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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햄릿을 읽고서
    을 읽고서.햄릿은 초등학교 때부터 책꽂이에 꽂혀있던 기억이 난다. 어려서 읽었던 책이라 유명한 작품인지도 뭐가 재미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읽었었다.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였기에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햄릿만은 포기하지 않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그리고 중, 고등학교에 와서야 그렇게 유명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번 과목을 통해서 다시 한번 접하게 되었다.우선 햄릿이라는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의 생애에 대해 알아보고 작품의 분석과 나의 생각을 기술하고자 한다.1.셰익스피어의 생애잉글랜드의 중부지방 유서 깊은 워릭성 남쪽 외곽에 있는 소읍 {스트라트포드-어폰-에이번에서 중상류 상공인의 아들로 태어난 셰익스피어의 출생년도는 1564년인데, 세례 받은 날이 4월 26일로만 문헌상에 남아 있을 뿐이므로 당시의 관례로 미루어 4월 23일을 출생일로 추정하여 기념한다. 4살 때에 아버지가 읍장을 지내기도 했으니 어린시절은 구김살 없이 보낸듯하고 스트라포드 그래머스쿨(grammar school)에 다닐 수 있는 행운도 누렸다. 14살 때부터 가세가 기울어 대학진학은 포기해야했으나 당대 교육기관으로서는 특수층 자제만이 다닐 수 있는 그래머 스쿨에서 라틴어를 익혀 서양의 고전을 섭렵할 능력을 갖춘 것만도 그의 천재성을 싹틔우는데 큰 몫을 했다.18세 때 8세 연상의 여인 헤서웨이와 결혼하여 딸을 낳고, 곧 이어 쌍둥이 남매를 낳게 되지만 아내와 다정한 삶을 누린 흔적은 없고, 그 후 런던의 극장에서 허드레 일꾼으로 출발하기까지 의 8년간의 행적에서 시골학교 교사, 귀족의 심부름꾼 등으로 전전하며 방황한 삶의 흔적이 있다. 30 세가 된 1594년부터 의전장관 극단에 소속되어 극작가로서 승승장구할 계기를 맞게된다. 그 후 20여년간 전속극작가 겸 극단 공동경영자로, 때로는 무대에서 직접 배역까지 맡았는데, 이 동안에 40여 편의 희곡과 시집을 펴냈다. 가세가 기운 후 신분 격하된 아버지를 신분 상승시키려고 가쇄(가문의 인장)사용허가를 당국에서 얻어내기도 하고, 쌍둥이로 태어난 외동아들 의 죽음이라는 슬픔도 딛고 일어서 나머지 자녀들을 고향에 안주시켜 뒷날 자기가 은퇴하여 합세 한 일 등으로 보아 생활인으로서 착실함이 엿보인다.성공적인 극작활동으로 모은 상당한 재산을 착실히 관리하였는데 재산관계의 소송에서 관대하게 대처하여 재산상의 손해를 감수하며 명예를 지키려 애쓴 일도 있고, 거액의 돈을 빌려달라는 궁한 친구의 간청도 뿌리치지 않아 후일에 양가 자손들이 혼사를 맺은 미담도 남긴다. 생이 끝나기 한달전에 작성한 유언장에 유산에 대한 세목을 작성했는데, 대부분의 재산을 맏딸에게서 난 외손자에게 물려주고, 아내에게는 자기 소유의 침대 중에서도 두번째로 좋은 것만 물려준다고 명기하여 구구한 해석을 낳게 했다. 62세 때인 1616년에 타계했는데 그 날짜가 묘하게도 생일과 같은 날인 4월 23일 이었다대부분의 걸출한 문호들의 천재성이 먼 훗날에야 인정받아 발굴 작업이 뒤늦게 시작되는데, 셰익스피어는 생전에 발군의 성가를 누렸고, 사후에도 극장 폐쇄령이 내린 1642년까지 그의 극이 무대에서 공연열기를 더해 갔으니 성가는 생존시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그의 천재성을 일찍부터 인정한 동시대의 극작가이자 평론가 벤 존슨(Ben Jonson)이 문학이론의 바탕 위에서 셰익스피어의 진가를 논하여 널리 알렸다. 이에 힘입어 극장 폐쇄령으로 지하에 묻혀버릴 뻔한 보석이 영원히 보존될 수 있었으니, 이는 작가에게 뿐 아니라 온 인류에게 다행스런 일이다..햄릿 연혁.영국의 극작가. 시인18세 때 8세 연상의 앤 해더웨이와 결혼23세 때 런던의 어느 극단에 가입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음29세 때 초연30세 때 초연32세 때 초연34세 때 초연35세 때 초연36세 때 초연이후 , , , 상연2. 햄릿 작품분석.등장 인물클로디어스 : 덴마크 왕햄릿 : 선왕의 왕자, 현재 왕의 조카폴로니어 : 재상. 오필리어의 아버지호레이쇼 : 햄릿의 친구레어티즈 : 플로니어의 아들, 오필리어의 오빠볼티먼드, 코닐리어스 : 노르웨이로 파견되는 사절로젠크랜스, 길덴스턴 : 햄릿의 동창오즈릭 : 경박스러운 멋장이 귀족신사마셀러스, 바나도, 프란시스코 : 망을 보는 군인사제레날도 : 플로니어스의 하인배우 몇 사람광대 두 사람 : 무덤을 파는 인부포틴브라스 : 노르웨이의 왕자노르웨이 부대장영국 사절들거트루드 : 덴마크 왕비, 햄릿의 어머니오필리어 : 플로니어스의 딸, 햄릿을 사랑함그밖에 궁정 신하, 귀부인, 병사, 선원, 사자, 시종, 햄릿 아버지의 유령 등.줄거리엘시노어 궁전의 망대에 선왕의 유령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햄릿에게 이 사실을 알리러 간다. 선왕이 승하하신지 한 달도 못되어 어머니 거투르드가 숙부와 결혼한 것을 햄릿은 슬퍼한다. 선왕의 혼령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은 햄릿은 혼령을 만나 보기로 결정한다. 폴로니어와 레어티즈는 오필리어에게 햄릿과의 사이를 조심하라고 충고한다.망대에 나간 햄릿은 선왕의 유령을 만나 선왕이 독살당하게된 경위를 알게되고 복수할 것을 다짐한다.햄릿은 실성한 척하며 오필리어의 집에 나타나고 폴로니어는 햄릿이 상사병으로 미쳤다고 생각한다. 햄릿의 실성한 행동은 계속되고 왕은 햄릿의 어릴적 친구를 보내 그의 마음을 알아보게 한다. 연극단이 궁전으로 찾아오고 햄릿은 숙부가 선왕을 암살하는 내용으로 연극을 공연할 계획을 세운다.폴로니어와 왕은 햄릿이 실성한 원인을 알고자 오필리어아 대면을 시키나 원인을 파악하는데 실패한다. 왕은 햄릿을 영국으로 보내려 하고 폴로니어는 왕비로 하여금 실성한 원인을 알아보도록 할 것을 권한다. 