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Missile Defence)의 역사-역사적 추진 배경과 그 전개 과정Missile Defence 란 미사일 방어, 즉 미사일에 대한, 미사일에 의한 방어란 뜻이다.미국의 군사 전략에서 MD는 최근에 갑자기 나타난 발상은 아니다. MD가 언제, 왜 시작되었으며,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는지 알기 위해선 미국과 소련의 핵에 대한 경쟁이 시작되었던 냉전시대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냉전의 시작과 더불어 1960년대 이후 미국과 소련의 초기 핵전략은 주로 장거리 대륙간탄도탄(ICBM: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의 개발과 양적 우위 확보에 집중되었다.당시, 미소 양국은 핵공격 이후에도 서로 상대방의 시민을 확실하게 대량 살상할 수 있는 보복 능력을 갖게 되어 소위 상호 확실 파괴(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 에 의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상태에 접어들게 된다.MAD에 따른 핵균형 상황은 상대방의 보복 능력을 인정하고 시민들을 공격으로부터 취약하게 둘수록 전략적 안정을 이룰 수 있다는 논리로서 MAD라는 상황을 해치는 행위, 예를 들면 미사일 요격 체계를 갖추거나 국민을 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보호체제를 갖추는 일을 금지하였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국민을 적의 핵공격, 또는 보복에 대해 무방비의 인질로 두는 것이 억지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불완전하고 비윤리적인 논리였으며 MAD에 의한 핵억지는 핵보유국들이 합리적 행위자(Rational actor)라는 것을 전제로 해야만 성립하게 된다. 그러나 비합리적 행동에 대한 우려는 당초의 목적대로 미국과 소련의 군비경쟁을 축소시키기는커녕, 핵의 증대로 인한 불안과 엄청난 군비 경쟁을 가져왔다.이러한 상황에서 미. 소 양국은 MAD 논리에 입각하여 1972년 ABM(Anti-ballistic Missile) 조약을 체결하게 되는데 이는 핵균형의 유지를 위해 일국의 국토 전체를 방어하는 미사일 방어 체계는 금지하되 수도와 수도에서 최소한 1,300Km 떨어진 2곳은 미사일 방어 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사실 이 당시 이러한 논리가 받아들여지고, ABM 조약까지 맺어질 수 있었던 이유중의 하나는 미국과 소련의 기술력이 미사일을 방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발달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탄도 미사일을 방어하는 일은 날아가는 탄알을 권총으로 쏴서 떨어뜨려야 할 정도의 고난도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었다.그러나 군사기술의 혁신(RMA: Revolution of Military Affairs)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방어 중심의 전략 사상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특히 최첨단 기술을 가진 미국은 핵의 억지 가 아닌, 상쇄전략 을 채택하여 확실한 핵 보복 능력과 피해를 제한시킬 수 있는 능력을 동시에 갖추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서 미국은 소련과 같은 핵보유국에 대해서도 전략적 우위에 서고자 했었던 것이다.MD의 모체는 레이건 정부 때 추진되었던 전략적 방어 계획(SDI: Strategic Defence Initiative)이지만, 그 이전부터(MAD에 의한 핵억지를 주장하던 시기에도) 탄도 미사일 방어 계획은 존재했다. ABM 조약은 방어를 원하는 상황에서도 기술력의 부족으로 실현되지 못해서 생긴 군비 경쟁을 축소하기 위한 노력의 한 방편에 불과했던 것이다.미국 역사상 최초의 탄도 미사일 방어 계획은 50년대의 나이키-제우스(Nike-Zeus) 계획으로, 지상 100Km 이상의 외기권에서 소규모 핵탄두를 터트려 그 충격으로 비행 중인 미사일을 격파한다는 구상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기술력의 미비로 실행되지 못하였다. 이 계획은 1961년 케네디 정부가 집권하면서 나이키-X(Nike-X) 계획으로 대치되는데, 나이키-X 계획은 더욱 향상된 레이더와 미사일 등으로 나이키-제우스 계획보다 한 단계 진일보한 구상이었다. 뒤이어 1976년에 나온 존슨 정부의 센티널(Sentinel) 계획은 소련의 대규모 핵공격에 대한 방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방어의 초점을 미국의 주요 도시로 국한시켜 탄도 미사일 방어 우산을 확보한다는 것이었다. 닉슨 정부에 이르러서는 방어의 초점이 주요 도시에서 군사시설로 옮긴 세이프 가드(Safeguard) 로 바뀐다. 