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포스트모더니즘의 배경*서구세계는 제 1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이미 커다란 정신적 위기를 경험하였다. 또 다 시 제 2차 세계대전과 그 직후에 일어난 많은 끔찍한 사건들에 의하여 그 위기가 어느 때 보다도 더욱 첨예하게 부각되었다. 히틀러의 나치주의의 절대권력과 유태인의 대량학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의 원자탄 투하로 말미암은 전 인류의 멸망에 대한 공포감, 무차별 한 자연 환경의 파괴,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와 그에 따른 기아에 대한 두려움 등이 바로 그것이다. 많은 예술가와 사상가들은 이러한 현상들이 모더니티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으 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절대성보다는 상대성을, 일원론보다는 다원론은, 그리고 독단주의보다는 관용주의를 한결 더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2)포스트모더니즘의 내용*이성 중심주의에 대한 진리 또는 철학에 대한 비판이다. 시공의 복합체에서 존재하는 모든 텍스트(인생, 자연, 사회, 역사, 우주)는 텍스트의 저자와 독자의 상호 관계에서 다양한 해독법이 존재하듯이 무의미가 그렇게 흩어져버리는 은유의 공간이다. 형이상학, 동일성, 인과성, 확실한 진리, 혹은 궁극적 목적이라는 근대의 인식론적인 가치관은 해체의 문자학 으로 대체된다.*인간 주체에 대한 비판적 해체이다. 인간의 주체는 무의식이라는 타자의 기호에 의해 자율 성을 박탈당한 불투명속에 타자적 진술로 타자적 욕망을 낯설게 기호화하며 살고 있다. 나 는 하나의 타자이며, 인간은 끊임없는 균열 속에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욕망과 결핍 속 에서 존재의 해체를 강요당하며 살게 된다.*역사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역사에 일반적인 법칙이 있다는 사유, 또는 현재의 사회가 과 거 문화보다 우월하다, 서양의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우월하다라는 서양 중심주의를 비판 한다. 진보와 발전에 의해 기술되던 기독교적 묵시론적 역사관이 하나의 신화적 이야기였 음을 밝히며 다른 방식의 역사 읽기를 제시한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은 기호학적 기표 와 기의의 자연현상, 욕망의 정치학, 육체의 텍스트 등 다양한 문제의식을 주제화한다.3)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단일성과 통일성을 거부하는 대신 분열성과 다양성 및 여기에서 보여지는 상이점을 중시 하면서 이것을 그대로 실천적 정치 전략에 적용하려는 데 있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은 분 명하게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이 또 하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일관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에는 뚜렷한 구분이 불가능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모더니즘처럼 모더니티에 대한 비판이기 때문이다. 즉 포스트모더니즘 이란 이미 모더니즘 속에 있었던 모더니티에 대해 비판이 확대되어진 것으로 간주해야 한 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런 의미에서 모더니즘의 연속이다.*지금까지 포스트모더니즘은 주로 문학에 국한된 개념으로 흔히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비단 문학뿐만 아니라 음악·미술·건축·연극·영화·댄스·사진·비디 오 아트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예술 영역에 걸쳐 매우 폭넓게 사용되는 개념이다. 그런 데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비록 포스트모더니즘이 이렇게 여러 예 술 영역에 걸쳐 폭넓게 나타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예술이나 문화 영역 에서 동일한 시기에 그리고 동일한 양상으로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떤 단일한 예술 운동이 아니며 일관성있는 단일한 사상체계는 더더욱 아니다. 예를 들어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예술가 중의 한 사람으로 흔히 일컬어지는 존 케이지(J.Cage)는 `나는 내 작품에 대하여 말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내가 내 작 품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오직 내가 쓴 시를 통해서일 뿐이다'라고 말하곤 하였다. 