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 문학의 고찰1.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실존주의 문학은 통시적 관점에서 구분할 때, 17세기의 고전문학, 19세기 초엽의 낭만주의 문학, 이후의 사실주의 문학, 그리고 19세기 말엽의 자연주의 문학과 시에서의 상징주의 문학에 이어, 사르트르나 까뮈로 대표되는 2차 대전 직후의 문학적 경향을 지칭한다. 실존주의 문학 작품은 말 그대로 실존주의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을 의미한다고 할 때, 과연 실존주의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실존주의는 낭만주의, 상징주의 등과 같은 문학적인 경향의 의미로 사용되기 이전에 먼저 철학적 개념이다. 실존주의 문학은 이처럼 그 용어 자체에서 이미 그것의 이해를 위해서는 실존주의 철학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뜻하며, 실존주의 문학의 특색이 우선 그 철학적 측면에서 조명되어야 할 것임을 말해준다.문학은 인간의 삶이 빚어내는 다양한 갈등과 경험들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존재와 세계에 대한 인식 ? 탐구 ? 성찰 등을 표현해 내는 것이라는 점에서, 결국 철학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여러 문화권에서는 오랫동안 문학과 철학을 명백하게 구별하지 않았고, 소크라테스 이후부터 철학과 문학을 분명하게 다른 개념으로 사용해온 서구 전통 안에서도 철학과 문학의 구별이 의심받기 시작했고 니체 이후 그 경계선은 무너져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문학과 철학은 그 다른 두 개념이 통용되는 이상 그것들은 논리적으로 어떤 구별이 있음을 전제한다. 철학적 텍스트는 객관적 언급 대상을 갖고 있지만 문학적 텍스트는 그러한 대상을 갖지 않고 허구적이며, 철학적 텍스트는 그에 대한 진위의 판단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반면 문학적 텍스트는 그렇지 않다.) 또한 그 방법론에 있어서도 철학은 논증적인데 반해 문학은 서술적이다. 즉 철학은 그가 발견한 진리를 논리적으로 체계화하여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문학은 그가 경험한 진리를 서술하여 표상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차이는 결국 진리와 그것의 표현수단인 언어간의 관계에 대해서 갖는 서로 다른학철학으로서 실존주의는 존재와 경험에 관련된 기본적 문제에 대해 가장 일반적 명제를 찾아내려 한다. 실존주의 철학의 핵심적 관심사는 바로 ‘인간으로서의 존재’이다. 그러한 존재를 실존주의는 ?실존(l' existence)?이라 칭하며 인간 외의 모든 존재(l' etre)와 존재론적으로 부별한다. 인간의 특수한 존재 양식을 가장 기초적이며 본질적인 탐구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실존주의는 하나의 철학적 인간학이다.)서구에서 실존주의 철학이 널리 논의된 시기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의 격심한 해체기를 거친 1920년 후반부터 약 10년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연원은 파스칼, 키에르케고르 등의 사상가들까지 소급되기도 하지만 협의로서 실존주의 철학은 주로 사르트르, 보부아르, 까뮈의 철학적 저서에서 전개된 사상만을 지칭한다. 특히 사르트르의 저서 《존재와 무》에서 실존주의 철학이 가장 체계적이고 명백하게 표현되었는데, 결국 실존주의는 사르트르의 이 저서에 담긴 사상이라 해도 틀리지 않으며 ‘실존주의 철학’이라는 개념 역시 사르트르의 이 저서가 출판된 뒤 처음으로 만들어져 그것에 부쳐졌다.)사르트르는 ‘철학적 문제와 그에 대한 대답은 인간의 인식과 뗄 수 없으므로 모든 철학적 문제는 방법론적으로 개개인의 구체적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곧 존재하는 모든 객관적 대상은 결국 우리의 인식에 의해 관념화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인데, 이러한 관념주의적 입장은 데카르트의 철학적 전통과 그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초경험적인 투명한 이성만을 의존한 데 반해 구체적 경험의 세밀한 서술에 바탕을 두고 대상과 세계를 파악한다는 점에서 사르트르의 철학은 행동주의적 실존주의로 구분된다. 그는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했는데 여기서 ‘실존’은 인간의 존재 양식을 지칭하며 ‘본질’은 우리에 의해 인식된 대상의 특성을 지칭한다. 즉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는 것은, 대상은 인간의 존재 양식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실존과 본질의 이와 같은 관계를않으며 그의 본질은 ‘결핍’이다. 또한 즉자는 물리적 인과법칙에 의해 서로 기계적으로 얽혀 있어서 그것들의 현상은 인과 법칙에 비추어 설명될 수 있는 것에 반해 대자 즉 인간은 그러한 결정론적 인과 법칙에서 해방되어 있다. 이것은 결국 대자로서의 인간은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 주며, 그것은 다시 인간이 정적인 상태에서 관조적 인식자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어떤 목적을 선택해야만 하는 행위자로서 존재함을 의미한다. 자유가 선택을 함의한다면 선택은 책임을 함의하고, 책임은 불안을 함축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인간은 불안으로부터의 탈출구를 모색하게 되며, 이처럼 인간의 불안이 그의 ‘대자’적 존재 구조 때문이라면 그가 ‘즉자’로 전환될 때만 비로소 그러한 불안이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대자가 즉자로 전환될 때 대자 본래의 목적은 무산된다. 그러한 전환은 의식의 완전한 상실을 의미하며 그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경험도 있을 수 없게 되는데, 이러한 조건에서는 ‘불안을 모르는 만족’을 경험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인간에게는 도피구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행동,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지만, 사르트르에 의하면 부여된 의미 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으며 인간만이 인간 외의 모든 것들에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자신은 ‘의미의 근거’가 될 뿐 그 자신은 아무런 의미 즉 정당성이 없는 것이며, 각각의 ‘나’의 존재는 ‘잉여적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소용 없는 고통이다.”라는 사르트르의 말이나 까뮈가 사용한 ‘부조리(l' absurde)'의 개념은 이러한 인간 실존의 보편적 상황 즉 ‘의미 없음’의 상태를 지적한 표현이다. 