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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 통도사에 관한 보고서! 평가B괜찮아요
    통도사- 개요 -선덕여왕 15년(646)에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1641년에 재건하였다.절의 동쪽 입구인 일주문과 서쪽 대웅전이일직선으로 놓이고 사이에 여러 건물들이 좌우로 벌려 서 있는데, 그것을 상로전,중로전, 하로전의 3단계로 구분하여 독특한 가람 배치를 하고 있다. 즉 상로전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나한전, 명부전,삼성각, 산령각을 배치하고, 중로전에는 관음전을 중심으로 대광명전, 용화전 해장보각을 배치했다. 그리고 하로전에는 영산전을 중심으로 극락전, 약사전, 가람각을 배치했는데, 이들 각 노전이 입 구자형의 반독립 사원을 이루고 그 3개가모여 통도사를 형성하고 있다. (자료출처: http://www.a21.co.kr/goarch/ )1. 시대적 배경자장율사의 진영신라석가여래의 가사제27대 선덕여왕 15년(646) 자장율사에 의하여 창건된 통도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삼보란 불교 성립의 삼대요소인 불(교주-통도사)·법(불법-해인사)·승(스님-송광사)을 뜻하며, 삼보 사찰이란 바로 이들 삼보를 상징하는 사찰을 말한다. 즉, 팔만대장경판을 모신 법보사찰 해인사, 보조국사이래 16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 송광사와 함께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금실로 수를 놓은 가사)가 봉안되어 있는 통도사는 삼보의 으뜸인 불보사찰의 위치를 지니게 되었다 통도사를 한국 불교의 으뜸이자 가장 큰 절이라고 칭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금강계단에 모셔짐으로 인해 대웅전에는 부처님을 형상화한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통도사에 봉안된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가져온 것이다. 이때 당나라 황제가 하사한 막대한 양의 비단과, 채색옷감, 대장경 400권, 불교용 깃발, 꽃으로 장식된 가리개 등을 함께 가져와 통도사를 창건하였다. 따라서 통도사는 불사리와 가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로 대장경을 봉안한 사찰이라는 역사적 의의도 갖는다.통도사가 위치해 있는 영축산은 원래 석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고대국가의 핵심 조건은 왕권의 강화와 율령의 정비였고, 불교는 이를 위한 유용한 사상과 방법론을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권이 필요로 했던 것은 강력한 질서와 사회적 율법을 구축할 수 있었던 계율학 계통의 불교였다. 자장 이전에도 이미 원광법사는 '세속오계'라는 사회적 계율을 주창하고 있었지만, 사상적 교리적 체계를 제공한 것은 자장에 와서라 할 수 있다. 즉 불교라는 거대한 종교를 받아들였지만, 그것의 강력한 질서로서 왕권을 강화시킬 성격에서는 아직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다 자장에 와서야 사회적 율법을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또, 계율승 자장이 경주가 아닌 변방 양산에 불보사찰 통도사를 개창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산지방에는 이미 중앙 정부에 다음가는 무시 못할 세력집단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심봉근, '신라시대통도사 주변유적',「불교문화연구」2집, 영축불교문화연구원, 1991, 76쪽, 통도사 개창 1세기 전인 6세기 중반에 조성된 부부총 금조총 드으이 고급 분묘와 박리지 토성, 간월사지 등의 유적을 그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이를 불교의 질서로써 왕권의 비호를 등에 업은 자장에게 주어진 하나의 임무였을지도 모른다. 연못에 사는 나쁜용이 백성들을 괴롭혔기 때문에 이를 제거하기 위해 통도사 금강계단을 설치했다는 설화삼국유사, 자장은 귀국하여 선덕여왕과 함께 취서산을 찾아서 독룡들이 산다는 못에 이르러 용들을 위해 설법을 하였다. 그런 뒤 자장은 못을 메우고 그위에 계단을 쌓았다.이상의 기록을 통하여 통도사가 창건되기 이전의 그 땅은 매우 큰 연못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경내 바닥에 손잡이가 달린 뚜껑이 있는데 이것을 열어보면 1m 아래에 물이 흐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속전(俗傳)에는 자장에게 항복한 독룡은 모두 아홉 마리였는데, 그 가운데서 다섯 마리는 오룡동(五龍洞)으로, 세 마리는 삼동곡(三洞谷)으로 갔으나 오직 한 마리만은 굳이 그곳에 남아 터를 지키겠다고 굳게 맹세하였으므로 자강력한 후원 때문에 이러한 권위를 가질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2. 위치와 입지주 소 : 경상남도 양산군 하북면 지산리 583시 대 : 조선 중기용 도 : 불교건축 - 사찰위치도국립지리원 발행(1977.9) 1 : 250,000 지형도 도엽번호 NI 52-2 부산중에서 경상남북도 일원의 도시, 도로 등과 연관하여 실측조사 대상인 통도사의 위치를 표시한 도면이다.인쇄축척은1 : 600,000정도다.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는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양산군 하북면 지산리(583 번지)에 속한다, 차편으로는 서울-부산간 고속도로상 언양 남측 9km여 지점의 통도사 인터체인지로 나와 5분여 거리다.