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종*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6
검색어 입력폼
  • 중농학파(실학) 평가A좋아요
    목 차1. 실학의 등장22. 중농학파와 중상학파2-33. 중농주의34. 유형원3-55.성호 이익5-66. 정약용6-77. 개혁사상의 한계78. 참고문헌71.실학(實學)의 등장실학이라는 용어는 18세기에 새로 등장한 학풍을 가리키지만, 당대에는 실학이라고 불리어지지 않았다. 실학의 사상들은 본래 유학 사상에 포함되어 있는 실용적 사상들을 발전시킨 것이어서 당대의 학자들에게 있어서 실학사상은 성리학과는 다른 실용적 유학의 학파였다. 그러던 것을 19세기말과 20세기 초 일제의 조선 침략이 노골화되던 무렵에 민족 주체성을 고취하기 위해 18세기의 실용적 학문을 중시한 유학을 실학이라고 불렀다. 문론 실학이라는 용어는 예로부터 있었다. 실학(實學)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줄임말이다. 이는 중국 한대의 반고(班固)가 쓴 책 『한서(漢書)』「하간헌왕전(河間獻王傳)」에 나오는 말,“학문을 닦고 옛것을 좋아하며 실사에서 옮음을 구한다”에서 나온 것이다.) 그 원래의 의미는 학구적인 태도는 실제적이고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학이라는 말은 중국과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이를테면 고려시대에는 불교에 대해 유학을 가리켜 실학이라 했고, 조선 초에는 원시 유학, 즉 육경학이나 사장학(詞章)에 대해 성리학을 실학이라 불렀다. 이렇게 의미는 달라도 실학이라 이름 붙여진 데에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즉 실학이라는 이름은 그것이 지칭하는 구체적인 학문은 다르더라도, 언제나 기존의 학풍에 대해 새롭고 진보적인 학풍을 가리키는 용어인 것이다.이러한 실질적인 학문을 추구했던 실학자들은 17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실학운동에 의해 대두되게 되었는데, 실학운동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이론적이기만 한 성리학을 비판하고, 농촌의 분화(부농과 빈농발생),도시의 대상인이 등장함으로써 영세상인이 몰락하게 되고 물가가 상승했기 때문이다.2.중농학파(重農學派)와 중상학파(重商學派)실학자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개혁방향과 그들의 개혁안에 따라 중상학파와 중농학파로 )은 모두 정전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앞서 말한 북학파가 중상학파라면 내부 유형원을 포함한 내부개혁론자들은 중농학파라고 부를 수 있다. 또한 당시에 중국에서 사용하던 용어를 빌려 말하면 이용후생(利用厚生)과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하는 학자들이 중상학파에 해당하고, 경세치용(經世致用)을 주창하는 학자들은 중농학파에 해당한다고 구분할 수 있다.중농학파의 사상과 중상학파의 사상은 모두 다 당시 사회를 개혁학기 위한 방법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둘 간 에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중농학파의 실학사상이 ‘우리가 가진 빵을 서로 잘 나누어 먹자’고하는 분배론이라고 본다면, 중상학파의 실학사상은 ‘우리가 먹을 빵을 늘려가자’는 성장론으로 해석할 수 있다.이들 간의 개혁론에 차이는 있지만 중농주의나 중상주의 모두 현실을 토대로 당대 양반사회의 모순을 제거하는 것과 나라의 부국강병을 추구한 것, 그리고 국민생활의 안정을 위한 개혁을 주창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 들은 또한 17~18세기 근대문화 유입에 맞서 ‘우리 것’을 지키고자 했다는 것도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3.중농주의(重農主義)17세기 농민생활의 악화는 수많은 사회문제를 낳았다. 그러나 집권층의 개혁은 근본적인 개혁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런 가운데 유형원, 이익, 정약용 등과 같이 농민문제의 해결을 바탕으로 사회개혁을 이룩하자는 중농학파 실학자들이 나타났다. 경세유표, 반계수록, 성호사설은 농업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한 책들이고,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목민관이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에 대한 것을 기술한 책이다.이들은 “부자의 토지는 거대한 규모로 늘어가고 가난한 자는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으니,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고 있다”)며, 대다수 농민들이 땅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같은 문제는 임진왜란 이후 갈수록 심각해졌다. 돈 많고 권세 있는 사람들이 앞 다투어 농지를 개간하여 대지주가 되고 있었다.이러고 주장하였다. 이외에도 능력에 따른 관리등용을 위해 과거를 치르지 말고 평소의 행실을 바탕으로 한 천거제(薦居制)를 실시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4.유형원유형원은 1622년 서울에서 별술에 있던 유흠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덕부(德夫)이고 호는 반계(磻溪)이다. 유형원은 당시 사상계와 문화계를 지배하는 유학이 공리공담과 형식으로 지식의 발전을 먹으며 학문의 창의성을 억압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17세기 초부터 받아들이기 시작한 서양 과학 기술의 중요성을 깨달은 선각자이기도 하였다. 이에 천문?지리?수학?음악?군사?전술?의학?외국어 등과 문예?도불(道佛 )의 서적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게 연구를 하였으며, 세계 여러 나라의 산천?도로?풍속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국내 명승지를 답사하여 『기행일기』를 지었는가 하면,『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의 미비한 점을 지적하였다. 또한 『여지지(與地誌)』를 새로 지어서 조선의 지리를 상세히 밝혔으며, 『지리군서』를 편술하기도 하였다.)1)토지제도 개혁론유형원이 살았던 시기는 왜란과 호란 등으로 사회 생산력이 극도로 떨어져 백성이 살아가는 데 몹시 어려운 상태였다. 그러나 지배계급은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커녕 토지 경병과 각종 수탈에 여념이 없었다. 이와 같은 지배 계급의 타락과 봉건 사회 내부 모순의 격화는 사회 제반 제도를 더욱 문란하게 하여 조선 봉건 사회를 커다란 위기에 몰아넣었다. 이러한 현실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유형원은 현실을 개혁하고 부국강병을 실현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그는 당시 실시되고 잇던 토지 제도?교육제도?관리 선발제도?관직 제도? 녹봉 제도? 군사제도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역사적 고증을 통해 비판을 가하면서 자신의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그러한 그의 개혁안과 현실에 대한 비판은 종래에는 찾아볼 수 없는, 사회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과 구체적인 개혁안의 제시였다. 그래서 유형원을 실학의 창시자라고 부른다.유형원은 사회?