이러한 상태 속에서 우리가 삶의 가장 바람직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사르트르는 ‘자기 정직성(authenticite)’을, 까뮈는 ‘부조리에 대한 반항(revolte)'을 든다.실존주의 철학이 밝히고자 하는을 창작함으로써 비롯되며, 전형적인 실존주의 문학 작품들의 예로는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와 《자유의 길》 및 희곡 〈닫힌 문〉과 〈파리떼〉, 그리고 까뮈의 소설 《이방인》과 《페스트》, 희곡 〈칼리굴라〉 등을 들 수 있다.실존주의 문학의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제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20여 년 간이었다. 제 1 ? 2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동하는 정세 속에서 서구 지성인들을 위협한 것은 불안과 위기의식이었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위기감이 팽배했고 인간 존재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을 겪기 이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가오는 불안요소를 느끼지 못했고 여전히 안이한 발전의 꿈 속에서 스스로를 기만하며 지냈다.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대규모의 파괴와 더불어 기성사회의 체계와 질서가 전복되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야 비로소 과학의 이름 아래 이룩해 왔던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희망적인 진보와 낙관의 꿈으로부터 깨어나, 지금까지 자신들이 주장해 온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자문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현대사의 문명과 과정에 대한 자기반성은 나아가 인간 조건의 근원적인 물음까지 야기시켰다. 전쟁이 만들어 놓은 폐허는 근대 이후 세계를 보다 합리적인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진보의 믿음을 깨뜨려 주었으며, 전쟁의 체험은 인간이 죽음 앞에 선 단독자일 뿐이라는 자각을 불러일으켰다. 인간의 합리적 노력만으로 세계 자체가 합리화되지 않는다는 자각, 인간의 모든 합리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 자체의 근본질서는 불변한다는 자각, 조리나 합리에 대한 열망이 무위로 끝나버리는 세계의 부조리성, 그리고 그 앞에서 결국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죽음과 함께 무(無)로 끝나버리는 개체들에 관한 의식들은 전쟁이 인간에게 깨우쳐 준 근본적인 실존의식이었다. 불안의 결과로 자유에 대한 불신, 인간의 존재 근거로서의 신에 대한 철저한 부정, 인간 이성에 대한 불신, 세계의 무의미성 등이 지성인들의 사고를 지배하였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사르뮈는 우선 ‘실존주의’라고 불리게 된 철학 체계를 갖고 그것을 각각 《존재와 무》, 《시시포스의 신화》 등으로 대표되는 철학적 저서에서 주장하였으며, 그러한 철학적 사상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써 각기 《구토》와 《이방인》 등의 문학작품을 발표했던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철학적 사고와 문학적 의도가 거의 인과적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실존주의 문학의 중요한 특징을 문학의 근본적 기능을 철학적 사상의 구체적이고 절실한 표현에 두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그러나 실존주의 문학의 의미를 실존주의 사상의 전달에서만 찾는다면 그것의 문학적 가치는 상실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존주의 작품들이 담고 있는 철학적 내용이 그 작품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요소는 될 수 있겠지만 전부는 아닌 것이다. 실존주의 작품이 철학적 의도로 쓰여진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 역시 다른 문학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심리학적, 언어 ? 수사학적, 정치 ? 사회적 입장 등에서 해석되고 평가될 수 있다. 실존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구토》와 《이방인》을 예로 들자면 그것들은 문체나 이야기, 또한 논리적 흐름으로 볼 때 각각 독창적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담고 있는 철학적 내용은 과거의 어느 시대와도 다른 현대의 정신적 상황을 반영하는 만큼 보다 ‘리얼’하고 절실하다. 바로 그러한 철학적 사상은 작품의 문체의 톤과 잘 맞물려 작품 전체에 깊이를 마련하고 독자에게 밀도 있는 긴장감을 제공한다. 그리고 실존주의 문학 운동은 문학에 철학성을 크게 강조함으로써 문학이 갖고 있는 예술성 혹은 밀도, 그리고 긴장감과 깊이를 실존주의 문학 이전의 문학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색다르게 가져왔다.요컨대, 실존주의 철학자의 관점에서 문학은 일종의 사회 참여 양식으로서 모든 문학은 필연적으로 참여 문학이며, 따라서 문학의 기능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그 궁극적 목적이 있고 한 문학의 가치도 그에 따라 측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학의 문학으로서의 고유한 기능은 어느 한 가지 기능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난다.
수 능 반 대 의 조 건수학능력시험은 그 이름에서 그 본래의 취지를 드러낸다.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에서 수학할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그러나 이처럼 타당한 목적과 훌륭한 이름을 가진 수능시험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그 이름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도리어 전국의 모든 청소년들의 숨통을 조여대는 소위 악의 축이며 심지어는 우리의 소중한 어린 생명들을 죽음에까지 몰아 넣는 무시무시한 존재로서 그 힘을 과시하고 있다. 