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전주 출신의 소설가 故최명희씨의 대하소설 혼불. 그 혼불이 음악극으로 다시 한번 태어나 한국 소리문화의 전당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난 즐거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지난 겨울 혼불을 소설로 읽고 한동안 감동에 사로잡혀 있었던 난 혼불을 음악극이라는 또 다른 시각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기대했었다.총 5막으로 구성된 음악극 혼불은 그 첫 번째 막 청사초롱으로 시작되었다. 시작은 전체 막의 마지막 부분과 대구를 이루는 듯 상여 나가는 장면으로 시작하였다. 무대의 저 뒤편에서 밝은 빛이 비추어지며 그 빛 속으로 상여 나가는 장면은 신비로움까지 안겨 주었다. 1막에서 강모는 강실을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효원과 혼례를 치루고 서글픔과 아쉬움 가득한 강모와 강실의 창(唱)이 주(主)를 이루었다. 2막은 1막 내내 어둡고 침울했던 분위기를 반전이라도 하듯 흥쾌한 사물놀이패의 공연으로 시작하였다. 3막은 다시 강수가 목 메달아 죽는 섬뜩한 장면으로 시작하여 내내 우울한 분위기로 일관하였으며 5장의 흡월정에서 흰 색 의상을 착용하고 군무(群舞)를 추었던 단원들의 아름다운 장면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약간은 코믹한 아기의 울음소리로 4막은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3막까지 어두웠던 분위기로 인하여 굳어있던 관중들의 얼굴에 잠시나마 웃음을 찾을 수가 있었다. 또한 2막의 사물놀이패와 그 색이 다른 풍물패가 출연하여 흥겨운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마직막 5막 혼불은 청암부인의 죽음과 그 상여 나가는 장면이 주를 이루었다. 2장의 '돌아오라 혼백이여'에서의 군무(群舞) 역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여서 공연장에서의 사진촬영 금지라는 규칙을 어기고 사진 속에 영원히 담아 놓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기가 힘들었었다. 또한 4장의 '상여소리' 또한 굉장히 인상 깊었다. 팜플렛을 살펴보면 호남좌도필봉 농악보존회 준문화재이신 양진성씨께서 상여소리를 하신 것으로 나왔는데, 어쩌면 그리도 탁 트인 목소리로 서글프고도 심금을 울리는 소리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마저도 들게 했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들려오던 상여소리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소리였다. 무대가 아래로 꺼져 완전히 그 모습을 감출 때까지 계속되었던 상여소리는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무한한 감동을 주었다.음악극의 특성상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반적으로 전통음악이 흘러나왔으며 중간중간에 등장인물이 대화하는 도중에도 마찬가지여서 대화의 전달이 약간은 미흡했다는 지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나 연극과는 달리 음악극의 특성상 이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며 진행상 대화의 비중이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아 별 문제는 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원작은 사건의 흐름이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전개되지만 음악극으로 재구성된 이번 작품은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순차적으로 구성이 되어 비록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그리고 대화에 비중을 적게 두고서 공연을 감상한 사람일지라도 충분히 음악극 자체의 내용을 이해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극의 줄거리가 이해가 가지 않았더라도 그 내용에 신경을 쓰지 않고 단지 흘러나오는 음악과 화려한 춤사위에 몰입하여 극을 즐겼더라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관극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Ⅰ. 정격연주(원전연주)1. 정격연주의 의미정격연주란 그 시대의 악기와 그 시대의 작곡가의 의도대로 해석해서 하는 연주를 말한다.우리나라에서 나온 음악사전이나 국어사전을 한 번 찾아보면 아직은 이런 낱말들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단지 원전이란 말은 으로 또 정격이란 말은 이란 뜻풀이가 되어있을 뿐이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일반적인 말은 아니지만 서서히 붐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부터는 정격연주로 통일해서 부르겠다. 