연극이 시작되고 왕은 사색이 되어 자리를 뜬다. 햄릿은 숙부의 죄를 확신하게 되고 어머니의 부름에 응한다. 어머니께 가던 도중 햄릿은 숙부를 죽일 기회를 맞으나 망설이며 죽이지 못한다. 어머니 앞에 간 햄릿은 대화를 엿듣고 있던 폴로니어를 죽이고 어머니의 부정을 책망한다. 왕비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햄릿은 영국으로 떠나게 되었음을 알린다.왕은 햄릿을 영국으로 떠나보내고 영국 왕으로 하여금 햄릿을 죽이도록 하는 계획을 세운다. 폴란드를 치러가는 노르웨이 군대를 만난 햄릿은 복수의 결의를 다진다. 오필리어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실성하고 레어티즈는 복수를 하려 한다. 햄릿이 돌아온다는 전갈을 받은 왕은 레어티즈와 햄릿에게 검술 시합을 시켜 독 바른 칼로 햄릿을 죽이려 한다.덴마크에 돌아온 햄릿은 오필리어의 장례식을 발견하고 레어티즈와 무덤 속에서 싸우게 되지만 왕이 싸움을 말린다. 검술 시합이 열리고 햄릿은 레어티즈의 독바른 칼에 맞는다. 혼전 중 칼을 바꿔 쥐게 되고 레어티즈 또한 검을 맞아 독이 퍼지게 된다. 여왕은 독배를 마시고 죽고 레어티즈는 왕의 음모를 폭로한다. 햄릿은 숙부를 단칼에 죽이고 자신 또한 절명한다.3. 감상문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대중적이고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에 햄릿을 읽으면서 햄릿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괴테, 슐레겔, 코울리지, 투르게네프 등 많은 이들이 햄릿의 성격에 대해 평하고 있는데, 투르게네프는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세익스피어는 많은 점에서 자기 자신과 유사한 햄릿이란 인물을 창조함에 있어 그를 자기 자신과 완 전히 분리시켜 천부적인 창조력을 자유자재로 발휘한 결과 그 불명확성으로 인해 영원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는 햄릿이라는 형상을 창조해 냈던 것이다. 이 형상을 창조해낸 영혼은 북부인의 영혼이며, 반성과 분석의 영혼이며, 고통스럽고 음울하며 조화와 밝은 색채를 상실한 영혼이며 우아하고 때로는 섬 세하기조차한 외형을 한 결코 원만하지 않은 영혼이다."
    인문/어학| 2003.06.17| 4페이지| 1,000원| 조회(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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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 건축과 미술 평가A좋아요
    건축과미술1. 건축과 미술의 관계건축과 미술은 뗄래야 뗄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건축사조와 미술사조는 공생공존한 것을 볼수가 있다. 그래서 건축을 이해하고 보는 것만큼이나 미술사조를 보고 이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할수 있다.2. 시대적 분류그림고전미술 르네상스 로코코 낭만주의 입체파중세미술 바로크 신고전주의 인상파 현대미술르네상스(Re-nessance) 시대1. 개념/시대르네상스라는 의미는 다시 태어남, 재생이라는 의미이고, 르네상스는 신중심의 기독교 세계에서 벗어나 그리스/ 로마의 고전시대로 되돌아가자는 움직임이다.르네상스는 이태리의 피렌체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그 원인중의 하나는 '메디치가'의 영향이 있다. 당시 메디치가의 재력을 바탕으로 건축, 회화, 조각등에 뛰어난 사람들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2. 회화원근법 적용- 그리스/ 로마시대에도 원근감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으나 표현하지 못했으며, 중 세시대에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장식적이고 평면적인 그립들이 많이 그려지게 됨에 따라 오히려 원근법적 표현은 활성화 되지 못했다.- 르네상스시대에 접어 들면서 정확하게 묘사하려는 시도가 활발해져 원근법에 이한 투시 도 기법의 체계가 수학적으로 이론화 되었다.이상화된 인간- 누드화, 초상화의 등장- 중세시대에 성경속의 인물이나 신화속의 내용이 주로 그려진 것에 비하면 대단한 혁신이 었다. 기독교의 세력이 점차 줄어 들면서 화가도 생활방식을 단지 바꾼것 뿐이다. 즉, 주 문자가 바뀌기 때문에 자연이 주문하는 것도 다르다는 것이다.3. 건축르네상스 건축과 회화는 비례를 중시하였다. 그리스 시대와 마찬가지로 전체비례를 미의 규준척도로 삼았으며 인체를 정사각형과 원의 형태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비트르비우스/ 레오나르도 다빈치건축물의 해석- 르네상스 건축은 그리스/ 로마의 기둥 아치, 박공등과 같은 요소(고전적 모티브)들을 적절 히 사용하였으며 비례와 조화를 중시함.- 입면에 정원아치.- 입면의 정중진주"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유래하였다.불규칙, 좌우대칭의 정적인 대한 동적인 것바로크 시대는 강력하고 절대적인 왕권을 지닌 절대군주가 등장하여 권력이 왕권에 집중되던 시기다. 따라서 바로크 예술의 목적은 엄격한 권력을 상징화하려는 것이었고, 이에 따라서 바로크 건축은 역동성과 거대한 규모의 기념성을 지닌다.2. 회화사선구도(동작 구성) - 원근법에 의한 좌우 대칭의 정적인 구도의 르네상스 회화와는 달리 바로크 회화는 사선구도에 의한 동적 표현을 보여준다. 바로크회화 가 역동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사선구도에 힘입은 것이다.강한 명암 대비 - 르네상스회화에 등장하는 사물과 사람들이 모두 균일한 빛을 받는데 비 해서 바로크 회화는 일정한 방향성을 지는 조명에 의해 주제의 집중도를 높이고 보다 사실적인 양감을 부여하고 있다.3. 