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금융자율화 추세가 본격화되었던 1980년 적어도 90여개가 넘는 국가에서 110건에 달하는 다양한 형태의 돌발적인 금융위기가 일어났다. 각국의 정부는 금융위기의 전반적인 확산을 막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금융구조조정을 통해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등 위기를 신속 효율적으로 대처하고자 노력하였다. 거액의 공적자금을 금융기관 증자 및 부실채권 매입, 예금 대지급 등의 방법을 통하여 부실 금융기관에 지원하였으며 때에 따라서는 금융기관의 채무에 대한 국가보증을 선언하기도 하였다. 1980년 이후 발생한 일련의 금융 위기는 1930년대 세계 각 국가들이 금융대공황을 겪은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금융위기는 국가마다 그 배경이나 처리과정 처리방식에 있어서 상이한 면도 있지만, 경제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거나 취약한 금융 감독, 부적절한 법 및 회계 관련 제도, 불충분한 위험관리, 무능한 결제제도 등 금융 관련 인프라가 취약했었다는 점에서 국가간 유사성도 적지 않다.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금융위기의 확산을 막고 금융부문의 건전성을 조속히 회복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불가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일차적인 역할은 문제의 심각성을 진단하고 금융부문 전체적인 문제로 파급되지 않으며 재발을 방지하는 차원의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다. 또한 정책집행은 곧 공적자금의 투입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정부는 가능한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커다란 부담을 안게 된다.여기에서는 우리나라의 IMF 이후 시행해온 우리나라와 외국의 금융구조조정 사례를 비교하고 향후 우리나라의 과제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Ⅱ. 금융위기와 대응1. 한국의 공적자금조성과 투입사례금융위기를 겪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0월까지 한국의 거시경제지표는 건실한 추세를 보였고 국내는 물론 대부분의 외국 경제전문가들조차 우리나라의 경제위기를 예측하지 못하였다. 지속적으로 높은 경제성장과 상대적으로 낮은 이어지는 급박한 상황에서 64조원에 달하는 1차 공적자금을 조성, 조기에 투입함으로써 짧은 시간에 비교적 과감한 구조조정을 추진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1단계 금융구조조정 계획이라 불리는 당초의 정부 계획은 1999년 말까지 금융산업의 건전성 회복을 위한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2000년부터는 금융기관들의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한 금융기관 운영원의 소프트웨어 구조조정에 착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단계 금융 구조조정은 2000년 8월말까지 109.6조원의 자금을 쏟아 붙고도 완료되지 못했다. 정부는 2000년 9월 하순 2단계 금융구조조정의 청사진을 발표하였고 2001년 2월까지 구조조정을 마무리한다는 계획 하에 40조원의 추가 공적자금을 조성하였다. 만약 금융기관들의 자산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1단계의 금융 구조조정이 제대로 완수되었다면, 공적 자금조성을 추가로 필요로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2. 공적자금 집행의 효과공적자금 집행은 장기간 누적된 부실채권으로 말미암아 금융시스템의 전면적 붕괴 위험에 직면하여 예금자의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적자금이 집행되지 않았더라면 금융시스템 붕괴라는 엄청난 재난이 초래되었을 것이며, 이 경우 경제적, 사회적 비용은 막대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문제에 대한 과감한 인식과 신속한 구조조정 정책은 국내외 투자가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이후 빠른 속도의 경제회복을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임은 부인할 수 없다.공적자금의 투입으로 지난 4년간 589조원정도의 GDP 손실규모 축소, 약 106억 달러의 외채이자 경감, 764조원정도의 기업 및 가계의 이자부담 경감 등의 기회이익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2001년 8월 말까지 은행 11개를 포함하여 전체 금융기관의 28.1%에 해당하는 총 590개 금융기관이 퇴출되었다. 특히 은행도 부실해지면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시장규율이 정착되었다는 점에서 금융기관 퇴출은 큰 진전이라고 평가된다. 공적자금 지원을 전제로 전체 금융기관 직원의 29.1%를 파산금융기관 청산을 비롯하여 부실채권 회수, 일정한도의 예금지불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6년여 동안 총 747개의 도산 S&L을 처리하였으며 그중 434개는 은행에, 222개는 우량 S&L에 흡수?합병하였으며, 92개는 예금보험 지급으로 처리하였다.RTC가 정리한 부실채권 규모는 당시 S&L업계 총자산의 25%에 해당하는 4,560억 달러에 달하며, 이중 3,950억 달러를 회수함으로써 회수율 87%의 높은 성과를 보였다.RTC는 문제 S&L를 처리함에 있어 공개적이고 경쟁적인 절차에 의해 정형화된 방식으로 모든 거래를 함에 따라 RTC의 정책 및 비용에 대한 평가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처리절차의 신속화를 도모하였다. RTC는 비록 납세자의 부담으로 설립된 정부기관이었으나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적은 비용으로 기대 이상의 실적을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미국은 금융기관에 대해 일정한 체계속에서 감독과 규제를 실시하기 보다는 자유방임을 유지하다 안정화를 저해하는 요인들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 입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최적의 제도를 창출해 나가는 방식을 유지하였다. 또 미국 부실기관에 대한 정리방식을 보면, 매각방식이 가장 빈번히 활용된 반면 직접적인 자금지원이 실시되는 구제금융지원방식의 활용비중이 가장 작은 것으로 나타난다.