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1. 토마스 홉스의 생애2. 자연법2-1. 휴고 그로티우스와 홉스의 자연법2-2. 몽테스키외 자연법사상과 홉스의 자연법3. 토마스 홉스의 법사상4. 토마스 홉스의 법사상에 대한 사견1. 토마스 홉스의 생애토마스 홉스는 영국에서 1588년4월5일에 맘즈베리에서 출생하여 1679년 12월 4일에 생을 마쳤다. 그는 1603년 옥스퍼드 대학의 매그덜 홀에 입학하여 청교도의 교육과 전통적인 논리학. 스콜라 철학, 자연학 등을 배웠다. 그는 대학을 졸업후에 학장의 추천에 의해서 디밴셔 백작가(家)의 가정교사로 들어갔으며, 그 주인은 홉스의 재치, 근면, 유머 등을 좋아했고 그의 든든한 보호자및 후원자가 되었다. 그는 백작가에서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백작가의 저택에 있는 대학 도서관 못지 않은 풍부한 장서가 있기에 학구 생활에 충실할 수 있었으며, 또 그 저택에는 유력한 정치인들이 모여 정치도 논의하기에 그는 실제적 지식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을 갖게 되었다. 1629년 백작이 사망하자 그는 클ㄹ리프턴 경 집의 가정교사로 들어갔으며, 유럽을 여행하며 유클리드 기하학을 알게 되었다. 유럽은 신흥과학의 중심지 였으며, 홉스는 여행을 다니면서 정치적, 학문적, 과학적으로 새로운 학을 정립하고 싶어하였으며, 또, 기하학에는 이성만이 지배하지만, 인간행동에는 정욕이 지배한것을 알고 그에 대해 별도로 연구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1637년에 귀국하여 그의 사상을 . 의 3부작으로 쓸 계획을 세웠고, 1640년에는 를 섰다. 그러던 그는 1640년 의회에서 왕권 옹호자에 대한 처벌을 결의 했다는 소식을 듣고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그 프랑스는 당시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로 번성 하고 있었으며, 그는 신생공화국에 대해 큰 기대를 갖고 국가의 전도를 축하하며 을 저술하였으며, 이 저서로 홉스는 왕당파의 미움을 받아 궁정출입을 금지당하며그는 광신자 및 프랑스 관헌의 박해를 받을 우려와 공포 속에서 지내다 1650년 본국 의회에서 대사령이 내려 본국으로 돌아왔으며, 그 이후 1655터 자연법의 최상위 원칙으로 "약속은 지켜야 한다. 다른 사람의 재산을 침해하지 말라, 남에게 준 손해는 배상해야 하며, 타인에게 폭력을 가하지 말라, 범죄행위에 대해서 형벌에 의해 응보를 받아야 된다"고 하는 등등의 규범을 도출하였다.그러나 토마스 홉스는 이와 다르다. 그는 인간을 비사회적 존재, 즉 이기주의자로 보았다. 자연상태는 무제한의 자유이며, 각자는 "모든 것에 대한 권한을 가지며, 다른 사람 자체에 대하여도 예외가 없다". 이로부터 물론 어떤 순수한 규범적 권리와 그리고 특히 어떤 의무도 이끌어 낼 수는 없다. 홉스 스스로 이런 자연상태에서 "정당하고" "부당하다"라는 이름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나서 그의 합리주의적 논증이 시작된다. 모든 인간이 동일한 무제한의 자유를 가지면, 자연상태에서는 모든 인간에 대한 모든 인간의 투쟁이 일어나고, 각자는 타인에 대해 늑대가 된다. 각자는 그러므로 타인을 두려워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고 인간의 본원적인 자유의 무제한의 행사가 결국 인간 자신을 파멸로 이끌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가능하다면, 자유를 찾는 것이 인간에게 이성적으로 보였다. 이렇게 해서 성립된 것이 일차적 자연규칙이다: "각자는 평화에 대한 희망이 존속하는 한, 평화를 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평화를 실현시킬 수 없으면, 그것을 위해 모든 보조수단과 전쟁의 장점을 이용해도 좋다". 이러한 일차적 법규로부터 제2차적 자연법규가 나온다: "각자는 평화와 정당방위를 위하여 그의 권리의 포기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한, 타인도 역시 그럴 준비에 있다면, 모든 것에 대한 그의 권리를 임의로 포기해야만 하며, 그리고 그가 (타인을 위해) 자신을 양보하는 것처럼, 타인에 대해 많은 자유를 양보해야 한다". 법은 그 근본에 있어서 공포의 산물이다. 국가권력도 이러한 기초 위에 세워졌다. 최선의 국가조직은 자연법규의 요구를 가장 확실하게 수권할 수 있는 체제다. 그러므로 국가는 시민의 산산이 분산된 힘을 진압하기 위하여 시민에 대하여 무한한 권존 조건에 대한 이론적 고찰을 내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가정된 상태에서 발견한 인간 본성을 홉스, 로크 , 루소 같은 근대 정치 철학의 거장들은 그들이 구상한 정치 질서 곧 국가론의 초석으로 삼았다.『모든 법(즉 1편 1장 마지막 문단에서 논한 종교의 법, 도덕의 법, 정치법, 시민법 등) 이전에 자연의 법이 있다. 이렇게 자연의 법이라고 명명되는 것은 그것들이 오로지 우리 존재의 기 이전의 인간을 고찰해야 한다. 자연의 법이란 결국 인간이 이와 같은 상태에서 받는 법체질에서만이 유래하기 때문이다. 이 자연의 법들을 잘 인식하기 위해선 제반 사회가 설립되들일 것이다.』('법의 정신'1편 2장, p235)이런 식으로 그 범위가 한정된 몽테스키외의 자연법은 그 내용이 빈약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사회 설립 이전의 상태 곧 자연 상태에서 자연의 법을 받게 될 인간의 체질이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연과 자연인과의 관계로서의 자연법은 어디까지나 순수 사유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결코 관찰 가능한 대상은 될 수 없는 것이며, 경험론자인 몽테스키외로선 그 내용을 자신의 사변으로 채워 넣을 수는 없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법의 정신'에서 ‘자연의 법들에 관한’ 1편 2장은 매우 간략한 스케치 후 곧 ‘실정법에 관한’ 1편 3장으로 대체되어, 2편부터 31편에 이르는 방대한 본문 중에서 이 주제는 오직 26편의 몇몇 장에서 그것도 실정법이나 종교법과의 연관에서 다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인간 본성은 자연 상태에서 그 내용이 실제로 확인하기에는 너무나 희박하기 때문에 곧 사회 상태, 그것도 정치법(공법), 시민법(사법), 만민법 등의 실정법에 의해 통치되는 문명 사회 상태로 넘어가 계속해서 탐구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우리들 자신의 내부에 창조자의 관념을 새김으로써 우리를 그에게로 인도하는 이 법이 순서에 의해서가 아니고 중요성에 의해 자연법 중 제1의 법이다. 