한 마디로 말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디까지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세계에 나타나기 시작한 다양한 예술적·지적·사상적 경향을 막연히 지칭하기 위한 일종의 제유적(堤踰的)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너무 지나치게 체계적인 이론으로 파악하 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다원성과 상대성 그리고 비결정성을 강조하는 그 기본 정신에 적잖 이 어긋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4)포스트모더니즘의 결과*새로운 형태의 문화를 창출포스트모더니즘이 야기시킨 첫번째 현상은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벽이 무너짐과 동시에 이 두개를 소화하고 초월할 수 있는 새 형태의 문화를 창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많은 미술품들이, 이윤추구를 위해, 거대한 조직망을 가지고 있는 뉴욕 현대 박물관이나 런던 태트 미술관으로 유입되고 상품화되면서, 초기 하이모더니즘이 지녔 던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무디어지고 급기야는 또 다른 권위의식으로 전략해 버린 데 대한 거부반응이었다. 이렇게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은, 후기인상주의에 제동을 걸었던 다다이즘 이나 초사실주의와 같은 전위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 5월 9일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뮤지컬을 본 날이다. 내가 본 것은 한국에서 1000회 이상 공연된 락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강태경 교수님께서 추천하신 몇 작품가운데 친구들과 선배들이 재미있다고 추천해서 보게 되었다. 마침 내가 이 연극을 보기 위해서 대학로에 들렀을 때는 지하철 1호선 이 1000회를 돌파하게 되어 연장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 연극을 보기 전 나는 뭐가 그렇게 대단하기에 다른 나라의 작품이 우리 나라에서 1000회씩이나 공연이 되었나 라는 의구심과 기대감을 가지고 극장에 들어갔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이 연극을 보러온 관객이 공연장을 꽉꽉 채웠다. 특히 관객 중 많은 사람이 직장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새삼 놀랐고 그 만큼 기대감도 커졌다. 날씨가 더웠던 탓인지 아니면 사람이 많아서인지 짜증이 날 정도로 갑갑했다. 어느덧 소극장의 안의 조명은 모두 꺼지고 2층 무대의 두 가장자리에서 그룹 무임 승차 의 연주가 흘러나왔다.이 연극은 짧은 단발머리와 촌스러운 녹색 옷을 입은 연변 처녀의 노래로 시작되었다. 작은 체구에서 어쩌면 저렇게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나올까 의아해 하면서 이 작품에 몰입이 되어 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사 전달이 잘 되지 않아 이해하기가 조금 힘들었지만 가사 한마디 한마디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연극을 보니 더욱 더 잘 이해되고 연극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연극은 백두산에서 풋사랑을 나눈 한국남자 제비 를 만나러 임신한 체 서울에 온 연변 처녀 선녀 의 서울에서의 하루를 보여준다. 이 연극에서 뚜렷한 주제의식을 찾기란 쉽지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여러 가지 삶의 방식 중 몇 가지를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는 가지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극 지하철 1호선 은 교통수단이나 생계수단으로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서민들의 삶의 내용을 다룬 서민연극이다. 이 서민들의 직업도 창녀, 소매치기, 전도사, 재수생, 소녀가장, 삐끼, 대학생 등으로 다양하다. 이들에게는 언뜻보면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서울 최고의 대중 교통수단인 지하철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희망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제 9장 [열차 안/동대문역-종로3가역]에서 선녀가 부르는 노래 한 소절에서 잠깐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마지막 순간까지 꿈을 꿔야 해, 행복을 꿈꿔 봐. 너에게 찾아올 거야. 그건 언제라도 바로 오늘 중에도 아주 작게, 아니면 엄청난 기적처럼 꿈이란 소중한 것, 끝도 없는 것 그리고 이뤄지는 것 이라며 선녀가 안경과 철수와 함께 걸레를 그리며 노래를 부른다. 이들은 이 연극에서 잠깐 나오는 강남 사모님 들처럼 사치스런 꿈을 그리지는 않는다. 