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문 -기존 박물관에 대한문제 제기과목명 :교수명 :학과명 :제출일 : 년 월 일학 번 :이 름 :차 례1. (서론) 기존 박물관의 실황과 우리의 모습 ………………… 32. 박물관의 개념 및 기능 ……………………………………… 4∼53. 박물관에 대한 대중 인식 …………………………………… 64. 기존 박물관의 문제점 ………………………………………… 6∼104.1 외국 박물관과의 비교 …………………………………… 6∼84.1.1 박물관의 수 ………………………………………… 6∼74.1.2 박물관의 위치 및 교통편 …………………………… 74.1.3 놀이와 참여를 통한 체험공간의 부재 ……………… 84.2 국내 박물관의 구조적인 문제 ………………………………… 8∼10국립 중앙박물관국립 현대미술관전쟁기념간청주박물관5. (결론) 기존 박물관의 변화와 우리의 태도 ……………………… 10∼116. 참고문헌 …………………………………………………………… 12그림1…………… 5표1…………… 91. 서 론박물관 견학은 우리가 초·중·고등학교 때 소풍이나 행사만 다가오면 거론되는 제 1순위로 각자 여러 번의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견학을 갈 때는 진지한 마음으로 펜과 종이를 준비하지만 막상 갔다오고 나면 무엇을 보고 왔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고, 휘갈겨 쓴 글들은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없다. 단지 갔다온 후의 소감문을 써야함이 고달팠다.그러면 대학생이 된 지금은 어떨까? 역사 교양 시간에 교수님의 질문에 거수를 든 일이 있었다.'최근에 박물관에 가본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다수가 '가본 적 없다'라고 답했고, 충북대학교내 박물관도 가보지 않은 학생들이 '모두 다'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의 수였다. 전공분야와 학년이 모두 다른 70여 명의 학생들이 그런 답을 했다는 것은 가히 충격이었고, 학교 전체 학생들도 비슷한 수준임을 내포한다.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국제박물관협의회 ICOM(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은 박물관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되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인간의 삶과 밀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임을 다시 한 번 밝히며 앞으로 박물관의 개념 및 기능을 설명하고 문제점 및 외국 사례를 통한 해결방안을 제시할 것이다.이제 우리는 박물관의 고정적인 인식의 틀을 바꾸고 올바른 박물관은 어떤 것인지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2. 박물관의 개념 및 기능박물관은 앞서 말했듯이 인류, 역사, 고고, 민속, 예술, 산업, 자연과학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하고 이들을 조사, 연구하여 문화, 예술 및 학문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교육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2조이다. 즉, 과거와 현재의 자료를 보관·전시하는 시설과 그 시설을 이용하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는 박물관은 그 시설을 이용함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자연적, 문화적 유산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가치를 제공하고 각 개인의 문화적 소양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다.근래 외국에서는 조사연구(Research), 수집(Enclosure), 보관(Convervation), 전시(Exhibition) 기능과 함께 직접적인 교육활동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고 조사, 연구, 전시하여 일반에게 보임으로써 교육적 효과를 거두려는 사회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보다 중요하고 유익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일반 대중의 흥미와 관심의 폭을 넓혀 능력을 개발하여 교육적 효과를 거두는 데 있다.) 이난영, 박물관학 입문, 서울 : 삼화출판사, 1996, pp.19-21.