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九雲夢)1. 서론1 지은이2 창작 시기3 저작 동기2. 본론1 줄거리2 작품의 구조3 등장 인물, 사건, 배경4 표제와 인물의 이름 명명에 대한 의미5 구운몽의 특징6 구운몽의 사상7 구운몽의 한계점3. 결론1 구운몽의 문학사적(文學史的) 가치2 구운몽의 문학적(文學的) 가치3 작품의 의의{구운몽(九雲夢)의 작품 분석1. 서론1) 지은이김만중(金萬重, 1637∼1692)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소설가로 본관은 광산(光山), 아명(兒名)은 선생(船生), 자(字)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시호(諡號)는 문효(文孝)이다. 조선조 예학(禮學)의 대가인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이고, 충렬공(忠烈公) 익겸(益謙)의 유복자이며, 숙종의 장인인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만기(萬基)의 아우로서, 숙종대왕의 초비(初妃)인 인경왕후(仁敬王后)의 숙부이다. 그의 어머니 해평 윤씨는 인조의 장인인 해남부원군(海南府院君) 윤두수(尹斗壽)의 4대손이고 영의정을 지낸 문익공(文翼公) 방(昉)의 증손녀이며, 이조참판 지(遲)의 따님이다.2) 창작 시기서포가 인현왕후 출척의 여화로 유배생활을 하였던 남해는 노장사상(老莊思想)에서 원류(原流)한 도연명(陶淵明)의 무릉도원을 방불함직한 고장으로서, 서포는 거기서 한국적 이상향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서포가 그리는 동경(憧憬)의 마을은 도화가 피고, 청학이 와서 춤추고, 죽림에서 거문고 타는 천년의 마을이었다. 거기가 바로 서포의 을 이룩하게 한 낙원이요, 무릉인 것이다. 그곳의 자연적 환경 또한 중국의 남해(南海) 동정조(洞庭潮) 용소(龍沼)와는 너무도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는 남해를 무대로 설정하고 싶었지만 그 영역이 너무 좁고, 장엄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국의 무대를 차용해온 것이라한다.1688년에 남인(南人)인 장숙의(張淑儀) 일가를 둘러싼 언사(言事)의 죄로 연루되어 추국(推鞫)을 받고 하옥되었다가 선천(宣川)으로 유배되었다. 이 선천 유배지에서 어머니 윤씨를 위해 을 지었다고 한다.3) 저작 동기의 저작 동기는 와도 토번왕을 물리치고 돌아온 양소유는 위국공에 봉하여지고, 영양공주, 난양공주와 혼인하고 진궁녀와 또 만나 동침하는 가운데 진채봉임을 확인하게 된다. 양소유는 고향으로 노모를 찾아가 경사로 모시고 오다가 낙양에 들러 계섬월과 적경홍을 데리고 오니, 심요연과 백능파도 찾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뒤 양소유는 2처 6첩을 거느리고 일가 화락한 가운데 부귀공명으로 누리며 살아간다. 생일을 맞아 종남산을 올라가 가무를 즐기던 양소유는 역대 영웅들의 황폐한 무덤을 보고 문득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비회에 잠긴다. 이에 9인이 인간세계의 무상과 허무를 논하며, 장차 불도를 닦아 영생을 구하고자 할 때 호승이 찾아와 문답하는 가운데 꿈에서 깨어나 육관대사의 앞에 있음을 알게 된다. 본래의 성진으로 돌아와 전죄를 뉘우치고 육관대사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데, 팔선녀가 찾아와 대사의 가르침을 구한다. 이에 대사가 설법으로 베푸니, 성진과 팔선녀는 본성을 깨우치고 극락세계로 돌아간다.2) 구운몽의 구조▷발단 -----1. 성진과 팔선녀가 인간세계로 추방됨▷전개 -----2. 양소유로 환생한 성진의 급제3. 환생한 선녀들(진채봉, 계삼월, 정경패, 가춘운)과의 인연4. 양소유의 활약과 환생한 선녀들(적경홍, 난양공주)과의 인연5. 양소유의 출진과 환생한 선녀들(심요연, 백능파) 과의 인연6. 양소유의 귀환과 환생한 선녀들(영양공주, 난양공주의 2처와진채봉, 계섬월, 가춘운, 적경홍, 심요연, 백능파의 6첩)과의 인연▷위기 -----7. 양승상 , 진시황의 취미궁으로 이사8. 자연과 풍류즐기며 복을 누림9. 가을을 맞아 등고함10. 가을 경치 즐기다 삶에 회의11. 양승상의 옥소 소리 처연12. 양승상 부귀영화의 무상함 깨달음13. 양승상 인생의 무상함 술회14.양승상 불가에 입문코자 함15.제 남자의 격려와 전송▷절정 -----16.호승의 등장17. 호승이 꿈 밖에서 소유와의 암시18. 현실로 돌아온 성진▷결말 -----20. 성진의 깨달음21. 육관대사의 깨달음22. 