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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기독교와 유럽문명
    기독교와 유럽문명-제국주의와 선교사-(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 요약)어두운 미로 속에 갇힌 인간의 무리 중 한 명인 꼬마 니콜라는 개미들과 대화하는 ‘리빙스턴’ 이라는 로봇 개미를 발견하고, 리빙스턴을 통해 니콜라 자신을 신으로 만들어 식량 문제를 해결한다.리빙스턴 박사는 영국의 선교사 ·남(南)아프리카 탐험가이다. 1840년 런던 전도협회의 의료 선교사로서 남아프리카에 파견되어, 1841년부터 오지에 들어가 전도사업에 진력하였는데, 뒤에는 교역 루트 탐색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개미’ 의 리빙스턴 로봇 개미는 니콜라의 교리를 전파하는 선교사 개미이다. 극한 상황에 몰린 인간이 종교를 이용해 식량을 구한다는 소설의 내용은 서구 제국주의를 모티브로한 작가의 상상력이라고 볼 수 있다.제국주의와 선교사업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제국주의는 팽창과 확장의 정치학이며 선교사업은 전세계의 복음화를 목표로 한다. 유럽의 본격적인 팽창이랄 수 있는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복기부터 기독교(특히 로마 카톨릭)는 제국의 형성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지리상의 발견이 시작된 이래, 현재 중남미 아메리카 대륙의 거의 전부(잉카, 아즈텍 문명의 영역을 포함)와 아프리카 해안지방, 희망봉과 케냐 지역, 오르무츠 해협, 인도의 고아(Goa)와 캘리컷, 수마트라 섬, 말라카 제도, 필리핀과 마카오에 이르기 까지 이 두 나라의 영역으로 귀속된다.기독교와 유럽의 팽창은 11세기 무렵의 십자군 전쟁으로부터 시작된다. 십자군 운동은 (전쟁이 가져다 준 무수히 많은 효과는 차치하더라도) 기독교 신앙으로 뭉쳐진 ‘하나의 유럽’ 이라는 인식을 유럽인들에게 심어주었다.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라는 두 나라는 철저한 카톨릭 국가로 중세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하여 있었던 이슬람 세력으로부터의 ‘영토 재정복’ 이라는 특수한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오랫동안 계속된 이교도와의 투쟁으로 이 지역 사람들은 깊은 믿음만큼이나 이교도에 대한 반감을 가진 상태였다. 더구나 1453년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콘세계시장의 분할·지배 열강에 의한 식민지 분할의 완료이 밖에도 카우츠키나 룩셈부르크의 다른 이론들이 있으나 경제적 해석이라는 큰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제국주의를 다른 방식으로 볼 수는 없는가? ‘제국주의’ 라고 했을 때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단어는 ‘수탈’ 이다. 그런다면 제국주의의 주체였던 나라들에게 ‘제국주의’ 는 과연 ‘착취’ 였는가? 이 ‘좁은’ 의미의 제국주의에서 풀어나갈 수 있는 기독교의 선교사업에 관한 것은 이야기거리가 많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진부한 논쟁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좀더 ‘넓은’ 의미에서 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시각에서 이 문제를 보고자 한다. 우리는 제국주의는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넘어서는 하나의 세계관이며 18~19세기를 거쳐 ‘공식적인’ 제국주의의 시대가 끝날 때까지의 문화적 조류이자 타문화에 대한 지배적인 사고방식으로 보기로 한다. 이렇게 새롭게 정의된 ‘문화 제국주의’는 문명과 야만의 구분(품위 있고 문명화 된 사람과 종속적이고 열등한 인종의 구분)과 우월한 인종의 우수한 문화(여기에는 당연히 기독교도 포함) 전파를 특징으로 한다. 제국주의란 인종적 우월감과 문명 전파의 사명감이 합쳐진 결과물인 것이다.결국, 당시의 지배적인 사고방식에서 선교사들 또한 자유롭지 못했으며, 선교사업도 결국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이 드러난 하나의 표현 양식이다. ‘공식적인 제국의 시대’가 간 후에도 선교는 문화의 일부분으로서 현지에서의 제국주의 고착화에 기여했다.< Part II: 제국주의 시대 유럽인들의 일반적 인식>페르난도와 이사벨 카톨릭 왕의 후원을 받아 신대륙을 찾아 떠나는 콜럼버스는 무슨 생각을 하고 떠났을까? 향료와 금의 섬으로 알려졌던 El Dorado를 찾아서 갔는가?*프레스터 존프레스터 존은 ‘주교 요한’ 이라는 뜻이다. 당시, 막연히 동쪽 어딘가에 있을 기독교 국가에 대한 상징이다. 아직 제국주의 시대라고 할 수 없을 때부터 프레스터 존은 선교사들과 탐험가들의 눈을 동방으로 돌리화 발전의 마지막 목표는 언제나 the Kingdom of God 이라 했다. 자연과학이 성경을 전파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될 것이라고 구체적인 확신을 가지게 이르며, 없이 자연을 선교를 위한 전략으로 바꾸어 세속화된 과학을 선교를 위한 무기로 바꾸는데 앞장서게 된다. 라이프니츠의 제안은 선교의 훈련에 있어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고려가 지배적이었다. 선교 -> 전세계 미개 문명들의 문명화 -> 신국 건설예수회의 선교들은 중국의 지식인층 사이에 파고들기 위해 실용적이 과학적인 지식들을 포함시키는 선교적 전략을 구사했다. 그 결과는 믿음이라는 측면에서 그들의 형제들로부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전략을 정당화 한 듯 하다. 또한 그들의 그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신교 역시 선교의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라이프니쯔역시 선교를 위해 그의 종교적에 관한 믿음과 관점과 과연 일치하는 가 하는 고려 없이 자연을 선교를 위한 전략으로 바꾸어 세속화된 과학을 선교를 위한 무기로 바꾸는데 앞장서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세계의 최후의, 최고의 목표인 ‘신의 영광의 진보’(그리고 공공의 복지) 를 위해서였다.