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6
검색어 입력폼
  • [식생활] 일본의 식생활과 문화
    일본음식1800년경에는 본선요리, 정진요리, 회석요리, 중국요리, 남만요리 등이 상호 융합하여 소화, 흡수되는 시대로서 일본의 독특한 요리문화가 완성되었다. 많은 국가가 그러하듯 요리의 발전 과정은 그 나라의 종료와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일본 요리의 발전 과정은 신과 불교의 공물과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또 일본 요리는 요리 전국시대에 많은 유파가 생겨 서로 경쟁해 가며 기술이 발전함에 따리 일본 요리의 이론적으로도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일본 요리의 큰 흐름을 총괄해보면 귀족, 무가 지배의 봉건사회에서 향응의 접대연회는 상층계급이 하층계급에게 '밥상을 받게 해주고', '위로해준다'라고 하는 형식이었고, 엄격한 식사 작법이 요구되었다. 그것이 명치 후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는 변화에 오면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안락한 분위기에서 즐기는 식미본위의 주연을 중심으로 한 향응의 회석요리가 주류르 이루어 왔다.현재 이 회석오리(가이세끼요리)는 결혼필연, 희수(77세의 잔치), 미수(88세의 잔치) 등의 축하연과 일반 연희 등 모든 초청연회에 사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회석요리는 때로는 본선형식을 도입하기도 하고 차회석의 흐름을 추가하기도 하면서 제각기 응용할 수 있게끔 되었다.1. 역사수렵과 어업 민족이었던 일본인의 식생활은 530년경 중국에서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전래된 불교와 함께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700년경에 이르러 궁중의식과 신에 대한 의식 등의 필요성에 의해 일본 요리의 규범인 다이호우리쓰료우(대보율령 : 대보 원년 701년에 제정된 율령 11권의 명칭)가 제정되었다. 이 율령은 972년 요우로우리쓰료우(양노율령)에 의해 보정되어 여러 가지 의식을 행하는 방법과 요리를 만드는 방법,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방법 등이 세밀하게 규정된 연회식이라는 것으로 완성되었다.연회식에는 향응(음식, 술 등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연회)의 선형식과 연중행사 오절구(성인의 날, 여자 어린이의 날, 어린이날, 칠석날, 중양절) 등의 각종 계절행사 요리도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이러한 사회 상황 속에서도 귀족과 공가의 향응에 있는 선에는 변화가 보이지 않고 계속 지속되었다.1338년, 바쿠후(막부)가 가마쿠라에서 교토 무로마치로 옮겨 무가와 공가의 교류가 성행하고 도산(모모야마)문화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 이 시대는 우아한 생활을 과시하는 사회가 되어 요리의 세계에서도 사조류, 대초류, 진사류, 그리고 생간류 등의 다양한 세력들이 형성됐다. 각파는 요리 만드는 법을 포함하여 조리기술, 자르는 방법에 기교를 집중시킨 고도의 기술을 개발하는 등 경쟁이 심화됨으로써 일본의 요리 기술과 조리법이 두드러지게 진보하는 요리 계의 전국시대를 열어나갔다. 아울러 공가사회와 무가사외의 쌍방에 예법이 생겨나 축의의 의식이 더욱 더 엄격해져 식의 선이 정해지고 식사의 예법에 따른 본선요리의 향응 형식이 생긴 것도 이때쯤이다. 1500년경 천리휴(오차나 오차를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를 만드는 사람)들에 의해서 차도가에 따라 다도와 차회석이 완성되었다.이 당시에는 외국과의 교류무역이 성행하여 남만요리(쇠고기나 닭고기, 생선들에 파를 넣어 조린 음식) 등도 건너와서 일본인의 식생활도 점차 육식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1639년 에도도쿠가와(강호덕천)에 쇄국령이 떨어져 다시 생선과 야채를 위주로 하는 식생활로 되돌아갔다. 이때는 완전한 무가정치의 시대였지만 중산층의 활약이 눈부셔 상인들의 부가 위력을 발휘하여 사치스런 요리와 호화스러운 그릇을 쓰는 주연요리가 유행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많은 고급 요리점과 차실(다과회실)이 생겨나 요리문화의 발전이 지속되었다. 엄격한 예의작법의 얽매임 속에서도 더욱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본선요리와 회석요리는 어지럽게 변화하는 사회에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요리다실에서 소외되어 그것에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요리다실에서 소외되어, 그것에 대응되는 주연을 중심으로 한 회석요리가 생겨났다. 중산층의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은 순수한 미각과 식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에 이르러 음식이 유희화 되고, 그 위에 공간 및 색상의 조화를 예술적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또 요리의 양이 적은 반면에, 섬세하고 계절감이 뚜렷하다.3. 종류(1) 지역적 분류- 관동요리 : 무가 및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의례 요리가 발달. 맛이 진하고 달고 짠 것이 특징.- 관서요리 : 관동요리에 비해 맛이 엷고 부드러우며, 설탕을 비교적 쓰지 않고 재료 자체의 맛을 살려 조리. 가이세끼요리가 중심.