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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학] 언론개혁에 대한 일간지 비교고찰 평가A좋아요
    社會學 槪論言論改革에 대한국내 5大 일간지 의 比較考察담당교수 :학 과 :학 번 :이 름 :1. 언론개혁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며우리 사회에는 三權分立 外에 第4의 權力인 言論의 바로 세우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테러전쟁에 휩싸인 지구촌소식으로 CNN 뉴스에 눈과 귀를 기울이다보니 언론개혁은 수그러드는 듯도 하였다. 나의 경우에도 교양으로 사회학을 들으면서도 언론개혁에 대해서 어떤 立場이냐고 물어오면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大學生이 이렇다는 것이 내 자신이 생각해도 슬프지만 내 주변의 작은 社會가 나라는 個人에게 요구하는 것을 하다보면 어느새 그런 커다란 社會의 요구에는 부응하지 못하는 내가 되고 만다. 우리 집은 몇 년째 중앙일보를 보고 있다. 지금까지 이 신문이 어떻다 라고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다. 아니 전혀 없다. 하지만 이 리포트를 쓰면서 신문을 잘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힘들다면 좋은 신문을 選擇하는 영향력은 행사할 수 있지 않는가? 그렇다 거대한 권력이나 음모를 무너뜨릴 수는 없어도 작은 것이라도 우리가 모이기 시작하면 작은 龜裂을 만들 수 있다.일단 대략적인 신문사의 傾向을 보면조선일보가 가장 기사의 왜곡이 심하고 다음이 중앙일보, 그리고 동아일보이다.세 신문은 언론개혁을 노골적으로 탄압이라고 여기고 있다. 국제기자연맹(IFJ)의 權威에 기대어 억지논리도 만들고 더욱이 말도 안되는 유치한 輿論調査등을 실시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결론은 과감하고 무식하게 도출한다. 自社신문의 구독자수를 내세우며 국민의 신문임을 자처하면서 購讀者를 인질로 개혁세력과의 협상을 벌이려는 어이없는 발상마저 보여주고 있다. 자사가 정치문제의 희생양이라하며 국민들을 현혹시키는데 여념이 없다. 물론 조선일보가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엉터리 기사를 계속 올리는 것이 보인다.한겨레는 비교적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빅3(조선·중앙·동아)에 비하면 양심적이다.대한매일은 民營化로의 전환 등을 가끔씩 거론하기도 하면서 他社와는 약간의 행보를 달리하며 직격탄을 피해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인상을 준다.2. 언론개혁과 관련된 各 新聞의 기사 비교< 朝鮮日報 >조선일보는 月刊朝鮮 인터넷 여론조사를 통하려 우리사회에서 가장 신뢰받는 집단은? 이라는 조사를 했다. 1位 신문, 2位 시민단체, 3位 국군이고, 경찰·방송·행정부가 하위권 검찰·국회·정당은 최하위 권이라고 보도하고 있다.國民信賴度가 최하인 집단이 신뢰1位의 집단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도라고 보인다. 적어도 이 정권의 검찰이나 방송들이 돌팔매를 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것이다. 최근에 검찰이 조폭처럼 권력의 끄나풀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때에 설득력 있어 보일 진 모르나 결코 그렇지는 않다. 우리의 三權分立이란 것은 서로 권력독점을 못하게 견제하자는 것이지 도덕성을 인정받아서 그것으로 상대를 훈계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大衆의 心理를 이용하려는 얄팍한 생각이 조선일보에는 너무 자주 등장한다. 개혁의 의지는 없고 오로지 결사항전 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中央日報 >신문이란 상품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 와 신문사란 기업의 퇴출(退出) 여부에 대한 금융의 판단 앞에 겸허하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金融과 權力의 관계를 생각할 때 이 기사는 국민의 수준을 무시하는 글이며 독자(소비자)평가에 있어서는 이것은 우리의 意識부재를 한탄하게 된다.-인터넷 시대에 기존 언론을 견제하는 것은 시장과 법(소송)이지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가 아니다. 더더욱 세금 추징이나 無價紙 규제가 아니다. 무가지. 경품. 탈세 때문에 신문시장의 판도가 정해졌다고 하는 것은 독자 두려운 줄 모르고 하는 소리-마지막 성역이었던 언론이 자신의 차례가 오니 혼자만 칼날을 피하려하는 비겁함을 느낀다. 