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1. 중외제약의 출범- 창업과 1950년대1) 기업의 출범2) 경영전략2. 재기와 도약의 시대 - 1960년대1) 1960년대의 산업현황2) 공장이전3) 심각한 경영 위기4) 후라킬과 리지노마이신의 개발5) 경영전략3. 고도성장의 역사 - 1970년대1) 1970년대의 산업현황2) 본격적인 영업정책의 추진3) 광고의 본격적 운영4)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다각적 노력5) 경영 다각화의 초석 구축6) 경영전략4. 대기업으로 부상 - 1980년대1) 1980년대의 산업현황2) 경영 내부의 체계화 도모3) 영업활동4) 신규설비의 도입과 연구개발력의 극대화5) 경영 다각화6) 경영전략5. 21세기를 향한 웅비 - 1990년대1) 1990년대의 산업현황2) 영업활동3) 신제품개발4) 관계사의 합병과 사업 확대5) 경영전략6. 『중외제약』의 경영전략1) V-R-I-O2) COST LEADERSHIP3) PRODUCT DIFFERENTIATION4) VERTICAL INTEGRATION5) CORPORATE DIVERSIFICATION1. 중외제약의 출범- 창업과 1950년대1) 기업의 출범해방 직후 일본인 회사인 『쥬가이제약』을 인수하여 임용식, 남효법, 이원우등이 『조선중외제약소』를 설립하였다. 이 당시 생산제품은 해방 전 『쥬가이제약』이 개발한 진통?소염?해열제인 「사루소부로카농」단일제품이었는데 1946년에는 「20%포도당」「50%포도당」을 새로 내어 3개 제품을 생산 발매 하였다. 이러한 제품군을 보면 치료의약품인데 중외제약은 출범과 함께 치료제전문업체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제품의 판매형태 및 거래방식은 미약한 조직체계와 소규모 생산에 따라 진행되어 아직은 상당히 미비한 가내수공업의 형태라 할 수 있었다.이 시기 제약업을 살펴보면 『경성신약』『금강제약』『유한양행』『조선중외제약소』이렇게 대표적으로 4개社가 있었는데 판매 분야도 조금씩 다르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때라 치열한 경쟁은 없었다.조 다각화구도에 접어들게 되었고 196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는 외국 업체와의 활발해진 기술제휴의 의한 우수 의약품의 생산과 선진 제약기술의 도입을 뒷받침하는 시설의 확충, 품질관리의 향상 등으로 1966년 국내의약품 총생산 100억 원을 돌파하였고 1960년에는 300억 원대에 달하는 비약적인 생산실적을 기록하게 되었다.2) 공장이전1960년대 초반 『중외제약』은 충무로 3가 12번지에 위치한 건평 약 1백평 규모의 소규모 공장에서 「5%포도당」 등 주사제 몇 제품을 주축으로 20여종의 의약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설도 극히 미비했을 뿐 아니라 생산직원도 30여명 안팎에 불과해 요즘에 비한다면 제약회사라기보다는 아직까지 가내수공업에 속하는 형편이었다.이기석은 이 무렵 중외제약이 가내공업에서 탈피하여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가주기 위해서는 또 다른 신제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유능한 기술약사가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그 물망에 오른 인물이 1960년 9월에 입사하여 1960년대 전 기간에 걸쳐 『중외제약』연구개발 분야를 진두지휘한 이한표 약사였다. 또한 업무부서 역시 영업무, 총무부, 생산부를 체계화 하였으며 가기 부서 내에 서도 업무를 세분화 하는 등 비로소 회사 내 업무영역별 체계화를 이루게 되었다.하지만 생산시설 면에서는 아직까지 아주 영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요즘의 기준으로는 생산시설로 볼 수도 없는 작은 증류수제조기, 멸균기 등을 사용했고, 회사재정이 어려워 ph테스트 기계를 구입할 수 없어 ph페이퍼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5%포도당」등의 주문량이 점차 늘어 결국에는 생산량이 주문량의 10분의 1도 안되는 상황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중외제약』은 생산량의 확대를 위해 당시 공장과 인접해 있던 주택을 구입하여 내부시설을 일부 개조 생산시설을 확충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 수요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설이어서 공장을 이전하고 시설을 확장하는 일은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가 아닐&D투자를 강화한 기간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R&D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신약을 개발하여 경영난을 극복한 것이 돋보였다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개발된 「리지노마이신」과 「후라킬」덕에 장기간 지속적으로 이윤을 확보할 수 있는 창구를 열게 되었다.3. 고도성장의 역사 - 1970년대1) 1970년대의 산업현황197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제약산업은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다품종생산에 매달리는 등 불리한 여건 아래 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성장을 거듭했을 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기술을 도입하여 연구개발비를 절감하는 등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이처럼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 힘입어 우리나라 제약업은 1960년 초부터 15년동안 무려 80배에 이르는 양적인 성장을 기록하게 되었다.2) 본격적인 영업정책의 추진1970년 들어 「리지노마이신」의 발매와 함께 대중의약품시장에서도 활기찬 영업 전략을 펴나가기 시작한 『중외제약』은 1971년에 전년보다 30% 높은 신장목표를 설정, 주제품인 「리지노마이신」을 병원과 약국에서 양면 공략하는 한편, 이미 정평있는 치료약품으로 인식된 「5%포도당」과 각종 수액제품의 처방에 대한 공세를 계속해 나갔다.1972년 들어서는 주요 치료제의 하나인 위궤양치료제 「아루사루민」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세미나를 개최하는 한편 하반기부터는 집중적인 시장개척에 나서 역시 판매목표를 전년대비 20%높게 책정하였다.또한 『중외제약』은 이 무렵 ①수요 공급의 적정화에 따른 매출채권 관리의 철저 ②불량거래선의 양질화 및 이에 따른 영업사원의 자질향상과 계수관리의 철저 ③원가절감에 따른 내부경영의 합리화 ④해외시장 개척에 따른 외자획득 ⑤제품PR에서 기업PR로의 방향전환 등을 기업의 주요 영업정책으로 정하고 이의 실천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영업의 다각화를 위해 기존의 병원중심의 영업정책을 유지하면서 1973년부터는 약국중심의 영업정책으로 다.『중외제약』은 그동안 제약분야에서 다져놓은 방대한 병의원시장을 기반으로 해외 유명 의료기기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들여온 의료기기를 판매하기 시작하였다.1976년 들어 『중외상사』는 의료기기의 국산화계획에 착수, 국내 제작업자와 계약을 맺고 국내생산을 서둘렀다. 이를 바탕으로 1977년 경기도 부천에 의료기 공장 가동식을 하였고, 산부인과용 의료기 외 수종의 생산에 들어갔는데 의료보험 실시에 따른 의료장비의 수요증가에 대비하여 단계적으로 전과용 의료기를 생산하고, 특수 전자공업 계통의 고정밀 의료기까지 생산, 수입대체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이러한 의료기기 시장에서의 성공을 받침으로 1977년『중외기계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일반기계류, 산업기계류, 화학기계류 등에도 진출하게 되었다. 