다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이나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가족과 함께 한 집에서 배부르게 밥을 먹는 것 등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해서 행복을 느낀다. 이렇듯 우리가 보았을 때는 아주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들은 이런 것들에 대해서 기뻐하고 슬퍼하는 우리 사회의 서민들, 아니 소외된 인물들이다. 바로 지하철 1호선 은 이러한 인물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앞에서도 말했듯이 지하철 1호선 은 선녀라는 인물이 서울에 도착한 날의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하룻 동안의 이야기다. 장소는 서울역, 오팔팔의 주변지역과 지하철 안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녀는 제비를 찾기 위해서 서울역과 청량리역을 왕복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보게 된다. 이로써 연변 처녀 선녀가 가지고 있던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실망하게 된다. 똑같은 곳을 계속 왕복하는 이 연극에서는 하룻동안의 이야기를 보여주었지만, 이런 내용들은 서울시민들의 하루하루가 똑같이 반복되는 그들의 삶에 대한 내용이다. 세일즈맨의 하루, 학생들의 하루 등 각기 다른 내용의 삶이지만 이들은 똑같은 생활을 반복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 생활로 인해 같은 시간대의 지하철을 탐으로써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게도 된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모르는 척을 하고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지하철을 왕복하면서 일어나는 내용을 전개하는 이러한 구성은 서울 시민의 삶의 주기성과 익명성을 표현하기에 적절하다.이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자기 스스로도 비참한 삶을 산다. 하지만 그들은 주변인물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 이것이 바로 소외되었지만 자기의 순수성을 잃지 않은 자들, 즉 주인공들의 특징이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고 배우지도 않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천대를 받는 등 소외 받고 힘든 삶을 살지만 그래도 꿈을 갖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며 천천히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이 연극에서 나오는 주인공들 중에서 내가 제일 관심과 연민을 가진 인물은 바로 걸레 라는 창녀다. 마지막 부분에서 걸레가 선녀를 위로하기 위한 노래를 부른다. ... ...날봐, 내 꼴 좀, 요 걸레를. 병들고 마약중독까지 다들 다니는 중학교도 못 나왔고. 엄만 술만 먹으면 때려댔지. 엄마 놈팽이한테 당하고 끌려왔어... ... 머리 빗겨줄 할머니도 개 한 마리도, 친구 한 명도 없고 앞날은 끝도 없는 터널. 캄캄하고 독사만 우굴대는 저 땅꿀처럼 그런 내게 너 같은 선녀가 찾아와 울어주다니... ...(후렴)하지만 너의 슬픔은 곧 사라져. 그건 내가 약속할 수 있어 니 얼굴에 씌었어. 자, 용기를 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왜냐면 넌 너무 예뻐. 울 때조차- 이렇게 노래부른다. 자기의 죽지 못해 사는 비참한 삶 때문에 힘겹지만 다른 사람(선녀)을 도와주기 위해서 마지막 힘을 내서 그녀에게 용기를 준다. 그녀는 평소 험한 말 등을 하며 강한 척 하지만 결국 자기의 조그만 꿈이 깨지자 자살하고 마는 그런 연약한 존재이다. 이처럼 사회에 소외된 사람들일수록 작은 행복을 꿈꾸고 작은 일에 쉽게 상처를 받는다는 것을 이 연극에서는 말하고 있다.
웅진식품에서는 Package를 중요시 여겨 4P가 아닌, 5P로 나누어 마케팅 전략을 진행시킨다.1. Product1 제품 개요아침햇살 은 순 국산 쌀을 원료로 무설탕, 무 방부제, 무색소의 자연건강 음료로서 99년 1월 18일 출시되었다. 아침햇살 은 쌀을 효소로 분해하고 볶은 현미에서 추출한 영양 성분을 합한 뒤 여기에 단백질 성분을 보강한 전통 음료이다.2 생산 기술아침햇살은 경쟁사들과 다른 독특한 쌀 추출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웅진식품의 전신인 웅진인삼이 보유했던 인삼 엑기스 추출방식을 쌀에 도입한 것이다. 이 추출방식은 현재 한국, 미국, 일본에 제품 제조 특허 출원 중에 있으며, 단순한 휘석 방식을 사용하는 경쟁사의 제품들과 질적인 면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2. Package1 제품 디자인{그림아침햇살의 용기에는 시인 황석봉 화백의 수묵화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남자와 여자의 만남과 그로 인한 생명의 탄생을 의미한다. 