의식이 부족한 國民을 인질로 하여 국민을 칼받이로 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언론은 권력기관이 아니다. 권력을 견제할 뿐이다. 언론 권력은 쓸 것을 안 쓸 때 흥정으로 주어지고, 정치권력은 안 쓸 것을 쓸 때 강제로 힘을 쓴다. 같이 권력기관인 줄 알고 함께 놀다가 서로 수가 틀어지면 크게 당한다. 권력으로부터, 더 무섭게는 독자들로부터.-이 기사를 보면 기세 등등하던 言論財閥이 살아보겠다고 비대한 몸집을 움츠리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언론은 권력기관은 아니지만 권력자를 만들고 무너뜨린다.-이제는 이러한 반(反)지성의 풍토를 청산하고 언론개혁을 위한 진지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지식인들이 침묵을 깨고 사회적 발언에 나서야 한다.-이 기사를 보면 신문이 세상을 모르는 척 위선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된다. 지금 지식인들은 침묵하고 있는가? 오히려 중앙일보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틀어막고 있는 것아닌가?-특히 이제는 한편으로 정부가 언론개혁을 명분으로 언론의 자유를 훼손하고 있지 않은지를 감시하고, 다른 한편으로 언론 스스로 쇄신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감시할 수 있는 공정한 언론개혁 감시운동이 새롭게 등장하여야 한다.-검찰은 외면하고 강제력이 없는 감시만을 골라서 받겠다는 便宜主義의 극치를 보여준다.- 언론개혁 비화, 98년 청와대수석 중앙일보 작살내겠다현 정권의 언론사 세무조사는 1998년 말부터 치밀하게 계획됐으며 국세청의 주요 간부들을 미리 호남 인맥으로 교체하는 등 충분한 사전준비를 한 뒤 단행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마치 現政權의 陰謀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인상을 심어주면서 독자들에게는 동정심마저 얻을 수 있는 기사를 그것도 秘話의 형식으로 다루는 것은 대한민국의 대표일간지로서 어울리지 않는 내용의 기사인 것같다.< 東亞日報 >-박 정권은 3선 개헌을 앞둔 68년 11월 동아일보의 비판적 논조를 억누르기 위해 신동아의 借款 특집기사를 문제삼아 소유 주식 포기와 신동아 자진 폐간을 요구했다.전두환 군사정권은 80년 언론사 통폐합과 언론인 숙청, 81년 언론기본법 제정 등을 통해 저항세력을 제거하려 했다.김영삼 정부는 94년 언론사 세무조사를 언론 장악에 활용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최근 김대중 정부의 ‘언론과의 전쟁’도 비판언론 탄압이다. -以上의 기사를 보니 내 자신의 우리정치의 근대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94年 이전의 것들은 잘 모르고, 박정희시절의 이야기는 최근에 TV에서하는 3김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보아서 조금 알고 있는 정도이다. 韓國의 近代 政治史를 바로 보지 못하고 현재의 정치를 평가한다는 것은 무리임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 칼럼/민주화 동지 죽이기김대중 대통령과 재야 인사들이 민주화를 외치다 고난을 당할 때 지면을 통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것도 동아일보였다. 그들의 고난에 대해 침묵하거나 왜곡했던 방송은 지금 언론개혁을 외치고 거꾸로 동아일보는 개혁의 도마에 올랐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민주화의 同志를 내걸고 마치 언론과 권력의 의리를 동아일보의 아우들이 김대중 형님에게 너무하다고 하소연하는 격이다. 믿었던 형님이 등을 돌리니 섭섭하다는 이야기로 들린다.-민주당은 당보 ‘평화와 도약’ 30일자에 ‘해방 56년! 일제잔재 청산, 민족정기 회복’이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동아, 조선일보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에 대한 흠집내기를 시도했다.-이 기사는 또 뭔가? 이제는 동아는 김대중의 적이고 이회창 -유력한 야더후보- 과 이미 한편에 서 있음을 보이는 것 같다.< 한겨레 >-메이저 신문들의 文化面은 외양상 리버럴하게 변했지만, 취향의 보수성은 여전하다. 예를 들어 한 일간지가 주창하는 1등주의는 문화 영역에서 정도가 더욱 심하다. 문화를 일등부터 꼴등까지 위계 화시키는 것도 하나의 취향으로 인정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게 절대적이고 19세기적이라는 점이다. 이들의 취향에서 대중문화는 상등품만 선별하여 취급하면 그만인 대상이다. 