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오늘날 괴테는 독일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는 유럽 문학의 정상으로 알려져 있지만 많은 독자들은 괴테를 『파우스트』라는 대작의 작가로 알 뿐, 왜 그가 유럽 문학의 정상인지는 잘 알지 못 한다. 독일 바깥에 있는 관찰자가 볼 때, 괴테는 학문 연구의 차양막과 부르주아용 가죽 장정 서책들 뒤에 반쯤 가려진 국민적 인물일 뿐이다. 1770년부터 1832년에 사망할 때까지 60여 년에 걸친 괴테의 발전사는 곧 그가 키워온 독일 국민 문학의 발전사였다. 그는 자신의 저작과 영감을 가지고 외국 모델에 의존하는 유치기의 독일 문학을 유럽 문학의 정신적 원동력이 되는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파우스트』나 괴테라는 이름은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만큼 중요한 작품이며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작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괴테이고 또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들어보았고 그래서 친근감까지는 아니어도 거리감은 덜한 작품이 『파우스트』였다. 그리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의 작품은 아니지만 전공수업을 들으면서 이미 한번 읽어 본 터라 읽어가는 데 그리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책을 펴고 나니 페이지가 쉽게 나가질 않았다. 내용도 난해한데다가 운문체의 문장을 구사하였기 때문에 한번 읽어봤음에도 불구하고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았다.하지만 역시 『파우스트』는 한번쯤 반드시 읽어봐야 할 작품이었다. 왜 괴테를 독일을 대표하는 대문호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운문체를 사용하여 그 형식을 맞추면서 그토록 방대한 양의 난해한 내용을 담아내면서도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게 아름다운 글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대문호로서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 작품만 접해도 충분히 괴테의 위대함이나 그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으나 좀 더 효과적인 감상이나 분석을 위해서는 그의 생애나 『파우스트』가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이나 배경 등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또한 작품의 내용이나 인물에 대한 분석도 그저 한서 벗어나 조화와 중용을 지향함으로써 보다 원숙한 문학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그밖에 그는 지질학, 광물학, 해부학, 식물학 등 자연과학 연구에 몰두하고 이렇게 분주한 생활로 인해 창작은 주춤하였으나 1775년 프랑크푸르트에서 거의 완성된 의 개작 초고의 완성, 의 구상 그리고 등을 꼽을 수 있다.1780년부터 재능과 생활 사이의 불균형을 점점 심하게 느끼기 시작한 괴테는 정치에서 다시 예술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화와 중용을 지향하는 괴테는 고대 예술의 조화와 균형과 질서의 아름다움을 동경하여 1786년 9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바이마르를 떠나 이탈리아 여행길에 오른다. 이 이탈리아 여행이 괴테의 인생과 문학에서 중요한 전기가 되는데 괴테는 이탈리아에서 전아하고 견실한 고대 예술을 직접 접하는 가운데 이성과 감성을 조화시키고 중용을 지키며 교양을 갖춘 원숙한 인간상을 절제된 언어와 간결하나 짜임새 있는 완결된 형식을 표현하려는 고전주의 문학관을 확립한다. 근 2년에 걸친 이탈리아 체류 동안 괴테는 전처럼 “생각하거나 감정에 묻히거나 공상한다던가” 하지 않고 예술 작품, 풍경, 이탈리아인들의 삶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고 파악하고자 했다.새로워진 괴테는 1788년 6월 바이마르로 돌아오지만 이전의 교우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고립된 느낌을 받는 가운데 23세의 처녀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의 소박한 사랑에서 유일한 위안을 얻는다. 괴테는 세인들의 질시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와 동거생활을 시작하는데 혼례식은 1806년에 가서야 올린다. 괴테는 바이마르 공국의 관리로서의 업무에서 거의 손을 떼고 오직 학술기관과 예술기관, 특히 예나 대학에 관계하는데 1791년에 창설된 바이마르 궁정극장의 운영을 맡아 불과 몇 년 사이에 그곳을 가장 유명한 독일 극장의 하나로 발전시킨다. 창작 면에서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대신 자연과학 연구가 결실을 맺어 이 발간된다.이탈리아에서 귀향하고 별로 성과 없이 여러 해를 지낸 후 괴테는 10년 연하의 쉴러와 아름다운 우정관계를족하지 못하는 비극적 유형이다. 상반된 이 두 유형은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가 직물에서 날줄과 씨줄의 얽힘으로 괴테가 비유하고 있듯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한 묶음으로 포괄적으로 이해할 때 삶의 참된 의미가 파악될 수 있다.