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작가소개작가 이동하는 1942년 경북 경산에서 출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건국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196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전쟁과 다람쥐」, 1967년 공보무 신인예술상에 「인동」, 같은 해에 『현대문학』 제1회 장편소설 공모에 『우울한 귀향』이 각각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단편집 『모래』 『바람의 집』 『저문 골짜기』 『폭력 연구』 『밝고 따뜻한 날』 『사막도』, 장편소설 『우울한 귀향』 『도시의 늪』 『냉혹한 혀』 『장난감 도시』 등을 냈으며 「모래」로 한국소설문학상(1977), 「굶주린 혼」으로 한국창작문학상(1978), 「파편」으로 한국문학작가상(1983), 「폭력 연구」로 현대문학상(1986), 「문학 앞에서」로 오영수문학상(1993)을 수상했다.그는 자전적인 요소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을 가진 작가다.2. 작품의 요점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배경 : 6 ? 25 직후의 도시(대구)인물 : 나-주인공. 시골에서는 면장감이란 찬사를 들었으나, 도시 이주 후 비참한 현실 을 겪는 소년주제 : 암울한 현실 속에서 인간의 절대적인 의지.3. 줄거리6?25가 끝난지 2-3년 후 국민학교 4학년이던 ‘나’는 가족과 함께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이사를 하게 된다.고향의 국민학교에서 장래의 면장감이란 찬사를 받던 ‘나’와 가족들은 도시로 왔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궁핍한 판자촌 생활이 시작되면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언제나 촌놈이라는 것이며, 이사와서 한 달 동안 ‘나’가 터득한 것은 도시 생활의 냉엄한 질서였다.아버지의 벌이는 시원치 않았고, 학교 담임 선생인 말씀은 또 다른 것이었다.“어둡고 혼탁한 때다. 그러나 너희들은 굴하지 않고 꿋꿋이 자랄 것을 나는 믿는다. 너희들 중 한 사람을 잃느니 매일처럼 매질을 하면서 너희들을 지키고 싶다. 그러나 너희들은 훗날 이 때를 생각하면서 우리 모두를 지킨 것은 오직 매였다고 말하지 마라 너희들 중에 비록 단 한사람이라도 매를 맞지 않은 친구가 없었다는 사실만을 꼭 기억해 두기 바란다.”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귀가하지 않았다. 무슨 물건을 자전거에 실어 나르다가 경찰에 붙잡혀가서 유치장에 있다는 것이었다. 시골 마을에서 장래의 면장감으로 찬사를 받던 ‘나’는 아버지마저 잃어버리고 울음이 목울대 까지 차 올랐으나 울지는 않았다. 다만 그 날 느낀 것은 벙어리가 어떻게 우는 것인가를 스스로 터득했을 뿐이었다.4.작품의 이해와 감상(1)이해@구성는 세 개의 중편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이다. 그 세편의 중편을 쓰는데 이동하는 약4년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79년 여름에 발표한 가 주목을 받게 되자, 그는 그것의 속편으로 을 이듬해 봄에 발표하게 되며, 그 속편을, 82년초에< 유다의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게 된다. 미리 어떤 소설을 쓰겠다는 의도 없이 발표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세 편의 연작 소설은 어떤 연작소설보다 구성이 치밀하고 서술의 톤이 일정하다. 그 세 편의 연작소설을 장편 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이야기의 짜임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평면적이며, 그것을 평범히 중편소설이라고 부르기엔 그것의 길이가 약간 길다. 다시 말해, 그것은 장편소설이 보여주는 삶의 총체성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지만, 중편소설이 보여주는 삶의 단면보다는 훨씬 큰 시간?공간 복합체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준장편소설이라고나 부를 수 있는 소설이다.장난감 도시는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1955년경의 한 중소 도시에서의 판자촌 삶이다. 그 중소 도시는 본토박이?떠돌이?피난민들로 이루어져있다. 그 세부류의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삶의 문양을 그리는 것은 이동하의 의도가 아니다. 그가 그리려고 하는 것은,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라는 단순하면서도 수락하기 힘든 삶의 지혜를 체득해가는 한 국민학교 4학년생의 의식성장 과정이다. 1955년경의 한 중소도시의 삶을 그리기보다는 그 어두운 시대를 살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체득한 한 어린 아이의 내적 공간을 그리려고 하였기 때문에 이동하는 장편소설적인 구성을 팽기치고 단편소설적 구성을 택한 것이다.@인물의 행동에는, 내가 구역질을 느끼는 두 장면이 매우 인상깊게 묘사되어 있다. 나는 도시에 이사와, 짙은 오렌지빛이 나는 물을 한 컵 사 마신 뒤에 그것을 삭이지 못하고 토하고 만다. 난생 처음 온 도시에서 처음 돈을 주고 산 물을 나는 삭이지 못한다. 그가 토한 딱 한잔 분량의 오렌지빛 물은 도시의 상징이며, 그의 아버지가 벌일 물장수로 표상되는 도시에서의 그들의 미래의 삶의 상징이다. 그는 그것을 견디어내지 못한다. 우선 구토는 이물스러움으로 시작된다. 시골집에서는 그토록 운에 익은 세간살이들이 판자촌의 골목에서는 그토록 이물스러울 수가 없고, 그 골목의 모든것들 역시 그러하다. 그 이물스러움은 어지럼증을 부르고, 그 어지럼증은 구토를 유발한다. 그 구토는, 이제는 내게 익숙한 것들은 없다라는 의식의 결과이다. 그것을 사회학자들은 소외라고 부르는것이지만. 그것의 육체적 증상은 어지러움과 구토이다. 구토는 낯익은 곳에서 나와 낯선 곳에서 살아가야 되는 사람의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육체적 반응이다. 그것은 일종의 물갈이 현상이다.두번째의 구토는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것이 아니며 그 동안 도시 생활때문에 많이 간접화되어 있다. 나는 도시의 한 공원에서 썩은 사과를 팔던 한 여인의 주검을 보고서 심한 헛구역질을 느낀다. 썩은 사과를 팔던 여인의 주검을 보고 그가 느낀 것은 메마른 헛구역질이다. 그것은 심하지만, 메마은 헛구역질이다. 다시 말해 간접화된 구역질이다. 그 간접화된 구역질을 유발시킨 것은 썩은 사과이다. 그 석은 사과는 그것을 판 여인의 삶이면서 동시에, 썩은 사과 같은 아이를 밴 어머니의 삶이다. 어머니 뱃속의 아이는,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희망의 아이가 아니라, 어머니의 육체를 썩게 하는, 죽음의 아이이다. 사람은 썩은 사과에 불과할 뿐이다. 그 인식이 그의 헛구역질을 불러일으킨다. 그 헛구역질은 전망 없는 미래에 대한 육체의 참담한 반응이다.작품에서 구토는, 도시에서의 삶은 소외의, 이물스런 삶이다라는 인식과, 사람의 삶은 전망 없는 삶이다라는 인식의 문학적 표현이다. 도시에서의 삶이란, 냉수 한 사발도 공짜가 없는, 제자리에서 잠시 돌아누워도 당연히 그 대가를 치러야하는 삶이며, 죽음이란 아득하게 먼, 그러나 언제나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진면목의 추위이다.