나머지는 방계지인 스포츠신문으로 내려보내면 되니까. 이런 문화적 컨텍스트에서 상업적 댄스 가요를 비판하는 록 평론가의 주장은 의도와는 무관하게 엘리트주의의 변종이 되어 버린다. 逆으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주장은 선정주의와 상업주의에 놀아나기 쉽다. 어떤 주장도 액면 그대로 전달되지 않으면서 배후의 힘이 그 의미를 결정해 버린다.-이 기사를 보면서 나도 역시 신문에 속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文化는 역시 지배 이데올로기의 방패구실을 무리 없이 수행해준다. 우리는 문화를 통해 지배당하면 서도 어쩔수 없이 감각적으로 수용하는 위치에 있다.-정치학자 62% "언론사 세무조사 정당"응답자의 31.8%가 정당한 세무조사이며, 언론개혁에 기여할 것이라고 답했으며, 30.3%는 정치적 의도가 있긴 하지마 대체로 정당하다고 답하는 등 62%가 언론사 세무조사에 긍정적인 것으로 답했다. 반면, 세무조사는 필요하지만, 언론 탄압적인 요소가 있다(30.3%)거나 명백한 정치적 의도에 따른 전형적인 언론탄압(7.6%)이라고 답한 경우는 37.6%에 그쳤다.-이 기사를 보면 확실히 조선일보의 我田引水식의 설문조사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그나마 지식인의 목소리에 경청하는 언론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다음 대선이 한국의 종말이 아니다. 그 이후에도 한국은 존재한다. 만약 다음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한다면 그후 언론개혁 세력은 조선일보의 한나라당 통제 시도를 비판하면서 한나라당이 합리적인 길로 나아가게끔 애를 쓸 것이 분명하다. 한나라당은 이제 더 이상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언론개혁 죽이기라는 자기 무덤 자기가 파는 짓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사회과학| 2002.04.08| 6페이지| 1,000원| 조회(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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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학] 한국통일과 정당정치 평가B괜찮아요
    政治學槪論{統一을 위해 한국정치가나아가야 할 바- 政黨政治를 중심으로 -담당교수 :학 과 :학 번 :이 름 :Ⅰ. 序論한반도가 분단되어 버린 지 半세기가 흐르고 있다. 이제는 북한의 주석 김일성도 사망하였다. 오랜 시간이다. 그 동안 統一은 무조건적인 국민의 염원이었고 反對意思를 보이면 빨갱이 취급을 받던 時代도 흘러가고 있다. 분단으로 血肉을 북에 두고 온 세대도 이제는 우리 사회의 중심에서 벗어나 老年을 맞이하고, 자라나는 세대들은 反共意識이나 통일에 대한 생각이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그것이 우리의 憲法이 추구하고 있으며 국민적인 공감대(konsens)라고 할지라도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된 것이다. 아무래도 그러한 무조건적인 사고의 효력은 소멸시효에 걸린 듯하다. 75년생인 나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서 반공 포스터도 그리고 통일에 대한 웅변대회도 하고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아마도 지금은 그런 교육은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軍隊에서도 북괴 란 용어를 배제하고 북한 으로 칭하도록 하니까 군사정권의 힘의 대립구도에서 김영삼의 강경책 그리고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에 이르기까지의 변화 속에서 이제는 다시 한 번 통일이 주는 政治·經濟·社會·文化的인 파급과 그것이 우리 -여기서는 이미 남한만을 가리키게 될 것이다- 에게 어떤 變化를 줄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할 때인 것이다. 바야흐로 통일이 과연 반드시 必要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생기는 시점이다.統一은 필요한가? 세 가지의 이유가 있다.첫째로는 經濟的인 이유이다. 현재의 世界를 보자 지구에는 3개의 경제영역이 있다. 유럽과 일본 그리고 미국이다. 이 중에서 유럽은 아프리카를 미국은 남아메리카를 배타적인 독점시장으로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아시아는 어떠한가? 확실한 정리가 안된 상태이다. 일본이 선두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다. 