결국 각종 과학을 먼저 지식인층에게 퍼뜨리면서 기독교도 그러한 과학의 일종인양 끼워 넣는 방법을 전세계를 신의 영토를 위한 문명화와 문화의 전파를 위한 불가피한 방법이라 고 했다.3) Jules Ferry (1832-1893):Ferry는 프랑스의 정치가로 나폴레옹 3세의 실각이후 세워진 정부 요인으로서 두 번의 수상직을 역임했다(1880-81, 1883-85). 페리는 현대의 프랑스 초등교육의 입법자로서 공립학교를 세우고 종교 교육을 폐지하는 등 프랑스 교육의 선구자이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 식민제국의 건설로 유명한데 해외 프랑스 식민지의 안전을 위해 비스마르크와 제휴하려 하기도 하였다. 그의 집권 기간 동안 프랑스는 Niger와 Congo 지역을 통과하였으며 마다가스카르에 이르렀다.“여러분, 우리는 좀더 정직하고 확고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공식적으로 우월한 인종 고조된 유럽의 자신감을 표현하는 진취적인 진보적인 사상이었다. 19세기는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의 영향이 영국과 프랑스에 국한되지 않고 전유럽으로 퍼져나가는 시기였고, 이 시기 유럽의 성장과 팽창은 과거 르네상스의 이탈리아 분위기와 같은 것이었다.선교는 본래 기독교의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의 가르침을 널리 펼치는, 간단하게 보면 단순히 교리의 전달에 불과한 것이지만, 종교가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매우 폭넓은 것이다. 기독교가 서유럽에 뿌리를 내린 이래 유럽사회에 기독교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만 보아도 기독교라는 종교가 가진 문화적인 힘을 짐작할 수 있다.특히 ‘제국의 시대’ 에 이루어진 선교 활동은 특히나 문화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선교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나서, 선교는 단순히 복음의 전파가 아닌 새로운 문물에 대한 교육과 의술활동까지 포함한 소위 ‘교육/의학/복음전파’ 의 삼중적인 접근방식이 확립된다. 이들은 복음전파의 선결조건으로 서양의 문화에 대한 선결지식이 필요하다고 보고 17세기 18세기를 거치며 형성된 유럽의 과학적/합리적인 사고방식과, 막 태동하고 있었던 자본주의에 입각한 교육을 통해 유럽의 축적된 ‘문명’의 지식을 전파한다. 뿐만 아니라, 교육과 의술활동은 종종 현지인들에게는 일종의 ‘기적’ 으로 보여졌기 떄문에 선교에 있어서 무척이나 중요하였다. 받아들이는 현지인의 입장에서도 신기했겠지만, 선교사 또한 모세나 예수가 된 기분이었을 것이다.선교사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맺어진 현지와의 조약(ex: 남경조약)을 보면 상당수가 불평등 조약에 해당하며 이를 통해 정치적인 영향력 행사 의도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의 특권의식을 엿볼 수 있다. 현지 선교에서 필요한 조건은 ‘자유로운 선교 활동의 보장’ 이지만 그 이상을 요구한다. 선교부의 재산권 독립과 암묵적인 재산증식을 요구하며, 또한 선교사의 신분을 보장하기 위해 치외법권을 인정하는 조항들이 눈에 띈다. 일부 선교사 들은 선교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크게 일탈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힘썼다. 다시 말하면 원시적인 동아시아의 해안에 도착한 선교사들은 자기들만의 “문명화 된” 세계를 만들었던 것이다. 한국의 경우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미국에서 살던 것 보다. 더 넓은 집에서 살았고 그들의 삶은 결코 본토생활 못지않았다. 한국의 경우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아주 적은 돈으로 여러 명의 하인(필요에 따라 유모, 요리사, 마부, 문지기, 가마꾼)을 거느렸고 그들의 한국 내 삶의 지위는 어느 상류 지배층 못지않았다.선교사들은 여가 생활과 사교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테니스는 선교사사회에서 특히 인기가 있었는데 특히 선교사 부인들이 주축이 되어 오후 여가를 즐겼다. 싫건 좋건 선교사들은 생활의 편의와 교제를 위해 여타의 미국인들, 유럽인 들과 서로 의지하고 그들과 교류해야 했다. 외국인이 경영하는 수입상에 가서 생활 용품을 사야했고 무역상을 통해 필요한 물건들을 들여와야 했다. 또 선교사들은 먼 이국에서 고뇌하는 젊은 영혼들에게 조언과 기도를 해주는 목회자였다. 따라서 이들은 필요와 운명 속에 자주 교제 할 수밖에 없었다.선교사의 사생활 자체는 그다지 신경 쓸 것이 못되지만, 문제는 그들이 선교지역에 건너가서 자기들만의 ‘폐쇄적’ 인 세계에서 생활 했다는 것이다. 즉, 두 개의 다른 문화가 공존하며 건설적인 방향으로 융화되기 보다는 힘의 논리에 의해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중국 선교에서 나타난 조상숭배와 전통제례에 대한 선교사들과 현지인들의 갈등이 이에 해당한다. 초기 선교 시절 마테오 리치를 필두로 한 예수회 소속 신부들은 조상숭배를 ‘조상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것’ 이라고 보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프란체스코회와 도미니크회가 들어오면서 조상숭배를 이단시 하게 되면서 문제는 커진다. 그들은 중국을 중심으로한 극동 세계의 문화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단지 그들을 ‘악마로부터 구원하여 하느님에게로 인도’ 하려고만 하였다. 그리고 현지인에게 비교적 관대하였던 예수회 수사들도 불교와 같은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배타다.