건축- 르네상스 건축에 비해 곡선이나 곡면을 과용하게 사용하며 장식적인 부조난 조각물들이 건물 전면에 화려하게 장식된다.- 로코코와는 로코코는 외부는 단순하지만 내부공간이 지나치게 화려하다.로코코 시대1. 개념/ 시대18세기 초에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까지. - 프랑스 섭정 시대및 루이 15세시대바로크가 장중하고 격동적인것에 반해 로코코는 섬세하고 우아하고 경쾌하다.로코코회회의 특징은 장식화로서의 기능이 두드러진다.여기에서 싸롱문화가 등장한다.2. 건축웅장하고 화려한 궁전과 교회의 내부와 외부 의장에서 그 특징이 뚜렷했던 바로크에 비해 로코코의 특징은 아기자기한 실내장식이 특징.바로크가 권위적이고 대규모의 위용을 자랑한데 비해 로코코는 도시의 호텔과 시외 작은 궁전이 선호되었고 객실도 주거용을 중시한 소규모로 만들어짐.로코코건축은 프랑스에서 시작하였으며 베르사이유궁과 같은 대표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음.벽면의 장식으로는 화려하면서도 부드러운 내용의 부조로 장식되었으며,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경쾌하고 편안한 공간을 형성함.신 고전주의(Neo - Classicism) 시대1. 개념신 고전주의는 바로크의 과장된 표현과 로코코의 지나친 식을 따르려는 일체의 예술경향.- 신 고전주의는 다시 고전주의로 회귀하려는 17/ 8 세기 유럽 정역에 걸쳐 전개되었던 특 정한 역사적 현상으로서 예술사조를 가르킨다.- 질서와 조화를 추구, 단정한 형식, 엄격한 구성을 중요시.2. 회화신 고전주의의대표적인 화가 다비드는 프랑스 혁명이 전부터 일련의 고대사와 관련된 작품을 그려서 신 고전주의 양식을 확립.다비드 - 직선을 주제로 한 정적이고 부조처럼 전개되는 구도, 명확한 윤곽선을 지닌 조각 적 인체, 주제에 담긴 도덕적 메시지등.앵그르 - 신 고전주의 전통 뿐 아니라 낭만주의 요소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오달리스크' 에서 보여지는 이국적인 취향의 주제는 사실 낭만주의으특징이다. 그리고, 그는 소 묘 우위론을 말하고 있지만, 그의 그림에서 볼수 있는 이국적 서정성과 관능성에 서 개인의 감성에 중점을 둔 그의 제작 태도를 짐작할수 있다.3. 건축18세기말 프랑스대혁명 이후 19세기초에 이르는 시기는 시민사회가 전개되는 시기다.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영광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질서와 장엄함을 지닌 신고전주의 건축이 권위를 표현하는데 가장 적절하였다.- 국회의상당, 개선문, 판데온, 박물관수학적인 비례에 충실하며 좌우대칭의 정적인 구성.열주, 아치, 오더, 페디먼트, 엔타불레츄어기단, 몸체, 지붕이 명확히 존재하는 3부구성낭만주의(Romanticism) 시대1. 개념/ 시대신고전주의가 르네상스의 부활이라고 한다면 낭만주의는 바로크의 부활이다.낭만주의는 양식의 문제보다 내면적인 것, 심리적인 것에 의해서 구분짓는 주의 주장.보편적 이성보다는 개성을, 개성 보다는 감성을 중시하였다.낭만주의는 형식적으로는 바로크이나 내용은 상상, 개성, 감성의 표출이었다.자유로 향한 몸부린, 항거할수 없는 거대한 힘, 자연, 사랑, 격정등과 함께 기괴한, 무시무시함, 공포와 불안까지도 밖으로 드러냄으러서 소재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냄.2. 건축고전건축에 비해 형태의 자율성이 강조질서의 격식에서 이탈된 비격식의 형 인간은 자연속에 융화, 자연적인 형상을 닮음.4. 고전적 경향과 낭만적 경향의 비교분석구분고전적 경향낭만적 경향디자인 경향형식적, 합리적-비례, 대칭, 질서, 단순성자율적, 주관적, 개성적 - 자유분방연 상 감 각정적, 차분함, 장엄함, 이지적- 로고스(LOGOS) ; 아폴론적동적, 불안정성, 감정적, 연상적- 패토스(PATOS) ; 디오니소스적시대적 규범그리스,로마 예술르네상스 예술바로크 예술-19세기 낭만주의사실주의/ 자연주의/ 바르비죵파 시대1.사실주의개념 - 눈에 보이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그리려는 움직임으로 감정이나 상상력을 강조하는 낭만주의에 반발하여 나타남.대표 화가 - 쿠르베 : 종교적, 신화적 배경이나 역사화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이제까지는 비 속하고 추한 것이라고 생가되어 온 주제를 포함하여 눈에 보이는 일상의 세계 를 있는 그대로 그림.-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향.2. 자연주의풍경화의 등장 - 자연풍경이 주제를 장식하는 종속물에서 주체로 화면을 점유하기 시작.동양과 서양의 차이 - 동양은 일찌기 자연을 주제로 그렸지만, 서양에서는 기껏해야 주제의 배경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이시기부터 본격적으로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3. 바르비죵 파프랑스 - 파리근교 뽕텐블루 숲지대의 작은 마을인 바르비죵에 모여 살았던 밀레와 코로등 화가들에 의해 시작.과거 역사풍경화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순수한 자연을 주제로 하여 자연속에 파묻 혀 사는 농민들의 삶을 표현.영국-콘스타블 ; 낭만주의의 공상의 비약을 비난하면서 풍경화는 눈으로 보이는 사실 그대 로의 것을 순수하게 담아내는 것이라며 영국 근교의 풍경들을 그림.터너 ; 근대 풍경의 선구자. 격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소용돌이 치는 듯한 구도로 잡아 내어 자연에 묻히는 인간의 왜소함, 증기선이나 기관차처럼 미려드는 근대화들 을 서사적인 정서와 함께 표현.세기말의 상징주의와 아르누보1. 세기말 현상19세기말에 들어서면 환락과 퇴폐 분위기가 뒤섞인 독특한 세기말적 풍조를 낳는다. 그것은 19세기를 풍미 했던 과학만능주의와 분난 움직임으로 19세기 말 예술 전 분야에 확산된 운도이며 물질주의, 공리주의등에 대한 개인의 내면적 반항.3. 아르누보(1). 