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와 규모 : 서울 우이동 덕성여대 내 유아교육관- 덕성여대 부속유치원3층 건물 1층 유치원, 2층 강의실/세미나실, 3층 교수실*견학일자 : 2001년 5월 30일*덕성여대 부속 유치원의 교실의 구성 :종일반 (비둘기반: 혼합연령), 만 3세반 (병아리반), 만 4세반(다람쥐반, 토끼반), 만 5세반 (기린반), 취침실, 2개의 관찰실*유원장 시설 : 정면을 제외하고 유치원 건물을 빙 둘러서 유원장 시설이 마련 되어있다. 아이들이 뛰어 놀도록 잔디밭으로 되어 있고 모래 놀이 공간이 따로 있다. 각종 놀이 시설 (그네, 미끄럼틀, 정글짐 등…) 들과 나무정자, 원두막처럼 생긴 오두막들이 여러 개 있고 유원장 여기저기엔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데 모두 이름표를 달고 있다. 동물 사육장과 채소밭도 있는데 동물 사육장엔 토끼와 금계, 비둘기, 닭, 병아리가 있고 채소밭에는 가지, 파, 배추 등의 작물이 재배되고 있다.*교실 환경 구성 : 각 교실은 팔각형 모양으로 되어있고 각각 현관과 화장실이 딸려있다. 현관으로 나가면 바로 유원장이고 교실 절반 정도의 벽은 유리창이므로 창을 통해서 바깥을 관찰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견학 대상 교실 : 비둘기반 (종일반/ 3,4,5,세 혼합연령)* 느낀점&배운점 : 나와 같이 복수전공을 하는 우리 과 친구들과 덕성여대에 도착했을 때는 꽤 이른 시간이었다. 덕성여대에 모이는 2시 30분까지라고 그랬는데 우리는 거의 2시쯤 도착했던 것이다. 경비 아저씨께 유치원이 어디냐고 여쭤봤더니 오른쪽으로 쭉 가면 하얀색 건물이란다. 우리는 유치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덕성여대 유치원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건물에는 유치원 뿐 아니라 유아교육과 강의실과 교수 연구실까지 갖추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유원장과 뒷마당의 동물 사육장까지 천천히 돌면서 살펴 봤다. (사실 교실에 아이들이 놀고 있었는데 구조상 교실 안의 창으로 유원장을 훤히 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나다니는 걸 아이들이 봤을 거 같아 방해가 되지 않았나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유원장은 잔디가 깔려 있었다. 색색의 보도블럭으로 레일도 깔려 있었고, 나무로 만들어진 정자도 있었다. 참 예쁜 정원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 몇 명이 놀고 있었는데 유치원 아이들 같지는 않았다. 한 쪽엔 모래 놀이터가 있고, 그네나 미끄럼틀 같은 놀이 시설이 있었다. 유원장 뿐 아니라 유아교육관 건물 주변의 나무들에는 이름표가 커다란 글씨로 달려있었다. 동물 사육장엔 예쁜 금계 1 마리와 하얀 비둘기 2 마리, 다음 방엔 수탉 1 마리와 암탉 2 마리 그리고 병아리들….(뺙뺙뺙…정말 시끄러웠다….), 그 다음 방엔 토끼 1 마리가 강아지처럼 누워서 자고 있다가 (처음엔 강아지인줄 알았다.) 우리들이 가까이 가니까 눈을 반짝 뜨고는 먹을 거라도 달라는 듯이 철장에 매달려서 우리의 손을 핥았다…. 다른 유치원 유원장들이 모래 놀이터의 모양으로 다소 삭막한 기분이 들 수 있는데 덕성여대 유치원의 유원장은 잔대 때문인지 더 깨끗하고 편안해 보였다. 한참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유원장을 보고 있는데 선생님 두 분이 나타나셨다. 한 분이 우리 가까이로 오셨는데 우리는 토끼를 보고 좋아하다가 머뭇머뭇 하면서 인사를 드렸다. 그렇게 건물 한 바퀴를 돌면서 구경을 하고 나니 2시 30분….다른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벤치에 앉아서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교수님이 도착하시고 우리는 유치원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슬리퍼로 갈아신고 현관 앞에 모여있는데 보니까 아까 우리가 만났던 그 선생님이 덕성여대 유치원의 원감 선생님이셨다. 우리는 조용하게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지금 남아있는 종일반인 비둘기 반을 보게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20분 동안 수업을 보고 30분 동안 교실환경을 보고, 모여서 질문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덕성여대 유치원은 견학생들을 위한 관찰실이 잘 마련이 되어있었다. 매직미러로 된 창이라 아이들은 거울뒤에 누군가 보고 있다는 걸 모르지만 우리는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까지 다 잘 들을 수가 있었다. 덕성여대 유치원은 구성주의 위주의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관찰실 안에서 본 교실은 아이들이 이것 저것 벌려 놓았기도 했지만, 영역 구분이나 위치가 뚜렷하지 않았다. 교실이 각 영역별 박스 식으로 나누어진 모양들에 익숙해서 였는지 교실 한가운데서 블록놀이를 하는 아이들, 여기 저기를 왔다갔다 하면서 달리는 아이… 나는 그런 교실이 너무 어지럽고 정리되어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구성주의 교실은 이렇게 만들어져 있나 싶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3분이 계셨는데 (주교사 1분과 보조교사가 2분이라고 하셨다. 덕성은 실습교사들이 4주에 한번씩 돌아가면서 실습을 들어온다고 하는데 유아교육과 학생은 꼭 학교 부속유치원에서 실습을 해보도록 하는 배려였다. 매우 부러웠다. 우리학교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참 좋을 텐데….) 세 분의 선생님이 각각 아이들의 질문과 요구에 반응하시느라 정신없이 바쁘셨다. 우리가 보고 있던 쪽에서 아이들이 연극 놀이를 시작했다. 재활용품들로 만든 무대에 종이 박스로 만든 의상들을 입은 아이들은 정말 너무 귀여웠다. 공룡 의상의 꼬리가 의자에 걸려서 걷는데 앞으로 나가지 않는 아이, 갑옷처럼 생긴 의상을 입고 신나 하는 아이…. 구경하는 친구들은 매표소에서 표를 사가지고 들어와야 하는데 매표소도 종이 블록으로 그럴싸하게 만들었다. 차례로 관객석에 앉은 아이들과 무대에서 공연을 시작하려는 아이들.. 선생님은 아이들이 표 사는 일들을 봐주시거나 의상을 제대로 해주느라 바쁘셨다. 이제 공연이 막 시작되려는데 우리의 관찰시간이 끝나버렸다. 정말 아쉬웠다. 어떤 내용의 연극인지 매우 궁금했는데…. 표까지 사서 앉아 기다리던 친구들은 어떤 공연인가 얼마나 궁금했을까?교실 환경을 보기 시작했는데 각 물건과 영역에 이름과 인원수가 정확히 표시되어 있는 교실이었다. 