(2) 형식적 분류- 본선요리 : 혼센요리. 관혼상제의 경우에 정식으로 차리는 의식요리. 식단의 기본은 일즙삼채, 이즙오채, 삼즙칠채 등- 회석요리 : 가이세끼요리. 연회석에서 차리는 요리.- 다회석요리 : 검소하고 비리지 않은 식물성요리, 양보다 질을 중요시하며 재료 자체의 자연의 모습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특징.- 정진요리 : 불교 승의 독특한 요리. 동물성을 피하고 식물성인 채소류, 곡류, 두류, 해초류만으로 조리한 것, 식단은 본선요리의 형식- 보채요리 :중국식의 소찬요리로, 육식을 피한 탁상요리를 말한다.(3) 조리방법에 따른 분류1. 생선회(사시미) : 스가다모리(한마리의 생선을 통째로 생선회로 만드는 것), 우스쭈꾸리(그릇의 문양이비칠 정도로 생선살을 얇게 썰어 담아내는 것) 등2. 맑은국(스이모노) : 스이모노(가스오다시에 소금과 간장 등으로 약하게 간을 한 것. 입안을 헹궈주며 향긋하게 만들어준다), 미소시루(된장국) 등3. 구이요리(야끼모노) : 시오야끼(소금구이), 데리야끼(간장구이) 등4. 조림요리(니모노) : 아라다끼, 데리니, 아오니 등5. 튀김요리(아게모노) : 덴뿌라(계란물과 밀가루로 만든 튀김옷에 묻혀 튀기는 것), 모또아 게(재료 그 자체를 물기만 제거한 채 기름에 튀기는 것) 등6. 찜요리(무시모노) : 사께무시(술찜), 자완무시(계란찜) 등7. 무침요리(아에모노) : 시라아에(두부를 채에 내려 재료와 무치는 것), 고마아에(깨를 이 용해 재료를 무치는 것) 등8. 초회(스노모노) : 문어초회, 해삼초회 등9. 냄비요리(나베모노) : 지리, 탕미네랄워터에 희석해서 마신다. 위스키의 미각을 더해준다는 비싼 빙하의 얼음이 요사이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4) 와인서양요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에서는 국산과 외국산 와인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산 '라오츄'는 중국식 레스토랑에서 마실 수 있다. 최근 수년간 좋은 와인과 알맞은 안주를 제공하는 격식 있는 와인 바가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5) 소주이 증류된 화주(火酒)는 고구마, 밀, 수수 등의 재료로 만들어지는 술로서 보드카와 비슷하다. 일본인들은 스트레이트로 마시거나 얼음을 넣어서, 혹은 칵테일로 해서 마신다. 한때는 찾는 사람이 적었으나 근래에 와서는 젊은층 사이에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다. 시중의 호평을 얻고있는 제품일수록 사람들이 싫어하는 강한 향미를 피하여 부드럽고 순하다. 거의 모든 일본식 술집에서 판매하고 있다.5. 차일본에 처음으로 차나무가 도입된 것은 평안조(795 ~ 1192) 환무천황의 시대로 전교대사가 중국으로부터 차 씨앗을 들고 돌아와(805년) 심은 것이 최초이며, 홍법대사도 당으로 건너갔다가 귀국 때 씨앗을 갖고 돌아왔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것은 이미 나라시대(710 ~ 784년)에 유당사(당나라 사신)나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승들에 의해 널리 보급되었고, 천평원년(729년)에는 차의 예가 행해졌다. 그 당시는 단차라 하여 차의 잎을 건조시켜 굳힌 다음 때에 따라 풀은 후 끓여 맛을 내어 마셨다. 끓여서 맛을 냈기 때문에 센차이며, 그 이름은 현재까지도 남아있다. 그 후 유당사가 폐지되어 당과의 교류가 끊어졌다. 평안 말기에 들어 중국도 송의 시대가 되었고 다시 일본과의 교류도 열렸다. 이미 송에서는 차를 마시는 방법이 단차 대신, 현재 일본인들이 마시는 맛차(녹차를 갈아서 분말로 한 고급차)였다. 영서선사는 송에서 재래법과 재차법 등을 익힌 후 우수한 종자를 갖고 돌아와 각지에 보급시켰다. 최초는 구주(쿠우쇼우)의 배진산에 심었고, 그 뒤 경도(교또) 매미의 명혜상인이 씨앗을 받아 심뢰에 씨를 뿌렸으며, 여기에서 질 좋은 차를 만차라고 했다. 센차를 만들고 남은 크고 딱딱한 잎과 줄기로 만든다. 강한 불에서 충분히 말린 다음 만들었기 때문에 황갈색을 띤다. 이 반차를 볶은 것을 호지차라고 한다. 반차는 교쿠로차나 센차와는 달리 95 ~ 100도씨 정도의 뜨거운 물로 만들어야 맛있다.(5) 아마차(감차) : 산수국이나 돌외의 잎을 말려 달인 차로 옛부터 4월 8일 석가탄신일에 각 사원에서 이 아마차를 만들어 참배자에게 주었다. 이 차는 구충의 약효로 마시는 사람도 있고, 당뇨병자는 단식품으로 마시기도 한다.6. 과자과자의 기원은 연력(엔랴쿠) 23년 공해대사가 당에 건너갔을 때 담백하여 맛있는 전병(센베이)를 먹었던 계기로 이 제법을 알아 귀국하여 화삼랑이라는 사람에게 전수하여 이 사람이 전해 받은 제법에 따라 갈근, 쌀가루, 과실의 당액을 섞어 굽고 과자라 이름 붙였던 것이 일본 과자의 기원이 되었다. 현재는 설탕을 사용하는 것을 상식으로 하지만, 옛날의 단맛은 엿, 꿀, 감초, 아마즈라, 곶감, 감 껍질이 주로 사용되었다.종류를 대략 보면 양갱(요깡), 구비(규우히), 유평당(아루헤이도우 : 마른과자의 일종인 설탕 과자), 금단(낀동), 만두(만쥬우), 병과자(모찌가시 : 떡, 찹쌀, 갈분, 메밀 따위를 원료로 하여 만든 과자), 갈분떡, 경단, 낙안(라쿠간), 와라비모찌(고사리 녹말을 반죽해서 만든 떡), 오코시(밥풀과자. 즉 쪄서 말린 쌀 따위를 볶아 깨, 콩, 김 등을 넣고 물엿 등으로 굳힌 과자), 엿과자, 생과자, 최중(모나까 : 찹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 구운 것에 팥소를 넣은 과자), 전병(센베이), 아라레(주사위 모양으로 썬 떡을 튀겨서 맛을 들인 과자), 화륜당 등이 있으며, 그밖에 이것을 하나하나 분류하면 수없이 많고, 또 각지마다 색다른 것들이 많이 있다.{{(1) 아오니요시(청단양) : 나라의 명과로, 옛날엔 사각으로 된것에 깨 등을 뿌렷된 것을 청단양이라 하였다. 볶은 보릿가루, 콩가루 따위를 사탕, 물엿에 반죽하여 굳혀 말린 과자로, 현재는 라쿠간으로 불리.
