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아내서 라는 이 책의 반 정도를 읽은 날 밤 나는 깊은 잠에 들지도 못했고 몇 번이고 잠에서 깼다. 이 책의 3분의 2 이상이 필자가 호스피스 간호를 맡고 임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환자와 가족들의 얘기를 싣고 있다. 이런 얘기에 저녁 내내 빠져 있어서 잠을 잘 자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 같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마치 얼마 있지 않으면 내게 닥칠 것 같은 두려움이다. 처음 이 책의 이름을 듣고 표지를 봤을 때 이론서와 같은 좀 부담스러운 내용일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책은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책에 빠질 수 있었던 것 같다.이 책은 나에게 새로운 지식과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 해주었다. 내게는 막연하고 추상적이기만 했던 호스피스라는 개념에 대해 새롭고 확실하게 정립시켜주는 개기가 되었다. 그동안의 내 잘못된 생각으로는 호스피스는 몸이 좋지 않은 환자들을 간호해주는 유료로 도움을 받는 간병인이라고 생각했었다. 매체에서도 간병인과 호스피스라는 말을 구분 없이 쓰는 경우도 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무료로 여러 방면의 전문가들이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사실에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동안 나는 특히 의료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봉사하는 마음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현 사회에서 물질적인 면을 추구하는 의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차가운 면을 많이 보아왔는데 좋은 일에 봉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체계적인 호스피스 기관이 보편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그 수가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램이다.삶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를 보살피는 가족들의 모습은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2년전 쯤 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누워 계실 때 부모님이 병 수발하시는 모습이 생각나게 했다. 낮 동안의 대부분을 어머니께서 돌보셨고 방학 때나 주말엔 내가 조금 돕기도 했다. 사실 도와드렸다고 말하기가 부끄럽다. 그 당시 나는 대학교 1학년이었는데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에 나가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때 할머니와 많이 얘기도 나누고 함께 있어드리지 않았던 것이 후회된다.이 책에도 나와 있듯이 비록 누군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떠나지만 그 과정이 주변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도 크다고 생각한다. 내 경험을 얘기하자면 할머니께서 몸이 쇠약해지시기 전에 나는 할머니를 무섭게만 생각했고 엄마에게 시집살이를 많이 시킨다고 생각하여 감정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께서 아프시고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의 내 마음을 후회하게 되었고 내게 어떤 악영향을 주었더라도 잘 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전에 나보다 더 할머니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친구에게 잘해드리라는 말을 하는 내가 되었다.이 책을 읽으면서 놀란 부분은 사후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의 얘기였다. 할 수 없지요, 뭐 란 부제의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부른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52세의 폐암 말기 환자의 얘기는 참으로 신기했다. 어머니가 나타나 이틀 뒤에 죽을 것임을 암시하고 정확히 그 때 임종하시는 얘기였다. 