즉, 아침햇살의 제품 디자인은 주 원료인 쌀이 우리 생명의 근원이라는 문화적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2 용기별 target segment{Target용기의 특징180ml 병여성부드러운 이미지150ml 캔남성차갑고 날카로운 이미지500ml PET청소년적지 않은 양, 휴대하기 편리함1.5L PET가정용대용량아침햇살은 180ml 병, 150ml 캔, 500ml PET, 1.5L PET의 4가지 용기들로 생산된다. 이 각각의 용기는 다른 target을 가지고 있다.3. Price아침햇살은 기존 음료시장에서 프리미엄 주스 류의 가격인 중고가 정책을 세웠다.(표 참조)이에 비해 아침햇살 출시 이후 후발주자로 참여한 경쟁사들은 경쟁 제품의 가격을 아침햇살과 비슷하거나 낮게 책정한 것을 알 수 있다.{아침햇살의 소비자 가격180ml 병700원150ml 캔600원500ml PET1500원1.5L PET2800원표동원산업 상쾌한 아침 : 180ml 병 700원, 1.2L PET 2200원롯데칠성 별미별곡 : 180ml 캔 500원, 180ml 병 700원해태음료 천하일미 : 180ml 병 700원, 190ml 캔600원, 1L PET 2000원4. Place1 대리점 체제대부분의 음료 업계(롯데칠성, 해태음료 등)에서는 영업소와 대리점의 2원화 체계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웅진식품은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영업소를 일체 운영하지 않고 대리점만으로 유통을 관리하고 있다. 현재 웅진식품은 전국 160개라는 최대의 대리점과 1000여명의 R/T(판매사원)를 가지고 있다.2 영업 조직{대리점전국 160개유통 부서전국 할인점, 판매점 담당특판 부서특수장 담당(관납, 군납)ex)도로공사, 홍익회 등사판 부서기업판매(B2B)해외 사업팀미국, 홍콩. 일본, 중국, 싱가폴 진출차후 후진국에 현지 공장설립 계획추진3제품{일반 소매점점주별로 다양할인점1.5L PET 중심편의점180ml 병, 150ml 캔, 500ml PET 중심백화점판매에 주력하기보다는 전시를 통한 홍보효과대형 슈퍼마켓다양하게 취급용기별 유통 경로5. Promotion1 광고2 판매촉진1) 무료 시음회 - 제품 발매 초기에는 주 공략층인 20대 초반을 위해 각 대학 축제에서 무료 시음회를 가졌다. 그 후에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가두 시음활동을 지양하는 대신, 전국 대리점과 거래하는 거점 거래선을 중심으로 한 점내 판매활동을 겸한 도우미 시음행사를 적극 실시했다. 전국 주요 150여개 E-Mart, 킴스클럽과 같은 대형 할인점 내에서의 지속적인 시음 행사를 가졌다.2) 계열사를 통한 판촉 - 웅진이 소유한 계열사를 이용한 특이한 Case의 판촉 활동이 있다. 웅진닷컴(출판)과 웅진코웨이(정수기)가 소유한 많은 방문판매 사원들을 통해 1:1 비공식적 판촉활동을 펴기도 했다. 이들은 원상품 판매 후 선물 증정 형식으로 아침햇살을 제공했다.3 PR1) 아. 초. 하 행사웅진식품에서 나온 3가지 음료인 아침햇살, 초록매실, 하늘보리를 하나로 묶어 공동 even를 열었다. 조성모, 리아, 문차일드 등 초청가수 공연 외에 고소영 팬사인회, 아초하 레크레이션/ 아초하 삼행시 경연대회/초록매실CF따라하기 등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졌다.1, 2, 3차에 걸친 신문광고를 통한 경품행사로 소비자들의 인식도를 높였다.2) 햇살 DAY매월 1일을 햇살 DAY로 지정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락을 대신 해주는 우체국 역할과 불우한 이웃을 돕는 햇살 이미지 행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3) publicity일간지와 잡지 등에 TV CF에 관한 기사들을 지속적으로 내보냈다.3.광고목표-광고 캠페인 초기 6개월 동안 이전 구매고객에 대해선 재구매 유도 70%달성과 비 구매고객 중 60%를 구매를 확신하는 신념을 형성시킨다.(아침햇살은 쌀음료의 리더브랜드로서 쌀음료 자체에 대한 구매를 유도하는 광고가 더욱 적합하다. 그래서 쌀음료 자체에 대한 소비자가 갖게 되는 혜택을 강조함으로써 아침햇살과 쌀음료의 인지도를 높여 장수브랜드로 상등시키는 광고전략을 세운다.)6.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궁극적 혜택-아침햇살을 마심으로서 따뜻한 겨울을 보낼수 있게 함-밥 대용7.reason why-아침햇살을 전자레인지 등에 의해 데워서 먹는다 -> 따뜻한 음료로서의 아침햇살(보통 추운 겨울날은 따뜻한 캔 커피의 수요가 높다. 하지만 카페인이 많은 커피는 몸에 해롭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을 보안 우리나라 음식의 주식인 쌀로 만든 아침햇살은 신토불이 라는 한국인의 정서에도 부합, 우리 몸에도 좋으면서 싸늘한 날씨에도 적합하게 따뜻하게 마실수 있는 음료이다.)-아침햇살의 주원료인 쌀은 탄수화물로서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밥 대용으로 이용될 수 있다. 특히 아침을 거르기 쉬운 학생이나 직장인을 위해 간편한 아침식사로서 아침햇살이 유용하다.