아루누보의 발생배경아루누보의 발생배경을 보면 당시 아루누보는 역사주의와 근대주의의 사이에서 발생된 것으로 기존의 건축은 귀족중심의 건축성향을 보이던 것이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대량생산으로 제품의 외관과 예술성의 결여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다. 세기말이라는 사회적불안으로 인하여 점차 계급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산업혁명으로 부상한 부르조아계급들이 주 건축주로 등장하게 되었고, 최초 아루누보 건축가들은 기존의 틀을 벗어나려 건축주를 부르조아로 삼게 되었고, 이로 하여금 새로운 건축. 즉, 아르누보가 생기게 된것이다.또한, 아르누보 이전의 '미술 수공예 운동(Art & Crafts Movement)'이 아르누보의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새로운 재료(철, 유리, 세라믹타일, 알루미늄)개발과 구조적 기술의 발달로 표현상의 자유를 얻었으며 이 새로운 재료를 가지고 아르누보라는 건축양식을 표현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재료를 쓰기 위해 쓴것이 아니라 신재료가 아르누보 양식을 표현하기 가장 좋은 재료이기에 그것을 쓴것이다.(2). 아르누보 건축양식의 특징아르누보의 건축에서 주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선형어휘(소용돌이 치는 곡선, 자연의 곡선, 동식물의 선 등...)를 기본매개로 하여 소용돌이 치는 모양과 일상적인 주제. 또한 작가의 꿈과 환상을 표현하기 위해 이용되었는데 이 선형어휘라는 것은 인상파 화가들이 종전에 사용되던 인상파 그림들의 표현기법으로는 부족하여 선형어휘라는 방법으로 사용하면서 이것이 시대전반적으로 확산되면서 건축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러한 곡선과 입면성을 주로 사용함으로써 대칭에 의한 균형보다는 비대칭에 의한 균형을 추구하였고 이런장식들을 단순히 사용한 것이 아니라 벽, 바닥, 난간등이 연속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모든 면이 하나의 면으로 보이는 2차원적인 평면성을 가지는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철을
    공학/기술| 2002.12.12| 8페이지| 1,000원| 조회(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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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 그리스 건축문화와 그 의의 평가B괜찮아요
    그리스 건축문화와 그 의의1. 그리스 시대의 특성유럽 남동부 동지중해의 발칸 반도 남동부에 위치한 그리스는 유럽 문화의 발상지로서 B.C 1200년부터 약 1500여년동안 아테네를 중심으로 그리스 문화를 형성하였다. 기후는 온난하나 땅이 기름지지 못하고 강우량이 적어 농경으로는 부적합하다. 주로 밀, 포 도, 올리브 등을 재배한다. 국토가 수 많은 협곡과 산에 둘러싸인 분지들과 복잡한 해안선으로 구성되어있다. 중앙집권체제가 불가능하였으므로 도시 국가가 발달하고 민주적 공동체 생활을 영위했다. 자연과 도시 국가의 수호신을 숭배하였다. 신들은 인격을 가진 인격체로 인정하였다. 자유로운 철학 사상이 발달하였고, 영웅이나 예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와 같이 일상 생활과 밀접한 인물이나 신을 숭배하였다.그리스 도시국가를 형성한 두 개의 종족은 먼저 주로 본토에 정착했던 도리아인과 다른 하나는 에게해의 여러 섬들 과 소아시아 연안에 살며 고대 근동과 교역을 했던 이오니아인이었다.그리스 시대는 크게 알카익 시대 (Homeric Period or Archaic Period: BC1200-BC480),클래식 시대 (Classic Period : BC480 -BC336),헬레니스틱 시대 (Hellenistic Period : BC336-AD146) 등 세시대로 구분된다.(1). 알카익 시대알카익 시대는 도시국가 성립된 시기이며, 활발한 식민 활동으로 그리스 본토와 지중해 흑해 연안지대에 다수의 식민지가 건설되었고 많은 도시국가가 형성되었다. 이집트와 크리트의 혼합 양식이 보이는 과도기이다.前시대의 축적 위에 여러가지 실험이 연속적으로 구체화되어 가는 창조력 넘치는 시대로, 분석적 엄격한 비례 형태의 인식과 동방화 영향으로 전개되었다.♠알카익 시대의 건축이제까지 사용된 햇볕에 말린 벽돌과 나무를 대신하여 대리석 등 석재가 사용되고, 내부에 기둥을 배열한 신전이 출현함. (델포스의 아폴로 신전에서 그 과정이 증명). BC 6 C의 사모스의 헤라 신전과 에페소스의 알테이드 신전 등 이오니아식 기둥 양 식 형식에 의한 거대한 신전이 건립됨. 부조 조각이 발달. 기둥 위와 지붕 아래의 박공(페디멘트)에는 고르곤과 크류사올과 같은 신화 장면(코르흐, 아르테미스 신전)이 표현되어 있음{코린트의 아폴론 신전(Temple of Apollo)B.C. 540그리스 코린트(Corinth, Greek)Grand Collection of World Art(2). 클래식 시대클래식 시대는 B.C. 5-4세기에 걸치는 도시 국가의 최전성기를 말하는 도시국가 시대이다.페르시아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던 시기로 그리스의 건축, 문학. 예술의 황금기이다.최대강국인 페르시아를 격퇴하고 그리스 전지역의 패권을 획득한 아테네는 페리클레스에 의해 아크로폴리스의 정비가 추진되었다.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으로 건축을 비롯한 그리스 미술의 왕성한 발달을 보였다.아테네 신전과 에렉테움같은 건축물이 창건되었고, 유리피데스, 소포클레스, 아니 스토파네스(희극시인)와 같은 위대학 희곡작가들이 활동한 시기였다. 순수하고 창의성있는 그리스풍이 성립되었고, 서양 문화 발전 의 기반이 확립된 시기였다.♠클래식 시대의 건축클래식 전기는 그리스 건축의 황금기.