학자들은 2020년이면 중국이 미국의 GNP를 능가 할 것이라고 하는데 아시아의 판도는 그 만큼 가변적이고 예견된 각축이 벌어질 것임이 분명하여전히 강대국으로서의 위용을 자랑하는 독일 아닌가. 우리의 통일 정책은 무턱대고 서두를 간단한 문제도 아니겠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한다.Ⅱ. 本論1. 統一의 現住所그렇다면 통일에 대한 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우리의 處地는 통일을 갈망하는 민족치고는 밝지가 않다. 마치 월드컵 16강을 바라면서 이루기는 어려운 現實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첫째, 일방적으로 주입된 情報이다. 언론사들이 그 동안 국만들에게 편향된 시각을 가지게 해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요즘의 言論改革과 관련해 생각할 문제이기도 하다. 조선·중앙·동아일보는 권력의 대변인이고 국민의 기만자였다.둘째, 二重的인 對北感情이다. 우리국민은 經濟的으로는 북한을 가만히 두면 쓰러질 존재라고 보지만 軍事的으로는 대단히 호전적이고 위험한 사람들로 보고 있다. 북한을 주적의 개념으로 보는 한은 다른 敵들을 제대로 보기 힘들 것이다. 우리의 적이 북한이 이상 우리의 발전은 어떤 영역에서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셋째, 旣得權층의 확고한 의지가 부족하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통일을 추구한다기 보다는 계산적인 이해로써 다루려고 한다. 그것도 국가적이지 않은 편협함 속에서 말이다.넷째, 아직도 민감한 思想의 自由문제이다. 국가보안법 과 관련하여 아직도 우리의 다양성과 상대성은 위협적인 북한이 있다는 특수상황의 논리에 눌리어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관용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우리의 국민은 통일문제에 대해서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에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우리민족의 통일일 실제로는 전혀 민족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다.마지막으로는 보고서의 이 보고서의 본론이 되어줄 것인데 政黨制度에 모순이 있어서 통일의 정책과 논의, 협상과정등에서 북한의 방식에 버금갈 정도로 들쭉날쭉하다는 것이다. 대내적으로 분단극복기반을 조성하고 확충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적인 現代政治의 어려움 때문에 불가능하다면 정치인들 간에서의 超黨的인 合意가 필요하다 상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할 공간이 말살된 시대로 들어간다. 政治는 없고 權力만 있었다. 온 국민이 계급장 없는 군인이 되어 장군의 지시에 복종했다. 결국은 독재를 끊을 兩金이 등장하고 그들은 선거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라이벌이 되고 그것은 지역갈둥으로 변질된다. 거기에 김종필까지 끼어들면서 서울은 中立이 되고, 경기·강원·제주는 완전히 植民地化 된다.결국은 선거에서 득표하기 위하여 지역을 이용하는 동서대립구도 가 생겨났다. 그렇다면 선거가 가장 큰 문제 아니겠냐고? 아니다 그 이전에 정치판을 구성하는 인물들과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를 보아야한다. 한국의 정치는 박정희 이후로는 2+1김밖에 없었다. 1인 독재에서 3인의 보스로 바뀐 것뿐이다. 더구나 셋이 다투느라 독재만 간신히 막았을 뿐 능률은 떨어졌다. 만원 버스에 국민을 꽉 채우고는 3인이 핸들을 잡고 싸우느라 차선한 번 지켜본 일이 없다. 내 사람이 아니면 믿고 맡길 수가 없지 라는 불신의 정치판에서 조직 폭력배보다 더한 충성의 가신들과 함께 2+1김은 자신은 영토를 바탕으로 버티어 왔다. 1인 보스체제와 지역패권의 정치가 선결과제이다.이런 1인 보스의 大權을 향한 野慾이 한국정치를 멍들게 하고 민중을 진창에 빠뜨렸다. 정당의 이념은 나라 분위기를 봐서 선전효과로 눈치껏 바뀌고 정당정책은 논리적 일관성의 결핍으로 만성 빈혈에 어지러워하고 있다. 머리만 3개 있고 몸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韓國政治이고 그 쓰러져가는 병자에게 작은 월급에서 무거운 세금을 때어 치료비로 내놓는 게 우리의 끈기 있고 무딘 韓國人이다. 이런 빈혈성 정책에는 우리의 염원인 통일 정책도 들어가 있는 것이다.3. 南北統一보다 급한 東西統一향토주의 는 애향심과 地緣的 유대감을 낳고 이것은 타 지역과 자연스런 경쟁으로 이끌어 진다. 