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방학 이탈리아와 터키를 배낭여행하면서 겪은 저의 경험담입니다.여행 중 기록했던 제 일기들을 참고해서 기행문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35일간의 길고도 짧은 여행을 정리하는데 매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7월 8일 인천국제공항 출국 ~ 7월 9일 이탈리아 로마 도착우리는 12시 30분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하여 20시간의 긴 비행 끝에 다음날인 9일 아침 9시경 이탈리아 로마 땅을 밟게 되었다.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 바로 피렌체로 가기 위해서 티켓을 알아봤지만 공교롭게도 피렌체행 기차편이 모두 파업상태에 있었다. 어쩔수 없이 첫날부터 우리가 계획한 일정을 바꾸어야만 했고 결국 로마에서 먼저 머무르기로 하였다. 우선 긴 비행으로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숙박부터 서둘러 구하기 시작했다. 근처에 한인민박집이 꽤 많기 때문에 로마에서는 어렵지 않게 숙박을 정할수가 있다. 우리는 테르미니역에서 도보로 5분거리에 있는 다래민박에 연락을 해 친절한 부부 내외분이 pick up나와주신 덕분에 쉽게 숙박지를 찾을 수 있었다. 짐을 풀어 놓자마자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뒤 우리는 로마 유적지 몇군데라도 더 보려는 욕심에 물어가며 찾아갔다. 우리가 처음 당도한곳은 산타마리아 마조레 교회로 첫 견학 장소여서인지 그다지 볼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오래 기억에 남는다. 새로운 양식의 벽화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설레였다.이 교회를 나와 우리는 로마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역사를 증언하는 박물관임을 피부로 느낄수 있었다. 얼마 걷지 않아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유명한 콜로세움이 한눈에 들어왔다. 밖에서 바라보는 웅장함.. 콜로세움은 외형상으로도 아주 큰 원형 경기장이었다. 곳곳에 부서져서 파손이 심하긴 했지만 사전에 공부할 때 봤던 사진과 별반 다를게 없다. 그런데 아쉽게도 close time이 한시간도 채 남지 않아 내일을 기약하고 돌아섰다. 콜로세움 옆에는 콘스탄티누스대제의 개선문이 보이고 콜로세움에서 좌측편으로 올라가면 고대 로마인의 생활 중심지였던 포로로마노 일본의 고위 관리 딸이 로마에 왔다가 소매치기 당한 후 이탈리아 정부에 압력이 들어왔단다. 이런 식으로 계속 자국의 여행객이 해를 입게 된다면 이탈리아 여행을 규제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그래서 요즘 더욱 경찰들의 단속이 심해진 거라고.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들은 뭐 고마울 따름이었다. 덕분에 로마에서의 첫 여행은 비교적 순탄했던 것 같다.7월 11일아침부터 서둘러 로마를 떠나 IC열차로 두시간반 걸려 피렌체 중앙역에 도착했다. 이탈리아 열차 시스템은 연착도 잘될뿐 아니라 매우 열악하다. 하여튼 중앙역에서 숙소를 구하던 중 우연히 배낭여행 홈페이지 주인 쁘리띠님을 만나 그 언니의 눙숙한 영어구사 덕분에 싸고 괜찮은 호텔에서 함께 묵게 되었다. 같은 관광 명소니까 피렌체도 로마처럼 어수선하기만 할줄 알았는데 이 도시는 더 많이 작고 조촐했다. 가죽의 도시답게 시장에 온통 가죽상점이 늘어져 있었다. 우선 우피치를 지나 뒤에 있는 베키오 다리로 향했다. 2층다리고 지붕까지 있는 근사한 다리였다. 다리 앞에서는 이게 정말 다리인지 싶을 정도로 폭이 넓고 상점들이 양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 하나의 거리같은 느낌이 들었다. 양쪽에 빼곡히 자리 잡은 상점들 대부분이 보석상점이다. 특히 진숙이와 나는 조그만 유리문으로 안에 놓여있는 각종 보석들을 구경하며 다리를 건넜다. 각자 두시간정도 자유시간을 갖고 저녁에 숙소 근처 피자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자기가 먹을 만큼만 중량을 재어 파는 조각피자는 경제적이고 맛 또한 일품이다. 피렌체 저녁 야경을 보기 위해 걷다가! 광장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러 외국인들 사이에서 길거리 연주 합창단을 감상하는데 정말 감동적이다.또 거리 한가운데에서 어린아이의 인형극과 코믹도 사진 한컷에 담아두었다.7월 12일나폴리로 가기 위해서 또다시 로마역을 거쳐야하는데 피렌체에서 로마로 가는 열차편 3시 티켓을 사두고 남은 시간동안 피렌체를 돌아다녔다. 피렌체에서 제일 먼저 미켈란젤로 언덕 을 찾아 가기 위해 우선 지도를 보며 미아 다니느라 두시간.. 하지만 정작 여행사에서는 비싼 가격만 부르고 티켓이 모두 FULL이란다. 전날 노숙하고 비맞고 어쩔 수 없이 로마에서 하루 더 묵고 터키로 출발하기로 했다. 계획에 없던 로마에서의 일정이 더 연기되어 외가집 민박에 머무르며 약속이나 한 듯 그 부부를 다시 만나 함께 로마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보냈다. 