정격연주는 정격이란 말 뜻 그대로 처음 작곡가가 생각한 당시의 악기 그대로를 복원하여 처음 작곡한 악보대로 그 당시의 연주기법을 사용해서 당시의 연주장소에서 당시의 연주자의 마음으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영화 "벤허"에서 보는 것처럼 로마시대의 병사들의 모습으로 로마시대의 건축물에서 로마시대의 악기로 당시의 음을 재현해야 했지만 불후의 명작을 남긴 거장 윌리엄 와일러 감독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위해서 일부러 엉뚱한 음악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격연주를 빗대어 말하자면 감독 자신이 감동한 것만큼 완벽한 영화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정격연주에서 말하는 낱말 뜻 그대로를 실제로 옮기기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현대적인 장소에서 현대의 악기로 연주하는 방법으로 절충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떤 방법이 더 좋고 더 나쁘다는 것은 지금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직접 들어보고 판단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2. 정격연주의 시작1829년 베를린에서는 세계음악사를 장식할 대단한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었다. 당대 최고의 작곡가이며 지휘자였던 멘델스존이 158명의 합창단과 대규모의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바흐의 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바흐, 텔레만, 비발디, 륄리, 몬테베르디가 죽은 후에 그들의 음악도 잊혀진 것으로만 생각됐던 세계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이다. 이 사건이 있고 3년이 지난 후, 프랑스 파리에서는 또다시 주목할 만한 음악이벤트가 열렸다. 벨기에의 작곡가 프랑스와 요제프 페티스가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와 함께 바로크시대의 작품들을 연주한 것이다. 3년 전 멘델스존이 오늘날과 같은 대형 오케스트라로 연주한 것과는 달리 페티스는 비올 하프시코드와 같은 순수 바로크시대의 악기를 사용한 역사적인 음악회를 이끌었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의 상반되는 견해는 오늘날까지도 정격연주를 위한 정통악기 사용여부에 끊임없는 논란을 가져온 것은 물론 이 사건을 계기로 유럽 각국에서 바로크시대의 음악을 부활시키는 일에 열을 올렸다. 더욱이 20세기에 들어와서 레코드 산업이 활발해지면서 바로크음악에 대한 열풍은 점점 커져만 갔고 그 열기는 바로크음악을 넘어서 고전주의와 전기 낭만주의시대의 음악인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베를리오즈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옛날 악기의 복원은 물론 성악까지 다양한 소리의 재현을 실천하고 있다.3. 바로크음악의 정격연주의 대가들최초의 정격음악연주자는 1829년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연주한 멘델스존이었다. 그 후로 잃어버린 과거의 소리를 찾아서 20세기에 뜻 있는 연주자들은 과거를 재현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렇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선 과거의 악기들을 원형대로 복원해야만 했는데, 1912년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반다 란도프스카는 새롭게 복원한 하프시코드를 연주해서 바로크시대의 건반음악을 소개한 최초의 연주자가 되었다. 1940년대에 레코드산업의 발달로 영국의 지휘자 다트와 루이스는 바흐, 헨델, 라모와 같은 바로크음악을 최초로 녹음해서 세상에 알렸다. 또 독일의 칼 뮌힝거와 프랑스의 장 프랑수아 파야르는 현대악기로 바로크음악을 소개하는데 최선을 다했으며 빈 필하모닉의 첼로주자였던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바로크악기로 정격연주를 하는 최초의 실내악단 를 결성해서 1964년 녹음한 바흐의 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이같이 아르농쿠르의 활약에 감복한 네덜란드의 오르간 연주자이며 지휘자인 구스타프 레온하르트는 아르농쿠르와 음악적인 동반자로 평생 바흐 음악에 몸 받칠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게다가 유럽을 중심으로 바로크음악을 재현하려는 정격연주자들의 노력으로 프랑스에서는 고음악 연구협회가 만들어졌는가 하면 젊은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동유럽까지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켰다. 