괴테의 위상을 거시적으로 보면 그는 유럽 역사의 흐름을 오늘날까지 지배한 계몽주의 운동의 상속자이자 개혁자로 확인된다. 넓은 의미에서 ‘현대’로 옮아오는 유럽 역사의 갈림길에서 유럽 전통의 상속자와 개혁자의 역을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새로운 흐름에도 민감하게 반응했고 미래의 문학 방향에도 크게 기여했다. 창조성을 파괴하는 저널리즘 비판, ‘다가와 강타하는 뇌우’로 표현한 기계공항의 파괴적인 미래상 모두가 자신의 분수를 잃고 부와 속도만을 추구한다는 사회비판, 민족증오란 문화가 낮은 단계에서 가장 강렬하게 나타난다고 한 파시즘에 대한 경고등이며 또한 그의 『노벨레』,『동화』,『친화력』연가시『소네트』,『서동시집』등이 그 좋은 예이다.괴테의 삶과 작품이 담고 있는 이 같은 ‘포괄성’은 시간이 지나도 고갈되지 않는 새로움의 기지들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은 여러 번 읽어도 번번이 새롭게 읽혀지며 1999년 그의 탄생 250주년을 맞이하여 독문학, 정치학, 자연과학 등 각 분야의 학자들이 참여하는 대대적인 괴테 연구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ⅲ. 작품『파우스트』ⅰ)『파우스트』전설『파우스트』는 괴테의 순수 창작물은 아니다. 그는 이전부터 내려오던 전설을 모티브로 하여 이 작품을 썼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대에 해당하는 16세기 후반의 독일에 파우스트 박사라고 하는 인물에 관한 전설이 생겨나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 나갔다. 1587년에 프랑크푸르트의 출판업자인 슈피이스는 이 전설을 라는 제목의 민중 본으로 출판하여 많은 독자를 얻게 되었고 이웃 외국에도 번역되었다. 이 민중 본에 의하면 파우스트 전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파우스트는 뷔텐베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신학박사가 되었으나 오만하고 지식 1부파우스트는 모든 학문을 두루 섭렵했으나 아무것도 알 수 없음을 깨닫고 회의를 느낀다. 그는 이성, 학문을 벗어난 신비적인 것, 마술에 매력을 느낀다. 부질없는 말 같은 것을 탐구하지 않고 영혼의 힘과 말로써 이 세계를 깊숙한 곳에서 총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지금까지 그는 많이 연구했으나 본질에 접근하지 못했고, 총체적인 것, 모든 것의 근본, 우주의 원리를 알지도 못하면서 말해 왔다. 그는 지식에 대한 회의를 품으며 자연의 움직임, 별의 운행, 영혼의 힘에 눈뜨는 것을 동경한다. 그는 대우주의 부적과 대지의 영의 부적을 바라보며 지령을 부른다. 파우스트는 지령을 만나 대화하고 절망하여 좌절한다. 왜냐하면 그는 지령의 모습을 견디어낼 수 없고 그는 자신이 지령과 닮았다고 생각했으나 지령은 닮지 않았음을 파우스트에게 말해준다. 잠시 파우스트의 조수인 바그너가 등장한다. 둘의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의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에 있어서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파우스트는 혼자 독백을 한다. 자신의 내면의 힘을 파먹는 근심을 탈피하기 위해서 파우스트는 자살을 생각한다. 그러나 때마침 부활절 종소리로 인해서, 매우 어렸던 시절에 대한 회상으로 인해서 무산된다. 밤 장면에서는 독백을 통해 파우스트의 의식 상태가 표현 되고 있다. 파우스트가 다양한 계층과 나이의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인물들은 현재의 일상적 삶에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이 인물들과 섞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파우스트는 바그너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는데 그 앞에 메피스토펠레스는 개로 둔갑해 나타난다. 파우스트는 길에 있던 이 삽살개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온다. 그리고 삽살개는 사라지고 메피스토펠레스가 학생 차림으로 파우스트 앞에 나타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에게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삶의 기쁨을 누릴 것을 권유한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내기를 제안한다. 파우스트가 어느 순간을 향해 ‘정지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다’라고 말하면 파우공이 외부의 드넓은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제1막이 오르면 파우스트는 아름다운 땅에 몸을 눕히고 있다. 그레첸의 운명에 대한 죄의식에 눌려 쓰러진 그가 다시금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요정들로 상징되는 자연의 치유력에 의한 심신의 회복이 우선 필요했던 것이다. 자연의 힘만이 아니라 외부의 모든 힘의 작용을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서는 파우스트 자신의 수용동화의 능력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그 점에서 파우스트와 작가는 닮은꼴이라고 할 수 있다. 제 2부는 인간의 갖가지 사념과 욕망이 서로 읽혀 여러 층을 이룬 입체적 세계를 꿰뚫고 상승 하는 바, 그의 정신의 한결같은 상승을, 제각각의 단계에서 그에게 작용하는 모든 현상을 객관적으로 그림으로써 표현하고자 하였다.파우스트와 메피스토가 가장 먼저 간 곳은 황제의 궁정이다. 