    예체능| 2003.05.16| 11페이지| 1,000원| 조회(471)
    미리보기
  • [논리학] 논증의 재구성과 분석
    논증의 재구성과 분석(1)유전자 은행으로 性범죄 예방을( 세계일보, 2002/11/22 )성폭력 범죄 전과자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정보은행 설치 문제를 놓고 또다시 찬반논란이 일고 있다. 여성부가 엊그제 개최한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대검측이 재범률이 높은 성폭력범의 검거와 범죄예방을 위해 전과자의 유전자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할 것을 제안하면서 촉발된 것이다. 유전자 정보은행 설치안은 당초 법무부와 일부 국회의원들이 1994년 입안했다가 인권유린을 우려한 반대여론 등에 부딪혀 무산된 적이 있다.우리는 유전자 정보은행의 설치를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이미 형벌을 마친 전과자의 유전자 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해 잠재적 우범자 취급을 하는 것은 '이중처벌' '인권침해'라는 지적에 일리는 있다. 그러나 성폭력은 재범률이 60%를 넘는 범죄로 날로 급증하는 추세다. 성범죄의 재발을 막고 범인의 검거를 위해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수사가 가장 효과적이다. 또한 가해자의 인권을 주장하기에 앞서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일이다.유전자 정보 수사기법은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간 흉악범의 검거는 물론 억울한 누명을 쓴 피의자의 무죄를 밝히는 데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영국은 1995년 4월 유전자 정보은행을 첫 도입한 이래 올 1월까지 150만여명의 범죄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17만여 사건을 해결했다고 한다. 미국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도 이미 도입을 했거나 준비하고 있다. 한국도 고문과 폭행으로 자백을 강요하던 반인권적 수사방식을 벗어나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과학수사가 활성화돼야 한다. 다만 유전자 정보은행 설립 이전에 개인 정보의 유출-악용 가능성을 차단할 완벽한 보안시스템 구축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논증의 요약이 사설의 쟁점: 우리는 성폭력 범죄 전과자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정보은행을 설치해야 한다.이 사설의 논거: 성범죄 재발 방지와 범인 검거를 위해서는 유전자 정보 수사방법이 효과적이고, 피해 자와 일반인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며, 다른 나라에서도 유전자 정보은행을 설치하 여 이용하고 있다.* 논증의 분석⑴ [전제1] 성폭력은 재범률이 60%를 넘는 범죄로 날로 급증하는 추세다.⑵ [전제2] 성범죄의 재발 방지와 범인의 검거를 위해서는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수사가 가장 효과적이다.⑶ [전제3] 유전자 정보 수사가 가해자의 '이중처벌',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일리는 있 지만 가해자의 인권을 주장하기 앞서 피해자의 인권이 보호돼야 한다.⑷ [전제4] 유전자 정보 수사기법은 흉악범의 검거는 물론 억울한 누명을 쓴 피의자의 무 죄를 밝히는 데 크게 기여한다.⑸ [전제5] 영국은 1995년 4월 유전자 정보은행을 첫 도입한 이래 올 1월까지 150만 여명 의 범죄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17만여 사건을 해결했다고 한다.⑹ [전제6] 미국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도 이미 도입을 했거나 준비하고 있다.⑺ [전제7] 한국은 고문과 폭행으로 자백을 강요하던 반인권적 수사방식을 택하고 있다.⑻ [결론] 그러므로 우리는 성폭력 범죄 전과자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정보은행을 설치 해야 한다.* 논증의 평가 (오류 지적)[전제3]의 경우 : 모든 인간의 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미 죄값을 치른 가해자의 인권도 피해자의 인권과 마찬가지로 존중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심리를 이용하여 참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제3]은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옹호하고자 하는, 그리고 자신들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일반적인 심리를 이용해 대중에 호소하는 논증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전제5], [전제6] 도 마찬가지로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이 두 가지 전제는 외국의 경우를 들어 우리 실정에도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유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처럼 우리나라에도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수사방법이 추진될 경우 그 실효성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특히 두 전제는 귀납적 일반화를 포함하고 있는데, 그 표본의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다양성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논증의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전제7]은 한국은 고문과 폭행으로 자백을 강요하던 반인권적 수사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 또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다고 할수 있다.그럼 오류를 가진 전제들을 버리고 논증을 재구성 해보면 다음과 같다.* 논증의 재구성 분석 (1)⑴ [전제1] 성폭력은 재범률이 60%를 넘는 범죄로 날로 급증하는 추세다.⑵ [전제2] 성범죄의 재발 방지와 범인의 검거를 위해서는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수사가 가장 효과적이다.⑶ [전제3] 유전자 정보 수사기법은 흉악범의 검거는 물론 억울한 누명을 쓴 피의자의 무 죄를 밝히는 데 크게 기여한다.⑷ [결론] 그러므로 우리는 성폭력 범죄 전과자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정보은행을 설치 해야 한다.[전제1]은 다음과 같은 숨은 전제를 포함한다.-> [숨은 전제] 성폭력의 증가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성폭력의 재발은 근절되어야 한다.또한 [전제2]는 반례를 갖고 있다. 반례를 제거하는 숨은 전제를 찾아보면,[전제2]의 반례 :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수사보다 더 효과적인 수사방법이 존재할 경우-> [숨은 전제] 현재 성폭력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 중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수사 보다 더 효율적인 수사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전제3]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 동안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들이 존재하였음을 보여준다.-> [숨은 전제] 그 동안 성폭력 범죄로 인하여 무고하게 연행되고 조사받은 용의자들이 많았다.*논증의 재구성 분석 (2)⑴ [전제1] 성폭력은 재범률이 60%를 넘는 범죄로 날로 급증하는 추세다.⑵ [숨은 전제] 성폭력의 증가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성폭력의 재발은 근절되어야 한다.