먼저 역에 가서 브린디시 항구 열차편을 확인해두고 무리하지 않으면서 로마 시내를 둘러보고 다녔다. 그 부부와 내일 만나 같이 다니기로 약속을 해두고 그날 저녁 간단한 파티를 했다.7월 16일열한시쯤 우리는 해골사원부터 가보기로 했다. 해골사원은 기부금 형식으로 우리는 성의 표시만 하고 들어갔다. 지하 예배당인 그곳에는 수백년 동안 모은 4,000여명의 수도사들의 해골이 장식되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조금 으스스해지는 곳이다. 정말 놀람을 금치 못했다. 많은 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너무나 정교하고 정리가 잘된 해골들이 음침하기도 하고 오싹하기도 했지만 근엄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해골사원을 나와 보르게제 공원도 들러보고 핀초언덕에서 로마 전경을 둘러보고 스페인광장으로 해서 명품거리를 다녔다. 스페인광장에 거의 다와서 비가 또 내려서 로마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급하게 채비를 하고 역으로 가 밤10시에 브린디시 항구행 열차를 타고 아침까지 내내 달렸다.7월 17일~18일브린디시 항구에 도착하니 터키행 배가 밤 10시 출발이란다. 또 하루를 꼬박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묶여 있어야만 했다. 오빠들은 무거운 배낭을 갖고서도 그 조그만 도시를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한다. 진숙이와 나는 배에서 끼니를 해결할 분량의 장거리를 봐왔다. 그리고는 그 앞 공원에서 터키 아이들과 어울려 사진 찍고 얘기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냈다. 배낭여행이 꼭 유명한 유적만 본다고 멋진 여행이 될 수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여러 가지를 경험하고 피부로 느끼는 것.. 그것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더더욱 멋진 여행이 될 수 있다. 아무튼 9시경 배안에 바로 앞 hotel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시설도 매우 좋고 주인도 친절하고 값도 비싸지 않아 우리는 꽤 만족했다. 다음날 아침 에페스로 가는 차도 제공해준단다.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어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었는데 처음이라 잘 몰라 이것저것 시켰다가 다 먹지도 못하고 나왔다. 터키의 음식점은 대체로 일인당 우리나라돈 3000원정도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우리가 머문 hotel의 옥상 테라스는 분위기가 일품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꼭 닮은 tom과의 만남도 매우 인상적이었다.7월 21일otel에서 차로 10분정도 타고 에페스에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옛날 화려했을 건물들이 대부분 기둥만이 남아있지만 무언가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유적지 전체가 거의 돌이고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 때문에 오랜 시간 밖에 서있기가 힘든거 빼고는 정말 가볼 만한 곳이다. 50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하기에 너무 보존이 잘되어 있는 도서관 앞부분과 원형광장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날은 일행내에 트러블이 생겨서 숙소까지 따로 갔다. 오빠들은 걸어서 박물관도 봤다는데 나랑 진숙이는 어떤 터키 남자가 베푼 호의로 꽁짜로 숙소까지 차를 타고 왔다. 이날 저녁에는 여행 중간 결산을 하면서 여행 도중에 있었던 서로에 대한 불만을 말하고 푸는 시간을 가졌다.레스토랑을 나와 야경을 보러다니던 중 우연히 토모꼬라는 일본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보다 더 어눌한 말투의 영어를 써서 가끔 우리를 당혹시켰지만 한국인에 대한 경계심도 없고 우리랑 금새 친해져서 얘기를 나누다가 다음 여정이 같다는걸 알고는 다음날 오토가르에서 같이 출발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그날 저녁 셀축 같은 숙소에서 친해진 언니들로부터 여행 tip도 얻고 즐거운 밤을 보냈다. 한 언니는 터키 중에서도 셀축이 제일 좋다고 한다. 작년에 이곳 친구들을 많이 알아 올해도 온거라는데 자유여행이 배낭여행보다 좋은 점이 있다면 이런게 아닐까 싶다. 마음에 드는 장소에서 원하는만큼 더 머무를수 있는 여유말이다...7월 했는데 우리가 시간이 맞질 않아 어쩔수 없이 사과인사를 하고 나왔다. 터키의 가정을 들러보고도 싶었는데 말이다.어쨌든 수영복을 사들고 택시를 타고서 라라 비치는 멀다는 말에 근처 가까운 비치까지만 갔다. 바닷물이 파랗고 깨끗하다. 이곳의 여자들은 뚱뚱하건 날씬하건 모두 비키니다. 오빠들이 수영하는 동안 나는 시원한 그늘에 앉아 생각도 정리하고 짐도 지키고..