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과 파에스돔의 포세이돈 신전에서 보듯 거의 완성 단계에 있던 도리스식 기둥 양식은 이오니아식 우아함이 추가되어 파르테논 신전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폴리스를 신봉하는 시민의 고결한 정신의 결정체로 볼 수 있다.{파르테논 신전(Temple of Parthenon)B.C. 447∼432아테네, 아크로폴리스Grand Collection of World Art{아테네 니케 신전(Temple of Nike)B.C. 421아테네, 아크로폴리스Grand Collection of World Art{페르가몬가의 극장(Theatre, Pergamon)B.C. 2C터어키, 페르가몬Grand Collection of World Art{델포이의 원당(Temple of Delphi)B.C. 390∼380그리스 , 델포이Grand Collection of World Art{에피다우로스 극장(Theatre of Epidauros)B.C. 350그리스 , 에피다우로스Grand Collection of World Art{에렉테이온(Erektheion)B.C. 421∼406아테네 , 아크로폴리스Grand Collection of World Art(3). 헬레니틱 시대헬레니스틱 시대는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원정을 시작한 후부터 로마에 의해 지배당하기까지 약 300년간의 시기이다. 그리스 풍과 오리엔트 고유 문화와의 융합을 통한 헬레니즘 문화를 이루었고 위대한 철학자, 웅변가들이 출현한 시기이기도 하다.♠ 헬레니즘 양식그리스 세계의 확장으로 경제 활동의 활성화, 시민의 생활 향상, 로마의 대두 등에 의해 클래식 시대와 같은 수준을 유지하였다. 이 시기의 초기에는 클래식 시대 후기의 연장선상에 있었는데 BC. 3세기 중반경 부터는 미술의 귀족화와 대중화가 현저해졌다. 즉 , 부유한 귀족과 시민은 주택을 벽화로 장식하고 뜰에 조각을 새기고 호화로운 장신구로 치장하였다. 이는 헬레니즘 시대의 특징으로 미술의 '모방'이 현저했고 '유행'이었다.♠ 헬레니틱 시대의 건축그리스를 대표할 만한 건축물들은 이미 클래식 시대에 완성되었고 이 시대에는 동양의 문화적 요소가 가미되었다.{기둥의 부분(Portion of a Column)B.C. 3∼2C그리스(Greece)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2. Greece 건축B.C.12세기경부터 점차 그리스에 침입한 도리안인은 그리스인의 세력을 펠로폰네스반도로부터 구축하여, 크레타的색채가 짙은 미케네 문화를 완전히 파괴하여 오랜 시일 문화상의 암흑시대를 살아온 그리스인은 자기의 민족성을 뿌리박아 새로운 문화를 서서히 창조하였다.이 초기 단계의 건축에 있어서는 유적이 다소 발견되었을 뿐이다.그러나 B.C 7세기 중엽이 되어 신전은 일건벽돌과 목조에서 석조로 변하였고 이어 B.C 6∼5세기경에 그리스건축은 최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제우스의 성지 올림피아와 아폴로 신탁지 델포이 등의 종교적 중심지와 각 도시의 수호신을 모신 신성에는 훌륭한 신전이 조영되고 많은 제단과 보고,교회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축제의 행사로 체육경기와 연극으로 스타디움과 체육연습장이 건설되고 산의 사면을 이용한 반원형의 극장이 축조되었다.신전은 그 평면도에 따라 정면 벽 끝에 2개의 원주로 된 인 안티스식으로 되어있고, 신실의 전면에 열주를 배열한 전주식인데 가장 일반적이고 주주식으로 대규모적인 2중 주주등으로 구분이 된다. 그 중 가장 단순한 인 안티스식은 분명히 미케네시대의 메가론의 계통이다.또 신전의 평면 구성은 3단의 기단,원주,수평보 및 처마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그 각 부분의 조직에 따라 도릭양식,이오닉양식,코린트양식의 3종류로 구분한다.그 중 도릭양식은 펠로포네스반도와 이탈리아 서부 등의 도릭계 주민에 보급된 단순하고 중후한 형식인데, 기둥은 굵고 강한 엔타시스와 플루팅이 조각으로 되어있다. 주두는 엔타블레추어로 되어있으며, 도릭식 신전은 올림피아의 헤라이온신전인데 현존된 최고작으로 코린토스의 아폴로신전, 아이기나 섬의 아파이아 신전 등에 이어 5세기 후반 아테네의 테세이온이 그 중 유명하다.이에 대하여 이오니아인이 정착한 에게해의 각 섬과 소아시아 서안에서 볼 수 있는 이오니아양식은 경쾌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특색이다. 기둥의 기반 위에 세워진 가늘고 긴 24조의 플루팅과 주두에 연속된 2개의 볼류트장식으로 되어 있으며 이오니아양식의 초기작은 페르시아전쟁시에 파괴되어 대부분없어졌다. 그러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건조된 아테네의 니케신전과 에렉티온은 규모는 작지만 그의 섬세하고 고아한 마감이 이오니아양식건축의 정수를 나타내고 있다.{또{{{아크로 폴리스에서 최초로 건설된 가장큰규모의 신전으로 아테나 파르테노스신을 위해 지어졌다.파르테논 신전의 배흘림양식은 건축사에서 많이 소개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건축가들의 손에 의해쓰여지는 방식이기도 하다.파르테논 신전은 이오니아양식고 도리안양식이 혼존하는데 그것은 두건축가의 손에 의해 지어졌기때문이다. 익티누스는 도리안 양식의지지자였고 카리클라테스는이오니아 양식의 신봉자였다.이둘은 각각 기둥의 볼륨과 디테일을 담당했는데 그러다 보니 이오니아와 도리안이 혼존하는양식으로 지어진 것이다.익티누스에 따라 파르테논신전은 도릭양식신전의 세부에 이오니아양식건축의 요소를 기묘하게 넣고 너그러운 독립적 성격과 섬세,우아한 이오니아적 성격을 융합한 그리스 도릭식 최고의 신전이다.코린트양식은 B.C 5세기에 처음 성립된 최신의 형식으로 전체가 이오니아양식과 부조로 장식이 되어 있다.이것은 익티누스에 따라 밧사이의 아폴리신전 내부에 사용된 것이 최초로 그 후 4세기에는 에피다우로스와 델포이의 원형당 내부 의 열주 등에도 사용되었으나, 그리스시대를 통하여 도릭식 이오니아식과 같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없다.3. 그리스 신화와 신전그리스 시대 대부분의 건축물은 신전이다. 