⑶ [숨은 전제] 현재 성폭력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 중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수사보 다 더 효율적인 수사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⑷ [전제2] 성범죄의 재발 방지와 범인의 검거를 위해서는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수사가 가장 효과적이다.⑸ [숨은 전제] 그 동안 성폭력 범죄로 인하여 무고하게 연행되고 조사받은 용의자들이 많았다.⑹ [전제3] 유전자 정보 수사기법은 흉악범의 검거는 물론 억울한 누명을 쓴 피의자의무죄를 밝히는 데 크게 기여한다.⑺ [⑸와 ⑹으로부터]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수사방법은 성범죄 행위 입증을 용이하게 해 피해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는데 유용하다.⑻ [결론] 그러므로 우리는 성폭력 범죄 전과자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정보은행을 설치 해야 한다.* 사설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이 사설은 "성범죄 재발 방지와 범인 검거를 위해서는 유전자 정보 수사방법이 효과적이고, 피해자와 일반인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기 성폭력 범죄 전과자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정보은행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성폭력 범죄 전과자의 '이중처벌'과 '인권침해'라는 점에서 반론이 가능한 설득력이 부족한 논증이라고 할 수 있다.논리적 사고 Report 논증의 재구성과 분석(2)흡연학생 '감점' 적극 검토를(세계일보, 2002/09/16 )앞으로는 담배를 피우는 학생은 대학 입학시험에서 불이익을 받게 될 전망이다. 수도권 주요대학 총장들이 청소년흡연을 막기 위해 입시전형에서 비흡연 수험생을 우대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고 한다. 아직 구체적인 의견접근은 없지만 동점자를 처리할때나 특차모집을할경우비흡연학생을 우대하는 방안을모색한것으로전해진다.특히 청소년이 처음부터 담배를 배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중-고교 재학시 흡연으로 징계받은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자는 방안도 제기됐다. 이에 앞서 국립암센터에서는 지금의 초등학교 6학년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2009학년도부터 모발검사를 통해 흡연자를 가려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수험생을 우대하자고 보건복지부에 건의한 바 있다.우리나라 청소년 흡연율은 세계 1∼2위를 다투는 수준이다. 약 50만명의 중-고교생이 담배를 피운다. 심지어 학교 안에서조차 예사롭게 흡연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흡연이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에게 나쁘다는 사실은 이미 의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또 흡연습관은 대부분 비행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시작된다. 학업에 흥미를 잃고 갖가지 유혹에 빠져드는 시기도 이때부터다.중-고교생의 흡연을 막기 위해 대학입시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자는 방안은 적극 지지할 만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청소년들의 건강을 지켜주고 학업에 전념토록 할 수 있다면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대학총장들의 모임에서는 일부 참석자들이 신중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하지만 흡연자에 대한 대입 불이익은 오히려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사회과학| 2002.12.26| 6페이지| 1,500원| 조회(1,667)
    미리보기
  • 일본문화사 독후감 평가B괜찮아요
    일본문화사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일본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일본 문화는 외국의 문화를 모방한 것이 대부분이며, 사무라이 정신에 입각한 남녀 차별이 당연시 되는 나라. 이러한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일본의 서민들의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알지도 못하였다.이 책은 일본을 시기적으로 분류하여 그 시기의 문화적 특징과 그 특징의 원인 등을 서술하고 있다.원시 사회의 문화일본의 원시사회는 다른 나라와 비슷하게 부족집단이 채집을 하며 살아갔으며 따라서 재산 형성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에 따라 계급도 없었으며 국가도 형성되지 않았던 사회이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조몬 토기는 수많은 양식과 풍부한 디자인을 지니고 있는데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조몬 토기가 유행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일본의 원시시대는 외국의 경우와 달리 발전이 지체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신석기 시대에 접어들었으면서도 여전히 수렵활동을 계속하였다는 점이 그런 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일본이 유라시아 대륙 동단에 위치한 섬나라로 대륙의 발달한 문화의 파급이 시간적으로 늦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본의 지리적 요건으로 하여 대륙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일본 문화사에 있어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일본문화사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또한 이 시기의 굴장이나 패총 등을 보면 주술을 믿었을 것으로 예상된다.이렇게 원시 시대는 국가도 형성되지 않았고 또한 계급도 형성되지 않았던 시기로 수렵을 대부분이 하였기 때문에 낮은 생산력을 지녔고 문화 또한 낮은 수준이었지만 이 시기에 형성된 문화가 이 후 일본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원시사회 문화의 의의라고 할 수 있겠다.고대사회 초기의 문화고대 사회의 특징이라고 하면 금속문화가 전파와 농경 사회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일본의 금속 시대는 외국과 달리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철기시대로 진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일본이 원시 사회의 특징과 마찬가지로 지역적 특색으로 대륙의 문화를 늦게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금속기 전 조몬 토기와는 다른 양식을 수반하고 있다. 이러한 야요이 문화는 새롭게 해외로부터 이주해 온 민족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고대사회의 특징의 또 다른 하나는 벼농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벼농사의 시작으로 대규모의 공동작업이 요구되고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취락이 발달했다. 그리고 잉여물의 축적이 가능해져 이에 따른 빈부의 차가 생기고 이 빈부 차는 계급형성을 가져왔다. 이로하여 고대사회는 원시사회와는 판이한 문화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4~6세기에는 계급의 분화와 전제권력이 강화되면서 고대 전제군주국가가 형성되면서 일본 민족이 정치적으로 통일되었다. 이러한 중앙집권적 고대 관료국가의 체제가 갖추어지게 된 것은 지배자들의 적극적인 대륙문화 수입에 기인한다.또한 고대사회의 특징으로 불교의 전래를 들 수 있는데 일본인들은 원시사회의 주술적 민간신앙을 이으면서 불교신앙을 받아들였다. 