^^;; 오빠들은 지중해물에 몸을 담갔다고 매우 좋아했다.숙소까지 걸어가는 길은 뻥 뚫려 있고 공원도 많아서 쉬어가기에 좋았다.배낭을 싸서 여행사로 가는 도중에 케밥으로 저녁을 떼우고 코냐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지금까지 탔던 버스들 중에서 제일 서비스 만점이었다. ^^7월 25일코냐에 아침에 도착해 센트롤까지 미니버스를 타고 움직였다. 가까운 곳에 싼 숙소를 잡고 가격대비 방은 나름대로 깔끔했다. 버스를 타고 밤을 지샌 탓에 모두들 지쳐 몇시간 눈을 붙이고 식사를 한 뒤 늦게나마 밖으로 나와 봤더니 이런... 소도시답게 8시정도 밖에 안됐는데 상점들이 거의 문을 닫았다. 우연히 어떤 남자 둘을 만나게 되었는데 지나친 친절을 베풀며 자신의 가게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다름아닌 카펫 가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그들의 목적을 모른채 대접해주는 차를 마시고 농담도 주고 받았다. 그러던 도중에 그 남자는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카펫을 팔려고 끈질기게 값을 흥정하고 우리를 재촉해도 안되자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터키 사람들이 지나친 친절을 베푸는 경우 적당한 선에서 그 자리를 피하는게 상책일 듯 싶다. 아무튼 찝찝한 기분을 뒤로 하고 그 카펫 가게를 나왔다. 코냐에서의 메블라나 댄스의 티켓 값은 만만치 않지만 오늘 공연 날이었더라면 볼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터키 피자인 피데를 먹었다. 터키 음식에 적응하려면 아직 더 지나봐야 알 것 같다.7월 26일코냐에서 더 있을 여유가 없어 메블라나 댄스는 포기하고 메블라나 박물관만 보고 2시차로 바로 카파도키아로 떠나기로 했다..
신지역주의와 민족화합주지하다시피 최근에 일어난 세계경제의 주요한 여건변화는 親시장경제체제로의 변화, 자유무역주의에 의한 세계화 그리고 신지역주의의 추세, 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첫째, 계획경제체제의 몰락과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입니다. IBRD는 지난 30∼40년 동안 여러 발전도상국에서의 실제 경험에 기초하여 작성한 세계개발보고서 (World Development, 1991)에서 전세계적으로 친시장적 (market-friendly) 접근이 지속적인 경제발전에 가장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계획에 비해 시장의 우월함을 강조한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와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히 승리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성장, 효율 면에서는 우월하나 형평의 측면에서는 여러 문제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효율을 크게 저해하지 않으면서 이 목표를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 최근의 전세계적인 경험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입니다.두 번째 주요한 변화는 UR의 타결과 WTO체제의 출범입니다. 신무역체제로서 WTO가 UR협정에 의거 종래의 GATT체제를 대체하여 1995년 1월부터 출범하게 됨에 따라 국제무역질서에 큰 변화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WTO체제는 기존의 공산품 이외에 현대 국제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는 서비스 및 지적소유권, 무역투자, 농산물무역 분야를 포괄하는 것과 함께 상품분야에 있어서도 관련규정을 보완하는 등 기존의 GATT체제와는 달리 국제교역의 모든 분야가 사실상 WTO의 관할 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또한 WTO체제는 단순한 국제협정에 불과했던 GATT와는 달리 의사결정이나 분쟁해결절차에 있어서 보다 구속력 있는 공식기구라는 점에서 향후 국제무역질서의 확립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따라서 WTO체제의 새로운 출범은 안정된 국제무역질서의 확립을 뜻하므로 무역량은 크게 늘어날 것이며, 세계경제의 성장도 촉진될 것입니다. 이는 곧 우리 나라의 수출환경이 호전되는 것을 뜻하며, 대내적으로도 국내시장의하고 있다면, 세계경제의 블록화는 이와는 상반된 배타적인 지역주의를 나타낸 것입니다. 즉 현재 세계경제는 자유무역주의와 지역주의라는 서로 상반되는 흐름이 병존하고 있습니다.일찍이 1958년에 관세동맹의 형태로 출범한 EEC는 1968년에는 EC로 확대개편되었으며, 관세 및 비관세장벽을 철폐함으로써 재화의 이동은 어느 정도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고, 그 후 1993년에 마스트리히트조약, 즉 유럽동맹조약(Treaty on European Union)의 발효로 유럽동맹(EU)이 정식 출범하였습니다. 