발레와 현대무용1. 서론인류문화의 발달과정에서, 최초로 등장한 예술은 두 가지, 즉 무용과 건축이었다. 그 중 무용이 먼저 온 것으로 가장 오래되었고 웅장했으며 직접 신체를 통하여 표현했기에 모든 예술 중 설득력이 제일 강했고 또 예술의 근원이 되었다. 따라서 음악, 시 등은 무용에 종속된 자매예술로 볼 수 있다. 건축술 또는 건물은 제 2단계 예술로서 육체를 떠나 형성된 예술세계의 근원이 되었으며 조각, 그림, 디자인 등이 건축 분야에 속한다. 최초의 두 예술인 무용과 건축은 창조된 표현과 작품을 전달하기 위해 서로 결합하기에 이르렀으며 오늘날 무대예술을 낳게 되었다.무용은 리듬을 타고 생기는 원시적인 충동으로 인류보다 더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무용은 이미 선사시대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며 인류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경지에 도달, 그 어떤 예술이나 과학도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하여 원시사회에서 발달된 무용들은 오늘날 현대문명이 접근하기 어려운 복합된 구성과 표현들로 이루어져 있다.이 글에서는 이러한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무용의 특정 분야인 발레와 현대무용에 대해서 알아보겠다.2. 본론1 - 발레먼저 발레에 대한 설명부터 하겠다. 발레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ballo 의 개념부터 먼저 설명되어져야 한다. 댄스는 수세기를 걸쳐 발전해 오다 르네상스 시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 때의 춤은 시사적이기보다는 극적인 춤을 추는 것으로 'ballo' 의 도입을 통하여 형태를 잡았다. 'ballo'는 이탈리아인들의 놀이로서 각 나라로 유입됐으며 여기에 고귀함을 덧붙인 놀이형태를 국민들은 즐겼다. 15세기 이탈리아의 Catherine de Medici 가 프랑스의 헨리 2세와 결혼했을 때, 그녀는 프랑스에 ballo의 형태를 가져갔다. 발레(Ballet) 는 16세기에 탄생했으며 Medici는 발레를 왕실마당의 놀이로서 고안했다. 춤을 통하여 이야기를 전하는 최초의 발레는 'Le Ballet Comique de la Reine' 이었다. 이 발레는 1581년 프랑스 왕실마당에서 발표되었다. 이때부터 이태리에서 건너 온 발레는 프랑스에서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아래 발전하게 된다.루이 14세는 1661년 최초의 댄스아카데미를 설립하였고, 1669년에는 왕립무용 음악 아카데미를 설립하였다. 이곳(왕립무용 음악 아카데미)에서 발레전문가들은 수많은 스텝과 움직임에 대해 성문화 작업을 했다. 이때의 성문화 작업은 오늘날 classical ballet 기술용어의 근간이 되었다. 이러한 아카데미의 설립으로 귀족들의 취미활동으로 그쳤던 발레의 영역이 전문직업화 되었고 무용수들은 훈련을 받으면서 고난도의 기술들을 개발했다. 처음에는 남성 무용수들만이 존재했었지만, 1685년부터는 여성들도 전문적으로 무대에 출연하기 시작했다.1830년 발레는 진정한 극예술로서 자리잡았다. 전세계의 미술, 음악, 문학, 철학 등을 모두 광범위하게 포괄하려는 낭만주의 운동에 영향을 받아 발레는 전체적으로 새로운 모습을 갖게{되었다. 이때의 발레를 낭만발레(romantic ballet)라 한다. 당시의 무용사에서는 낭만발레를 혁명후의 혼탁한 정신적 상황이나 산업혁명이 가져 온 생활고에서부터의 도피라고 기록하였다. 이때부터 포인트 슈즈가 소개되면서 무용수들은 발가락 끝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또한 무용수들은 타이츠를 입기 시작했는데, 이 타이츠는 긴소매가 있는 셔츠와 짧은 쟈켓으로 되어 있어서 움직임이 훨씬 수월하게 되었다. 발레기술은 이러한 가벼운 의상들로 인해 더욱 확장되고 개발되었다.1890년대는 발레의 중심이 프랑스에서 러시아로 옮겨졌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은 이 당시 산업혁명 등을 거치면서 이미 시민사회로 들어섰지만, 아직 왕권사회였던 러시아에서는 서구화와 왕권 강화를 위해 왕실의 후원아래 프랑스 등지에서 발레를 도입하였다. 이때의 발레를 고전발레(classic ballet)라고 하며 수백 년의 고전 전통에 기초한 발레, academic 한 발레라는 의미를 지닌다. 고전발레는 전통적 발레체계를 고수하고 정서적인 내용보다는 테크닉상의 완벽함을 추구하며 명료성과 조화, 대칭, 질서 같은 형식적 가치들에 주안점을 두는 안무개념이다. 그리고 기본틀이 되는 것은 고전적 2인무(classic pas de deux)이다.전통적인 고전발레에서는 다음과 같은 공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무용(Dancing) + 연극(Drama) + 무대장치(Decor) + 음악(music) = 발레혹자는 발레라는 것은 춤에 의해서 설명되는 인간의 활동이다. , 보이는 것이 목적이며 연극적이면서 스펙타클한 것이다 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또 '발레란 다리의 기본 5자세를 바탕으로 하는 고저기법을 수단으로 하여 꾸며지는 무용극이다'라고 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기본 5자세 중 두가지는 외전(두발의 뒤꿈치를 맞닿게 하고 양쪽 발끝을 180도로 벌림)과 굴신(무릎을 굽히고 펴는 동작)이라는 기법이다.또한 무용가는 궁극적으로 표현해야 할 것들을 얼굴 표정에서 관객들에게 알려야 한다. 