗어나 맹랑하고도 멋진 나들이를 하게 된 것이다. 어두운 숲길을 헤치고 몰래 빠져나와 한 소녀와의 만남이 이루어 진다. 금욕적이며 영웅적인 이상을 추구해 오던 그는 가볍게 스쳐간 첫 만남과 그의 감성에 처음으로 호소해 온 삶의 외침, 즉 여성이라는 존재와의 첫 대면을 통해 여기에는 자신에게 위험한 존재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절박한 궁지에 내몰려잇던 그에게 나르치스라는 우정이 다가와 그의 갈망이 피어날 수 잇도록 해주었으며 신성한 경외심을 바칠 수 있는 새로운 가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한 여인과 입맞춤을 한다. 그것을 통해 여성이란 어떤 존재이며 어떤 비밀을 간직한 존재인가를 느끼게 했다. 그리고는 수도원에 더 머무를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떠날 결심을 한다. 그의 수도원 바깥에서의 방랑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는 수많은 여자들을 알아가며 불륜까지도 쉽게 범하면서 여자들과 밤을 보냈다. 그러나 수많은 여자들이 하룻밤을 보내면 다음날 동틀녘에는 그와 작별인사를 나누며 떠나갔다. 그는 그 많은 여자들중 자신에게 떠나지 말라고 진지하게 애원하며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한 여자는 한명도 없었던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떤 여자를 떠올려 보아도 한 여자가 떠나가면 바로 다른 여자의 품을 그리워 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경험이 무엇에 도움이 되고 또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어딘가로 가는 길 위에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그러던 중 골드문트는 어느 수도원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고 그곳에서 목각으로 된 마리아 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는 자신이 곧잘 동경해 왔고 또 이미 꿈과 예감으로 종종 보아왔던 어떤 존재가 서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는 그 마리아 상을 조각한 명인(名人) 니클라우스를 찾아가 그의 밑에 있게 된다. 골드문트는 대단한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자기 재능을 표현할 올바른 수단을 찾지 못하는 그런 불행한 예술가들 축에 들지는 않았다. 그는 자기가 믿을 만하고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지만. 어떤 일감이 그를 꼼짝 못하게 붙들어 매고 그에게 힘든 과제가 주어지거나 혹은 자신의 능숙한 솜씨를 깨닫고서 기뻐하는 경우에는 그는 열성적인 일꾼이었다. 하지만 그는 가끔 스스로 그러한 사실에 놀라곤 했다. 지난 몇 해 동안의 방랑 생활 때문에 게을러지고 믿지 못할 사람이 되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어머니한테 물려받은 기질이 그의 속에서 자라나 그를 압도하기에 이른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그 옛날 골드문트가 에서 아버지의 요소인 정신과 의지는 그의 고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르치스의 고향이었다. 이제 비로소 골드문트는 친구가 했던 말들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고, 그 친구에게서 대립적인 기질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깨달음을 사도 요한의 형상에 담에 시각적으로 그려냈다. 골드문트에게는 예술과 예술가의 존재야말로 자신의 가장 깊은 갈등이 화해할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본성의 분열이 장엄하게, 늘 새롭게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했다. 사도 요한상 작업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그 모든 것에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그 작업은 오래 걸렸다. 어느 날 골드문트는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며 그것이 그의 청춘의 첫 시절과 우정을 기념하는 작품이라고 경건함을 가진 동시에 질풍처럼 몰려드는 근심과 무거운 상념을 가지게 되었다. 아름다운 사도 요한상은 그대로 남게 될 것이고, 섬세하게 피어나는 그 아름다움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지만 이 작품을 만든 그 자신은 이제 작품과 작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요한상 뿐만 아니라 스승, 그 도시, 그리고 예술과도 작별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때 그는 지난날 수도원을 떠나던 순간 못지 않게 중요한 길목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것은 결국 어머니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어쩌면 언젠가는 어머니가 모든 사람의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그가 손수 만든 작품으로 형상화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바로 거기에 그의 목표와 일생의 의미가 숨어 잇는지도 몰랐다. 한 가지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어머니를 뒤따라 가고 잇다는 사실, 어머니에 의해 길러지고 어머니의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것이 곧 그의 삶이었다. 어쩌면 어머니의 모습을 영영 형상화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그는 어머니를 따라가야만 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겼으며 어머니는 그의 별이었다. 그래서 골드문트는 예술이란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의 삶을 인도해 줄 운명의 여신이나 목표는 될 수 없다는 생각 하에 장인의 칭호와 부귀영화드문트는 작업에 다시 몰두한다. 이제 수도원에는 나르치스 외에는 아무도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충실하게 나르치스의 희망과 주문에 따라 구상된 여러 작업을 마무리 했지만, 그 후로 그의 생활은 다시 무질서해졌다. 그의 마음음 깊은 불안과 불만에 빠져 들었다. 지금 그에겐 그 역시 조만간 니클라우스 스승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뒤따랐다. 그렇게 되면 부지런하고 건실해지고 솜씨도 더 무르익겠지만, 자유와 젊음은 잃고 마는 것이다. 하루는 자신이 젊은 여성에게는 이젠 늙어 보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는 이제 변해버린 것이다. 외모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예전과 느낌이 다르다는 것에 있었다. 자신이 늙었다고 느껴졌고, 자기도 모르게 니클라우스 스승과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불안해 했다. 그는 이제 부자유스러운 몸이 되었고, 한곳에 발을 붙이고 살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골드문트는 느닷없이 골드문트에게 작별을 고한다. 기이하고도 사랑스러운 친구 골드문트는 다시 정처없는 여정을 떠났다. 그는 다시 온 사방을 돌아다니며 유혹에 빠지고 죄를 지을 것이며 여자들을 유혹하고 자신의 욕망대로 움직일 것이다. 나르치스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가 나이 들어 가는 것에 한탄하면서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골드문트가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나르치스는 골드문트를 생각하면 진심으로 기뻤다. 근본적으로 따지면 이 반항아를 길들이기 어렵다는 사실, 또다시 변덕을 부려 굴레를 부스고 모험을 감수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나르치스는 친구를 인도하고 가르쳤던 어린시절 이래의 모든 추억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슬픈 미소를 지었다. 친구는 그의 인도와 가르침을 고맙게 받아들였고, 언제나 자신의 우월함과 스승 역할을 인정해 주었다. 그러고는 너무나 조용히 그의 상처받은 인생의 격정과 고뇌로부터 태어난 작품을 보여주었다. 거기엔 아무런 말이나 가르침, 교훈이나 경고도 없었고 오직 참되고 고양된 삶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