메피스토는 향락적이고 타락한 궁정에서 파우스트를 향락과 악덕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려고 한다. 파우스트는 궁정의 어릿광대가 된 메피스토의 협력을 받아 신출귀몰한 재주로 재정이 궁핍한 나라를 구하여 황제의 신임을 얻게 된다. 재정상태의 불안에서 벗어난 황제는 파우스트에게 그리스 신화의 미녀인 헬레나와 미남인 파리스를 보여 달라고 하고 파우스트는 시공을 초월한 적막의 고장인 ‘어머니들의 나라’로 가서 세발향로를 가져와 그 향로의 연기 속에서 헬레나와 파리스의 모습을 재현시킨다. 헬레나의 아름다움에 취한 파우스트는 그녀를 데리고 가려는 파리스의 뒤를 따라가 그의 몸에 마법의 열쇠를 대고 그러자 폭발이 일어나 파리스와 헬레나는 사라지고 파우스트는 그 자리에 기절하여 쓰러진다.의식을 잃은 파우스트를 메피스토가 어깨에 메고 옛날 서재로 가서 낡은 침대에 눕힌다. 옛날 파우스트의 제자였던 바그너는 대학자가 되어 인조인간 호문쿨루스를 만들어 내었다. 호문쿨루스는 순전히 인간의 지식의 힘으로 만들어낸 인간으로서 육체는 없지만 파우스트의 꿈의 내용까지 투시할 수 있는 무서운 정신력을 지닌 존재이다. 그는 잠자고 있는 파우스트를.”
한국의 페미니즘 비판일반적으로 여성주의라고 번역될 수 있는 페미니즘이란 여성억압의 원인과 상태를 기술하고 여성해방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운동 또는 그 이론이다. 논문이나 문학서적 그리고 사회과학지에서는 이러한 여성주의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이러한 여성주의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 운동이 우리나라에서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1960년대 이후로 서구의 여성운동은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후반에 와서야 겨우 몇 개의 여성단체가 그들의 동인지를 발표하면서 각각의 빛깔과 이론적 체계로 여성운동을 발전시키고 있다. 서양에 비해 한국 여성운동 실천가의 이론 구축은 약간 덜 다듬어진 느낌이다. 그 이유는 아마 여성주의의 이론적인 범위가 여성주의가 발달된 서구에서 조차 여성주의를 정확히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우리나라와는 다른 서구의 이론 갈래 중 하나를 선택하고 흡수하기만 급급해서 독자적인 이론 구축을 못했기 때문이라 보여 진다. 하지만 덜 다듬어진 이론적 체계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의 바람은 이미 우리나라 모든 영역으로 번져있다. 심지어 여성주의적 관점을 소홀히 하는 사람에게는 시대적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은 여성주의자들에게 철저한 배타와 비난을 받는다(비판하는 자가 남자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잘못 이해되어지고 있는 페미니즘의 예는 무엇이 있을까?대표적인 예로써 2006년 여성부의 송년 이벤트를 들 수 있다. 여성가족부가 연말을 맞아 송년회에서 성매매는 하지 않고 술만 마시겠다고 약속한 성인 남성들에게 회식비조로 현금과 상품권을 주는 행사를 벌였다. 또한, 2차 회식으로 적당한 곳에 대한 객관식 퀴즈를 내 성매매 대신 ‘건전하게 맥주 한잔 더’라는 정답을 맞히면 추첨을 통해 총 120만원 상당의 영화예매권과 외식상품권을 주는 이벤트도 함께 벌였다. 이것은 피땀 흘려낸 국민들의 세금을 낭비하고,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매매자로 매도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연세대학교 페미니즘 잡지 ‘이프’ 편집위원인 김신명숙씨는 ‘미스코리아 대회를 폭파하라, 나쁜 여자가 성공 한다’는 등의 극단적 발언을 하면서 총 대신 책을 잡고 싶어 했던 남성들의 국방의 의무인 군대에 대하여 비웃는 태도를 보였다. 게다가 그녀는 타워팰리스, 그 아파트에는 극도의 효율성 추구, 강자 지향, 패권적 배타성 등 남성적 가치들이 지고의 선으로 봉안돼있고 그것이 ‘타워페니스’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타당하지 않은 이유로 남녀가 차별당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이 넘쳐난다.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과자 ‘조리퐁’을 여성의 성기와 닮았다는 이유로 판매금지 운동하는 일이 있는가하면, 많은 이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테트리스 게임에서 긴 막대가 움푹한 곳에 끼우는 것은 성적 행위를 떠오르게 한다는 것 때문에 플레이 금지를 당할 뻔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도로에서 흔히 보는 소나타Ⅲ는 전조등이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불매운동을 겪어야만 했다. 또한, 강릉시 주문진 바닷가에 있는 아들바위는 남아선호사상을 부추기므로 소원바위라고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서울 한 목욕탕에서는 남자에게만 수건을 빌려준다는 이유로 여성단체가 재판을 걸기도 했다(재판부는 서울시내 5개소의 목욕탕에서 남탕과 여탕의 수건 분실 율을 한 달간 조사한 결과, 여탕 분실 율은 89%정도이고 남탕 분실 율은 17%정도로 여탕 이 남탕의 5배가 넘었다. 그래서 법원은 목욕탕의 손을 들어주었다).