성진이 육관대사의이라는 형태를 빌리고 있기는 하지만 흔히 경험하는 단순한 침상몽(寢牀夢)과 같이 꿈의 깸과 함께 그 즉시 기억 밖으로 사라져 버리는 의미 없는 꿈이 아니라, 그것이 한 존재의 의식과 사고에 직접 영향을 미친, 이른바 백일몽(白日夢)을 통한 명상적(冥想的) 꿈인 것이다.2 육관(六觀)·성진(性眞)·소유(少遊)의 명칭(名稱)에 대하여 작품의 주역을 이루고 있는 인물의 명칭(名稱)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가운데 불가(佛家) 노승(老僧)의 당호(堂號)인 대관(大官) 육관(六觀) 의 명도 단순히 아무런 뜻 없이 지어다 붙인 이름만은 아닐 것이다. 육관(六觀) 가운데 그 육(六) 이 가지는 의미가 따로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육관 이란 표현으로 상정될 수 있는 연관이 가능한 유일한 언어에 육관음(六觀音) 이 있다. 더구나 이 석자는 순연(純然)히 불교의 용어이다. 육관음(六觀音) 이란 육종관세음보살(六種觀世音菩薩) 의 줄임말이니, 그 여섯 형태의 관음(觀音)이란 다름 아니라 대비관세음(大悲觀世音) · 대자관세음(大慈觀世音) · 사자무외관세음(獅子無畏觀世音) · 대광보조관세음(大光普照觀世音) · 천인장부관세음(天人丈夫觀世音) · 대범심원관세음(大梵深遠觀世音) 을 지칭한다. 이 보살들은 각각 도맡아 다스리는 역할이 있다. 그 역할과 기능이 그렇게 각각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여섯 관음(觀音)이 한결같이 중생(衆生)의 번뇌(煩惱)를 제도한다(즉 고통에서 건져 구한다)는 점에서 서로 한가지로 통한다.에서 불승(佛僧)으로 고매한 경지에 이른 육관대사(六觀大師)는 불제자(佛弟子) 성진(性眞)의 세속적(世俗的) 큰 번뇌(煩惱)에서 건지어 제도한다. 그 덕(德)이며, 그 고행은 육관음(六觀音)보살다운 것이다. 에서 형상되고 있는 육관(六觀)의 모습과 그 경계는 적어도 보살(菩薩)의 경지이거나 또는 그 이상이다. 이로써 육관대사 의 명칭(名稱)도 육관음(六觀音)보살(菩薩) 의 뜻을 살려 가차(假借)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성진(性眞)이란 이름도 한갓 무의식적으로 아무렇게나 나오는 소하지 않으며 사건들과 이야기들도 비교적 단순하다. 작품에는 양소유와 난양 공주를 비롯한 일곱명의 여인들 주 중요 등장인물들과 함께 각이한 사회계층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수많이 등장하고 있기는 하나 그들 사이에 엉켜 있는 중요한 갈등선은 주로 불교를 선봉하는 육관대사와 그것을 거역해 나서는 양소유와의 관계, 권력을 휘두르면서 부마가 되라고 위협하는 황실과 양소유와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뿐이다. 이 시기 적지 않은 고전소설들이 주로 사건위주의 복잡다단한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구성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비하여 이 소설의 구성은 매우 높은 예술적 수준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언어구사의 측면에서 초상묘사, 심리묘사, 자연묘사 등 다양한 묘사를 잘함으로써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생동하게 그려내고 있다. 간결한 자연묘사를 통하여 민족적 정서가 진하게 풍기는 우리 나라 산촌의 풍경을 보여줌으로써 인간 세상에서 자기의 뜻을 이루어 보려는 양소유의 정신세계를 정서적으로 밝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낭만주의 문학을 발전시킨 우수한 소설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이야기가 벌어지는 무대를 전세, 현세, 내세에 이르는 환상세계로 설정하고 당대 봉건사회에서 이루지 못할 청춘 남녀들의 자유로운 사랑을 현실적으로 실현한 것처럼 그리고 있다. 바로 여기에 이 작품이 가지는 낭만주의적 특성이 있다. 작품은 김시습의 , 등과 같은 소설 작품에서 쓰인 낭만주의적 창작 수법을 훌륭히 이어받고 발전시킴으로써 을 비롯한 큰 형식의 낭만주의 소설창작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6) 구운몽의 사상은 불교사상을 핵심으로 하여 유교, 불교가 혼합되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삼교가 혼연일치를 이룬 것이 사실이나, 그중에서 공 사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에서 공 사상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곳은 육관대사가 성진에게 금강경 큰 법을 베풀어 깨닫게 하기 위해 꿈을 꾸게 한 부분이다. 에서 양소유가 전생의 팔선녀와 향략을 누리는 생활을 빼버리면 공 사상의 강조도 빛을 보지 못하고 만다. 태아는 사람이 태어나기 이전이니, 양소유도 태아적인 생활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꿈에서 깨어나 팔선녀와 같이 불도를 닦아 극락세계로 왕생했다는 것은 미혹에서 벗어나 뉘우치고 깨달은 후의 생활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서포는 민족의 원초적인 모태회귀 본능으로 을 창작했음을 의미한다.