(2) 유럽유럽은 국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80년대에 들어와 금융자유화를 추진하였으며, 특히 80년대 중반부터 Eu통합이 본격화 됨에 따라 금융자유화가 크게 진전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유럽의 금융기관들은 경쟁이 격화되어 위험 선호적인 경영형태를 유지하여 왔고, 또한 부적절한 금융감독 및 정책대응등으로 인하여 은행의 부실화가 초래되었다. 특히 80년대 후반 부동산 가격 폭락에 따른 자산가치 하락 등 버블경제의 퇴조와 90년대 초반의 유럽경제의 침체에 따라 영국, 프랑스, 북유럽 3국 등 유럽국가들의 금융기관들은 부실채권의 증가로 금융위기를 경험하였다.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은 각 국별 경제적, 정치적 상하는 방법을 통하여 금융 기관의 경영 정상화를 도모하였다. 이에 따라 스웨덴 정부는 경영 파탄이 심각한 Nord 은행이 보유한 670억 크로나의 부실 채권을 1993년 1월 정부가 흡수한 배드 뱅크(bad bank)라 불리는 Securem社로 이관하였다. 스웨덴 정부는 Gota은행의 280억 크로나의 부실 채권도 다른 국영 회사인 Retriva社로 이관하였다. 1993년 5월 은행지원청(Bank Support Authority) 설립한데 이어, 외국 컨설팅회사의 고용을 통한 효율성 및 신속성을 제고한 점도 돋보인다. 스웨덴에서는 가능한 한 상업베이스로 지원함으로써 정부부담을 최소화시키고자 하였다.(2)-2. 노르웨이1986년 이후 유가가 하락하면서 실물경기가 둔화되는 가운데 급속한 금융자율화를 추진하였는데 이에 금리자유화, 은행대출에 대한 한도제한 철폐, 금융기관에 대한 해외차입 제한 완화 등을 실시하였다.또한 동시에 부동산시장에 대한 규제철폐로 금융기관들은 부동산대출을 중심으로 일반대출을 경쟁적으로 확대하게 된다.그러던 중, 세제개편(1992)으로 이자비용에 대한 조세감면이 폐지되어 금융기관 차입에 대한 실질부담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거품경제가 급속히 소멸하면서 부동산가격이 폭락하고 금융기관대출의 담보가치가 하락하면서 부실채권 급증하게 되었다.노르웨이는 금융제도의 붕괴를 막기 위해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고 보고 정부의 직접적인 ‘자본 주입’과 ‘자기 자본 보증’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이용하였다. 91년 3월 정부은행보증기금(Government Bank Insurance Fund)을 새로 만들어 기존의 상업 은행 보증 기금(Commercial Banks Guarantee Fund)과 저축 은행 보증 기금 (Savings Banks Guarantee Fund)에 대출해 줌으로써 이들 기관이 개별 은행에 자본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91년 11월 의회는 보증 시스템을 강화하고 은행의 수익성을 개선시키며 문제 은행에 대한 자본 확충을 기할 목적으로 여러 가지ank)의 지급 불능 사태가 직접적 도화선이 됐다. 이를 계기로 1980년대 중반 이후의 거품경제에 가려져 있던 금융 기관들의 부실 채권 문제가 전면에 불거져 나왔다. 여기에 옛소련 붕괴에 따라 경기가 급량하면서 기업 부도가 증가하고 이는 환율 불안, 금리 상승 등으로 연결돼 핀란드 금융 기관들에 대한 대회 신용도가 최악의 상태로 악화되는 등 금융 시스템 전체가 위기 상황에 빠지게 됐다.위기가 절정에 달한 1992년 말 예금 은행의 부실 채권 잔액은 민간 대출금의 8.7%에 이르는 400억 마르카까지 올라갔다. 스콥방크를 핀란드 중앙 은행이 인수, 경영권을 장악하고 증자와 경영진 전면 교체 등 강도 놓은 구조 조정을 통해 금융 기관의 연쇄 도산 위기는 일단 막았다. 그러나 금융 기관의 부실화가 구조적 문제점으로 등장, 금융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을 계속 위협하자 핀란드 정부는 1992년 1월 총리실 직속으로 정부, 중앙 은행, 은행 감독원으로 구성된 특별 위원회를 설치, 근본 대책 수립을 주도하도록 했다. 특별 위원회는 (1) 금융 기관 증자 (2) 정부 보증 기금을 통한 부실 금융 기관 정리 (3) 금융 감독 체계의 개편을 대책으로 권고했고 이후 핀란드정부의 금융 위기 극복 노력은 이 세가지를 축으로 추진됐다. 금융 기관 증자를 위한 특별 수단으로 우선주 제도를 도입, 금융 기관 전체로 총 80억 마르카의 자본금이 증액됐다. 또 500억 마르카 규모의 정부 출연 기금으로 설립한 정부 보증 기금은 41개 부실 저축 은행을 단일 은행으로 합병하고 과감한 구조 조정을 실시했다. 이와 함께 기존의 은행 감독원을 확대 개편한 금융 감독원을 설립, 중앙 은행과 함께 의회의 관할 기관으로 만들어 금융 위기를 조기 감지해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높였다. 그 결과 1996년 말 예금 은행의 부실 채권 규모는 처음으로 100억 마르카 아래로 내려갔다. 정부가 출연한 정부 보증 기금이 금융 산업 개편의 주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금융 시스템이 안정을 회복하였던 것이다. 핀란드의 경우 있다.
Ⅰ. 들어가며우리 경제는 IMF사태를 변곡점으로 1960년대 이래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고실업,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저성장이 지속되고 소득과 생활수준은 크게 후퇴했다. 금융 및 기업구조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더 큰 비용과 고통을 각오해야 했다. 이러한 현실은 자조적 목소리가 담겨 새로운 유행어로 번졌다. 돈벌이 재주를 보이는 사람들을 보고는 I'm F(나는 역시 F학점이야) 혹은 I'm Fool(나는 바보야) 등에서 정리해고를 맞아서는 I'm Fire! (나는 해고) I'm Fly! (나는 파리목숨) I'm Finish! (나는 끝)로 거칠어졌다. 또 감원바람을 피하기 위해 I'm fixed(나 바닥에 딱 붙었어)를 외치더니 다행히 해고 바람에서 견딘 일부는 I'm fine(나는 괜찮아)하며 안도하기도 했다. 기업인들은 꽁꽁 얼어붙은 자금난 탓에 I'm freezing(나 얼어붙고 있어)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신세대들은 'IMF'를 영문으로 뜻풀이하면서 International Money Festival(국제적인 돈자랑 축제)이라고 표현, 은근히 IMF에 대한 반감과 경제주권을 상실당한 심정을 우회적으로 담았다. 또 It’s monetary fight(이건 돈싸움)로 국가간의 국경없는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풍부한 외화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타내 보였다. 신세대들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게 되자 I'm fighting(pocket money) 즉, ‘용돈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절규하기도 하고, Idle my father(실직당해 빈둥거리는 우리 아버지)의 축 늘어진 어깨를 보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이밖에 실직자의 마음을 한마디로 정의한 I am free(나 한가해요)도 씁쓸함을 담고 있다. IMF로 인해 고통이 예상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담은 It’s mournful future(슬픈 미래)는 우울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경제국치를 당한데 대한 실망감으로 I(아이고)M(미치고) F(환장하겠네)로 풀이하기도 한다.