따돌림 현상의 심리학적 분석1. 서론내가 고등학교 때 같은 반 학우 한명이 전교생에게 따돌림을 당했던 적이 있었다. 그 친구가 특별히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었는데 다른 친구들을 그 친구를 멀리했다. 나또한 별로 친하지는 않아서 졸업 후 잊고 지냈는데 입대한 훈련소에서 그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훈련병이고 그 친구는 기관병이었다. 그리고 훈련소에 있는 동안 지켜보니 기관병들 사이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그 후 따돌림이란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최근 들어와서 우리 교육 현실의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 바로 집단따돌림 현상이다. 물론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따돌림 현상은 오늘의 청소년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며, 더욱이 청소년 집단에만 국한된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러나 청소년들 사이에서 또래들을 따돌리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고, 그것도 집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누구든지 예외가 없고 언제 따돌림을 당할지도 모르며, 죄의식도 없이 폭력까지 동원되어 자행되고 있다고 언론은 보도한다.뉴스에서는 또래관계에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가 심각하게 보도되고, 춥고 배고파서 무료급식을 받는 학생까지도 따돌림 피해 학생으로 찍히고, 집단 따돌림을 견디지 못해 학생이 자살까지 한 사실을 보면 너무 가슴 아픈 일이며, 이 집단따돌림 현상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교육 현안이며, 이 사회의 병리현상임을 시사한다. 따돌림 문제는 교실과 학교를 벗어나 사회문제, 교육 문제, 청소년 문제로 주목 받게 되었으며, 그 정도의 심각성에 온 사회가 경악하기 시작했다.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신적으로 아직 성장해야 하는 피해학생이나 가해학생 또 묵인하는 학생 모두 비인간화의 상흔을 남긴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집단따돌림 현상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교육의 과제이다. 집단따돌림은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지므로 이번 과제에서 그 두 집단의 심리적 분석을 통해 따돌림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알아보겠다.2.본론1)집단따돌집단이 소수의 집단원 혹은 개인을 집단적으로 소외시키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정인과 대화를 거부하기, 약점을 들추어내거나 모함하기, 은근히 혹은 공개적으로 비난하기, 하는 일마다 시비 걸기, 따돌림 대상을 고립시킬 목적으로 그와 가깝게 지내려는 다른 집단 구성원에게 위해하기, 바보 만들기 등의 행위를 통해 나타나며 장난을 빙자하여 괴롭히기 등의 직접적인 신체적 괴롭힘으로도 나타난다. 집단따돌림은 왕따, 학교폭력, 이지메 등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이며 그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왕따’란 학생들이 사용하는 은어로서 따돌림을 받는 사람과 따돌림 자체 두 가지를 의미한다. 접두어 ‘왕’이란 아주 큼을 나타내는 말이고 장, 으뜸, 우두머리의 뜻도 있다. 학생들은 ‘왕따’에서 ‘왕’을 크고, 많고, 심하고 등을 포함한 뜻으로 사용한다. 다음으로 ‘따’의 의미는 따돌림 또는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의 준말이다. 여기서 ‘따’란 단순히 놀이에 끼워주지 않는 소극적 따돌림부터 구타하거나, 심부름시키거나, 금품을 갈취하는 등의 심한 괴롭힘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왕따’란 집단따돌림과 괴롭힘을 모두 포함한다.다시 ‘왕따’를 정의해보면 집단의 소속원 중 자기보다 약한 상대를 대상으로 또는 집단의 암묵적인 규칙을 어긴 자를 대상으로 여럿이 함께 혹은 개인이 돌아가며 신체적, 심리적인 공격을 지속적으로 가하여 반복적으로 고통을 주는 행동이라 하겠다.2)집단따돌림의 원인 및 심리과정집단따돌림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인데 집단따돌림 관련자의 심리적 특성을 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인 및 심리과정을 갖는다.첫째, 집단따돌림 가해자는 발달 단계상 정체감의 미형성 시기인 중학교와 초등학교 고학년시기에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많이 가하게 된다. 발달 심리학자들은 왕따 현상은 자아정체감이 형성되는 시기에 겪은 좌절이나 갈등을 집단의 희생양에게 화풀이 형식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본다.둘째, 인간발달에서 꼭 거쳐야 할 것이 자기와 타인의 구별이다. 그러나 자타구분이 때로는 지나치되는 것이다. 이것은 따돌림 방관자 및 참여자의 심리로 모두에게 미움 받지 않기 위한 소극적 방법이다.셋째, 따돌림이나 괴롭힘 등은 암묵적으로 행하여지기 때문에 언어화되면 해결이 어려워진다. 즉 아이들의 따돌림 현상은 그들만의 암묵적인 횡적인 관계로 일어나고 있는데 부모나 교사가 종적인 관계를 언어화해서 해결책을 가지고 들어가면 해결이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암묵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의하여 생긴 따돌림 현상이 암묵적인 상태 그대로 모르는 사이에 수습되어 가는 것이 최고의 대책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부모나 교사와 의논하지 않는 것이다.