이것은 地緣共同體의 발전의 사실적인 기초이고 지방자치제를 통해 지역발전과 민주주의의 활력으로 숭화될 수 있는 지역공동체의 긍정적 에너지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지역문제는 작은 단위로 분할된 소지역론사까지 손발을 맞추어 김대중을 선거 때마다 당혹하게 했다. 나도 어렸을 때 TV를 보며 김대중의 색깔은 북한의 적화야욕을 돕는 적색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한 기억이 있다.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면 나의 정치의식은 지금도 미흡하기는 하지만, 대학생이 된 이후로 1∼2년간은 정말 어이없는 사고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되어 부끄럽다.4. 비공식 정치제도 ㅡ 密室談合권력구조는 固定된 실체가 아닐뿐더러, 헌법과 마찬가지로 완결상태가 아니다. 3) 권력구조의 형성과 변천은 그 자체가 권력구조의 속성이다.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맞이하여 권력구조 논쟁은 정치권을 비롯한 극소수 인사의 밀실담합으로 주도되는 폐쇄된 공간에서 해방되어 각계전문가와 국민 다수의 참여가 보장된 공개적 영역으로 확대되어 더욱 폭넓고 깊이 있는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한국은 다른 발전도상국가와 마찬가지로 정치제도개혁이 시도되는 가운데, 民主的인 公式的 정치제도와 과거의 權威主義的인 非公式的 정치제도가 공존하면서 권력주조 운영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한국권력구조 운영의 또 다른 현상은 政治制度化 수준이 낮기 때문에 , 법적인 정치제도와 정치적 관행과 관례가 양립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는 공식적 정치제도가 제도의 약한 拘束力으로인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며 정치·경제 위기 시에 과거의 권위주의 정부하의 政治的慣行에 더욱 의존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더불어 권력구조의 운영은 새로운 공식적 정치제도의 설계와 형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치 주체들의 이익의 극대화와 이들간의 권력관계의 조정을 위해 권력구조의 운영을 조정하고 정당구조를 戰略的으로 변화시킨 결과이기도 하다.---------------------------------------------------------------------------2) Dick Gerdes는 (1985)에서 local'이란 말은 원래 교회의 종탑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지평선내의 협소한 지역을 가리킨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 용어는 거대한 지역(regio공약에 끼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 아닌가?둘째, 黨員의 구성과 유지에 관한 것이다. 실제로 정당의 이념·정책의 동조자라고 볼 수 없는 虛數의 黨員으로 구성되는 지구당은 지구당의 內實化를 이룸과 함께 실질적인 의견수렴과정의 주체로 드러나지 않고서는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게 된다. 4)셋째, 정당 조직의 非效率性, 非專門性을 지적할 수 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정당은 정책적이고 논리적인 토론을 한 기억이 없다. 언제나 수싸움이고 안되면 패싸움이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고 政治에 뛰어든 사람이 없다기보다는 그 바닥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고 또 그것을 아는 사람은 까마귀가 노는 곳에 가지를 않기 때문이다. 한 번 씻어낼 필요가 절실하고 그것은 3김정치와 그 추종자들 그리고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소수의 국민들의 사고 방식에 있다. 실제로 군복무 중에도 영남인과 호남인은 사이가 않좋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의 젊은이들 마저 이런 경향을 보이는 것은 3김이 죽는 날에도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에 맞겨둘 문제가 아닌 것이다.넷째, 政黨資金의 확보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이다. 비공식 통로를 통한 정치자금의 유입이 큰 문제이며 政經癒着의 고리를 끊는 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한다면 이러한 자금의 쓰임에 있어서라도 용도가 지구당에 쓰인다거나 했으면 좋겠지만 검은 돈이 좋은 일에 쓰인다는 것은 상식에 없는 일이라. 