@인물의 삶 (변화)에서 구역질이라는 내적 체험을 가능케 하는 것은 외적체험, 가족의 변화이다. ‘나’의 가족은 아버지?어머니?누나?나의 네사람이다. 그 가족들의 변화가 그 소설의 줄거리를 이룬다.① 내 가족이 고행을 떠나 도시로 온다.②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실패한 뒤, 장물을 나르다가 아버지는 투옥된다.③ 애를 밴 어머니는 전신 쇠약으로 죽는다.④ 전쟁터에서 다리를 잃은, 두부집 아들의 아내감으로 그 집에 들어간 누이를, 나는 깡패들에게 바쳐버린다.⑤ 출옥 후, 아버지는 다시 장물을 취급한다.가난한 사람들에겐 가족이 제일 확실한 의지처이므로, 그 가족의 변모는 그의 삶의 변모 그 자체이다. 그의 아버지의 삶은 그에게 시골/도시의 대립을 가장 명징하게 보여주는 삶이다. 시골에서의 그의 아버지의 삶은 땅과 연결된, 가장 확실하고 구체적인 삶이다. 그 흙을 떠나자마자, 아버지의 정직함은 무능함이 되고, 그 무능함은 불법적인 일로 아버지를 몰고간다.그의 어머니의 삶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의 어머니 역시 시골에서의 가족내의 역할을 점점 잃어간다. 어머니는 가족을 보호하고 가족을 편안하게 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도시에서 어머니는 그 능력을 점점 잃어간다. 어머니는 점차 음식을 먹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가족에게서 사상시켜나간다.그이 부모의 삶의 변화는 그들이 자리잡고있던 삶의 터전에서 어쩔 수 없이 내몰린 데 있다. 그 몰림의 이유가 자세히 설명되있지는 않지만,1955년경이니까 그의 삼촌과 관련된 이데올로기 문제 때문이리라 짐작된다.
.평안남도 대동(大同) 출생. 숭실 중학을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31년 중학 재학 중 《동광(東光)》지에 시 《나의 꿈》 《아들아 무서워 마라》를 발표, 등단하였다. 그 뒤 《삼사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며 《방가(放歌, 1934)》 《골동품(1936)》 등 시집을 간행하였으나, 40년 단편집 《늪》을 계기로 소설에 전념하여 《별(1941)》 《그늘(1942)》 등 대표작들을 썼다. 광복 후 서울중학교?경희대학에 재직하면서 《독 짓는 늙은이(1952)》 《곡예사(1950)》 《학(1953)》 등 단편과 《별과 같이 살다(1950》 《인간접목(1957)》 등 장편을 발표하였고, 55년 《카인의 후예》로 자유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전쟁의 비극적 상황 속에서 젊은이들의 좌절과 방황을 묘사한 《나무들 비탈에 서다(1960)》, 전통적 한국의 인습 속에서 자의식의 분열을 다룬 《일월(1964)》 《움직이는 성(城, 1973)》 《신들의 주사위(1982)》 등 장편을 썼다. 《소나기》를 통해 유년기의 동화적인 색채로 출발, 인생 입문에서 겪게 되는 아픔과 정서적 손상의 형상을 거쳐, 《별과 같이 살다》 《카인의 후예》에 이르러 삶의 현장을 투시하고, 점차 인간의 정신세계와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그린 휴머니즘으로 변모하였다. 61년 예술원상, 66년 3?1문화상, 83년 대한민국문학상 본 상을 수상하였다.그의 작품 세계는 시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치밀한 문체와 스토리의 조직적인 전개를 그 특징으로 삼고 있다. 그의 문체는 설 화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작가는 인간의 본연적인 심리를 미세하게 묘사하는가하면, 비극적인 현실을 심원한 사상이나 종교로서 감싸고 이해하려는 주제 의식의 확대를 보여주고 있다.갈래 : 단편 소설배경 : 시간 1950년 6?25 동란 당시의 가을 / 공간 - 삼팔 접경의 북쪽 마을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부분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경향 : 휴머니즘표현 : 암시와 상징을 통한 주제 유도주제 : 사포되어 온 것을 보고, 청단까지 호송할 것을 자청하여 데리고 나선다. 호송 도중, 유년 시절에 호박잎 담배를 나눠 피우던 생각과 혹부리 할아버지네 밤을 서리하다 들켜 혼이 난 추억들을 떠올리며 내적 갈등을 느낀다. 농민 동맹 부위원장까지 지낸 덕재에 대해 심한 적대감을 품기도 했으나. 대화를 하면서 점차 감정이 누그러지고 그의 진실을 알게 된다. 덕재는 아무런 이념에의 동조 없이 빈농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용당했을 뿐, 실은 땅밖에 모르는 순박한 농민이었던 것이다. 덕재는 아버지가 병석에 있고 농사에 대한 고집스러운 애착으로 인하여 피하지 않고 남았음을 이야기한다. 성삼이는 자신이 피난 가던 때를 회상하면서, 농사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피난하기를 끝까지 거부하시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덕재의 처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증오의 마음이 우정으로 바뀌면서 고갯마루를 넘는다. 성삼이는 고갯길을 내려오면서 전처럼 살고 있는 학 떼를 발견하고 옛일을 회상한다. 어린 시절, 학을 잡아 얽어매 놓고 괴롭히다가 사냥꾼이 학을 잡으러 왔다는 소문을 듣고 놀라서 학 발목의 올가미를 풀어 준 적이 있다. 그 때, 처음에는 제대로 날지 못하다가 자유로워진 학이 푸른 하늘로 날아가던 추억, 성삼이는 덕재의 포승줄을 풀어 준다. 덕재는 성삼이가 자기를 쏘아 죽이려나 보다고 생각하나, '어이, 왜 맹추같이 게 섰는 거야?'하는 성삼이의 재촉에 무엇을 깨달은 듯 잡풀 사이로 도망친다. 때마침 단정학 두세 마리가 가을 하늘을 날고 있다.'학'은 1953년 「신천지」에 발표된 황순원의 단편 소설이다. 황순원 특유의 서정적 감각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으로, 6?25라는 전쟁의 상황 속에서 각기 다른 이데올로기 편에 서게 된 성삼과 덕재가 이념이라는 형식적인 굴레를 벗어나 우정을 확인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면서, 무엇으로도 파괴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심성이 작가의 휴머니즘 정신 속에 진하게 표현된 작품이다. 황순원의 초기 작품들이 시간이나 공간을 의식하지 않은 것에 비해서 이 작품에는 6?25라는 피워 대는 담배는 자신의 착잡하고 초조한 심리를 묘사하고 있다. 특히, 어릴 때 덕재와 함께 태웠던 호박잎 담배에 대한 추억에, 새로 피워 문 담배를 내던지는 것은 덕재에 대한 우정을 형상화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결말 부에 가서 고개를 중심으로 성삼과 덕재의 우정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고개라는 것의 상징적 이미지를 이용해 고개를 넘어섬으로써 이념이라는 갈등을 넘어서고 우정이 회복되는 구조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간결한 문체와 세부 묘사를 생략한 암시적인 문장이 효과를 충분히 살리고 있다는 것과 치밀한 심리 묘사가 더욱 돋보이는 이 작품은,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 속에서 이념의 공허성과 비인간성을 지적하면서 인간의 내부에 근본적으로 잠재해 있는 본연의 품성을 회복하는 두 인물을 제시함으로써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전쟁의 비극을 제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이 작품의 주제는 이미지로써 암시된다. 