『중외기계』의 설립에 힘입어 『중외상사』의 의료기기 생산시설을 『중외기계』로 옮기게 되었으며, 『중외상사』는 영업?판매에 주력하게 되었다. 『중외기계』는 정부가 1977년부터 일련의 의료시혜 확대정책을 채택한데다가, 기존의 국공립병원과 보건소의 시설이 확충되고, 공단 내의 병원, 의대 등이 신설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의료시설의 수요가 격증하면서 계속된 호황을 타고 장족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었다.6) 경영전략발전해가는 국가산업에 편승하며 해외시장진출, 경영 다각화를 통해 사세를 확장해가는 좋은 시기였다. 특히 『중외제약』→『중외상사』→『중외기계』로 사업 확장을 통해 제약부문에서 다져놓은 유통망을 살려 의료기기분야에 진출하고, 일반?산업기기에까지 진출한 관련다각화 전략은 기업이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4. 대기업으로 부상 - 1980년대1) 1980년대의 산업현황1970년대에 10%가 넘는 기적적인 GNP성장률을 기록했던 우리나라 경제는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등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저성장과 함께 고물가라는 이중의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상황의 악화는 1980년 말을 전후하여 타업계와 제약업계에까지 파급되어 유수한 기업 분야의 투자에도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여 1983년에 종합연구소를 설립하게 되었다. 종합연구소의 설립은 지금까지 조직 각 부문에 산재해 있던 관련부분을 통합하여 연구개발을 집중적이고 효과적으로 추진하며, 수입 자유화와 자본 자유화정책 등 국제화시대에 대처할 수 있는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고, 기술 고급인력의 내부양성 및 기술축적을 통해 독자제품을 개발, 국제화시대를 주도한다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종합연구소를 설치함으로써 연구개발 범위에서도 의약품, 시약, 식품, 기초화학, 동물용 약과 나아가 첨단의료분야까지도 그 연구개발 영역을 확대하게 되었으며, 1985년 세계 두 번째로 백혈병치료제인 「에노시타빈」등 3종의 항암제를 개발해내는 쾌거를 이룩한데 이어 국내 최초의 지사제인 「염산 리다미딘」의 합성에 성공하는 성과를 거두었다.5) 경영 다각화1980년대 들어서 저성장 추세의 의약품시장과 전 세계적으로 의약품 개발이 위축되고, 1980년대 들어 제약업계에 매우 불리하게 전개된 각종 규제와 강화조치로 기업경영은 매우 어두운 전망을 보였다. 이러한 여러 한계들을 극복하고, 충격을 완화시켜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분야의 진출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를 위해 『중외제약』에서는 1984년 신규사업부를 발족하였으며, 신규사업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적으로 수행하고, 새 아이템의 선정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였다. 사업영역의 확대와 더불어 검토분야도 다양화하여 식품류, 화장품류, 공산품류, 시약류 등 전 분야에 걸친 사업성 검토와 신규제품개발에 주력하게 되었다.하지만 기존 제약부문에서의 지속된 한계는 『중외제약』으로 하여금 새로운 사업부의 진출을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그래서 1986년 자동차 관련용품사업에 진출하기로 하고, 조직을 개편하였다.『중외제약』이 자동차용품 시장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1985년 국내 자동차 수가 1백만 대를 돌파함에 따라 자동차용품의 수요가 증가, 시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한데 따른 것이었다. 당시 국내 자동차용품시장의 추정규모는 약 1천 3백있었다.
자 동 차 산 업 분 석(S-C-P PARADIGM)◇ 목 차 ◇■ 서론1. 자동차산업의 분류………………………………………22. 자동차산업의 특성………………………………………2■ 본론1. STRUCTURE(시장구조)…………………………………62. CUNDUCT(시장행동)……………………………………93. PERFORMANCE(시장성과)……………………………18■ 결론1. 자동차산업 전망…………………………………………19■ 참고문헌…………………………………………………21■ 서론1980~90년대 국가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해온 자동차산업은 지금도 우리경제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산업이다. 이러한 의의에서 자동차산업을 분석한다는 것은 매우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자동차산업의 분류와 특성에 대하여 서론에서 간단히 설명한 후 본론에서는 S-C-P PARADIGM을 기초로 하여 시장구조와 행동, 성과를 분석하여 보도록 하겠다. 마지막 결론에서는 자동차산업의 전망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해 보이도록 하겠다.1. 자동차산업의 분류자동차산업은 자동차제조에 관련된 모든 기업과 그러한 기업에 의해 수행되는 활동을 포함한다. 그러나 자동차는 원료단계에서 완제품생산에 이르기 까지 단일공정을 통해서 생산되는 제품이 아니고 상이한 생산공정을 갖는 많은 부품의 결합체일뿐이다. 따라서 "자동차제고"라는 경우에도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 하는가 명확하지 않다. 더구나 자동차를 구성하는 부품 중에는 다른 기계제품에도 사용되는 성질 즉 범용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자동차용 부품을 제조하는 업체도 자동차용 이외의 부품을 생산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기업단위로 자동차산업을 정의하고자 할 때에도 산업범위를 정하기 어렵다.한국표준산업분류상에 자동차산업은 세분류『3843 자동차제조업』으로 이를 다시 세부분류『38431 자동차제조업, 부품제외』와 『38432 자동차부품제조업』으로 나누어 산업범위가 어느 정도 축소되어있다. 자동차산업은 제조업, 부품제조업 등 자동차 생산과 관련한 거의 모든 분야를 포함하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이밖에 물류관리, 품질관리, 코스트관리, 부품업체관리등도 공장의 경쟁력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또한 공장의 어느 한 공정이 상당한 투자와 노력으로 공정개선을 이루어 생산성이 향상되었다고 하여도 공장전체에서 볼 때는 생산성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그 공정이나 다음 공정에서 중감재고를 많이 갖게되는 비효율로 나타나는 결과도 나타나기 때문에 공장전체가 평준하게 또는 동시에 전체적으로 생산성 향상을 기하여야만 하는등의 고도의 조업관리 기술이 요구되는 산업이다. 생산의 전문화.표준화.기계화.자동화.평준화 정도에 있어 타산업보다 높아 'Automation'이라는 말과 'JIT생산방시'이 자동차산업에서 생겨났고 NC공작기계나 로봇도입도 자동차산업에서 가장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다. 이와 같이 콘베이어시스템에 의한 양산방식으로 대표되는 생산기술의 고도화가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된다. 