    인문/어학| 2003.11.22| 12페이지| 1,500원| 조회(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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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케팅]스타벅스 성공사례 분석
    Ⅰ. 서론Ⅱ. 본론1. 미국시장의 성공요인1.1 외적 분석1.2 내적 분석1.3 그 외의 스타벅스의 마케팅과 최근의 동향2. 미국과 한국의 커피 시장 환경의 차이2.1 소비자2.2 산업2.3 사회문화3. 스타벅스의 한국시장에서의 성공요인3.1 감각적이고 세련된 문화의 소비3.2 기존 커피숍보다 싼 가격대3.3 단계적 Take-out 개념의 도입3.4 Mobile 세대의 요구와 부합3.5 다양한 제품군과 뛰어난 맛3.6 한국에서의 스타벅스 효과4. 스타벅스코리아의 현재와 전략적 제언4.1 현시장에서의 스타벅스 SWOT분석4.2 스타벅스코리아의 새로운 대응노력4.3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전략 제안Ⅲ. 결론Ⅰ. 서론스타벅스의 신화스타벅스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이제 전혀 생소하지 않은, 오히려 그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생소한 시대가 되었다. 스타벅스는 미국이 세계에 전파시킨 맥도날드 코카콜라와 같은 하나의 문화코드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서 스타벅스의 성공이 불러일으킨 ‘스타벅스 효과’에 흥미를 갖던 중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스타벅스 효과가 나타났는지, 그렇다면 시장 상황이 판이하게 다른 우리나라에서 스타벅스 효과가 나타난 요인은 무엇인지를 분석해보는 것을 주제로 삼았다. 더 나아가 후발업체들의 난립하는 현 시장에서 스타벅스가 앞으로 취해야할 대응전략은 무엇인지를 제언해 보기로 한다.Ⅱ. 본론1. 미국시장의 성공요인우리가 알고 있듯이 미국에는 커피시장보다는 소프트 드링크시장 즉 콜라 등의 탄산음료의 음료시장이 훨씬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 소프트드링크 시장과 함께 스타벅스를 주류로 한 커피시장이 음료시장에서 동등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시애틀의 미식가 취향의 작은 커피숍이 전 세계 약 5500여개의 체인점을 가질 정도로 크게 성공하여 하나의 문화코드가 되고 스타벅스로 인해 침체 되었던 미국의 커피시장전체가 후광효과를 입어 커피시장전체가 떠오르는 효과를 내는 소위 말하는 ‘스타벅스 효과’를 발생하는 기업이 되었을까?그 측면에서 스타벅스는 다른 커피 브랜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짜릿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커피에도 액세서리가 있다. 부드러운 감촉을 원하면 휘핑 크림을 넣을 수 있고, 달콤한 향을 느끼고 싶을 땐 바닐라, 아몬드, 헤이즐넛 등의 향 시럽을 곁들일 수가 있다. 스타벅스는 이러한 개인 맞춤형(Personalization) 서비스, 손수 제작(Do it yourself) 서비스를 통해 고객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독특한 커피를 직접 만들어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요즘과 같이 소비문화가 다양하고 개인들의 소비 개성이 강한 시대에는 더 이상 전통 방식의 기성품(Ready-made) 제공은 의미가 없다.각자의 10인 10색 개성을 현장에서 바로 표출하고 소비하고 만족하면서 최적의 경험 과정을 느껴가는 직접 소비(Real-make) 과정이 제공되어야 한다.자신을 표현할 수 있고 자신 특유의 소비가 묻어 나오는 소비 경험을 계속해서 가지다보면 고객들은 자연히 그 브랜드에 대해 의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존성은 결국 브랜드 로열티로 발전 되며 고객들은 독특한 경험 제공이라는 매개를 통해 브랜드와의 관계를 장기적으로 유지시켜 나가게 된다. 이렇듯 스타벅스는 고객에게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자기만의 경험 제공이라는 것으로 다가간 것이다.1.2 내적 분석1.2.1 직원은 기계 부속품이 아니다스타벅스의 창업자 하워드 슐츠가 창업 당시 이상하게 여긴 것은 소매 및 요식업은 고객에 대한 서비스 수준이 그 업체의 흥망을 결정짓는데도 불구하고, 그 역할을 수행하여야하는 종업원들이 어떤 다른 계통의 산업보다도 낮은 수준의 급여와 복리후생 혜택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정식 직원들도 이러할진대 견습사원이나 시간제 근로자들은 더 낮은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한 관행이었다.그러나 스타벅스는 그러한 관행에 반대했다. 종업원들이야말로 회사의 심장이요, 영혼이며 회사의 대외적인 얼굴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시간제 근로자들에게까지 포괄적인 의료보험을 제공하는 파격적인 프로그램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빈장에 진출한 시기에 이루어진 ‘한국 소비자의 가치체계연구’김흥규, ‘한국 소비자의 가치체계연구: 궁극적 가치와 소비신념의 가치구조를 중심으로 ’에서 그 당시 한국 소비자의 특성을 알아보았다. 한국소비자의 특성은 가족중심적 가치지향형, 희생적 실천가치 지향형, 정서적 안정가치 지향형, 성취적 목표가치 지향형, 유희적 욕구가치 지향형로 살펴 볼 수 있다.2.1.1 가족중심적 가치지향형우리나라 소비자들은 개인 중심적 문화가 주를 이루는 미국시장과는 달리 가족중심의 문화이다. 가족 중심적 가치는 개인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상호관계에서 더 만족감을 느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음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부분의 시장이 개인이 아닌 가족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커피에도 적용되는데 커피는 혼자 마시는 것보다 타인과 함께 마시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연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정석이 되어버린 청혼 문구 중에 “아침에 당신과 커피를 마시고 싶어”라는 말에서도 이러한 가치는 확인할 수 있다.2.1.2 희생적 실천가치 지향형과 성취적 목표가치 지향형개인적 욕구와 가치보다는 자식 중심적이며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부모 공경을 강조하는 보수적 가치구조를 지니는 희생적 실천가치체계와 성취를 통해 자존도 실현하며 사회적 인정을 획득하는 것을 추구하는 성취적 목표가치는 둘 다 가족과 자신이라는 내부요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가치들은 소비행위에 반영되어 보수적, 방어적인 소비신념을 나타내며 현상 유지적 특성을 나타낸다. 현상을 유지하거나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더 안정되고 만족을 주기 때문에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에 흥미를 가지고 체험을 해보고자하는 욕구보다 일단 검증된 것을 구매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이는 반복적인 구매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미국시장에서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커피를 런칭할 때보다 소비자에게 어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우리나라가 커피시장의 전에 프라우스타 등 일부 업체에서 직영점을 오픈하며 시장 반응을 살폈지만 97년 말 IMF 관리체제로 인해 흐지부지 시장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다가 경제상황이 다소 호전될 기미를 보이던 98년말 부터 국산 에스프레소 전문점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렇다할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방 커피 맛에 익숙해 있던 한국의 커피 소비자에게 이러한 전문점은 카페라떼, 카푸치노 등 커피의 다양한 맛을 알게 했을 뿐만 아니라 크림이나 시럽 등의 첨가물에 대한 욕구도 자극했다. 