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현실과 교사론- 교사의 역할과 전문성을 중심으로 -< 목 차 >Ⅰ. 들어가며Ⅱ.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과 영어교육의 현실1.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2. 학교에서 영어교육의 현실가. 입시 위주의 수업 방식나. 문법 위주의 교과서다. 영어 교육의 시기라. 영어교육의 목표마. 의사소통이 가능한 영어교사의 부족3.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문제점과 원인Ⅲ. 현대 사회에서의 교사의 자질과 전문적인 영어교사로서의 역할1. 현대 사회에서의 교사의 자질2. 전문적인 영어교사로서의 자질과 역할가. 영어교사의 자질나. 영어교사의 역할Ⅳ. 결론Ⅰ. 들어가며프레이리가 말하는 학교는 “생각하고 참여하고 창조하고 말하고 사랑하고 추측하고 열정적으로 끌어안고 삶을 긍정하게 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정말 우리 모두가 바라는 학교의 이상형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나라의 학교현실은 이와는 반대인 상황이다. “교권이 추락하고 있다.”, “교실이 붕괴하고 있다.” 등의 학교 교육에 대한 부정적이고도 걱정스런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교실에서는 선생님의 지도에 따르지 않고 제각기 행동하여 수업 분위기가 흐트러져있고, 이런 산만한 환경 속에서 교사는 풀이 꺾여 손도 써보지 못하고 있다. 공부를 하고자 하는 입시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학생들은 과외와 학원수업으로 몰린다. 치열한 내신시험과 입시경쟁에서 낙오하였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의 자살이 늘고 있다.‘이런 가운데 왜 나는 교사가 되려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나는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가?’를 을 읽으며 깊은 반성과 함께 여러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당신은 왜 교사가 되려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우선 “어렸을 때 좋아했던 선생님을 보며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평생 가르치며 배우며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직업으로 여겨졌으며, 많은 보람이 있을 것 같아서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직업의 안정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여자 직업으로서의 안정감과 편안함도 많이 고. 취직과 같이 현실적 필요성에 부응하거나 개별 개인의 욕구와 연결된 지식만이 관심을 끌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은 위기임에 틀림없다. 그 중에서 현재 우리 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중등교육현장에서 나타나는 ‘교실붕괴, 학교 붕괴’라고 생각한다. 먼저 우리나라 중등교육이 현재 어느 정도까지 곪아 있기에 교실붕괴라고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음에 나와 있는 기사는 인터넷에서 발췌한 것이다.▲ 낮이면 텅 비는 고3교실)2003학년도 대입 수능시험(11월6일)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학원수업이나 개인과외로 최종 정리를 하려는 3고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성화에 떠밀려 개점 휴업하는 고교들이 속출하고 있다. 강남 일대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 K고와 S고도 2주전부터 오전 11시까지만 정상수업을 하고 있고, C고와 W고는 일괄적인 단축수업은 아니지만 희망자에 한에 오전 수업만 받도록 허용하고 있다. 수능을 앞두고 학교마다 학생들을 자정 무렵까지 잡아두고 막바지 정리를 해주던 과거 모습과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다. 대치동 H고 김모 교사는“학원이나 과외 방 등에 보내기 위해 수업을 일찍 끝내달라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하루 5통 넘게 걸려와 거의 정상수업을 할 수 없는 분위기”라며 “어쩔 수 없이 우리 학교도 다음 주부터 단축수업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푸념했다. J여고 3학년 김모(19)양은?학원 강의가 학교수업보다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에 시험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친구 대부분이 학원에서 공부하기를 바라고 있다?며 ?고교 3년은 수능을 위해 다니는 것인데 단축수업이 뭐가 문제냐?고 되물었다.▲ 학원가는 낮부터 북적강남 일대 고3 교실이 수능이 다가오면서 텅 빈 것과는 대조적으로 학원가는 낮부터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북적댄다. 이날 낮 ?수학 족집게 강의?로 유명한 대치동 D학원 강의실에는 각기 다른 교복을 입은 20여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었다. 언뜻 봐도 교복의 종류가 6가지. 