따라서 자동차산업을 생산방식의 도장이라고도 한다.또한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기계공업의 산물이다. 일반적으로 장치산업이 설비나 운영 노하우에 따라 품질이 결정되고 또한 품질이 연속적인데 비해 기계공업은 수공업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기계의 결합"인 "Man-Macine System"의 기반위에 도구(Tooling)를 다루는 산업으로서 사람에게 노하우의 의존성이 높고 또한 제품품질도 비연속적으로 나타나며 요구범위에 집약시키려면 각종 관리기술이 필요하다.따라서 자동차 공업은 도구를 만드는 기술과 다루는 기술이 자체에 축적되어야 하고 생산설비에 구체화되어야하며 각종의 제조설비를 자동차업체가 독자적으로 설계.제작하는 기술축적이 필요하다.(6) 국제화산업 및 범세계적산업(Global Industry)자동차산업은 다국적기업들의 주요한 시장지배와 국제시장에서 경쟁기업들이 차지하는 전략적 위치가 근본적으로 이들 기업의 세계적 위치에 영향을 크게 받는 산업이다.전 세계적인 협력체계는 지리적위치에 따른 수송비용의 감소 임금경쟁력에 의한 현지생산 및 부품적 결합 형태는 아니지만 이러한 계열사간 조달, 유통을 통해 거래비용의 위협을 해소할 수 있고, 저렴한 가격에 거래를 할 수 있게 되므로 수직적 결합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5) 정부의 규제산업에서 정부의 규제는 비용의 상승 기업운영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진입장벽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자동차산업에서 대표적인 정부규제는 환경에 관한 규제라 할 수 있다.다음 표는 시대별 정부의 규제를 개괄적으로 나타낸 표이다.구분핵심규제1970년대연비규제1980년대안전규제1990년대배기규제(CO, HC,NOx, PM)2000년대CO2규제2010년대『출처 : 산업연구원』위 표에서 알 수 있듯이 1970년대 이후 정부의 규제는 대부분 환경에 관한 규제 이었다. 자동차 업체에서는 이를 위해 끊임없는 연구개발 해왔으며, 그러한 연구개발이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 CUNDUCT(시장행동)(1) M&A기업이 규모를 불리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M&A전략이다. 기업은 보유한 현금을 시설투자, R&D투자에 사용해 기업을 발전시켜 규모를 늘릴 수도 있지만 이러한 방법은 워낙 리스크가 커 자칫하면 기업이 존폐위기에 놓일 수도 있게 된다. M&A를 하게 되면 비교적 쉽게 규모를 늘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부도위기의 기업을 값싸게 매입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어 많은 기업들이 M&A를 선호하고 있다. 자동차산업의 M&A는 현대와 기아처럼 국내기업의 M&A도 있지만 벤츠-크라이슬러, GM-대우처럼 다른 국가와의 M&A가 더 많으므로 전세계적 시각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지난 90년대를 정점으로하여 2000년대 초까지 세계 자동차산업은 향후 21세기에는 대규모로 덩치를 키운 5,6개의 메이커만 살아 남는다는 주장이 팽배하면서 M&A의 열풍에 휩싸였다. GM이 대우차를, 포드가 볼보를, 르노가 닛산과 삼성차, 그리고 98년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한 것이 좋은 예이다.이러한 기업의 행동 결과 대중 브랜드들 사이의 M&A는 성공적이었던 데 반해, 프리미엄 브랜드와 대중동차 앨라배마 공장(HMMA)이다.2) 마케팅 전략 및 사례① 입지선정앨라배마주는 미국 동남부에 소재한 인구 450만의 비교적 덜 발달한 주이며, 풍부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목화 생산과 제철업이 성행하고 있다.현대자동차는 여러 주를 물색하던 끝에 주에 자동차 노동조합이 없고, 주정부가 공장부지를 무상 제공하는 등 다른 어느 주보다 많은 혜택을 약속한 앨라배마를 최종 선택하게 되었다.② 성공의 열쇠앨라배마주는 각종 민원이 즉시 해결되고 어딜 가나 열렬한 환대를 받는 등, 현대차 공장 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전체 주민들이 발 벗고 나섰다는 인상을 줄 정도였다. 관세와 물류비 절감, 그리고 통상압력 회피 등의 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국내생산과 같은 가격경쟁력을 상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어 결국은 현지인을 채용함에 따라 떨어지는 가격경쟁력을 얼마나 빨리 브랜드 경쟁력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 였다.③ 앨라배마공장의 준공미국에 한국 자동차 업체 최초로 건설한 앨라배마 공장이 준공 기념식을 갖고 글로벌 자동차메이커로 도약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어 Made in USA 첫 출시와 함께 한국 자동차 산업의 신기원을 열었다.④ 품질개선경쟁력 확보를 위해 현지 부품업체를 포함한 현대차의 전사적인 완벽한 품질 확보 노력도 강도 높게 계속되었다. 이를 위해 한국에서 파견된 35명의 품질전문가들이 생산 전체 공정간의 품질시스템 구축 및 전사품질 경영체계를 확립하고, 양산 전까지 생산될 900여 대의 쏘나타 시험차에 대한 철저한 주행내구성 테스트 및 실차모니터링을 통해 최고품질수준 달성위해 노력하였다.⑤ 이미지 개선앨라배마 공장 준공을 계기로 캘리포니아 디자인연구소, 디트로이트 기술연구소, 모하비 주행시험장 등의 현지 연구개발(R&D) 및 테스트 거점과 연계하여 설계 및 디자인에서부터 차량 시험 및 평가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현지화를 추진, 현지 고객의 감성과 기호에 맞춘 차량을 생산하여 북미시장 판매 확대를 도모함은 물론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적극 나서려고 노력하였다.⑥ 서비스 자동차메이커로 키우겠다는 신념의 매개체이기도 했다. 특히 현대자동차는 중국 승용차시장 판매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아반떼XD 및 중형차시장의 절대강자인 쏘나타 판매를 통한 현대차의 고급 이미지를 바탕으로 전 세계 최대의 물동량과 유동인구를 가진 중국 상용차 시장에도 진출함으로써 현대차의 중국내 위상을 높이려고 하였다.‘광저우현대’는 중국승용차 시장의 선도업체로 급부상한 베이징현대에 이어 중국 화난지방 최대도시인 광저우에 상용차 거점을 확보함으로써 베이징현대와 연계하여 보다 적극적인 중국 시장공략을 통한 시너지효과 창출은 물론 승?상용을 동반 생산하는 명실상부한 중국 종합자동차메이커로 성장할 계획이기도 하다.④「NF 위이샹」의 중국시장 공략중국 현지고객들의 기호가 점차 고급화 되고 있는 추세에 따라 현지고객들의 요구에 적극 부은하기 위해 중고급 승용차인 「NF 쏘나타」를 출시하였으며, 이로써 현대자동차는 「EF 쏘나타」,「아반떼 XD」,「투싼」과 함께 중고급 모델을 추가하여 모델 다양화를 통한 고객만족도 향상에 부응하였다. 또한 차명을 ‘NF 위이샹’으로 정하여 기존 「EF 쏘나타」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제품으로 기존의 혼다 어코드, 도요타 캠리 및 GM의 뷰익 리갈 등과 정면 승부를 펼칠 계획이다.「NF 위이샹」DMS 초기 판매증대를 위해 지역별 신차발표회를 별도로 개최하고, 호남 위성TV의 한국드라마 ‘대장금’협찬을 통해 제품에 대한 초기 인지도 및 친숙도를 높이는 전략을 세웠으며, 판매확대를 도모하기 위하여 기존의 242개 딜러망을 연말까지 300개 이상으로 늘려 현재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계획을 구체화 하였다.3.인도1) 인도 진출 과정현대자동차는 1980년대 후반부터 북미시장 진출의 성공을 바탕으로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의 거대한 신흥시장으로의 진출을 도모하기 시작하였다.인도는 1991년 라오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외개방을 적극 추진한 결과 년평균 경제성장률이 6-7%로 높아졌고, 소비시장이 급성장하였다. 1995년 1인당 GDP가 약 320달러에 불다.