박물관의 또 다른 정의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김혜경 역, 미술관, 박물관이란 무엇인가, 서울 : 화산문화, 1996, p.106.▷ 1954. Moscow : 미술관, 박물관이란 역사적 자료와 정신적.물질적 문화의 흔적들인 예술품, 수 집품, 자연물의 표본을 수집.보존하고 전시하는 곳이다.▷ 1956. Paris, UNESCO, ICOM : 여러 가지 전시로 일반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가치가 있는 유약을 발라 굽 는 기술적인 과정을 모두 함축한 채로 수 천 년 시공을 가로질러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미학적인 접근에 의해 양식, 유약성분, 장식, 제작시기 등도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작품이 갖는 수많은 의미를 우리는 읽어낼 수 있어야한다. 그 의미를 이해할 때 유물이 말하는, 들려주는 이야기를 비로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김혜경 역, 미술관, 박물관이란 무엇인가, 서울 : 화산문화, 1996, p.65.Green Wood는 박물관을 시민의 정신과 도덕적 건강을 위하여 필요한 것으로 보았으며, 공공 박물관이 세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첫 번째는 예술품의 엘리트적 자원으로서 박물관과 두 번째는 민주적 교육을 위한 박물관, 세 번째는 학문적 소사이어티로서 박물관이 그것이다. 이것을 풀이하자면 박물관이 유물을 비롯한 자료를 수집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고 교육하며, 연구하는 장소라는 것을 말한다.) 원제순, "중측적 공간 구성을 고려한 박물관 건축계획에 대한 연구", 충북대학교 논문집, 1998, pp.5-6.또, 그는 지식의 생산과 소비간의 구분을 박물관 건축적 형태의 예를 들며, 감추어진 공간은 지식이 조직되고 생산되는 곳이고, 공개된 공간은 지식이 소비되는 곳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현대의 박물관의 역할을 구분할 때 내재적 역할과 외재적 역할로 구분하는 것과 일치하는 점이다.일반적으로 박물관의 내재적 역할로서는 자료의 수집과 보존 및 연구 기능으로, 외재적 역할로서는 자료의 전시 및 교육기능으로 구분할 수 있다.내재적 역할의 자료수집과 보존 기능은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연구 기능은 그 성과를 박물관의 자료로 남기며 전시, 출판, 교육활동을 통하여 사회에 환원하며 일반 대중들의 문화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한다.역사적으로 볼 때 박물관은 항상 교육적 역할이 중심으로서 외재적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비교동물학 박물관은 다윈을 논박하기 위해 설립되었고,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우리나라는 박물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가까운 일본은 물론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열악하다고 하는 몽고 같은 경우 자연사 박물관만 해도 30여 곳이 넘는다고 하니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한번 되돌아보아야 하겠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존 박물관의 문제에 중점을 두고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다.4. 기존 박물관의 문제점앞서 말한 ICOM의 정의를 따르자면 박물관은 연구·교육의 장소로서 인식된다. 따라서 단순한 유물의 집합소, 다시 말하자면 값나가는 고물 수집상의 이미지가 지배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를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도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다만 그러한 따분하고 지루한 성격의 박물관을 방문객들이 재미있고 신나게 탈바꿈시킨 외국의 사례를 통해 문화면에서 그 나라들이 훨씬 선진국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외국 박물관과의 비교를 통해 즐겁게 자주 찾는 박물관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국내 박물관의 구조의 문제점은 없는지 알아보고자 한다.4.1 외국 박물관과의 비교4.1.1 박물관의 수최근 20∼30년 사이에 세계는 박물관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여 정확한 수도 파악하기 어렵다고 한다. 