다음으로 의 구조적·사상적 성격을 살펴보도록 하자. 의 작품구조는 이야기의 기본 줄거리에 따라 논리구조와 구체적인 서술양상에 따라 파악되는 서술구조로 나누어 볼 때 구조적인 성격은 보다 포괄적으로 균형있게 파악될 수 있다. 논리구조에 있어서는 수도자적 의지와 세속적 욕망이 대립하여 그 승패가 계기적으로 진행되다가 수도자적 의지가 최종적으로 긍정된다. 이에 따라 유교사상이 부정되고 불교사상이 절대적인 우위를 확보하게 된다. 서술구조에 있어서는 세속적 욕망이 표현된 꿈 속의 세계가 더욱 큰 비중과 중요성을 지니고 수도자적 의지를 제약하고 부정한다. 논리구조와 서술구조는 상호 견제하고 부정하는 대립관계를 맺고 있다. 논리구조와 서술구조를 상위 구조라 한다면 그 둘이 결합하여 이루는 구조를 하위 구조라 할 수 있다. 두 층위의 구조를 함께 고려할 때 작품이 매우 입체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위구조 내의 대립은 형태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작자의 의식구조까지 보여 준다. 논리구조가 사유와 이성과 관념의 체계라면 서술구조는 충동과 감성과 본능의 체계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립은 작자의 전인적 면모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에 나타난 사회사상은 유·불·선 三敎이지만 仙敎는 사상적 독자성이 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유·불 두 사상의 대립을 형상화하는 데 수단적인 구실밖에 하지 못하므로 중요한 것은 유·불 두 사상 및 그 양자간의 대립이라 할 수 있다. 유교사상은 본능적 욕구를 절제하는 주자학적 이념으로부터 벗어나 사상 이전의 일상적 현실 쪽으로 크게 굴절되어 있다. 그리하여 인간의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욕망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데 기여하였다. 불한다.
스물 한 살 겨울, 친구가 공연한다고 해서 보러갔던 저 별이 위험하다 이후 극단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던 내가 전공수업의 레포트라는 명목으로 오랜 공백을 깨고, 트루 웨스트 를 보게 되었다.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즐겁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공연 장소인 너름새로 향하였다. 좁은 소극장 안으로 들어가니, 자주 갔던 영화관의 스크린과 좌석이 아닌 배우들이 직접 연기하는 모습, 숨소리조차도 들릴만하게 마주 보고 있는 무대와 객석이 앞으로 볼 공연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을 더 크게 하였다.이 연극은 한 형제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무대 위에서 두 형제는 반복하여 시기하고, 질투하고, 서로 애증의 수로를 넘나들며 한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함으로 공연이 지속되다가도, 어느 사이엔 피식~하는 웃음과 함께 긴장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낙차 큰 커브의 감정을 보였다. 우리들(관객)은 그 모습을 보며 함께 웃었다, 긴장했다, 풀어졌다를 공연시간 내내 무대 위 배우들이 그려내는 그림과 동작에 의해서 객석에서 연출하였다. 형제라고 보기엔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던 리와 오스틴. 형 리는 사막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였고, 동생 오스틴은 일류대학을 나오고 시나리오 작가를 하고 있다. 어머니의 알래스카 여행으로 얼마간 비게 된 어머니의 집을 동생 오스틴이 관리 해 오다가 5년 만에 친형을 만나게 된다. 이 두 형제의 만남 그 자체가 사건의 시작인 것이다. 형은 그 동안 자신이 겪었던 사막에서의 일들을 동생에게 이야기 하지만, 영화 시나리오를 써야 하는 동생에게는 방해가 될 뿐이다. 이렇게 시종일관 말다툼이 이어지지만, 동생은 언제나 형에게 꼼짝을 못한다. 가끔씩 어릴 적 둘이 즐겁게 보낸 추억을 형이 이야기하면 동생은 옛 향수에 젖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동생은 어느새 현실로 돌아와 아직도 꿈속에 잠긴 형을 못 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렇게 서로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제작자의 등장으로 그들의 관계는 뒤바뀌게 된다. 