대중화되지는 못하였지만 소비자에게 에스프레소 커피의 존재를 인지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적정가격보다 훨씬 높은 에스프레소 커피에 대한 욕구는 여전히 몇 백원의 싼 가격에 익숙했던 소비자를 유인하지는 못하였다.2.3 사회문화2.3.1 반 take-out 문화유교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우리나라에서는 길거리에서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며 품위가 없는 ‘양반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누누이 교육받아왔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판기 커피를 마실 때조차도 걸어 다니면서 먹지 않고 근처의 일정한 장소에 정착한 후에 마시기를 시작한다. 그곳이 앉을 수 있는 곳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그럴만한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구석진 공간에서 정지상태로 마시는 것이 보통이다. 커피자판기에서 사용하는 같은 회사에서 나온 똑같은 커피를 커피숍에서 10배 이상이나 되는 가격을 지불하면서까지 구매하는 이유는 그것이 제공하는 공간 때문이다. 그래서 커피숍은 커피 맛보다는 커피숍이 제공해주는 공간의 차별화가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다.2.3.2 커피에 대한 인식의 차이미국의 아침은 스크램블 에그와, 베이컨, 토스트, 시리얼에 커피나 주스를 곁들이는 식문화이다. 미국에서의 커피는 식사의 일부로 이해된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커피를 마실 음료로 인식 한다기 보다 커피를 마심으로써 행해지는 행위, 즉 만남에 초점을 둔다. 다시 말하면 커피는 전략이었다.하지만 스타벅스의 한국진입당시의 경쟁자를 기존의 커피숍이라고 볼 때 (초창기 take out 비율이 3% 수준이었으므로 경쟁자를 편의점에서 파는 커피라 보기 힘들고 홀 중심으로 운영되는 커피숍으로 보아야 한다), 스타벅스는 기존 커피숍보다 가격을 오히려 낮추는(앞에서 설명한 셀프서비스, 많은 수용인원 take out을 통해 가능해졌다 ) 전략을 사용했다. 고급 커피를 기존 커피숍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었다는 것은 스타벅스에게 큰 장점이 되었다. 저렴한 가격은 소비자들이 쉽게 스타벅스의 초기 경험자가 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격은 스타벅스의 한국시장에서의 중요한 경쟁력이 되었고, 지금도 소위 만만하게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우리의 인식에 자리하고 있다.3.3 단계적 Take-out 개념의 도입-Take-out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문화에 맞게 홀문화 중심으로 스타벅스에 익숙하게 한 다음 Take-Out 문화를 쉽게 퍼트릴 수 있었다.Take-out 문화에 익숙한 미국에서, 스타벅스는 매장을 소형화하고 Take-out위주의 전략을 사용했다. 미국 문화의 특성상 큰 매장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스타벅스가 한국에 진출하는 초기(스타벅스 최초의 한국매장은 이대점, 1999년 9월)에는 한국은 아직Take-out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다. 로즈버드에서 1999년 6월 한국 최초로 Take-out 서비스를 도입했지만, 스타벅스 초기에 매출액의 3% 만을 Take-out에서 이룬 것을 볼 때, 한국시장에 Take-out위주의 매장을 도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한국에는 서비스 받기를 좋아하고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꺼리는 문화적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는 이런 한국시장의 특성을 고려하여 대형매장 (참고로 명동에 있는 스타벅스가 세계에서 제일 큰 스타벅스 매장이다)으로 홀 문화 중심의 서비스로 시작하고 Take-out을 부가적인 서비스로 제공했다. 일단 초기 경험자들을 스타벅스에 익숙하게 하고 Take-ou다.
    경영/경제| 2003.11.20| 18페이지| 2,000원| 조회(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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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문학] 에밀리를 위한 장미 번역본 평가A좋아요
    미스 에밀리 그리어슨이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 읍민 모두가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남자들은 쓰러진 기념비에 대한 일종의 존경심에서, 여자들은 대부분이 그녀의 집 내부를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에서 그랬던 것이다. 미스 에밀리의 집 내부는 정원사 겸 요리사인 노복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적어도 10년 동안 아무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에밀리의 집은 하얗게 칠해진 크고 네모진 목조가옥이었다. 1870년대의 묵직하면서도 퍽 우아한 건축양식의 둥근 지붕과 뾰족탑과 소용돌이 모양의 발코니로 장식되어 있었고 우리 읍내에서도 한때는 제일가던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동차 수리소와 조면기(繰綿機)가 침입하게 되어 이 근방의 명문거족의 집들은 흔적조차도 없애버렸다. 그런데 유독 미스 에밀리의 집만이 남아서 그 고집세고 애교있게 조락해 가는 모습을 면화차와 가솔린 펌프 너머로 드러내고 있었으니-이것보다 더한 꼴불견은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미스 에밀리마저도 세상을 떠나서 저 명문거족의 대표자들과 함께 히말라야 삼목에 아늑히 둘러싸인 묘지에 제퍼슨 전투에서 전사한 북군과 남군의 유명 및 무명 장병의 무덤 사이에 묻혀 버렸다.생전에 미스 에밀리는 하나의 전통, 하나의 임무, 그리고 하나의 걱정거리였다. 말하자면 읍내에 대한 여러 대의 채무와도 같았다. 그것은 흑인 여자는 앞치마를 두르지 않고서는 거리에 나올 수 없다는 명령을 내린 읍장 사아토리스 대령이 그녀의 세금을 면제했던 1894년의 그날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이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죽은 날부터 영구히 계속되는 특전이었다. 그렇지만 미스 에밀리가 이 자선을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추측해서는 안된다. 읍이 에밀리의 아버지에게 빌린 돈을 사무상 이러한 방법으로 상환한다는 내용의 복잡한 이야기를 사아토리스 대령은 꾸며냈다. 사이토리스 대령과 같은 세대의, 또는 그와 비슷한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만이 이러한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었으며, 오직 아낙네들만이 믿을 수 있는 일이었다.보다 진보된 사상을 가진 다음 세대가 읍장이 되고 초상화가 놓여 있었다.그녀가 들어왔을 때 그들은 일제히 일어섰다. -검은 옷을 입은 작고 뚱뚱한 여자였다. 가느다란 금시계 줄이 그녀의 허리까지 내려와서 그 끝은 그녀의 허리띠 속에 숨어 있었고 손잡이의 금칠이 벗겨진 흑단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골격은 작고 가늘었다. 아마도 그 때문에 딴 여자라면 뚱뚱해 보였을 텐데 그녀의 경우에는 비만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녀의 얼굴은 웅덩이 물 속에 오랫동안 잠겨둔 시체처럼 부어 보였고 그녀의 얼굴 빛 또한 창백했다. 부풀은 얼굴의 두둑한 융기(隆起)속에 파묻힌 듯한 그녀의 두 눈은 방문객들이 용건을 늘어놓고 있는 동안 그들의 얼굴을 차례로 쳐다볼 때면 마치 밀가루 반죽 속에 쿡 박아놓은 두 개의 석탄 조각같이 보였다.