■ 서 론성장과 분배간의 관계는 많은 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었으며 수십년동안 연구의 초점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에대한 연구는 매우 복잡하고 방대하며 접근하기가 그리 용이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성장으로부터 분배로의 인과관계와 분배로부터 성장으로의 인과관계를 보는 서로다른 시각, 즉 성장과 분배간의 인과관계의 방향이 완전히 상반되는 두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최근까지 분배와 성장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는 주로 성장이 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발전경제학 문헌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성장으로부터 분배로의 인과관계에 대한 인식은 주로 확산효과(tricking down effect)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는 쿠즈네츠의 U자가설로 설명되고 있다.성장과 분배간의 연결은 이처럼 쿠즈네츠의 가설에 입각하여 줄곧 성장으로부터 분배로의 인과관계로 해석되어 왔다. 역방향인 분배로부터 성장으로의 인식은 주로 쿠즈네츠가설 가운데 성장의 초기단계에서는 소득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부분을 역으로 해석하여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전략상 불평등한 분배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가 정당화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쿠즈네츠가설의 타당성이 입증되어야 하나 그렇지 못하며, 다만 현재의 선진국들의 경험을 토대로 분석한 하나의 경험적 법칙에 불과할 뿐 선?후진국 모두에 일반적으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분배로부터 성장으로의 인과관계에 대한 시각은 지금까지의 쿠즈네츠가설 의존에서 탈피하여야 할 것이다.따라서 기존의 전통적인 시각인 성장으로부터 분배로의 인과관계와 더불어 역방향인 분배로부터 성장으로의 인과관계의 메카니즘에 대한 이론적 구축이 필요하며, 이번 보고서에서는 성장으로부터의 분배로의 인과관계를 현재까지 가장 영향력있는 가설로 평가되는 쿠즈네츠의 가설에 입각하여 설명하도록 하겠다.1. 쿠즈네츠란?1901년 4월 30일 우크라이나하리코프에서 출생하였다. 1922년 미국으로 귀화하였다. 1923년 컬럼비아대학교를 졸업하고 《소매업 및 도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쿠즈네츠는 소득분배를 경제성장과 관련시켜 상이한 경제발전단계에 따른 소득불평등에 관해 체계적인 연구를 시도하였다. 그는 시계열자료를 이용하여 5분위계층의 소득계층별 불평등도를 측정하여 인도, 실론, 푸에르토리코, 영국, 미국을 비교하여 후진국의 불평등도가 선진국의 불평등도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관찰하였다. 쿠즈네츠는 후진국과 선진국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함으로써 후진국이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소득불평등이 더 심하다고 추정하였다.“후진국은 중산층이 없다: 평균소득이 낮은 수준의 전국평균소득 아래에 있는 압도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계층과 상대적으로 지나치게 과도한 소득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최고계층간에 첨예한 대립이 있다. 반면 선진국은 최고계층이 가지고 있는 소득분배보다는 더 적은 분배분을 획득하지만, 높은 수준의 전국 평균소득보다 더 많은 소득을 받는 견실한 계층을 가지고 있다.”위의 추정결과를 토대로 쿠즈네츠는 한 나라에서의 분배상태는 경제성장 단계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경제성장 초기단계에서는 악화되다가 일정기간이 지나 성장이 어느정도 이루어진 후기 단계에서는 개선된다는 즉, 경제성장과 소득불평등도는 역U자의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같은 쿠즈네츠의 연구를 계기로 선?후진국의 여러학자들은 쿠즈네츠의 주장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으며, 이 연구결과의 타당성 여부에관한 논의가 지난 수십년동안 줄곧 있어왔다.4. 가설의 입증쿠즈네츠의 연구결과를 뒷받침하려는 연구의 내용중 HARRIS와 TODARO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성장초기에는 도시화와 산업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말미암아 농촌인구가 도시로 대량유입 되어 도시의 빈곤계층을 형성하므로 소득불평등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또한 초기단계에는 숙련노동과 비숙련노동간의 임금격차가 심하며, 또한 대부분의 경제가 성장에 소요될 자본을 필요로하므로 성장전략 내에는 저축성향이 높은 고소득층에 자산이 집중되도록 유도하는 메카니즘이 내재하기 때문에 이 역시 성장초기의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계열자료에 의한 입증시계열자료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정시점별로 특정 경제적 변수에 대한 관측치가 축적된 자료로서 경제성장률이나 실업률을 표시할 때 사용하는 자료이다.① 솔토우 (L.SOLTOW)솔토우는 1463~1963년까지 500년 동안 영국의 소득분배자료를 정리하여 쿠즈네츠가설을 입증하려하였다. 다소의 오차는 있었지만 18~19세기까지 영국의 소득분배는 상당히 안정적인 추세였으며, 제1차세계대전을 즈음해서 큰 개선의 추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이론이 솔토우의 결론이다. 이는 미국이나 독일의 경우 주장되는 산업화초기의 불평등의 심화가 영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결론이 되어 쿠즈네츠의 가설에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② 린더트-윌리암슨(P.LINDERT AND J.WILLIAMSON)린더트 - 윌리암슨은 솔토우가 사용한 사회지표가 오류가 많고, 새로 수정된 것을 감안하지 않아 연구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하였는데 이러한 왜곡을 손질하여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였다. 솔토우는 영국의 분배 개선의 시기를 1913년으로 잡았지만 이 들은 1867년으로 잡아 솔토우보다 훨씬 앞당겼으며 그 이전에는 소득분배가 악화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쿠즈네츠 가설의 U자모양을 명백하게 지지해주는 가설이다. 미국의 경우역시 1829년에서 1860년에는 불평등도가 급속도로 진행되다가 1929년 이후 2차대전까지 뚜렷한 평등화의 추세를 보였고, 그 후 분배상태는 비교적 안정된 추세를 보였다고 주장하였다.③ 시계열자료의 한계시계열자료 분석을 통한 쿠즈네츠 U자모양은 미국?영국?