그만큼 강남 일대 고교의 단축수업이 만연돼 있다는 방부터 죽이고 싶었다.”고 했다. 교육은 필요한 지식을 익히는 동시에 인륜과 도리를 배우고 건강한 몸을 만드는 종합적인 과정이다. 즉, 지?덕?체를 균형 있게 기르는 것이다. 그러나 자녀에 대한 부모의 지나친 기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출세만능 사고, 공동의 선보다 개인의 욕구를 우선시하는 왜곡된 가치관이 교육이 제자리를 찾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참된 의미의 교육이 사라진 곳에 일등주의, 출세주의, 권력지상주의의 왜곡된 가치관만이 남았다. 순수하게 자라야 할 어린 시절부터 성적에 목숨을 거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올바른 품성과 건전한 사고방식을 기대할 수 있는가. 이제 더 이상 가정, 학교 그리고 교육당국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모두가 교육의 주체가 되어 공통된 가치를 형성하고 참다운 인간 형성을 위해 노력할 때 패륜범죄가 근절될 수 있을 것이다.2. 학교에서 영어교육의 현실중앙일보 2003년 8월 26일자 사회면에는 "한국인 영어구사 능력, 아시아 12개국 중 꼴찌" 라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각 국의 교육제도, 임금, 영어 구사능력 등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한국인들의 인력 수준은 아시아 12개국 중 9위에 불과하며 특히 영어 구사 능력은 꼴찌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조기 영어교육, 사교육열풍을 제외하더라도 현재 사회에 진출해 있는 성인들의 대부분이 중학교 1학년부터 적어도 6년 이상의 영어교육을 받은 계층들이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 영어교육을 받은 그들이 아시아 최하의 영어 능력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입시위주의 영어교육, 문법 위주의 교과서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영어교육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우리나라 영어문제 해결의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할 영어교사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어 보아야 할 것이다.가. 입시 위주의 수업 방식우리나라의 경우는 대부분의 영어수업은 입시를 위주로 진행되고 있고 학생과 교사 모두가 입시라는 목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상호작용러나 실제 교실 수업에서는 그 목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외국어 교육의 기본 목표가 의사소통능력(communicative competence)을 개발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영어교육 현실은 언어능력(linguistic competence)개발에 치우쳐 있다. 물론 언어능력의 개발은 영어교육의 중요한 부분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의사소통능력 개발을 외면한 채 언어능력 개발에만 치 우치는 영어교육은 학생들을 문법이나 어휘면 에서는 능숙하지만 말하기, 듣기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는 미흡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마. 의사소통이 가능한 영어교사의 부족“의사소통 능력의 향상” 이라는 교육과정 목표의 달성을 위해 가장 필요한 부분이 회화가 가능한 교사이다. 그러나 현재 중?고등학교 교사의 대부분이 영어를 이용한 수업진행이 어려운 상황이며, 초등학교의 영어전담 교사의 경우에는 말하기 능력만을 위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아 교수자로 서의 역량이 부족하거나 한국말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원어민 교사들이 채용되고 있다.3.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문제점과 원인요즘처럼 영어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대단한 때에 우라나라에서 영어교사는 부담스러운 직업이기도 하다. 영어교사를 직업으로 가진 주부일 경우, 학부모 모임에서도 반상회에서도 영어교사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모든 주제가 영어요, 그들의 시선이 다 영어교사에게로 쏠린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고, 어느 학원이 좋은지, 혹시 아는 외국인 선생님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요즘 부모들은 영어는 학교가 아닌 학원에서, 영어 선생님이 아닌 외국인이게 배워야 잘 배운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이 땅에서 영어교사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학교에서 신임교사 보다 오래전에 교직생활을 시작하신 교사들에 있어 이런 문제가 종종 있다고 한다. 예전 그대로의 문법위주의 설명으로는 조기교육이다 사교육이다 해서 학생들의 수준은 예전보다 높아지고 있는데, 영어교사들만 우물 안의 개구리 식이 되어버, 지식사회로 대변되는 새로운 문명과 시대의 도전에 대하여 적합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역사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현실인식도 중요한 관점이다. 