그녀는 그들에게 앉으라고 권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저 문간에 서서 대표자가 더듬거리다가 말문이 막힐 때까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때 그들의 시계는 보이지 앚ㅎ지만 그녀의 금시계 줄 끝에서 째각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그녀의 목소리는 메마르고 차가왔다.“난 제퍼슨 읍내선 세금을 물지 않습니다. 사아토리스 대령이 그 까닭을 설명해주더군요, 아마 당신네들 중에서 누구라도 좋으니까 읍내의 기록을 조사해 보시죠. 그러시면 납득이 되실 겁니다.”“우리들은 이미 조사를 했단 말씀입니다. 미스 에밀리, 우린 읍 당국자들입니다. 읍장께서 서명하신 통지서를 받지 않으셨나요?”“종이쪽지를 한 장 받긴 했어요, 네.”하고 미스 에밀리는 말했다. “아마 그분은 자기가 읍장이라고 생각 하시는가 본데...... 어쨌든 난 제퍼슨 읍에서 세금을 물지 않습니다.”“그렇지만 기록에는 그 사실을 증명할 만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우린 통지서대로 집행을......” “사아토리스 대령께 물어보시지요. 난 제퍼슨 읍에선 세금을 물지 않습니다.”“하지만, 미스 에밀리......” “사아토리스 대령께 물어보라니까요(사실 사아토리스 대령은 죽은 지 거의 10년이 된다). 난 제퍼슨 읍에선 세금을 물지 않는단 말예요. 토우브야검둥이가 안마당에서 뱀이나 쥐를 죽인 모양입니다. 본인에게 이르겠소.”이튿날 그는 또 두 건의 불평을 받았다. 하나는 웬 남자로부터였는데 그는 어려워하며 하소연하였다. “우린 정말로 무슨 수를 내야 합니다. 판사님, 저는 미스 에밀리를 괴롭히려는 사람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린 무슨 수를 써야 합니다.”그날 밤 읍회 위원들이 모였다-회색 수염을 기른 노인 셋과 젊은 세대의 일원인 청년 하나가 모였다.“간단하지 않습니까?”하고 젊은이가 말했다.“그분더러 집안의 청소를 깨끗이 하도록 명령을 내리시지요. 시간의 여유를 드리고요. 그래도 말을 듣지 않거든......” “원 여보시오,”하고 스티븐즈 판사는 말했다. “아무리 악취를 풍긴다고 해서 그 때문에 숙녀를 면박 줄 수 있겠소?”그래서 다음날 밤 자정이 지나서 남자 넷이 미스 에밀리의 집 잔디밭을 건너가서 도둑인 것처럼 그 집 주변을 살금살금 돌아다니며 벽돌 바닥과 지하실 창문의 냄새를 맡곤 했는데 그들 중에서 하나는 어깨에 멘 자루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뺏다가 하면서 씨앗을 뿌릴 때와 똑같은 동작을 했다. 그들은 지하실 문을 부수고 거기에 뿐만 아니라 바깥 건물 전부에도 석회를 뿌렸다. 그들이 다시 잔디밭을 건너갈 때 이제까지 깜깜했던 창문 하나에 불이 켜졌고 미스 에밀리는 불빛을 등지고 창문 안에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꼿꼿한 동체는 우상의 동체처럼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가만가만 잔디밭을 건너 아카시아 가로수의 그들 속으로 기어들었다. 한두 주 후에 그 악취는 사라졌다.그때부터 읍민들은 미스 에밀리를 진실로 불쌍하게 여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 읍민들은 그녀의 대고모되는 와이어트 부인이 마지막에 가서는 완전히 미쳐버린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어슨 집안사람들이 실제 이상으로 좀 지나치게 거만하다고 믿고 있었다. 어떠한 청년도 미스 에밀리의 배필감으로는 충분하지 못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리어슨 집안사람들을 한 폭의 활인화로 생각하고 있었다. 미스 에밀리는 하얀 옷을 입은 날씬한 자태로 굴복했다. 그들은 그녀의 아버지를 재빨리 매장해 버렸다.우리는 그녀가 그때 머리가 돌았다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그녀가 그러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고 믿었다. 우리는 그녀의 아버지가 청년들을 모조리 쫓아버린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무엇 하나 남은 것이 없는 그녀가 자기에게서 모든 기회를 앗아간 아버지의 시체에나마 매달리지 않고서는 못 배겼을 것을 알고 있었다. 누구나 다 그럴 것이다.3그녀는 오랫동안 앓았다. 우리가 그녀를 다시 보았을 때 단발한 그녀의 얼굴은 교회의 색 유리창에 그려진 천사들과 어렴풋이 닮은 소녀처럼-어딘지 모르게 비극적이며 평온해 보였다.읍 당국은 도로의 포장계약을 막 체결했었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의 여름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건설회사는 검둥이와 노새와 기계류와 함께 나타났다. 그리고 호우머 바아론이라는 양키 현장감독도 나타났다. 그는 몸집이 크고 피부가 거무데데하고 재빠른 사나이였으며 목청은 굵고 눈빛은 얼굴빛보다 연했다. 소년들은 떼지어 따라다니면서 검둥이들에게 호통을 치는 것을, 그리고 검둥이들의 오르내리는 곡괭이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었다. 그는 읍민 모두와 절친하게 지냈다. 광장 어디서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릴 때는 반드시 호우머 바아론이 그 패들의 한 복판에 있었다. 이윽고 우리는 그와 미스 에밀리가 일요일 오후에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적갈색 망아지가 끄는 누런 바퀴의 사륜마차를 세마차 집에서 빌어타고 드라이브하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처음에 우리는 미스 에밀리가 흥미의 대상을 가지게 된 것을 기뻐했다. 왜냐하면 숙녀들이 이구동성으로 “물론, 그리어슨 집안 사람이 날품팔이 북부인을 대수롭게 여기진 않을 거야.”하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집안의 슬픈 일이 있기로서니 진짜 숙녀라면 귀족의 체면(노블레스 오블리즈)을 잊지 못하는 법이라고 말하는, 나이가 더 많은 딴 숙녀들도 있었다-그들은 “불쌍한 에밀리, 친척이라도 와야겠군.”하고 말할 뿐이었다. 미스 에밀리는 앨라배마 주의 에밀리의 나이는 30이 넘었는데 보통보다 여위기는 했지만 몸이 날씬한 여자였다. 까만 눈은 냉정하고 교만했다. 얼굴의 근육은 등대지기의 얼굴이 꼭 그런 것처럼 관자놀이와 눈자위에 걸쳐져 팽팽했다.“독약을 주세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네, 미스 에밀리. 어떤 종류의 것인가요? 쥐약 같은 겁니까? 그러시다면......” :“제일 좋을 걸로 주세요. 종류는 아무 거라도 좋아요.”약방주인은 몇 가지 약명을 들었다. “이것들은 코끼리도 거뜬히 죽일 겁니다. 그러나 어느 것을 ......” “비산을 주세요.”하고 미스 에밀리는 말했다. “그것은 잘 듣는 거예요?”“비산 말입니까? 네, 잘 듣죠. 그러나 어느 것을......” “글쎄 비산을 달라니까요.”약방주인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팽팽한 깃발과도 같았다. “그야, 물론 드리죠.”하고 약방주인은 말했다. “비산을 원하신다면, 그러나 법이 요구하니까 용도를 말씀하셔야 합니다.”미스 에밀리는 그를 마주보려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서는 그를 노려보기만 했다. 드디어 약방주인은 외면하고 들어가서 비산을 내다가 종이에 쌌다. 흑인 배달소년이 그녀에게 그 꾸러미를 전했다. 약방주인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집에 돌아와서 그 꾸러미를 풀었을 때 상자 위에는 두개골과 대퇴골 그림 밑에 이라고 적혀 있었다.4그래서 다음날 우리는 모두가 “그 여자는 자살하려는군.”하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제일 좋은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애초에 호우머 바아론과 함께 나다니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그 여자는 그와 결혼하겠군.”하고 말했다. 이어서 우리는 “그 여자가 사내를 굴복시키고 말걸.”하고 말했다. 왜냐하면 호우머 바아론 자신은 자기가, 그녀와 결혼할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실은 그는 동성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가 엘크스 클럽에서 젊은 남자들과 술을 마신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 후 우리는 그들이 일요일 오후에 화려한 사륜마차를 타고 지나갈 때 차일 뒤에서 “불쌍한 에밀리.”하고 말했다. 다.