정치적 개혁의 중심은 토지 제도의 개혁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의 개혁안은 균전제를 내용으로 하는 ‘과전제(科田制)’이다. 그 내용은 토지의 사적 소유를 없애고 모든 토지를 공전으로 하여 백성에게 골고루 분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사회 신분에 따라 토지 지급에 차등을 둔다는 것이다. 또 토지를 분배받은 자가 죽거나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으면 이를 회수하며, 상공업자에게는 농민의 절반에 해당하는 토지를 주고, 무당이나 승려나 창부에게는 토지를 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토지 분배원칙을 세부적으로 보면 경작자 각 한 사람당 1경을 주며, 4경에서 군인 한 명을 내고 나머지 세 명은 보(保)로 삼는 병농합일제를 실시한다는 내용이다. 전세는 토지 등급을 정확히 규정하여 실지 수확의 1/10세만을 국가에 바치는 것으로 하고, 그 외 일체의 유명?무명?사적?공적 징수는 폐지하는데, 전세 외의 세금은 대동법으로 통일한다고 한다. 또 삼림과 풀밭은 공동 소유로 두어 백성이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하였다. 유형원은 이와 같은 과전제를 실시해야만 빈부의 차이를 없애고 국방을 강화하며 사회도덕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보았다.2)토지제도 외의 사회개혁론유형원은 토지제도 개혁 외에도 상업과 수공업의 발전에도 일정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상업과 수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그들에게 세금을 현저히 감소시켜 주고, 농촌 지역의 상인과 수공업자들이 생활의 안정을 꾀할 수 있도록 농민의 절반에 해당하는 밭을 주어 경작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유형원은 노비제도에 대한 비판을 가하면서 노비 개혁안을 주장하기도 했다. 노비개혁안의 내용을 보면 노비 세습제의 폐지와 신분의 차별이 있다 하더라도 덕으로 대하고, 한 세대에 국한하는 고용 관계로 개편하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또 문벌제도와 적서, 지방에 따른 차별을 반대하고 양반의 자식만 과거에 합격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는 폐해 등을 규탄하면서 인재 선발시 학문과 인격을 보고 등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유형원은 사회?경제?정치 등에서 봉건제도의 폐단을 비판하고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개혁안 늘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당시 문란한 전제에 대해 비판하였다. 그는 전제가 문란해진 원인은 양반 관료들과 부호들이 토지를 수탈하고 겸병하였기 때문이라 하면서 공전제에 기반을 둔 영업전(永業田)의 실시를 주장하였다. 영업전에 한해 토지매매를 금하게 하여, 대토지 소유를 막고 농민의 유락도 막고자 했다. 사실 그가 주장한 전제 개혁안은 한전제와 같은 균전법이었다. 그의 전제 개혁안은 대토지 소유자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전제 제도의 모순을 해결해 보려는 타협적이고 개량적인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개혁사상이 대지주의 이익을 어느 정도 보호해주는 타협적인 개혁안이기 했지만, 이것조차도 봉건 통치 제도가 존속하고 지주의 사적인 토지 소유가 지배적인 당시의 조건에서 실현하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이익의 경제 개혁 사상에서 중요한 것은 부세에 관한 것이다. 그는 당시 농민을 빈곤으로 몰아넣은 각종 세금 외 부담과 중간착취 현상을 비판하면서, 봉건 국가에서는 이 모든 잡세 까지 합쳐 땅을 가진 사람들에게 1/10 로 단일화한 세를 받도록 해야 중간착취를 근절하고 국가 재정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 하였다. 이러한 방안은 소작 농민의 부담을 줄이려는 방안이었다.2)사회?정치 개혁이익은 사회?정치적으로 봉건 국가와 사회 제도를 해치고 좀먹는 사회적 폐단을 여섯 가지 측면에서 비판하고 그에 따른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이익에 따르면 이 여섯 가지는 인간의 생활에 있어 도적보다 못한 것들이라고 비판하며, 반드시 없애야 할 것들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과거제도를 폐지하고 인재등용은 추천을 통하여 실시해야 한고 주장하였다. 관리의 폐단을 바로 잡기 위한 방법으로 감사?수령을 임기제로 하자고 주장하였다. 이 임기제에 대한 사안은 경국대전에 나와 있으나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그는 임기제를 통해 수령이 근무지의 실정을 충분히 파악하고 선정을 베풀 수 있는 기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이익은 관리부패의 원인을 상피제도로 보았다. 상피제도를 통해 연고지역에 부임을 금하고 있깊었다.
    인문/어학| 2008.06.26| 7페이지| 1,500원| 조회(765)
    미리보기
  • 인본주의 학습이론
    1.인본주의 심리학의 출현행동주의 학파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함에 있어서 객관화를 중시한 나머지 지나치리만큼 분석적이고, 부분적?단절적인 기계론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데 대한 반발과, 인간의 행동을 리비도를 중심으로 한 본능으로 설명하려는 정신분석학에 반기를 든 것이 1950년대를 전후하여 태동한 인본주의 심리학이다. 인본주의적 견해는 1960년대 초반까지 심리학 분야에서 지배적이었던 두 세력인 행동주의와 정신분석에 대한 반동으로서 발전되었다는 점과 인본주의 심리학은 다른 심리학과 달리 조직적인 이론이 아니라 일종의 지적 사조(思潮)이며 운동으로 Maslow는 이를 제 3세력의 심리학이라 불렀다. A. Maslow와 C. Rogers와 같은 인본주의 심리학 옹호자들은 행동주의 심리학과 Freud심리학 모두가 인간이 행동하는 이유에 대하여 적절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본주의 심리학은 행동주의와 정신분석이 주로 동물이나 비 정상인을 대상으로 인간 현상을 기술하려 했음에 반하여, 건전한 인간 자체를 대상으로 삼았으며, 인간의 행동을 부분적으로 쪼개어서 이해할 수는 없음을 전제로 하여 개인을 하나의 통합된 인격체로서 간주하고, 개개인은 적절한 여건만 갖추어지면 선한 방향으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적 능력을 지닌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또한 인본주의는 행동주의가 인간을 비인간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인본주의는 행동주의가 인간을 평균적이고 예측할 수 있는 존재로 환원시킨 결과, 인간의 사적이고 개인적인 특징을 간과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인본주의에 따르면 행동주의는 동물의 행동은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으나 인간의 행동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2.인본주의의 기본관점Maslow는 인본주의 심리학의 원칙을 다섯 가지로 규정했다. 첫째, 인간을 유일하면서도 통합된 전체로 탐구한다. 둘째, 인간의 행동은 동물의 행동과 질적으로 다르다고 전제한다. 셋째,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한 존재라고 가정한다. 넷째, 인간은 창조적인 존재로 파악한다.