과학기술, 문화, 창조력이야말로 다가오는 미래사회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고, 한 사회의 힘과 부, 개인의 삶의 수준은 기술, 정보, 지식, 문화 등 지적 자산의 수준에 의하여 결정된다. 이러한 지적 자산은 본질적으로 국민의 학습능력과 창조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국민의 지적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교육을 바로 세우지 않고서는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없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자명한 진리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중요한 교육을 실제 이끌어 가는 주체는 바로 교사이다. 교사는 인간의 성장과 발전, 또는 개인의 자아실현을 돕고, 바람직한 사회 성원으로 적응할 수 있는 인간의 형성을 돕는 고귀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교직은 인간을 대상으로 인간의 정신생활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이기에 타직과 다르다. 또한 미성숙자를 대상으로 하며, 국가와 민족에 대하여 지대한 영향을 던져 주는 공공적 사업으로 사회진보에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음으로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우수한 교원을 확보하고, 그들의 능력을 개발하여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일은 교육개혁의 성공을 위하여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원정책은 교원 양성기관의 정체성 미흡, 교원 수급 불균형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문제로 인하여 교원정책의 근본적인 개혁이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우수한 교원을 확보하는데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교원의 전문성을 약화시키고, 사기를 떨어뜨림으로써 교육의 질적 효과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교원의 사기가 떨어지고 교원의 전문성에 대한 도전을 받고 있지만, 우리는 예비교사로서 우리 모습을 살펴보고 준비된 교원이 되기 위하여 교원의 자질과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교원의 자한다.
< 사랑은 비를 타고 무지개가 되리라 >이 작품을 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 때마다 사정이 생겨 보지를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볼 기화가 생겨 그것도 정상가보다 훨씬 싸게 볼 수 있어서 너무도 기뻤다. 여태까지 뮤지컬 공연으로만 대극장에서 한 "명성황후", "그리스" 그리고 소극장에서의 "55size 500cc 5cup"을 본 뒤로 이번이 내게는 4번째로 보게 된 작품이었다. 항상 '뮤지컬'이라 하면 큰 스케일로 커다란 무대와 많은 배우들을 떠올리며 공연을 예매했다. 하지만 "55size 500cc 5cup"이란 소극장에서의 공연을 보면서 작은 무대에서도 그리고 창작뮤지컬도 얼마든지 재미있고 큰 스케일의 뮤지컬과는 다르게 아기자기한 맛이 난다는 것을 느꼈었다. 그래서 이번 "사랑은 비를 타고" 역시 워낙 인기가 많았기에 어떻게 그려졌을지 무척 기대가 됐다. 극을 보면서 젤 놀라웠던 점은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단지 3명이 무대 위에 올려지는 뮤지컬 공연은 처음이었다. 뮤지컬 뿐만이 아니라 내가 본 연극에서도 실제로 몇 명 안된다 하더라도 1인 다역을 해서 여러 명의 역할을 한 공연들을 보아왔기 때문에 이번 공연이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3명의 배우만으로도 무대가 가득 채워진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다른 공연과는 달리 공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비를 타고"라는 제목을 생각하게 했던 빗소리가 아직도 내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워낙 "사비타"라고 줄여서 말해질 만큼 많은 인기를 모아 온, 그리고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공연이라 여기저기서 들은 볼거리들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내 눈으로 보니 신기하고 더욱 즐거웠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공연 시작 전에 무대와 관객 사이에 내리던 빗줄기였다. 대극장도 아닌 소극장일 경우 이런 '비'와 같은 자연적, 환경적 여건들은 주로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직접 내리는 비를 보면서 내 앞에 펼쳐진 무대가 극의 무대라기 보다 창 밖으로 내가 있고, 창 안으로 누군가의 집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눈으로 보이는 빗줄기와 소리, 음악들이 어우러져 내가 공연장에 온 것이 아닌 지금 비가 내리는 어디선가에 앉아있다는 착각을 느끼게 하면서 더욱더 난 공연 속에 빠져들었다. 