넷째, 튀는 행동이 따돌림의 원인이 되는 것은 사회적 특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개인 보다 우리들, 또는 집단에 옳다고 판단되는 것을 중심으로 행동 기준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사회에서 살아온 아이들에게 우리들에서 벗어난 행동은 받아들여지기가 어렵다. 요컨대 ‘우리들에게 옳다’를 중요시하는 인간관계에서는 아무도 가해자가 아닌 것이다.다섯째,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떠나지 않는 심리가 있다.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괴롭지만 그것도 인간관계의 하나이다. 오히려 괴롭힘조차 받을 수 없게 되는 아이는 집단의 일원에서 제외도니 채 완전히 무시당하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래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그 집단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관계를 맺기 때문에 또 다시 괴롭힘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아 그 피해가 극심한 데 까지 이른다. “ ‘이것이 괴롭힘이다.’ 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는 따돌림 피해자들은 “왜 내가 이질자 취급을 받는가.” 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죽으면서도 “그들을 용서해 달라”는 것은 죽어서도 여전히 나는 그 집단에서 배제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 시키는 애처로운 메시지인 것이다.3)가해자의 심리첫째, 공격성 및 경계선 성격특성노르웨이의 학자 Dan Olweus는 따돌리는 학생의 전형적인 심리특성을 공격성과 충동성으로 보았다. 그는 따돌리는 행위에 내재한 공격성의 심리적 동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따돌릴 가능성이 높다. 셋째, 부모의 공격성, 처벌을 그대로 답습하였거나,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거나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낮은 공감력이다. 넷째, 폭력에의 모방, 강화이거나 폭력에 대한 잘못된 가치, 왜곡된 사고 등에 의한 것이다. 또한 그는 공격성을 유발시키는 요인으로 부모의 자녀에 대한 부정적 태도, 아동의 공격적 행동에 대한 허용적 태도, 부모의 체벌 사용, 충동적이고 성급한 아동의 기질적 특성을 들었다.따돌리는 학생의 성격은 공격적이고 충동적이고 남의 마음을 공감하는데 약하고 협동심이 낮다. 학생들은 남을 지배하려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지배욕은 이들 내면의 통제할 수 없는 공포를 숨기고 있어, 따돌리는 학생이 됨으로써 자신의 느낌을 감춘다. 또한 이러한 학생들은 자신의 공격수준을 인식하는데 맹점을 지니므로 자신의 공격성을 과소평가하고 다른 사람을 공격자로 인식 한다.둘째, 자아존중감자아존중감은 개인이 자신에게 부여하는 긍정적인 가치를 말한다. 자아존중감은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가치에 대한 전반적인 판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자신을 한 인간으로서 좋아하는가, 자신의 삶이 진행되는 방식에 만족하는가, 자신의 일반적인 살아가는 방식을 좋아하는가 하는 것이다. 따돌리는 학생의 자아존중감은 높다. 이러한 현상은 자존감이 높을수록 따돌리는 행위를 증가시킨다. 이렇게 따돌리는 학생에게서 자아존중감이 높게 나타난 이유는 따돌리는 학생이 왜곡된 자존감이나 자아개념을 평균수준 이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돌리는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는데 있어 힘을 통해 즉, 공격적이 됨으로써 성공적일 수 있다는 왜곡된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아존중감이 높을수록 따돌리는 행위가 증가한다.셋째, 심리사회적 접근따돌림 가해행위에 대한 심리사회적 접근은 따돌림 문제가 따돌리는 학생의 개인적인 성격뿐 아니라 여러 환경요인들, 즉 또래의 행동, 가족 요인, 교사나 학교의 여러 관련자들의 행동 등이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한 결과로 본다. 따돌리는 학생은 충동적모델이 됨으로써 따돌리는 행위를 고무하고 따돌리는 행동이 일어날 때 이를 묵인하여 결국 따돌리는 학생의 정서와 불만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따돌림 가해행위에 대한 또래의 역할은 직접적인 사회학습영향을 반영한다. 또래들이 현장에서 따돌리는 학생을 점진적으로 부러운 눈으로 보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을 점점 무시하게 되면 따돌리는 학생의 행동은 강화 된다. 교사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감독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따돌림을 용인하는 상황에 기여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감독을 철저히 하지 않아 따돌리는 행위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제공하는 경우, 따돌림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고도 따돌림을 당한 학생이나 이를 목격한 아동에게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 등이다. 