과거 19세기말까지는 유럽과 미국을 제외한 지역은 박물관이 매우 적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까지도 영국·프랑스·포르투갈·벨기에·네덜란드 등의 지배를 받았던 국가에서 일부 증가가 있었으나 세계적으로 커다란 변화는 없었다.허드슨과 니콜스(Hudsom.K& Nicholls.A)는 1985년 세계에는 약 3만 5천 개의 박물관이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동물원·식물원·수족관 등을 포함한 숫자이다. 선정 기준은 일정한 분야의 영구 수집품과 일관된 전시 계획을 가지며, 무엇을 전시하고 있는지를 발표하는 열의를 가진 박물관들을 조사한 것이다. ICOM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그러한 박물관의 2/3가 선진국에 있다고 발표하였다.미국의 경우는 1876년 2백 개이던 박물관이 1919년 6백 개, 1940년 2천 5백 개, 1965년 5천 뉴욕의 근대미술관 모두 그러하다. 그렇기에 이 세 곳의 박물관은 관람자 수가 끊이지 않고 계속 증가하는 추세인데 특히 퐁피두센터의 경우 건립 당시의 방문객 예상은 일일 평균 8,500∼15,000명으로 연 250만에서 450만 명 정도였으나 최근의 자료에 따르면 예상의 두 배가 넘는 일일 평균 25,000명으로 연 730만 명이 방문한다고 한다. 이러한 예를 통해서 선진 박물관이 번성하는 배경에는 문화의 중심에 박물관이 있음을 말해준다. 그들은 자신의 문화적 전통과 역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박물관에 가고 싶어도 위치적으로 너무 접근하기 힘든 문제점이 있다. 뒤에 설명할 과천 현대미술관의 경우가 그러한데 교통편의 시설의 확충이 전제된다면 지금보다는 더욱 그 선상에서, 대중에게로 다가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4.1.3 놀이와 참여를 통한 체험공간의 부재박물관 견학은 실물을 중심으로 한 전시교육의 하나로써 관람자는 자신의 눈과 귀를 통해 정보를 얻고 학습하게 된다. 이 때 이해의 정도에 따라 지식 획득의 개인차는 크다. 따라서 외국에서는 관람자의 눈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게 협조하는 전시 안내를 위해 교육담당자를 두었는데 이를 큐레이터) ‘큐레이터’의 사전적인 의미는 ‘전시 기획자’이다. 큐레이터는 박물관과 미술관에서부터 전문적으로 미술품을 관리하고 기획하고 수복하고 수리하는 일을 맡아온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또한 큐레이터의 주요 임무로는 전시기획일이 있다. 미술작품이 그 가치를 실현하거나 적어도 문화적 의미를 갖게 하기 위해서는 그 존재를 보다 많은 대중에게 인식시키는 중개인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큐레이터는 미술관과 화랑에서 그 전문성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올바른 미술을 통한 커뮤니케이션과 미술문화의 대중화에 막중한 기여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예연구원이라 부르기도 한다.라고 한다. 박물관에서 이들의 역
한국의 역사와 문화REPORT< 우리 옛 도자기 >과목명 :교수명 :학과명 :제출일 : 년 월 일학 번 :이 름 :'우리 옛 도자기'를 읽고 ...- 빛깔있는 책들(대원사), 글/사진 : 윤용이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저번 한국의 역사와 문화시간에 교수님이 내신 '중국 문화와 한국 문화의 관계'에 대해서 낸 레포트를 하면서 도자기에 관한 것을 했다. 더욱 많은 것을 알고 싶어서 추천하신 책 중에서 이 것을 고르게 되었다.옛 도자기는 우리 민족 문화 유산의 하나로서의 그릇이지만, 그릇에 그치지 않고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담고 있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우리 옛 도자기를 이해하고 감상한다는 것은 처음에는 낯설고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통해 도자기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또 고려, 조선 등 도자기가 만들어진 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사상, 종교, 생활에서의 쓰임, 기형, 문양 등에 대해서도 배웠다.이 책은 고려 청자, 조선 분청자, 조선 백자, 분원과 사기장, 조선 백자 전통의 단절이란 큰 제목을 갖고 내용 설명이 되어있는데 이를 토대로 요약하고자 한다.고려 청자세계에서 처음으로 자기를 만든 나라는 중국인데, 현재까지의 자료에 따르면 2세기경에 처음 청자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청자가 만들어지게 된 요인은 옥(玉)이다. 