성이라는 개념도 인본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형성이란 인간이 항상 다른 존재가 되려는 과정에 있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인간의 성장과 변화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또한 인본주의는 현상학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현상학이 인본주의에 기여한 것은 사람들은 똑같은 사건에 대해 현상적 장(field)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는 견해인데, 이는 인본주의가 행동주의와는 달리 각 개인의 고유성과 하나의 개체로서의 정립의 기본이 되었다.인본주의는 인간의 존재를 건전하고 독특한 존재로 연구할 것을 주장하면서 근본적으로는 인지론과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다. 즉 학습의 출발이 외적 자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의 자기 지시적 동기에 의해 이루어지는 인간 중심적인 면에 있다. 그러나 학습이 무엇에 의해 이루어지며 자기지시적 동기를 어떻게 유발시키는가에 대해서는 두 이론이 차이가 난다. 레빈과 같은 인지론자들에 의하면 학습이란 학습자의 외적 환경에 대한 지각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며, 자기지시적 동기란 생활공간의 불균형에서 유발되고 그 불균형은 장의 역동적인 힘에 의존한다. 그러나 인본주의자들에 의하면 학습이란 외적 환경에 대한 지각이 아니라 인간의 자신에 대한 지각과 통찰을 통해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자기 지시적 동기도 학습장면 속에서의 자신의 적절성에 대한 요구를 강조한다. 적절성에 대한 요구란 인간은 생리적 요구를 만족시킨 후에는 스스로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겪으면서 까지도 해내려 애를 쓴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을 스스로의 삶에 대한 적극적인 존재로 보려는 입장을 강조한 이론을 인본주의 이론이라고 한다.인본주의에서 말하는 요구는 동기이므로 동기를 모든 인간 존재의 성장과 발달의 원인이 되는 내부적이고 활동적인 힘으로 보았다. 따라서 인본주의의 입장에서는 동기화되지 않는 학습자로부터는 학습의 효과를 얻을 수 없으며, 교사는 학생의 성장과 발달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종합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그들의 요구를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3.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의 를 갖고 태어나고 이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의 이러한 노력의 궁극적인 방향은 자아실현의 추구라는 점이라고 설명하였으며, 이러한 자아실현을 학습의 목표로 보았다. Maslow에 있어서 학습의 목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정의될 수 있는데 대체적으로 ‘한 인간의 잠재능력과 성장가능성의 실현’ 또는 ‘인간성의 완전한 활용’이라고 정의된다. Maslow에 있어 학습의 과정은 최대한의 자발적인 성장을 통한 자기 실현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의 과정이다.Maslow의 요구위계는 인간 행동에 있어서 명확한 방향성을 보여준다. 요구위계는 가장 우선적이고 기본적인 생리적 요구에서부터 인지적 및 심미적 요구를 포함하는 자아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모든 사람은 우선 하위의 요구들이 충족됨으로써 상위의 요구를 단계적으로 추구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자아실현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사람의 요구가 반드시 위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 한다. Maslow는 학습을 최대한의 자발적인 자기실현을 위한 경험으로 보았으며 이러한 경험을 촉진시킬 수 있는 원리로서 1.현재의 자기생활에 철저히 몰입하는 생활을 함과 동시에 2. 시간?공간 등을 초월하며,3.지적측면의 학습뿐만 아니라 정의적 측면의 학습을 강조하였다. 학습내용은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그 학습은 즐거운 경험이 되도록 친근하면서도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1)Maslow이론의 시사점과 문제점Maslow의 연구는 교육현장에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학생들이 피곤하고 배고프거나 혼란스러운 상태로 학교에 오게 된다면 결손동기에 의해 그들의 학습 요구는 감소될 것이고, 교사들이 학생들의 자존감을 저하시키면 그들의 동기가 저하됨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과 그들이 동기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교사는 자존감을 향상시키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상위수준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강조하기 보다는 하위수준의 요구가 제대로 충족되고 있는 가를 면밀히 검토해야 따라 요구의 우선 순위가 다를 수 있음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또한 자기실현요구와 같은 것은 인간 내적인 것으로 측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받고 있다.3-2Rogers의 자기이론Carl Rogers는 원래 정신분석학 훈련을 받은 임상심리학자였다. 그는 심리치료의 경험을 기초로 하여 인간을 프로이드처럼 성적 본능에 의해 지배되는 존재로 보지 않고 유의미한 목적을 가지고 자기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로 보았다.로저스의 이론의 특징은 무의식을 중시한 프로이드와는 달리 의식적 경험을 행동의 결정요인으로 중시한다는 것과 행동이 현재의 지각과 해석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행동이 현상학적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대인관계를 중시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대인관계가 심리적 성장의 촉진과 방해의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Rogers의 이론은 자기 혹은 자기개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자기이론이라고 불리고 있다. 자기는 개인이 갖고 있는 총체적인 내적 세계를 말하며 다른 사람과 사물로 구성된 외적 세계와 구분된다. 자기개념은 Rogers의 이론 뿐 만아니라 인본주의 심리학 자체에서도 강조하는 것이다. 인본주의가 자기 개념을 강조하는 것은 주관적 경험과 개인적 지각을 강조하는 인본주의의 기본적인 관점의 당연한 귀결이다. Rogers의 이론은 그러한 인본주의의 사조에서도 자기 혹은 자기개념을 심도 있게 연구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Rogers의 자기이론은 다음과 같은 기본 가정위에 성립되었다.첫째, 인간은 선하고, 합리적이며, 목적지향적인 존재이다. 둘째, 세계는 사적(私的)이고, 실재는 현상학적이다. 셋째, 행동이란 오로지 개인의 관점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고 지각하는 것을 토대로 현상적 장을 통한 의식을 구성하고, 그것을 토대로 자극에 반응한다. 