이는 일본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일본 문화는 전통적인 고층문화가 외래의 신층문화의 전개로 소멸되지 않고 증층적으로 공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고대사회 뿐만 아니라 현대에 이르러서도 일본인들이 선진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전통문화를 지키는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고대 초기의 일본인들은 성에 대해서 아주 개방적이었다. 이는 주술적 행사와 관련있었기 때문인데 그 당시 혼인관계인 쓰마도이콘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이 시기에는 후대에 일본사회에서 나타나는 가부장적인 모습과는 반대로 모계사회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율령사회의 문화중앙집권적 국가의 성립은 율령사회를 이끌었고 율령사회는 탄탄한 계급제도를 바탕으로 높은 수준의 문화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재는 서민들을 노예와 같이 취급하여 대량의 물자와 노동력을 중앙의 통제 하에 집중시킨 율령제도의 거대한 권력과 재력을 전제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율령사회에는 조정에서 불교신앙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였는데 이는 율령국가의 안녕을 주술적으로 보장받고자 하는 요구에서 나온 으로 보호하고 지지한다는 의미에서였다. 따라서 이 시기의 일본의 불교는 원래 불교의 의미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율령시대의 일본 불교에서 사상적으로 볼만한 것이 생성될 수 없었다. 하지만 거대한 율령권력을 배경으로 찬란한 문화재 생산은 가능해졌는데 이것이 율령기 불교가 일본 문화사에 갖는 가장 큰 의의라고 할 수 있다.율령사회의 지배자를 매혹시킨 대륙문화는 비단 불교뿐만이 아니였다. 수와 당의 강력한 지배기구를 모방한 점과 화려한 건축양식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시기는 불교와 마찬가지로 겉으로 드러난 문화재적인 부분은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의식이나 생활 깊은 부분까지 변혁시키지는 못했다.이 시기는 전통문화와 외래문화가 영역의 차이를 초월해서 성숙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지배자들의 왜래 문화 섭취욕구와 전통문화의 강한 생명력의 상반하는 작용이 균형을 이루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이러한 강력한 중앙집권적 힘도 헤이안 시대로 접어들면서 약해지기 시작하고 귀족문화적인 색채를 더해가기 시작한다.귀족사회의 문화귀족사회는 율령사회와는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다. 이 시기는 국한된 세계 속에서 문화적 능력을 최대한 성숙시켰다. 이들은 여러해 걸친 문화적 축적과 세련됨의 바탕 위에 섬세한 감각을 다듬어서 극히 한 방향으로 치우치기는 했지만, 후세 사람이 쉽게 따라올 수 업슨 문화를 창달했다. 게다가 율령귀족이 생산한 불교미술과 같이 대륙에서 직수입된 문화가 아니라 해외문화가 더 이상 대략으로 유입도지 않았던 이 시대의 귀족 문화는 일본인의 생활에 스스로 어울리는, 일본적 특징이 짙은 국풍문화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다시말해 대륙문화로부터의 문화적 독립을 이루었다는 점과 질적으로 높은 차원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귀족사회의 문화는 문화사적 의의를 지닌다.귀족사회에서 일본적 문화의 발달은 문예 영역에서 화려하게 개화했다. 국자(國字)으 발명으로 모노가타리 문예의 발달하였다. 모노가타리는 현대의 소설과 비슷한 양식으로 민간전승인 구전설화를 바꾼 것으로 외국에준다.또한 귀족사회에서는 미술도 일본화 모습의 나타났다. 그전의 중국화의 모방에서 10세기 무렵부터는 일본적 화풍이 유행하게 되었다. 조형미술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나타났는데 일본적인 부드러운 용모의 불상이 많이 제작되었다. 이 때 당시의 예술의 공통점은 자연과 인생과의 융합이었다.하지만 귀족문화가 아무리 세련되어간다고 해도 소비적이고 퇴폐적인 좁은 세계 속에서 틀어박힌 한정된 문화 감각은 극복할 수 없는 장벽으로 존재했다. 이 때 조야하지만 건강하고 발랄한 민중문호가 귀족에게 부족한 점을 불어넣음으로 귀족문화는 더욱더 발달할 수 있었다.이러한 질적으로 수준이 높은 귀족문화는 지방과 해외에 진출하여 더욱더 큰 발전을 해 나갔다. 그러나 귀족문화와 민중문화의 분열은 심각해졌다.봉건사회 성장기의 문화봉건사회는 무사의 성장으로 인해 다양한 모습을 띠게되었다. 이러한 특색이 문화사의 측면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민중의 성장에서 촉발된 무사세력의 상승은 문화의 세계에서도 귀족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민중적 요소가 풍부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다.봉건사회는 토지에 대한 지배가 봉건적 지배의 중심을 이루었고 이를 강고하게 하는 인적 조직으로 봉건사회의 지배자인 무사들의 주종결합이었다. 목숨을 건 싸움을 수행하기 위한 인간적 결합은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 인관관계를 초월한 엄숙한 성격을 띠게 되는데 이는 귀족들이 전혀 알 수 없는 새로운 정신적인 경지를 보여준다.하지만 봉건사회의 문화는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결여되었던 부정적 측면이 드러난다. 어쨌든 무사의 등장은 퇴페한 귀족사회에 결여되어 있던 신선한 도의적 활력을 가지고 출현햇던 점에 주목할 가치가 있다.이러한 무사적 성격은 문학적 측면에서 드러나게 되는데 '헤이케 모노가타리'로 대표되는 군기물들이 그것이다. 귀족문예와는 달리 시야가 넓을 뿐만 아니라 대중적 성격도 갖추고 있어 열러 계층에게 애독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무사를 선두로 하는 민중적 세력을 상승이 귀족사회에서는 생겨나지 않았던 새로운 성질의 히 하려는 구불교와는 다른 민중을 구제하고자하는 신불교가 유행하였고 그 대표적인 것이 선종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이 시기는 종교의 세속화라는 경향이 가속되었는데 이는 새로운 문화를 양산해냈다. 선종문화가 그러한 점이 두드러졌으며 여러 면에서도 이러한 선종으로 영향으로 정신적인 면을 추상화, 상징화하려는 점들이 나타났다. 수묵화가 그러한데 선종의 발달로 인한 수묵화는 일본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다.봉건사회 확립기의 문화이 시기 문화의 특징은 발라하고도 호쾌함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일명 모모야마 문화랄고 할 수 있는데 모모야마 문화의 주된 주체는 우선 새로이 지배자가 된 입신출세한 무장이고 다음은 이에 동조한 호상으로 그들의 정해진 규약에 얽매이지 않고 활달하고 호방한 정신이 그대로 바영된 이 새대의 문화는 고아하지만 약한 고대의 귀족문화와도, 또한 난숙하지만 퇴폐적이고 스케일이 작은 에도의 조닌 문화와도 다른 강력함이 있다.이러한 특징은 성곽 건축에서 잘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종교의 세속화 과정이 더욱 활발히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그러나 모모야마 시대가 호장함을 자랑하는 시대였음에도 그 일면에는 완전히 모순된 경향이지만, 조용하며 산뜻한 맛을 구하는 경향도 있었다. 이를 잘 반영하는 것이 다도의 풍류인데,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모모야마 시대의 호사한 취향은 안팎 모두 장식조각을 많이 써서 화려한 후스마에나 병풍화로 사람의 눈을 현혹시키는 건축양식을 유행시켰다. 그 결과 과대한 장식에 치우친 건축까지 만들어졌다.모모야마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서양문화와의 접촉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 전 태체로 송, 원, 명에서 전해지던 중국 양식에서 벗어나서 유럽의 문화 수입이 이루어져 기독교 문화의 유입이라든지 일상생활에서의 모자, 바지 , 침대 등 일상용품까지 서양적 요소가 가미되었다. 이는 이 시기의 일본이 국제적으로 예전에 없던 개방적 분위기를 갖게 해 주었다.서양문화의 유입은 일시적이긴 했지만 세계에 널리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생겨난 일본인의었다.