이처럼 따돌림 가해행위는 따돌리는 학생 개인의 심리적 요인 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여러 대인환경의 사회적 요인들이 복잡하게 상호 작용하여 생기는 결과물이다.4)피해자의 심리첫째, 피해망상증으로 과거에 자신에게 심한 스트레스나 고통을 주었던 상대방에 대하여 항상 피해의식을 가지고, 다시 그와 같은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피해상황을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설정하여 이를 기정사실로 만드는 것이다.둘째, 무저항 비폭력으로 무저항은 아이들이 놀릴 때 몸과 얼굴이 굳어지고 적절하게 대항하지 못하거나, 두려워하면서 무기력하게 참고 견디거나, 퉁명스럽게 가만히 있는 경우 가해자들의 공격심리를 더 자극할 수 있으며, 많은 경우 피해자들에게 따돌림을 당연한 것처럼 느끼게 할 수도 있다.셋째, 적극적인 행동 표현으로 주로 상황에 맞지 않는 엉뚱한 행동, 혹은 공격행동들이 나타난다. 현실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가해자에게 물리적인 보복 대신에 상대방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정신적인 보상을 받고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즉 친구들이 놀리면 무반응으로 있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림으로써 친구들을 위협하는 행동, 시비를 걸고 같이 싸우는 행동, 상황에 맞지 않게 자주 웃거나 깨 있다.
밀턴이 언론, 출판의 자유를 주장한 이유종교개혁을 완성하기 위해 영국의 기독교도들이 프로테스트탄트 기독교의 진리를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해서였다. 교황과 가톨릭 교회를 반 그리스도적이라고 간주한 밀턴은 가톨릭교도에게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았다.허가제를 반대하는 밀턴의 4가지 주장1. 출판 허가제는 영국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다.2. 모든 지식은 인간에게 이로운 것이다.3. 검열제의 비효율성1) 책 속의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 속에 포함된 불건전한 내용 때문에 성경과 그리스, 로마의 고전도 금해야 한다는 논리는 옳지 않다.2) 악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책에 대한 검열만으로는 부족하고 다른 경로도 차단해야 하나,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3) 검열관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4) 검열제를 시행하는 다른 나라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가? 그 나라의 풍속이 개선되고 있는가?4. 진리론①허가제는 인간의 자율적 선택 능력을 무시하는 반 자연법적인 제도이다.②진리의 역동성 - 진리는 항상 새로운 물이 솟아 나오는 샘물과 같은 것이다.전통과 권위 때문에 믿고 있는 진리는 이단에 불과하다.③진리는 구세주 시대 완전하였으나 그 후 파편화되었다. 우리는 이 흩어져 있는 진리를 탐색하면서 다시 수집하는 과정에 있다.허위에 대한 관용론1) 진리의 발견을 위한 토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異見에 대한 관용이 필수적이다.2) 검열은 ‘학문 전반 및 학자들에 대해 심대한 좌절과 모욕을 줄 수 있다.3) 검열은 생존해있는 저술가뿐만 아니라, 사망한 저술가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4) 검열은 "전 국민을 무가치하고 열등하게" 만든다.5) 검열은 결과적으로 성직자들의 위신을 실추시킨다.밀턴에 대한 논평, 비판1. 밀턴의 사상 속에는 여러 사상이 혼재돼 있다.2. 밀턴이 말하는 자유(liberty)는 자유주의 (liberalism) 이나 현대의 방임주의적 자유(libertarianism)를 의미하는 자유는 아니다. 자기 완성이나 개인의 권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공화국)와 종교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다.3. 밀턴의 자유는 17,8세기에 완성된 천부적 인권으로서의 자유주의적 자유 개념에는 이르지 못하고 공화주의적 자유를 의미한다.4. 엘리트주의적 요소5. 밀턴의 열린 사회는 완전히 개방된 사회는 아니다. 異見에 대한 불관용6. 밀턴의 청교도적 민족주의는 영국인들에게 국한 된 것으로 그의 자유 개념은 보편성이 결여된 것이라는 비판.공론영역 의미: 시민들이 사회 현안을 자유롭고 개방적인 의사소통을 통하여 논의할 수 있는 공적 토론의 영역.공론영역은 회원, 논의 절차 등에서 차이가 있었으나, 공통점 공유.① 신분의 동등성을 전제하지 않았으나, 모임에서 신분 차이를 무시하고 토론.② 부르주아 공론영역에서 논의는 그 때까지 금기시된 영역을 문제화 함.③ 문학, 예술품이 시장을 통해 판매되면서, 재산이 있고 교육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독자, 관객이 자격으로 토론에 참여할 수 있게 됨으로써, 공중의 성격은 배타적이기 보다 개방적이었다.생활세계 = 언어적 의사소통을 통한 상호이해를 통해 사회화, 문화적 재생산,사회통합이 이루어지는 전통적 사회영역 (Lebenswelt, Lifeworld).체계 (system) = 근대화에 의해 생활세계에서 떨어져나간 근대 국가의 자본주의적경제영역과 국가의 관료행정 체계.의사소통적 합리성이란 "고독한 주체가 객관세계의 어떤 것을 어떤 것을 성공적으로 인식하고 조작할 때 성립하는 합리성이 아니라, 언어 및 행위능력이 있는 주체들이 어떤 것에 관해 서로 이해를 도모할 때 성립하는 합리성이다."