표정이란 꾸며지는 것이 아니라 내적 감성의 자연적인 표출 또는 분사이며, 저절로 꾸밈없이 스며 나오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어야 한다.발레는 연극과 마찬가지로 의상과 조명, 무대장치, 곡의 전개가 어우러진 하나의 막이다. 그런데 일정한 줄거리를 따라 무용극을 전개하다 보면 지루해질 우려도 있다. 이 때를 대비해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화려한 춤잔치가 디베르티스망이다. 보통 디베르티스망은 각국의 민속춤을 보여준다.발레의 기본요소는 아다쥬와 알레그로이다. 알레그로는 선회와 도약 등 빠르고 동적인 동작의 총칭하는데 반해 아다쥬는 정지된 포즈와 정적인 동작의 총칭이다. 알레그로에는 대도약이라든가 공중으로 치솟아 두 세바퀴 선회하는 공중회전, 솟구쳐 올라 하강하면서 두 다리를 가볍고 민첩하게 여러번 교차시키는 앙트르샤 등 현란한 동작이 있다. 여기에서 얼마나 유연하고 탄력에 넘치는 동작을 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감상 포인트이다. 또한 아다쥬의 대표적인 포즈는 아라베스크이다. 한 쪽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한 쪽의 다리는 뒤로 뻗어 육체의 전개를 극대화하면서 양팔로 몸의 균형을 잡는 이 포즈는 인간 육체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보여준다.여기까지는 발레의 정의, 역사, 여러가지 기법 등을 알아보았다. 다음 페이지에서는 1900년대 초부터 나오기 시작한 현대무용의 특징에 대해서 알아보겠다.3. 본론2 - 현대무용{1900년대 초, 발레의 형식성과 인위적으로 꾸며진 움직임이나 기법의 인위성, 그리고 내용상의 빈곤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된 현대무용은 기술적인 숙련도와 시각적인 볼거리만을 강조하는 폐단으로 말미암아 소모적이며 오락이나 장식적인 기능을 하는 구식 발레 체제를 허물고 새로운 자유로운 춤을 창조하고자 하는 무용수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20세기 들어와 미국이 개발, 발달시킨 현대무용은 현시대를 반영하는 새롭고 근대적인 무용이라 하여 현대무용 이라 불리게 되었다.Contemporary Dance란 용어로도 알려져 있으며 무용가의 개성있는 표현을 위주로 하는 극히 개인적인 형태를 취한다. 1933년에 존 마틴은 [현대무용론](Modern Dance)라는 책에서 현대무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내적 충동의 표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 현대무용은 기존의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은 이 새로운 무용 양식의 등장에 선행한 인물로서 현대무용의 창시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첫째로, 그녀는 그 전통적인 의상과 장신구들, 음악과 기교를 거부함으로써 무용의 아카데미즘과 완전히 결별했다. 둘째로, 그녀는 신발을 벗어 던짐으로써 그녀의 두발은 발레에서의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생명으로 가득 찬 대지와의 접촉점이 되었다.현대무용의 창설자들은 기존의 두 가지 형태, 즉 발레의 메마른 전문적 기교와 해석적인 무용의 공허한 무정형성을 거부했다. 여기에서 핵심적 요소는 사용되는 도구이다. 무용의 도구, 즉 몸은 친밀성을 나타내는 그 자체이다. 어떤 예술적 영감을 표현하기 위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몸을 사용한다는 것은 아주 새로운 방법으로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또한 이것은 몸의 각각의 부위 하나 하나의 움직임에 대해 내적으로 민감히 느끼는 것이며, 몸 전체가 이루어 내는 힘과 그것이 일정한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공간에 대한 민감성이다. 현대무용이 추구하는 최대의 목표는 그 내적 민간성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찾는 일이며, 그 얻어진 민감성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다.현대무용의 중심지, 독일과 미국에서는 문화적 배경의 상이함에 따른 차이가 있었다. 독일의 대표적 무용가, 비그만의 무용은 주로 인간과 우주 사이의 관계에 관련된 것이었다. 비그만은 공간을 시간과 마찬가지로 안무의 한 요소로 간주했다. 그러나 미국의 무용가들은 공간의 제약에 별다른 반감을 갖지 않았고, 그것의 사용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다. 그들의 대부분의 주제는 사람과 시간에 대한 개성적인 관점이었다.미국무용과 독일무용은 자연적인 동작 구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동작을 무용의 본질로서 강조하기 위해 비그만은 음악 없는 무용을 안무했으며 후에 타악기 반주를 사용하기도 했다. 독일무용의 성격은 주관적이며 표현 위주였다.무용기법 또한 다양해졌다. 