음율영역 4명,수과학영역 6명, 소꿉영역 5명, 쌓기영역 4명…등 교구들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교구들과 선생님이 정성스럽게 만드신 교구들이 교실안에 가득했다. 8각형 모양의 교실에 각 영역 배치는 벽쪽으로 붙은 형태로 아이들이 벽쪽에서 교실 안쪽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교사의 시선에서 차단되는 공간없이 훤히 트일 수가 있는 것이다. 8각형은 건축물로 만들기에 원에 가장 가까운 형태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심으로 모일 수 있고 교사는 아이들의 움직임을 한 곳에서도 차단됨 없이 볼 수가 있었다.프로그램은 아침 9시까지 등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유치원에 와서 자유놀이를 하고, 아침간식을 하고 , 새노래나 새 놀이를 배우고 친구들과 놀이하는 모임시간, 바깥놀이 시간이 끝나면 귀가지도로 하루 일과가 끝나게 된다. 급식은 전체 급식은 안되고 반찬만 도시락으로 아이들이 가지고 와서 하는 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유치원은 밥과 국, 후식 정도를 제공한다고 한다. 종일반은 바깥놀이 후에 낮잠방에서 낮잠시간을 갖고 계속 수업을 진행한다. 6세 아동들은 낮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 시간에 소집단 활동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교실들을 살펴보니 5세 교실과 종일반 교실에는 매표소가 있었다. 아마도 연극놀이, 인형극놀이가 이번 5세 아동들이 하는 놀이의 주제인 것 같았다. 다른 5세 교실에도 블록으로 매표소와 인형극장을 만들어 놨고 찰흙으로 만들고 나무젓가락을 끼운 인형극용 인형들이 놓여져있었다. 그리고 아주 귀여운 계산기가 있었는데 슈퍼마켓에서 쓰는 것을 귀엽게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그곳은 매표소라는 이름표가 붙어있었다.솔직히 아직도 구성주의식 유치원수업에 대해서는 잘 개념이 안선다. 환경과 아동간의 상호작용, 또래집단 과의 상호작용, 교사와의 상호작용 세가지를 볼 수있는데 아동의 상호작용을 중요시 하고 교사가 수업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아동 스스로 놀이감을 찾도록 하는 것은 알겠는데 아무래도 사전 지식이 부족해서 인지 그것이 수업에서는 어떤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지는 잘 보지 못한 것 같다.시설면에서는 느낀 점이 많았다. 일일이 이름표를 붙임으로써 아동에게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놀이를 만들도록 하는 배려는 충분히 알 수가 있었다. 참 깨끗하고 신기한 것도 많은 교실이었다. 특히 창이 바깥쪽 벽은 모두 창으로 되어있어서 창 밖으로 계절의 변화도 쉽게 볼 수가 있고 새나 나비가 왔을때도 좋은 교육자료가 된다고 한다.
* 제 1장 유아기 *1장의 첫 부분부터 나오는 말이 있다. ‘창조자의 손에서 나올 때는 모든 것이 선하나 사람의 손에서 모든 것이 타락한다.’ 이는 루소의 자연주의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루소는 인간이 태어날 때 (창조자의 손에서 나올 때)는 선하게 났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만 사람이 손을 대고 어린이를 교육하면 사람이 만든 사회적 편견이나 권위 등이 제도화된 속에서 점점 본래의 자연성은 타락하게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때문에 루소는 자연주의의 ‘소극적’ 방법을 주장하고 있다. 교사가 중심이 되는 방법을 적극적인 방법이라고 한다면 아동 중심의 교육은 그와 반대되는 ‘소극적’교육일 것이다. 루소는 어머니들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기르기 때문이다. 루소는 어린이를 어린 싹으로 비유해 어머니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린 싹은 대로변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 또 어린이의 영혼을 위해 울타리를 만들어라. 울타리의 도면을 그리는 것은 다른사람이 하더라도 울타리를 쳐주는 것은 아이에게 엄마가 직접 해주어라. 이는 자신의 자녀의 교육도 다른 이들에게만 맡기고 신경을 쓰지않는 무책임한 엄마들이 루소가 살던 16세기 프랑스 사회에도 있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아이를 낳으려고도 기르려고도 하지 않는 여자는 여성의 첫번쨰 의무와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어린이는 약하게 태어나기 때문에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교육을 받음으로서 알게 된다.그러나 어른은 아이가 이성으로 배울 수 있는 시기가 올 때까지 어린이에게 인간교육이나 사물교육을 해서는 안된다. 이 두 가지의 교육의 목표를 자연의 교육방법에 일치시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사람을 인간으로 기를 것인가 시민으로 기를 것인가가 여기서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자연을 잘 관찰하고 자연이 지시하는 길로 따라가라. 자연이 아이를 병으로도 단련시킬 수 있고 부상으로도 단련시킬수 있음을 알아라 입더라도 어른이 태연히 자연스레 넘기는 것이 아이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교육일 것이다. 고통을 견디는 것은 에밀이 배워야 할 첫번째 일이다. 아이의 교육은 자연의 순서를 따르는 것이어야 한다. 일부러 걷기를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때가 되면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된다. 소위 교육이란 쇠사슬로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구속하지 말고 아이들에게 어린시절의 놀이, 기쁨,사랑스런 본능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단, 자유와 방종의 구별을 두어 아이가 응석받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능력과 욕망이 균형을 이루면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곧 사람의 능력이 활동을 시작하면 가장 능동적인 능력이라 할 수 있는 상상력이 활발해진다. 상상력은 욕망을 자극하고 확대하므로 아이에게 자신의 능력 한계를 알게 하는 것은 불행에서 건질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하는 것이다. 