하버마스는 초기 Frankfurt 학파의 비관적인 보다 희망적1.방송사들, 경쟁적 이해관계에 있다.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적 이념의 차이2.대중매체, 언론인의 사회적 책임, 윤리의식 도외시 할 수 없다.3.방송사들, 통속적 오락물을 생산하더라도, 비판적 메시지를 포함시킬수 있다.4.이데올로기적 메시지는 수용자에 의해 반대로 해석되는 등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5.전자매체의 발전이 반드시 네트워크를 중앙 집중화시키는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공론영역이 미디어 독과점 기업과 사회 권력집단에 의해 완전히 장악, 조정되는 것은 아니다.하버마스는 후기 저술에서 공론영역 문제를 커뮤니케이션 행위이론과 시민사회 (civil society) 의 ‘재발견’ 틀 속에서 논의한다.1)단일의 부르쥬아 공론영역과 달리 현대의 공론영역은 다양하고 자율적인 영역으로 구성된다.2)시민사회를 정치적 공론영역과 유사한 개념으로 간주하면서 사회 현안을 공론영역의 틀 속에서 해결하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결사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디어 문화론 - 요시미 순야,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미디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일반적으로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등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디어 개념은 커뮤니케이션을 매개하는 전달 수단으로서의 미디어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일반적인 미디어의 개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미디어를 ‘전달수단’으로서가 아닌 ‘사회 실천의 장’으로서 파악하고 있다. 또한 각 미디어는 기술적 발명의 소산이 아니라 각각 사회적 실천 속에서 구성돼었다고 논한다. 이러한 미디어의 개념으로부터 출발하여 이 책은 TV, 신문, 잡지, 그리고 컴퓨터에서 핸드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디어가 범람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고 사회와 미디어는 어떻게 결부되어 있는지, 현대의 새로운 미디어의 대두로 시민사회는 어떻게 변모해 나아가는 가 등에 대해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미디어 문화론’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1부 ‘방법으로서의 미디어’에서는 20세기에 이루어진 메스커뮤니케이션 이론들을 정의 하면서 이론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살펴보고 있다. 20세기 초 인쇄 미디어의 발달로 등장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공증에 대해 논의와 복제 기술로 인한 사회의 변용에서 1,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이루어졌던 프로파간다 연구, 1940년대부터 70년대 이후까지 이루어진 메스커뮤니케이션 이론에 이르기는 사상적인 패러다임을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또한 이러한 이론이 그 시대의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어떻게 연관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론의 한계는 무엇인가를 시대별 장르별로 탐색하고 있다.2부 ‘역사로서의 미디어’에서는 19세기 말부터 급속하게 발달한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생성과 변용을 흥미롭게 살펴본다.‘신문과 근대 저널리즘’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신문이 일반화 된 것은 전쟁 직후이며, 신문이 단순히 근대 인쇄기술 발달의 결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근대 저널리즘이 형성된 공공적 기반으로 18세기의 격렬한 토론이 매일같이 이어지는 커피하우스를 꼽았다. 심지어 커피하우스를 단순히 뉴스를 소비하는 공간이 아닌 중요한 뉴스 제공처의 역할도 했음을 말하고 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으로는 수업시간에 배운 하버마스의 공공적 토론을 사용했다.‘전화가 탄생한 한 것은 언제인가’에서는 현대사회에서와는 다른 초기의 전화사용을 다루고 있다. 초기의 전화는 라디오 방식의 사업으로 극장 중계, 방송 등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교환수의 등장이다. 이 책에서는 전화의 효용가치의 중심에 여성교환수들의 능력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과 같은 밀실적인 대화 미디어로 변용한 전화의 현대화를 촉진시킨 계기로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지역적인 한계를 넘어서 전국을 묶어나가는 전국적인 시스템이 개인과 개인을 밀실적으로 연결하는 개인적인 미디어로 둔갑한 것이다. 둘째, 교환수들의 목소리 규격화로 인해 그들은 회선을 접속하는 교환기계로 변하게 된다. 셋째, 전화 산업이 회선가입자들 사이에 대화를 적극적으로 유발해 이것을 자신들의 자본축적 과정으로 이용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 사업자측은 전화를 가정의 사교성 미디어로 광고하기 시작해 사적인 친밀권과 전화에 의해 대화를 연결시켜나가는 이미지가 사회적으로 형성 되었던 것이다.