또 현재 정격연주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지휘자 존 엘리어트 가디너를 비롯하여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주자 파비오 비욘디,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윌리엄 크리스트, 필립 헤르베게, 톤 쿠프만, 조르디 사발, 브뤼헨, 쿠이겐 3형제, 안너 빌스마 등등, 오늘날의 정격연주의 대가들을 다 말 할 수는 없다. 더욱이 정격연주라고 해서 바로크음악만을 연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바로크 이전의 르네상스음악에서부터 낭만주의 음악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레파토리는 무궁무진하다.Ⅱ. 크로스 오버어떤 장르에 이질적인 다른 장르의 요소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음악으로서, 퓨전음악·크로스오버라고도 한다. 원래는 미국에서 어떤 곡이 몇 종류의 차트에 동시에 등장하는 현상을 의미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크로스오버라는 말의 정의는 '교차' 또는 '융합'으로, 이러한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퓨전, 재즈 등의 음악 장르에서부터이다. 그 이후 음악 장르 전반에서 크로스오버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현재는 음악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서로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퓨전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음악 장르는 재즈이며, 1969년 트럼펫 연주자인 마일스 데이비스가 처음으로 재즈에 강렬한 록비트를 섞어낸 음악을 선보였다. 이로써 재즈록 또는 록재즈라고 일컬어지는 새로운 음악이 등장하였다. 이어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동서양의 크로스오버가 일어나고 이념과 문화를 초월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무렵, 이런 분위기를 받아들인 새로운 음악 장르인 퓨전 재즈가 등장하였다. 이후 좀처럼 변화를 꾀하지 않는 클래식계에도 퓨전이 접목되어 포퓰러뮤직(팝)·재즈·가요 등에 클래식을 이용한다든가, 가요와 클래식을 접목한 콘서트를 개최하는 행사가 늘어갔다. 1980년대 초 성악가인 플라시도 도밍고와 미국 포크음악 가수인 존 덴버가 함께 부른 〈퍼햅스 러브(Perhaps Love)〉는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 그 후 성악가가 포퓰러뮤직을 부르고 포퓰러뮤직 가수가 성악을 부르는 일이 많아졌고, 국내에서도 국악을 이용한 크로스오버 음악이 시도되었다. 서태지의 《하여가》는 국악과 랩을 잘 조화해냄으로써 큰 호평을 받았고, 그 후 가요계는 국악과의 결합에 새로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Ⅰ. 들어가며...2000년 6월 15일 남북한 정상은 분단 후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함으로서 통일을 염원하는 이산가족 등에게 통일의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제시하였다. 또한 얼마전 메스컴에서는 중국 선양 주재 일본 총영사관에서 길수군 친척 5명이 영사관 진입중 중국공안에 연행되는 사건으로 한창 소란스러웠었는데, 결국 이들은 다행히도 23일 우리나라에 도착하였다. 예전부터 조금씩 진행되던 북한주민의 귀순이 최근 몇 년들어 부쩍 늘어나고, 북한에 대한 지원이나 남북한의 여러 교류가 늘어남에 따라 21세기 통일 한국은 아직도 우리에게는 실현해야 할 꿈과 이상으로만 다가오지는 않는 것 같다. 한반도의 통일은 생각보다 우리의 앞에 와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통일 한국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통일에 대해 두려움 내지는 반기를 드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처음에는 통일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보면 통일은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통일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통일 이 후에 예상되는 문제점들에 대한 두려움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그러한 차원에서 통일이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었다. 