소련 역시 1960년대부터 갈로쉬(Galosh) 방공방 체제를 모스크바 근교에 배치하여 운영해 왔지만 미국과 마찬가지로 대량적 핵공격에 취약했다. 이처럼 전략무기의 개량과 요격체제 개발에 대한 경쟁이 심화되면서 미국과 소련은 양국의 군비경쟁 조절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ABM 조약을 맺게 된 것이다. ABM 조약은 미소 양국 간의 군비 제한 노력 중 가장 가시적인 것이었다.그러나 이 때의 전략적 균형과 안정은 소련이 다탄두탄(MIRV) 체제를 도입하면서 깨지게 되고, 이후 레이건 정부는 1983년에 전략적 방어 계획, 소위 별들의 전쟁(Star Wars)" 계획을 발표하게 된다. SDI의 핵심은 SBI(Space-based interceptor) 혹은 빛나는 조약돌(Brilliant Pebbles) 로 불리 우는 요격체계로, 우주 공간에 각각 열 개의 충돌파괴(Hit-to-Kill) 요격 장치를 실은 큰 창고 모양의 위성 300개를 배치하고 소련의 다탄두 미사일 공격이 있을 경우에 이 중 상당수를 부스트(초기 동력 비행 단계)에서 제거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SDI 계획 역시 SBI의 크기가 너무 커서 소련의 위성파괴 무기에 표적이 되기 쉽고,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레이건은 당시 이번 세기(20세기)가 끝나기 전에 이 엄청난 임무(탄도 미사일 방어)가 실현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고 우려했고 이러한 레이건의 우려를 증명이라도 하듯 미국의 스타 워즈 구상은 700억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쏟아 붓고도 20세기가 지난 아직까지 그림의 떡으로 보인다. SDI는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장기적 과제로 소련을 군비 경쟁으로 이끌어 들여 자원고갈을 통해 붕괴시키려는 정치적 측면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뒤이은 냉전의 종식은 전략 방어 계획 자체의 명분을 약화시켰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탄도 미사일 확산에 따른 소규모 공격 가능성과 구소련 지역의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한 우발적 탄도 미사일의 사용 가능성을 이유로 제한된 형태의 탄도 미사일 방어 체계에 대한 필요성을 주장하며 제한적 전략핵공격에 대한 전면방어(GPALS: Global Protection Against Limited Strike) 구상을 추진했다. 냉전의 종식은 향후 미사일 위협이 소련 중심의 대규모가 아니라 제한된 범위의 것이 되리라는 것을 예고했고 1991년의 걸프전이 이를 증명하였다. 걸프전은 탄도 미사일 방어에서 최초로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과 미국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방어 체제간의 실전 사례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GPALS 구상의 첫 단계는 사고 또는 무허가의, 혹은 한정적인 탄도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미국 본토 뿐만이 아니라 미군, 동맹국, 우호국을 방위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으로 지상배치 국가미사일방어(NMD), 지상배치 전역미사일방어(TMD), 우주배치 지구방어(Global Defence) 등 세 가지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클린턴 행정부에 들어서도 한정된 공격에 대비하려는 방어의 중점은 이어져서 기존의 전략 방어 계획 기구(SDIO)를 탄도 미사일 방어 기구(BMDO)로 개편하고 본격적인 미사일 방어 체계의 구축에 돌입한다. 클린턴 집권 1기에는 미국 본토 방어보다는 미국의 동맹국들과 해외 주둔 미군을 보호할 목적으로 TMD에 강조를 두었다. 그러나 1994년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하자 NMD계획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깅그리치 혁명 의 주역인 뉴트 깅그리치 미 하원 의원은 동료인 딕 아메이와 함께 미국과의 계약 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여 정부에게 새롭고 효과적인 NMD 개발에 착수하라 고 요구했다. 