발레의 보편적인 원칙대신에 현대무용은 긴장과 완화 (Tension and Relaxation), '낙화와 회복 (Fall and Recovery), '수축과 이완 (contraction and Release) 등의 원칙에 근거한다. 이러한 기법의 발명은 광범위한 표현을 가능케 했다. 급격하게 불규칙적으로 변화하는 현대음악의 리듬, 보기에 거슬리는 색과 형태를 취하는 그림 조각의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장면 등은 현대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데 기여했다.현대무용은 그 자체가 바로 한 정신이자 철학이고 사상이며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현대무용 선구자들의 영감이 흘러 나왔고, 이들의 개인적인 이념을 바탕으로 예술적인 형태와 구성이라는 하나의 체계를 갖추면서 현대무용은 서서히 발전되어 왔다.
풍요한 사회로 갈려면 산업혁명이란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것은 오늘날 경제발전에 있어서 하나의 공리가 되었다. 이러한 산업혁명이라는 것은 어떤 하나의 정해진 과정이나 사상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경제조직의 성격에 어떤 뚜렷한 변화가 있어 이들을 종합하면 우리가 산업혁명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발전을 이룩한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최초로 일어났으며, 다른 나라는 정부의 도움을 받는데 반해 영국은 정부의 도움 없이 자생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이 특징이다.양모공업은 영국 구공업의 가장 특징적이고 완벽한 모형이었다. 거의 모든 지방에 퍼져 있었고 농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며 오래고 튼튼한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생산제도가 사상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변화시킬 때까지 영국의 번영은 주로 양모공업에 의해 유지되었다. 이러한 양모공업은 너무나 보수적이고 특권과 편견에 짓눌려 있었기 때문에 기술의 혁신을 통해 자신의 개혁을 꾀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산업혁명은 외부(매뉴팩처)로부터 도입되어야만 했다. 이렇게 도입된 것은 생산도구 변화의 측면이 아니라 조직 변화의 측면이었다. 그것은 개인의 정신으로부터 갑자기 솟아난 새로운 발명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업관계의 완만한 발전에 의해서 결정되고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수단의 점차적인 집중으로부터 큰 이득을 본 자본가들은 단순한 상인이었으며, 그들에게 있어서 공업은 거래의 한 형태에 불과했다. 그들은 오직 상업적 이윤에만 신경을 썼다. 그들이 먼저 원료, 다음에 도구, 그 다음에 작업자의 소유자가 된 것은 오로지 이 차액을 증대시키고 구매가격을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들은 상인으로서 마침내 생산에 관한 모든 권한을 장악하게 되었다. 자본가들이 갈수록 이 방향으로 가도록 촉진한 것은 영국의 상업발달로 인해서이다. 당시 새로운 공업은 상업과 상업정신으로부터 솟아나고 있었다.영국 상업의 팽창은 사회 계급제도를 변화시켰다. 과거에도 부유한 상인들과 유력한 금융업자들이 존재해왔지만 그들의 부와 사회적 지위는 개인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중요하고 영향력있는 계급을 이루지 못한 체, 세습 귀족계급 밑에 있거나 젠트리 계급과 거의 동등한 상태였다. 그러나 점차 상인의 자식들이 최고귀족 출신이나 가장 유서깊은 가문의 자손들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신사, 정치가, 의원, 판사, 주교 그리고 귀족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세습귀족계급과 상인귀족계급 모두 영지를 설립하거나 확대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목적을 이룰려면 토지의 일부가 소유자를 바꿔야만 했다. 이런 상황속에서 경제혁명과 광범한 사회적 재편성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었다.농촌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농촌 상태의 변화-엔클로저, 공동지의 분할과 농장매점의 원인을 설명해주는 것은 농업경영에의 상업정신의 도입으로서 그 이후로 지주들은 토지를 자본으로 생각하면서 개량된 개발방식에 의해 토지로부터 더 나은 소득을 끌어낼 수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공업에서처럼 농업에서도 자본가의 주도권은 자기본위적이면서도 공동체에 유익한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기업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비용의 감축과 이윤의 증대란 사실을 깨달았고, 엔클로저로 인해 노동의 감소와 생산의 증가의 결과를 얻었다.