자연에 따르는 교육은 어린이가 사물에만 의존하게 해야 한다. 아이의 행동에 벌을 주기 보다는 그 행동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다.소극적 교육은 시간을 소비하는 교육이다. 아이는 12세까지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기만하면 된다. 그러면 그 후의 교육은 훨씬 수월하고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수 있다. 조기교육에서 얻은 편견이나 습성을 제거할 수고가 덜어지기 떄문이다. 교사는 단순하면서도 신중하게 교육 해야 한다. 좋은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다.아이에게 말보다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아이가 이성으로 배우기 전까지는 감각으로 사물을 익히기 때문에 소리나 형태, 감각을 기억하고 관념을 기억하더라도 관념의 관계를 기억한다. 그러나 순간적이고 무기력한 반응일뿐 어린이의 능력을 조급히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못하다.교사는 아이에게 교훈하지 말고 지도 해야 한다. 아이와 교사는 복종의 관계가 아니다. 선생은 명령하는 대신 자유를 주어야 한다. 어린이가 자유의지로 산다고 생각하면 어른을 의심하지도 않고 거짓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를 선생은 좀더 쉽게법에서 나온 도움이어야 한다. 아이에게 고통이 오더라도 (부상이나 질병으로 인한) 그 고통을 혼자 이겨내는 힘을 길러주어야 어른이 되어서도 용감한 사람이 될 것이고 행복을 가르칠 때도 자신의 능력과 조화를 이루게 가르치지 않으면 오히려 아이는 욕망이 충족되지 않음에서 오는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자유를 가르칠 떄에도 명령이나 복종의 경험에서가 아닌 자유의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이성적인 교육을 하기 보다는 자연에서 뛰놀게 하는 것이 교육의 흐름이다. 이것이 내가 에밀을 읽으면서 그리고 내가 선택한 세가지 소주제에서 생각한 “자연교육”이다.루소가 말한대로 자연의 교육방법은 시간을 소비하는 교육이다. 이런 방법으로 아이들이 뛰어놀고 감각을 익히는 것만 습닥한다면 12세까지 글도 읽을 줄 모르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내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현대의 교육에서 정말 자연스러운 자연교육법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제대로 된 인간과 그런 인간들이 모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교육을 한다고 하지만 나는 우리사회의 교육은 사회를 반영하고 따라간다고 생각한다. 교육이 정신적으로 사회를 이끄는 사회가 진정으로 바로 선 사회이겠지만 온전히 교육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마치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느껴진다. 이런 사회에서 교육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정말 책임이 느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제3장 소년기 (12 ~ 15세)신체발육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다음에는 지적 호기심에 의한 정신 활동이 활발해진다. 지적인 대상에 도달하는 것은 감각적 대상을 통해 가능하므로 실물에 의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어린이는 혼자서 자기 힘으로 알고 싶어하기 때문에오랫동안 살펴보는 숙고의 과정이 있다. 자기 능력과 배울 수 있어야 하는 자율학습과 실물을 감각적으로 포착하여 스스로 생각하고 추리하는 직관주의 교육, 자신이 기구를 만들고 직접 경험해 보는 경험주의 학습 방법을 강조한다. 어린이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사랑하는 취미를 갖도덕적인 것이 없다. 이 시기에는 성교육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부자연스럽지 않게 해야 한다. 오히려 솔직한 표현이 덜 위험하고 아이들도 올바로 알아 들을 수 있다. 우연에 기대지 말고 16세 이전에도 성교육이 필요하다면 알려주는 것이 좋다. 16세의 에밀은 인간사회의 불평등과 비참하고 슬픈 사회 현실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 왕이든 부자이든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 벌거벗고 나왔기 때문에 평등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자신의 경험에 의해 괴롭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자신이 느끼기 전에는 안다고 할 수 없으나 상상력이 발달되면 동포의 고통을 보고 괴로움을 알게 되고, 인류의 비애를 경험을 넘어 마음 속으로 느끼게 된다청년기는 복수나 증오의 시기가 아니다. 동정과 자비, 관용의 시기이다. 20세가 될때까지 순진하게 자란 아이는 가장 선량하고 관대하고 사랑스럽고 사랑할 줄 아는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잘 자란 젊은이가 느끼는 첫 감정은 우정이며 애정을 가지게 된다. 모든 애착은 인간이 스스로 완전하지 않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감정이 선악의 관념을 갖고 확대되면 이웃에 대한 동정, 우정을 바탕으로 한 인간애, 동포애, 인류애로 발전된다.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인간이 된다.신은 자연 만물에 존재하기 때문에 산천초목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신, 즉 자연이다.신은 그 속성이 선하므로 만들어진 인간 역시 선하다. 악은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인간의 손으로 악을 제거해야 한다. 양심은 인간의 내적인밝음의 증거이며 신앙의 기초이다. 또한 양심은 이성의 힘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안내자이며 선과 악을 어김없이 결정하는 심판자이다.지금까지 덮어두었던 비밀을 에밀에게 가르쳐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기 전에 교사에게서 먼저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그리고 생의 반려자를 찾아야 하는데 어울리는 짝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 이상적 모델을 찾아 그녀를 소피이라고 불러본다. 