더욱이 1994년부터 EU가맹국 12개 국가와 스위스를 제외한 유럽자유무역연합(European Free Trade Association ; EFTA) 6개국이 합하여 EEA(European Economic Area)를 발족시킴으로써 역내에서는 상품, 서비스, 자본 및 노동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단일시장이 되었습니다.한편 북미에서도 유럽에서의 경제통합 움직임에 대응하여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 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을 체결하였으며 이는 1994년부터 이미 발효되었습니다. EU와 NAFTA 이외에도 동남아국가연합(ASEAN) 등 여러 개의 경제블록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세계경제의 지역화 추세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한국처럼 아무런 블록에도 속해 있지 않은 국가에게는 불리한 것입니다. 즉 역외 국가들에게는 모든 형태의 경제통합이 차별적인 대우를 하게 되며, 배타적인 보호무역정책을 실시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입니다.따라서 한국의 입장에서는 자연히 인근 아시아지역 국가들과의 경제통합 가능성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젠가는 구미 선진국에서 시작된 블록화 추세가 세계경제를 유럽, 미주, 아시아의 3대 블록으로 분할하면서 본격적인 무역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현재로서는 1989년부터 아·태경제협력(APEC ; 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 각료회의가 개라딕보스톡·장춘·심양 등의 대도시, 그리고 남쪽으로는 타이베이·홍콩 등의 세계적인 대도시들로 구성되는 동아시아의 중심도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서울은 동아시아 금융의 중심지, 항공의 중심지 그리고 관광의 중심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동북아 경제권의 형성은 한국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매우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그러나 이보다도 더 우선되는 과제는 남북한간에 경제교류와 협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하겠습니다. 이 때 동북아경제권의 형성권의 가능해질 것입니다. 한국은 넓게는 아·태지역 그리고 좁게는 동북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북한의 교류·협력은 아·태지역과 동북아의 번영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전제요건이 될 것입니다.남북한의 교류·협력은 다음의 단계를 거치면서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 일반적 시각입니다.물자교류→경제적인 편의 제공→경제협력→경제통합이 때 물자교류는 중개무역 또는 간접교역에서 시작하여 직접교역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았습니다. 또한 물자교류의 후기단계에 들어서는 경제인, 과학기술자 등의 인적교류를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상호신뢰를 증진시켜 경제협력을 위한 기반을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경제적인 편의의 제공은 항로, 철도 및 도로의 공동이용을 뜻합니다.세 번째 단계인 경제협력에는 지하자원과 관광자원이 공동개발, 공동어로, 자본 및 기술협력 등이 포함됩니다. 마지막 단계인 경제통합은 남북한이 경제정책을 상호조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각 산업분야에서 남북한 시장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비교우위에 따라서 분업체계를 확립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남북한의 접촉이 빈번해지면서 분명해진 것은, 남북한 경제교류 및 협력이 앞의 순서에 따라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동시에 전개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즉 물자교류, 자연자원 및 관광자원의 공동개발, 남북한 공동어로구역의 설정, 경의선 철도의 연결, 북한과의 합작투자 등 여러 분야에서 동시에 진행될 것입니다. 더욱이 북한은 물자교류보다는 합작투자를 으로 통일을 지향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경제교류와 협력을 통해 북한의 경제성장을 촉진시킴으로써 남북간 소득격차를 줄여 통일비용의 과중함을 축소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한도 점진적으로 경제개혁과 개방을 스스로 추진할 것을 기대해 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 따르면 실질적인 통일과정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통일을 앞당기려면 우선 경제교류와 협력을 본격화하여 상호신뢰를 쌓아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내부에서도 지금부터 통일을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만 할 것입니다. 