    독후감/창작| 2002.12.26| 5페이지| 1,000원| 조회(607)
    미리보기
  • 백남준의 예술세계 평가A좋아요
    백남준예술과 철학 기말 Report의 예술세계들어가며백남준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만큼 그의 예술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높이 평가한다. 나 또한 그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들을 직접 접해보지 않았음에도 백남준이라는 이름이 전해주는 친근감에 쉽게 그의 예술세계를 분석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내가 그에게서 받은 인상은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TV같은 도구들과 예술과의,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만남의 조화에서 오는 말로는 표현 못할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관객들을 수동적 감상자로 내버려두지 않고 참여를 이끌어내는 그의 해프닝은, 순수예술이 가지고 있는 오만함을 꼬집고 싶었던 나에게 대중과의 교감이라는 예술의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많은 공감이 갔다.이렇듯 그의 자유로운 예술세계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백남준의 일생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1956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58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학 미학문학부에서 공부하고, 다시 독일로 유학하여 뮌헨 루드비히막시밀리안대학교를 수료하였다. 그 뒤 유럽과 미국을 떠돌며 전위적이며 실험적인 미술집단, 플럭서스(Fluxus)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테이프리코더와 피아노음악 공연(독일 뒤셀도르프, 1959), 피아노포르테 연구 공연(1960), 심플 공연(스웨덴 스톡홀름, 1961), 뮤직일렉트로닉TV전(1963) 등 많은 공연과 전시회를 가졌다.1963년 독일 부퍼달 파르니스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비디오 예술의 창시자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1969년 미국에서 샬롯데 무어맨(Sharlotte Mooreman)과의 공연을 통해 비디오 아트를 예술 장르로 편입시킨 선구자라는 평을 들었다. 1977년 위성TV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발표하였고, 199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1996년 6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의 왼쪽 신경이 모두 마비되었다. 그러나 신체장애를 극복하고 국내외에서 도시와 영상전(서울시립미술관, 1996), 교과서 미술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997), 독일 비디오조각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997), 97 바젤국제아트페어(스위스 바젤, 1997), 개인전(미국 국립미국미술관, 1997), 98서울판화미술제(예술의전당 미술관, 1998), 한국현대미술전-시간(호암갤러리,1998) 등 많은 전시회를 열었다.1996년 10월 독일《포쿠스》지가 선정한 '올해의 100대 예술가' 중에 들었고, 1997년 8월에는 독일 경제월간지 《캐피탈》이 선정한 '세계의 작가 100인' 가운데 8위로 올랐다. 1998년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미술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현대예술과 비디오를 접목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공로로 '98년도 교토상'을 수상하였고, 한국과 독일의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괴테메달'을 받았다.2000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백남준의 예술세계"처음에는 매우 시니컬한 기분으로 케이지의 콘서트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서서히 케이지의 음악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콘서트가 끝났을 때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미술과 테크놀로지"에 함축된 진짜 문제는 또 다른 과학적 장난감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급격하게 진보하는 테크놀로지와 전자 매체를 어떻게 "인간화"하는 가이다. 살아 있는 조각을 위한 TV브라운관, 전자공학...그리고 테크놀로지를 인간화한 하나의 첨단 사례이다.....중략...그들이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새롭고 환상적이며 인간적인 방법을 찾아내도록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원래 예술이란 반이 사기입니다. 속이고 속는 거지요. 사기중에 고등사기입니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입니다. 엉터리와 진짜는 누구에 의해서도 구별되지요. 내가 30년 가까이 해외에서 각가지 해프닝을 벌였을 때, 대중은 미친 짓이라고 웃거나, 난해하다는 표정을 지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의 진실을 꿰뚫어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백남준-처음 그의 작품들을 접하는 사람들은 그가 갖고 있는 자유로움이나 그의 예술적 표현방법에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예술적 코드는 분명 그 이전의 예술이 가지고 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색채를 띄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결국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현대인에게 친숙한 테크놀로지와 인간적인 면의 결합을 엉뚱한 상상력을 통해 조금은 새로운 방법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해프닝★해프닝이란 명칭이 정식적으로 처음 사용되었던 것은 1959년 가을 뉴욕의 루벤(Reuben) 화랑에서 행해졌던 앨런 캐프로우(Allan Kaprow)의 개인전 이었다.그 이후로 해프닝은 그 전의 「이제 막 무슨 우연한 일이 일어난다」는 원뜻 보다도 그것을 벗어나서 어떤 다른 일을 가리키는 말로써 쓰여지고 있다.해프닝은 일반적으로 내용이 없는 각본과 즉흥적인 것에 기초를 두어 왔는데, 이는 해프닝을 '모체를 갖지 않는 연극(Nomatrixed Theater)'이라는 말로 불리게 하였다. 해프닝은 형체가 없고 우연성에 의해 즉시 성립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우연성은 해프닝의 현장에 자유롭게 참여하도록 초청받은 관중의 예기치 않은 행동에 수용되도록 되어 있었다백남준은 60년대 가장 극단적인 실험 공연의 주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백남준의 해프닝은 음악과 연극의 복합 형태인 '연극적 음악'이거나, 혹은 음악적 행위와 비음악적 행위의 혼합 양상인 '행위 음악'으로 볼 수 있다. 즉,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시청각 예술을 보여준다. 전에 단지 듣는 음악에서 이제는 '보고 듣는' 음악으로의 전환을 가져온 것이다. 백남준의 해프닝은 '볼거리' 재미와 '놀랄거리' 충격을 함께 제공하는 일종의 음악적 해학이요, 익살극이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부수고, 피아노를 연주하다 말고 관람하고 있던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가위로 자르고, 반나체 공연파트너의 과도한 노출로 공연 도중 경찰에 연행되는 등 수많은 신화를 남긴 백남준의 해프닝은 그러나 행위의 센세이셔날리즘으로만은 볼 수 없는 깊은 철학적 의미를 지닌다. 백남준 해프닝의 그 충격과 자극으로 관객을 환기시키고 관객에게 보다 쉽게 접근한다. 그의 공연은 관객을 위한 관객을 향한 소통의 예술이며, 관객을 작품에 참여시키려는 관객 참여의 예술이다. 