에밀은 사교계에도 진출하지온 에밀은 소피와의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사랑의 결합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교사는 떠날 때가 온 것이다.**나의 생각**아마 그냥 소설책 읽듯이 읽었다면 지금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나름대로 문제의 해답을 찾으려고 애쓰는 사이에 정리가 된 것 같다. 루소는 감각교육, 실물교육을 강조한다. 아이들이 직접 느낄 수 있다면 더 좋은 교육의 결과가 있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을 읽히지 않는 것은 반대이다. 감각교육, 실물교육이 가장 좋겠지만 아이들이 실물을 통해 감각으로 느끼며 배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책은 아이들에게 많은 간접경험을 하게 하며 아이들의 생각을 키워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을 아끼지 말라는 루소의 말은 정말로 중요한 것 같다.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있어서 서두른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아이들은 긴 탐색의 시간을 거쳐서 배워가기 때문이다. 3,4,5장에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거론된다. 이제 에밀은 지적교육을 시작하고 그의 경험으로서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된다. 에밀의 내적으로 통합하면서 사물을 인식하므로 감정에 대한 부분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된다.**3가지 소주제 선택 정리**3장 중에서-자애심(amour do soi)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정념이다. 모든 졍념의 기원이고 원동력이다. 생득적이라 다른 모든 정념에 앞선다. 자애심은 언제나 선하고 항상 질서와 일치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보존에 대한 책임을 갖는다. 자기 보존을 위해 모든 것에 앞서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파생하는 제2의 감정이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허약한 상태의 자신을 도와주고 길러주는 사람을 통해서 본능적으로 신뢰하게 되어 처음 타인에 대해 인식하고 관계에 대한 의식을 갖는다.4장 중에서-참된 교사의 위엄교사 자신이 대단한 균자인 것처럼 학생을 내려다 보고 어린애 취급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교사는 그의 영혼을 높이기 위해,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교사와 동등하게 대접하여 젊은이가 동등하게 되려고 노력하다.
**아폴론**아폴론은 제우스의 아들로 명실공히 올림포스의 제2인자였다. 아폴론은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레토가 자신의 아들인 아레스보다 위대한 아폴론을 낳을 것을 안 헤라가 레토의 해산을 집요하게 방해하는 바람에 힘겹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레토에게 해산을 허락하는 곳은 영원한 불모지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헤라의 협박 때문에 어떤 곳도 레토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 레토는 아테네를 거쳐 해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여러 섬들을 지나 소아시아 지방과 에게 해 전역을 돌아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침네 너무나 척박한 섬 델로스섬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너무 척박하여 헤라의 저주에도 그리 손해 볼 게 없었으므로 아폴론을 낳으면 제일 먼저 이 섬에 그의 신전을 지을 것을 약속한 후 겨우 레토는 델로스에서 아폴론을 낳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고대 음유시인들은 고대 지명이 길게 열거되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했다. 서사시를 듣는 것이 모든 교육의 원천이었으므로 이런 방법으로 고대인들은 자신들의 세계에 대한 지리학적 지식을 전수했다. 제우스와의 사랑으로 이집트의 왕 에파포스를 낳은 이오의 방황도 이와 흡사하다.올림포스의 여신들이 위대한 신의 탄생을 보기 위해 델로스로 모여들었지만 이번엔 헤라가 해산을 주관하는 여신 에일레이튀이아를 놓아주지 않아 레토는 아흐레 밤낮동안 진통을 겪어도 좀처럼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모다못한 신들이 무지개신 이리스를 보내 헤라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에일레이튀이아에게 접근하여 황금목걸이로 매수한 후 델로스로 데리고 왔다고 한다. 그제야 레토는 종려나무를 붙잡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겨우 아이를 낳았다. 영웅의 탄생이 기이하고 고난에 찬 것은 영웅의 비범함을 나타내는 중거이다. 위대할수록 그 탄생은 장애물로 가득하다. 방황과 아흐레의 진통, 척박한 땅에서의 해산도 아폴론의 위대함을 나타낸다. 예수의 탄생도 해산할 곳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이도 아폴론의 탄생과 일맥상통한다.아폴론이 태어나는 순간 포세이돈은 바다 밑 깊숙으로 올림포스에 들어와 제우스와 레토를 제외한 다른 신들이 겁을 먹고 모두 일어서서 그의 눈치를 살피면서 그를 마중하였다. 아폴론은 제우스의 오른편 의자에 거만하게 앉아 제우스가 손수 따라주는 넥타르를 마셨다. 이제서야 다른 신들도 평화로운 분위기를 되찾고 제자라고 돌아가 앉았다. 아폴론은 주로 델포이나 델로스 아니면 최북단 휘페르보레이오스 지방에서 지내는데 일년에 한번 올림포스로 돌아올때마다 이런 장면이 반복되었다. 그가 올림포스로 올라오는 날은 커다란 축제가 벌어지는데 아폴론이 리라를 켜고 여신들은 합창을 하고 춤을 춘다. 아레스와 헤르메스도 흥에 겨워 춤에 뛰어들고 흥이 오른 아폴론의 춤으로 축제는 막이 내린다. 그의 음악과 춤은 빛으로 덮여 휘황찬란한 빛의 축제로 신과 인간 모두에게 큰 기쁨이었다. 아폴론은 신들의 향연을 위해서는 리라를 연주하지만 적에게는 가차없이 화살을 쏘아 처벌한다.