수능시험제도가 도입된 이래 끊임없이 제기되는 시험 자체의 문제들과 중등교육 전반의 문제 및 청소년의 자살로까지 이어지는 사회적 문제들을 개탄하며 수능시험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그 겉모습만 본다면,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즉 중등교육에서 고등교육으로의 진입과정에서 진입 희망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도구로서 사용되는 수능시험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타당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시험을 반대하는 입장이 적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를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것은 결코 수능시험 내부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한국의 현행 교육 전반과 사회적 구조 및 풍토, 나아가 역사적인 배경에서 그 근원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수능시험으로 대표되는 오늘날 한국의 대학입시경쟁의 심각한 문제는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따라서 최고의 대안을 내세운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단기간 내에 뚝딱 해결될 수 있는 일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일단은 현행 수능시험을 반대하는 조건들이 무엇인가를 알 때 그 해결책도 조금씩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현행 수능시험은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총 6년간 중등교육기관에서 학습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대학수학능력을 평가한다. 6년간의 준비와 노력 끝에 단 한 번의 시험으로써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표현에 대해 대학입학전형의 다양화를 들며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입장도 있겠으나, 아직까지도 수능시험이 수험생에게 자신이 어느 대학을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최고의 판단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수능시험은 6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의 교육내용을 불과 10시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일렬로 줄을 세우는 제도이다. 참으로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수능시험이 결국은 이와 같은 불합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또한 실제 중등교육현장에서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교육과정과 수능시험제도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존재한다. 중?고등학교 기간 동안 청소년들은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고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수능시험이라는―실상은 도구에 불과한― 단기적인 목표에 갇혀버리고 말게 된다. 자신이 장래에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꾸준하고 많은 노력을 해 왔으나 대학에 갈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는 한 수험생의 말은 정말 안타깝고 가슴아팠다. 우리 교육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또 그렇다고 해서 고교 과정에서 수능시험만을 철저하게 준비할 수도 없다는 것이 학생들의 생각이다. 교내활동이나 시험 등 수능 이외의 것들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심지어는 ‘대한민국 고등학교는 4년제’라는 말까지심심찮게 나오고 있다.그러나 문제를 계속 거슬러 올라가 본다면 이것은 곧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대된다. 비단 수능시험 자체가 갖는 성격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닌 것이다. 오늘날 대학의 모집수요는 이미 고교 졸업인원을 넘어서고 있다. 단지 대학에 가기를 원하는 것이라면 누구든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 대학’에나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학생들이 소위 ‘좋은 대학’에 가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그 ‘좋은 대학’이란 어떤 대학인가? 한국의 대학들은 학생들의 수능성적과 마찬가지로 일렬로 늘어선 서열체계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수능시험의 점수에 따라 학생들은 순위가 매겨지게 되며 그 순위에 맞는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이 대학의 순위, 즉 서열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다면 어떤 기준에 의한 서열인가? 그것은 대학 내의 연구 성과나 교육 환경에 의한 것이 아니라 결국 학생들의 수능성적에 의해 매겨지는 순위라는 데에 문제점이 있다. 훌륭한 교수진과 커리큘럼을 갖추고 학생들을 훌륭한 인재로 길러내는, 그야말로 ‘좋은 대학’이 아니라, 높은 수능시험성적을 얻은, 즉 이미 유능한 학생들을 뽑아서 데려가기만 하는 대학이 좋은 대학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본말이 전도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제도의 개혁 또는 개선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뿌리박고 있는 우리의 인식의 변화 또한 필요함을 깨달을 수 있다.
『나를 사랑하기』 3장과 8장제 3장 : 자신을 질책하는 소리를 찾아내어 쳐부수기우리내부에는 끊임없이 자신을 질책하는 비평가가 있다. 우리는 그 비평의 소리를 듣고 있는데 우선 비평가의 존재를 알고 비난의 소리를 제대로 듣고 파악한다면 당신은 승리한다. 비난의 소리는 심리적인 고통을 가져온다.또한 자부심과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방해한다.우선 조심해야 할 때를 알아야하는데 그때는 실수를 했을때와 비난받았을 때 그리고 우울할 때이다. 그런데 비평은죄책감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거나 성취동기를 불어넣어준다. 그런 비난의의도를 알았을때만이 당신은 비난과 싸울수 있다.1. 우선 첫째로 자기비난의 목적을 밝혀내본다.너는 내가 자라면서 배운 규칙만을 따르도록 나를 공격하고 있어. 너는 내가 이혼한 것에 대해서 속죄하게 하도록 계속해서 공격하는 구나 등은 자기내부에서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자신을 질책하는 비평가를 알게 되면 내부의 비평가가 무어라고 중얼거리든 간에 비난으로 인한 상처를 덜 받게 된다.2. 두 번째로 내적은 자기의 비난에 대응하자.