이 환자 분의 사례 외에도 허공을 향해 손을 뻗으며 외치거나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얘기하는 등의 실화는 사후세계가 있음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그 동안 임종을 맞이하시는 분들의 얘기를 구체적으로 들어 본 적도 드물었기 때문일지는 몰라도 평범한 사람들의 사례를 들을 수 있어 신기하게 들렸다. 1년 전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주무시는 듯한 모습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사후세계에 대한 어떤 표현도 보지 못했다. 이 책에서는 인간의 죽음에 관한 기독교적인 입장에 대해서는 많이 나왔지만 타종교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마도 필자의 종교적 입장이 개입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돌아가신 할머니께서는 평생동안 불교를 믿으셨었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 종교마다 다르리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죽음이라는 말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기 시작한 때는 지난해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부터이다. 그리고 올해 2학기 노화와 죽음 이라는 수업에서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라는 책을 읽으면서 막연히 갖고 있던 그동안의 생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 수업에서 또 다시 이 책을 읽을 기회를 갖게 되었다.이 책을 처음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순간부터 생각하기 시작한 의문이 사후 세계가 있는 것인가 이다. 혼자 내린 결론은 사후세계가 있다 이다. 많은 생각 끝에 인간의 육체와 영혼은 분리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의 영혼이 육체에만 예속되어 있다면 인간의 이 복잡한 생각이나 감정들이 신체기관의 대사에 의해서만 작용한다는 말이 된다. 그렇기엔 인간의 사고와 감정은 매우 복잡하고 사람마다 다양하다. 단지 인체의 대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면 사람마다 감정과 생각이 다를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인간의 영혼이 육체와는 별개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영혼이 육체로 들어와 있고 육체가 죽은 후에는 영혼은 어디론가 가게 될 것이다. 그곳이 사후세계라고 생각한다.얼마 전 막을 내린 완전한 사랑 이라는 드라마의 주제는 부부간의 사랑이지만 한 사람이 죽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측면으로 드라마를 볼 수 있게 한 것도 이 책의 내용이다. 희귀한 난치병에 걸린 여주인공이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고 죽음을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을 비교적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모든 과정이 순서에 맞게 진행된 것은 아니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엘리자베스 큐블러 박사가 제시한 죽어가는 과정의 5단계가 잘 보여졌다고 생각한다. 처음 건강검진 결과를 듣고 의사에게 보인 그녀의 반응은 '부인'이다. 의사에게 검진 결과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되묻곤 한다. 여주인공은 극중에서 자신의 집안이 남편의 집안과 많이 차이 난다는 이유로 결혼 전부터 시댁으로부터 천대받고 무시당해왔다. 아이를 두 명이나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시부모님들은 그녀의 존재를 부정해 왔다. 그녀의 병이 악화되어 몸이 많이 불편해진 어느 날, 그녀는 남편의 뺨을 세게 내리 친다. 남편에게 결혼에 대한 책임을 묻기까지 한다. 시부모님에게도 더 이상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에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분노 의 단계를 보여준다. 자신이 죽을 병에 걸린 것이 시댁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이 여주인공이 가장 많이 보여주는 과정은 타협 의 단계였다. 사후에 남편과 아이들, 친정 어머니의 미래까지도 챙기고 화장을 해서 어디에 묻어달라는 말도 하며 남편의 재혼까지도 생각하는 등 자신의 죽음에 대해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가족들과 직접적으로 대화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에게 울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기도 하지만 비교적 그녀는 죽음을 받아들일 줄 안다. 치료방법이 없음을 알고도 그녀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부인하는 남편에게 자신의 죽음을 인식시키기도 한다. 아이들을 떼어놓고 공기 좋은 먼 곳에서 살자는 권유와 병원에 입원하자는 남편의 권유을 거절하고 가족들과 집에서 남은 삶을 사는데 이는 연명치료보다는 가족들과의 삶을 영위하고자하는 생각을 보여준다.