중국에서 옥(玉)은 군자(君子)를 상징하며, 부귀(富貴)와 사후내세를 보장해 주는 신앙적인 의미를 지녀 영생을 의미하고, 악귀를 쫓는다고 믿어 부장품으로 많이 사용하였다. 전국 시대 이후 옥에 대한 소유 욕구와 부모의 묘에 옥을 부장하려는 사람은 많았고, 옥은 한정되어 있으니 그 값이 매우 비쌌다. 따라서 귀한 옥을 흙으로 만들어 보려는 노력 끝에 청자가 탄생했다.우리나라에서는 4세기∼6세기경의 고분에서 중국의 청자가 발견되었으며 이는 당시 중국의 청자를 왕실의 옥기(玉器)로써 수입하여 사용한 것으로 알 수 있다.9세기 이후 안록산의 난으로 전국이 분열되면서 호족들이 생겨났는데, 이 호▷ 청자상감연화인물문매병 족들의 종교로 불교의 선종(禪宗)이 널리 퍼졌다. 선종에서 좌선(坐禪)을 하는데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하여 차를 마시는 습관이 확산되면서, 청자를 찻잔으로 사용하며 실용화되기 시작하였다. 차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길로써 마셨기에 차를 마시는 찻잔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고, 값비싼 귀중품이었다.우리나라는 중국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청자가 발달하였는데, 9세기 통일신라 말 선종이 유입되면서 중국을 다녀온 선승(禪僧)들을 통하여 중국의 찻잔이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중국 찻잔의 수입 비용이 막대해 고려 초 청자를 국산화하려는 바람이 일어났다. 그 후 질 좋은 흙을 찾아 개경 일대와 봉천, 시홍, 용인 등에 가마를 짓고 우수한 고려청자가 생산하기에 이른다.고려 청자의 아름다움은 1123년경 송나라 서긍(徐兢)이 지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잘 나타나 있다. 우리가 흔히 12세기 고려 청자를 비색 청자라고 부르는 것은 『고려도경』의 기록에서 따온 것이며, 고려청자가 그 때에 와서 유색과 형태가 아름다워졌음을 알 수 있다.상형청자 역시 『고려도경』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산예출향 역시 비색이다. 위에는 쭈그리고 있는 짐승이 있고 아래에는 연꽃으로 이를 받치고 있다."라고 한 상형청자 향로는 서긍에게 "가장 정교하고 절묘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를 통해 상형청자는 모두 뛰어난 작품으로 고도의 심미안과 숙달된 기술로서 세심하고 대범하게 조화된 모습을 띄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상형청자 가운데 중국의 고동기(古銅器)를 본뜬 것이 많은데, 이는 고동기의 중후하고 위엄 있는 형태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상형청자는 오리형연적, 청자거북형주전자, 청자음각모란문참외형주전자. 청자대나무형병 등 동물, 식물 등의 형태를 주로 본떴다.『고려사(高麗史)』「세가(世家)」의종(毅宗) 11년에 양이정(養怡亭)이라는 정자의 지붕을 청자기와로 덮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기와편들 속에서 약간의 상감기법을 발견해 종래 12세기 전반으로 추정되어 왔던 많은 비색청자들이 이 청자기와와 같은 12세기 후반에 제작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치와 향락을 좋아했던 의종 연간은 화려한 도자인 음각, 양각, 투각의 청자가 제작된 전성기로 이때에 고려 청자의 뛰어난 명품이 제작되기 시작하였음을 1157년의 청자기와를 통해 알 수 있음이 놀라웠다.상감청자는 우리 민족만이 가진 창의적인 공예 기술로서 세계인들에게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여기에서 상감이란 금속기, 도자기 등의 겉면에다 여러 가지 무늬를 파고 그 속에 다른 재료를 넣은 독특한 기법이다. 이 청자의 본격적인 발전은 13세기 최씨 무인정권 때이다. 또한 몽고의 침입으로 인한 대몽항쟁이 계속된 시기였다. 이 때 남송과의 국교 단절로 인해 외부 문화가 주는 자극이 없어지고, 고려적인 기형과 문양의 세계가 확대·전개되어 성숙한 청자문화를 이룬다.상감청자를 보면 구름과 학의 문양이 많은데 이것을 운학문이라 한다. 고려인들은 이 청자를 매우 아꼈는데, 불교를 숭상한 그들은 현세의 삶보다 내세의 삶을 동경했다. 따라서 영원한 세계에 대한 동경을 청자에, 창공의 구름 너머로 비상하는 학으로 나타내었다. 그리고 포류수금문양(연못, 버드나무, 오리 등의 문양)의 상감청자 역시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정적과 고요함이 뿜어 나오는 듯 하다.