자기 비난을 중단하려면 자기 질책에 대꾸하고 반박하는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그에 따른 세 가지 방법이 제시되는데 ①하우윗쳐는 자기비난을 깨뜨릴 수 있게 고안된 주문이다. 자신을 가차없이 질타하는 내부의 소리가 있을 때면 모독적인 언사로서 대응한다. 그쳐라를 강조하고 부정적 인지가 계속되는 것을 막고 벌을 준다. 중요한 것은 자기비난이 큰 손상을 입히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자기의 ②비난의 대가를 묻는 것은 그 비난의 대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 비난이 가져오는 부정적인 것을 살펴보고 중요한 항목을 비난을 공략하는 요약문에 결합시켜라.또 하나는 ③가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 방법은 중요하지만 충분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비평가가 잠잠해질 때 빈자리를 자신의 긍정적인 가치감이 지닌 소리로 대체해야한다. 비평가는 인생에서 내재적인 가치란 없고 훌륭하고 중요한 일을 할수 있는 잠재능력만이 존재한다고 인식시켰지만 가치는 지각하고 경험할수 있는 능력과 의식에 있다. 가치란 삶이 존재하는 데에 있다. 성취는 가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살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점 거기에 가치와 존엄성이 있다. 당신은 비난에 대처할만한 긍정적인 선언문이 필요하다.3. 내적비난을 무용지물로 만들자.건강한 방식으로 위와 같은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비난에 의존하지 않고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바르게 행하고 싶은 욕구 : 비난은 바르게 행하게 해주지만 더 건강한 전략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현실적으로 평가해 볼 수 있도록 당신의 인생관이나 신념과 개인적인 기준들을 검토하는 것이다.바르게 느끼고 싶은 욕구 : 비난은 더 가치 있게 느끼기 위해 높고 완벽한 수준을 설정했다. 하지만 나은 방법은 현실적인 자기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자기수용을 배우는 것이다.성취하고 싶은 욕구 : 더 많은 업적을 이루며 살기 위해 채찍질에 순응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하지만 더 건강한 방식은 첫째로 당신의 행동에 의해 당신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기존의 신념에 도전하는 것이다. 둘째로 당신이 세운 목표가 당신에게 적합한지의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새로운 동기제공자를 발견하는 것이다. 예전은 노력을 하지 않으면 공격을 헸으나 바람직한 것은 긍정적인 결과를 시각화하는 것이다.부정적인 감정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자기부정과 무가치감 : 비난을 통하여 높은 수준을 설정함으로써 무가치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한다. 바르게 느끼고 싶은욕구로 당신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보고 진솔하게 하는 법을 배운다.실패의 두려움 : 자기비난은 먼저 할수 없어라고 제시함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준다. 하지만 나은 전략은 실패의 의미를 재규정하는 것이다.거부의 두려움 : 배척받을 것이라 예측하게 해줌으로 배척받음으로 입을 상처에 둔감하게 해준다. 배척을 다루는 바람직한 전략은 대인관계에서의 실수를 그 당시 최상의 결정으로 재구성하기 자기 비난에 대처하는 구체적인 기술을 개발하기 미리서 남들이 자기를 거부한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실제로 그것을 알아보기이다.분노 : 자기 자신에게 분노를 터뜨림으로써 분노의 두려움을 다루도록 당신을 도와준다. 하지만 좋은 방법은 말하는 것을 배우고 타협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죄책감 : 당신이 느끼는 죄책감을 조절하도록 돕는 기능이 있다. 하지만 좋은 전략은 죄책감이 건전한 가치를 위반한대서 오는 것인지 불건전한 가치를 위반한 것에서 나온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좌절감 : 좌절감을 통제하는 방법은 자기최면으로 본질적인 가치를 확인하고 그것이 최상의 선택이었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당신 자신과의 싸움에서 관용과 연민의 감정을 유발하는 것이다.제 8장 : 실수 다루기당신은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자신을 비난하게 된다. 당신은 인심이 후함과 알뜰한 자발성과 억제성을 동시에 지닌 훌륭한 사회인이 되어야한다고 느낀다. 이런 상반되는 가치체계로 당신은 실수를 찾게 된다. 과거의 실수의 기억은 미래의 실수까지 피하려고 당신의 대인관계를 비롯한 여러 가지 활동을 제한한다. 하지만 작은 일에도 예기치 못한 실수는 생긴다.중요한 사실은 자기 존중감이 완벽함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실수를 하였을 때 자신이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자기비난을 하는 것이어야 말로 진짜 심각한 실수이다.1.실수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하기실수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실수를 다른 각도로 생각하도록 학습하는 것을 말한다. 즉 당신은 자신의 실수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고 당신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려하며 이같은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되면 당신이 정작 실수를 저질렀을때에 좀더 융통성 있게 반응하여 실수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나아가도록 한다.1)실수를 통하여 배운다.실수는 성장을 촉진하고 인식을 변화시킨다. 실수는 모든 학습과정에 필수적인 요건이다.이를 점진적 접근법이라고 한다. 실수로 인해 성공적인 이행에 더 가깝게 되는 것이다. 실수는 당신이 고쳐야 할 점을 알려주고 완성하는데 최선을 다하도록 유도한다. 실수는 학습과정에서 피이드백의 기능을 하여 목표로 향하게 해준다.2)실수는 경고의 신호로 작용한다.완벽주의의 관점에서는 실수를 죄악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실수를 경고로 보지 않고 고발로 간주한다. 당신은 실수의 교훈을 생각해볼 겨를조차 없이 비난의 공격을 받고서 자신을 방어하는데 급급하다. 실수를 하나의 경고신호로 간주하면 완벽주의는 격파될 수 있다.3)실수는 자발성을 위한 선결요건이다.실수할까 두려워하면 자기표현의 욕구가 파괴된다. 