하지만 이제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통일을 바라보기로 했다.그렇다면 만약 통일이 되었을 때에 수많은 문제점의 발생이 명약관화(明若觀火)와 같은데 이에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함으로써 그러한 문제점들을 무난히 해결하여 보다 안정되고 활기찬 통일 한국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Ⅱ. 통일 후 발생될 문제점의 극복1. 이질감에 대한 극복일반적으로 개인에서나 집단에서나 어떤 대상에 대한 심한 이질감과 적대감을 가지는 가장 큰 이유는 실제로 그 대상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알지 못하는데서 기인할 때가 많다. 즉 잘 모르기 때문에 이질감을 느끼고 적대감을 가지는 것이다. 남한과 북한의 경우, 이러한 이질감의 가장 큰 원인은 서로를 잘 모른다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하여 좀더 알게 된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남한의 입장에서 통일을 준비하고, 이질감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공부하는 것이 필요로 된다. 즉 북한이라는 나라는 어떤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나라이며, 그것을 처음 만들던 사람들은 어떤 유토피아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은 어떤 이유와 과정을 통하여 어떻게 변질하여 갔고, 그래서 결국 그 꿈은 어떻게 좌절되었는지,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북한에 남아있는 가치관은 어떤 것들이며 그것은 지금 북한 사람들의 의식 속에 어떤 식으로 남아있고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에 대한 "객관적인 공부"이다. 그래야만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인 비판과 이해를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통일과 연관되어 우리 남한의 문제가 있었다면 우리에게 "순수한 의미에서의 북한에 대한 학문적 관심" 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강요된 무관심"이었던 측면이 크다. 북한에 대한 관심 자체가 반체제적이고 반국가적인 것으로 매도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통일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이 문제는 남한에서부터 극복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된 대중매체의 이용과 개발 그리고 남북한 사람들이 같이 어울려 가지는 프로그램의 개발과 시행으로 남북한 사람들의 이질감을 줄이는데 적극 활용해야 한다.민족 이질화는 분명히 우리 민족이 가졌던 비극의 산물이다. 반세기 이상 지속된 처절한 분단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이질화는 우리 민족에게 하나의 기회이기도 하다. 21세기를 맞이하여 더 세계화되고, 우리와 다른 인종, 언어, 종교, 사상, 문화를 가진 세계의 사람들과 함께 더 밀접하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 민족 전체에게, 이 이질화와 그 극복의 경험은 우리 민족을 새롭고 더 성숙한 존재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북한이 이질화 된 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것을 두려워 할 필요도 없다. 다만, 이질화된 서로를 바라보며, 남북한 사람들은 이제 서로 스스로의 약점과 문제점은 없애려고 노력하고, 각자의 장점은 더욱 살려, "최고의 민족"을 만들어 내는데 이 이질화를 이용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근래에 "드림팀"이라는 용어를 많이 쓴다. 21세기, 세계의 무대에서 활동해 나가야 하는 우리 민족이 "남북한 단일 드림팀"으로 되어 나가려면 이 이질화의 내용과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차이를 적절히 이용하며 극복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라 할 것이다.2. 식량수급 문제의 극복추산에 의하면 통일 후 경지의 감소로 인한 생산의 감소보다는 단수의 증가로 인한 생산의 증가효과가 더욱 크게 나타나 통일 후 북한지역의 곡물생산은 증대되어 2000년 350만 톤 수준에서 2010 년에는 500만 톤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하지만 북한지역의 생산이 증대하더라도 늘어나는 수요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다. 