그리고 신앙심 깊은 인간을 위해서는 제우스의 신탁을 내린다. 우수한 기술력, 물리적 힘, 그리고 정보를 한 손에 쥔 것이다. 제우스 외에는 아폴론과 대적할 자가 없다. 올림포스에 첫 등장에도 그는 활시위를 당긴채 살기등등하게 나타나 자신이 올림포스의 제2인자임을 확실히했다. 제우스는 그런 그의 방자함과 무례함을 꾸짖기는 커녕 오히려 은근히 부추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아폴론을 확실한 자신의 심복으로 확보함으로써 제우스는 그의 권좌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된다. 이로써 가부장의 권위를 나타내는 제우스는 그 힘이 더욱 확고해진다.아폴론은 가부장제를 더욱 확실하게 하는 또 하나의 상징이다.아폴론은 제우스의 신탁을 전하는 일을 맞게 된다. 최고 통치자의 의중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자는 항상 권력의 핵심에 있게 마련이다. 델포이를 비롯한 곳곳에 신탁을 내리고 세상정보를 수집해 제우스에게 보고하면서 제우스를 대신하에 직접 세상을 다스리는 아폴론이 온갖 정보를 갖고 올림포스로 오는 날은 자연히 광란의 축제가 벌어지는 것이다. 신탁소는 아폴론의 권력을 더욱 확고하게 한다. 아폴론이 신탁었을까를 짐작하면 왜 이 이야기가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여자와 뱀은 샘을 사이에 두고 서로 대립하고 있어 뱀을 퇴치하여 이 위험을 제거해 주는 남자들은 그래서 항상 영원한 영웅이 된다.아폴론의 사랑이야기에도 인간의 심리와 많은 단어들의 기원이 숨어있다.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하고 월계수로 변한 다프네, 아폴론보다 인간인 이다스를 선택한 마르페사, 사랑을 미끼로 예언하는 능력을 얻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아 설득력을 빼앗긴 카산드라,아폴론과 사랑했지만 이미 약혼했던 아르카디아의 왕자 이스퀴스와 결혼하는 바람에 결혼식에서 아르테미스의 화살로 목숨을 잃은 코로니스까지..다프네는 성장을 거부하고 사랑에 눈떠야할 불안을 이기지 못해 영원히 소녀로 남으려는 여인의 모습을 상징한다.월계수는 깔끔하고 순결한 식물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살아움직이는 동물의 생기는 없다. 반면 마르페사는 부귀와 영화를 위한 결혼의 불행을 예감하고 과감히 인간을 선택한 용기있는 여인이다. 모든 것이 충족되어 해 줄것이 없는 사람 옆에 있는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 일것이다.카산드라는 미래의 불행을 정확히 알지만 설득력을 빼앗겼으므로 그것을 막기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후에 아가멤논과 살해됐을 때에도 카산드라는 이를 미리 알고 있었지만 몇번을 말하고 대처할 것을 애원해도 아가멤논이 믿어주지 않음으로 결국 살해되고 말았다. 자신이 살해될 것을 알면서도 이를 막지 못하고 죽어야 한다는건 정말 끔찍한 일이다. 카산드라고 이런 시련을 갖게 된것은 아폴론의 사랑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으면서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교훈을 강하게 담고있다고 생각한다. 아폴론의 사랑은 참으로 아픔이 많았지만 그의 사랑을 받아들인 연인들도 많다. 아폴론과의 사랑으로 태어나게되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음악가 오르페우스,춤꾼인 코뤼반테스형제,테네도스의 왕 테네스, 영웅 카이론, 델포이 등 아폴론은 각 지방을 다스리던 왕조의 시조가 되었으며 영웅과 신들의 아버지였다.테스나 알크마이온의 편을 들어 정당방위라고 변호했다. 아폴론이 활시위를 당긴채 올림포스에 입성했을때 여신들의 시대는 끝났던 것이다. 아폴론과 아테나는 제우스를 중심으로 가부장적 사회를 이끄는 두 기둥이었다. 아폴론과 아테나는 합리적 사고의 소유자이며 자신의 감정에 휩싸이지 않는 이성적인 신들이었다. 이런 점에서 아폴론과 아테나는 고대그리스의 대표적인 신이다. 이런 강력한 지지자를 심복으로 거느린 제우스는 절대 권력의 독재체제를 이루어갔다.**아레스**아레스는 제우스와 헤라사이에 태어난 전쟁의 신으로 그리스 신들 중에서도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미남이었으나 전쟁과 살육의 신이었다. 아레스(Ares)라는 이름은 “불행 , 재앙’을 나타내는 ‘are-“라는 어근에서 파생되었다. 아테나도 전쟁의 신이었지만 전술이나 책략과 같은 세련된 전투 기술 없이 무작정 폭력을 휘두르고 피를 부르는 그의 난폭함은 합리적인 사고와 인도주의를 신봉하는 그리스정신에 적합하지 않아 고대 음유시인들은 아레스의 굴욕을 즐겨 노래했다. 아테나와 영웅 헤라클레스에게 당해 상처를 입기도 하고 제우스에게 아테나만 편애하여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해도 벌 주지 않는다고 불평했다가 밤낮 싸움질과 살육만 좋아하는 너를 누가 좋아하겠느냐고 호통을 들었다. 또한 헤라의 사랑도 받지 못했다. 트로이아 전쟁에서 아테나와 싸우다 궁지에 몰린 아레스를 돕는 연인 아프로디테까지 혼내주라고 헤라가 아테나를 부추켜 아프로디테와 아레스가 벌렁 자빠지고 만 일도 있었다.아레스의 아들들도 거의 흉포한 악당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헤라클레스와 아폴론에 의해 퇴치된다. 이런 방법으로 무지하고 야만스러운 시대에 태어난 신들은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올림포스 신앙에 정복되어간다. 아레스는 원레 아르테미스 ,디오뉘소스와 함께 트라케지방의 신으로 올림포스신앙이 들어오기 전에는 자연의 풍요와 다산을 주관하는 신이었다. 그 후 아레스신앙이 그리스인들에게 전해지면서 전쟁과 폭력의 신으로 신격이 바뀌었다.그래서 아레스 신앙은 아테네와 테바이 그리고심리적 특성을 나타낸다.**포세이돈**제우스의 형제로 그는 바다를 다스린다. 제우스가 티탄들과의 전쟁에서 싸울 때 그도 제우스의 편에 서서 용감히 싸웠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 지구를 놓고 제우스, 포세이돈 그리고 하데스는 제비뽑기로 영토를 정하기로했다. 여기서 제우스가 하늘을, 포세이돈이 바다를 그리고 하데스가 지하세계를 차지하게 된다. 올림포스와 대지는 중립지역으로 세 신 모두가 공유하기로 했다. 그러나 포세이돈은 본래 전권을 휘두르는 강력한 지신이었다. 순수한 그리스 신으로 그의 신앙은 올림포스신앙 훨씬 이전부터 숭배되고 있었다. 그리스 문명이전 미노아 문명이나 뮈케나이 문명에서 포세이돈의 지배영역은 바다에만 국한 되지 않았다. 제비뽑기 이야기는 후대에 만들어진 아야기이다. 포세이돈은 ‘대지 여신의 남편’이란 뜻으로 가장 강력한 신이었다. 그는 산과 계곡 , 섬들과 지협을 만들었으며 땅속 깊은 곳에 살면서 지진을 일으키고 산사태를 일으켰다. 