이 작품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주요 소재는 고향의 밤나무, 담배, 고갯길, 아버지, 꼬맹이, 학 등으로 향토 성이 짙은 것들이다. 이 소재들의 의미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향토, 농사, 혈육 등에 대한 깊은 정이다. 더구나 그러한 소재와 연결되는 사건들이 시간적 순서를 뛰어넘어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학'의 이미지는 순수한 인간 속성의 원형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학'은 주제적 사물로서 절절 부분에 나타난다. 소년들이 학을 풀어 주었던 과거의 에피소드는 이데올로기에 왜곡된 인간을 구원하는 힘은 인간의 순수한 마음밖에 없다는 작가 의식을 은연중 에 드러내고 있다. 성삼은 학 사냥을 하자는 제의로 덕재를 놓아주겠다는 암시를 표출하고 있는데, 여기서 학은 '흰옷을 입은 사람들'로 비유되는 우리 민족을 나타내는 것이고, 학을 놓아주는 것은 결국 우리 민족 고유의 심성을 표출한 것으로 이 역시 이념을 초월하여 인간 본연의 심성인 우정의 회복을 상징하고 있다. 즉, 그런 성삼의 시각으로 덕재를 관찰하고 있다.(관찰자시점)두루미는 울음소리에서 유래된 순우리말이다. 두루미는 우리나라에서 '학(鶴)'또는 '단정학(丹頂鶴)'이라고도 하는데, 한자 문화권에 속한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일반적으로 '학'이라 부른다. 우리가 흔히 두루미라고 부르는 종은 예로부터 단정학으로 알려져 있으며, 말 그대로 암수 모두 이마?머리꼭대기?눈앞까지 붉은 색의 피부가 노출되어 있고, 노출된 피부의 앞과 뒤끝에는 뻣뻣한 검은 색 털이 촘촘하게 나 있다. 그리고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도 이들의 외형적인 형태를 본떠서 '머리에 붉은 관을 쓴 두루미' (Red-crowned Crane)라 부르고 있다. 두루미는 약 6백만 년 전의 화석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지구상에서 공룡과 같은 시기에 살았던 오랜 역사를 가진 새이다. 두루미의 크기, 행동, 사회성, 독특한 울음소리, 우아한 행동, 고고한 모습이 인류의 문화유산에서 문학 작품, 미술품, 민속품, 신화와 전설 등에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두루미에 대한 인간의 인지도는 아프리카, 호주, 유럽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동굴벽화에도 나타난다.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장수의 상징으로 표현되었으며, 특히 한국?중국?일본의 경우 두루미는 행복?행운?장수?부부애를 상징하며 장식물에 자주 등장해 왔다. 두루미의 몸빛은 거의 순백색이고 머리 꼭대기에 붉은 점이 있다. 이런 감각적 특성은 세속과는 다른 초연한 기품을 떠올린다. 그래서 두루미를 호의현상(縞衣玄裳,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이라고 말하는데, 흰색과 검은 색의 배합은 고고함과 신성함을 상징한다. 그 모습을 본떠 조선의 선비들이 평상시 입던 옷이 학창의 이다. 이는 두루미의 고고한 기품과 선비의 기상을 일체화시킨 것이다. 이렇듯 두루미는 인간에게 강한 감성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인간의 문화와 역사 속에 배어 있는 것이다.-인간의 영혼 어루만지고 치유했다-한국 현대문학의 정상을 지킨 거목이자 그 삶의 모범으로 인하여 작 가정신의 사표로 불린다. 오랫동안 글을 써 온 소설을 생산하는 데 이른다. 지속적 시간과 함께 하는 문학이라는 소중한 창작유형과 순차적 확 대변화의 과정이라는 독특한 발전양상이 한 사람의 작가에게서 동시 에 진행되고 있음은 보기 드문 일이다. 그 시간상의 전말이 한국 현대문학사와 함께 했음을 감안할 때 우리는 황순원의 소설 미학을 통 해 우리문학이 마련하고 있는 하나의 독창적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황순원 선생을 그 분인 줄도 모르는 채 필자는 입학시험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 그 날 이후로 그 분의 소설을 읽어오면서, 또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 필자로서는 황순원이란 큰 이름과의 거리 좁히기를 계속해 온 셈이었다. 그러므로 이 글도 필경은 그 일의 일부에 해당될 수 밖 에 없겠다. 필자가 기억하는 바 황순원 선생과 관련된 일화는 너무도 많이 있지 만, 그 사실과 사건들의 공통점을 들자면 모두가 그분의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사고나 따뜻하고 순후한 인간애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면모는 작품세계 처지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원응서와의 교감을 그린 을 지목할 수 있겠다. 선생은 술자리에서 친구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꼭 병 바닥의 마지막 잔술을 탁자 옆 허공이나 퇴주그릇에 부었는데, 그것을 아는 제자들은 덩달아 그 ‘법칙’ 을 지켜가며 숙연 해하곤 했다. 이러한 측면들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에게도 못한 비밀스런 말을 선생께는 다 털어놓을 수 있겠다는 주관적인 친숙감을 갖게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그와 같은 기회는 임의로운 것이 아니며 글을 쓰는 제자들은 자신의 글을 통하여 그 깊숙한 정신적 사고와 운동범주를 표현해보기도 했던 것이다. 문학 속에 인간의 본원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인간의 영혼이 겪는 아픔을 치유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면 그런 문학은 바로 황순원 작품 세계의 핵심과 소통된다. 그분의 소설을 읽는 독자는 좋은 작가 이전 에 좋은 인품을 먼저 만날 수 있는 복을 누리는 셈이다. 황순원의 시와 초기 단편들은 삶의 현장에 된다.
“소외된 잡초의 몸부림”Ⅰ. 서론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고도 산업화라는 경제 정책으로 인한 급속한 사회 변동 속에서 심각한 인간성의 위기를 경험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른 여러 가지 부작용과 사회적 모순이 곳곳에서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70년대의 소설은 한국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 하나로 등장한 사회 현실, 특히 노동자와 농민들의 궁핍한 생활, 열악한 노동 현장과 함께 그들의 소외된 삶과 방황을 추적하여 작품화 하였다. 이런 상황속에서 황석영의 소설들은 바로 이러한 사회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 문제작들이라고 할 수 있다.황석영은 ‘격심한 사회변동기’ 속에서 방황하고 소외된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고, 몸소 겪은 체험을 골간으로 하여 시대를 항변한 일련의 작가군 중에서 대표적인 한 사람이었다.먼저 70년대 시대상황과 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보고 『객지』와 『삼포가는 길』을 살펴보고자 한다.1. 