이러한 현상적 장은 개인마다 다르게 형성되기 때문에 한 개인에게 실재적인 것이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인간존재의 목적은 자기 실현이다. 섯째, 인간은 자기개념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1)실현경향성Rogers에 따르면 인간의 유일한 동기는 실현경향성이며 다른 모든 동기는 실현 경향성에서 파생된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실현 경향성은 자기실현경향성이다. 자기실현경향성은 자기를 보존하고 향상시키려는 경향성으로, 자기개념과 일치한느 방식으로 행위를 하도록 하는 동기를 제공한다. 그는 실현경향성과 자기실현경향성 이외에 긍정적 존중의 요구와 자기존중의 요구를 이차적인 동기원으로 가정하고 있다.2)긍정적 존중의 요구긍정적 존중의 요구는 실현경향성에서 도출되며 유아기에 학습된다. 이 요구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면 충족되고, 그렇지 못하면 좌절된다. 어떤 행동이 실현경향성이나 긍정적 존중의 요구 중 어느 하나만을 충족시키려고 할 경우 양자는 갈등을 일으킨다. Rogers는 중요한 타인들의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을 받으면 자기실현경향성과 실현경향성이 합치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합치는 개인을 ‘충분히 기능하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니다. 이에 반해 조건적 존중을 경험하게 되면 스스로가 원하는 존재가 아닌 타인이 원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게 하며, 이는 심리적 긴장을 유발한다.3)Rogers이론의 평가Rogers의 현상학적 견해는 직관적으로 타당한 측면이 많은데, 특히 개인마다의 세계를 인식하는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견해는 매우 합당하다. 그러나 Rogers는 그의 이론의 핵심인 자기실현의 개념적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과 연구방법의 주관성으로 인해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3-3.Combs:촉진자로서 교사Combs는 학습에 있어서 교사는 지식전달자의 역할이 아닌 학습자가 지식을 찾아가도록 하는 안내자이며 촉진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에 따르면 교사는 촉진자?보조자?동료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Combs는 훌륭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가르치는 교과에 정통해야 하며, 학습자들과
    교육학| 2008.06.26| 5페이지| 2,000원| 조회(1,782)
    미리보기
  • 사회의 구조화와 변동
    목차1.미시사회학2.사회 구조 기능주의3.Durkheim의 사회분업론4.구조의 변동, 사회의 변화5.사회구조의 해체와 재구조화6.사회구조변동의 실제7. 결 론1.미시 사회학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어쩌면 인간들이 집단과 조직을 만드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생겨난 것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인간은 집단과 조직이 없이 독자적으로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고 사회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논리는 사회가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형성되었고, 그 변화양상이 사회구성원의 의지대로 전개된다고 보는 시카고 학파의 상징적 상호작용론이 말하는 개인주의적 사회이론의 논지와 유사해 보인다. 이들은 인간을 능동적 존재로 보고 인간행위의 전달수단인 상징에 초점을 두며, 인간은 상징을 생산?사용?해석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보고 있다. 한편 상징적 상호장용론의 기본원리를 제시한 미드(G.H.Mead)는 사회를 인간이 자아를 형성하면서 마음을 같고 상호작용하는 상징의 사용장소라고 보았으며, 토마스는 인간이 어떤 상황에 직면하면 그것을 주관적으로 정의(상황정의)내린다고 보았다.) 즉 사회를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주체는 사회 구성원이라는 것이며, 개인을 형성하는 것은 주아(主我)와 객아(客我)의 상호작용, 그러니까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들의 능동적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거대한 체계보다 개인에 관심을 가지는 미시적 관점이다. 이와는 달리 개인보다는 체계를 중시하고 오히려 사회를 연구함에 있어서 개인에 대한 관심을 배제하는 관점도 있다. 이는 거시 사회학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필자는 그것들 중에서도 구조-기능주의를 살펴봄으로써 사회의 구조화와 그 구조의 변동을 통한 사회 변화를 조명하고자 한다.2.구조-기능주의사회학적 접근방법들은 역사적으로 항상 정반대의 입장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개인과 개인의 세상에 대한 이해에 관심을 가진 상징적 상호작용론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것이 기능주의이다. 이것은 개인을 거의 완전히 무 보았다. 이러한 구조-기능주의는 콩트(O.Comte)와 스펜서(H.Spencer)의 사회과학적 접근방법인 사회유기체설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스펜서는 사회를 생물유기체의 유추를 통해 현대 구조-기능주의의 기본 개념인 구조, 기능, 분화와 같은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즉 , 스펜서는 사회나 생물유기체 모두 구조와 기능의 분화를 통해 단순한 상태에서 복합적 생태로 진화하며, 이런 진화과정이 가장 이상적인 진보라고 보고 있다. 사회유기체설은 인간의 신체 각 기관이 저마다의 역할을 통해서 생명을 유지한다는 생물학적 예를 들어 설명하기도 한다. 각 신체 기관들은 각자의 기능만을 수행하지만 그것들 중 하나가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면 다른 기관들도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생명은 죽게 된다. 이처럼 사회도 구성원내지 사회 조직(집단) 각자가 분업화, 전문화된 역할을 수행함으로 인해 하나의 기능집단이 기능을 상실하게 되면, 다른 기능도 마비되며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사회도 목적달성기능, 생산기능, 공동체 유지기능, 가치관 공유기능 등의 제 기능을 수행하는 사회 요소들이 구조화되어 각 기능을 수행하며 기능간의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파슨스와 머튼과 같은 미국의 기능주의자들은 사회 계급과 경제 제도, 정부, 군대 등 주로 사회의 거대한 구조에 관심을 가졌으며, 개인에게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연구 작업은 명백히 콩트와 스펜서 뒤르껭의 영향을 받았고, 따라서 사회 구조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3.Durkheim의 사회분업론사회가 이처럼 제 기능을 수행하는 요소들이 분리되고 저마다의 기능 수행이 구조화(정형화)되고 사회 유기체설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물음을 해결하기에 가장 적합한 것은 사회학에 있어서 과학적 방법의 도입에 큰 공헌을 한 뒤르깽의 이론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뒤르깽의 사회 분업론은 인간사회가 기계적 결속관계에서 유기적 결속 관계로 진화되어 가는 일기 마련이며, 사회의 규범적 일탈 행위를 획일적이고도 격렬하게 형법상으로 다루던 기계적 결속관계가 획일성의 요구가 약화되고 개인간의 차이를 융통성 있게 허용하는 유기적 결속관계로 바뀌는 것은 불가피한 추세로 보았던 것이다.