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음악의 시대적 구분과 특징Ⅰ. 고대음악, Gregorian Chant1. 고대음악고대시대의 음악은 문명발상지인 이집트나 중국 메소포타미아 문화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고 음악을 생활 속에서 적극적으로 즐기게 된 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이다. 그리스 음악도 제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그리스에서는 매년 봄이 오면 디오니소스의 제사가 거행되는데, 따스한 지중해 태양 아래서 사람들은 제사에 취한 듯이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행렬을 지어 걸어갔다. 이처럼 음악은 춤과 함께 연극과 함께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관계를 지니면서 발전해왔다. 이후 로마시대를 거치면서 음악은 조금씩 발전하게 되고 또한 악기도 등장하면서 노예들을 훈련시켜서 연주가들과 직업적인 연예인들이 되게 하였다.◎ 특징군사적인 목적으로 쓰였다.4세기 이후 기독교가 문화의 중심이 되면서 종교적인 목적에 의해 만들어졌다.성악중심의 음악, 단선음악, 아카펠라 음악이 위주였다.음역의 폭이 제한적이었다.악기를 만들고 사용하게 되었다.아름다움보다는 경건함에 치중하였다.◎ 고대시대의 악기릴라, 키타라, 아울로스, 시링크스, 크로톨라 팀파논, 살핀크스, 케라스2. Gregorian Chant(그레고리안 성가)대략 1000년에 걸쳐 서구 문화의 중심이 되고 기초가 되었던 기독교 음악으로서의 그레고리안 성가는 가장 대규모이면서 가장 오래된 단독적 음악 형태를 구성하고 있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통하여 종교음악의 다성 음악(polyphony)양식에 있어서 중심적 근간이었다는 점에서 큰 중요성을 지닌다.◎ 특성Monophony -단성음악Church mode에 바탕을 두고 있다.A Cappella 로 노래한다.Nonmetric 이다. (박자기호와 마디줄을 사용하지 않는 형태 )자유롭고 유연성 있는 산문의 리듬을 사용한다.Conjunct 이다. (도약진행은 극히 드물고, 대부분이 순차진행의 형태를 가졌다)음역(선율의 최고음에서 최저음까지의 범위)은 한정되었다.라틴어로 노래를 특징신중심의 음악 => 인간중심의 음악3화음이 나타났다.(화성선율) => 다성 음악이 주를 이룸좀더 아름다운 음악을 추구하였다.종교개혁이후 찬송가 생겨나고, 교회음악이 쇠퇴하였다.샹송, 깐소네가 등장하였다.아카펠라 기악과 함께 쓰였다.금속활자의 발명과 함께 악보의 인쇄가 가능해졌다.독립적 기악형식, 음악상의 빠르기, 유명작곡가가 나타났다.성악음악이 기악보다 중요시되었다.2. 세속음악11세기경까지 유럽의 모든 예술과 학문 분야는 성직자들이 주도하였으나 12세기에 이르러 봉건사회의 기사계급은 그동안의 교회와 수도원의 전통적인 권위의 지배 속에서 벗어나 인본주의적인 가치관을 추구하였다. 또한 오랜 십자군 전쟁 이후 극단적인 종교열은 침체했고 동방의 화려한 이국문화의 접견으로 세속적 요소가 사회생활에 팽대해졌다.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세속음악은 점차 민중속에서 발전해 나갔다.대부분의 세속음악은 단선율로서 악기와 함께 연주되었다. 이러한 세속음악은 12세기경부터 귀족계급인 남 프랑스의 투르바두르(Troubadour)와 북프랑스의 투르베르(Trouvere)에 의하여 전파되었고 작품도 많이 나왔다. 그들은 자작의 시에 노래를 즉흥적으로 불렀다.여러 곳의 왕궁과 귀족의 저택을 방문하여 간단한 악기의 반주로 그것을 노래했다. 시의 내용은 사랑노래와 발라드 풍의 이야기, 자연의 찬미, 종교적 또는 도덕적인 것이었다.Ⅳ. 마드리갈(16세기)14세기 및 16세기에 성행하였던 이탈리아의 성악으로 후자(16세기)의 영향을 받은 16세기의 영국과 다른 나라들의 같은 종류의 악곡도 포함된다. 