형은 동생이 만나고 있는 제작자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해 그만의 방식, 즉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의 세계로 제작자의 관심을 집중시키는데 성공한다. 이 사실을 알고 동생은 광분하기 시작한다. 명문대학을 나오고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로 명성을 한참 날리고 있는데, 맞춤법도 모르는 형의 얘기가 제작자의 마음에 들다니 ... 문명화된 오스틴의 생각에 형의 이야기는 진짜 이야기가 아니며 그는 가짜 이야기를 진짜 이야기 인 것처럼 파는 사기꾼 인 것이다. 그러나, 실재로 오스틴의 글쓰기야말로 그 자신의 글이 아니다. 그는 제작자의 마음에 들기 위한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항상 거절당하면 어쩌나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며, 진부한 공식 속에서 나름의 새로울 것 같은 소재를 찾아내고자 골몰하고 있다.초반부에 리는 오스틴에게 차를 빌려 줄 것을 요구하고, 오스틴은 형에게 차를 빌려 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형에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돈이 필요하면 자신이 줄 수도 있다고 말함으로 형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자존심이 상한 리는, 위협적으로 동생의 멱살을 잡고 흔들면서 그런 방법이 아버지에게 통했는지 모르지만, 돈을 가지고 자신까지 설득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이들 형제간에서 서로 진정한 의사 소통이 없었던 것이다. 오스틴은 형이 왜 사막에 가게 되었는지 모르고, 형이 정말로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스틴 또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오스틴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굉장한 압박감을 느끼며, 헐리우드를 떠나 사막으로 가고 싶어한다. 여기서 오스틴이 가고 싶어하는 사막은 문명인들이 동경하는 또 다른 쉼터, 마음의 고향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리는 오스틴의 가진 것들을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동생에게 어떤 집이 있는지 물어보고, 멋지고, 금발의 미녀가 살 것 같은 그런 부러운 집에서 그들과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오스틴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형의 이야기를 듣고는 뜻밖의 모습에 놀란다. 오스틴과 리는 서로 대조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서로의 모습과 생활을 동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제작자 사울은 물질적인 사회에서 성공을 위해 사람들을 돈벌이로 보고 그들의 돈을 벌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사업가이다. 그에게 있어 영화는 오로지 사업이며 그들이 만들어 내는 글은 일반적인 대중들이 바라는 통속적인 글쓰기인 것이다. 오스틴도 형이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을 Art 라고 부르자 예술이 아니라 Project'라고 정정한다. 또한 제작자인 사울과의 대화에서 그들은 영화 예술이라고 하지 않고 비즈니스라고 하고 있다. 오락성과 상업성을 중시하는 헐리우드의 영화는 예술이 아닌 영화 산업일 뿐인 것이다.어쨌거나 이제는 리와 오스틴의 역할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오스틴의 작품은 거절당하고 리의 작품이 제작자의 맘에 든 것이다. 형은 철자법도 모르면서 타자기 자판을 두드리고 동생은 형이 하던 일인 도둑질로 훔쳐온 토스터기를 닦고 있다. 이 장면에서 인간의 자아는 극히 불안정하며 한 인간의 내면에는 여러 가지 상충되는 속성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볼 수 있었다. 또한 두 형제는 다른 듯 하지만 그 속에는 같은 모습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오스틴은 대본을 쓰고자 고심하는 형의 모습과는 반대로 계속 술을 마시고 형에게 사막으로 데려가 달라고 말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사막은 안식을 줄 것 같은 마음의 고향이지만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껏 문명사회의 제약에 억눌렸던 오스틴의 또 다른 내면일 수도 있는 리는 그 모습을 더욱 드러내어 무의식인 리가 글을 쓰고 외면적인 자아인 오스틴은 술을 마신다. 