짧은 기간 내에 높아진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의 소득수준에 도달할 수 없을지라도, 통일 후 북한주민의 식량소비와 관련하여 해야 할 일은, 높은 욕구와 낮은 유효수요 사이에서 적정한 식량소비 수준을 보장해 주고 이에 해당되는 물량을 차질 없이 공급하는 일이다.적정한 식량 공급수준은 2010년 사료곡을 포함하여 연간 840만톤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모자라는 국내생산분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약 350만톤 가량을 수입해야 한다. 그 이후에도 북한주민의 소득향상에 따라 축산물의 소비가 증가하게 되면 사료용 곡물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 수입필요량은 더욱 커지게 된다.통일 후 북한지역의 수요충족을 위해서는 통일 이전이라도 우리는 미리 북한의 식량증산과 관련한 농업기술구조를 파악하는데 최우선 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북한인접 지역인 강원도 지역을 대상으로 현행 작물배치를 중심으로 각 작물별 품종개발과 재배기술을 개발, 통일이후 북한지역에 적용 가능토록 사전대비가 필요하다. 또한 남북한 다 함께 부족한 식량난 타개를 위해서는 기존 농지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한편 서로간의 농업협력을 통해서 식량의 안정적 공급에 정책의 최우선을 두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통일정부가 외화보유를 충분히 하고 있다하더라도 요즘과 같은 기상변화가 자주 나타나면 돈이 있어도 필요한 곡물을 구입할 수 없다.국제 곡물시장은 단기변동의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일정한 자급도를 유지하는 것은 통일 후에도 중요하며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즉, 국민식량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대비책은 항상 세워둠으로써 얘기치 않은 상황으로 인해 통일 후 국민이 고통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3. 국.공유 토지의 사유화로 인한 문제점의 극복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고 또 쉽지 않은 과제가 토지 등 국유재산의 사유화이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 동안 억류(보류)되어온 북한주민들의 재산권이므로 다시 그들에게 단순히 되돌려주면 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사회든 모든 토지가 사적 보유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또한 북한 주민들에게 일률적으로 균등하게 토지를 배분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와 함께 솔직히 말해서는 남한처럼 대부분의 토지가 사유재산화하여 각종 부작용을 야기하는 상황을 감안할 때 또다시 올 수 없는 기회라고도 할 수 있는 계기에 이 같은 문제점을 사전에 방지하는 한편 통합된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토지정책의 틀을 마련해 보고자 하는 시각도 존재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점등을 고려할 때 부작용 없고 효율적인 사유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보다 치밀한 계획과 종합적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소유권 개념의 정립이나, 사유화 대상 토지의 검토, 사유화 방식, 사유화 추진의 시점 및 단계화에 대한 문제점을 북한 토지의 사유화와 관련하여 미리 검토해두지 않으면 막상 통일이 현실화될 때 큰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그 단적인 예가 토지를 통한 자본이익을 맛본 경험이 있는 남한의 투기꾼들 가운데 이를 노리는 투기행위가 만연할 가능성이다. 뿐만 아니라 일부 일찍 눈뜬 북한주민 중에도 투기행위자가 있을 수 있다. 이를 방치할 경우, 엄청난 자본이익의 존재로 국민들 사이의 위화감이 심화될 것이며 지가의 급등은 북한지역에 대한 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또한 구소유권에 대한 처리 문제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붕괴에 따른 급진적인 통일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월남·월북자 및 북한내 전 토지소유자 등으로부터 제기되는 구소유권의 복구요구를 묵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구소유권을 입증할 자료도 부실하며 설사 이를 토대로 소유권을 회복시킨다 하더라도 동구에서 겪었던 것과 마찬가지의 북한주민의 생활 불안정이라는 문제에 봉착하게될 것이다. 