이러한 아름다운 고려 상감청자는 14세기 후반 고려의 정치, 경제 사회의 변화로 인해 쇠퇴한다. 바로 신흥사대부의 등장인데 타락한 권문세족을 시정하기 위해 개혁 정치를 주장하여 고려를 멸하고 조선 왕조를 건립했다. 이 무렵 왜구의 극심한 약탈과 실용 도자를 생산을 위해 많은 가마가 내륙에 설치되었다. 이로 인한 갑작스런 대량생산은 기술과 질을 저하시켜 상감청자는 쇠퇴한다.조선 분청자흔히 조선시대 분청자는 가장 한국적인 미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분청자를 말할 때 마치 오늘날의 작품처럼 느껴져 현대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분청자는 한국적 특성, 현대적이라는 두 가지의 큰 특징을 가지고 있다.분청자의 모습을 보면 정돈되지 않은 모습들이 많다. 분청자는 고려시대 청자가 갖는 깔끔하고 이지적인 느낌에서 벗어나서 형태가 수더분하고, 마치 숭늉처럼 구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형태와 ▷ 분청자철화어문양이발문양에서 박진감이 넘친다는 점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아울러 분청자가 갖는 중요한 특질의 하나는 익살스러움이 담겨져 있다는 점인데, 그림 하나를 보면 엄마의 특성이 다 들어가 있는 아이의 그림처럼 분청자에는 아주 솔직하고 대범하게 생략을 자유자재로 한 그런 특성들이 포용되어 있다고 해서 오래 전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그러면 분청자라고 하는 그 이름이 어떻게 붙여졌을까, 그리고 사기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말해보면 우선, 원래 분청자라는 이름은 문헌에는 나오지 않는다. 『조선왕조실록』초기에 분청자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데, 이것은 1940년대에 고유섭 선생이 새롭게 붙인 명칭이다. 그 전에는 일본식의 전통에 따라서 '미시마'라고 불렀는데 오늘날도 이 말을 사용하는 이는 많다. 또, 분청자나 분청사기는 똑같은 말이다. 자기는 자토로 만들어진 그릇이며, 사기는 돌가루인 사토로 만들어진 그릇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특별히 나누어 부를 필요가 없다. 단지 오늘날 분청사기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익숙해진 것뿐이다.분청자는 기본적으로 청자의 일종으로 '백토로 분장한 청자'를 줄여서 분청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것의 색깔은 회청색이 많이 나타나며 녹청색, 시멘트 색깔도 나타난다. 이것은 순청자에 비하면 색깔이 좀 나쁜데 그것을 감추기 위해 백토로 분장을 한 것이다. 그래서 분청자에는 청자로서 원숙함이 느껴지는 반면, 형태나 색깔 등에서 좀 거친 면이 있다.이러한 분청자는 여러 가지 상감분청자와 이화분청자를 만들어냈다. 현존하는 분청자로는 최운해 묘에서 출토된 분청자상감파도문발가분청자상감초화문네귀항아리, 분청자인화'경승부'명국화문 접시 등이 있는데 모두 상감분청자와 이화분청자의 자료들이다.분청자는 상감청자의 쇠퇴의 원인 즉, 상감청자의 생활화 그리고 대량 생산화가 배경이 되어 발달하여 2백년간 생산되었다가 임진왜란 발발(1592년)이후 단절되었다.조선 백자보통 조선 도자라고 하면 백자라고 할 정도로 백자는 조선 도자를 대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 백자가 발전된 이유는 몇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우선 백자가 청자보다 발전된 상태이다. 유약이나 태토에 있어서 더 순수한 도자기 흙이 고령토라고 불리는 백토인데, 이것은 청자에 사용되는 흙보다 순도가 높다. 그리고 굽는 온도도 청자의 경우 1280도인데 반하여 백자는 1300도가 일반적이다.두 번째로는 목화의 전래 때문이다. 14세기 후반 문익점에 의한 목화의 전래로 15세기 이후 사대부를 비롯한 서민들이 흰옷을 즐겨 입게 되었다.세 번째로는 유학의 영향이다. 양반층이 추구하는 세계는 유학이라고 하는 성리학의 세계였다. 그러한 관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은 검소, 질박, 결백함이다. 즉, 이러한 성리학적인 바탕 하에서 깨끗하고 결백한 것을 좋아했기 때 ▷ 백자청화운룡문병 문이다.네 번째로는 조선의 모범국인 명에서 백자를 선호하였기 때문이다.다섯 번째로는 세종 연간에 중국에서 많은 양의 은을 요구하자 이것을 감당할 수 없어, 사신 접대시 은그릇 대신 백자를 사용하였고 이어 왕실에서도 백자를 널리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즉, 백자는 조선 왕실이 선택한 것으로 이후에 중요한 그릇으로 인정되어 사가에서 사용이 금지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