사회 분업론을 논의함에 있어서 집합적 가치의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집합적 가치의식은 같은 사회에 속한 구성원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신념과 감정의 총체라 할 수 있다.)집합적 가치의식이 지배하게 되는 범위와 정도는 사회의 두 가지 유형과 연관되어 있다. 기계적 결속관계로 특징지어지는 전근대적인 사회일수록 사회적 존재형태의 대부분은 집합적 가치 의식에 의하여 강하게 통제되고 있다. 기계적 결속관계가 깨지면서 등장한 유기적 결속 관계, 즉 분업의 정도가 높은 근대적 사회는 어떤 가치 의식에 의하여 지배되는가 하는 문제는 이해하기가 훨씬 어렵고 까다롭다. 유사성과 동질성이 특징인 기계적 결속 관계의 도덕적 바탕이 되었던 집합적 가치 의식이 사회적 분업과 분화의 정도가 높은 유기적 결속관계의 도덕적 바탕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스펜서는 현대사회는 자유롭게 교류하며 의견을 나누어 상호간에 의견의 일치를 보는, 즉 계약 위에서 그 결속관계가 유진된다고 설명한다.) 이에 뒤르껭은 계약당사자들에게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은 계약이 아니라 그것과는 독립되어있는 제도화된 규범이라고 보았다. 즉, 구조화된 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의 지위에 따른 역할을 다하고, 약속을 이행하는 것은 개인의 결정과는 관계없는 법과 관습이 정한 역할(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4. 구조의 변동, 사회의 변화구조-기능주의에서 설명하는 사회 변화의 과정은 외부환경의 변화에 따른 구조의 변화(기능들의 변화)와 이에 대한 적응이다. 여기서 적응은 사회 체계가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이다. 사회 유기체설에서는 유기체가 외부환경의 변화에 항상성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을 통해 사회 체계도 역시 외부환경에 변화에 따라 그 내부 구조의 기능들을 변화시켜 외부 변화에 대해 적응하는 과정을 통해 르며 체계의 한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나면 체계의 다른 부분에서 이에 대항하는 반작용이 일어나 사회체계가 다시 균형상태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이때 나중에 이루어진 균형은 변화되기 이전과는 다른 ‘변화된’ 균형이다. 예를 들어 민주적인 정당제도가 무너지면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군인이 나서게 되고 파시즘 체제가 형성되어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질되긴 했지만 균형을 유지할 수는 있는 것이다. 이것이 파슨스가 설명하는 사회 체계의 변화 이론이다. 파슨스는 사회가 더욱 복잡하고, 더욱 진보된 사회로 진화한다고 생각한, 스펜서를 비롯한 19세기의 진화론자들처럼 사회 진화를 받아들였다.구조화 되어있는 사회는 견고해 보이지만 사실 작은 변화에 의해 흔들릴 수가 있다. 그러나 구조화된 사회는 그러한 사회 구조의 붕괴를 막기 위한 조치로써 변화의 통제와 질서유지를 통한 사회 체계를 회복하기 위한 작용을 하게 된다. 사회구조가 해체되는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구조화된 사회가 수행하는 노력(질서유지, 통제)을 통해 사회는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 재구조화 하게 된다. 위에서 살펴본 것이 사회문화현상이 구조화되고 그것이 다시 해체되고 새로운 구조로 변동하는(재구조화 과정을 겪는 것) 것에 대한 대략적인 과정이다.5. 사회구조의 해체와 재구조화구조화되어 있는 사회에 변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사회학에서는 일탈이라고 한다. 일탈은 구조화된 사회 내에서, 일반적인 분포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탈에는 양(+)의 일탈과 음(-)의 일탈이 있다. 양적일탈은 사회가 추구하는 목적에는 동의하지만 그 수단에 동의하지 못함으로써 사회에 동조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양적 일탈의 대표적인 예는 천재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천재는 시대를 앞서가는 의식을 가지거나,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행동이나 사고는 당 시대의 사회(구조화된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이며, 정상적이지 못한 것으로 취급된다. 이러한 경우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아인같은 모습이 아니다. 새로운 기능의 요구에 의해 그것들을 받아들인 새로운 구조화된 사회이다. 아인슈타인의 변동가능한 시공간에 대한 인식은 초기에는 뉴튼 물리학을 신봉하고 있던 많은 학자들의 저항을 받았으나 결국은 그 아인슈타인의 시공간을 받아들이게 된다. 일탈에 대한 구조화된 사회의 저항과 구조화된 일탈의 포섭을 통한 재구조화 과정이다.이제껏 이야기한 양적일탈외에 음적일탈도 있는데, 이것은 쉽게말하면 사회부적응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추구하는 목표에도 동의하지 못하고, 그 수단에도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일탈은 양적일탈과 달리 개혁을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현실에 대해 도피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이러한 음적일탈도 사회 재구조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부정적 일탈은 사회문제를 야기 시킨다. 부정적 일탈도 역시 긍정적 일탈처럼 일탈의 구조화를 이루는데 , 부정적 일탈의 구조화는 사회문제(무질서, 범죄 등)가 사회 제 분야에 확산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일탈의 구조화는 구조화된 사회 체계의 붕괴를 야기 시킨다. 이에 사회는 부정적 일탈로 인해 야기된 사회문제를 통제함으로써 사회를 유지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일탈에 대한 해결책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구조 기능주의에서는 일탈이 사회 내에서 기능을 수행할 역할이 없음에 기인한다고 보고, 구조를 변화시켜 새로운 기능을 창출하여, 일탈집단에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일탈을 해결한다고 보고 있으며, 갈등론에서는 지배계급의 피지배계급에 대한 억압수단인 제도를 없앰으로써 갈등을 해결하고, 일탈을 해결한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상징적 상호작용론에서는 일탈이 구조화된 사회의 지배적 집단에 의해 일탈이라고 낙인찍힘으로써 2차 일탈이 일어나 일탈이 심화된다고 보고, 낙인을 찍지 않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위에서 보다시피 구조화된 사회는 해체의 위기를 겪은 후 새롭게 재구조화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새로이 구조화된 사회가 표면적으로, 기능적인 면에서는 변하였을지라도 계이다.