지상의 샘들도 그의 주관이었다 모든 물의 솟아남과 흐름을 주관하여 강과 개울 바다가 모두가 그의 지배 영역이었다. 그러나 제우스 신앙이 들어오면서 점차 포세이돈의 위치는 약화되어 제비뽑기로 하늘과 지하세게에 대한 권리를 잃었으며 대지와 올림포스도 제1인자인 제우스의 차지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포세이돈을 제우스의 형제로 만들기 위해 서사시인들은 레아에게서 태어나 크로노스 몰래 바다의 신 오케아노스의 딸 카이페이라에게 키워졌다는 설화를 퍼뜨렸고 바다의 노인 네레우스의 딸 암피트리테를 그의 아내로 삼았다.또 바다와 관련된 모든 지방 신들과 괴물들을 포세이돈의 자식으로 만들어버렸다. 포세이돈은 다른신들과 영토를 다투지만 거의 잃고 마는데 이런 것들도 고대 서사시인들이 포세이돈을 바다의 신으로 국한하려는 노력에 의한 것이다. 이제 포세이돈은 동생인 제우스에게 일인자의 자리를 내주고 올림포스의 연장자로서의 역할만 충실히 수행할 뿐이다. 포세이돈은 거칠고 변덕스러운 위험한 바다를 상징한다. 그는 다혈질이고 성급하고 파괴적이어서 책략
물리적 환경 (시설)* 위치와 규모 – 2층의 단독건물로서 잠실 소재 “신천 어린이집”* 교실의 구성 – 아랫층 3개, 윗층 4개 총 7개 교실로 구성.(( 아랫층 3개반 (하마. 사슴, 기린반) : 6~7 세 아동윗층 4개반 (방울, 초롱, 잔디, 나리반) : 3, 4, 5세 아동 ))* 유원장 시설 – 모래 놀이 시설, 놀이터 시설 (여러 종류의 그네와 미끄럼틀, 시소, 정글짐 , 구름 사다리 등…)** 유치원 도면 (1층)하마반주방화장실계단원장실현관복도사슴반기린반** 하마반 교실의 영역별 배열미술영역(포도분단)바퀴 달린 칠판피아노선생님책상색종이접기바나나분단사과분단모이는 장소언어영역(오렌지분단)책보기영역현관쌓기놀이 영역수조작 영역역할 놀이 영역2. 프로그램* 참관 수업 대상 교실 : 하마반 (6~7세 아동)* 하마반 출석 인원 : 25명 (오렌지분단 6명, 포도분단 6명, 사과분단 5명,바나나 분단 6명)*참관 수업일 : 2001년 3월 27일시간활동명활동 내용준비물9:00~10:20오늘의 작업-직선오리기/각자 영역에서놀이미술영역,가위를 가지고 오늘의 작업 종이의 밑에서 X표시까지 직선 오리기 (가위사용법, 조작법 익히기, 종이 잡고 오리는 법)/오늘의 작업을 마친 사람은 각각 영역에서 자유롭게 친구와 놀이 하기가위, 오늘의 작업 자료10:20~10:30간식 준비한 줄로 서서 차례로 손씻고 오기10:30~10:50간식 먹기각자 분단의 자기 자리에 앉아서 친구와 간식먹기10:50~11:00정리/동요부르기접시 정리하고 ‘모이는 장소’ 에 모여서 친구와 선생님과 함께 노래부르기11:00~11:15이야기 나누기(학습)오늘 날짜, 날씨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기다같이 출석 부르기(친구이름 불러주기)내일의 작업에 대한 설명(선생님)아침에 와서 누구랑 놀았나, 누구를 친구라고 부를까, 왜 친구라고 부르나에 대해서 손들고 한 사람씩 이야기 해보기선생님이 보여주시는 그림을 보고 손들고 자기생각 이야기 해보기(그림1:친구랑 따로 떨어져서 혼자 놀고 있는 어린이 그림2: 서로 싸 다투는 그림.)그림을 보고 난 후 친구가 있어서 좋은 점은?나는 친구에게 도움받은 적이 있었는가 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11:15~11:20손가락 체조“손가락체조” 노래에 맞추어 손가락체조, 손뼉 치기..11:20~11:40그림 꾸미기눈,코,입이 없고 색칠이 안 되어 있는 사람그림에 얼굴을 그리고 옷을 입히고 색칠을 해서 꾸미는 활동색연필과 사인펜시간활동명활동 내용준비물11:40~11:45율동과 노래‘모이는 장소’의 바닥에 그려진 초록색 박스바깥으로 모여서 동요에 맞추어 춤추기(체조) – “둘이 살짝 손잡고..”, “옆에 옆에 옆에…”…11:45~11:55게임-공굴리기초록색 선에 맟추어 빙 둘러 앉아 농구공을 바닥에 굴려서 가운데 있는 오뚜기 맞추기, 조금씩 뒤로 물러나서 해보기오뚜기와 농구공11:55~12:00그림꾸미기 완성품 감상아까 했던 그림꾸미기 활동에서 다 마친 친구들의 작품을 보고 이야기 해보기(다 못한 사람은 ‘다못했어요’바구니에 넣고 선택자유놀이 시간에 완성한다.)12:00~12:15숫자 공부새로운 교구의 설명. 부분부분 나누어진 코뿔소 그림에 각 부분마다 찍혀있는 점을 세어보고 바구니에 들어있는 카드에 씌인 것과 같은 숫자를 찾아 맞는 그림 붙여 주기수 조작영역 교재12:15~1:00점심식사준비/점심식사 //교사: 청소차례로 나가서 손씻고 각 분단의 자기 자리에 앉아서 점심 식사.다 먹은 사람은 책 보기 //아이들 식사가 끝나고 책 보는 동안 청소1:00~2:00옷입고 나갈 준비/ 바깥놀이유원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바깥놀이2:00~2:10동화 읽기선생님이 들려주는 오늘의 동화 읽기((반일 프로그램 종료))2:10~3:40낮잠 시간낮잠 자기3:40~4:00머리빗기,옷 입기일어나서 머리 빗기, 옷 입기4:00~4:20간식 시간간식 먹기4:20~자유 선택놀이 시간각 영역에서 자유롭게 놀이그림 꾸미기 완성((참관 수업 종료))3. 느낀 점 그리고 배운 점처음에 “참관 수업 관찰 레포트” 라는 과제를 교수님이 내주셨을 때 나는 너무나 걱정이 많았다. 한번참관 수업을 가본 적이 없는데다가 혼자 찾아간 것이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단지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유령인간인 것처럼 행동하라고 하셨던 것을 기억하면서 일주일전에 찾아가 원장선생님께 참관 수업을 허락 받은 “신천 어린이 집”으로 갔다. 선생님 출근 시간인 8시 30분까지 오라고 하셨기 때문에 일찍 갔는데 9시부터 수업이 시작인데도 벌써 아이들이 여러 명 교실에 와 있었다. 내가 참관 수업을 들어간 반은 ‘하마반’ 이었다. 하마반은 25명의 아이들이 있는데 그 날은 2명이나 결석을 했다. 갑자기 날이 추워져서 아이들이 많이 감기에 걸렸다고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다. 그날 어린이 집에 온 아이들 중에도 4명이나 감기가 걸려서 약을 가지고 왔다.내가 실습이 아니라 하루 수업을 참관만 하는 거라고 말씀 드렸는데 하마반 선생님은 나에게 여러 가지를 부탁하셨다. 조금 과격한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중재해 주라고 하셨고, 책장에 있는 자료에서 여러 가지 그림을 찾아서 오려달라고도 부탁하셨고, 그림을 잘 그리냐고 물어보시더니 장난감 정리장에 붙일 그림들을 그리라고도 하셨다. 아직 학기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몇몇가지 꾸미기가 덜 되었다고. 교수님께서는 유령인간처럼 조용히 보고만 오라고 하셨지만 몇 시간 동안 한 구석에서 멍하니 수업을 보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선생님도 부탁하시고 나도 무언가 선생님을 돕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교실 구석에서 그림들을 오려내고 색연필과 매직을 들고 블록쌓기 영역에 앉아서 종이벽돌이며 자동차, 블록들을 그리고 색칠을 하고..