실수를 인정한다는 것은 사람을 실망시키는 것 서투른 순간을 갖는 것 불쾌한 말투로 대화하는 것이 괜찮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실수는 당신이 새로운 사람의 판단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당신이 표현하는 것을 빈틈없이 주의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자발성을 저해시킨다.4)실수는 필연적인 것이다.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사회적 직업적 실수 서투른 결정 놓쳐버린 기회를 허용해야한다. 지금이 바로 완벽주의라는 불가능한 꿈보다 실수에 관해 합리적인 관점을 취해야 할 시기이다.5)실수란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실수는 당신이 나중에 다시 생각해 봤을 때 자신이 다르게 행동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단어는 나중이다. 당신이 취한 행동과 후회사이에 일정시간의 경과되고 있다. 실수란 나중에 당신이 그 행동에 대해 내린 해석이나 판단의 결과이다. 즉 실수란 과거사를 당신이 회고하면서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어떤 것을 했어야 했다고 깨달을 때 붙여지는 명칭이다.2.자각의 문제당신은 항상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만한 행동을 선택한다. 이것은 어떤 것보다 본질적인 동기이다. 행동할 당시에 최선책으로 보였던 행동은 자각에 의한 것이다. 자각은 지금 당장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모든 요소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당신이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에 관한 명료성의 정도를 말해준다. 당신은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했고 실수는 나중에 해석한 결과이다. 따라 실수를 좋다 나쁘다라기 보다는 현명하다와 그렇지 않다 쯤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당신이 취한 행동은 그 당시 자각의 수준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아량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어떤 경우이건 자각을 확장시켜 굳게 다짐하는 것이 효과적이다.1)책임감책임감이란 자신이 취한 행동의 결과를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당신이 치러야 할 대가를 제대로 꺠닫는다면 당신은 비교적 현명한 행동을 취하고 나중에 실수라고 보여지는 행동이 더 적을 것이며 자신을 더 좋게 느낄 것이다. 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당신의 행동에 치러야 할 자각이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2)자각의 한계자기행동의 결과에 대한 당신의 자각을 제한시키는데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있다.무지 예전에 비슷한 상황에 처한 적이 없기에 결과를 예언할 수 있는 적당한 방법이 없다망각 많은 사건은 일상적이고 사소하므로 기억하지 않을 수도 있다부인 사람들은 예전에 했던 실수의 결과를 부인한다. 그리고 변화하기를 꺼린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는 것이 두렵고 위험부담이 큰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늘 똑같은 선택을 하고 고통스런 실수를 반복한다.
{심미주의 (aestheticism)1. 심미주의의 개념심미주의(審美主義, aestheticism)는 유미주의(唯美主義), 탐미주의(耽美主義) 또는 예술지상주의라고도 하는데, 넓은 의미로 일종의 세계관 내지 인생관으로서 모든 가치 중에서 미(美)를 최고로 하는 입장을 말하며, 이미 낭만파 시인이나 쉘링의 사상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문예사에서의 심미주의는 미의 창조 를 언어 예술의 유일한 목적으로 추구하는 창작 태도를 말하며, 보통 예술을 위한 예술(L'art pour l'art ) 의 한 지류로서 19세기 후반에 나타난 일종의 문예사조를 가리킨다. 예술은 그 스스로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므로 도덕과 정치 등의 비예술적 표준에 의하여 판단될 수 없다는 것이 근본 입장이다. 자연주의 문학이 인생을 위한 예술 이라 한다면, 심미주의 문학은 예술을 위한 예술 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미(美) 그 자체를 목적으로 장려하고 미의 창조를 예술가 본연의 유일한 기능이라고 보면서 예술의 모든 공리적·도덕적 목적을 배격하는 태도 내지 감성이라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심미주의는 전통적이고 인습적인 사조에 대해 거부의 자세를 취하면서 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열렬한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프랑스에서는 포우(Edgar Allan Poe)의 영향 아래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에 의해 강조되었고, 영국에서는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를 선두로 하여 페이터(Walter Horatio Pater) 등이 이에 이어지고, 와일드(Oscar Wilde)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한다. 이를 신봉하는 입장에 선 예술가들은 예술이 현실 생활의 모습이나 냄새를 멀리할수록 더 순수하고 아름다워지는 것으로 보았으며, 실제 생활까지도 예술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심미주의는 예술의 존엄성을 신봉하는 엄숙한 문학 예술가들의 신념을 나타냈으나 보다 일반적으로는 퇴폐적 양상을 띤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술을 위한 예술파, 상징파, 데카당스, 고답파 등은 자리잡고 있는 것과는 대응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심미주의가 발생한 배경과 그 전개 양상을 살피지 않은 채 단순히 그 공통성만을 추출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 것이다.심미주의 또는 그 예술적 양상으로서 예술을 위한 예술이 발생한 배경은, 그것이 낭만주의와 상징주의에 붙박이나 되는 것처럼 동반되었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와 상징주의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사회적 조건과 동일한 것이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예술을 위한 예술이 주창된 배경은 먼로 비어슬리의 지적에 따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면에서 특화해 살펴볼 수 있다.