신의 제왕- Zeus, 제우스신의 처 이며 결혼의 여신인 Hera, 제우스의 아들이며 태양신인 그리고 달착륙선의 이름인 Apollo, 힘과 권력의 신 Heracles, 지혜,힘,평화의 신 Athena, 영어식 발음 '나이키'로 유명한 승리의 여신 Nike(니케), 바다의 신 Poseidon 등 그모든 신들은 신전의 주체가 된다. 또한 이들 신에게 봉헌된 신전은 한 개씩이 아니라 그리스 전지역에 걸쳐 몇 개씩있는 경우도 있으니 그들의 삶에 녹아있는 신의 의미가 얼마나 컷었는지 알수 있다.그리스의 신전건축은 에게해를 무대로 활동한 크레타문명과 미케네 문명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기원전 3000년부터 발생항 크레타와 미케네 문명은 B.C.11세기 까지 계속되며 그리스 건축은 B.C.8세기 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B.C11세기부터 B.C.4세기 까지의 건축은 거의 신전에만 국한된다. 4세기 후반에 알렛산더대왕의 동방원정은 새로운 문명의 탄생을 예견한다. 헬레니즘이 그것이다. 그리스와 오리엔트 문명의 만남은 또다른 헬레니즘이란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공학/기술| 2002.12.01| 6페이지| 1,000원| 조회(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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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 낙수장-Falling Water 평가B괜찮아요
    낙수장 (Falling Water)세계 4대 건축가중 한명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은 매우 유명한 건물이다.특별히 조사하지 않아도 한두번쯤은 접한적이 있는 작품이었다.그렇지만 이전에는 수직-수평과의 문제를 놓고 생각해 본적은 없는 것 같다.이번 과제를 계기로 낙수장에 대하여 조사하면서 새로운 문제를 적용하여 보고, 또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되어 좋은 계기를 가졌다.우선, 낙수장을 조사하기 이전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라는 건축가에 대해 조사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라이트(Frank Lloyd Wright/1867∼1959)미국의 건축가. 위스콘신주립대학에서 공학을 공부한 뒤, 시카고에서 L. 설리번에게 배우고 독립하여 시카고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구겐하임 미술관 등 국제건축양식에 대립하는 독자적인 '유기적 건축'을 계속하였다.그는 일생 동안 프로젝트를 포함한 800여개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건축을 시작한 이래 은퇴없이 생애를 마칠 때까지 작업에 몰두한 철인이었으며 일관된 건축적 사고 와 자신만의 독특한 건축언어 를 정립하였다.자연에서 추출된 그의 건축적 모티브는 가장 원초적인 개념으로 읽을 수 있으며, 이러한 자연에 대한 직관은 자연의 자태에서 형상화된 구조의 시스템을 비롯하여 형태, 내부와 외부공간의 관입, 수직과 수평의 상호 연관관계 및 연속과 확장, 반복 및 대립의 관계로 이어져 각각의 개체가 결합되면서 일체로 표현되는 유기적 건축(Organic Architecture)의 맥을 이루고 있다.라이트는 시대적 흐름의 격동과 역경속에서도 많은 작품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건축적 사고의 근본인 유기적 건축론을 실재화하면서 이론과 실체를 겸비하며 충실하게 표현한 건축가로서, 자연을 디자인의 모든 원리, 결과의 내부적인 요소로서 이해하였으며, 그러한 건축이념은 생명 그 자체로서 내부적 유기체이며 형태와 기능을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하여 부분은 전체를 구성하기 위해 중요할 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과도 융합해야 되며 공간은 그 생활을 구성하는 중요한 성분으로서, 외부로 향하고 또한 내부로 향해 흐르는 것으로 모든 것을 제3차원으로 하여 느끼고 보며 사용하는 것으로 확립하였던 것이다.{※주요작품{: 낙수장, 도쿄의 제국호텔, 탈리신, 존슨왁스사옥, 마틴저택, 유니테리언 교회 등그림에서도 보면 알 수 있지만 낙수장은 수직선과 수평선의 조화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자연요소인 폭포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인위적인 건축물이 아닌 하나의 유기체로써 자리잡고 있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라이트를 조사하면서 유기적 건축 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낙수장 역시 유기적 건축의 하나라고 볼 수 있을 듯 싶다.수직-수평의 관계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 질서에서의 적용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당연한 것이다.라이트는 1894년 공공 연설에서 처음으로 '유기적(organic)'이라는 말을 썼다."당신의 주택이 그것의 장소로부터 쉽게 확장될 수 있고, 그곳 자연이 근사하다면,그곳의 환경과 호흡을 같이 하도록 하게 하라.만약 그렇지 않다면 건축물이 마치 그러한 기회를 가졌던 것처럼 그 장소에서 조용하게 자리를 잡고 있도록 하라."이 낙수대는 1935년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피츠버그 백화점 사장을 위해 세운 것으로 라이트가 만든 것 들 중 가장 시적인 건축으로서 라이트의 로맨틱한 신념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것이다.낙수장에서 사용된 주요 요소는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슬래브로, 천장 역할과 바닥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다. 