아주 바빴다. 아이들이 모이는 아침 시간까지는 자유롭게 놀이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아이들은 내 주변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각자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이 매우 달랐다. 어떤 아이는 와서 무얼 하는 거냐고 묻기도 하고 여자 아이들은 내 긴 머리를 보고 혼잣말처럼 “예쁘다~”라면서 쓱 만지거나, 남자아이들은 대뜸 누구냐고 말을 걸거나 내가 그 보고 똑같다, 아니다 못 그렸다 의견도 분분했다. 처음에는 몰려든 아이들에 둘려싸 여 당황했지만 나는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에게 하시던 말을 들었던 게 생각이 나서 이렇게 말하며 아이들을 각각 다른 자리로 돌려보냈다. “이름이 뭐지요? 아..태희! 태희는 오늘의 작업에 이름표 붙이고 왔나요? 안했어요? 아직 안 했으면 가서 이름표 붙이고 오세요. ” 난 이게 뭘 하는 건지도 몰랐지만…^^나에게 한 아이가 ‘언니’라고 부르자 하마반 선생님은 “아니지요. ‘선생님’ 이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말하셨다. 그 다음부터 나는 마치 그 반의 일일 보조교사 같은 역할을 맡았다. 아이들은 ‘선생님, 선생님’하면서 나에게 부탁을 하기도 하고 묻기도 했다. 두근두근.. 아이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자 정말 가슴이 두근거렸다. 물론 아르바이트로 과외할 때도 아이들이 나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그것과 전혀 다른 기분 – 묵직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생기는 기분이었다.간혹 아이들이 놀이를 하다가 갈등이 생겨서 다투는 경우가 있어도 하마반 선생님은 무조건 중제 하지 않으셨다. 어디서 우는 소리가 들리면 주의를 기울여서 문제가 무엇인지 누가 시작한 것인지 파악은 하지만 선생님이 직접 개입하지는 않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울면서 나에게 무언가를 호소해 와서 갈등상황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는데 선생님은 아이에게 선생님이 누가 잘못한 건지 봤으니까 너를 괴롭히는 친구에게 “00야, 그러지 마” 라고 이야기 하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아,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구나. 침착성을 배워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역시 현장에서 좋은 선생님의 수업을 직접 보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선생님이 아이들과 공부하기 위해서 ‘모이는 장소’에 앉으면 나는 아이들 뒤에 교실 구석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선생님은 어린아이들의 생각을 읽을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한다. 하마반 선생님도 하마반 아이들의 습관과 성격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아이들이 일을 저지르기 전에 경고를 하신다. 그림 꾸미기 아이들이 막 사인펜을 잡을 때 “사인펜과 색연필은 입에 물지 않아요.”라고 말씀하시고, 공굴리기를 할 때면 아이들이 공을 굴리기 전에 “친구가 오뚜기를 못 맞추더라도 웃거나 놀리지 않아요.”라고 하셨고, 또 “선 안에 들어가서 오뚜기를 만지지 않아요, 약속!!” 이렇게 강조하시기도 하신다.우리 가족들은 식구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나는 갓 100일이 지난 아기부터 고등학생의 사촌동생이 있을 정도로 친척 중에 아기들도 많고 아이들도 많다. 그래서 아이들과 이야기 하거나 돌보는데 익숙하긴 하지만 한 가지 하마반 선생님께 인상 깊게 배운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아이들에게 반말을 사용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가르치실 때 뿐 아니라 야단치거나 지적하실 때도 꼭 “~요”를 붙인 경어였다. 때문에 야단을 맞을 때도 아이들이 겁을 먹거나 거부하지 않고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는 것 같았다. 나도 아이들과 같은 기분이었다. 나에게도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신 하마반 선생님 덕분에 스스로 하마반의 침입자같다고 생각하던 내 기분이 전혀 달라졌기 때문이다.요즘의 아이들은 사람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친구 모습 꾸미기 시간에 둘러보니 단순한 선이나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볼 수 없는 그림들로 옷을 꾸민 것이 아이답긴 했지만, 반면에 머리카락 색깔은 예전에는 대부분이 검정이었다면 노랑, 갈색, 보라색 등등으로 다양했다.아이들이 여러가지 색상을 접할 기회도 이전보다 많아졌지만 검정이 아닌 머리카락 색깔을 본 경험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아직도 하마반 아이들이 생각이 난다.. 하루 내내 이름도 많이 외웠고, 이야기도 많이 했고, 같이 놀기도 했고,처음 보는 데도 나를 잘 따라준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한 명 한 명이 너무나 소중하고 예쁜 아이들이었다. 하루 종일 엎치락 뒤치락해도 아이들이 예쁘다고 생각되면 적성에 맞는 거라고 하마반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오늘도 문득문득 하마반 아이들의 예쁜 얼굴이 보고싶어서 신천 어린이집을 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육기관 참관은 정말 소중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미 아주 익숙한 제목의 소설이지만 안타깝게도 난 예전에 한번도 이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동명의 영화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부터 발표에 대한 적잖은 걱정을 안고 있었다. 책을 펴고 읽기 시작했는데 한장 한장 재미있게 읽어가면서도 한편으로 내 맘속엔 소설 속 교실의 풍경에서 보여지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 때문에 씁쓸함으로 파문이 일고 있었다.한 시골의 국민학교 5학년 교실.