어원이나 또는 모국어(이탈리아어)의 시의 의미를 지닌 마트리갈레(matrigale), 혹은 양 떼(mandra)에서 유래된 목가(mandriale)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16세기의 마드리갈은, 상술한 14세기 마드리갈과는 무관한 것이다. 15세기 말부터 16세기에 걸쳐 이탈리아 각지의 궁정을 중심으로 인문주의적 교양이 있는 음악가들 사이에서 그 당시 유행하던 프로톨라(frottola)를화와 독백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코미크라 하지만 즐거리가 희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생긴 것으로 처음에는 희극적이었지만, 후에 그와는 상관 없이 대사가 있는 오페라가 되었다. "카르멘"이나 "마농" 등의 오페라를 오페라 코미크라고 부르는 작곡가들도 있다.오페레타(Operetta : 경가극)오페레타를 경가극이라고도 하며, 극적인 진행에 있어서 대사를 동반한다. 여기에 노래와 무용이 들어가기는 해도, 음악적인 내용은 낮은 편이며 또한 오케스트라도 소규모적이다. 이러한 작품의 예로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집시의 남작", "박쥐" 등이 유명하며, 밀뢰커의 "거지 학생" 등이 이에 속한다.◎ 오페라의 역사고대 그리스와 로마- 고대 그리스 비극은 노래로 했다. 당시의 음악은 사라져 버렸지만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학자들이 강조한 음악의 중요성에 대한 이론은 남았다. '시학'(Art of Poetry)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예술 작품'이란 뜻)을 이렇게 정의했다. '비극이란… 중요하고 완전한 어떤 사건을 모방하는 것으로…장식된 언어로 즐거움을 주어야 하며… 멜로디도 중요하다.'그리스 비극에서는 음악이 따로 독립되지 않았다. 그것은 음악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음악의 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음악을 단단히 묶어 두지 않으면 힘이 넘쳐서 드라마를 압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절대로 비극과 희극을 섞지도 않았다. 고대 그리스 희극(코미디)은 보통 말로 대사를 했고 코러스 부분만 노래로 했다.로마 연극도 음악을 사용했다. 코러스 부분은 물론 노래로 했으며 배우들도 가끔씩 대사를 노래로 했다. '트로이 사람들' 등 세네카가 쓴 비극은 모두 그리스 비극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노래로 하는 코러스 부분이 들어 있다. 어떤 학자들은 고대 로마 희극이 요즘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비슷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명한 플라우투스, 테렌스의 작품들을 보면 연극 속에 노래가 많이 들어 있다. (스티븐 손다임의 1962년 브로급되는 합주 규모는 100명을 전후한 것이라 할 수 있다.(2) 관현악의 발달① 초기의 관현악오케스트라 사상 초기 관현악의 공헌자로는 가브리엘리와 몬테베르디를 들수 있다. 가브리엘리는 ‘심포니아 샤크레’에서 각 파트에 특정한 악기를 최초로 지정했고, 각 악기는 대담한 교합, 리듬과 다이나믹의 대비적 효과를 꾀하면서 전체적인 밸런스를 유지했다.몬테베르디는 1607년 만토바 궁정에서 상연된 ‘오르페오’에서 각 악기의 개성을 고려한 악기군의 집중적 배치로 풍부한 음색 효과를 얻는데 성공했다.