첫째,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사회의 제 분야에서 나타난 기업 활동의 자유가 예술에도 적용된 것이라는 관점이다. 실용성, 유용성이 제일의 가치가 되어가는 풍조 속에서 예술가들은 예술품을 생산할 자유를 획득할 필요가 있었고, 자신들의 노동조합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예술이나 문화적인 분야에 대한 사회의 적의 속에서 자기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자위권의 발동으로 예술을 위한 예술의 주장을 이해하는 관점이다. 또한 예술가들은 싸구려 물건이 범람하는 자본주의 예술 시장에서 자신의 상품이 싸구려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둘째, 예술가의 새로운 인권을 지키기 위해 그것이 필요했다는 관점이다. 즉 예술을 위한 예술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지 않으면 멸망하고 말 천부적 재능의 개인을 위한 자기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검열이 혹독했고 시인, 작가, 예술인들에 대한 억압, 투옥이 빈번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예술을 위한 예술의 관점이 필요했다는 생각이다.셋째, 예술을 위한 예술의 주장이 전문적인 윤리학의 약호였다는 점이다. 자신의 미의 종교를 신봉하며 자신의 재능에 대해 일편단심으로 헌신하고 완전성에 몰입하였던 플로베르 같은 작가들의 정신에 있어서 외적 압력으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요구는 예술가가 자신의 최상의 의무, 즉 그의 예술 자체에 따라서 살 수 있는 기회에 대한 요구였다. 예술은 준수되어야 할 왕의 죽 음》(1893)과 O. 와일드의 《살로메》(1894)의 삽화가 있다. 그의 아름다우면서도 병적인 선묘 (線描)와, 흑백의 강렬한 대조로 표현되는 단순하고 평면적인 형태묘사는 퇴폐적 분위기로 가 득 찬 환상의 세계를 낳았다.의 그림을 염두에 둔다면 세기말의 한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체로 이 용어는 1850년대부터 쓰여 오다가 18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스윈번이 예술을 위한 예술 을 선언했고, 페이터는 삶 자체를 예술의 정신 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심미주의는 예술관, 인생관 그리고 문학 예술의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R. V. 존슨의 견해첫째는 예술을 위한 예술 이다. 이것은 교훈적 시가 인생 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준다는 견해에 저항해서 일어난 현상이다. 예술관으로서의 심미주의는 예술을 인생에서 분리시키고 있다. 예술은 인생과 무관하기 때문에 아무런 도덕적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 의 개념을 발전시킨 것은 영국보다 프랑스가 먼저이다. 시인이자 조각가인 고티에는 소설《모팽양(孃)》(1835)의 서문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 에 대하여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태도는 19세기 심미주의자들이 예술에서 교육적인 요소를 제거해 버리고 기쁨을 주는 데만 주력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예술 작품에 도덕적인 교훈이나 영감을 주도록 요구한다는 것은 예술의 정당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였다. 예술 작품의 가치는 우리들의 일상행위나 인생에 대한 전반적인 생활 태도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고, 오로지 미적 쾌락만으로 그 가치가 인정되었다.둘째는 예술의 정신 (관조적 심미주의)으로 인생을 보려는 태도이다. 심미주의자들은 인생을 투쟁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광경으로 보고 있다. 즉 초연한 자세를 취함으로써 구경꾼이 되어 삶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미주의자는 자신의 정서에 대해서도 구경꾼 노릇을 한다. 여기서 R. V. 존슨은 명상적 심미주의 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즉, 예술이 갖는 사회적 기능으로서 ww.parodyman.com.ne.kr/p2/p2-6.htm4. 대표 작가심미주의는 그 자체로 문학적 방법을 획득한 사조라기보다는 다른 사조와의 연관 속에서 변화해간 사조라는 이해가 온당한 만큼 그 문학적 특징은 경우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띠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는 낭만주의나 상징주의에서 다루지 않은 작가들 가운데 심미적 경향이 두드러진 작가들을 중심으로 심미주의 문학의 전개를 살펴본다.1) 에드가 앨런 포우(Edgar Allan Poe, 1809∼1849) : 심미주의 문학에서 가장 먼저 거론될 수 있는 시인으로 심미주의의 구체적인 전개는 그의 활동으로부터 시작된다. 19세기 전반기에 살았던 포우는 단편소설 작가로서의 업적도 뛰어나지만 시에서도 심미주의의 선편을 쥐고 있다. 그의 시는 미(美)의 운율적 창조이다{) Edgar Allan Poe, 《The Poetic Principle(시의 원리)》, 1850.라는 생각은 보들레르나 말라르메에게 영향을 주어 산문시를 낳게 하였다. 그는 또한 시를 교훈이나 실용적인 도덕의 대용(代用)으로 삼는 것을 거부하였고, 그 때문에 실용주의를 신봉하는 미국에서는 이단자로 취급당하였다. 그의 대표작인 〈애너벨 리(Annabel Lee)〉(1849)는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로, 깊은 내용을 찾아 보기는 어렵지만 아름다운 어조와 음악성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포우의 시는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단편소설의 분위기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는데, 〈엘도라도(Eldorado)〉(1849)가 그 대표적인 경우로 이상세계의 비전을 추구한 독특한 작품이다.2) 고티에(Thophile Gautier, 1811∼1872) : 프랑스의 시인, 소설가, 비평가로 초기의 그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제창하여 탐미주의적 경향을 띤 시를 썼으나, 차차 조형적인 비개인성을 주장하게 되었으며, 형식의 조탁(彫琢)에 힘써 고답파(高踏派) 시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시는 감상적(感傷的), 인도주의적 공리성과 관념성을 배격하고 윤곽의 미적 초상화(Imaginary Portraits)》(1887), 비평집 《감상집(Appreciations)》(1889), 미완의 장편 《가스통 드 라투르(Gaston de Latour)》(1896) 등이 있다.5)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 1821∼1867) : 파리 출생으로 아버지는 62세의 원로원(元老院)사무국 고관이었고, 어머니는 후처로 28세였다. 