    인문/어학| 2003.11.30| 8페이지| 1,500원| 조회(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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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케팅] 까르푸 성공사례 분석 평가C아쉬워요
    1. 들어가며…파리에 본사가 있는 까르푸는 1963년 파리 근교에 세계 최초의 하이퍼마켓 1호점을 개점한 이래 37년 동안 하이퍼 마켓(Hyper Market)이란 새로운 유통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1999년 말 까르푸의 총매출은 376억 유로로 미국의 대형 할인점 월마트에 이어 규모면에서 세계 2위를 자랑하고 있으며 프랑스 뿐만 아니라 해외 투자에도 성공을 거듭하고 있다.1959The Carrefour company is created by the Fournier and Defforey families.1960Carrefour opens its first supermarket in Parmelan, Haute-Savoie.1969The Promod?s supermarkets adopt the Champion brand name. Carrefour opensits first hypermarket outside France, in Belgium.1976Carrefour introduces "produits libres", which are unbranded products but "just as good, and cheaper".1985Carrefour brand-name products are introduced.1989The first Carrefour hypermarket opens in Asia, in Taiwan.1992Carrefour creates filiere quality systems, which guarantee product origin and traceability.1996Carrefour continues to grow in Asia, adding Thailand, Korea and Hong Kong to its list. Promod?s acquires the convenience store chain F?lix Potin.1999Carrefour and Promod?s merge to create the larges서 백화점 대 할인점으로 경쟁대상이 변한 것이다. 또한 경기침체와 이에따른 소비심리 위축도 백화점의 성장률 감소의 원인이 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할인점시장은 떠오르는 업태였다.유통신업태는 디스카운트 스토어, 쇼핑센터, 하이퍼마켓등으로 대표된다. 생산자에서 소비자까지의 유통과정을 단축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가격인하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가격할인과는 다르게 생산이나 유통 판매등 구조를 개선해서 상품의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한국의 유통업은 90년대 중반까지는 연20%의 성장률을 보이다가 후반들어 10%전후의 성장을 보이고 있어 성숙기에 접어든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러나 할인점은 93년에 국내에 처음 소개된이후 고성장을 기록하면서 전도유망한 신업태로 급부상했다. 할인점 총매출액은 93년 3억원, 94년 1200억원, 95년 7200억원, 96년도에 1조 6000억원, 97년 3조원으로 해마다 100%이상의 고성장률을 보여왔다. 98년 이후에도 5조1천억원, 99년 6조~7조원, 2000년 9조~10조원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특히 90년대 후반의 경기침체와 IMF한파로 다른 유통업계들은 고전하는 반면 할인점은 고성장을 기록했다. 싼 가격으로 다양한 물품을 원스톱 쇼핑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불황에도 고객들을 끌어들일 수가 있었다.【국내 유통산업 업태별 추이】구분1997증감율1998증감율1999증감율2000증감율백화점12,6161.311,381-9.813,33317.115,07413.1대형할인점3,21369.84,97454.87,57152.210,63640.5수퍼마켓2,0295.11,984-2.22,26914.42,4628.5편의점1,02310.5977-4.41,0184.21,25122.9기타소매점75,813-70,781-6.680,92514.3--(단위 : 십억원, %)1) 수퍼마켓 : 매장면적 165㎡이상 점포2) 기타소매점 : 재래시장, 중소점포 등- 자료: 산업자원부, 유통산업 발전방안 (2001년)선진국(미국, 유럽)에서는 40년대 말 할인점재에도 국내 할인점 경쟁에서 밀리는 등(5위권 밖) 월마트라는 브랜드에 어울리는 성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시장을 석권한 세계 1위의 유통업체로서의 브랜드 가치, 매장운영 노하우, 물류와 판매시스템, 강력한 자본력 등을 바탕으로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섣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다.Ⅱ. 프라이스클럽→코스트코 - 신세계는1994년에 미국 프라이스클럽과 제휴하여 서울 영등포구양평동에 프라이스클럽1호점을 개장했다. 프라이스클럽은 회원제 도매클럽이었다. (연회비를 내는 고객만 상품구매가 가능) 그런데 미국 프라이스클럽이 코스트코에 합병되면서 신세계는 점포를 98년에 코스트코에 매각했다. 따라서 프라이스클럽 점포는 코스트코로 바뀌었다. 2002년 10월 현재 5개의 매장을 운영중이다.Ⅲ. 프로모데스 - 프랑스 하이퍼마켓 기업으로 1996년 까르푸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진출했다. 그러나 프랑스 본사가 1999년에 까르푸와 합병하면서 기존의 매장들은 까르푸 관리하에 들어가게 되었다.1993년도에 시작된 할인점위주의 신업태는 시장이 개방된 1996년도 이후로 수많은 국내 업체들과 외국의 유명업체들이 진출하면서 경쟁이 심화되어갔다. 그러나 2000년까지의 시장상황을 살펴볼 때, 많은 기업들이 합병 인수 철회등의 과정을 거쳐 몇몇 주요경쟁자들이 표면에 떠오르고 있다. 2000년부터 가격파괴로 고객을 끌던 할인점은 서비스경쟁에도 나섰다. 특히 새로 진출하는 업체나 같은 상권내에 여러 경쟁자들이 있는 할인점은 편의시설과 주차장시설의 질을 높이고 은행과 구청민원실, 패스트푸드점등의 시설을 갖춤으로 서비스를 강화하여 다른업체와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추세이다. 할인점은 IMF이후로 급속하게 성장하여 이미 2002년말, 올해에는 시장규모가 백화점의 매출을 앞지르고 있다.현재 대표적인 할인점업체는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까르푸, 월마트, 킴스클럽, LG마트, 그랜드마트 등. 영남연고의 메가마트, 아람마트, 탑마트, 델타마트세이브존 등과 호남연고의 빅마트, 거으로 폭발적 성장세는 점점 약화되고 경쟁이 격화되면서 서서히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외국계 할인점들에 비해 국내 할인점인 이마트나 롯데마트의 시장점유율이 급속히 높아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이다.까르푸나 월마트를 따돌리고 시장점유율 1,2위가 된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각각 신세계와 롯데라는 모기업이 뒤를 받치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외국계 할인점과 비교할 때 자본력에서도 밀리지 않고 기존 백화점 입지와 물류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특히, 이마트의 경우는 입지선정에 있어서 선발주자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적절한 위치에 점포를 개점함으로써 타 할인점에 비해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었다. 실제로, 할인점은 입지가 매우 중요하고 그런 면에서 선점 효과가 사업의 성패를 결정하는만큼, 그런 점에서 까르푸는 다른 외국계 할인점보다는 국내진출이 빨랐지만 이마트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불리한 입지 조건을 감수하고 경쟁을 벌여야 했다. 또한 한국민의 정서와 소비 패턴을 파악하는데 있어서는 토종 할인점들이 까르푸보다 우위에 있는 상황이었다.한편, 할인점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는 것도 할인점 산업에서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 중에 하나다. 서구식 쇼핑문화의 확산과 유통산업내의 경쟁 심화로 인해 기업형 유통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증대함에도 국내 유통시장의 70% 가까이를 재래시장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할인점이 도입된 초기에는 점포를 개장하기만 하면 팔리는 상황이었지만, 점포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미 할인점 전체의 매출액이 백화점 매출액을 넘어섰고, 이제 내년이면 할인점의 총 점포수는 300개를 넘어설 전망이다. 