독일에서는 어느 정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으나 다른 선진국인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에서는 분배상태가 개선되어 온 것만이 엿보일 뿐 초기단계의 악화는 보이지 않았다.또한 발전도상국의 역사적 경험에서는 U자모양을 찾기가 더욱 힘들었다). 예를 들어, 브라질의 경우 어떤 시기는 계속악화 되거나 어떤 시기는 계속 개선을 보이는 등 일관성이 없었으며, 대만의 경우 역시 산업화와 함께 분배는 개선되었지만 수준에 따라 대체로 대칭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특히 이 그룹의 소득분배는 사회?경제적 이중구조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소득수준이나 경제성장 보다는 경제구조가 소득분배패턴의 기본적인 결정요소라는 맑스적 견해를 뒷받침 한다).”는 것이다.하지만 이러한 아델만 및 모리스의 연구는 많은 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그중 파파넥은 그들의 연구대상에는 극히 이중구조적인 중소득국(남아프리카 공화국, 토데시아, 리비아, 이라크, 페루, 가봉 등)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모든 개발도상국들에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포케르트는 아델만 및 모리스의 연구에 포함되어 있는 가장 빈곤한 국가들에 대한 소득분배결과는 신빙성이 없다고 비판하였다. 대신 1965년경의 56개국을 표본으로 선정한 쿠즈네츠의 가설이 타당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즉, 1인당 소득이 100달러 이하에서 101~200달러 수준에 이르는 동안에는 불평등도가 증대되며, 200~500달러 수준에서는 불평등도가 최대가 된다. 그리고 501~1,000달러의 범위에 있는 국가에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예외로 한다면 불평등도가 상당히 낮다는 것이다.② 알루왈리아 (M.AHLUWALIA)알루왈리아의 연구는 쿠즈네츠의 가설을 가장 정교하게 보여주는 가설로 평가 받고있으며, 세계은행의 자료를 인용하여 설명하였다.이 연구는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까지의 40개국의 저발전국과 6개의 사회주의국가를 포함한 총 60여 개국을 대상으로 하였다. 또 5개의 상이한 그룹(상위 20%, 그 다음의 40%, 하위 60%, 하위 40%, 하위 20%)의 소득분배를 종속변수로 그리고 1인당 GNP를 독립변수로 사용하여 이 두 변수 간에 2개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검정하였다. 특히 이 분포에서 흥미로운 것은 소득분배의 전환점이 하위그룹으로 갈수록 늦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컨대, 상위 20%의 소득분배는 1인당 GNP가 364달러일 때 감소하기 시작하지만 하 벌기 원하는 농촌인구가 도시로 몰리면서 도시의 불평등도는 증가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농인도 기존 도시인과 비슷한 수준의 돈을 벌게 되거나 실패한 이농인은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도시의 불평등도는 개선된다고 주장하였다.(2) 자본축적과 산업화① 쿠즈네츠 (Kuznets)쿠즈네츠는 산업화 초기단계에는 숙련공과 비숙련공간의 임금격차가 심하며 또한 대부분의 경제가 성장에 소요될 자본을 필요로 하므로 성장 전략내에서는 저축성향이 높은 고소득층에 자산이 집중되도록 유도하는 메카니즘이 내재하기 때문에 이 역시 성장 초기의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라고 보았다.하지만 경제성장이 진전되면서 실업인구가 줄고 숙련공의 비중이 높아지며 임금격차 축소현상이 일어나고 자산소득의 계층간 분산등과 같은 경제성장의 확산효과 등에 의해 불평등은 완화된다고 보았다.이상의 논의를 종합해서 요약해 보면, 성장의 초기단계에서는 극소수의 자본가 그룹이 성장을 주도함에따라 부의 빈부격차가 생기다가 산업화가 진전됨에 따라 성장의 힘이 경제전반에 고루 퍼지게 되어 평등화가 나타나가 시작하는 것으로 간추릴 수있다.(3) 인구변화의 추이산업화 초기에는 높은 인구증가율로 인해 경제활동 인구중 노년층과 청소년층의 비율리 높아지게 되어 분배가 불평등 하게된다.쿠즈네츠는 미국의 경우 청소년,노인, 여자가 가장인 가정은 대부분 저소득층이였고, 몰리는 브라질의 경우 저소득층이 대부분이 청소년층으로 구성되었다고 하였다.이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근대적 성장 초기의 높은 인구증가율에 의한 인구 피라미드의 형성은 불평등도를 점점 크게 보이도록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론 할 수 있다.또한 인구가 증가할 때, 소득계층에 관계없이 똑같은 비율로 증가한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에서 더 높은 비율로 증가했다는 사실도 분배의 추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알루왈리아는 높은 인구증가율로 인해 노동 공급이 과잉되어 시존 노동자의 몫이 종전보다 더 작아짐으로써 불평등이 더 심화될수 있다고 주장 하였다.(4) 인적자다.
공 공 부 조- 이론과 사례를 중심으로 -▣ 목차▣ 목차??????????????????????????21. 공공부조의 정의 ????????????????????32. 공공부조의 특징????????????????????43. 공공부조의 원리????????????????????54. 각국의 공공부조????????????????????6(1) 한국?????????????????????????6(2) 미국???????????????????????????7(3) 영국???????????????????????????8(4) 독일???????????????????????????9(5) 스웨덴??????????????????????????115. 요약 및 결론??????????????????????12▣ 참고문헌????????????????????????131. 공공부조의 정의공공부조제도란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도록 하기 위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하에 생활유지 능력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제도를 말한다.공공부조는 사회보장제도의 하나이며, 사회보장프로그램은 나라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학자들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되고 있다. 공공부조는 사회보험제도가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사회적 위험에 대한 사회적 보호 장치라 할 수 있다. 사회보험이 보험대상자들이 부담하는 기여금에 기초한 사회적 보호 장치이기 때문에 기여금을 부담하지 못하는 제도가 공공부조제도이다. 이러한 국가에 따라 제도의 명칭을 달리하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공적부조(Public Assistance), 영국에서는 국민부조(National Assistance) 또는 무기여 부급(Non-Contributory),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는 사회부조(Social Assistance)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의 공공부조제도의 대표적인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들 수 있다.