이러한 압력에 밀려 클린턴 정부는 NMD배치 노력을 재개하기로 하고 1996년 이른바 3+3 계획 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3년 간의 연구 개발을 걸쳐 3년 후에 배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계획 역시 기술적인 준비 부족으로 연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클린턴 행정부의 NMD 계획은 1998년 7월 럼스펠트 위원회가 탄도 미사일 위협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 보고서는 이전의 미 정보 기관이 있을 수도 있는 위협 에 초점을 맞춘 것과는 달리 북한이나 이란의 잠재적인 위협 을 강조하였고 보고서 발표 한 달 뒤 북한이 3단계 미사일인 대포동 1호를 발사함에 따라 북한의 미사일 위협론 은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되고 NMD 계획은 정당화되기에 이르렀다. 1999년 1월 클린턴 대통령은 NMD 추진의 기준 4가지를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MD(MISSILE DEFENSE)의 문제점.미국 부시정부의 출범과 함께 추진된 NMD는 현재 전세계 국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미국이 말하듯 불량 국가들에 의한 WMD의 위협으로부터 미국 본토와 해외 주둔 미군을 보호하기 위한 대응방안으로서 MD계획을 채택하게 되었고 이 정책으로 인해 각국의 입장이 달라지면서 여론이 형성되었고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나서는 국가들과의 마찰로 인해 더욱 문제가 붉어지게 되었다.이렇게 MD체제 구축에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나서는 나라들이 제시하고 있는 MD의 문제점은 크게 다음과 같이 추려볼 수 있다.1. 기술적인 문제.여기서 말하고 있는 기술적인 문제라는 것은 개발속도와 예산상이 아닌 단순한 기술 자체의 문제를 뜻하는 것으로, 즉 기술적인 문제로 결정이 지연될 수 있지만 관련기술 개발속도와 예산상의 뒷받침을 볼 때 결정자체를 제약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여러 개의 모조탄두와 섞여서 초속 7km로 날아오는 핵탄두를 정확히 가려서 요격하기 위해서는 고도로 발달된 레이더 탐지장치 및 NMD구성요소들간의 완벽한 조율을 위한 총체적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아무리 방어측에 유리하게 가정한다 하더라도 현대 과학기술의 22성격상 공격측이 방어기술을 회피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현재의 NMD 구상에서 공격측이 방어측의 요격 미사일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중 가장 간단하고도 쉬운 방법은 진짜 핵탄두와 함께 여러 개의 모조탄두를 사용하는 것이다. 다탄두탄은 실제 핵탄두를 보통 10개 이상의 모조탄두 속에 섞어 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탄두와 모조탄두가 육안으로나 레이더 상으로 구별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을 가려내어 정확히 요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즉 2000년 7월까지 세 차례의 요격 실험을 실시하였지만 그중 성공한 것은 한번에 불과했다.2. NMD가 내포하는 정치적 동기와 목적에 관해서도 문제시하고 있다.NMD가 과연 위협에 최적의 대응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은 NMD가 러시아와 중국 등 기존 핵국들의 착오나 우발적 핵공격에 대한 대비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임무는 북한 이란 이라크등 소위 불량국가들의 대륙간탄도탄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방어하는 데 있다는 것을 누누히 강조 해왔다. 그러나 많은 분석가들은 이것이 실상은 구실에 불과하고 북한이나 이라크의 빈약한 핵능력 때문에 NMD를 강행한다는 것은 마치 파리를 잡기 위해 대포 동원하는 꼴이라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미국은 검증되지도 않고 신뢰할 수도 없는 체제를 강행 하기 위해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북한으로부터의 미사일 위협을 과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3. 한반도의 평화와 직결된 문제.한반도 문제의 국제적 성격에 있어서 스타워즈 구상과 한반도 평화는 양립 불가능하다고 바바라보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첫 번째 위험성은 BMD가 한반도 분단과 전쟁 그리고 적대적 대립 관계의 구조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적인 수준의 냉전구조를 불러오고 있다는 점이다. 냉전 해체이후에도 여전히 강력한 동맹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미일 한미 동맹에 대해 동아시아 구사회주의 동맹국인 북한 중국 러시아는 경계의 눈빛을 보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미국이 NMD와 승FMF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이들 국가의 반발은 동맹체제의 부분적인 복원으로 나타나고 있다. 