사실적인 이야기로 제작자의 환심을 산 리는 글을 써야 하지만 글을 쓰는 재주가 없다. 반면 틀에 박힌 이야기를 쓰는 오스틴은 진부한 이야기 소재로 항상 고심하지만 글재주가 출중하다. 결국 오스틴은 사막으로 가기 위해 형과 내기를 하고 형의 작품을 대신 써주는 대가로 사막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그 내기의 주요 내용이다.초반부터 계속하여 두 형제의 대화 속에 속속히 끼어있는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는 리와 같은 성격을 가진 인물로 평생을 방랑하며 살았다. 이렇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형제, 이들 가족들의 모습은 저마다 서로를 등지고 고립되어 있다. 그리고 가족임에도 서로에게 배타적이며 서로에 대한 이해마저도 시도되지 않은 것 같다.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방랑 생활을 하며 어머니는 버림받은 모습으로 지나칠 정도의 결벽증을 보인다. 아들들 또한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상처받은 바가 있고, 어머니의 결벽증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녀의 남편이 자신들을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는 다른 곳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머니 또한 알래스카로 떠난 것으로 보아 아버지나 리와 같이 가족을 떠나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인다.이제 마지막에 다다르다.. 글을 쓸 수 없는 리의 답답함은 이제 폭력이 되어 나타난다. 리는 골프채로 타자기를 부수고, 이제껏 쓴 원고를 불태우고 있다. 동생 오스틴은 훔쳐온 토스터기들을 진열하고 열심히 닦는다. 버려진 맥주 깡통들이 널려 있고 그들은 술병을 주고받으며 마시고 있다. 어머니가 귀중히 여기는 식물들은 모두 죽어버렸다. 리는 이제 여자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면 전화 번호를 찾기 위해 고심한다. 이것으로 전화 교환수와 통화를 하게 되고 펜을 찾으면서 온갖 그릇들은 바닥에 낭자하게 된다. 펜을 찾아 달라는 리의 말에 오스틴은 훔쳐온 토스터기들에서 빵을 구워내고... 이것들로 바닥은 무지하게 어지럽혀진다. 이렇게 어지럽혀진 상태에서 어머니가 도착하게 된다. 그녀는 알래스카에 가서 이렇게 지겨운 적이 없었다고 말하고 피카소가 마을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들들이 집안을 난장판을 만들고 싸우는 모습을 보자 밖에 나가서 싸우라고 하다가 더 이상 못 보겠다며 이들을 그대로 남겨두고 모텔로 떠나 버린다. 어머니는 자신들의 가족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바로 보지 못하고 마치 남인 것처럼 그냥 방치해 둔다. 어머니는 단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거부하며, 화초에 물을 주고 깨끗한 집안을 유지하는 데에만 신경을 쓴다. 또한 이미 죽은 사람인 피카소가 마을에 왔다고 생각할 만큼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 인 것 같다. 어머니가 도착하고 남자답던 형제들은 어머니 앞에서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변한다. 피카소가 마을에 왔다며 보러 가자는 엄마의 말에 오스틴은 형과 함께 사막으로 떠날 것이라고 하고 리는 자신만 떠날 것이라고 한다. 형의 달라진 태도에 오스틴은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벨트로 리의 목을 조이지만 리를 죽일 수는 없다. 차 열쇠를 갖기 위해 그의 목을 조르지만 어머니를 통해 열쇠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형의 복수를 두려워 해 열쇠를 집어서 도망할 수가 없다. 무대의 마지막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은 팽팽한 긴장관계 속에서 마주하고 서 있다. 인간 내부의 다른 속성은 완전히 합일 될 수 없다. 항상 우리는 이성과 감성의 갈등 속에서 내부의 충돌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마치 오스틴과 리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