그 다음은 돌인데, 내 외부의 석벽과 바닥은 시멘트와 대조적인 조화를 이루고, 마지막으로 유리막이 부여되었는데, 이 것은 연속 된 유리막 가운데 있는 고정 유리 창과 결합되어 있다. 이 유리 커튼 월이 낙수장의 세번째 주요 요소이다.낙수장이 지형의 경사에 따라 한 층씩 뒤로 물러나 앉아 있듯이 유리막 또한 능수능란하게 다루어져 있고, 거실 주변의 유리막은 내부 공간의 구석마다에 있는 기둥이 없이 3면이 연속해서 펼쳐져 있다.라이트는 조용하고 한적한 생활 방식을 조장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주의 환경을 온전히 보존하기를 원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집-테라스-정원-땅을 단순하게 늘어놓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서 융통성 있고 잘 통합된 어떤 것이 요구되었다.그리하여 낙수장의 각 실들은 거의 다 외부와 연속되어 있으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연과 접하고 있다.{{{{{라이트는 그의 습관처럼 낙수장에서도 내 외부 공간 사이에 어떤 차이나 변화를 주지 않았고, 바닥도 문턱 없이 이어지며, 낮은 천장들은 더 낮아지기도 하고 계속해서 바깥으로 이어져 평처마가 되기도 한다.결과적으로 자연광의 변화와 식물과 공기의 계절적 변화가 어우러져 낙수장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주요 요소가 되고 있다.즉,라이트는 내외부가 하나가 되게 하는 공간의 연속성과 내 외부 공간에 사용되는 재료의 일관된 연속성 (바닥, 벽, 천장) 을 강조하였다.계곡을 낀 자연속에 극적으로 어우러진 낙수장은 라이트의 동양적 사고를 읽을수 있다.수평과 수직이 잘 결합된 입체조형의 풍부한 해석과 내외부공간의 상호관입, 적절한 재료의 사용능력, 공간의 연속성과 구조의 조형성을 추구한 유기적 건축의 원숙한 경지를 느낄 수 있다. 과감하게 처리된 캔틸레버는 당시로서는 매우 대담하여, 시공자가 무너질까 겁이 나서 버팀대를 떼내려 하지 않았을 정도였다.그런데 조사를 하다보니 안타까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낙수장이 구조적인 부실로인해 보수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술대에 오른 주)라이트(F. L. Wright)의 대표작낙수장의 낙하낙수장(Fallingwater, 1935∼1939년 건설)은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라이트(F. L. Wright, 1867∼1959)가 설계한 대표작으로 개인 별장형태의 주택이다.피츠버그에 있는 이 낙수장 건물이 최근 들어 캔티레버 형태(길이:4.57m)의 지붕이 아래로 처지고 있어 라이트의 명성에 오점이 되고 있다. 뉴욕의 구조전문가 로버트 실먼(Robert Silman)에 의하면, 낙수장 건물의 구조적인 문제는 건설당시 건설업자가 지적한 철근량의 부족을 설계자인 라이트가 받아들였더라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택구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콘크리트 캔티레버는 1997년도에 최초로 구조적인 부실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술자들은 철제빔을 동원하여 캔티레버를 받쳐 놓았다. 당시 「뉴욕 타임즈」는 '거실바닥 한복판에 욕조 배수구만한 크기의 구멍이 났다'고 보도했고, 이 건물의 관리자에 의하면 균열이 계속적으로 늘어가고 있다고 했다.만약 이 건물이 붕괴된다면, 마치 돌을 포개어 놓은 선반 같을 것이다. 뉴욕 타임즈는'자연과의 친화'로 유명한 이 주택의 마지막이 아이러니라고 소개하였다.구조기술자인 실먼은 영구적인 대책으로 '포스트텐셔닝 공법'을 제안하고 있다. 즉, 콘크리트 구조체에 구멍을 낸 뒤 고장력 강선을 삽입하여 긴장시켜 쳐진 부분을 원상 회복시키는 방법을 말한다. 낙수장 뿐만 아니라 라이트의 주요작품 중 하자가 발생한 몇 가지가 있는데, 이 중 하나로 플로리다 남부대학(Florida Southern College)의 포크카운티 사이언스 빌딩을 들 수 있다.현재, 이 건물은 1996년에 콘크리트 블록에 손상이 발견된 뒤 1,000만불을 들여 영국의 John McAsan社에 의해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다.▶포스트텐셔닝에 의한 보수공사15ft(4.57m) 길이의 캔티레버가 쳐진 것에 대한 영구적인 보강법을 검토하기 위해 3명의 건축가, 3명의 엔지니어, 1명의 건축재료 전문가로 구성된 국제적인 위원회가 열려 최종적으로 '포스트텐셔닝공법'으로 결정되었다.1930년대 라이트의 대표작을 원상복구 하는데에 7백만 불을 투입하여 2년 내에 착수하기로 했다. 라이트의 아들인 에릭氏까지 참가한 지난 4월 10일 피크버그에서 열린 회의에서, 위원들은 1997년에 캔티레버 하부에 설치된 강제 지주를 제거하고, 영구적인 보수가 될 수 있는 프스트텐션 케이블을 설치하는데 합의를 하였다. 라이트 설계의 주요점은 캔티레버로서 지주를 받쳐 놓는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실패작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학/기술| 2002.12.01| 5페이지| 1,000원| 조회(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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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딥스'를 읽고서 평가C아쉬워요