공공부조제도의 주요대상은 생활능력이 없거나 일반적인 국민생활수준에 미달하는 저소득층으로, 이들에게 기권리가 된다.3) 공공부조는 법적으로는 모든 국민이 보호의 대상이지만, 실제로는 자산조사와 필요성조사를 거쳐 일정한 빈곤선 이하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독립된 생활을 하기 어렵고, 가족이나 친족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생활 곤궁자를 주 대상으로 하고 있다.4) 공공부조는 수급자가 자신의 자산과 근로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부양의무자의 도움 및 타 법률에 의한 급여를 우선 활용한 후에도, 생활상의 곤란을 겪는 경우에 행해지는 보충적인 제도로서 최후의 사회안전망이라고 할 수 있다.5) 공공부조는 국가가 생활유지능력이 없는 곤궁자와 무능력자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수급자 중 근로능력이 있는 자에 대해서는 급여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구직등록이나 고용 및 직업훈련 등의 근로를 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조건이행을 거부할 경우에 급여를 중지하기도 한다.6) 공공부조는 수급자 개인의 욕구와 개별적인 사정 등을 고려하여 적정한 수준으로 지급되며, 수급자의 필요에 따라서 둘 이상의 급여가 병합되어 제공되기도 한다.7) 공공부조는 자활지원사업 등을 통해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근로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스스로 자립?자활할 수 있도록 해 주고, 근로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잔존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거나 자신의 잠재능력을 개발해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의 예방적이고 적극적인 측면을 다소 갖고 있다. 그러나 공공부조는 주로 이미 발생한 빈곤으로 인한 물질적?신체적?정신적?교육적인 문제들을 사후에 해결하는 사후적이고 소극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8) 공공부조의 재원은 전액 국가의 일반조세수입으로 충당된다. 따라서 공공부조 수급자들은 프로그램의 재원에 별도로 기여하고 있지 않으며, 대게는 납세능력이 있는 중산층이 재원마련에 기여하고 있다. 따라서 조세제도와 공공부조제도를 통하여 공공부조의 비수급자인 중산층의 부가 저소득층인 공공부조 수급자에게 이전되어감으로써 노동시장에서 형성된 소득이 재분배되는 특징을 갖는다.9) 공고부 요건만 충족되면 생활이 곤궁하게 된 원인의 여하에 관계없이 누구나 차별 없이 법률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생활이 곤궁한 모든 국민은 인종과 종교, 성별 그리고 사회적 신분 여하를 불문하고 법의 적용상 차별적인 취급을 받지 않고 평등하게 보장받을 수 있다는 원리이다.5) 보충성의 원리보충성의 원리란 국가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자가 그 전제조건으로서 개인적으로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생활유지에 최대한 노력한 후에도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때에 비로소 국가가 그 부족분을 보충하여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원리이다.6) 자립조장의 원리자립조장의 원리란 공공부조가 단지 생활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곤궁한 사람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이들의 잠재능력을 개발?육성하여 독립적으로 자신의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조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회보장기본법 제7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자립?자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국가의 사회보장정책에 협력하여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4. 각국의 공공부조(1) 한국1) 기초생활보장제도 성립 배경한국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은 외국의 경험을 기초로 볼 때 이례적인 상황 속에서 전개되었다. 외국의 경우 경제성장이 뒷받침되고 공공부조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강력했던 1950-60년대에 걸쳐 공공부조제도가 확장되었으며, 경제가 침체되고, 사회통합에 대한 국민적 열의가 줄어든 1970년대 후반 이후 공공부조제도는 퇴보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퇴조의 구체적 형태로서 급여요건의 강화, 급여기간의 제한, 급여수준의 감축, 급여에 따른 조건의 부여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공부조의 퇴조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 난국에 처한 가운데 사회안전망의 결여를 보완하기 위한 방편으로 공공부조제도의 확장을 기함으로써 외국의 확장시기와는 달리 어려운 여건 속에서 제도를 시행해 나가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적 취약기는 공공부조의 쇠퇴를 가져오는 시기인데로서 보다는 개인(as an individual)으로서의 역할을 중시하며 복지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개인과 가족에 있는 것이지 국가와 사회에 주어져 있지 않다는 자조(self-help)의 이념에 근거하고 있다.미국은 공적 부조제도 및 공적 사회복지서비스의 구분이 명확하여 자산조사를 거친 빈곤세대에 대한 소득보장정책의 일환으로 제공되는 현금보조는 공적부조제도로 분류하고 있으며, 그 외 수급자의 자활을 돕는 현금부조 외의 기타 현물 서비스는 사회복지 서비스로 분류하고 있다. 두 제도는 자활을 강조하는 미국 사회보장제도의 목적에 따라 상호 부조하는 형태로 제공되고 있다. 즉, TANF를 수급 받는 편부모가정의 경우, TANF로 현금보조를 받는 동시에 각 주에서 아동을 돌보는데 필요한 여러 서비스 및 본인의 자활과 관련된 서비스들을 받게 된다. 하지만 각각의 프로그램의 역할은 매우 다르다고 볼 수 있는데, 공공부조 프로그램은 일정 수준 이하의 경제적 빈곤층을 포괄하고 있다면, 공공사회서비스의 경우 경제적 빈곤정도와 상관없이 대상 층에 따라 문제여부 및 정도에 따라 대상을 포괄한다. 또 재원도 공공부조의 경우 연방 및 주, 지방정부의 조세로 충당되며, 공적 사회복지서비스는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정부의 보조금형식으로 주로 충당되나, 서비스요금도 다소 포함되어 있다.2) 공공부조의 특징○ 분립형 공공부조체계○ 대상 및 욕구에 따라 다양한 개별제도로 분리?운영○ 제도별로 선정기준, 급여방식 및 수준, 전달체계, 운영주체 등이 다름○ 일부제도 간에는 급여의 중복 등을 방지하기 위한 상호연계장치가 마련되어 있음(3) 영국1) 공공부조의 전반적 체계영국의 공공부조제도는 크게 기여형급여(Contributory benefit)와 비기여형급여(non-contributory benefit)로 나뉘고 비기여형 급여는 다시 자산조사급여(means-tested benefit)과 비자산조사급여(non-means-tested benefit)로 구분된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국민보험을 의 학생, 50세 이상으로 지난 10년간 직장을 갖지 못한 자 , 피난민 등을 대상으로 하며 급여액은 결혼여부, 연령, 부양 아동의 수 및 연령, 거주지역에 따라 개인수당을 지급하고 개인수당 외에 욕구에 따라 부가 급여를 지급하거나 주거비용을 보조한다. 