객석의 케이지에게 행해진 해프닝은 관객을 자극하기 위한 백남준 특유의 충격 요법인 동시에, 관객을 작품에 참여시키는 가장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이었다.소통과 참여의 예술 해프닝은 첨단의 공연 예술이면서도, 관객과 하나를 이루는 가장 원초적인 제의적 예술과 일맥 상통한다. 1990년 한국에서 열린「조셉 보이즈를 위한 추모 굿에서 알 수 있듯이 굿은 그의 예술에 도구로 많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굿의 의미와 해프닝의 의미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해프닝이나 굿이나 모두 볼거리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함께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 해프닝에서 관객 참여가 하나의 예술적 장치이듯이, 굿판에는 아무나 끼여들어 춤도 추고 빌기도 한다. 또한 '바로 이곳'이라는 현장성을 강조하는 삶의 예술 해프닝이나, 고인과 만나는 무당의 예술, 굿이나 모두 자기정화라는 치유적 기능을 갖는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굿뿐만 아니라 작은 부족의 의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축제와 의 기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을 벗어나 그 전에는 할 수 없었던 자신의 내면 표출을 가능하게 해 줌으로써 정형성으로의 탈피, 엄격함의 초월 이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관객에게 제생력을 부여해 주는 것이다. 백남준의 해프닝은 마치 멋진 굿 한판을 끝내고 나면 마음의 안정을 얻듯, 현대인들의 병들고 찌든 삶에 안정과 제생의 힘을 작용하게 해준다고 할 수 있다.★비디오아트★사전적으로 정의 하자면, 비디오, 즉 텔레비전을 표현 매체로 하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비디오아트는 1970년대 전반부터 성행한 현대 예술의 한 경향으로 비디오아트는 크게 나누어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예술적 가능성의 추구에서 생겨난 것과 형식주의적인 예술에 대한 반발에서 생겨난 것이 있다. 그러나 둘 모두 작가보다도 관객의 주체성를 중시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비디오 아트는 아직 확실한 형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편으로는 영화의 연장, 또 한편으로는 예술의 연장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거기에 공간이나 환경의 구성과도 결부되어 있어 어떤 방향에 더 가능성이 있으며, 또 어느 방향으로 귀착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그러나 비디오 아트는 현대예술의 새로운 장르로서 미술관이나 화랑 등에 전시되어 '움직이는 전자회화(電子繪畵)'라는 애칭으로 조용한 붐을 일으키고 있다.백남준은 70년대에 이러한 비디오아트의 새로운 비젼을 제시한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그의 비디오아트는 그 전의 그의 작품을 대표했던 해프닝을 포함하는 미디어 공연예술로 발전하였다. 1956년 독일에 도착한 후 아방가르드 예술에 경도된 백남준은 1959년에 이미 자신의 해프닝 작품에 산 수탉, 오토바이와 함께 'TV 수상기 1대'를 포함시킬 구상을 하고 있었고, 그로부터 4년 후 1963년에 그는
    예체능| 2002.12.26| 5페이지| 1,000원| 조회(1,216)
    미리보기
  • <독서 감상문>부유한 노예 평가A좋아요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풍족한 미국사회에 대한 분석이다. 특히 클린턴 정부시절 장관으로 있었던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 [부유한 노예]는 신경제의 빛과 그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성공의 미래는 무엇인가란 질문을 제기한다.분명 우리는 과거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살고 있다. 즉, 신경제는 지난 우리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견인차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것이다. IT분야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하여 구매자는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것을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가장 유리한 가격에 원하는 즉시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판매자들의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최상의 구매 조건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구매자의 선택의 폭은 더욱 넓어지며 선택의 조건은 나아지고 기회는 더 커지게 된다. 구매자는 이러한 선순환으로 인한 혜택을 보게 되었다. 질 좋은 상품, 다양한 투자 기회, 필요한 재능과 기술을 갖춘 사람들을 의한 많은 일자리 등, 다시 말해 구매자 천국의 시대 인 것이다.하지만 신경제는 이러한 빛의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구매자가 곧 판매자이기 때문이다. 신경제 하에서는 구매자로서의 우리가 더 좋고, 더 빠르고, 더 싼 상품과 서비스를 요구하면 할수록 판매자로서의 우리는 경쟁이 격화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용 절감, 부가가치 창조, 신상품 개발 등의 대폭적인 혁신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객확보, 기회포착, 계약성사라는 필사적이고 힘든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판매자에게는 지옥 일 수밖에 없다.이러한 경쟁이 심화될수록 기업은 창조적 근로자 를 더 원하게 될 것이고, 이들에 대한 수요와 보상은 더 높아질 것이다. 라이시는 경쟁을 이기기 위한 혁신을 이루는 데는 새로운 문제를 발견해 해결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찾는 기크 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잠재 의식 속에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내는 데에 그 독창성을 발휘하는 슈링크 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기크 와 슈링크 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수록 대체될 수 있는 인력인 단순 생산직 근무자들은 기업의 비용절감의 이유로 일자리와 수입의 안정성이 떨어지게 되고, 그 결과 소득격차는 계속 더 벌어지게 된다. 또한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이동이 쉬워지면서 교육 수준이나 재산, 건강면에서 유사한 사람들끼리 배타적인 인맥과 집단을 형성하기가 쉬워지면서 사회적 분화 현상이 심화된다. 결국 신경제는 더 필사적인 삶, 불안감, 고용불안, 빈부격차, 사회분화라는 그늘의 결과를 안고 있기도 한 것이다.우리는 이러한 신경제의 상황에서 승자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을 하고, 더 많은 시간 그리고 더 집중해서 일을 하게 된다. 미래가 불확실해지고, 빈부격차의 심화, 분류 과정이 활발히 진행되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의 구성이나 보상 방식이 우리를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 모든 면에서 성패에 따른 득실의 폭이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이러한 물질적으로는 풍족한 듯 보이지만 삶의 질적인 면에서 우리는 과거 보다 더 가난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경제의 상황 속에서 라이시는 개인과 사회가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개인적 선택과 사회적 선택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개인의 노력과 사회의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개인적 노력은 일과 삶에 균형을 찾는데 강한 의지와 노력을 가져한다. 