한국 몰고 갔다. 곧이어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등 굴지의 기업이 부도로 치달았다. 이어 재벌 순위 8위인 기아가 부도 위기에 몰리고 제일은행은 기아에 부도유예협약을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이 협약은 1997년 4월 21일 부실기업의 연쇄적 부도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가 주도하여 만든 금융기관 협약으로 원래 이름은 ‘부실징후기업의 정상화 촉진과 부실채권의 효율적 정리를 위한 금융기관 협약’이다. 97년 한보사태 이후 특정기업에 불리한 소문이 돌면 종금사를 비롯한 제2금융권에서 마구잡이로 대출금을 회수하여 실제로 부도가 나는 경우가 많아지자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가 주도하여 금융기관이 만든 협약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관치금융 내지 정치금융의 증거가 될 뿐이었고, 급기야는 외국투자가들의 한국경제에 대한 신뢰추락과 자금회수로 연결되었다. 즉 1997년에 일어난 재벌들의 붕괴는 삭스나 웨이드 같은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결코 우연한 돌출사건들이 아니었고 IMF사태에 이르는 필연적인 고리역할을 했던 것이다.2) 외화부족외환시장 동향이 심상치 않음을 간파하고 조속히 원화환율을 일시에 상당폭 절하하는 문제가 건의 되었지만, 정부당국은 오히려 원화가 급속히 평가절하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보유외환을 팔아 환율을 방어하고 있었다. 1997년 8월~11월에 한국은행은 원화가치 안정을 위해 현물시장에 120억 달러, 선물시장에 70억 달러를 매각했다. 당시 가용외환보유고는 72억 달러에 불구했다. 이것은 단기외채를 기준으로한 적정외한보유고의 절반수준에도 못미치는 것이었다.특히 한보사태를 계기로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해외차입 여건이 악화되었다. 시중은행 해외지점 책임자들에 따르면, 한보사태 발생 이후 은행들의 현지 차입여건이 크게 악화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예로, 2월에는 서울은행과 제일은행의 도쿄지점은 직접차입이 어려워져 다른 한국계 은행을 통해 자금을 차입했으며, 5월경에는 다른 한국계 은행들도 차입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이런 양상은 뉴욕에서도 거의 제에 큰 타격을 입혔던 것이다. 어음할인시장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어음할인시장의 급팽창이 오히려 정책적으로 촉진되었던 이유는 어음할인시장의 팽창에 대한 통화당국과 금융기관 투자자 모두의 이해관계가 일치되었기 때문이다. 기업의 자금수요가 직접금융시장을 통해 충족됨으로써 통화당국은 통화증발의 부담 없이도 자금수요 압력을 완화할 수 있었고, 종금사는 어음할인과 매출과정에서 중개마진을 즐겼으며, 은행의 신탁계정은 CP투자를 통해 정보생산과 감시 기능의 수행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도 고수익 운용을 확보할 수 있었는가 하면, 예금자들은 신탁계정의 고수익을 가질 수 있었다. 정부는 CP에 대한 종금사의 이면지급보증을 금지했으나, 이와 같이 은행과 종금사의 이해관계가 일치함에 따라 이면지급보증 관행은 지속되었던 것이다.2) 관치금융한국의 금융제도는 30여년간 고속성장을 위한 정책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성장을 위한 투자자본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는 금융체제를 시장원리에 맡기기보다는 직접 나서서 관장을 했고, 동원된 저축이 전략산업 부문에 투자되도록 유도했다. 당연히 금융산업은 관치금융의 그늘 아래서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자생력을 키우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기관은 부실여부를 떠나 부채에 대한 정부의 암묵적이고 때로는 명시적인 보증을 받아왔다. 따라서 외국투자가들은 잘못되어도 떼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국내 금융기관들에게 쉽게 자금을 빌려주었다. 또한 국내 금융기관들이 이처럼 비교적 용이하게 빌려온 자금은 기업들의 무분별한 중복 과잉투자로 연결되었다. 특히 1990년대 진행된 절제 없는 자본자유화의 과정이 이러한 도덕적 해이 현상을 심화시켰고 대기업들은 저리의 해외자금을 차입하여 경쟁적으로 사업규모를 확장해 나갔다. 그러나 재벌기업들의 연이은 도산은 그동안 누적되어 온 금융권의 부실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심화시켰다.(3) 기업위기우리 경제의 확장기중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대부분 기업들의 기본전략은 인플레를 겨냥한 차입을 돈부시나 제프리 프란켈 등은 한국의 문제가 투명성 결여와 관료들의 경제개입 등에 있다고 지적하고 이는 유교자본주의의 전통인 관주도 경제체제와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에 기인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즉 동아시아 경제 모델이 다른 모델에 비해 도덕적 해이를 촉발하는 요인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고 본다.1980년대 후반 시작된 민주화와 개방화의 큰 흐름으로 인해 기존 정부의 역할과 능력에 한계가 노출되면서 정부를 축으로 하는 경제시스템의 유효성이 저하되기 시작했다. 한국 경제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지 성격이 달라지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시스템의 성과가 떨어진 것이다. 정부의 운용능력에 한계가 나타나면서 경제를 조정하고 감시하며 유인을 제공하는 구심점이 상실되었고, 각 부문은 규율이 사라진 상태에서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되었다.(2) 미흡한 시장마인드시장경제의 제도적 장치가 미비된 것이 우리나라 경제의 현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기는 하나 아무리 제도가 완비되었더라도 경제주체들의 사고방식과 행태가 시장마인드(market mind)에 입각하지 않는다면 시장경제의 본래적인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시장원리대로 작동하지 못하였다는 점에 있는 한 시장경제에 대한 그릇된 국민정서도 냉정하게 반성하여야 한다. 