투철한 시대정신, 황석영작가 황석영은 1943년 1월 4일 만주에서 태어났다. 1945년 해방이 되고 귀국하여 평양, 황해도 신천 등에 살다가 1949년 월남했다. 그는 1956년부터 일류학교라 부르는 경북 중고등학교를 다녔으나 일류 학교의 폐쇄적인 분위기가 싫어 중퇴하고 여러 곳을 떠돌아 다닌다. 여러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기도 했고, 절에서 행자승 노릇을 하기도 했다. 1966년 해병대에 자원하여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이런 경험들은 그의 소설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객지] [삼포가는 길] 등이 공사판 인부들의 삶을 다룬 단편들이고 [낙타누깔] [몰개월의 새] 등이 베트남 참전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담은 단편이다.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은 베트남전을 다룬 장편 소설이다. 이외 [한씨 연대기] [돼지꿈] [어둠의 자식들] 등 분단의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 노동 현장의 사람들,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 등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들을 작품으로 형상화하는데 힘썼다. 1974년부터 84년까지 한국일보에 연재된 [장길산]은 그의 작가적 역량을고 있는 개인적 현실이다. ‘개인적 현실’이라고 해서 그것이 사회적 현실과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바로 사회적 현실의 또 다른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2. 희망인가 좌절인가...『객지』1971년 발표한 중편 는 해안 간척 공사장 날품팔이 근로자들의 현실을 다룬 소설로써 언제부터인가 가정과 고향을 떠나와 객지를 떠돌며 거친 사연과 끼니를 위한 노동에 몸을 맡기는,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공사장에서 인간적인 삶을 추구하고, 감독인 깡패들의 횡포에 저항하여 쟁의를 일으키지만 실패한다. 하지만 동혁은 ‘꼭 내일이 아니어도 좋다’는 희망찬 결의를 가지게 된다.1) 작품의 줄거리이 책의 주인공인 이동혁은, 막노동을 하지만 상당히 지식이 있는 사람으로 나온다. 고아인 그는 숙부의 도움으로 간신히 고등학교를 마치고 군에 입대했으나, 제대하고 보니 숙부는 이민을 떠나고 없었다. 그래서 일자리를 찾아 이곳 저곳을 떠돌던 중 간척 공사장까지 오게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장씨를 만나고, 장씨에게서 외진 바닷가의 공사현장은 떠돌이 노동자들에겐 생활의 공간이 아니라 처절한 생존투쟁의 공간일 수밖에 없는 공사판의 사정을 듣는다. 이곳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돈을 벌기는커녕 이곳에 빚을 지고 있었다. 일당 130원에 세끼 밥과 합숙소에서의 숙박비를 제하고 나면 고작 10원밖에 남지 않는데, 이 10원 조차 남아나지 못한다. 술이며 담배, 옷, 과자부스러기 등 이것저것 최소한의 생활에 필요한 것들만 사도 빚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오래 일한 장씨는 적극적인 삶의 의지가 없다. 그는 젊은이들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왜냐하면 그는 여지껏 일하면서 개선되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조건이 불리하더라도 거기에 맞춰 순응하는 것이 날품팔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인생 철학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일하는 또 다른 육군중사 출신인 젊은시간을 지킬 것, 감독조를 해산할 것 등을 요구한다.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소장은 소장대로 여러가지 대책을 마련한다. 쟁의에서 빠진 사람들을 매수하는 한편 경찰을 부른다. 경찰은 국회에서 답사를 오는 것 때문에 섣불리 나서지는 못한다.동혁은 함바가 사방으로 뚫려 있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함바 뒤의 산으로 올라가자고 한다. 더운 여름 볕이 내려 쬐는 산 위에서 동혁과 다친 대위 등 노동자들은 스피커를 통해 요구 조건을 들어주겠다는 소장의 말과, 농성을 빨리 중지하라는 경찰의 말을 듣는다. 또 멀리 동료 인부들이 달리진 조건에서 일하는 듯한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농성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환자들을 데리고 내려온 고참 인부들은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소장의 각서를 받아 들고 산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회사측의 속셈은 달랐다. 요구를 들어주는 체하며 주동자들을 경찰에 끌고 가 협박한 뒤 쫓아낼 심산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산 위의 노동자들은 모두 일이 제대로 되었다고 생각하며 산을 내려가겠다고 말한다.산에 혼자 남은 동혁은 내려가는 동료들을 보며 쟁의가 실패하였음을 깨닫고, “꼭 내일이 아니어도 좋다”는 희망찬 결의를 하게 된다.② 소설을 통해 읽는 그 시대라는 제목에서 우리는 편안함과 친근함 대신 낯설음, 두려움 같은 감정을 느낀다. 고향이 아닌 낯선 땅을 떠돈다면 우리 모두 그런 감정을 느낄 것이다. 이 소설이 나온 것은 1971년이다. 60년대 이른바 제3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정부는 근대화와 산업화를 내세웠다. 곳곳에 공장이 서고, 공사판이 벌어졌다. 농촌의 농민들은 도시로 몰려들어 도시 빈민이 되거나 공장의 노동자가 되었다. 양적인 경제 성장을 추구했기에 노동자들은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임금 뿐 아니라, 노동 조건도 열악했다.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공돌이, 공순이로 불리기도 했다. 이같은 도시화 속에서 그나마 도시에 자리잡지 못한 사람들은 공사판을 따라다니는 날품팔이(일용 노동자)가 되었다.이 자는 분노를 일깨우기 위해 그대로 폭발할 지도 모른다. 남포를 들고 그는 동료와 나눈 농담을 기억한 것이다.“동혁은 지금 자기가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부들 중, 누군가의 희생이 잘 이용되기만 한다면 모두들 필사적으로 쟁의에 가담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누가 희생을 원할 것인가. 모두들 어떤 자가 대신해 주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기회는 지나가 버릴 것이다.”어쩌면 한 사람의 무모한 죽음으로 끝날 지도 모를 ‘객지’에서의 사건은 좌절인가 아니면 새로운 희망인가? 우리 스스로 몇 가지의 질문을 던져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전태일의 죽음은 헛된 것이었을까? 숱한 사람들의 희생을 딛고 일어선, 숱한 사람들의 피위에 세워진 민주주의는 소멸되었는가? 좀더 나은 세상을 원하던 많은 사람들의 외침은 그 때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는가?