부시 행정부 출범이후 북한 중국 러시아간의 외교적 접촉이 활발해지고 있는 모습은 이러한 전망이 결코 기우가 아니하는 점을 반증한다.두 번째는 외교적 문제해결 노력과 군사적 긴장관계간의 충돌로 대북포용정책이 교착상태에 빠질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 방어망 구상이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대립구조 극복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전망은 두 가지 근거에 기초한다. 하나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NMD TMD 가 북한의 안보 딜레마를 더욱 심화기킴으로서 남북한 및 북미간의 군축협상을 더욱 까다롭게 만들 것이다.4. 국가 미사일 방어의 문제는 세계전략적 차원에서 그것이 미래의 협력보다는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점이다.특히 지난 반세기 동안 강대국간 전략적 안정의 기반이 되어왔다고 평가되는 ABM조약과의 상층이 불가피하다.ABM조약 제1조는 전국 규모의 탄도탄 방어망을 형성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제3조에서는 미국과 소련 모두 두 곳에 ABM사이트를 유지하되 한곳은 수도권 반경 150KM아내에 그리고 다른 한곳은 각자가 지정하는 ICBM사이트 반경 150KM이내에 설치하도록 슈정하고 각 사이트에 배치할 수 있는 요격 미사일 수를 최대 100기로 제한하고 있다.1974년의 후속 협정은 이를 더욱 줄여 하나의 사이트 최대 100기의 요격미사일로 제한하였다. 제5조는 해상배치 공중배치 우주배치 그리고 지상 이동식 탄도탄요격미사일 발사대 및 레이다의 개발 실험 배치를 금지하고 있다. 미국이 구상하고있는 NMD는 이상의 조항 거의 모드에 위배된다.MD체제에 대한 주요국들의 반응미국의 NMD 추진은 중국 러시아 뿐만 아니라 NATO동맹국들로부터도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은 NMD구상이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일부 우려국가들의 미사일 공격을 방어하는 매우 제한적인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러시아러시아는 NMD계획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것이 추진될 경우 미국과의 군축협정을 파기하고 중거리 미사일을 재배치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중국 북한과의 정사회담을 통해 반NMD연대를 모색하고 있다.러시아는 20-100기 정도의 요격미사일에 의한 제한적 NMD능력이 당장 미구과 러시아 간 전략 균형을 해칠 것으로는 보지 않을 것이나 지난 6월 미 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는 전략환경 변화에 맞게 ABM조약을 수정하는 것에 반대하면서도 협의를 지속가하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자료 1.미 행정부가 모든 미 대사관에 보낸 MD 대책 문서에 의한 부시 행정부의 MD 정책.- MD 정책의 원칙적 방향1. 미국은 상호파괴와(MAD)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을 넘어선 새로운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자 한다. 세계는 근본적으로 변해왔고, 냉전 시대형 질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러시아와의 새로운 전략적 토대를 요구하고자 한다.1) ABM 조약은 냉전 시대에 존재해 왔던 두 강대국 사이에 적대적인 관계에 기초해서 작성된 것이다. 이것은 상호간의 불신과 취약성의 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다.2) 우리는 러시아와 상호 확증 파괴 개념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소련이 아니며 따라서 적이 아니다. 대러 관계의 중심에 상호 확증 파괴 전략을 계속 고수하는 것은 상호 불신을 영속화하고 대량의 핵무기 보유를 부채질한다. 핵무기는 더 이상 우리(미, 러) 관계의 주통화(principal currency, 양자 사이의 핵심적인 매개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2. 오늘날,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포괄적인 전략의 한 부분으로서 우리는 새로운 개념의 억지력(deterence)이 필요하다. 오늘날 대부분의 긴급한 위협은 수천 기의 소비에트 미사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량 살상 무기로 등장한 깡패 국가들의 손에 있는 소수의 미사일에서 유래한다.1) 오늘날 주된 위협은 우리가 냉전 시대에 생각했던 상대방의 무장을 파괴하는 선제 공격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테러. 강요. 