우리 나라의 수요에 비추어 볼 때 적정 할인점의 개수는 200대 후반에서 300대 초반이라고 생각되므로, 2003년이면 할인점 점포 수는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의 공격적인 확장 정책의 선회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또한, 국내 유통시장은 업태별로 선두업체의 시장지배력이 점점 확대되는 과점화 현상이 심 볼 수 있다.한국식의 현지화를 추구하는 것은 까르푸만의 특징적 전략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구식의 할인점이 한국형 할인점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까르푸는 이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다. 한국형 할인점은 선진국의 할인업태가 국내에 도입되어서 국내업체들이 국내 소비자들에 맞는 방식을 적용하여 개발한 점포 컨셉으로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여, 식품을 위주로 잡화와 의류 등을 취급하며, 저가격 판매와 원스톱 쇼핑을 모토로, 한국인의 쇼핑정서와 구매관습을 최대한 살린 주부편의형의 종합할인점을 의미한다. 즉, 미국의 슈퍼마켓, 유럽의 하이퍼마켓, 일본의 슈퍼스토어 등을 모체로 한국식으로 변형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처음에는 국내 업체들이 무조건 서구식의 할인점형태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 실정에 맞도록 이를 변형, 응용한 형태로 사용한데서 한국형 할인점이라는 컨셉이 제시되었지만 지금은 까르푸와 같은 외국계 업체들도 역으로 국내 업체들을 벤치마킹하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이마트의 경우 한국인의 평균 키와 눈높이에 맞는 천장 높이에 제품을 진열하였으며, 직접 만져보고 골라 사는 한국인의 취향에 맡도록 야채류를 비포장상태로 진열하였지만, 까르푸에서는 서구에서와 같이 천장이 높고 제품을 높게 쌓아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한국소비자들은 그러한 부분에서 중압감을 느꼈다고 분석되고 있다. 최근의 할인점 고급화 현상도 사실 한국형 할인점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창고형 할인매장에서 탈피하여 고급 매장과 서비스를 바탕으로 한 고급 할인점이 확산되어 가고 있는 추세이고, 까르푸도 이런 추세에 맞추어 고급화 전략을 수행하고 있다.매장의 고급화를 위해서, 리모델링과 구매패턴에 맞춘 특화를 수행하면서, 소비자들을 위한 서비스 강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서구에서 할인점은 소비자가 셀프서비스로 쇼핑을 하고 점원의 인건비나 서비스에 드는 비용을 줄임으로서 원가를 절감하는 형태로 되어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할인점에서도 소비자들이 백화점 수준의 서비스를 원하기.
    경영/경제| 2003.11.20| 17페이지| 2,000원| 조회(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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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정규직 노동자문제 평가C아쉬워요
    *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1. 이슈의 배경전체 임금노동자 가운데 비정규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전에도 40% 이상을 유지해 오긴 했으나, 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제 허용과 파견볍 제정 등 노동입법의 중대한 변화와 함께 대대적인 기업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임시 일용직 비중이 전체 임금 노동자의 50%를 넘어서고(1999년 3월 기준) 다양한 비정규 고용형태가 확산되면서 이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게 되었다.하지만 이 문제가 본격적인 사회적인 쟁점으로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의 개념과 규모를 둘러싼 합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노동법의 개정방향과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에 대한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 노동력이 ‘비정규화’ 현상과 노동시장의 유연화 및 규제완화를 바라보는 노동시장 주체들의 입장과 가치판단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2. 비정규직 개념과 통계를 둘러싼 논쟁우선 비정규직의 정의와 관련해서는 대체로 정규직의 개념을 먼저 정의한 다음 그러한 특성에 부합하지 않는 여타의 고용형태를 비정규직으로 정의하는 ‘잔여적 정의’가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따라서 단일한 사용자에게 고용되고, 전일제(full-time)로 근무하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년 때까지 계속근로가 보장되는 경우를 ‘정규직 고용’으로 정희하고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나머지의 고용형태를 비정규직으로 분류하고 있다. 즉, 기간을 정한 임시적인 고용계약을 체결하고(임시직, 계약직, 일용직, 촉탁 등), 정규직보다 노동시간이 짧거나(파트타임, 아르바이트 등), 고용주가 아닌 다른 사용자를 위해 노동을 제공하는 간접고용(파견, 용역, 도급, 사내하청, 소사장 등)이나 형식상 사용자와 노동자의 중간형태이면서 실제로는 종속적인 고용관계에 있는 특수고용형태(위탁계약, 개인도급, 재택근로) 등은 모두 비정규직으로 정의된다.비정규 노동자 통계에 대해서 과소추정이라는 노동계 주장과 과대추정이라는 경영계의 상반된 주장이 로자뿐만 아니라 고용보호가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상용직도 임시직으로 포함시키며, 용역업체 상용근로자들을 모두 포함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임금근로자가 아닌 보험모집인 등 독립자영업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은 국제적으로 예를 찾기 힘들다. 이렇게 과장된 분류에 의해 계산된 규모가 설사 50%를 넘는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국제적으로 비교 가능한 기준으로 2002년 경제 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는 한국 임시직 규모를 15%로 OECD 국가 중 중간 수준인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현재 우리나라에서 쟁점으로 떠오른 이른바 비정규직은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없는 기준에 근거한 주관적인 개념에 불과하다.정규직만이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고용형태라는 잘못된 전제 역시 제기돼야 할 문제다. 일하는 형태는 기술적 경제적 환경이 변함에 따라 끊임없이 바뀐다. 산업구조가 안정적인 제조업 중심에서 변동이 많은 서비스업 중심으로 바뀜에 따라 인력구조 또한 변동성을 필요로 하게 되어 장기근속, 정규직 위주인 고용구조는 존재가치를 점차 잃는 세상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파견 도급 등 새로운 고용형태가 활발하게 발전하는가 하면 근로자 또한 고용되어 일하는 형태보다 독립적으로 일하고 서비스를 파는 1인 기업 형태가 늘어나는 추세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문제는 낡은 가정에 의거한 다양한 취업형태를 정규직이 아니라 하여 모두 문제시하는 시대착오적 인식을 보이고 있다.마지막으로 정부와 노동계는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규제를 가하는 잘못된 방향으로 해결방안을 찾고 있다.앞서 말한 것처럼 서로 성질이 다른 취업형태를 뭉뚱그려 비정규직이라고 칭해 놓고는 정규직과 대비해 차별 금지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밭소와 물소를 같은 우리에 넣고 같은 밥을 주라는 것과 같으며 차이와 차별을 혼동하는 것이다. 이른바 정규직이 받는 임금은 마치 금융시장에서 특정한 계층에 우대금리를 적용하듯 시장임금 보다는 우대받는 수준이며 거기에는 특수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이를 표준으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세계화와 정보화의 구조적 요건이자 기업경쟁력 제고에 필수적이라고 보고, 비정규직의 증가가 필수불가결한 현상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노동계 -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고 있다.?