아담 스미스가 각 개인이 사익을 추구하더라도 자유경쟁을 하는 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사회후생이 극대화된다고 설파한 이면에는 개인은 완전한 이기주의가 아니라 제한된 애타주의, 즉 최소한의 상업적 도덕심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또한 시장이 제도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법적, 제도적 장치가 개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장의 이기적 교환행동, 최소한의 상업적 도덕심, 공적 제도의 세가지가 과부족이 없이 상호균형을 이루어야만 시장경제는 가장 바람직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시장마인드가 미흡하여 기업을 이윤추구의 존재로 인정하면서도 기업의 사회 기입의 이윤을 압박하고 현재의 경제위기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또한 기업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과잉인력의 문제가 지적되기도 한다. 이는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되는 것인데, 한국은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기업의 부담이 증가하고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해고가 상당 폭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기업조직들은 효율적인 조직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경쟁의 정도가 약한 기업들, 예를 들면 공무원 조직이나 준공공부문 내에 사내실업자 혹은 과잉인력의 비중이 높다. 얼마 전 부즈-알렌 보고서에서도 평균적으로 11.8% 정도로 한국 기업들이 과잉인력을 갖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낸 바 있으며, 경총은 평균적으로 20%정도의 과잉인력이 있다고 보고했다.Ⅲ. 한국 경제 위기의 종합적 원인론1. 외부충격론외부충격론은 아시아 경제의 취약성을 인정하면서도 위기의 본질적인 원인을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 금융시스템의 내재적 취약성 및 투자자들의 비이성적인 패닉에서 찾는다. 신용평가기관들은 동남아 국가에서 위기가 발생한 후에도 한국의 신용등급을 내리지 않다가 IMF 지원금융을 신청하고 나서야 신용등급을 낮추었다. 이러한 사실은 충격론에 설득력을 실어 주고 있다. 아시아는 교역관계상 상호 밀접한 경합구조를 보이고 있다. 수출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이들 나라에서 특정 국가의 환율변동에 따른 교역조건 변화는 역내 다른 국가들의 수출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 나라의 평가절하가 인접국가의 수출입에 영향을 미쳐서 평가절하를 유도하는 무역효과를 통해 위기가 전염된다. 더욱이 아시아 국가들은 국가간 환율정책의 연계나 일시적 유동성 부족에 대처할 수 있는 협조 채널이 없었기 때문에 위기 확산이 가중되었던 것이다.2. 정부 실책론가장 포괄적인 요인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낮은 수준의 정책능력이다. 경제정책 영역에서는 행정의 효율성보다는 정책 개발능력과 행정의 수준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한국의 경제정것이다.
Ⅰ. 들어가며21세기는 기대와 더불어 불안으로 시작되었다.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만큼 미래 사회에 대한 다양한 청사진들이 제시되었다. 사람들은 과학기술로 보다 발전되고 편리해진 미래를 꿈꾸는가 하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비춰진 어두운 미래를 점치기도 했다. 어떤 변수가 얼마나 다른 결과를 이끌어내게 될지는 모르나 한 가지 명확한 잣대로 기준을 삼을 수는 있다. 이는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다. 우리가 반성하고,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또, 대안을 구하는 것은 모두 인간의 존엄성을 갈구하는 노력의 일부분일 것이다.다가올 미래의 우리 삶과 관계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기술과 인간의 노동에 관한 논의이다. 이는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고 현재 진행 중인 일이기도 하다. 또한 현재, 사회 각 부분으로 이로 인한 갈등이 번져가고 있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과 도미니크 슈나페르의 ‘노동의 종말에 반하여’라는 책에 비추어 인간의 미래와 노동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Ⅱ. 인간과 노동인간과 노동에 대한 논의에 앞서 우리는 ‘노동(勞動)’을 정의 내려야 할 필요가 있다. 도미니크 슈나페르는 ‘노동의 종말에 반하여’에서 “우리의 전통으로 볼 때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기 자신을 실현하고 그의 충만한 인간성, 즉 자연의 주인이 되기 위한 노력을 표현한다. ” 라고 말하며 ‘노동’과 ‘임금을 받는 일자리’가 동일시된다고 지적한다. 근대 사회는 개인으로서의 시민과 생산자라는 이중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만일 오늘 우리가 노동의 지위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면 이때 우리는 여전히 근본적인 것으로 남아 있는 것, 즉 생산적인 노동과 시민권의 본원의 관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근대 시민은 노동을 함으로써 그의 존엄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노동’의 정의에 대해서는 제레미 리프킨도 비슷한 시각을 보인다. 하지만 기계화로 인한 인간노동의 대체현상을 낙관론적인 ‘노동의 해방’이 아닌 암울한 ‘노동의 종말’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기술이 발전되면서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노동과 그것의 가치성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기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기술의 의미는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술은 인간의 능력을 발전시켜 그것을 다양하게 이용하거나, 반대로 발전된 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 한다. 기술은 남녀의 일상의 수고를 덜어 줄 수 있다. 기술은 강제 수용소를 만들 수도 있다. ...