Ernest Hemingway의「The sun also rises」-영어영문 20011161 장윤경-이번에 읽게 된 「태양은 다시 뜬다(The sun also rises)」가 해밍웨이의 작품 중 처음 읽는 책일 뿐만 아니라 작가의 이름은 워낙 유명한지라 많이 들어 보았지만 작가에 대해서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아메리칸 드림과 관련해서 레포트를 쓰는 것이기 때문에 읽기 전에 내용을 추론해 보았을 때 낙심한 주인공이 어떤 사건을 발판으로 성공과 희망을 얻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내게 너무나도 어려운 소설이었다. 인물의 성격과 사건의 진행상태를 파악하는데도 오래 걸렸고 누가 어떤 대사를 말했는지도 혼돈스러울 정도였다. 처음 읽을 때는 도대체 이런 소설이 왜 유명해졌을까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아는데도 책장을 한참 넘겨서야 알 수 있었다. 소설 처음부분에서 일생이 묘사되는 사람은 주인공이자 서술자의 친구인, 로버트 콘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전지적 작가시점인줄로 알았다.책의 3분의 1을 읽고 난 후에도 나는 이 소설을 아메리칸 드림과 어떻게 연관지어야 할지 난감해했다. 후반부에 갈 때쯤에서야 약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의 중심인물인 제이크, 브레트, 로버트 콘, 마이클, 페드로가 여행을 가는 스페인은 아메리칸 드림에서 말하는 미대륙을 의미한다. 그들이 살고 있는 프랑스는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대륙으로 간 사람들이 원래 살던 곳(영국 또는 유럽)을 의미한다.내 생각에 이주민들(영국인들)이 미 대륙으로 건너간 이유는 두 가지의 이유로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아메리칸 드림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의미인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자신의 불만족스럽거나 비참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거나 그 현실을 감추기 위한 현실 도피처로서의 아메리칸 드림이 있다. 이 소설에서 로버트 콘은 프린스턴에서 유대인 대접을 받는 데서 느끼는 열등감과 부끄러움을 물리치기 위해서 고통을 참으면서 철저하게 권투를 배웠다. 유대인이라는 현실을 감추기 위해 권투라는 도피처를 택한 것이다. 제이크의 친구 스톤이 식사를 닷새나 거를 만큼 돈이 없을 때 그는 혼자만 있고 싶다고 했는데 그것은 단지 자신의 현실이 부끄럽고 비참해서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심정을 드러낸 것이다. 이럴 때 그가 자신의 방에 처박혀 있고 싶다고 했는데 그의 방이 도피처인 샘이다.두 번째는 자신의 현실과는 정반대의 세계 또는 그보다 조금 더 나은 세계를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할 수 있다. 미대륙으로 떠난 영국인들은 그곳에 가면 자신이 꿈에 그리던 일들이 일어날거라고 상상했을 것이다. 제이크에게 있어서 브레트와의 사랑은 꿈과 같은 이야기이다. 그는 전쟁으로 인해 성불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사랑으로 성립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성직자에게나 가능한 얘긴 것 같다. 또한 로버트 콘에게 있어서 브레트와의 사랑은 감상적이고 로맨틱한 사랑을 이루기 위한 꿈과 같은 대상이었다. 그 동안 그에게 있었던 사랑들은 진실되지 않고 어떤 이익을 추구하는 게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레트는 미모의 여성으로 항상 주위에 남자들의 시선과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그녀의 처음 사랑이었던 약혼자는 전쟁에서 죽고 그녀의 둘째 남편인 영국인 귀족은 영국 해군의 사관이다. 그러나 그도 부상을 입고 전쟁에서 돌아온 후부터 침대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마루바닥에서 자면서 끝내는 성격까지 난폭해져서 브레트를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이러한 남편 곁에서 더 이상은 살수 없다고 결정을 내린 브레트는 이혼을 결심하고 파리로 넘어와 마이크라는 남자와 약혼 중에 있다. 