경영계 -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해고의 어려움 등 과다 보호가 기업들로 하여금, 정규직 채용을 꺼리고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경향을 낳고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의 증가가 정규직 노동시장의 경직성에 대한 기업측의 당연한 반응이며, 이런 의미에서 시장원리의 관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노동시장은 얼마나 유연하가 하는 문제가 점검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비중의 증가는 그 자체가 하나의 노동시장의 유연화의 거시적 지표로 볼 수 있다. 반면에, 비정규직 노동의 절대적 상대적 증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노동시장이 아직도 경직적이며 국제적으로 보아도 높다는 지적이 있다. 즉, 바로 두 노동시장간의 유연성의 과다한 차이가 문제의 한 중요한 측면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정규 대 비정규 노동자 문제는 노노 간의 이해 대립의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 측면이 있다. 즉,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상대적으로 좋은 노동조건의 제공 대가가 비정규직 고용증가를 낳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이처럼 원인 진단이 다른 만큼 앞으로의 정책방향에 대해서도 노사의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노동계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극단적인 저임금과 고용불안, 그리고 사회적인 배제가 노동빈민(일자리는 있지만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계층)을 양산하는 것은 물론, 이들과 서로 일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어야 하는 처지에 있는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까지도 하락시킴으로써 우리 사회 전체의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사회적인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지금이야말로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보장과 차별철폐를 위한 법제도 개선과 함께 비정규직 고용에 대한 합리적인 규제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는 시문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업무에 대한 파견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제조업에 만연된 불법파견을 근절하고 사용업주의 부당노동행위(파견업체에 대한 계약해지 등을 통한 부당해고 등)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그러나 경영계는 법률로 정한 금지업무 외에는 자유롭게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negative 방식으로 전환할 것과 함께 파견 기간의 상한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3) 학습지교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의 근로자성 인정노동계는 경제적인 종속성이 인정된다면 개인사업주 형태를 취했다 하더라도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 인정하고 노동3권을 온전히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경영계는 이들을 근로자로 인정하는 것은 상당수 독립자영업자를 근로자로 인정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며 반대하고 있으며,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것에도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그 밖에, 동일가치 노동은 동일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과 관련하여, 어떤 쪽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가령, 마사회 소속 운전기사의 연봉이 6000만원인 반면 다른 데서 비슷한 노동은 이에 훨씬 못한데, 누구 쪽 임금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가라는 문제가 있다. 한편, 비정규직 노동 채용을 금지하는 것은 이를 수적으로 줄이는 효과는 있으나 엉뚱하게 비정규직으로 채용을 원하는(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학생이나 주부 노동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비정규직 고용 엄격히 제한해야민주노총 정책국 정책국장 주진우* 최근 비정규 노동자의 확산 속도는 아찔할 정도이다.IMF 경제위기 전인 97년 전체 노동자의 45.9%인 607만명에 머물던 임시?일용직 노동자는 2000년 8월 현재 674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52%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학습지 교사, 보험 모집인, 캐디, 지입차주 등의 위장자영업자, 파견 및 불법 파견 노동자 등을 감안하면 비정규 노동자 규모는 800만명을 상회할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정부의 과도한 노동시장 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 제도의 개선이 절실하다.* 우선 비정규 노동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우리나라가 이처럼 최근 들어 비정규 노동자들이 무분별하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관련 법 조항이 비정규 고용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근로기준법 23조는 '근로계약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과 일정한 사업완료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 기간은 1년을 초과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여 1년 미만의 임시 계약직 노동자의 채용이 무제한으로 가능하다.따라서 단기의 계약직 노동자의 채용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23조를 개정하여 임신 출산이나 질병, 계절적 사업 등 일시적, 임시적 고용의 객관적 합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정규직 고용을 금지해야 한다. 프랑스나 독일 등 서구 유럽국가들에서도 이처럼 기한을 정한 임시 계약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비정규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균등처우 조항(5조)이 있으나, 성별?국적?종교에 따른 차별대우의 금지만 규정되어 있고,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 금지는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따라서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적 대우를 금지하고, 동일 가치 노동에는 동일 임금을 지급할 것을 명시해야 한다. 나아가 사회적 보호의 최후 수단인 국민연금, 의료보험, 고용보험 등의 사회보험 혜택이 비정규 노동자에게도 빠짐없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의료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의 경우, 대체로 고용기간이 1-3개월 미만이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고, 시간제 노동자는 모두 제외되어 있다. 따라서 관련법을 개정하여 이들 비정규 노동자 모두에게 사회보험을 적용하여, 사회적 안전망에서 낙오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지입차주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도 절실하다. 이들은 실제로는 본사나 위탁사용자의 감독과 지휘를 받고 있는 피고용인의 상태이면서도 형식적인 .
    사회과학| 2003.11.12| 10페이지| 1,500원| 조회(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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