이런 경우, 북한주민의 대규모적인 유동화가 초래될 것이며 남한의 대도시 등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되며 통일한국의 경제 전반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1. 전자 상거래 현황인터넷 쇼핑몰의 시장 규모가 매년 50% 이상씩 성장해 오는 2004년 경에는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조사 결과가 나왔다. 쇼핑몰 사업자 역시 종합몰과 전문몰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춘추전국시대에서 점차 대기업과 브랜드 인지도를 갖춘 종합 쇼핑몰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했다. 산업자원부가 최근 조사한 ‘인터넷쇼핑몰 시장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341억원 규모를 형성한 국내 인터넷 쇼핑몰 시장은 올해 5021억원, 2003년 7531억원, 2004년 1조1296억원에 이어 2005년 1조6944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백화점·할인점 등 소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1년 3.2%에서 2005년 경에는 14.1%로 크게 높아질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연간 구매하는 액수도 2001년 69만7000원에서 2005년 96만8000만원으로 30만원 가량 높아질 것으로 집계했다.통계청에 따르면 2월 현재 사이버쇼핑몰 거래액은 4,383억원으로 전년 동월 2,370억원에 비해 84.9%가 늘어났다. 같은 기간 사이버쇼핑몰 운영업체 수도 지난해에 비해 21.9%가 늘어 2,276개인 것으로 집계됐다. 거래액은 작년 10월 2,812억원 이후 4개월째, 운영업체 수는 작년 1월 1,865개 이후 13개월째 늘어났다. 거래 상품은 가전.전자.통신기기(17.9%), 컴퓨터 및 주변기기(16.5%), 생활용품.자동차용품(10.5%), 의류.패션 및 관련상품(8.3%), 여행 및 예약서비스(5.9%) 식음료 및 건강식품(1.6%) 등의 순으로 많았다.인터넷 이용자수의 증가 폭은 점차 둔화되겠지만 인터넷 활용범위의 확대와 함께 인터넷으로 쇼핑하는 네티즌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9월 실시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최근 3달 내에 인터넷 쇼핑을 이용한 사람은 전체 인터넷 이용자의 19.1%인 460만 명 가량이다. 이는 3개월 전에 비해 140만 명이 늘어난 것으로 향후에도 가파른 상승곡선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이 중 여성이 225만 명(쇼핑 경험률 21.3%)으로 남성과 거의 대등한 비중을 점하고 있고, 인터넷 이용연한이 길고 이용량도 많은 20대와 30대의 경험률 증가가 두드러진다. 직업별로는 전문·관리직이 32.9%로 가장 높고 다음으로 사무직(29.0%), 주부(28.1%) 순으로 나타나 경제력과 함께 구매의사 결정권이 있는 계층의 경험률이 높음을 알 수 있다.반면에 한국소비자보호원(원장 崔圭鶴)이 해외 인터넷쇼핑몰 등에서 상품을 구입한 경험이 있는 국내 소비자 1,037명을 대상으로 이용실태와 피해실태를 조사한 결과, 소비자의 25.9%가 상품을 구입하면서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2. 돈을 절약할 수 있는 싸이트들▶야후리뷰 가격비교(http://bestbuyer.review.yahoo.co.kr/mainyahoo/prices/index.php3)-한가지 상품에 대해 여러 인터넷 쇼핑몰의 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곳으로서 다른 쇼핑 몰들과 가격비교를 통해 물품을 구입할 수 있다..화장품-www.gagacosmetic.co.krwww.lipline.co.krwww.cosart.co.krwww.cosme.co.kr.카메라-www.magicsale.co.kr.전자수첩-www.netfamily.co.kr(후불제).오디오-www.iwedding.co.kr.핸드폰-www.vipphone.co.kr▶경매-옥션(www.auction.co.kr)-경매뿐만아니라 새물품과 중고 물품을 안전하게 구입할 수 있다.(반품가능)▶도서.교보문고(www.kyobobook.co.kr)-구매금액의 3%적립 ─┐4만원이상 무료배송.yes24(www.yes24.co.kr)-등급에 따라 구매금액의 1~3%적립─┘그 이하는 2000원▶음반.벅스뮤직(www.bugsmusic.co.kr)-새로 나온 음반을 들어볼 수 있다는 장점.국내음반제로마켓(www.zeromarket.co.kr)-적립금 없음 ─┐9100~9300원씨디플라자(www.cdplaza.co.kr)-구매가의 2%적립 ┘.해외음반라이센스음반┌─제로마켓(www.zeromarket.co.kr)─┐11700~12000원└─씨디플라자(www.cdplaza.co.kr) ─┘수입음반┌─상아레코드(www.sangarecords.co.kr)└─핫트랙스(www.hottracks.co.kr).