인간은 자연 상태에 있어서 지식을 갖고 있다기보다는로세스에 개입하지 않으며, 또 몽테스키외 자신이 지적하고 있듯이 자연인은 자기의 존재의 기원을 탐구하는 데서 아직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인 만큼, 이는 결국 독자에게 ‘우리 내부에 새겨진 창조자의 관념과 연관된 법’이 자연법 중 으뜸가는 법이 된 것은 자연 상태 이후 곧 문명 상태의 어떤 시점에서 생긴 일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이렇게 자연인의 육체 그리고 감성에서 태동된 영혼(정신)이 창조자 신에 대한 사변적인 관념을 지니게 되는 과정은 이미 벌써 자연 상태에 문명 상태가 중복되는 역사 과정인 것이다. 몽테스키외에서는 우리는 따라서 로크나 루소를 통해 널리 알려진 바 있는 인간의 자연 상태에서의 생존 조건에 대한 적극적 개념이나 비전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만큼 몽테스키외가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받는 첫 번째의 자연법을 ‘평화’라고 규정할 때, 이 평화는 어디까지나 소극적 개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이 자연 상태에서 개개인은 스스로를 열등하다고 느끼고 그리고 자기를 자기 자신에 상당하다고 느끼는 일조차 있을까 말까 하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공격하는 것은 꿈도 꾸지 않을 것이며 평화야말로 첫 번째의 자연법일 것이다.('법의 정신'1편 2장, p235)몽테스키외는 이와같이 평화를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받게 되는 첫 번째 자연법으로 규정함으로써, 인간의 자연 본성(자연 상태) 이론의 역사에서 한편은 로크와 루소에 의해 대변되는 긍정적인 개념과 다른 한편은 홉스에 의해 대변되는 부정적인 개념의 중간에 위치하게 된다. 국가 공동체의 성립 이전에 자연 상태에서 살던 사람들은 이미 모두 자연적인 권리로서 생명·자유·재산의 권리를 가지고 있었으니, 그것은 후에 성립된 국가 공동체도 침해할 수 없는 불가양도의 천부 인권이라고 천명한 로크나 자연인은 스토아 철인도 부러워할 정도의 아타락시아(절대 평안, 무념 무상, 무위 자연) 속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설파한 루소의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개념과는 달리 몽테스키외의 첫 번째 자연법으로서의 평화는 자연 개념은 부정적이면서 적극적인 개념인 반면, 몽테스키외의 개념은 부정적이지만 소극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이다.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에 대한 홉스, 로크, 루소의 이러한 적극적 개념에 대해 몽테스키외가 제시하는 개념이 소극적인 이유는 자연 상태에 대한 이론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정치학설을 정당화시킬 이론적 가설로서 구상된 반면 굳이 정당화시킬 정치학설도 없었고 따라서 자신의 경험·귀납적 방법을 포기할 까닭도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법의 정신'의 정점에 해당하는 ‘영국의 정체’는 저자의 이론적 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인류의 역사를 뒤따라온 자신이 목격하고 있는 역사 기억의 현재를 기술하고 자연인과 자연법은 그의 역사 기억의 소실점에 위치한 최소한의 인간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자신의 약함에 대한 감정에 이어서 인간은 자신의 육체적 필요의 감정을 갖게 된다. 그래서 두 번째의 자연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먹을 것을 찾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리라. 앞에서 나는 인간은 천성적으로 겁이 많아서 서로 피하는 성향이 있다고 말한 바 있으나,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는 것을 일단 알게 되면 인간들은 서로 접근하게 되는 경향을 갖게 된다. 게다가 인간 역시 동물이 같은 종류의 동물이 접근할 때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이런 상호 접근에서 쾌감을 느끼게 되리라. 더욱이 양성이 상호간의 성적 차이에 의해 주고받는 매력이 이 상호 접근의 쾌감을 증가시킬 것이다. 따라서 양성이 항상 서로를 부르는 이 자연적인 갈망이 세 번째의 자연법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맨 처음 갖는 감정 외에도 지식을 첨가하여 갖게 된다. 이와 동시에 인간은 여타 동물이 갖지 않은 제2의 유대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서로가 결합되는 새로운 동기를 갖게 되며, 사회적 삶을 살려는 욕구가 네 번째의 자연법을 이루는 것이다. ('법의 정신'1편 2장, p236)3. 토마스 홉스의 법사상토마스 홉스는, "국가는 절대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그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주창한 자로 알려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