모든 선택은 개인에게 달려있다. 원한다면 가족, 이웃, 친구, 사회에 시간을 할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택은 완전한 개인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일의 구성이나 보상이 개인적 선택을 더 쉽게 또는 더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개인의 선택은 사회적 선택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라이시 바람직한 사회적 균형을 이루는 방법으로는 온건한 개혁방식을 택하고 있다. 갑작스런 경제적 충격에 대한 완충장치를 제공하는 방법의 예로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은 일자리를 얻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고, 실업보험을 소득보험으로 대체해야 하는 등의 일들을 할 수 있다. 또 경제적인 부의 수혜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적절한 교육을 통한 인적 자본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 그리고 자본자산에 대한 접근을 확대하는 것으로 모든 젊은이가 18세가 될 때 금융자본금을 제공할 수도 있다. 아이들, 노인, 장애인들이 필요로 하는 애정어린 관심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간호 보조사, 가정진료 보조사, 양로원 간호사, 놀이방 선생님, 학교 교사, 사회 사업가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인 존중과 거기에 합당한 대우해 주고, 양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 강조하면서 학교 교육 적용 연령을 서너 살까지 포함하거나 취학 전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한다. 또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게 해주고 남자도 가족을 돌볼 유급휴가를 주도록 국가가 기업을 유도 할수 있으며, 분류 과정을 반대방향으로 하기 위해 학교 재원을 전국교육신용기금으로 대체 하는 것을 들었다. 교육이나 주택 바우처 제공으로 소득 격차에 따른 불균등한 교육과 소득에 따른 지역 사회 분화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라이시는 이러한 정부의 개입이 신경제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개혁할 수 있는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사회 안전망 구축, 빈부 격차의 해소, 균등한 기회제공이라는 근본적인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제안이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본다.우선 18세가 되는 모든 젊은이에게 금융 자본금을 제공하자는 안인데 18세라는 나이의 적정성 문제를 들 수 있다. 충동적이고 향략적 성향이 짙은 나이의 아이들이 그것을 과연 투자할런지가 의문이고 만약 투자를 한다하더라고 그 투자가 얼마나 생산적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학교 취학 연령을 낮추거나 미취학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국가가 제공하는 것은 집에서 돌보는 아이들까지 국가가 양육을 책임지게 되므로 가장 이상적인 보육인 가정의 역할이 더욱 사라지게 할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일을 하는 데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게 되는데 이를 세금으로 충당한다는 것이다. 북유럽과 같은 복지국가에서 이미 과도한 세금으로 인해서 국적을 바꾸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세금에 대한 반발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아무리 사회의 대다수가 잘산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본성에는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욕구가 강하며 단지 도덕적 선에 반발이 없을 거라는 기대는 것은 너무 이상주의자적은 생각이 아닐까? 이러한 세금을 바탕으로 하는 이상주의적 사고 보다는 좀 더 새시대에 맞는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그래서 나는 신경제의 문제점을 일이 너무 많다는 점부터 생각해보기로 했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나머지 시간을 삶의 질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를 주목했다. 프랑스는 주35시간 근로제’를 도입한 후로 전에는 12.6%였던 프랑스의 실업률은 실시 후에 8.5%로 무려 4%포인트나 떨어져 18년이래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근로시간이 주당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면서 무려 30만개 가까운 일자리가 새로 창출된 것이다.2003년까지는 50만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게 정부의 예측이다. 그렇게 되니 자연 외국인 투자도 늘게 되었고, 무엇보다 경제가 탄력을 받게 되었다. 비결은 간단했다. 하루 근로시간을 연장하거나 주말에 출근하고, 요즘 같은 바캉스철에도 일하도록 탄력적 변형근로제를 병행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주35시간 근로제 실시 전 사용자들이 우려했던 것과 달리 생산성이 현저히 올라갔다는 점이다. 직장들이 대부분 ‘주4일 근무-3일 휴무제’를 실시하면서 이들 직장의 근로자들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말을 즐기거나,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주말을 연장해 사흘 연휴를 즐기는 대신 충전된 에너지로 강도 높은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웃 국가인 영국과 독일이 최근 이러한 프랑스의 주35시간 근로제를 스터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러한 주4일 근무를 미국에도 적용해보면 어떨까 싶다. 우선 프랑스의 예를 통해서 보았듯이 생산성이 더욱 증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뿐만 아니라 일이 많은 사람은 일을 적게 할 수 있어 좋고, 일자리 나누기와,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을 통해서 일이 없었던 사람도 쉽게 직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하는 시간이 줄었기 때문에 이를 다른 생산적이고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좀 더 가족이나 친구들을 만나는데 시간을 할애할 수 있고, 자기 개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4일 근무를 파트타임이나 비정규직 직원으로서가 아니라 정식 직원의 권한을 부여하여야 한다. 그리고 창조적 직업과 단순 근로자들의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남는 여가시간을 단순 근로자들에게는 정부가 교육을 시켜 창조적 인력으로 키워 소득격차를 줄여가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교육의 분화를 막기 위해서도 정부가 적절하게 개입을 해야 할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2.06.16| 4페이지| 1,500원| 조회(1,174)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5
5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1
  • A좋아요
    1
  • B괜찮아요
    3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13일 수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9:57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