이런 질문을 던지다 보면 우리는 동혁이 내린 결단을 하찮게 보아서는 안된다는 걸 깨닫는다. 비록 방법론에 반대할 수는 있지만 그의 희생이 가져올 열매마저 부정해서는 안될 것 같다.4) 『객지』를 읽고...황석영의 『객지』는 1970년대 노동자의 노동과 투쟁을 사실적인 문체로 그렸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주인공 동혁에게서 70년대 평화시장에서 스물 하나의 짧은 인생을 분신 자살한 전태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의 죽음을 결코 가치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70년대 열악한 노동 환경속에서 이름없이 살아온 노동자이지만 그들이 아직 살아있고, 그들 또한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그는 그를 태운 불꽃으로 우리 모두에게 말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전태일을 형상화한 듯한 이 소설에서 우리는 힘든 현실속에서도 동료들끼리 흐르는 따뜻한 인간애와 더 나은 삶에 대한 추구, 그러한 삶에 대한 희망을 느낄수 있었다.3. 소외된 자들의 고향 찾기...『삼포가는 길』이 소설은 1973년 9월 에 발표되었다가 1974년 에서 펴낸 소설집 에 수록된 작품이다. 급속하게 진행되는 산업화의 물결 속에리고는 백화를 도와 여비를 나누어 차표와 빵을 사 준다. 감격한 백화는 자신의 본명을 알려 주고 그들 곁을 떠난다.1970년대 산업화의 과정에서 농민은 뿌리를 잃고 도시의 밑바닥 생활을 하며 일용 노동자로 떠돈다. 이러한 상황의 황폐함과 궁핍함이 ‘영달’과 ‘정씨’ 같은 부랑 노무자, ‘백화’ 같은 작부의 모습으로 형상화되면서 시대적 전형성을 획득하고 있다.‘정씨’에게는 이제 그 옛날의 아름다운 삼포(森浦)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육지로 연결된 삼포는, 그가 떠나고자 했던 도시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산업화 된 공간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삼포는 그에게 있어 오랜 부랑 생활을 끝내고 안주할 수 있는 곳, 곧 정신의 안주처 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정씨에게 있어서 삼포(森浦)의 상실은 곧 정신적 고향의 상실을 의미하며, 그 순간 정씨는 영달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부랑자가 되고 만다.이런 의미에서 은 1970년대 산업화가 초래한 고향 상실의 아픔을 형상화해 내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3) 작품의 분석①뿌리 뽑힌 삶을 사는 사람들의 소재는 70년대 산업화에서 소외된 인간들이다. 은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인 정시와 영달, 그리고 술집 작부인 백화가 눈에 덮힌 길을 함께 가게 되면서 이루어지는 하루동안의 이야기로써, 그 길에는 세 사람이 동행을 한다.우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세 인물들을 살펴보자. 영달, 정씨, 백화! 그들은 하나같이 삶의 뿌리를 뽑힌 밑바닥 인생의 전형들이다. ‘영달’은 한때 일도 있고 집도 있었던 사람이다. 그는 공사판을 떠돌아 다니면서 각 공사판의 여자와의 시한부 삶을 하고, 또다시 길을 떠나는 생활을 반복하는 사람이다. 그에 비해 ‘정씨’는 10년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여러 가지 기술을 배워 나와 닥치는 데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고향인 ‘삼포’를 찾아간다는 점에서는 영달과 다르다. 하지만 삼포가 이미 옛날의 고향이 아닌, 산업현장으로 바뀌었다는 곳이라는 점에서 그 역시 영달과 다를 바 없다. 고향을 잃은 신세이기는 마찬가지이지 않던가이다.
★ 오발탄(1959)1. 줄거리극심한 생활고로 아픈 이를 빼지도 못하고 나일론 양말을 사면 오래 신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값싼 목 양말을 살 수밖에 없는 계리사 사무실의 서기 송철호는 양심을 지켜 성실하게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믿는다. 점심을 굶어서 허기진 배를 안고서도 도시락 주머니가 없어 홀가분하다고 위안을 삼으며 해방촌 고개를 넘어 엉성한 집으로 찾아온다. 삼팔선을 넘어 그리운 고향을 찾아서 '가자! 가자!'라고 헛소리를 외쳐대는 미친 어머니의 쉰 목소리를 들으면서 송철호는 방으로 기어든다. 간단한 저녁을 끝내고 답답한 집을 나와 수많은 등불들을 바라보면서 기구한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삼촌이 사줬다는 빨간 신발을 곱게 받쳐 들고 잠든 딸아이의 머리맡에 앉아 있는 만삭의 아내 얼굴에서 모처럼 가느다란 웃음을 본다. 고학으로 고생고생 다니던 대학 3학년을 결국 중퇴하고 군에 입대하여 상이 군인이 되어 돌아온 동생 영호가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술이나 마시고 양담배만 피우는 것이 못마땅하였다. 그런데 동생은, 양심이니 성실이니 하는 것은 약한 자가 공연히 자신의 약함을 합리화시키려고 고집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도 이제 도덕이나 규범, 법 같은 모든 것들을 벗어던지고 잘 살아 보자고 대든다.모두가 잠자리에 들어 고요해진 순간 '가자! 가자!' 하는 어머니의 헛소리가 울리고, 잠이 깬 명숙이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벅차 오르는 서글픈 눈물을 참지 못하고 쏟아버린다. 잠에서 깬 딸아이는 빨간 신발을 보고 머리맡에 신주모시듯 곱게 놓고서 다시 잠이 든다.다음날도 점심을 넘기고 허기진 배를 보리차로 채우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동생 영호가 권총 강도로 붙잡혔다는 것이다. 기어코 일을 벌린 동생을 면회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동생 명숙이는 아내가 병원으로 실려갔다면서 100환짜리 한 뭉치를 준다. 허겁지겁 병원에 왔으나 아내는 이미 죽은 뒤였다.그는 정신없이 뛰쳐나와 치과에서 이를 몽땅 빼내 버리고 배고픔을 느끼자 식당으로 가서 설렁탕을 시켜 먹고 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철호'는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고자 하지만, 세사은 그가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놓아 두지 않는다. 전쟁통에 어머니는 정신 이상자가 되고, 제대를 하고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던 동생 '영호'는 권총 강도 행각을 벌이며, 음악도였던 아내는 가난한 삶에 찌들어 죽어 간다. 여동생 '명숙' 역시 양공주가 되어 버린다. 이러한 가족의 비극적인 삶은 결국 '철호'의 정신을 혼란으로 몰아넣으며 방향 감각을 잃은 '오발탄'과 같은 존재로 만들고 만다. 이렇게 일가의 비극을 통해서 전후(戰後) 상황의 부적응성과 혼란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 이 작품의 일차적인 의미가 있다.