쏟아지는 빗줄기와 함께 불이 꺼지고 다시 조명이 켜지면서 벽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을 비춰주었다. 따스한 빛의 온기가 나에게 느껴질 것만 같은 설레임으로 한 시간 4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너무 즐겁게 보았다. 단지 즐거움 뿐만이 아닌 나의 삶과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에선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내가 집에서 맏이여서인지 형(동욱)의 입장에 더욱더 많은 공감이 갔다. 나 역시 아버지께서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장애를 가지고 계셔서 집안의 맏이와 동시에 가장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형인 동욱의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어느 누구보다 동생들이 잘 되기를 바랬던 마음, 부모가 없기 때문에 자신이 동생들에게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동생들이 조금이라도 삐뚤어진 길을 걷게 될까봐 애심초사하는 형의 마음, 자신보다 동생들이 잘 살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끼게 되는 그 마음을 내 현실에서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극 중에 형의 우스꽝스러운 말투, 표정, 몸짓에서조차도 마음이 아팠다. 동생들을 돌봐야했기에 마음을 항상 강하게 다스렸던 형,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동생들이 잘못되면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과 외로움을 가지고 있는 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형인 동욱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됐지만 극을 보면서 서서히 동생인 동현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동현은 형에게 형의 꿈을 자신에게 강요함으로써 보상 받으려 한다며 아픈 소리를 했지만 그 말이 진심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형을 사랑하던 주 선생을 만나지만 않았더라면 자신 역시 형의 끝없는 헌신을 누나들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았을거라는 괴로움과 함께 형의 사랑에 대해 자신이 보답할 수 없을까봐 이런 두려움으로 그는 먼 바다까지 도망가게 된 것이다. 이 극을 보면서 난 내 동생에게 사랑과 헌신이라는 이름 아래 지나친 기대와 강요를 하고는 있지 않는지 뒤돌아보게 됐다. 가족 뿐만이 아닌 이성의 사랑에 있어서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아가면서 나를 희생하고 버리는 것이 아닌 오히려 나를 지킴으로써 사랑해야 한다. 그 어느 누구보다 나를 먼저 사랑하고 지킬 줄 알아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그리고 주소를 잘못 알고 들어와 결혼파티를 해주면서 동욱과 동현 사이로 갑작스레 끼어들게 된 '유미리'라는 인물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자신의 첫 직장인 결혼 닷컴에서 연달은 실수로 하루만에 짤리게 되고, 자신의 무능함에 빨리 시간이 흘러 30, 40이 되기를 바랬던 그녀가 예전의 내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 역시 20살도 안되어 회사에 입사했을 때에는 실수도 많이 하고, 내 미래의 나를 생각하면 두려워서 세월이 흐르면 지금보다 나아진 내 모습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빨리 시간이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내 모습은 똑 같다고 생각이 드는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 부분에서 동현과 미리의 언제나 그 나이 때에는 누구든 실수를 하고 두려워하지만 뒤돌아보면 그 때 그 시절이 그립다는 내용의 노래가 내 맘에 와 닿을 수 밖에 없었다.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봄)“가 왜 아름답고 상상력이 뛰어난가?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라는 작품을 강의를 통해 보았을 때, 아름답다는 생각과 함께 약간은 왠지 모르게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를 통해서 몇 번은 스치듯 본 그림이었지만, 보면 볼수록 ‘봄’의 신선함과 팔랑거림이 전체적으로 느껴졌다. 1477년과 1478년 사이에 그려진 그림으로 지금은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체의 우피치 박물관에 걸려있다고 들었다. 수치가 203*314cm라 하는데, 생각만 해보아도 이 수치의 그림이라면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원래 인물처럼 보여질만할 것 같다. 내 주위에 유럽여행으로 박물관을 다녀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실제로 이 그림을 보면 정말 색채가 너무 아름다워서 놀라울 정도라고 한다. 