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람들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목적 그 자체로 여겨질 위험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기계의 사용은 정치와 도덕의 감독하에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도미니크 슈나페르는 기술의 한계를 명확히 구분지어주고 있다. 또한, 그녀는 ‘부정적인 개인주의’의 잠재적 대두를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복지 국가가 새로운 분배에 적응할 수 있도록 우리의 생활 방식을 조건짓는 시장의 약동성과 효율성은 그대로 유지하되 생산이 원래의 역할, 즉 인간에게 봉사하는 도구가 되는 대신 자기 자신의 목적이 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곧,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우위의 가치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 마지막 장인 ‘후기 시장 시대의 여명’에서,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대안과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그가 주목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새로운 요구사항들이다. 즉, 임금 인상에 노조의 활동이 주력돼있던 과거와 달리, 현대 노동자들은 임금의 개선보다도 자신의 여가시간을 확보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는 제레미 리프킨의 대안인 제3부문 강화와 연계되어 새로운 사회의 형태를 제시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노조의 역할에 대한 도미니크 슈나페르의 견해 역시 사뭇 비관적이다. 그녀는 대량의 실업사태를 해결하는 방안에 있어서 실업자의 조직된 집단은 구성될 수 없다고 본다. 실업자는 실업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기 때문에 실업자라는 상황에 동화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물론 시위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노동이 불안정해진 사회에서 사회적 유대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노동에만 부여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점을 지적해 주고 있다.제레미 리프킨이 말한 ‘제3부문’은 현재 흔히 NGO라 명명되고 있는 수많은 민간단체와 유사한 개념이다. 그의 요지에 따르면, 제3부문은 더 이상 국민들의 복지정책을 떠맡으려 하지 않는 국가?정당으로부터, 그 일을 위임받아 점차 약해져 가는 사회복지를 재구현하는 산업사회의 조정자 역할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제3의 고용주의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제레미 리프킨의 언급처럼 제3부문의 활동은 정부의 보조가 없이는 그 자체로 활동력의 한계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제레미 리프킨은 제3부문의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가 제시한 그림자 임금과 사회적 임금은 무보수가 무가치하다는 자본주의적 인식 때문이 아니더라도 제3부문에 대한 정부 투자의 필요성에서 기인한다. 이제 제3부문의 영역은 민간봉사의 한정적인 부문을 넘어, 각 사회의 모든 부분에 걸쳐져 있기 때문에 이들의 역할을 제대로 평가하고 그 만큼의 보상을 통해 보다 발전적인 사회 구조의 한 부분으로 흡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정부가 제3부문에 대한 감세나 실업자 유인 등을 통한 제3부문의 활성화를 추진하고, 기업과 상위층을 대상으로 한 부가가치세 신설 등을 통해서 재원확보와 공정한 분배의 틀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자본가 스스로는 분배를 위해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컨대 오직 정부나 노동자의 노력만이 ‘노동의 종말’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 그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 아닐까.“현대 사회의 위대함은 그것이 모든 인간의 대등한 존엄성이라는 사상 위에 세워졌다는 데 있다. 현대 경제의 효율성을 잃지 않으면서 자유 경쟁 시장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사회적 조직이 필요하다.” 이것이 도미니크 슈나페르가 제시하는 방향이다. 이것은 어쩌면 제레미 리프킨의 ‘제 3 부문’을 포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두 저자의 책에서는 이렇듯 상당히 많은 부분이 공통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미니크 슈나페르는 우리가 노동의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노동 조직을 향해 가고 있고 그 안에서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 복지의 일자리들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인간의 삶이 무한한 창조성과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데에 희망을 걸고 싶다. 모든 일이 기계로 대체되어서 노동에 대한 수요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예를 들자면, 정보 과학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분야도 있다. 도미니크 슈나페르는 이것을 “우리가 포괄적 의미로 사회보장이라고 부르는 것의 총체”라고 일컫는다. 즉 육체적, 정신적, 지적으로 아이들, 청소년들, 노인들, 병자들, 장애인들, 그리고 심지어 생산 활동에 참가하고 있는 성인들을 돌보는 것, 가르치고 보살피고 즐겁게 해주는 것이 그것이다. 보살핌과 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는 무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자리도 무한하리라 예상된다. 이러한 방법론에 있어서 도미니크 슈나페르는 제레미 리프킨보다 현실성을 확보한다고 생각된다. 즉, 기술의 발전을 거부하는 것으로만 일자리 확보의 탈출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 예상했던 사람들에게 기술의 혜택을 노동 창출의 재정적 기반 마련에 도입해 보였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경쟁 시장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효율’은 기계화, 자동화가 이루어질수록 높아진다. 