그러나 이 작품의 참뜻은 전후(戰後)의 비참하고 불행한 면을 제시했다는 점보다는, 그처럼 비참하고 불행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양심은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가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철호'는 월남(越南) 후에 옛날의 행복을 잃고 혼란스럽게 되어 버린 가족의 가장(家長)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볼 때 그는 계리사 사무실 서기로서 남편 구실, 자식 구실, 가장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무능력자이다.그가 그러한 무능력자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는 '영호'의 입을 빌려 그것을 '철호'의 양심 때문이라고 본다. '손끝의 가시'에 불과한 양심만 빼어 버리면 남들처럼 잘 살 수 있는데도 '철호'는 '전차값도 안 되는 월급'을 위하녀 몇 십 리를 걸어 다닌다. 밤낮 쑤시는 충치를 뽑을 돈이 없어서 참고 견디면서도, 시장한 창자를 보리차로 달래곤 하면서도 '손끝의 가시'를 뽑지 못한다. 이미 양심도 도덕도 사라진 지 오래인 현실 상황과 타협하지 못하는 것이다.작가는, 현실과 화해하지 못하고 양심이라는 '가시'를 빼어 버리지 못한 채 가족들의 비극적인 삶을 바라보게 되는 송철호를 통해서, 전후(戰後) 현실에서 양심을 가진 인간의 나아갈 바를 묻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소설 속에 그 해답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송철호의 모습이 결말에 자리잡고 있을 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계리사 송철호는 삶에 울분을 떠 트린다.(2) 전개 : 철호 일가의 비참한 삶의 모습. 정신 이상자인 어머니, 실업자인 남동생, 양공주 가 된 여동생 사이에서 송철호는 절망감을 느낀다.(3) 위기 : 송철호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남 동생 영호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의 차이를 놓고 대립한다. 영호의 권총 강도 행각과 아내의 죽음.(4) 절정 : 동생 영호가 강도 짓을 하다 잡혔다는 연락이 오고, 집에서는 아내가 병원에 실 려 갔다는 소식을 전한다. 가족의 비극적 삶으로 인한 극도의 방황.(5) 결말 : 아내의 죽음을 확인한 송철호는 고집스럽게 양쪽 어금니를 다 뽑고 택시를 잡아 타지만 행선지를 대지 못하고, 삶의 방향마저 상실한 자신의 모습이 오발탄임을 느낀다5. 핵심정리갈래 : 단편소설, 전후 소설문체 : 간결체성격 : 사실적제재 : 힘들게 살아가는 철호 가족들의 생활주제 : 전후의 비극적인 삶과 혼란스러운 사회상전후(戰後)의 비참한 사회 속에서 정신적 지주를 잃은 불행한 인간의 비극.(부조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 패배하는 양심적 인간의 비애)분단의 고통과 전쟁의 상혼을 고발하고 자유와 평화에 대한 의지와 동경배경 : 시간적- 6?25 직후 사회적 빈곤과 실향민들의 아픔이 절정이던 시기공간적- 서울의 실향민들이 모여 사는 해방촌.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의의 ① 전후(戰後) 한국 사회의 암담한 현실 고발② 전쟁으로 인해 파멸해 가는 인간상과 내면의 허무를 표출.※참고♥ 표현상의 특징① 자극적이고 감동적인 이범선 자신의 독특한 설법의 효과② 당시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묘사, 전쟁 이후 한국 사회가 겪고 있던 참다운 시련(허무주의라 일컬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였다.③사회 부정에 대한 반감을 가장 직설적인 방법으로 표상시킴.가중되는 생활의 압력에 의한 자포자기적 상태의 소시민 누구나 겪고 있던 사회 부정에 대한 반감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였다.♥ 제목 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잘못 발사된 탄환. 이 작품에서와 같이 성실하게 일하지만 아이의 신불 하나 까움을 느끼지만, 전쟁 직후의 극도의 폐허 속에서 살아 남아 지금의 한국 사회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철호와 같은 인간형이라는 점에서 그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한 전형이다.반면 영호와 명숙은 부정적인 인물이다. 생계를 위해 양공주로 나선 명숙과 일확천금의 허황된 꿈으로 강도 행각을 벌인 영호는 전후 사회를 절망감을 안고 사는 인물형이다. 그러나 이들의 절망적인 삶의 원인이 전적으로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부조리에 있다고 보는 것은 무책임하다. 오히려 바람직한 인간이라면 상황이 어려울 때 성실함을 다해 이를 돌파해 나가는 의지를 보이는 인물일 것이다. 영호와 명숙은 사회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 삶의 방향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인물이다. 물론 사회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불만을 자신의 부도덕한 행위를 합리화하는 방편으로 삼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러 이유에서 우리가 영호와 명숙의 그릇된 삶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어린 조타의 신발 하나 제대로 사주지도 못하는 그들의 형편을 이해한다면, 그들의 선택에도 일말의 동정이 간다. 또한 절망적이고 어려운 삶을 무조건 참고 견디라는 설교 뒤에는 도덕적인 위선이 깔려 있을 수도 있다.♥ 형 철호와 동생 영호의 대립형과 아우가 서로 가치관의 대립으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형을 도덕적이고 소극적 인물로 비록 가난하게 살더라도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동생은 가난하게 사는데 도덕과 양심이 무슨 소용이냐면서 그런 양심따위는 버릴 것을 권한다. 철호를 주동인물, 영호를 반동인물로 본다면 이 부분에서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갈등이 존재한다.동생 영호가 강도 짓을 하다가 잡힌다. 비록 가난을 조금이나마 이겨 보려고 강도짓을 했으나 양심을 버리지 못했다. 결국 잡혀 든 영호. 가난함 때문에 한때 비도덕한 마음을 먹고 범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잡히고 수감된다.아내가 해산하다 죽는다. 아내의 죽음으로 지금까지 태연하던 철호도 강행한 발치의 결과는 과다 출혈과 실신과 죽음이다. 그에게는 탈출구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설정이야말로 부조리 의식에 가깝다.♥ 소시민의 한계짙은 서정적 정취를 밑바닥에 깐 회상적 취향. 얼마되지 않는 봉급에 뿌리혹박테리아처럼 다닥다닥 매달린 식구들을 즐겨 보여주는 그의 소시민에 대한 완강한 집착, 그러면서도 양심이라는 가시를 끝내 빼버릴 수 없는, 아마도 틀림없이 기독교적 교육의 잠재인 듯한 도덕률, 이런 모든 그의 특성은 에서 희귀하리만큼 완벽한 예술적 환치를 거두고 있다♥ 작품의 한계어떤 평자는 이를 '서민성의 미학' 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바로 그곳에 이범선 문학의 한계가 보이기도 한다. 이범선 소설의 주인공들은 숙명적인 환경을 아무런 반성 없이 그대로 수락하는 소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이것은 그의 소설이 사회 고발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왜 서정적인 목소리를 유지하는가의 이유가 된다. 