억압에 목적을 둔 깡패 국가들에 의한 장거리 미사일 사용에 있다.2) 이들 국가들은 또한 해외 배치 미군, 동맹국 및 우방국들에 심각한 위협을 제기하고 있는 중단거리 미사일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3) 이들 국가들의 지도자들은 우리가 사활적인 이해가 걸려 있는 지역에의 우리의 우방국과 동맹국을 돕기 위해 접근하고 있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량 살상 무기 및 장거리 미사일을 획득하고 있다고 말해 왔고, 또 흥망을 건 도박을 할 의사가 있음을 증명해 왔다.4)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우리는 공격과 방어 모두에서 더욱 향상된 억지력을 필요로 한다. MD는 가공할 보복 능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한 줌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현재의 억지력과 보장 정책(insurance policy)을 새로운 차원에서 강화하는 것이다. MD는 또한 대량 살상 무기와 탄도 미사일을 획득하고 사용하려는 국가들의 의지를 꺾고 억지 하려는 전략의 한 요소이다.3. 미국은 변화된 안보 환경에 비추어 우리의 억지력과 방어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미국은 제한적이지만, 효과적인 MD를 배치하기 위해 가장 유망한 기술과 기지 양식을 추구하기 위해 ABM 조약의 제약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1) ABM 조약은 명시적으로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우리의 전 국토를 방어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는 단지 노스다코타의 미사일 기지를 방어하는 것만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2) 이 조약은 해상, 공중, 우주, 이동식 요격 체제의 개발, 실험, 배치를 금지하고 있다.3) 이 조약은 비탄도 미사일 요격 체제(non-ABM: 중단거리 미사일용 요격 체제를 말함)에게 탄도 미사일 요격 능력을 부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즉, 장거리 전략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전역 방어'의 개발, 실험, 배치를 금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조약은 항공기 탑재 레이저(Airborne Laser, ABL)가 북한의 노동 미사일과 같은 중단거리 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으나, ABL이 미국 본토 공격 능력을 입증한 대포동 미사일과 같은 장거리 미사일을 요격하는 능력을 보유한다면 금지되는 것이다.4) 또한 이 조약은 우리가 동맹국들은 물론 심지어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장거리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미사일 방어 체제를 만들고 공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4. 우리 정부는 미국 본토, 해외 주둔 미군, 그리고 동맹국과 우방국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빨리 제한적이지만 효과적인 MD를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기 위한 강력한 MD RDT&E(Research, Development, Test and Engineering, 연구 개발 실험 평가) 프로그램을 추구할 것이다.1) 회계 연도 2002년에 반영된 MD 실험은 클린턴 행정부 때 추진된 프로그램을 수정하는 첫 번째 조치를 제공하고 있다. 클린턴 때 추진된 프로그램은 ABM 조약의 제약을 받음으로써 가장 유망한 기술과 기지 배치 양식의 많은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2) 우리는 장거리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공중 및 해상 배치 MD를 비롯해 다른 기술 및 기지 배치 양식의 추가적인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 이미 우리의 동맹국들 및 러시아에 통보한 것처럼, 이러한 실험은 몇 달 안에 ABM 조약과 충돌하게 될 것이다.3) 우리는 ABM 조약을 넘어서는 실험만을 수행할 어떠한 의도도 없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ABM 조약 한도 내에 머무르거나 이에 순응하는 실험만을 계획할 의도도 없다.4) 이미 부시 대통령이 암시했듯이 우리는 RDT&E의 결과에 따라 무엇이 효과적이고 무엇이 그렇지 못한 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결과에 따라 가장 빨리 진행되고 가장 유망한 결과로 보인 미사일 방어 체제 시스템에 주안점을 두고 예산을 투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