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엄석대라는 아이는 그 반의 급장이며 그 학교 아이들에게 절대복종의 영웅으로 군림해있다. 그런 그곳에 전학 오게 되는 한병태. 서울에서 명문학교를 다니다 공무원인 아버지의 전근으로 이곳에 오게 된 아이. 첫 만남부터 병태와 석대는 대립한다. 서울 학교에서 소위 민주주의라는 것을 경험한 병태는 급장이라고 아이들에게 점심시간에 먹을물을 떠오라고 시키고 물건들을 빼앗는 석대의 독재자 같은 모습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석대가 아이들 사이에 쌓아올린 권력을 무너뜨리려고 한 맺힌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병태. 아이들을 석대로부터 떼어놓으려고도 하고 선생님에게 석대의 나쁜 짓들을 이르기도 하고 석대의 명령에 따르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병태는 놀이에서 혼자가 되고 싸움 계급에서 밀려나고 담임선생님에게도 나쁜 아이로 찍혀버리고 성적도 점점 떨어져 결국엔 그 고된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울음으로 석대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만다. 아직은 어린 아이인데 그렇게 억눌림과 가치박탈의 경험으로 쓰라린 고독과 울분과 굴욕을 겪고 나약하고 굴절된 의식을 갖게 된 병태는 그 뒤로 석대의 질서에 순응하게 되면서 석대의 소극적인 특전-의무와 강제와 면제-과 권력의 달콤함에 길들여져 가게 된다. 석대가 병태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병태가 석대의 왕국을 무너뜨리려 하지 않는 것 뿐이었던 것이다. 석대는 다른 아이들에게처럼 석대에게 부당한 의무를 지운다거나 강제로 물건을 뺏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대접하면서 그에게 권력의 맛을 알게 해준다.분명히 이 소설은 우리 현대사가 겪어온 정치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니 정치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에 결친 노예근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서울의 학교에서 치뤄졌던 선거와 급장의 역할형태로써 보여지는 민주주의 라는 것은 정치가는 국민의 심부름일 뿐이라고 한다. 혹이나 급장이 독재를 하려 한다 해도 다른 아이들이 참아주지 않을 뿐더러 다음 선거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표현이 정말 민주주의는 이래야 하는 데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석대네 반 아이들은 분하지만 석대의 권력에 눌려 복종하는 쪽도 있었지만 석대의 눈에 들지 못해 안달인 아이들도 있었다. 보통의 국민들로 표현되는 반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안타까웠다. 시대에 그대로 순응하며 말도 안 되는 행정과 정책들에 희생양이 되는 것은 보통의 사람들 바로 석대네 반 아이들의 모습이니까.담임선생님의 존재도 어떤 힘의 모습이다. 시대의 여론이라고, 지성인이라고 말할 만한 사람들의 위치가 아닌가 한다. 정치세력의 부당한 권력행사를 견제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무리. 그러나 무관심하고 무성의하고 귀찮고 성가실 뿐이라는 담임선생의 태도가 나타내듯이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지도자로 있는 사회는 순탄하게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제각각의 이익을 위해 서로 밟고 밟히지 않겠는가. 그런 시대에는 꼭 독재자가 나타난다. 독재자의 치하에선 적어도 질서는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질서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 또한 강제이고 독재이기 때문이다.새로운 담임선생의 등장은 여기서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다. 석대의 성적비리를 알아낸 선생님은 석대에게 호된 매질을 하고 아이들 앞에서 벌을 세움으로써 석대의 왕국과 그의 권력을 무너뜨렸다. 혁명이었던 것이다. 급장이 다시 선출되고 석대는 교실을 뛰쳐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비록 선생님의 손을 빌린 혁명이었지만 그 뒤 아이들이 잘못된 이해나 엇갈리는 의식 때문에 갈팡질팡하거나 임원들이 일주일에 하나씩은 갈리거나.. 혹은 석대식의 권위주의에서 누렸던 질서의 효용성과 편의를 그리워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담임선생님은 그저 가만히 지켜보시기만 할 뿐이다. 이런 과정 중에서 자연스레 아이들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규율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선생님은 아이들이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불의한 힘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한 학급의 우등생인 녀석들이…만약 너희들이 계속해 그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맛보게 될 아픔은 오늘 내게 맞은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여기서 작가의 의식이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 전체를 통틀어 하고싶었던 말은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이 소설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주인공인 한병태가 어릴적 국민학교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때 그 아이의 시각으로 자신이 1년여의 시간동안 겪었던 사건- 엄석대라는 인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아이였던 병태가 이야기 하는 간간히 어른인 병태가 어른의 말로 설명해 주는 어른의 말 –추문 폭로 작전이라던가 시민의식이라던가 의식, 국민탄핵제도 같은 어휘가 혹이나 그저 시골의 국민학교의 한 교실에서 일어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독자들을 감시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새삼 작가의 뛰어난 감각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