    사회과학| 2008.06.26| 6페이지| 1,500원| 조회(339)
    미리보기
  • 전태일 평전 서평
    『전태일 평전』을 읽고목차1.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2.전태일의 생애와 평가3.전태일의 업적과 그 배경1.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인간은 사회라는 집단에 소속되어 살아가면서,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이나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하고, 주변 환경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며 살아간다. 우리가 위인이라 부르거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도 사회에, 그리고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그 들의 일생을 통해서 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전자는 한 인간의 일생이 사회나 역사에 미친 영향을 중요시하는 관점이고, 후자의 경우는 시대상황이나 한 인간의 주변 환경이 그 사람이 그러한 일생을 살도록 유도했다거나 같은 삶을 살아도 시대에 따라 영웅으로 평가받거나 정반대로 악인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는 관점일 것이다. 이 두 가지 관점은 시대에 의해 영웅(위인)이 탄생하고 그 영웅의 일생동안의 업적을 통해 시대를 변화시킨다는 의견으로 통합되기도 한다. 인물에 대한 평가도 한 시대에는 위인으로 평가받던 사람이 후대의 재해석을 통해 악인이나 범인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전에는 악인으로 평가받던 사람이 후대에 위인으로 재평가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신라의 김유신 장군의 경우 계속해서 구국의 영웅이나 민족 통일국가를 이룬 명장으로 평가받다가 20세기 초 민족주의 사학자들에 의해 신라의 삼국통일이 외세의 개입에 의한 통일이자 민족의 역사를 한반도내로 제한하게 되는 결정적 사건이라고 평가되면서 그 주역이었던 김유신 장군의 평가도 달라지게 됐다. 물론 아직까지 김유신을 불세출의 영웅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전혀 없어지지는 않았다. 인물에 대한 평가는 인물의 상황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위인이 될 수도, 악인이 될 수도, 평범한 범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마다 사회마다, 시대마다의 위인은 다를 수 있다향을 받고, 그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위인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은 범인들에 비해 사회에 미친 영향이 막대하다. 어쨌든 우리가 위인이라 칭하는 사람은 당시의 사회 속에 살았고 사회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2.전태일의 생애와 평가위인전이나 그와 유사한 전기나 평전을 읽다보면 과연 이 사람이 처한 상황이 실제와 달랐다면 그와 같이 행동하고 그와 같은 업적을 쌓을 수 있었는가?라는 의문이 드는 때가 많다. 한편으로는 그가 처한 상황이 그 인물로 하여금 그러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몰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필자는 『전태일 평전』을 읽을 때마다 전태일이라는 사람이 어째서 근로기준법 준수를 부르짖으며 자신의 몸을 불태울 수밖에 없었는지를 다시 새삼 느끼게 된다. 전태일은 1948년 대구의 한 가난한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나 1954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1960년 남대문초등학교 4학년으로 편입하였으나, 같은 해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학교를 중퇴하고 이 때부터 동생과 함께 동대문시장에서 행상을 하며 생계를 이었다. 1965년 아버지에게 배운 재봉기술을 바탕으로 평화시장의 피복점 보조로 취업하면서 그의 평화시장에서의 삶이 시작된다. 그는 그 곳에서 하루 14시간이상의 중노동을 하고 받은 돈이 고작 당시의 커피 값인 70원 정도였다. 작업환경 또한 열악했고 근로자에 대한 대우도 인간이하의 그 것이었다. 전태일은 당시의 근로조건을 보고 겪으면서 어째서 자신들의 이러한 환경에서 이러한 대접을 받으며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고 의분을 느끼게 된다. 또한 아버지로부터 그 존재사실을 알게 된 근로기준법을 접하면서 점점 노동운동가로 변하게 되었다. 그는 경제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좀더 근로자들의 입장을 나타내려고 재단사가 되기 위해 임금이 적은 재단보조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근로조건이나 처우가 비교적 좋은 재단사가 된 이후에도 사장과 타협하기 보다는 자기보다 열악한 근로조건에 있는 근로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근로조건을 개하는 동료들과 함께 ‘바보회’를 결성하여 평화시장의 노동실태를 조사하며 본격적인 노동운동을 하게 된다. 노동실태를 조사하면서 평화시장의 공장들이 근로기준법을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노동환경 조사 결과를 토대로 노동청과 서울특별시에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모두 묵살 당했다. 결국 그는 「대통령 전상서」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 평화시장의 근로 환경을 고발하였으나 그것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자 근로기준법 화형식과 함께 분신함으로써 생을 마감하였다. 전태일의 죽음으로 그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도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 또한 그의 죽음은 민주사회로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회적 열망과 결합하여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무반응으로 일관하던 당시의 정부와 기업인 그리고 관료들에게 경각심을 주었다. 그리고 1970년대 이후의 노동운동에 발화의 역할을 하여 한국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었다.3.전태일의 업적과 그 배경분석전태일이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열악한 근로조건에 의분을 일으켰던 시대는 1960년대 후반이었다. 1960년대 후반은 61년 박정희가 군사정변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고 중앙정보부 등의 초법적 기관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던 시대였다. 또한 4.19를 통해 끓어오르던 민주화의 염원이 억압적 통치에 의해 눌려있던 시대이자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성장위주의 경제계획이 실시되고 수출량 증대에 목숨을 걸던 시대였다. 정부의 관심은 오로지 경제성장과 수출증대에 있었으며 그러한 경제성장의 이면에 존재했던 노동자들의 근로환경이나 불합리한 노동조건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형식적인 법이나 노동청 등의 근로자를 위한 관청이 있었으나 그 것들 역시 근로자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수출과 생산증대에만 관심을 가져 그러한 것들이 충족되면 근로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을 하든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즉 그들은 근로자의 편이 아닌 기업가들이나 공장주들의 편이었다. 전태일이 배운 것 없고 가족의 생계를 걱정해야하는 곤궁한 상것은 바로 이러한 열악한 환경을 그가 몸소 보고 겪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정당하고 평화적인 개선 요구를 정부나 공장주들이 모두 외면하였기 때문에 극단적인 분신을 통해 자신의 뜻을 알리려고 한 것이다. 재단사라는 직위에 오른 후에도 끝까지 자기보다 못한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못 본체하지 않고 그들을 감싸고 대변한 것 등은 그의 의지에 의한 것이지만은 애초에 그가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극단적으로 분신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답답하고 분통터지는 사회현실에 의한 것이다. 