이러한 부모의 연령 불균형이 이상 신경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성년이 된 보들레르는 의붓아버지가 남겨준 재산을 상속하여, 센 강(江)의 생 루이섬(島)에 거처를 두고 댄디즘의 이상을 추구, 호화판 탐미 생활에 빠졌다. 흑백 혼혈의 무명 여배우 잔 뒤발과 알게 되어 관능적인 시흥(詩興)의 원천으로 삼았고, 평생의 악연(惡緣)을 맺은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24세 때 《1845년의 살롱》을 출판하여 미술평론가로서 데뷔하였으며, 문예 비평·시·단편소설 등을 잇달아 발표하여 문단에서 활약하는 한편, 1848년 의붓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2월 혁명의 폭동에도 가담하였다. 또 E. A. 포우 작품을 번역·소개하였고, 만년에 이르기까지 17년간 5권의 뛰어난 번역을 완성하였다. 1857년 청년 시절부터 심혈을 기울여 다듬어 온 시를 정리하여 시집 《악의 꽃(Les Fleurs du Mal)》을 출판하였으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벌금과 시 6편의 삭제라는 판결을 받았다. 1860년에 《인공낙원(人工樂園)》을 출판하였고, 1861년에 《악의 꽃》의 재판을 간행하였다. 이 무렵부터 문학가로서의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그의 사후, 1868∼1869년에 간행된 전집 속에는 고티에가 서문을 쓴 《악의 꽃》(제3판), 〈소산문시〉, 만년의 작품인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Le spleen de Paris)》이 수록되었으며, 또 들라크루아·바그너·고티에 등을 논한 평론은《심미섭렵(審美涉獵) Curiosits esthtiques》(1869), 《낭만파 예술 L’art ro
{모 더 니 즘 (Modernism)1. 개념의 문제모더니즘(modernism)은 근대주의 또는 현대주의라는 의미를 갖지만, 원래 봉건제와 교회 의 전통 및 권위를 거역하고 과학과 합리성을 존중하는, 이른바 근대화를 모색하는 광범 위한 입장을 의미했다. 예술상에서의 모더니즘은 20세기 초에 일어난 표현주의 (expressionism) ·미래주의(futurism) ·다다이즘(Dadaism) ·형식주의(formalism) 등의 감각적 ·추상적 ·초현실적인 경향의 여러 운동을 가리켜 말한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 와 같은 여러 운동을 통틀어 모던 아트(modern art)라고 말하는 경향이 많으나, 이것을 대국적인 견지에서 말한다면 19세기 예술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주의(리얼리즘)에 대한 반항운동이며,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난 전위예술(前衛藝術: 아방가르드) 운동의 한 형태였다.모더니즘을 보다 쉽고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모던(modern) 이라는 말을 살펴본다. 이는 근대적 또는 현대적 이라는 뜻을 나타내지만, 단순히 시대적 구분만을 의미하고 있 지는 않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적 전통》에서 리처드 엘먼(Richard Ellmann)과 찰스 파이들슨(Charles Feidelson)이 지적하듯이 그것은 독특한 종류의 상상 력, 즉 서로 연관되어 하나의 상상적 전체를 이루는 주제와 형식, 창작의 조건과 유형 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김욱동, 〈모더니즘〉, 《문예사조사》(이선영 엮음, 민음사) p. 149.따라서 20세기 초엽에 활동했던 예술가들이라고 해서 모두 모던 이 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즉 모더니즘에서 모던 이라는 개념은 시 대적 맥락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예술적 경향과 관련된 질적 개념임을 알 수 있다.2. 모더니즘의 배경모더니즘은 20세기 초엽을 중심으로 모든 예술 분야에 걸쳐 일어난, 혁명적이라고 할 만 큼 큰 변화를 가져온 운동이다. 이 모더니즘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관해서는 단정지어 말 한다.오늘날 주로 모더니즘이라는 이름 아래 포괄되는 문학 활동들은 세계시장의 등장으 로 박차를 가한 자본주의사회의 성립과 그 발전의 제 국면을 근본적으로 새로운 현상 으로 인식한 데 근거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그에 따른 정치·사회적 제도변화 가 가져온 외적 현실의 변화와 주체적 조건의 변화를 근본적인 새로움으로 포착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종래의 문학을 극복 쇄신하고자 하는 새로운 문학 생산양식으로 등 장한 것이다. 인간과 물리적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기반으로 하여 사회과정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행위는 목적합리성에 기초하여 새롭게 조직되고 제도화되 었으며, 종래 통합되어 있던 사회적 실천들의 분화가 일어났다. 이와 같은 사회적 실 천의 분화는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에서 단적으로 표현된 바 있는 정치·경제적인 변혁에서 기본 동력을 얻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위에 계몽주의의 이념이 추동력을 더하고 있다. 사회 각 분야가 그 자체의 내부논리에 의해 각 분야의 기본 축을 발전 시켜 나감에 따라, 경제에서는 산업의 대량 생산 구조로의 재편이 이루어지고, 정치사 회적인 측면에서는 민주주의적인 제 제도의 수립을 위한 사회적 갈등이 전면화되는 속에 생활을 목적합리성에 기초하여 조직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계몽주의는 봉건 주의에 신성한 후광을 비추었던 형이상학적, 신학적 세계상을 깨뜨리는데 주역을 맡 았을 뿐만 아니라, 이성적 주체에 의한 인간해방과 자본의 발전에 의한 역사의 진보 라는 이념을 생활의 세부적인 국면에까지 현실화하는데 있어서 실질적인 추동력이 되 었다.계몽주의에 의해 문화적 합리화가 사회적 합리화로 전이되는 속에서 각 개인은 산업 화· 도시화· 민주화 등이 이루어지는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에 적응해 나가야만 했으며, 이러한 근대화의 진행 과정 속에서 사회에 대한 관계나 자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소외되 고 고립되었다는 의식, 그리고 불안과 혼돈의 느낌을 갖게 되었다. 즉, 과학과 기술의 유 용성에 대한 신뢰, 그리고 진보의 원리와 이성에 대한 와 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팽배해 있던 시기였으며 이와 같 은 경향은 정치·사회·종교·도덕·과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굳게 자리잡고 있었 다. 