급여의 지급기간에는 제한이 없으며 가격변동에 연동하여 연 1회 급여를 조정하고 급여는 대체제도나 급여수표의 형태로 지급되며,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 현금으로 지급된다.○소득 기초형 구직수당(Income-based Jobseeker's Allowance)자산조사의 기준을 만족하는 IS 대상자 중 근로 능력이 있는 사람(18세 이상 연금수급연령 이하, 즉 남성의 경우 65세 이하, 여성은 60세 이하인 사람을 대상으로 하며 근로를 하고 있지 않거나 평균근로시간이 주당 16시간 이하인 경우)의 경우에는 소득 지원이 아닌 소득 기초형 구직수당을 지급 받게 된다. 수급 기준 및 급여액 등 제도의 전반적인 사항은 일반적 형태의 공공부조제도인 소득지원(Income Support)제도와 동일하지만 구직활동이 급여 수급의 전제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노동 연계성을 강조하는 영국 공공부조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제도이다.○ 근로가족 세금공제(Working family tax credit)부양 아동이 있는 저임금 상시 근로자들을 위해 소득이 일정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세금 공제를 통해 대상자의 임금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다. 대상자가 주당 최소 16시간 이상의 근로를 해야 하며, 일정 수준의 자산 조건을 만족하는 동시에 16세 이하의 부양 아동이 1명 이상 있을 경우에 수급 자격이 되고 급여율은 대상자의 소득과 아동의 연령 및 수에 의해 결정된다.○ 장애근로수당(Disability Working Allowance)장애 및 질병이 있는 취업자에 대한 소득지원 제도로 16세 이상인 사람이 주당 평균 16시간 이상의 근로를 하고 있으나 질병이나 장애 등으로 소득획득능력이 제한되는 경우에 한해 지급되는 급여이다. 수급자격 및 급여 수준은 있다.
INVISIBLEHAND◆ 목차 ◆1. 아담스미스 - 도덕 감정론 & 국부론2.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3. 『도덕 감정론』에서의 「보이지 않는 손」4. 『국부론』에서의 「보이지 않는 손」5. 『도덕 감정론』과『국부론』에 나타난「보이지 않는 손」의 비교1. 아담스미스 - 도덕 감정론 & 국부론아담스미스는 계몽주의자이며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원래 대학에서 도덕과 법률학에 관한강의를 하였으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철학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그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인물은 흄이다. 스코틀랜드의 철학자였던 흄은 경제발전과 정치제도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도 이에 영향을 받아 철학과 경제, 정치의 범위를 넘나들며 학문을 연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사회철학서라고 할 수 있는 『도덕 감정론』이 만들어졌으며, 오늘날 그를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게 할 수 있었던 저서인 『국부론』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도덕 감정론』에서 그는 인간은 도덕적 감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인간의 양심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 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중요한 것이며 입법가들 이나 합리적 분석에 의해서도 주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것을 동감이라고 부르며, 이러한 동감이 인간이 규칙적이고 유익한 사회조직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했다. 『국부론』의 바탕에는 이러한 그의 인간에 대한 철학과 감성이 나타나있다. 그는 이기심을 통한 경제활동을 강조하였는데, 이기심의 개념이 오늘날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이기심과는 다르다. 자신의 상태를 개선하려는 이기적인 노력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강력한 삶의 원동력이 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노력은 개인 뿐 아니라 사회 및 국가 전체에도 이익을 준다는 의미이다. 즉, 『도덕 감정론』에서 타인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 이내인 동감을 바탕으로 이기심을 발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논리인 자유시장 경제체제 와도 맞물려 지는데 그가 강조한은 아담스미스를 대표하는 말이며, 200년이 지난 지금도 자유시장 경제, 작은 정부 등을 이야기 할 때 핵심으로 나오는 용어가 되었다.「보이지 않는 손」은 일반적으로 시장경제에서의 자율성을 나타낸 의미로서 정부나 공공기관의 간섭 없이도 경제는 질서 있게 돌아간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하지만 아담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정확하게 정의 내린 것도 아니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 의미는 여러 학자들을 통해 해석되고 변화되어왔다. 또한 『도덕 감정론』과『국부론』에서의 의미는 각기 다른 의미로 쓰였으며, 위에 설명한 일반적 시장메카니즘이 국부론에서의 내용과 그 의미가 비슷하다 할 수 있다.정리하여 말하자면, 『도덕 감정론』은 철학 위주의 저서라 전술한 만큼 이 책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의미는 철학과 연관성이 깊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국부론에서의 의미는 경제와 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그렇다면 지금부터 『도덕 감정론』과『국부론』에서 나타난「보이지 않는 손」의 의미에 대하여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도록 하겠다.3. 『도덕 감정론』에서의 「보이지 않는 손」『도덕 감정론』에서의 「보이지 않는 손」은 제 4부 ‘효용이 시인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 중 1장에서 간단히 말해지고 있다. 이 장에서 그는 사람들은 하찮은 효용을 추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부와 권세를’ 그 예로 들었는데 늙어서 부와 권세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이의 추구를 위해 희생해야 했던 젊은 시절이 평범한 인생을 사는 것보다 낫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부와 권세를’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착각 속에서 인류의 근면성을 일깨워주고 계속해서 일을 하게 한다. 즉, 인류의 발전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의 어리석은 부와 권세 추구가 결과적으로 인류 발전을 초래한다는 것이다.본격적으로 「보이지 않는 손」이 들어간 문단을 소개하겠다.토지의 생산물은 어느 시대나 그것이 먹여 살릴 수 있는 만큼의 주민들을 유지할 뿐이다. 