    '문제아에서 천재가 된 딥스'를 읽고서'장애 관련 수기에 맞는 책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속에서도 굳이 '딥스'이야기에만 손이 갔다. 책과 그다지 친하지 못한 나였지만 책을 손에 잡으니 놓을 수 가 없었다.이 책은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딥스'라는 6세의 소년이 놀이치료를 통해 자신의 가습 깊은 곳에 있던 상처들을 쏟아내고 자아를 찾아간다는 이야기이다.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어린 소년이 받게 된 상처들과 스스로 그것을 극복하고 용서하는 과정이 단지 먼 나라의 아이 이야기로 느껴지지 만은 않았다. 그리고 딥스가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이 큰 수술이나 대단한 치료가 아닌 관심과 사랑이었다는 것이 더욱 그랬다.딥스는 2살 때 글을 깨우칠 만큼 똑똑한 아이었지만 이상한 행동들과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 내면의 세계에서만 생활하여 정신박약아 취급을 받게 된다.딥스의 부모님은 딥스가 태어나기를 원치 않았다. 능력 있는 외과 의사였던 어머니와 유명한 과학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계획에 없던 딥스의 임신은 그들에게는 장애물이었던 것이다.딥스의 어머니는 딥스 때문에 부득이하게 직업을 포기하게 되고 딥스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을 거부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또한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딥스의 아버지는 딥스가 어렸을 때부터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걸핏하면 딥스를 방안에 가두고 문을 잠가버리곤 했다. 완벽을 요하는 그들 부부에게 딥스는 정신적으로 모자란 아이라 각인되었던 것이다.사랑만 받으며 맘껏 놀아도 부족한 어린시절에 딥스는 어머니의 지나친 기대를 따르지 못하고 사랑은 받지못하며 정서적으로 불안한 아이로 자라게 된다.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딥스는 학교에서도 친구를 사귀지 모하고 항상 혼자 이상한 행동을 하곤 했다. 누군가 다가서려고 하면 물어 뜯고 할퀴며 자기만의 세계에서 도무지 나오려 하지 않았다.딥스의 학교 선생님들은 딥스를 위해 '액슬린 박사'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녀는 딥스와 주변세계와의 중간 역할로써 딥스에게 아무것도 재촉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1주일에 1시간 딥스가 원하는 놀이를 하는 '놀이치료'를 시도한다.놀이치료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1시간동안 놀이방에서 딥스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며 놀게 해주는 것이었다.액슬린 박사는 항상 '네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어떠한 실수도 이해해 줄 수 있었고 물을 튀겨도, 접시를 떨어뜨려도 절대 방안에 가두는 일은 없었다.자신을 이해해주는 액슬린 박사에게 딥스는 조금씩 마음 문을 열게 되고 그동안의 상처들을 조금씩 내어놓고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딥스를 보면서 그의 부모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딥스를 사랑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딥스의 가슴 깊은곳에 맺혀있었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까지도 놀이치료를 통해 용서로 바뀌고 딥스는 가정과 학교에서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표현하며 자기안에 감춰두었던 숨겨진 능력들을 점점 보여주게 된다.이것이 이책의 제목과 같은 '문제아에서 천재가 된 딥스' 이야기기 이다.요즈음 부모들은 조기유학이다 조기 영어다 해서 어린 아이들을 이 학원 저 학원 보내기 바쁘다. 정작 그들이 원하고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제대로 알고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딥스는 신체적으로 전혀 장애가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아이가 그렇게까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로 이를테면 '자폐증'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도록 한 그들의 부모를 보면서 장애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 주위의 시선이나 태도가 더욱 큰 장애를 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딥스가 원했던 것은 값비싼 장난감도 비싼 현미경도 아니었다.그와 말동무가 되어주고 그에게 눈높이를 맞춰줄 수 있는 배려와 작은 사랑을 필요로 했던 것 뿐이었다. 태어났을 때 조금 많은 실수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정신적 학대를 통해 정말 그를 정서적으로 불안한 아이로 만들어 버린 그의 부모가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고 미래의 나의 모습에 대한생각을 할 기회도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바른 부모의 모습과 아이가 바라는 부모의 모습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인문/어학| 2002.09.11| 2페이지| 1,000원| 조회(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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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