그러나 19세기 말엽에 이르러 과학적 합리주의와 확실성은 적잖은 도전을 받기 시작 하였다. 찰스 다윈은 진화론을 주장함으로써 기독교의 주춧돌을 흔들어 놓았고, 제임스 프 레이저는 원시적 신화를 규명함으로써 인간의 삶에 원형적인 리듬을 회복시켜 주었다. 또 한 프리드리히 니체는 절대성을 주장하는 모든 것은 다 질병이라고 말함으로써 19세기의 절대적인 가치 기준에 쐐기를 박았는가 하면, 칼 마르크스는 유물론이라는 무기를 사용하 여 헤겔의 관념철학을 맹렬히 공격하였다.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사회와 문화, 그리 고 무엇보다도 인간 심성에 새로운 해석을 내렸다.19세기 말엽부터 시작된, 과학적 합리주의와 확실성에 대한 이러한 도전은 20세기에 접 어들면서 한층 고조되었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닐 보르와드 브로글리의 양자론,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 이론 등이 발표됨으로써 종래의 우주관이나 물리학은 물론 현대인의 기본적인 의식 구조에 일대 변혁을 일으키게 되었다.3) 제 1차 세계대전제 1차 세계대전은 시대 정신과 더불어 예술에 큰 변화를 가져온 또 하나의 원동력이 되 었다. 세계 대전은 얼핏 모더니즘의 발전에 도리어 방해가 되는 요소처럼 보일 지도 모른 다. 새로운 예술을 시도하기 시작한 예술가들은 대부분 전쟁에 참가했고, 또한 일반 대중 들도 예술보다는 생존 자체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대전은 인류의 문명 뿐만 아니라 모든 기존의 가치관과 도덕마저 붕괴시킴으로써 모더니즘이 성 장할 수 있는 좋은 문화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이로써 모더니즘은 전쟁 동안의 일시적 인 소강 상태가 지난 후 더욱 활발한 발전을 이룩하게 된 것이다. 1920년을 중심으로 서 구 문학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위대한 예술 작품이 한꺼번에 많이 쏟아져 나 왔다는 사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운동은 포드 매덕스 포드를 비롯한 인상주의 운동과 에즈러 파운드를 비롯한 시인들이 주장한 이미지즘 등 좀 더 체계적인 원리를 갖춤으로써 모더니즘에 이론적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모더니즘에 가장 중요한 이론적 배 경을 제시해 준 것은 보들레르와 스테판 말라르메가 중심이 된 프랑스 상징주의라고 할 수 있다.3. 모더니즘의 특징모더니즘은 본질적으로 정의를 내리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개념이다. 이는 모더니 즘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일정한 틀 속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태도 그 자체이기 때문 이며, 또한 모더니즘은 비교적 짧은 역사를 통해 여러 가지 형태로 많은 탈바꿈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의 범주에 속하는 작품들이 갖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 은 존재한다. 이러한 특징들이 모여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리얼리즘 등과 같은 문학 전통 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낸 것이다.(1) 전통과의 단절모더니즘이 하나의 전통이라면 그것은 바로 리처드 엘먼과 찰스 파이들슨의 말대로 비 전통의 전통 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모더니즘은 19세기의 부르주아 사회가 굳게 믿던 사 회적·경제적·도덕적 가치관을 모두 배격하고, 무엇보다도 19세기의 문학 전통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19세기 문학 전통이라 함은 다름 아닌 리얼리즘이었다. 리얼리즘은 대상 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것을 예술의 지상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러므로 리 얼리즘 문학의 기준에 따른다면 누가 예술이라는 거울 속에 우주나 자연의 모습을 정확하 게 비추어내느냐에 따라 작가의 위대성이 판가름나는 것이다. 모더니즘은 리얼리즘의 이 러한 기본 원칙에 정면으로 맞서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한다. 리얼리즘은 삶의 실재를 객관 적이고 확고 불변한 것으로 파악하려 하는 한편, 모더니즘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며, 따라 서 그 정체를 결정할 수 없고 변화무쌍한 것으로 파악하려고 한다. 예술은 실재를 모방하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가의 상상거트의 개인적 관념론 과 흄이 주장한 인성론의 맥락에서, 모더니즘은 주관성 및 그것에 기초를 둔 개인 주의를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객체보다는 주체를, 외적 경험보다는 내적 경험을, 집단 의 식보다는 개인 의식을 훨씬 중시하며, 모든 가치와 진리가 오직 나 로부터 출발한다는 믿 음을 강조한다. 이처럼 모든 가치와 진리가 전적으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라면, 결국 예술가는 객관적 현상이 아닌 주관적 실체 세계에서 모든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예술 은 우주나 자연 또는 삶의 실재를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창조 해 내는 것이라는 모더니즘의 기본 입장도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며, 적어도 이 점 에서 본다면 모더니즘은 다분히 낭만주의의 기질을 이어받고 있다고 할 만하다.이렇듯 대부분의 모더니즘 작가들은 당대 현실의 객관적인 묘사보다는 주관적 내면 세계 와 내적 경험에 훨씬 더 큰 관심을 기울였으며, 이는 유진 런(Eugene Lunn)이 제시한 심 미적 자의식 또는 자아 반영성(aesthetic self-consciousness or self-reflexiveness)과도 같 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더니즘은 시나 소설 작품에서 시 쓰기와 소설 쓰 기의 문제까지 탐구하거나, 시의 언어의 본질에 대한 고도의 자의식을 보여준다. 모방이론 에 대한 반(反)모방, 전통적 장르나 형식에 대한 예술가의 자유 등이 강조된다.모더니즘 작품은 개인의 주관성과 내적 경험을 강조하면서 복잡성을 수반하게 된다. 유 진 런도 모더니즘의 특징으로서 패러독스, 모호성 그리고 불확실성(paradox, ambiguity, and uncertainty)'를 들고 있다. 인간의 외적 행동이나 현상 세계보다는 인간의 내적 성찰 이나 심리 분석 또는 의식 세계를 다루면서 생겨나는 복잡성 및 그것으로부터 비롯하는 난해성은 모더니즘 문학의 중요한 특징을 이루는 것이다. 이로 인해 주관성과 복잡성을 강조하는 모더니즘 문학이 예술의 비인간화 현상을 야기시켰고 또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