영국의 산업혁명은 경제활동의 전통적 체제 안에서 하나의 혁명이 아니라 여러 개의 혁명으로 인해 이루어졌다. 그 각각의 혁명(인구혁명, 농업혁명, 상업혁명, 교통혁명)은 부분적으로 서로 독립적인 하나의 원인에 의해서 발생하여 각기 상호작용에 의해서 누적적인 효과를 일으켰다. 그러나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영국을 기술과 경제적 조직의 혁명적 변화를 일찍이 경험하게 한 것은 면공업과 철공업이었다.직물제조는 수세기 동안 영국의 국민생산물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해 왔었고 특히 산업혁명 전에는 모직물부분에서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다. 반면에 면공업은 뒤쳐져 있었고 규모가 작았을 뿐만 아니라 보호를 받지 않으면 질이나 가격에 있어서 다른나라와 경쟁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1730년대부터 개발되어진 방적기(면공업)에 의해서 달라지게 되었다. 또한 수요면에서도 면직물에 대한 해외시장의 형편이 좋아졌고 국내수요도 영국 인구와 소득의 증가로 좋아졌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Arkwright가 발명한 수력방적기는 면공업의 발전에 있어 하나의 기초가 되었다. 수력방적기는 공장용 기계였으며, 처음에는 수력에 의해서 나중에는 증기에 의해서 움직였다. 후에 제니기와 수력방적기의 원리를 결합한 뮤울방적기를 발명됐고, 이로써 영국 면직물은 최초로 인도의 그것과 질,가격면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되었다. 1785년부터 많은 사람들이 수력방적기를 사용하였고, 왓트의 증기기관이 최초로 방적공장에서 사용되었다. 마침내 새로운 생산체제인 대규모 공장공업이 가능해졌고, 영국공업은 새로운 영역인 대량시장에 알맞는 신제품의 개발로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이러한 혁명은 점차적으로 일어났다. 처음 얼마동안 가내공업이 공장제도를 보완하고 강화하였다는 사실을 통해서 이를 알 수 있다. 이러한 큰 규모의 산업활동은 도시 지역의 발전, 석탄, 철 및 기계에 대한 수요, 운전자본에 대한 수요 그리고 값싼 수송에 대한 수요에 2차적인 반응을 일으켰으며, 이것은 다른 공업의 발전을 강력하게 촉진했다. 여러 층의 면방적 공장들은 철근건물의 새로운 건축기법을 도입하였고, 처음으로 가스등을 도입하여 24시간 연속의 노동시간을 가능케 한 최초의 공장들이었다.18세기의 기술의 혁명을 가져온 또 다른 하나의 영국 산업은 철공업이었다. 산업혁명 전,철공업은 심각한 원료문제로 인해 산업으로서 빛을 발하지 못했다. 영국의 철광자원은 매우 질이 낮아서, 불순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를 가지고 질기고 단단한 최종생산물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웠다. 또 다른 한편으로 철공업의 주연료인 목탄은 소진되어가는 자원이었으며, 또 부스러지기 쉬운 것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운반할 수 없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물론 철공업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이리저리 옮겨다녀야 했다. 이러한 철공업 역사의 전환점은 왓트의 증기기관이 용광로의 송풍용 동력으로, 그리고 단철용의 기계력으로 응용될 수 있었던 1775년으로 잡을 수 있다. 철공업에 있어서 증기기관의 공헌도는 굉장히 높다. 또한 용광로에 있어서 목탄으로부터 코크스로의 전환이 1760년대에는 이미 상당히 진행중이었다. 즉 이 말은 목탄을 쓰는 철공업은 감소하는 한편, 코크스 용광로의 수는 증가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18세기 후반기 철공업에 있었던 모든 혁신의 주요 결과는 원료비용의 엄청난 절약을 가져왔다. 그리고 기본적인 혁신은 다른 혁신을 자극하였으며, 이것은 시간과 노동에 있어 중요한 절약을 가져왔다. 이러한 혁신의 결과는 철공업의 구조와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19세기 전반의 철공업에 영향을 준 주요 발견은 1828년의 닐슨의 발견이다. 이것은 송풍에 사용하는 공기를 가열하는 것으로 코크스 소비량을 크게 줄였고, 산출량을 크게 증가시켰다. 또 그것은 연료의 사용에 큰 절약을 가져왔고, 대규모의 용광로의 사용을 용이하게 했으며, 스코트랜드 철광석의 경제적 가치를 부여했다. 이러한 철공업에서의 기술적 진보는 멈추지 않았다. 철공업이 1780년대와 1800년대 사이의 기간에 걸쳐서 특징적이었던 그 높은 성장률을 회복한 것은 1830년대에 시작된 철도시대로 인해서 가능해졌다. 철공업은 철광석과 다량의 영국산 석회석과 석탄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수요를 통하여 그것은 그에 따른 수송설비에 대한 수요를 창출했다. 철공업이 영국의 공업화에서 있어서의 역할은 광범위하고도 자극적이었다. 그것은 근대공업의 필수적인 장비를 위하여 석탄을 제외한 어느 물자보다도 더 크게 의존하고 있는 재화를 값싸고 풍부하게 공급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