악 기 명인원(수)악 기 명인원(수)피콜로1하 프1트럼펫4콘트라베이스2코 넷2쳄발로2트롬본4키타로네(아르치리우토)3비올라다감바3포터블 오르간1바이올린(소형)2파이프 오르간2비올라10계37몬테베르디의 악기편성 “오르페오”② 고전 관현악파 트소프라노알 토테 너비올라베이스계인 원6444624륄리는 고전 관현악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그는 처음 바이올린 주자로 왕실 악단에서 활약하였으나 많은 패시지와 장식음의 사용, 박자를 무시한 즉흥연주를 거부하면서 작은 바이올린 악단을 구성하여 철저한 음악교육을 시켰다. 륄리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최초의 관현악단을 조직하였다. 그는 언제나 약 20면에서 30명의 단원으로 현악5부를 기초로 편성했는데, 24인조 궁정 현악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륄리의 궁정악단 편성플루트는 주로 트럼펫, 혹은 바이올린과 결합시켰고, 트럼펫을 독주악기로 사용하였으나 때로는 팀파니와 대화시키기도 했다.륄리는 독단적으로 주제의 요구에 따라 주저 없이 악기를 등용시키기도 했다. 이를테면 기타, 뮈제트(백파이프 일종), 호루라기, 철침 등을 오페라 “이시스(Isis)에서 활용했다. 인원 구성도 예외는 아니어서 오페라 프시케(Psyche)에서 1백명의 악사를 기용했는가 하면 ‘덩케르트의 보방 축성의 낙성식’ 에서는 수많은 궁정인들 앞에서 7백 개의 베이스 드럼의 연타와 80문의 대포 광음을 결부시켜 연주하기도 했다.③ 바로크시대의 관현악바로크는 기악음악의 급성장 시대이다.바로크을 종전의 무건, 무밸브 악기 대신 사용하여 더욱 풍부하고 변화무쌍한 음형을 만들었고, 특별히 관악기 중에서 금관악기와 타악기의 중요성을 오랫동안 강조했다.베를리오즈는 처음에 극에 전념했다. 그는 관현악의 근대적 이상을 구축한 신음악의 대표적인 음악가였다. 그는 오케스트라에 있어서 각 악기의 고유한 음색 효과, 미묘한 리듬, 거대한 편성에 의한 음량의 확대를 그의 [근대 악기법과 관현악법] 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음악적 표현을 위해서는 악기 편성법을 각 고유 악기의 음색에 따른 특수한 기술에 결부시켜 연구했고, 그 예로 을 연주할 때 당시(1840년) 2백명의 악사들을, 1844년 는 1천 2백여명, 그 이듬해 은 9백명을 모아 연주하도록 했다. 또한 의 연주에는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에 각각25명씩, 비올라 20,첼로 20, 콘트라베이스 18명을 두었고, 여기에 상응한 관악기의 배치를 보면 트럼펫, 코넷과 트롬본이 각각 16, 호른 12, 그리고 10쌍의 팀파니, 그 옆으로 심벌즈 16명을 세웠는데, 이 같은 편성의 4개의 동일한 악단이 교회 4구석에서 교회 중앙의 악단에 응답하게 했고, 여기에 가수 210명을 동원시켰다. 이처럼 오케스트라의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베를리오즈는 종종 독창과 합창의 부가, 다시 말하면 인성을 관현악에 결부시켰다. 관현악은 베를리오즈와 함께 하나의 형식 위에 거의 결정적으로 고정되어졌다. 그것은 음악사에 있어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이른바 표제음악의 새 장르를 만들어 낸 것인데 바로 악곡에 표제를 붙이게 된 것이 그의 에서 시도된 때문이다.베를리오즈는 악기의 선택보다는 악기를 어떻게 잘 이용하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악기의 성능과 음색의 배합효과를 적절하게 구사함으로써 기발한 표현을 이룬 것이다. 평소 목관 음향에 애정을 지닌 베를리오즈는 목관군의 효율적인 분할 활용과 함께 새로운 표현으로 큰북과 팀파니를 해면(海綿)의 채로, 심벌즈를 팀파니의 채로 치고, 활대를 이용한 다양한 연주, 그리고 금관은 물론 목관까지 약음기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