부자는 단지 큰 덩어리에서 가장 귀중하고 쾌적한 것을 선택할 뿐이다. , 그들은 자신들의 여러 개량의 산물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어 가진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인도되어 토지가 모든 주민들에게 평등한 몫으로 분할되었을 경우에, 행하여졌을 것과 거의 같은 생활필수품을 분배하게 된다. 그리하여 (구체적으로) 의도하거나 알지 못하면서도, 이렇게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고 종족의 증식의 수단을 제공하게 된다.위 내용을 해석해보면, 부자에게나 가난한 사람에게나 필요한 산물이나 생활필수품은 똑같으며, 부자는 이러한 산물을 자신이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평등하게 분할해 주고, 이러한 부자의 행위에 의해 사회적 이익이 증진된다는 의미이다.여기서 살펴볼 「보이지 않는 손」의 핵심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장 경제적 입장이 아니라 분배에 있다는 것이다. 부자가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소비에는 제한이 있으므로 잉여물에 대해서는 분배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이러한 논리의 바탕에는 신의섭리라는 유신론적 사상이 배경이 되고 있다. 다음문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신의섭리가 대지를 소수의 귀족과 지주들에게 분할하였을 때, 그것은 이 분배에서 제외되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망각하지 않았다.즉, 신은 귀족과 지주를 구분하였지만 분배의 차원에서는 대소를 구분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하지만 실제 경제사회에서 위 와 같은 분배는 일어나지 않는다. 아담스미스는 분배를 「보이지 않는 손」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지나치게 단순화 시킨 입장에서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이해가 가는 것이 아담스미스는 엄연히 철학자이고, 이 책을 썼을 당시는 「국부론」을 저술하기 훨씬 이전이라 -「국부론」에도 그의 사상이 내포되어 있지만 - 철학, 윤리사상이 그의 사고에 지배적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하여 그 당시 그의 철학사상 하에서는 이러한 논리가 합리화 될 수 있게 된다.그렇다면 「도덕 감정론」에서 드러난 그의 사상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 위에서 간단히 언급한데로 그의 사상은 이기심과 서 크지 않다는 의미이며 위(胃)를 다 채우고 난 후 남은 것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해 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위(胃)를 이기심으로 정의하겠다. 지주는 이미 이기심을 충족 시켰고, 여분은 분배된 것이다.이처럼 그 당시 그가 생각하였던 이기심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으며, 사람들 마음속에는 동감이라는 철학이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에 위와 같은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4. 『국부론』에서의 「보이지 않는 손」『국부론』에 따르면 개인이 이기심을 추구하는 것이 곧 자신의 부의 증대를 가져오고 이것이 국가 부의 증대를 가져온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환경을 바꾸고 개선하려고 하는 자연스런 노력인 이기심에 따라 행동한다면, 모든 경제활동이 조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장원리에 중점을 두고 정부의 규제와 정책은 제한적이어야 하고, 국가의 부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본성을 자유롭고 안전하게 발휘하도록 해주고, 정부는 국토를 방위하고 정의롭고 평등한 법질서를 유지하며 개인이 할 수 없는 공공사업을 수행하는 일에만 전념하고 그 나머지 분야는 개인에게 맡겨두어야 한다는 즉, 개인의 이기심이 자유로이 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의 본질은 위에서 설명한 『도덕 감정론』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의미이다. 즉, 『도덕 감정론』과 『국부론』은 철학을 순수하게 다뤘다는 측면과 철학을 바탕으로 경제를 연결시켰다는 차이 밖에 없지 두 저서의 본질은 같다고 할 수 있다.『국부론』에서의 「보이지 않은 손」은 제 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중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에서 소개되고 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2)그는 가능한 한 최대의 가치를 생산하려고 노력한다. - ...(전략)... 그러나 한 사회의 연간 수입은 그 사회의 노동의 연간 총생산물의 교환가치와 정확히 같다. 또는 오히려 그것의 교환가치와 정확히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각 개인이 최선을 이익을 그가 얼마나 촉진하는지도 모른다. 외국 노동보다 본국 노동의 유지를 선호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였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그 노동을 이끈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였다. 이 경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흔히, 그 자신이 진실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그것을 증진시킨다. 나는 공공이익을 위해 사업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실 상인들 사이에 이러한 허풍은 일반적인 것도 아니며, 말 몇 마디만 해도 그런 허풍을 떨지 않는다.위 내용을 해석해 보면, 각 개인은 자신의 연간 수입이 최대치를 갖도록 노력하기 때문에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킨다는 의미이다. 즉, 자신의 이기심 추구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중간 과정을 거쳐 사회의 이익에 기여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사회의 공익증진을 위해 일하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이다.주목할 것은「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내용 역시 본질적으로는『도덕 감정론』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설명하는 본질적 의미는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과정과 결과물에서는 차이가 난다.다음 장에서는 『도덕 감정론』과『국부론』에서 나타난 「보이지 않는 손」을 보다 구체적으로 비교해 보도록 하겠다.5. 『도덕 감정론』과『국부론』에 나타난「보이지 않는 손」의 비교공통점부터 설명해 보이도록 하겠다. 첫째, 본질의 동질성에 있다. 두 저서 모두 이기심에서의 출발과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도덕 감정론』에서는 지주가 자신의 소유물을 다 채운 후 즉, 자신의 이기심을 다 채운 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