만약 경쟁적인 분야의 생산이 효율적이고 경쟁을 견디어 낼 수 있다면, 우리는 교육, 사회 보장, 문화 분야에서 무한정 필요로 하는 그 일자리들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윤선도(尹善道)춘사(春詞). 1압개예 안개 것고 뒬뫼희 힝 비췬다.빛 떠라 빛 떠라밤물은 거의 디고 낟믈이 미러 온다.至 悤(지국총) 至 悤(지국총) 於思臥(어사와)江강村촌 온갓 고지 먼 빗치 더욱 됴타.춘사(春詞). 4우다 거시 벅구기가, 프른 거시 버들숩가,이어라, 이어라漁村(어촌) 두어 집이 다속의 나락들락.至 悤(지국총) 至 悤(지국총) 於思臥(어사와)말가한 기픈 소희 온갇 고기 힝노다다.하사(夏詞). 1구즌비 머저 가고 시낼물이 밑아 온다.빛 떠라 빛 떠라낫대링 두러메니 기픈 興(흥)을 禁(금) 못힝돠.至 悤(지국총) 至 悤(지국총) 於思臥(어사와)煙江(연강) 疊 (쳤쟝)은 뉘라셔 그려 낸고.하사(夏詞). 2년닙희 밥싸 두고 반찬으란 쟝만마라.닫 드러라 닫 드러라靑쳬蒻약笠립은 써 잇노라, 綠녹蓑사衣의 가져오냐.至 悤(지국총) 至 悤(지국총) 於思臥(어사와)無무心심한 白빛鷗구다 내 좃다가, 제 좃다가.추사(秋詞). 1物外(물외)예 조한 일이 漁父生涯(어부생애) 아니러냐.빛 떠라 빛 떠라漁翁(어옹) 운디마라, 그림마다 그렷더라.至 悤(지국총) 至 悤(지국총) 於思臥(어사와)四時興(사시 흥)이 한가지나 秋江(추강)이 을듬이라.추사(秋詞). 2水슈國국의 까잎히 드니 고기마다 싶져 인다.닫 드러라 닫 드러라萬만頃경 澄딩波파의 슬킹지 容용與여힝쟈.至 悤(지국총) 至 悤(지국총) 於思臥(어사와)人인間간을 도라보니 머도록 더옥 됴타.추사(秋詞). 4그려기 떳다 밧긔 못 보던 뫼 뵈다고야.이어라 이어라낙시질도 힝려니와 取취한 거시 이 興흥이라.至 悤(지국총) 至 悤(지국총) 於思臥(어사와)夕석陽양 빛잎니 天쳔山산이 錦금繡슈ㅣ로다.동사(冬詞). 3여튼 갠 고기들히 먼 소힝 다 갇다니돋 딪라라, 돋 딪라라져근덛 날 됴흔제 바탕의 나가보쟈.至 悤(지국총) 至 悤(지국총) 於思臥(어사와)밋기곧 다오면 굴근 고기 믄다 한다.동사(冬詞). 4간밤의 눈 갠 後후에 景경物물이 달란고야.이어라 이어라압희다 萬만頃경 琉류璃리 뒤희다 千쳔疊텁 玉옥山산.至 悤(지국총작자 나이 67세 이후 전남 보길도의 부용동(芙蓉洞)에 은거하면서 지은 것으로, 춘하추동 네 계절을 각각 10수씩으로 읊은 40수로 된 연시조이다. 고려 때부터 전하여 온 '어부사(漁父詞)'를, 명종 때 이현보(李賢輔)가 '어부가(漁父歌)' 9장으로 개작하였고, 이것을 다시 고산이 후렴구만 그대로 넣어 40수로 고친 것이다.이현보의 어부가에서 시상(詩想)을 빌려 왔다고는 하나, 후렴구만 떼고 나면 완전한 3장 6구의 시조 형식을 지니면서 완전히 새로운 자기 언어로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어 고산의 국문학사에서 지니는 위치를 점쳐 볼 수 있게 된다. '어부사시사'의 구성상 특징'어부사시사'는 자신이 은거하던 보길도의 춘하추동 각 계절의 경치를 노래하였다. 각 작품에는 계절마다 펼쳐지는 어촌의 아름다운 경치와 어부 생활의 흥취가 여음(餘音)과 더불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초장과 중장 다음에 여음이 들어 있는데, 중장 다음에 나오는 여음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는 전편(全篇)이 일정하나, 초장 다음의 여음은 각 계절의 10수가 모두 다음과 같다.1수 : 빛 힝라, 빛 힝라2수 : 닫 드러라, 닫 드러라3수 : 돋 딪라라, 돋 딪라라4수 : 이어라, 이어라5수 : 이어라, 이어라6수 : 돋 디여라, 돋 디여라7수 : 빛 셰여라, 빛 셰여라8수 : 빛 밑여라, 빛 밑여라9수 : 닫 디여라, 닫 디여라10수 : 빛 브텨라, 빛 브텨라 이현보의 '어부가'와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이현보가 살았던 16세기는 정치적으로 당쟁이 있었던 혼탁한 시대였다. 그래서 시적 자아는 강호에 있으면서도 정치 현실을 완전히 망각하고 안주할 수 없었기에, 강호의 삶과 즐거움을 노래하는 경우에도 지나친 자연미에 대한 탄상이나 감흥은 스스로 억제하였다.그러나, 윤선도가 살았던 16세기 말 - 17세기의 강호 시가는 사림의 정치적 승리 이후 이념의 도덕적 변별 가치가 약화되고, 정치적 쟁투에 혐오적인 사대부들에 의해 창작되었다. 그렇기에 '어부사시사'와 같은 강호 시가는 현실 정치의 혼탁함으칡덩굴이 서로 얽혀져 있은들 어떠하리.우리도 그 칡처럼 얽혀서 오래도록 살아가리라.[핵심 정리]지은이 - 이방원(李芳遠, 1367-1422) 조선 태조의 다섯째 아들. 뒤에 제 3대 태종이 되었고, 부친 이성계를 도와 정몽주를 제거하는 등 조선 건국에 공이 크다.갈래 - 평시조연대 - 고려 말엽(1392년)성격 - 회유적(懷柔的)표현 - 설의법. 직유법별칭 - 하여가(何如歌)주제 - 정적(政敵)에 대한 회유(懷柔)▶ 작품 해설이방원이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속셈을 떠보느라고 지은 '하여가(何如歌)'이다. 이에 대해서 정몽주는 '단심가(丹心歌)'로 응답하였다. 직설적인 말은 내비치지도 않고 느긋하다.혁명 전야(前夜)에 고려의 중추적인 충신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해 지었다는 이 노래는 일명 '하여가(何如歌)'라고도 한다. 결국 '단심가(丹心歌)'로서 굳은 절개를 화답했던 정몽주는 이방원의 심복 조영규에게 선죽교에서 살해되고 만다. 이와 같은 사연을 가진 이 노래는 정치적 복선을 깔고 있으면서도 아주 부드러운 정서를 바탕으로 하여 정치가다운 기질을 느끼게 한다.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는 다음과 같다.이 몸이 주거주거 一百番(일백번) 고쳐 주거,白骨(백골)이 塵土(진토)ㅣ 되어 넉시라도 잇고 업고,님 向(향)한 一片丹心(일편단심)이야 가승 줄이 이시랴. 내가 일백번을 다시 죽어서,뼈가 티끌이 되어 넛마저 있든지 없든지 하여도,임을 향한 일편단심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이 몸이 주거 주거정몽주(鄭夢周)이 몸이 주거 주거 일백 번 고쳐 주거,白骨(백골)이 진토(塵土)되여 넉시라도 잇고 업고,님 향한 一片丹心(일편단심)이야 가승 줄이 이시랴.[시어, 시구 풀이]고쳐 : 다시. 거듭白骨(백골) : 죽은 사람의 살이 썩은 후 남은 뼈塵土(진토) : 티끌과 흙잇고 업고 : 있거나 없거나님 : 임금(공양왕)一片丹心(일편단심) :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충성스러운 마음가승 줄이 : 변할 까닭이[전문 풀이]이 몸이 죽고 또 죽어 일백 번을 다시 죽어서,뼈가 티끌이나 흙이움도 아녀도 몬내 됴하 힝노라.[시어, 시구 풀이]뫼흘 : 산을오다 : 온가고우옴도 : 웃음도아녀도 : 아니하여도몬내 됴하 : 못내 좋아. 두다[좋아하다-好]말싶도 우움도 아녀도 몬내 됴하 힝노라. : 자연에 묻혀 사는 은사(隱士)의 한정(閑情)이 잘 나타나 있다.[전문 풀이]술잔을 들고 혼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니그리던 님이 온다 해도 반가움이 이보다 더하랴.산은 말씀도 웃음도 짓지 아니하지만, 어떤 말 어떤 웃음보다도 나의 마음을 흐믓하게 하는구나.[핵심 정리]지은이 -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조선 선조-현종 때의 문신. 호는 고산(孤山). 