정치자금의 透明性確保를 위한 성역 없는 특검제 -형식적인 특검이 아닌 실질적인 특검- 이 필요하고, 선관위 등에도 더욱 보강이 요구된다. 권력에는 견제밖에는 방법이 없다 알아서 잘하는 정치인은 없다. 그들은 우리가 하기 나름인 것이다.---------------------------------------------------------------------------4) 이런 논의에는 두 가지의 제안이 주류를 이루는데 하나는 중앙당을 축소라고 지구당을 개편하여 명실공히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에 기여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구당을 폐쇄하고 자원봉사자나 후원회의 이다.
    사회과학| 2002.04.08| 9페이지| 1,000원| 조회(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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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 조셉폰타나의 거울에 비친 유럽 평가C아쉬워요
    西洋史의 이해book review담당교수 :학 과 :학 번 :성 명 :유럽의 문화는 한동안 세계의 문화를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본다. 수많은 사상들을 꽃피우고 자연과학의 발명도 공헌이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중심이 유럽에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무리가 있다. 그들이 중심도 전부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제3세계 따위의 표현도 싫어하는 나다. 무엇으로 1, 2, 3세계인가? 누가 기준을 부여했는가?이런 것들이야 말로 우리가 깨뜨려야 할 모습들이다.이 책을 통해서 유럽의 오만과 자기기만의 역사를 파헤쳐보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 나의 사고력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열등하지 않다. 문화의 우열비교는 결국 서로를 파괴할 것이다.이러한 책이 읽혀지게 한 조셉 폰타나님께 학문적인 공헌에 감사드리며 부족하나마 감히 서양사의 문외한으로써 서평이라는 것을 써보기로 한다.유럽은 오랜세월동안 유럽중심의 사고를 가져왔다 그것은 시대적으로는 사상이 상상의 나래를 널리널리 펴나갈 때 지리상의 발견은 그것을 따르기에는 무리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어찌보면 그것은 세계의 어느 민족이나 국가라도 별다를 바가 없지 않았을까 한다. 하지만 자기의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오만에 빠지는 것은 문명히 구분하여 볼 다른 것이다.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이 최근에는 미국에 대한 테러로 인하여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고 하는데 문명의 충돌은 피할수 없는 것일까?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월에 빠진 민족들이 겸손해지면 그만이다. 헐리웃 영화를 보자 미국인은 언제나 정의의 사도고 영웅이고 슈퍼맨이다. 아랍인은 테러범이고 항상 악역에 더럽게 묘사된다. 우리도 까끔씩은 당하고 있다. 이라는 영화에서 마이클 더글라스는 한국인에게 "돈벌어 먹으려면 영어를 해" 하고 말한다.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미국사회의 한국인을 미개인 취급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미국인이 말을 걸어올 때 영어를 모르면 자기의 영어실럭을 자학하면서 피한다. 일본인, 유대인은 대접을 받는다. 한국인, 아랍인은 홀대를 받는다. 현실의 약자는 야만인이다. 적어도 현실이 그런 듯하다. 왜곡된 거울을 깨뜨리고 자신을 바로볼 때 유럽도 살고 우리도 산다. 테러는 싫지만 미국자본의 제국주의에는 반대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유럽의 사상과 문학과 음악은 좋지만 중심을 떠넘겨줄 수는 없다. 가운데는 비워두고 둘러앉아야 이야기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한다.기독교는 서구의 문화와 함께 해왔다 기독교의 역사의 이해 없이는 서양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존중하고 따라온 그 종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우월하지는 않다. 하나님이 믿음과 신앙의 씨앗을 부려 놓았다면 유럽인 들은 그들 입맛에 맞게 개량품종을 만들어 왔다. 