따라서 사진을 통해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실제로 본다면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전체적인 느낌은 봄을 느끼게 했지만, 그림 속의 등장인물들은 제 각기인 듯 한 점이 의아했다. 차차 이 그림에 대해서 여러 책들을 보고 알아가면서 겉으로 마냥 아름답다고 여겨졌던 한 그림 안에 이토록 많은, 그리고 놀라운 사실들이 숨어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어떤 놀라운 사실들이 숨겨져 있는지 차차 하나씩 파헤쳐보면서 이 그림이 왜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이 뛰어나게 묻어있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우선 이 그림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그림의 배경은 숲인 듯하다. 밑에는 풀로 가득하여 맨발로 밟아도 감촉이 좋을 듯한 푹신해 보이는 풀밭에 주위에 온통 오렌지 나무로 가득 차있고, 역시 위로도 오렌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이런 배경에 9명이 등장하는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한명씩 혹은 서로 그룹이 지어져 그룹 외에는 서로 모르는 듯하다. 아니 아예 옆에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그리고 나란히 서있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자세히 보면 약간씩은 그룹마다 둥글게 혹은 앞뒤로 균형을 맞춰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원을 아주 길게 늘인 듯한 형태로 8명이는 여자가 제일 내 눈을 끌었다. 보티첼리의 작품인 “비너스의 탄생”에서도 보았던 여자였기 때문에 단 번에 ‘비너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자의 오른쪽 손 모양만 틀릴 뿐, 갸우뚱하는 고개의 각도를 비롯한 전체적인 모습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또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비너스가 임신을 한 모습이다. 여기서 난 왜 비너스가 임신을 한 상태로 여기 서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신화에서 아프로디테는 왠지 요부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여기서의 모습을 보면 정숙하고, 청초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지금 비너스의 임신한 모습에서 보면 꼭 성모마리아를 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나중에 이 그림에 대해서 여러 책을 보면서 나의 착각이 맞았음을 알게 되었다. 한 책에서는 ‘이 정숙한 비너스의 포즈는 후대 회화에서 성모 마리아의 모습으로 여러 차례 변주된다.’)고 쓰여 있었다. 비너스 위로는 그녀의 아들인 큐피드가 눈이 하얀 천으로 가리워진 상태에서 화살을 쏘고 있다. 화살의 방향이 왼쪽으로 치우쳐서 윤무를 추고 있는 세여인 쪽으로 향해 있는데 자세히 누군지 모호하다. 그리고 왜 하얀 천으로 눈을 가리고 화살을 쏘는지도 궁금한 상황이다. 눈을 가장 왼쪽으로 돌리면 빨간 천으로 몸을 감싼 한 남자가 오른손은 허리춤에 대고, 왼손에 들려있는 지팡이로 위쪽을 파헤치고 있다. 이 인물은 여러 해석상에서 ‘머큐리’로 알려져 있다. [신들의 계보에 의하면 머큐리는 가장 영리하고 빠른 신으로, 하늘과 지상을 오르내리며 신과 인간 사이를 중계하는 역할을 한다. 웅변의 신인 그는 또한 우미의 세 여신을 인도하는 신이기도 하다. 르네상스의 인문학자들은 이 머큐리를 신비하고 비밀스런 지식을 전하는 신이자 수호신으로 해석했다. 동시에 그는 의학지식을 관장하는 신으로 여겨지기도 했다.)]라고 머큐리는 설명된다. 머리에 월계수관을 쓰고, 허리춤에 칼을 메고 있는 머큐리가 어떤 의미에서 그런 포즈를 취하고 있는지는 작가가 이 그림에서 말하려는 전체적인 의미와 관련이 있다고 말해준다. 그리고슷하면서도 다르게 느껴진다. 또한 자세히 보면 서로 입은 옷의 디자인과 액세서리도 약간은 틀리다. 맞잡고 있는 손 역시 요염해 보일만큼 살짝 잡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세여신은 왼쪽부터 ‘애욕’, ‘순결’, ‘미’를 상징한다고 알려준다.) 비너스 옆으로 있는 한 무리 역시 너무 특이해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비너스 바로 옆의 한 여인은 온통 꽃이 그려있는 옷을 입고, 머리에도 꽃 왕관을 썼을 뿐만 아니라, 치마폭에 쌓여있는 꽃잎을 날릴 태세로 있다. 이 여인의 표정은 봄이 피어나는 것처럼 고귀하면서도 장엄한 느낌을 주었다. 이런 느낌과 반대로 옆의 여자는 너무나 겁을 먹은 듯한 표정으로 뒤를 보며 앞으로 튀어나오려 한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 두 여인은 서로가 존재하는지를 모르는 듯하다. 겁에 질린 여자 뒤로는 온 몸이 푸른 남자가 입에 가득 바람을 품고 쫓아가고 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여러 책을 통해서 이 부분은 오비디우스의 글로 연구하여 이렇게 해석이 되어 있었다. [오비디우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봄바람을 몰고 오는 서풍의 신 제퍼에게 겁탈당한 땅의 님프 ‘클로리스’는 봄의 여신인 ‘플로라‘로 변한다. 말하자면 서풍의 신 제퍼의 손길을 받고 있는 저 겁먹은 님프는 ’클로리스‘이며, 그녀의 왼쪽에 꽃으로 장식된 옷을 입고 당당하게 걸어나오는 여인은 봄의 여신 ’플로라‘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모종의 언어유희가 작동하고 있다. 