광역지세도국립지리원 발행 (1977) 1 : 50,000 지형도 도엽번호 NI 52-2-12 동곡,13 삼양, 19 밀 양, 20 양산 등 네 도엽에서 필요한 사항을 발췌하고 표고 400m이상 매 100m 마다 명암을 구분한 도면이다. 인쇄축척은 1 : 100,000이다.산형을 보면 도면 윤곽밖 북쪽 4km여에 위치한 가지산(1240m)에서 남으로 뻗어 내려온 줄기가 가지산(982m)에 이르러 양편으로 갈라져 서로는 천황산(1189m) -재악산-향로산 줄기를 이루었고, 동으로는 신불산(1208m)-취서산-시살등 줄기를 이루었다. 이 동서의 두 산 줄기는 결국 배내천을 가운데 두고 천황산을정점으로 하는 형 구세와 축서산을 정점으로 하는 형 구세를 좌우로 만들었으며 전자에는 표충사가, 후자에는 통도사가 각각 위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http://archi.ulsan.ac.kr, 울산대 건축학부 홈페이지, 전통건축데이타 베이스, 위치도-1중역지세도국립지리원 발행 (1976) 1 : 25,000 지형도 도엽번호 NI 52-2-20-1 통도사 및 NI 52-2-13-3 상북 두 조각에서 필요한 사항을 발췌하고 표고 400m이상 매 100m마다 명암을 구분한 도면이다. 인쇄 축척은 1 : 50,000이다.전항 광역지세도에서 언급한 C형 구세, 이를 배수하는 양산천의 3개하면 사람들이 모이는 앞 강당의 위치가 남쪽이 됨은 그곳에 빛이 많이 들어오는 주택에서의 마당과 같은 명당의 의미를 가지고 대웅전의 위치가 혈의 위치가 됨은 역시 풍수사상의 모년 대화 주비 고초 창신라 선덕왕 15년(646)자장율사(慈裝律師)삼국유사(三國遺事)제 1 중수고려 우왕 5년(1379)월송대사(月松大師)목은이새기(牧隱李塞記)제 2 중수조선 선조 30년(1603)의영대사(儀靈大師)송운사명기(松雲四溟記)제 3 중수조선 효종 3년 (1652)정인대사(淨仁大師)우운진희기(友雲眞凞記)제 4 중수조선 숙종 31년(1705)규파대사( 坡大師)민오기(敏悟記)제 5 중수조선 영조 19년(1743)산중대덕(山中大德)서석인기(徐錫麟記)제 6 중수조선 순조 23년(1823)홍명대사(鴻溟大師)계오기(戒悟記)제 7 중수서기 1911구하선사(九河禪師)금강계단 중건 자료, 통도사 선오스님(통도사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습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통도사는 646년 (선덕여왕15년)에 창건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1300여 년 동안 경역 (境域)의 확충, 건물들의 보수, 중수, 증축, 개수 등 수없이 많은 변화를 겪었다. 따라서 현존 건물들의 배치가 신라시대의 원형 그대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홍재동, 통도사 상로전 영역의 공간변화 분석, 2000-06, 서론부분하지만, 각 건물의 초석의 위치와 간격등은 변함이 없음을 초창 당시 사용된 영건 척도에 의해 이미 밝혀진 바는 있다.손승광·임충신, 통도사 전각들의 영조철도 고찰, 대한걱축학회논문집 2권1호, 통권3호, 1986.임충신, 통도사 금강계단의 영조척도 고찰, 불교문환연구 제2집, 1991.건물명창건중건건물명창건중건건물명창건중건금강계단6469차례대 웅 전6461641대광명전6461725영 산 전6461704불 이 문1305미상일 주 문1305미상명 월 료13161723황 화 각13171647천 왕 문1337이조중기감 로 당13401887원 통 방13411887화 엄 전13681887약 산 전1369미상극락보전1369미상용 화형식을 하고 있다. 따라서 부축에 의해 나누어지는 외적 공간은 서쪽으로부터 일주문 쪽의 동쪽 방향으로 상, 중, 하의 위계가 설정되어 상로전 ( 상로殿) 지역, 중로전 (중로殿) 지역, 하로전 (下爐殿)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이러한 동서의 주축에 남북의 부축 3개가 골격을 이루는 배치 형식은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이다.상로전 지역에는 금강계단이 중심이 되어 대웅전, 명부전, 응진전, 삼성각, 산령각 등이 주된 건물이며 종속 (從屬)의 건물들이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 중로전 일곽은 대광명전을 비롯하여 용화전, 관음전, 해장보각 등과 종속 건물들이 있다.상, 중로전은 입구인 불이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으며 이 불이문은 상, 중로전과 하로전의 경계를 짓고 있다. 하로전은 영산전을 중심으로 앞쪽에 만세루가 있고 서쪽에 약사전, 동쪽에 극락보전이 있고 가람각이 천왕문 남쪽에 위치한다. 따라서 하로전은 천왕문과 불이문 사이의 공간을 차지하며 동으로부터 일주문을 통과하여 천왕문과 불이문을 거쳐 상로전의 정점인 금강계단에 이르도록 하였는데 상, 중, 하로전의 구역과 구역 사이에는 적당한 크기의 구역 중정 (中庭)을 두어 외부 공간과 건물의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스님들의 거처인 요사는 지형 조건에 맞추어 남쪽과 북쪽에 두어 주동선(主動線)이나 부동선 (副動線)에 걸리지 않도록 자리잡고 있다.4. 평면 및 공간 구성상로전 영역금강계단이 있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유인 즉 진신사리를 봉안하는 것이 창건의 이유였고, 통도사가 사회적, 교단적 권위를 가지는 것이 이 상로전의 금강계단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즉 통도사의 존재의 이유가 있는 장소가 상로전이 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건축구성의 면에서도 대웅전과 금강계단은 통도사 전체의 정점에 해당한다. 대웅전 중심에, 예배전각(명부전, 응진전, 삼성각, 산령각), 노전승방(일로향각)으로상로전 영역의 평면과 단면도구성된다. 하로전과 중로전을 거쳐 상로전 일곽에 이르면 3면을 정면으로 갖는 대웅전에 말이다.
    공학/기술| 2002.10.28| 11페이지| 1,000원| 조회(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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