송강 정철과 국문학사상 쌍벽을 이룬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으나 속화(俗化)된 자연을 시로써 승화시켰다. 작품으로는 '견회요'와 '우후요(雨後謠)', '산중신곡(山中新曲)', '산중속신곡(山中續新曲)' 등이 있다.갈래 - 평시조. 연시조 '만흥(漫興)' 6수 중 셋째 수임성격 - 한정가(閑情歌)표현 - 설의법제재 - 자연을 벗하는 생활주제 - 자연에 묻혀 사는 은사의 한정▶ 작품 해설이 작품은 '산중신곡' 가운데 6수로 된 연시조 '만흥(漫興)' 중의 셋째 수이다. 인간과 교섭을 끊고 먼 산의 경치를 바라보면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문득 마음 속에 박혀 있는 산의 모습. 웅장함이여, 태연 자약함이여, 세상의 무엇보다도 미덥고 반가운 모습. 말없는 말을, 웃음 없는 웃음을 이심전심으로 느끼면서 황홀한 기쁨에 젖는다. 때로는 사람이 그립기도 하고 친구가 찾아오면 좋으려니 하는 막연한 생각도 가져 보지만, 이제는 산보다 더 좋은 친구가 없다. 자연에 몰입되어 무아경(無我境)에 든 산같이 의연한 고산(孤山) 윤선도의 고고한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윤선도의 시조는 조선 전기 시조에서 본 강호 가도(江湖歌道)를 한층 발전시켰다. 멀리 바라보이는 산과 혼연 일체를 이루는 경지에 이르자 이루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만흥(漫興)'의 나머지 작품山水間(산수간) 바회 아래 힝집을 짓삼아. 비를 만들어님 : 광해군을 가리킴[전문 풀이]철령 높은 봉우리를 단숨에 넘지 못하고, 쉬었다가 넘는 저 구름아,임금의 총애를 잃고 유배길에 오르는 외로운 신하의 서러움이 맺힌 눈물을 비 대신으로 띄워 가지고 가서,임금이 계신 깊은 대궐 안에 뿌리는 것이 어떠하겠는가?[핵심 정리]지은이 - 이항복(李恒福, 1556∼1618) '오성과 한음'의 일화로 유명한 조선 중기 때의 문신(文臣). 호는 백사(白沙). 벼슬은 영의정에 이름. 인목대비 폐비사건 반대하다 유배됨갈래 - 평시조성격 - 우의적(寓意的)표현 - 감정이입주제 - 연군(戀君)▶ 작품 해설작가가 인목대비 폐모론을 반대하여 한때 임금의 오해를 사서 북청 땅으로 귀양가면서까지 자신의 심정이 옳으며, 그것을 굽히지 않겠다는 일편단심을 노래한 시조다. 구름에 감정 이입하여 임 계신 대궐에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하겠다는 굳은 지조를 노래한 시조로서, 우의적인 수법이 뛰어나다.이 작품의 지은이인 소신을 굽히지 않고 인목대비 폐모론에 극구 반대하다가, 충간(忠諫)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유배 길에 오르자, 조정과 장래를 걱정하여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작자의 충성심이 전편에 걸쳐 면면히 흐르고 있다. 유배지로 가는 도중 철령에서 바라다 본 '구름'조차도 차마 산을 빨리 넘지 못하여,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자신의 입장과 같아 보인다. 또한 작자는 자신을 고신(孤臣)이라 하여 임금의 은총을 잃은 서러움에 북받쳐 있으며, 이 서러운 마음을 임금이 계신 대궐에 비로 만들어 뿌려 자신의 충절을 보이겠노라고 결의까지 드러내 보이고 있다. 당시 '비 삼아 띄운다'는 표현은 무속(巫俗)적 신앙(信仰)으로서, 어떤 충성심과 절개의 표본으로까지 형상화되어 나타나는 기상 변화로 여겨진다.청산리 벽계수야황진이(黃眞伊)靑山裏(청산리) 碧溪水(벽계수)ㅣ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一到滄海(일도창해)힝면 도라오기 어려오니,明月(명월)이 滿空山(만공산)힝니 수여 간들 엇더리.[시어, 시구 풀이]벽계수(碧溪水)ㅣ 야 : 푸른 시냇물아적이다.
시집살이 노래작자 미상형님 온다 형님 온다 보고저즌 형님 온다.형님 마중 누가 갈까 형님 동생 내가 가지.형님 형님 사촌 형님 시집살이 어뗍데까?이애 이애 그 말 마라 시집살이 개집살이.앞밭에는 당추 심고 뒷밭에는 고추 심어,고추 당추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둥글둥글 수박 식기(食器) 밥 담기도 어렵더라.도리도리 도리 소반(小盤) 수저 놓기 더 어렵더라.오 리(五里) 물을 길어다가 십 리(十里) 방아 찧어다가,아홉 솥에 불을 때고 열두 방에 자리 걷고,외나무다리 어렵대야 시아버니같이 어려우랴?나뭇잎이 푸르대야 시어머니보다 더 푸르랴?시아버니 호랑새요 시어머니 꾸중새요,동세 하나 할림새요 시누 하나 뾰족새요,시아지비 뾰중새요 남편 하나 미련새요,자식 하난 우는 새요 나 하나만 썩는 샐세.귀먹어서 삼년이요 눈 어두워 삼년이요말 못해서 삼년이요 석 삼년을 살고 나니,배꽃 같던 요내 얼굴 호박꽃이 다 되었네.삼단 같던 요내 머리 비사리춤이 다 되었네.백옥 같던 요내 손길 오리발이 다 되었네.열새 무명 반물치마 눈물 씻기 다 젖었네.두 폭 붙이 행주치마 콧물 받기 다 젖었네.울었던가 말았던가 베개 머리 소(沼) 이겼네.그것도 소(沼)이라고 거위 한 쌍 오리 한 쌍쌍쌍이 때 들어오네.[시어, 시구 풀이]보고저즌 : 보고 싶은. 이 부분은 '분(粉)고개로'로 되어 있는 표기도 있음당추 : 고추, 음의 조화로운 배치를 위해 '고추'와 '당추'로 각각 표현함수박 식기 : 그릇이 수박처럼 둥글다는 것을 표현함도리 소반 : 둥글고 작은 밥상, 둘러 앉아서 먹는 데서 나온 이름호랑새 : 호랑이처럼 무서운 새할림새 : 남의 허물을 잘 고해 바치는 새, '할림'은 '할리다'(참소하다)에서 온 말뾰족새 : 성을 잘 내는 새시아지비 : 시아주비. 남편의 동생. 남편의 형은 '시아주버니'라 함뾰중새 : 마음에 차지 않아 입술이 뾰죽이 나온 새미련새 : 어리석고 둔한 새썩는 새 : 마음 속으로만 애를 태우는 새. 자신을 비유함삼단 : 삼[麻(마)]의 묶음. 숱이 많고 긴 물건의 비유비막걸리를 마시며 노는 시냇가錦鱗魚(금린어)ㅣ: 싱싱한 물고기가亦君恩(역군은)이샷다. :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도다녀름 : 여름草堂(초당) : 은사들이 즐겨 지내던 별채江波(강파) : 강의 물결싶져 잇다 : 살이 쪄 있다. 살이 올라 있다小艇(소정) : 작은 배흘니 : 흐르게더뎌 두고 : 내버려 두고消日(소일)힝옴도 : 소일하게 됨도. '消日'은 어떤 일에 재미를 붙여 세월을 보냄자히 : 한 자가남다 : 넘는다. 더 된다누역 : 도롱이[전문 풀이]강호(자연)에 봄이 찾아오니 깊은 흥이 절로 일어난다.막걸리를 마시며 노는 시냇가에 싱싱한 물고기가 안주로다.이 몸이 이렇듯 한가하게 노니는 것도 역시 임금님의 은덕이시도다.(춘사 - 흥겹고 풍류스런 강호 생활)강호에 여름이 찾아오니 초당에 있는 이 몸은 할 일이 없다.신의가 있는 강물결은 보내는 것이 시원한 바람이로다.이 몸이 이렇듯 시원하게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님의 은덕이시도다.(하사 - 한가한 초당 생활)강호에 가을이 찾아오니 물고기마다 살이 올라 있다.작은배에 그물을 싣고 가 물결 따라 흐르게 던져 놓고이 몸이 이렇듯 소일하며 지내는 것도 임금님의 은덕이시도다.(추사 - 고기 잡으며 즐기는 생활)강호에 겨울이 찾아오니 쌓인 눈의 깊이가 한 자가 넘는다.삿갓을 비스듬히 쓰고 도롱이를 둘러 덧옷을 삼으니이 몸이 이렇듯 춥지 않게 지내는 것도 임금님의 은덕이시도다.(동사 - 안빈낙도하는 생활)[핵심 정리]지은이 - 맹사성(孟思誠, 1360-1438) 호는 고불(古佛). 