‘누가 영화를 탄생시켰는가.’ 에서는 19세기 동안 이루어졌던 인간의 시각에 대한 탐구와 사진기술의 발달을 기초로 등장한 영화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영화는 당시 축음기의 연장선에서 움직이는 홈 앨범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부르주아의 기록미디어로서도 역할을 담당했다. 이 부분에서는 새로운 미디어의 변화와 등장을 다시 한 번 정의하고 넘어간다. 새로운 미디어는 결코 한 개인 의 천재적인 소질로 개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고 필요로 하고 있던 시대의 문맥 속에서 생산, 재생산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된 테크놀로지는 처음의 형태 그대로 사회에 보급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발명가들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형태로 변화하기도 한다. 초기의 영화는 1초 안에 수십 장 정도 빠른 속도로 연속촬영 한 것이다. 하지만 또 한 번의 기술혁신을 통해 롤필름을 등장시켰다. 발전을 거듭하던 영화는 에디슨과 뤼미에르 형제의 발명으로 그 위치가 한 계단 올라갔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를 에디슨과 뤼미에르 형제가 이 발명의 영예를 차지하지 않았다면 다른 누군가 틀림없이 발명해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당시에 영화의 발명은 그만큼 시간문제였던 것이다. 에디슨과 뤼미에르 현제가 유리했던 것은 그들이 새로운 장치를 고안하는 뛰어난 재능을 소유한 것 이상으로 그들이 이러한 장치의 특허를 유용하게 활용하여 기술을 사업화 해나갈 수 있는 자금력과 조직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라디오 마니아들의 네트워크’는 퍼스널 미디어로 확립된 전화와 대조적으로 매스미디어로서 조직된 라디오를 다루고 있다. 라디오는 원래 방송국에서 몇 백만의 불특정다수 청중을 위한 방송 미디어로 발명되어 발달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라디오를 꽤 나중까지 ‘무선전화’라 불렀다. 이 호칭이 나타내는 것처럼 초기의 라디오와 전화의 경계선은 그다지 명확하지 않았다. 1920년대 이전 미국에서는 라디오 발달에는 익명의 청취자를 상대로 한 ‘방송’이라기보다는 아마추어 무선가들의 ‘네트워크’라는 측면을 중심으로 라디오가 발달했다. 이 네트워크 미디어로서의 다리오가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매스 미디어로서의 라디오로 전환된다. 그 한 주축을 이끈 인물로 마르코니를 소개한다. 정보를 무선으로 멀리 떨어진 지점에 보내는 것은 1895년 마르코니가 개발한 무선장치로 실용화 되었다. 마르코니의 아이디어가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실험 장치를 거대화하고 통신거리를 당시의 사람들이 경이로워 할 만큼 확대 하였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무선전신을 라디오 방송으로 발전시키려는 발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선통신이 불가능한 해상에서의 선박통신에 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무선전신에서 무선전화로의 발전을 이끈 건 퍼센딘이었다. 그는 1906년 크리스마스이브, 사상 최초의 라디오방송이라 할 수 있는 음악과 목소리를 대서양을 향해서 송신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마르코니가 무선전신은 유선전신을 보완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퍼센딘은 무선전화는 유선전화를 보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음성의 무선송신기술을 방송의 방향으로 응용해 나간 것은 드포리스트였다. 대중에게 무선의 수신 장치를 판매해 그들의 가정에 음악을 방송하는 것, 이것이 드포리스트의 구상이었다.‘텔레비전이 집에 온 날’은 현대인에게 텔레비전이 여러 미디어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미디어라고 다루고 있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자신의 국가인 일본을 배경으로 텔레비전의 발전사를 다루었다. 20세기 동안 우리 생활에는 다양한 미디어가 출연했지만 그 미디어들 중에서도 텔레비전은 단연 주역의 자리를 차지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3시간을 넘고, 집에 있는 시간 중에서 수면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러한 텔레비전의 존재는 전 세계적인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의 텔레비전은 단순히 영향력이 큰 것뿐 아니라 상징적으로도 일상의식 속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할리우드 영화에 쏟아 부었던 내셔널 아이덴티티가, 전후 일본에서는 무엇보다도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에 쏟아 부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미국에서는 디즈니가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서 국민적 작가가 된 것에 반해, 일본의 테츠카는 TV 만화영화 아톰을 통해서 국민적 작가가 된 것에서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