중고음반중고씨디(www.jungocd.co.kr)-싸이트를 통해서 구입하는 것보다 중고게시판을 통해서 구입 하는 것이 더 효과적▶쿠폰.코폰조아(www.couponjoa.co.kr)10% - 로즈헤어커커, B&B레스토랑,도예마을(도자기),백제의후예, 아기돼지삼형제, 청사초롱5% - 3×3=9, 맑은 술안주(마른안주or오징어)써비스 - M.CAVE, 모비딕, 정동진, 수레바퀴, 쉬리▶인터넷 뱅킹(전북은행)-온라인 쇼핑을 많이 하다보면 그 결제가 주로 카드 아니면 송금의 형식을 취하므로 쇼핑의 횟수가 빈번해 질수록 송금수수료 또한 무시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전북은행의 송금수수료와 인터넷 뱅킹 송금료는 다음과 같다.{10만원이하50만원이하전북지역800원1200원타지역1200원2000원전북은행송금수수료(타행의 경우)전북은행 인터넷 뱅킹 송금수수료{금액자행무료타행
{한국고대사(최병운)과제4보고서 / 2001년12월5일 / 영문과973229조석우세계최고의 우리문화 유산 을 읽고얼마 전 일본 해경이 우리의 작은 어선을 전복시킨 사건이 있었다. 그 전엔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해 전 국민이 분노한 사건이 있었다. 중국 일본과 채결한 어업협상에 많은 국민들이 정부에 실망했었다. 농민들은 우리의 사대적인 농업 정책에 울분을 토하고 있고, IMF가 휩쓸고 간 우리나라엔 많은 자본들이 대외 지향적으로 변화되고 있다.우리는 매년 많은 매체에서 우리가 얼마나 작고 힘없는 가에 관해 보고 듣게 된다. 그 뿐인가 학창시절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힘겨운 역사를 지니고 살아 왔는지에 관해 배우고 있다. 과연 우리는 반만년 역사 속에서 우리 것의 자랑스러움을 얼마나 느끼는가?아주 주관적이고 아주 쉬운 이야기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놀랐고, 그동안 나 자신이 내 조국을 얼마나 작게만 보아왔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우리의 무엇이 이토록 자랑스러울까 하는 생각을 했었고,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에 관심을 두고 싶지도 않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기에 이런 책이 나왔는지 실소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패배의식과 사대의식이 우리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우리의 어떤 것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자랑스런 우리의 무엇에 세계가 놀랐습니다. 오늘 우리나라 어디에 세계 최초의 무엇이 발견되었습니다. 오늘 뉴스에 이런 소식을 접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의 반응은 과연 어떠했을까? 그럴 줄 알았어. 역시... 라는 반응이 많을까? 설마... 아직 확실하지 않을 거야... 라는 반응이 많을까? 나는 감히-혹자는 나야말로 패배주의에 빠져 있다고 하겠지만-더 많은 반응은 후자일거라고 말하고 싶다.하지만 과거 우리가 받았던 역사 교육이 누구의 손으로 이루어 졌으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우리 것의 자랑스러움을 역설했었는지 생각해 본다면 위의 반응들이 과장된 것이라고만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식민지 사관에서 뿌리쳐 나온 우리의 과거사들, 우리의 것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지 못한 우리의 교육들. 나는 이 책에서 문화충격을 느꼈고, 내 시선과 지식의 협소함을 느꼈고, 내 자의식의 한계를 절감했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 주권 찾기, 고대사 바로 쓰기, 우리 것에 대한 자존의식 회복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우리의 자주적인 역사발견, 그에 다른 역사 교육, 우리 문화유산의 진가를 확인시킬 수 있는 교육의 필요성, 그것이 국수주의에 빠져 사실을 왜곡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를 찾아가는 교육만큼은 바로 서야 되지 않겠는가. 얼마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를 접할 때 우리는 분개했지만 그들의 속내를 바라보고, 그들이 우리에게 주장했던 자국 역사교육의 자주권을 바라본다면 그것이 물론 정확하지 않은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문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자의식 세우기엔 얼마나 자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일인가를 바라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