하지만 마이크도 전쟁의 악몽에 시달려 전쟁이 끝난 지금도 귓가에 기관총 소리가 파고들며 그로 말미암아 경제적으로도 파탄하고 술에 의지해 그것으로부터 벗어 나려하는 성격파탄자이다. 브레트는 많은 남자들을 상대하고 애정행각을 일삼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언제나 외롭고 공허한 슬픔을 품고 살아가는 여인이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투우사 로메오는 완전한 사랑을 위한 또 하나의 목표물이 된다. 이렇게 중심인물 개개인에게는 삶의 목표이자 이상향이 하나씩 있는 것 같았다.하지만 이들의 이러한 이상향들의 현실은 다만 허상에 불구하다는 것을 이 소설에서는 말해준다. 제이크가 빌에게 빈이 어떻냐고 물어봤을 때 '형편없어. 실제 이상으로 좋게 보이는 곳이야'라고 말한 것은 마치 이주민들이 실제로 미대륙으로 갔을 때 실망했을 것을 빗대는 말 같다. 소설에서 카톨릭 교도의 양면성을 보이는 것 또한 이와 유사하고 모든 사람이 이익을 위해서 일하며 아이러니와 연민을 보이라는 말도 이를 나타낸다. 내가 생각하기에 여기서 아이러니는 사람들을 혼돈시키기 위해 신비감이나 혼동을 주는 것을 의미하고 연민은 어떤 친숙함을 주어서 이 세계 즉 꿈의 세계로 오라고 화려한 장식으로 유혹하는 것이다. 소설에서 유혹을 카페인으로 표현하기도 했다.브레트가 로메오와 헤어지는 부분은 백인들이 원주민들을 문명에 물들게 하는 것을 비판했다고 볼 수 있다. 로메오는 순진하고 미모를 겸비한 청년이다. 브레트는 로메로를 유혹했지만 그녀가 로메로와 함께 관계를 지속해나간다면 그가 반드시 타락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서 떠나기로 결심한다. 로메오는 완벽한 투우사이기에 그녀가 그의 유망한 장래를 망쳐놓는 윤락녀가 되지는 않겠다면서 그의 곁을 떠난다. 이 부분에서 그녀의 참된 인간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그릇되었음을 깨닫고 그것을 빠져나오려 하는 모습, 윤리적인 규범에서 벗어나지 않고 자신을 자제 극복하는 모습을 예전에 백인들이 보여 주었다면 현재의 인종차별이 없었을 것이다. 소설의 내용중 무리중 하나를 떼어 놓으면 그 하나가 무리로부터 공격당하는 것이 나온다. 누구나 그 나머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만약 미대륙 발견시절 원주민들이 문명적으로 우세하거나 인원이 많았다면 지금쯤 백인들이 인종차별 반대를 외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프랑스로 다시 돌아와서 제이크는 프랑스가 스페인보다 좋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끝까지 다 읽었을 때 나는 이 소설에서 말하는 태양은 어떤 새로운 세상이 밝아오는 태양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 늘 뜨고 있는 태양을 말한다고 생각했다.*이 소설에 대한 비평을 찾아보니 거의 없었습니다. 특히 아메리칸 드림과 관련된 얘기는 하나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에 대한 다른 비평을 조금 넣었습니다."해는 또다시 뜬다"는 헤밍웨이의 최고의 장편소설(1926)로써 헤밍웨이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작품이다. 단편 작가인 헤밍웨이는 이 작품으로 인해 또한 장편소설의 재능을 과시하게 되었다.먼저 이 작품에서 제일 주목해야 할 말이 'Lost Generation(잃어버린 세대)' 이다. 이것은 그 당시 파리에 살고 있던 거트루트 스타인 여사가 쓴 표현으로 전쟁의 상처를 입고 파리로 모여든 나힐리즘에 빠진 미국의 작가들을 가리켜 한 말이다. 1920년대의 유럽은 'Lost Generation'에 속하는 젊은이들의 허무와 권태의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그 주요이유는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의 정신적, 육체적으로의 크나큰 충격 때문이다. 그들은 살아간다는 것, 살고 있다는 것에 아무런 의미나 가치도 부여하지 않은 채 또 그것을 찾지도 못한 채 무섭게 파고드는 어떤 초조함과 불안감을 잊어버리고자 파리에 모여 밤낮 가리지 않고 지껄이고 싸우고, 먹고, 마시고, 성욕충동에만 사로잡혀 오직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생활에만 빠져있는 나날을 보낸다.