고려말에 벼슬에 올라, 세종 때는 좌의정에 이름. 항상 청렴결백한 생활을 하였다. 비가 새어 의관을 적시는 협소한 집에서 살았고, 행차 때에도 수행을 시키지 않고 평민적 생활을 하였다. 고아한 인품을 소유한 재상으로 유명하다. 작품으로 '강호사시가'가 있다.갈래 - 연시조성격 - 강호가. 강호한정가. 강호연군가표현 - 열거법. 반복법. 의인법제재 - 춘사 하사 추사 동사주제 - 강호 한정(江湖閑情)의의 - 최초의 연시조로서 이황의 '도산십이곡'과 이이의 있다.사랑하는 임과 이별한 여인의 외로움이 가슴 저미게 스며 있는 이 노래는 사설시조에서는 드물게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노래이다. 임을 향한 애절한 그리움의 심경을 귀뚜라미에 의탁하여 읊은 이 작품은 감정이입의 수법을 사용하여 동병상련을 느끼게 한다. 사설시조사설시조에 대하여산문 정신과 서민 의식을 배경으로 탄생한 사설시조는 시조가 지닌 3장체의 형태적 특성을 살리면서 낡은 허울을 깨뜨리는 데 공헌했다. 지난 날의 영탄이나 서경의 경지를 완전히 탈피하여, 폭로적인 묘사와 상징적인 암유(暗喩)로써 그 표현 기교를 바꾸어서 애정, 거래(去來), 수탈, 패륜(悖倫), 육감(肉感) 등 다채로운 주제를 다루면서 지난 시대의 충의에 집착되 주제를 뒤덮었다.형식면에서는 ①사설조로 길어지고, ②가사투, 민요풍이 혼입(混入)하며, ③대화가 많이 쓰이고, ④새로운 종장 문구(文句)를 개척하였다.내용면에서는 ①구체적, 서민적인 소재와 비유가 도입되고, ②강렬한 애정과 육욕(肉慾)이 표현되며, ③어희(語戱), 재담(才談), 욕설이 삽입되고, ④거리낌없는 자기 폭로, 사회 비판 등이 다루어졌다.사설시조의 작자층사설시조는 그 형식이나 주제는 물론이고, 작자층에서도 평시조와 구별된다.평시조의 작자층이 양반 사대부 중심이었던 데 비해, 사설시조는 가객들을 비롯한 중간층 부류의 작자들이 지은 작품이 많으며, 그 내용이나 어법상 서민층에 속하는 사람들에 의해 지어지고 향유된 것으로 보이는 작품도 여러 편 전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대부들이 주로 즐긴 평시조의 세계에 비하여 시정(市井)의 현실적 삶을 주로 표현했다.또 골계미와 해학미를 통하여 현실의 모순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으며, 시정(市井) 생활의 건강함과 발랄함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런가 하면, 일부 양반 사대부들 또한 사설시조 창작에 나서서, 현전하는 사설시조 가운데는 작자가 사대부로 명시된 작품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그 밖에 시적 화자가 여성으로 설정된 작품이 꽤 많다는 것도 주목되는 점이다. 그러나 사설시조를 지을 정도의 수준을 충절을 표현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뉘라셔 가마귀를박효관(朴孝寬)뉘라셔 가마귀를 검고 凶(흉)타 힝돗던고.反哺報恩(반포 보은)이 긔 아니 아름다온가.싶링이 져 싶만 못힝믈 못다 슬허힝노라.[시어, 시구 풀이]뉘라셔 : 누가凶(흉)타 : 흉하다고힝돗던고 : 하였던고反哺報恩(반포 보은) : 다 자란 까마귀 새끼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줌긔 : 그것이싶링이 : 사람이못힝믈 : 못함을못다 : 끝내슬허힝노라 : 슬퍼하노라[전문 풀이]누가 까마귀를 검고 불길한 새라고 하였던고.반포 보은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사람들이 저 까마귀만도 못한 것을 끝내 슬퍼하노라.[핵심 정리]지은이 - 박효관(朴孝寬 1800-1880) 조선 철종-고종 때의 가객. 호는 운애(雲崖). 1876년 그의 제자 안민영과 함께 를 편찬하였고, 풍류객들과 함께 노래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승평계(昇平契)'를 만들었다. 대원군의 총애를 받아 그로부터 '운애(雲崖)'라는 호를 지어 받았으며 에 자작 시조 15수가 전한다.갈래 - 평시조. 단시조. 정형시율격 - 3(4)·4조. 4음보성격 - 경세가(警世歌)제재 - 반포 보은(反哺報恩)주제 - 인간의 불효에 대한 탄식▶ 작품 해설사람들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것을 반포 보은하는 까마귀에 비겨 개탄한 노래이다. 일반적으로 까마귀는 털빛이 검을 뿐 아니라 울음 소리도 흉측하여 '사망(死亡)의 전조(前兆)'로 온 세계에 알려질 만큼 흉조(凶鳥)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까마귀는 어미가 늙으면 먹이를 물어다가 봉양한다[反哺報恩]는 새로 '반포조(反哺鳥)' 또는 '효조(孝鳥)'라고도 불린다. 그러므로 지은이는 불효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까마귀만도 못하다고 통탄하고 있는 것이다.대쵸 볼 불근 골에황희(黃喜)대쵸 볼 불근 골에 밤은 어이 힝드르며,벼 뷘 그르헤 게다 어이 다리다고.술 닉쟈 쳬쟝싶 도라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시어, 시구 풀이]대쵸 볼 : 대추의 볼. 붉게 익은 통통한 대추힝드르며 : 떨어지며뷘 : 벤그르헤 : 그루에술 닉쟈 쳬쟝싶 도라가니 아니 먹고 (승) : 실제로 본 두류산 양단수 승경종장(전,결) : 무릉을 실감케 하는 선경제재 - 두류산주제 - 지리산 양단수의 승경(勝景)을 찬미(讚美)함. 절경에 대한 감탄. 자연에의 귀의(歸依)▶ 작품 해설이 작품은 지리산의 승경(勝景)을 선경(仙境)에 비유하여 찬미하면서, 자연 속에 은거하는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종장의 '무릉'은 '무릉도원'을 뜻하는 말로, 낙원을 가리킨다.지은이가 중국의 죽림 칠현(竹林七賢)을 본받은 산림학파(山林學派)의 한 사람으로, 수차에 걸친 관직에의 부름을 물리치고 지리산의 덕소동(德小洞)에 살며 산천재(山天齋)라 당호(堂號)를 짓고 사색과 연구에 전념하였다.초장에서 지리산 양단수를 정적(靜的) 조화에 감흥하고, 중장에서 맑은 물에 잠겨 있는 산영(山影)을 동적(動的) 조화에서 노래했으며, 종장에서 이 동이정(動而靜)의 승경(勝景)이 바로 무릉도원임을 확인한 것이다.벼슬을 버리고 산 속에 들어가 학문 수업에만 전념한 지은이는, 이 곳 지리산 양단수를 무릉도원에 비유하고 있다. 무릉도원은 동양인들이 동경하는 이상향이다. 또한, 자연 귀의(自然歸依)를 할 수 있는 이상적인 세계, 즉 선경(仙境)인 것이다. 지은이는 그 곳을 지리산에서 찾고, 그 속에서 마음껏 즐긴 것이다.두터비 하리를 물고지은이 미상두터비 하리를 물고 두험 우희 치딪라 안자것넌 山(산) 빛라보니 白松骨(백송골)이 힝잇거다 가슴이 금즉힝여 풀덕 힝여 내딪다가 두험 아래 쟘바지거고모쳐라 다낸 낼승만졍 에헐질 번힝괘라.[시어, 시구 풀이]두터비 : 두꺼비두험 : 두엄치딪라 : 올라가백송골(白松骨) : 날랜 매의 일종. 흰 송골매내딪다가 : 앞으로 뛰어 나가다가쟘바지거고 : 자빠졌구나낼승만졍 : 나이었기 망정이지(다행이지)에헐질 : 멍들. 어혈(瘀血)이 질두터비 하리를 물고 두험 우희 치딪라 안자 : 두꺼비가 파리를 잡음. 양반의 허세(虛勢)것넌 산(山) 빛라보니 - 두험 아래 쟘바지거고 : 백송골에 놀람. 양반들의 무능(無能)모쳐라 - 에헐질 번힝괘라. : 두꺼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