그 시대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60년대 말이 노동환경이 가장 열악한 때이고 70년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개선되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만약 전태일이 70년대의 노동환경을 경험했다면 극단적으로 분신을 하면서 까지 근로조건 개선을 부르짖었을까? 아닐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다. 70년대의 노동환경이 60년대 보다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열악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그것의 개선을 위해 분신했을 수도 있다. 현실에 대한 인간의 반응의 양상이나 강도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상황을 경험하고도 다른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6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노동환경이 개선된 오늘날에도 노동환경이 불합리하다는 이유로 투쟁을 하고 극단적인 시위를 하는가 하면 전태일과 동시대에 같은 근로환경을 경험하고도 그 현실을 수긍하며 살아간 사람도 있었다. 반대로 70년대를 살면서 비교적 개선된 노동환경을 경험하고 그러한 삶을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가정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70년대의 노동환경의 진전에 전태일의 죽음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시대와 그가 처한 상황이 그를 그러한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 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 시대적 상황이나 근로조건이라는 2차 집단이 아닌 그의 가정환경이나 가족을 보면서 더욱 확신을 갖게 된다. 그는 가족은 경제적으로 궁핍했다. 그로 인해 전 그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평이한 삶을 살았더라면 후에 대학생이 되어 민주화운동이나 시위에 참여할 수는 있었겠지만 노동운동을 하고 분신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가 그 시대의 대다수 청년들처럼 어린나이에 근로자가 되어 가혹한 노동환경을 경험했어도 그의 아버지로부터 근로기준법에 대해 알게 되지 않았다면 근로조건에 불만을 가졌을지언정 본격적인 노동운동을 주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러한 모든 조건이 전태일과 똑같다고 해서 모두가 그와 같이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노동운동과 분신을 통해 생을 마감하게 된 데에는 사회적 조건과 가정환경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평가의 문제인데 그의 분신사건은 한국 노동운동의 시발점이자 노동운동의 새 지평을 연 사건이라고 평가받고 우리는 그를 노동운동의 상징으로 기억한다.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의 생애와 분신을 통한 죽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상징성이다. 전태일 이전에 누군가가 노동환경의 심각성을 깨닫고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동운동을 했다면 우린 전태일이 아닌 다른 이와 다른 사건을 노동운동의 시발점이자 노동운동의 새 지평을 연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다. 전태일 이후 노동운동을 하면서 분신, 투신 등을 통해서 목숨을 내던진 사람은 많이 있지만 우리는 전태일 만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태일보다 더 조직적인 노조를 결성하고 더 대규모의 노동운동을 주도한 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을 기억하기보다는 전태일을 기억한다. 또한 그의 죽음이 있고 난 뒤에 그 뒤를 잇는 노동운동이 꾸준히 이어지지 않았다면 그 사건은 단편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거나 잊혀졌을 것이다. 하지만 전태일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가 노동운동에 뛰어들고, 한 청년의 분신이라는 사건이 민주화를 갈망하는 우리 사회의 요구와 결합해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인권운동 등 각종 투쟁으로 번져나갔기에 우리가 그를 기억하고 그의 생애와 분신을 기억하는 것이다. 전태일이라는 인간의 생애와 죽음이 불씨라면 그의 주위를 둘러싼 환경
    독후감/창작| 2008.06.26| 3페이지| 1,000원| 조회(508)
    미리보기
  • [감상문]영화<장미의 이름> 감상문
    이라는 영화는 옴베르트 에코가 쓴 이라는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좋은 책이라고 소개 받았을 때였다. 그 때 대략의 내용을 들었고 내용이 수도원에서 일어난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에 관한 것이란 것을 알고 흥미를 많이 가졌던 작품이었다. 이제껏 읽을 기회가 없어 읽지 못하다가 수업 과제를 확인하며 이라는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1986년 장 자끄 아노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이다.영화는 전 유럽에 걸쳐 마녀사냥과 종교재판이 미친 듯이 행해지던 1327년 이탈리아 북부의 베네딕트 수도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수도원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사건이 주된 내용이다. 영화는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기 위해 프란체스코파의 윌리엄 신부와 그의 제자 앗소가 수도원에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수도원은 아델모 수사의 죽음을 시작으로 의문의 죽음들이 잇달아 일어난다. 그 와중에 주검에 모습들이 피에 빠지고 물에 잠긴채로 발견되자 묵시록의 예언과 연결하여 해석한 우베르티노 신부의 발언으로 묵시록적 분위기에 휩싸이게 된다. 원장 신부를 비롯한 대부분의 수도사들은 이 사건이 악마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 믿게 된다. 하지만 윌리엄은 일련의 사건들이 악마가 아닌 인간의 소행임을 확신하고 특유의 날카로운 분석과 추리로 사건을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죽음을 맞이한 수도사들이 서고와 관련이 있다는 데 착안한 윌리엄은 서고를 지키다 늦은 밤에 누군가가 책을 읽던 것을 그 책 속에서 단서를 발견하고 조사하던 중 책을 읽고있던 수도사가 책을 가지고 도주하게 된다. 책과 수도사를 쫒는 과정에서 윌리엄의 제자 앗소는 먹을 것을 구하러 왔던 마을처녀와 정사를 벌이게 된다. 앗소는 그날 밤 윌리엄에게 고해를 하고 신앙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사건을 수사하던 중 윌리엄은 시신의 손가락과 혀가 파랗게 변색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수도사들의 죽음에 비소가 관여하지 않았나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사서와 보조사서의 행동을 수상쩍다고 느끼던 윌리엄은 이 사건은 책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고 출입이 제한되어있는 비밀 서고를 추적하게 되고 찾아낸다. 그곳에는 종교적인 이유로 읽는 것이 금지된 금서가 있었고, 그 금서를 읽혀지지 않게 하기위해 수도원장과 원로 수도사들이 책장에 독을 발라놓았던 것이다. 금서의 정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썼다고 알려진 시학 2편 희극론이었다. 비밀서고에 들어갔을 때 이미 호르혜 수사가 그곳에 있었고, 그 수사는 진실을 알게 된 윌리엄을 죽이려고 금서를 읽게 하였다. 그러나 모든 전말을 알게 된 윌리엄이 속지 않자 호르헤는 책을 없애고자 금서를 찢어서 입에 넣고, 진실을 알게 된 윌리엄과 앗소를 죽이려고 서고에 불을 지른다. 윌리엄은 비밀서고 안에 있는 책들을 챙겨 가까스로 빠져나오고 길을 떠나며 영화는 끝이 난다.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4세기 초로 아비뇽 유수로 인해 로마 교황청이 아비뇽에 옮겨가 있었던 시기로 교황은 요한 22세였다. 