누군가가 가보고 싶은 나라가 어디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도시가 화려한 곳보다는 푸르른 자연이 있는 곳, 호주같은 나라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젠 대답이 달라 질 것 같다. 고등학교 때부터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라는 책이름은 들어 봤지만 이제야 읽게 되었다. 이 책은 그동안 파리의 화려함만을 생각해 온 나에게 다른 시각으로 그곳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서장 빠리에 오세요 로 이 책은 시작된다. 나는 이런 형식의 책을 처음 읽었다. 그래서 아주 많은 호기심을 나에게 불러 일으켰다. 또 이런 형식은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것 같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나는 마치 내가 가이드에게 소개를 받으면서 파리를 여행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언젠가 내가 파리에 가게 된다면 이 책을 펴놓고 똑같이 따라가 보고 싶을 정도였다.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 의 영향때문 인지 어릴 때부터 다른 곳을 아무리 많이 소개받아도 역시 나에게 가장 가고 싶은 곳은 베르사유 궁전이다. 이 책에서 서울 광장 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웠다. 정말 이름이 붙여지게 된 연유를 알고 싶다.이 책의 필자 홍세화씨는 파리에서 택시운전사를 하게 된다. 책 내용 중에도 나오지만 서울대학이라는 일류대학을 나온 그가 그 일을 하기까지 무척 심리적 갈등을 많이 하고 자존심도 버려야 했다. 그 심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것이 나에겐 인간미를 느끼게 했다. 전혀 알지 못했던 택시 운전사의 생활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파리까지 알게 되어서 흥미로웠다. 아무 생각 없이 타던 택시를 요즘 탈 때면 이 책 내용이 생각나곤 한다. 난 아직 경험하지 못해서 동감한다고 말할 순 없지만 아마 작가가 택시운전을 하고 난 후 대학시절 한지붕 아래 살던 친구가 이해되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이 책에는 필자가 겪은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나온다. 기억에 남는 몇가지를 말하고자한다. 첫 번째는 필자가 초보운전사였을 때 길을 잘 몰라 목적지를 잘못 알고 가다가 중간에서 미터기를 다시 돌려 27프랑이 나왔음에도 청년은 늘 나오던 요금40프랑을 내며 초보자라고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모든 직업에 데뷔 시기는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라고 말한다. 필자도 이 말이 많은 힘을 주었다는데 나 또한 이 말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두 번째는 관광안내를 할 때 우리나라 남자들이 사창가에서 한국에서의 버릇대로 길거리 여자들을 보고 몸을 만지다가 큰 낭패를 본 일이다. 그런 부류의 여자들을 사람취급하지 않는 점과 아무대서나 그런 행동을 하는 남자들은 한번쯤 반성해 보아야 할 일이다. 세 번째는 설득하는 사회와 강요하는 사회(프랑스와 우리나라)를 비교한 것 이였다. 필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프랑스에선 이 주장과 저 주장이 싸우고 이 사상과 저 사상이 논쟁하는 데 비하여 한국에선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또 서로 미워한다는 사실이다. 이 말에 나 또한 전적으로 동감했으며 내 자신에 대해서도 반성하게 만들었다. 네 번째는 버스차장은 대학생에게 반말하지 않는데 대학생은 반말을 한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리 대단하지 않은 대학생이라는 위치에 있으면서 남을 무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그 대학생을 떳떳하게 욕할 수 없었다. 다섯번째는 개똥 세 개 얘기다. 노력하지도 않고 능력도 안되면서 허풍만 떨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다. 나도 필자처럼 세 개째 개똥을 내가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끔 들 것 같다.필자는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상황에 규탄하는 내용도 몇가지 쓰고 있다. 동생과 자기 이름에 대한 비화가 그 첫번째이다. 민화는 한국전쟁에서 죽었고 세화는 방황하고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무언가 많이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형제를 따로따로 입양시키는 우리나라의 실태가 그 두 번째이다. 잔인하다는 생각 마저 든다. 마지막은 한국과 프랑스의 교육실태에 대한 비판이다. 내가 비판의식이 생긴 이후부터 나 또한 우리나라 교육이 크게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획일적인 교육, 이제는 달라져야 할텐데 말이다. 프랑스의 교육수준에 새삼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