그리고 이범선이 다루고 있는 소시민은 그들의 패배와 좌절을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 밖으로 확산시키지 못하고 자신의 뇌수 속에 그것을 한정시켜 버리고 만다. 그러한 굴욕적인 체험을 스스로가 수락하는 과정 속에서 소시민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 이범선(李範宣,1920~1982)(1) 이력평남 신안주(新安州) 출생. 유복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남. 1938년 평양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하다가 광복 후 월남하여 1952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54년 거제고교 교사, 그 후 대광(大光) ?숙명(淑明) ?휘문(徽文) 등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고 1955년 [현대문학]에 단편 , 통과 등단(김동리 추천)했다. 1960년 외국어대학 전임강사, 1970년 월탄문학상 수상하고 1977년 교수가 되었다. 그동안 한국문인협회 이사, 소설가협회 부대표위원에 선임되었고 한국문인협희 부이사장에 선출되었다.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작품으로 창작집 《학마을 사람들》 《오발탄》 《피해자》 《분수령》 《냉혈동물》 《밤에 핀 해바라기》《춤추않다.
조직의 비인간화 긍정의 정신은 어디에……- 신상웅의 「히포크라테스의 흉상」을 중심으로…Ⅰ. 들어가기작가의 관심은 참으로 광범위하다고 할 수 있다. 소재를 선택하는 면에 있어서, 작가는 어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면모를 보인다. 신상웅의 「히포크라테스의 흉상」을 보면서 제일 먼저 느낀 집요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는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체 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흔히 이런 군대의 문제라고 하면 전쟁 문학적인 면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이 소설은 그런 극한 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지 않다. 그는 전쟁과 관계없이 순전히 군 조직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비인간화의 진면목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한 편으로는 군사 문화의 장기적인 정치체제가 지속되어 온 우리나라의 사정에서는 용기 있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우리는 이 속에서 신상웅 문학의 성격과 시대 상황들을「히포크라테스의 흉상」을 중심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줄거리군인인 송문집은 밤중에 갑자기 복통을 일으키게 된다. 송문집의 갑작스러운 복통에 주변의 동료들은 걱정하며 그를 거든다. 하지만 그의 복통은 더욱더 심해져만 가고 결국엔 눈 덮인 밤길을 헤치며 주번사관과 정소위는 후송을 강행하게 된다.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추위와 함께 그들은 송문집을 의무대로 호송한다. 송문집은 끈임 없는 복통 속에서 고통을 호소하며 의무대에서 야전병원 후송병원 순으로 여러 절차를 거치며 후송된다. 송문집은 마지막 제 18 육군병원에 있으면서 계속되는 복통과 함께 병실의 여러 모습을 본다. 그리고는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던 날 송문집은 병이 더욱 악화되어 찢어지는 소리를 지르며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사람이 없는 데다가 모든 것은 느리기만 하다. 결국 송문집은 같은 방에 있던 환식이라는 환자가 급히 구해다 주는 진통제를 먹고 죽고 만다. 마지막엔 사람들이 모두 돌아왔지만 진술은 이미 자살로 처리되어 있었다.* 작가 신상웅그는 1938년 11월 10일 일본 교토에서 출생했다. 중앙대 영문학과 및 동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1968년 지에 제 3회 신인문학상에 중편 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그는 1973년 장편 으로 제 6회 한국 창작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사실주의적인 소설을 주로 발표하였다. (1969), (1970), (1972), 등 많은 대표작을 남겼다.Ⅱ. 시대상과 작가의 세계1. 1950∼70년대에 이르는 문학1950년대는 남북 분단이나 이념의 대립에 연관되는 것을 도리어 문학에 도입하지 않는다. 이념으로써의 도피 상태나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정면으로 파헤치지 못한 체 정치적인 형태로만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전쟁의 피해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고 사회적인 현실 문제에 직시한다. 이렇게 1950년대의 후반기에 들어가면 현대 문명의 메커니즘과 그늘을 형상화하는데 주력을 하게 된다. 따라서 현실 자체를 역설적으로 의식화함으로써 사회 현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주지적 경향이 강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1960년대에 이르면 시에서도 사회시와 참여시가 등장하듯이 사회 상황에 대한 응전 방식의 탐구가 이루어진다. 또한 이미 50년대에 부정 부패에 대한 모습이나 분단의 비극과 사회 현실의 모순을 평가하게 된다. 즉, 60년대는 50년대 문학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때의 소설들은 인물형의 구축에 관한 부분을 중점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소설 작품에서 내용이나 주제면을 보게 되면, 동일한 것이라도 시대에 따라서 다시 재현한 사실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작품 자체의 기법만은 전적으로 작가의 개성이고 독자적, 일회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작품의 기법이라는 것은 그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한 유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작품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형상화에서 독자에게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소설 작품의 여러 요소 중에서 인물이 부각될 수 있는 것이다. 이때의 인물이란 여러 가지 패턴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소설이 다양함으로 그에 따라서 인물의 모습도 여러 가지가 되는 것이다. 첫 번째로는 그들이 입지 한 극한상황을 아니, 라고 시인하면서도 거기에 대해 반항할 용기나, 자신의 능력을 끝까지 발휘해 보지도 못한 채 외부의 제약에 굴복해 버리고 만다. 두 번째로는 따라서 자신이든 집단이든 어떠한 인생의 현실에 대하여도 개선이나 수정을 가하여 새로운 질서의 세계나, 또 다른 밝은 운명을 찾으려는 적극성도 찾을 수가 없다. 