즉 그리스식 이름인 클로리스가 로마식 이름인 플로라의 변형이고 플로라가 봄의 여신이라면, 저 프리마베라는 여인은 바로 옆의 클로리스가 변신한 모습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두 여인의 존재를 서로 모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이다. 공통된 한 인물이 변해가는 모습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는지 작가의 상상력이 너무도 보이는 장면이었다. 자~이렇게 각각의 인물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파악이 되었다. 하지만 왜 이 많은 인물들이 한 배경 속에 파묻혀서 멀 말하려한단 말인 나타나있어서 독자는 그 점을 캐치하여 받아들이거나 비평을 한다. 역시 지금 내가 궁금해 하는 그림에도 작가의 의도는 숨어있으리라. 그렇다면 연관 없어 보이는 인물들과 각각의 인물들의 행동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 했단 말인가? 책과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면서 이 그림에 대한 많은 해석들이 나와 있었다. 그림 왼쪽부터 봄의 계절인 3~5월까지를 차례차례 보여준다는 학자의 해석도 있었고), 정치적 계산이 깔린 정략결혼이라는 해석을 내놓은 학자도 있었다.) 그 중에 나는 이 해석에 많은 동감을 했다. [’호르스트 브레데캄프’학자의 해석에 의하면 아까도 말했듯이 의학의 신인 머큐리가 가진 메디쿠스(의사)의 성격이 우연히 메디치가(메디쿠스의 복수가 ‘메디치’라는 라틴어)의 이름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메디치가는 상인 가문이었는데, 당시 머큐리는 동시에 상업과 교통의 신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다양한 특성을 가진 머큐리의 상징을 해석함으로써 이 그림이 정치적 선동의 목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피렌체라고 하는 이름은 플로렌스, 플로렌치아, 혹은 플로렌차라고 하는데, 이는 봄의 여신 플로라, 그리고 꽃이라는 뜻의 플로리와 발음이 유사하다. 그래서 플로렌스라는 이름은 자연스레 ‘꽃으로 충만한 도시’라는 은유적 의미를 갖게 된다. 화면의 오른쪽으로 세 그루의 월계수가 보이는데 이 월계수는 오렌지 나무로 장식된 나머지 부분과 대비를 이룬다. 당대의 휴머니스트 폴리치안에 따르면 월계수는 사랑의 정원에서 자라는 나무로, 메디치 가문에서 이용하는 ‘로렌초’라는 이름과 관계가 있다. 항상 푸른빛을 유지하는 월계수는 ‘재생’의 상징으로 다음 세대의 희망을 표현한다. 꽃으로 충만한 아름다운 동산의 도시 피렌체, 항상 푸른빛을 발하며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월계수, 그리고 이 그림의 주문자, 즉 당시 피렌체를 다스리던 메디치 가문, 이 세 요소를 서로 연관시킬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꽃과 나무로 충만한 정원에서 비너스가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나왔는지, 봄의 여신 플로라로 변화하는 모습을 왜 그렸는지에 대해서 의문의 답을 풀 수 있었다. 또한 이 학자는 머큐리와 그 주위의 배경에 대해서도 자세히 해석을 했다. [머큐리가 고개를 돌린 방향에는 탐스런 오렌지 나무가 우거져 있다. 이 황금빛 오렌지는 고대신화에 나오는 헤스페리데서의 정원에 있는 과일로, 그것을 차지하는 자는 영원한 젊음과 사랑, 그리고 풍요를 누리게 된다. 또 머큐리가 자신의 상징인 뱀 문양의 지팡이를 들고 오렌지 나무에 걸린 구름을 흩뜨리는 모습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운무 같은 짙은 안개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낙원에서 열리는 황금빛 오렌지 나무 사이에 걸린 짙은 운무를 조심스럽게 걷어 내는 머큐리의 모습에는 피렌체를 지상낙원으로 만들고자 했던 주문자의 정치적 이상이 숨어 있는게 아닐까? 또 먹구름을 흐트러뜨리는 저 머큐리의 행동에는 자신들의 세상에 어둠을 드리우려는 정적들의 어떠한 음모도 꺾어 버리겠다는 메디치 가문의 자신감과 위엄이 감추어져 있는게 아닐까?) ] 프랑스 미술관 탐방 강의를 통해 여러 작품들을 대하고 교수님 설명을 들으면서 제일 인상 깊었던 점은 그림마다 나오는 하나하나의 물건, 동물, 소품들 모두가 제 각기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탐스런 빨간 사과가 나오면 ‘애욕‘을 말하고, 죽음을 상징하는 물건, 결혼을 상징하는 물건 등 각기의 의미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 그림에 나오는 하나하나의 자연적 배경들,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소품들이 그냥 예쁘게 하기위해 작가가 그려 넣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또한 어떤 책에서는 이 그림에서 윤무를 치고 있는 세 여인의 ’미‘가 그 시대 최고의 미를 나타냈으리라고 말한 부분을 보았다. 최고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미의 기준이 시대마다 다르게 묘사되었던 것이다.) 이런 복잡한 착상은 보티첼리 한 사람의 개인적 능력이 아닌 이 그림의 주문자이면서도 보티첼리의 후원자인 로렌초와도, 보티첼리와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던 당대의 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