그 중에는 돌연변이(이단)도 생겼지만 더욱 큰 문제는 종교의 분화와 더불어 우열의 비교로 이어지고 있다. 종교는 이성을 흐리게 하고 현실감각을 잃게하고 선동적이 될 수도 있다. 나도 기독교신자지만 스스로 믿음이 이성적으로는 두려운 분열과 광기를 몰고 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는데 비트겐슈타인은 "모르는 것에 대해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신에 대해서 모른다. 그리고 침묵 -이 경우는 서로에 대한 默認- 해야한다.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에서 기준을 정하고 그 것을 戰線으로 대립하는 것 처럼 어리석은 것이 있을까?봉건영주의 城은 원래 역할은 영주의 주거, 방어시설, 비상시 백성의 피난 및 보호처였다. 하지만 이 성은 다르게 생각하면 농민들을 약탈·착취할 수 있게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고란 가끔씩 뒤집어보면 평온한 현실이 지옥임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이 정말 지옥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기사도정신'도 마찬가지다 武勇과 禮儀를 중시하던 기사도가 십자군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윤리인 敬虔과 弱子保護를 더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기사도신화'로 변질되어 가면서 소수의 상류가 대중을 지배하기위한 하나의 모델이 되어 버리고 만다 소수의 지배계급은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오게끔 꾸며낼 수 있는 것이다.마녀사냥 이야기를 한 번 보면. 십자군 원정이 실패한 이후 가톨릭교회가 사회의 불안과 종교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시작된 이 잔인한 연극이 합리주의와 휴머니즘시대인 16∼17세기에 절정에 이르고 있다는 것도 경악을 금할수 없다. 아무튼 힘없는 자의 입을 틀어막고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조작된 진실에 의해 피해를 보는 것이다. 우리사회를 둘러보자 천사는 만들기 어려워도 악마를 만들기는 참으로 쉽다 나 자신에게도 일부분 타인을 악마로 만들어 내가 면죄부를 받으려는 심리가 있다는 것을 감지할 때에는 스스로 소름이 끼친다.이 책에 나오는 '세 위계'이론은 예전에 TV에서 구소련의 붕괴시에 한 소련의 엘리트 간부의 가정부가 했던 말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 주인 나으리는 큰 일을 하시는 분이고 그런 분들은 우리보다 많은 것을 누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헌신하는 것이 국가에 도움이 되는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20세기의 현대에 사는 사회주의 국가의 중년 여인이 한 말이다. 형식적인 평등을 추구하고 이상을 만족시키지 못한 공산주의는 이렇게 몰락해간다. 하물며 중세에서 농민이나 도시빈민은 귀족들에게는 얼마나 하찾게 여겨졌을까. 그리고 뿌린만큼의 무시를 귀족들은 촌뜨기들의 유령들에게 되돌려 받게 되는 것이다.궁정문화는 지금의 유럽 유적을 보아도 무척이나 호사스러운 것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것이 농민들의 착취를 통해서 얻어진 것인 만큼 우아하면서도 역겨울 수밖에 없다는 점이리라. 경제적인 것 뿐아니라 이교적 요소인 마법의 도용이나 성행위의 악마적 행위로의 간주는 그저 자신들의 치부는 가리고, 민중에게는 조작된 도덕적인 강요를 통하여 감시와 처벌로써 다스리겠다는 치졸한 생각에 기인하는 것이리라.시간이 지나면서 강탈을 합리화하는 주장들은 계속되었다. 19세기의 아메리카 사회는 이상화된 인디언은 '고결한 미개인'으로 추켜올리고 실제 인디언 들은 문명의 서쪽으로의 확산을 가로막는 야만인으로 간주하는 정신분열증적인 게임에 치중했다. 그 결과 어린시절 서부영화를 볼때면 백인이 인디언에게 잡혀 죽을 때는 슬프고, 인디언을 무찌를 때는 즐거워했던 이유로 이어진다. 이런 유년의 인식들 중에는 배움이 늘어도 쉽게 극복이 안되는 것도 있다.마녀와 이단 그리고 유태인의 죽음을 즐겼던, 고문당하는 노예를 보고 즐기기위해 모였던 고대 그리스 시민의 계승자라고 부를 만한 자들은 아메리카의 식인종에게 우월감을 가질 아무런 권리가 없는 것이다. 우월감의 과시는 스스로 부족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2.03.26| 4페이지| 1,000원| 조회(1,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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