이 준비를 위한 최우선 과제는 정책의 기조가 우리 사회 내부에서 계층간이 대립과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집행되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여 갈등을 겪게 되면 이는 순조로운 통일을 저해하게 될 것입니다.특히 지역간의 대립과 균열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사실 정치공동체의 형성과 변화 자체가 지역집단의 통합과 균열에 따른 재구조화 과정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근대 국가체제에서도 그 정도와 계기에 있어서는 다르지만 거의 지역균열 현상이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종교나 지역적 문화 전통에 따른 영국에의 지역균열, 벨기에 노르웨이 등 북유럽국가들의 종교와 언어의 차이에 따른 지역균열, 구소련, 유고 등에서 나타나는 분리독립운동, 통일베트남에서 북측 인사들의 권력독점에 따른 남측의 소외 및 남북대립감정, 스페인에서의 바스크, 카탈로니아의 분리주의 운동 등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이들 나라에서는 대체로 국가 통합과정에서 구조화된 분권적 전통이나 문화적 균열 또는 그 유산이 표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렇다면 고려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단일 정치공동체의 역사가 갚고 민족적 동질성이 강조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지역균열의 구조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지역균열은 정치갈등구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정치인의 연고에서 그에 대한 지지도가 높게 나타나고, 권력집단 구성에 있어 연고지역 사람들이 상대적 대 비판세력의 대립, 아니면 적어도 지역모순을 중첩적으로 부과받아왔던 특정 지역민과 지배집단간의 대립을 지역간의 대립으로 축소·전화시켜 온 것이 바로 호남인에 대한 경계와 배제이었습니다.그러나 이러한 지역균열 문제는 지난 정권교체로 그 극복의 시발점을 찾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배권력 자체가 지역균열 구조에 기반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의 해결은 지배권력의 교체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권교체 자체로서도 그것은 한국 정치발전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정권교체의 경험이 정치발전의 기본 경로라는 정당정치이론을 빌려 오지 않더라도. 국민의 정치적 효능감 부족, 정당체제의 폐쇄성 및 보수성 등 그 동안 실질적인 정권교체 경험의 부재가 한국정치에 남긴 폐해를 생각할 때, 정권교체는 한국정치의 발전이었습니다. 이후의 정치과정에서 지역갈등구조에 내재된 문제 특히 호남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면. 지역간 균열과 동맹의 새로운 구도가 형성되는 남북통일의 체제에서 민족 동질성을 가지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문화 특히 호남인의 문화는 怨 의 문화가 아니라 恨 의 문화입니다. 怨은 갚는 것이고 恨은 푸는 것입니다. 지난 정권교체는 한풀이 굿의 한마당이었습니다.이젠 남은 과제는 동서가 하나로 화합하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남북이 하나가 되는 것이며, 동북아경제권이라는 새 블록을 형성하여 우리가 그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IMF체제 극복은 물론이려니와 말 그대로의 세계 8강에 합류할 수가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일본 식민지지배와 분단 그리고 전쟁의 참화와 가난의 질곡에서 불과 수십 년만에 세계 11번째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경험과 저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식사를 빨리 하는 근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10만 명당 간암사망률이 인구 23명으로 세계 1위, 교통사고 발생건수가 600건으로 3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 국민이 간의 휴식을 취할 시간도 없이 열심히 일을 한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