이는 자기 폐쇄적 경향으로 흐르고 말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인물형을 우리는 쉽사리 볼 수 있다.1970년대에 들어서면 구체화된 계층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산업 사회에 의한 상대적 빈곤과 함께 나타났다고 볼 수 있고 이로써 문학의 현실 참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한다. 이 시기에는 현실에 대한 정당한 인식과 그에 따른 실천적 의지를 시를 통해 부연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우리는 시대의 흐름을 바라보면서 분명하게 알아야 할 부분은 단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60년대 작가들의 입장에서 (신상웅이 60년대 작가이므로) 6·25나 4·19 같은 민족적 시련을 어떤 방식으로 치르지 않으면 안되었느냐 하는 문제이다. 즉, 6·25의 비극 속에서 20대는 젊음을 몸소 내맡겨야 했었고, 4·19의 시련을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선 30대의 위치에서 관망해야 했었던 50년 대 작가들과는 다른 것이다. 이들에게는 6·25는 유년기의 아련한 무의식 속에서 지나쳤고 4·19는 20대의 젊음으로 치러야 했던 것이다.2. 신상웅의 문학의 특성작가 신상웅은 6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작품활동을 했다. 한 마디로 걸쳐 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작가적 특성은 아마도 시대 속에서 찾아낼 수가 있을 것이다. 1960년대는 아무래도 자유화 민주화의 열망 속에서 모순과 갈등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모순과 갈등의 시대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문학 속에 이런 모든 것들을 투영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우선 첫 번째로 그의 문학은 편안하거나 안주하면서 읽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집요하게 계속해서 심문하고 읽는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앞서 잊고 싶었던 것들은 다시 끌어들이는 힘을 발휘한다. 이것은 그의 소설이 지식인으로써 투철한 사명감과 작가적 장인 정신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어쨌든 그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그는 흐물흐물 하게 넘겨 버리길 바라지 않은 것이다. 두 번째로 그는 리얼리즘적 유산의 충실한 상속자로써의 면모를 보여 왔다. 그의 소설을 접하면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시대의 상흔과 아픔은 이런 리얼리즘적인 면모에서 더욱 부각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시대의 내재된 모순과 갈등을 그만의 시각과 방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로 주제 의식의 부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가 주제 의식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면모를 볼 수 있다. 이에 서사적인 응집성을 이야기 할 수 있다. 그가 주제 의식을 끝까지 고수하려는 면모를 보이기 때문에 그의 소설에서는 응집되어 있고 단단하다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의 소설에서 작중인물과 그를 둘러싼 세계와의 불화를 작가는 극한까지 파고 들어감으로써 작가는 매우 단단하게 작품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인공이 자신을 둘러싼 우호적이지 않은 세계와 힘겹게 싸워 나가는 과정이 그의 소설의 주선율을 이루게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필사적으로 분투하지마 결국 불리한 여건을 타개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문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소설의 문체는 깔끔함의 극치라고도 말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앞서 이야기한 응집성이나 리얼리즘적인 면모에서 오는 당연함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문체는 장식을 배제한 언어로 평이한 듯 하지만 극적 분위기의 조성이나 정확하게 사실감 있게 보여주는 부분에서는 성공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따라서 묘사적이 부분이 지극히 적다라고 할 수 있다.Ⅲ. 「히포크라테스의 흉상」이해와 감상이 작품에서 기법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부조리한 부분을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음이라고 하겠다. 이에서는 구조적인 부분을 볼 수 있는데 현대 사회의 메카니즘의 비인간적 성격과 그 안에서 발휘되는 인간성이 교묘하게 병렬 서술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다른 한 편에서는 조직에서의 불합리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속에서 동료를 거드는 모습을 비추면서 인간 긍정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이 소설에서의 하나의 기교라고 할 수 있다.이 작품에서는 반대되는 두 이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즉, 주인공 송문집 일병은 복막염이 발병,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는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하기까지의 경과를 추적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즉, 결함 투성이의 조직 메커니즘에 내맡겨진 주인공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죽어 가는 부조리한 과정을 작가는 정말 침착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서 두 이미지는 계속해서 이동하는 것과 그 이동 속에서 보여주는 단절이다. 이는 정확히 단절이라기 보다는 부딪칠 수밖에 없는 벽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즉, 산 너머 산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듯이 최악으로 여겼던 상황 너머에 더욱 악화된 조건이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이야기는 계속해서 악한 상황으로 치닫지만 이는 금방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지연되면서 결국 더욱더 깊은 곳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삶을 향한 주인공의 투쟁은 헛수고에 불과하다. 이는 이동과 그 에 따라서 막혀 있는 벽의 이미지를 교차하면서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