때문에 교황청은 프랑스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프랑스 왕과 경쟁관계에 있던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자연히 교황과도 대립하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당시의 교회는 프란체스코회, 베네딕트회 등으로 이념과 성경해석에 따라 세력이 나누어져있었다. 프란체스코회 13세기에 성 프란체스코가 청빈 사상을 중심으로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설립한 이후 인노켄티우스 3세에 의해서 정식으로 인가를 받게 되면서 기독교의 한 분파로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내세우는 청빈 사상은 재력과 권위를 통해 세속에의 영향력을 행사하던 교황청과 기존의 수도회들에게는 껄끄러운 대상이 되었다. 면죄부의 판매 등으로 많은 부를 축적해온 교황청과 기존의 수도회에게 교회의 청빈을 주장하는 프란체스코회가 곱게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시대적 배경이 되는 중세 말기에는 성당 건축과 포교를 위하여 현금을 요구한 면죄부의 판매가 남용되어 그 폐해가 심각한 때였다. 이는 16세기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게 되는 실마리가 된다. 프란체스코회는 그리스도의 가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여 선언하고 수도자와 교황청의 청빈을 주장하였다. 교황으로서 황제의 임명권까지도 교황이 가져야한다고 생각했던 당시 교황 요한 22세는 프란체스코회의 주장을 못마땅하게 받아들이고 1323년에 회칙을 발표하여 프란체스코회의 주장을 묵살해버린다. 그리고 교회의 청빈을 주장하는 프란체스코회의 몇몇 신부들을 이단으로 몰았다. 이 영화에서도 프란체스코회의 지도자로 불리는 우베르티노 신부가 이단으로 몰려 사건의 수도원으로 이단 심문관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도피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기독교계의 대립으로 인해 황제파와 교황파로 나뉘어 대립하게 되는데 이를 역사적으로 구엘프와 기벨린의 투쟁이라고 한다. 이 역사적인 이름은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문호인 단테의 신곡에서도 언급된다. 이 대립이 중세말기의 유럽의 이데올로기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 것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이런 분열된 교회와 거기에 따른 논쟁이 표현되어 있다.14세기 중세 유럽은 종교 재판과 마녀 사냥이 광신적으로 행해지던 시기이다. 지식이 뛰어나거나 재주가 뛰어난 여성은 마녀로 몰려 화형당하고, 기독교의 교리와 맞지 않으면, 심지어는 같은 기독교인일지라도 해석이 달라 다른 견해를 보이는 종파나 수도사를 이단으로 몰아 화형을 시키던 시대였다. 당시의 종교는 성경의 본위가 아니라 교황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 옳은 것이 되어버린 시대였다. 그 한 예로 이 영화에서도 논쟁의 주제가 되는 기독교도의 청빈에 관한 것도 교황과 그 일파들의 입장과 다르다고 해서 이단으로 몬다. 그리고 이단 심판관의 그릇된 판결에도 항소하지 못하는 폐쇄적인 기독교의 특성이 극에 달한 모습들이 표현된다. 오늘날에 기독교에도 이러한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 다른 종교와는 다르게 유일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그 이외의 대상에 대한 경의는 모두 이단으로 보는 배타성이 강하게 남아있다. 필자는 이런 기독교의 배타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신앙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우선되는 가치로서의 신앙을 모든 사람에게 요구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과연 생활을 팽개치면서까지 행하는 종교 행위가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들 때가 많이 있다. 같은 종교를 믿더라도 신앙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 것을 강요한다고 해서 신앙심이 깊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구호를 들을 때마다 필자는 기독교에 대한 회의가 든다. 기독교의 이러한 완고한 배타성은 영화의 주된 이야기가 되는 의문의 죽음에서도 나타난다.죽음의 주된 원인은 웃음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서학 2편 희극론이 사건의 원인이 된다. 그렇다면 작품속의 호르헤 신부는 왜 그렇게 웃음을 금기시하였고 희극론을 악마의 유혹이라 생각하고 금서로 삼아 읽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것 또한 기독교의 한 폐단이다. 이것 역시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을 죽이고 자신은 끝까지 옳다고 믿는 종교의 배타성이다. 이 작품의 원작을 썼던 움베르트 에코도 이러한 기독교의 배타성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집필하지 않았나, 필자는 추측해본다.이 영화의 원작이 되는 소설 은 원래 이었는데, 단테의 나 ‘장미전쟁’, ‘장미십자회’ 등에서 보여지는 예처럼 역사적으로 누적되어온 ‘장미’의 상징성을 염두에 두고 ‘장미의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필자는 그렇다면 ‘장미’라는 이름에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탐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장미는 기독교와 관련된 이야기에서 많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의 ‘장미’라는 이름은 무슨 의미로 사용된 것인가? 이 이름에 대해서 일부 문학평론가들은 “소설의 화자인 앗소 수사는 자신의 청년기에 격었던 이 사건을 인생의 종착지에 거의 다 온 노인네로서 회상하면서 지난 시대의 그 거센 풍파를, 그 풍파의 핵심이던 진리들을 ‘장미’에 비유하고 있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움베르트 에코는 에서 “장미의 상징적 의미는, 그 정확히 의미한바가 잘 헤아려지지 않을 정도로 풍부하다” 고 서술하며 해석을 독자에게 해석의 자유를 주었다. 그에 따라 필자의 자의적인 해석은 이렇다. 장미는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꽃으로 여겨진다. 그것이 진실로 아름다운지에 대한 의심의 여지없이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여 왔던 것이다. 오랫동안의 인식의 축적과 대물림 속에서 스스로의 인지와는 관계없이 그것을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장미가 아름답지 않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이렇듯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지금 우리의 의식 속에서도 금기시 되어있다. 작가는 이러한 시점에서 ‘장미’라는 이름을 제목에 썼다고 본다. 중세의 인식은 기독교에 국한된 것이었고 그중에서도 기존의 교리해석에 의한 것에 국한되었다. 그 인식을 벗어나거나 부합하지 않는 것은 이단이라 받아들여진 시대이다.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의 판단의 재고도 없이 그 때까지 계속되어온 인식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종교의 폐쇄성을 ‘장미’라는 매개체를 통해 비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장미’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그 진실을 볼 수 없다는 측면에서도 해석이 가능하다. ‘장미’라는 이름에 현혹되어 그 본질에 다가 갈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종교라는 이름에 현혹되어 그것의 교리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한 종교인지도 알 수 없는 맹신이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7.01.25| 3페이지| 1,000원| 조회(335)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22
22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7
  • A좋아요
    6
  • B괜찮아요
    5
  • C아쉬워요
    4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7일 금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1:03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