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얀전쟁(White bedge)』국어국문학과 98601029 이덕우Ⅰ. 서 론전쟁은 영화에서 끊이지 않고 선택하는 소재중 하나이다. 아마도 전쟁은 전 인류가 한데 어우러져 벌이는 단체적인 소재 중에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소재 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정지영 감독의 「하얀전쟁」이 기억에 남는다. 배트남전을 미국이 아닌 아시아인의 입장으로서 전쟁에 대한 고찰한 유일한 자품이며, 이 영화의 원작자인 안정효는 이 작품으로 그해에 가장 주목받는 자각의 반열에도 올랐었다. 그들의 눈에는 동양인이 미국 대중문화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그리고 우방국이었음에도 실체는 용병이었다는 사실이 그토록 맘에 들었던 것 같다. 우리에겐 하나의 치유되지 않은 우울증인데도 그들은 하나의 흥밋거리인 것 이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것에 그 치지 않는다. 지성인으로서 시대를 읽고 그에 따라 처세를 달리해야만 생존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과연 월남전이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가에 대하야 대하여 진지하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최초로 월남전을 소재로 제시한 첫 영화이며 동시에 예술인들의 자세를 묻는 감독 자신의 자전적인 영화이기도 한 것이다.Ⅱ. 본 론70년대 우리나라 경제부흥의 디딤돌이 된 젊은 영혼들이 남의 나라 남의 땅에서 헤매다 죽어 간 대가로 오늘날 우리들의 살을 가능케 한 월남전이 「하얀전쟁」의 배경이다. 주인공 한기주는 시사 잡지에 월남전을 소재로 소설을 연재하며 맥없이 살아가는 무기질 중년이다. 그에겐 월남전에 참전한 상흔이 도처에 남아있다. 그러한 그에게 월남전 전우 변진수가 느닷없이 나타나 권총 한 자루를 남기고 떠난다. 변진수는 늘 한기주의 주위를 맴돌며 그를 혼란에 빠지게 하고 마침내 한기주는 잊으려 애썼던 월남전의 기억을 더듬게 되고, 변진수가 그토록 헤어나지 못했던 의문의 실체를 벗기기 시작한다.· 왜 제목이 「하얀전쟁(White bedge)」 인가 ?White bedge. 이 제목은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 그 관점이 하얀 이란 단어의 중의적인 뜻 이다. 하얀 은 백마부대의 사단 마크를 의미하는 색이면서 동시에 아시아에서의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영화 내에서 주어진 의미인데 그것은 바로 기억 속에 침잠해보려 혼돈으로 자리 잡은 전쟁의 이미지이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다. 베트남. 민족의 해방을 위해 참전한 따이한의 이미지가 White이다. 해방군과 죽음의 이미지가 동시에 떠오른다. 한기주는 월남전에서 살아 돌아온 상처받은 지식인으로 본질이 사라져버린 인간관계 속에서 기억의 망령에 시달리고 있는 나약한 지식인의 상징이며 그 친구들은 정치적 억압 속에서 겉으로 그러나는 외형적 수치에 매달리건 모든 사람들의 단편적인 모습이었다. 피비린내 나던 월남전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여전히 한기주와 변진수가 속한 현실은 전쟁 중인 것이다.· 귀 의 의미보이지 않은 적의 기습에 대비해 방탄팬티를 손질하던 그들에게 정글수색의 명령이 떨어진다. 부비트랩에 죽은 동료의 복수심에 불타던 김문기는 일수로 민간인 일가족을 죽이고 만다. 민간인 이라고 울부짖는 어리아이와 공포에 질린 여인을 대검으로 찔러 죽이고 귀를 도려낸다. 이 과정에서 조태삼과 변진수는 자신이 인간으로서 지니고 있어야 할 마지막 윤리를 저버리는 양민들을 향한 난도질, 인간의 모든 영혼이 발가벗겨지는 살육을 자행한 것 이다. 귀를 도려내는 행위는 임진왜란 때 전과의 상징으로 왜놈들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그런 것이 우리들의 손에 의해 다른 민족에게 자행 된 것이다. 그날 밤 살육에 고통에 괴로워하던 조태삼은 김문기를 죽여 귀를 도려내어 정글로 살아진다. 그럼 귀 의 의미는 무엇일까? 영화에서 변기주아니 용병의 민족에게 귀 는 영수증 인 것이다. 베트콩을 얼마나 죽였는지 그것을 계산하는데 필요한 영수증인 것이다. 용병의 민족은 돈에 팔려와 돈 때문에 인간의 마지막 윤리까지 져버리는 행위를 자행한 것 이다. 자신이 죽인 상대방을 돈이라는 물질적 가치로 환산하려는 추악한 짓까지 서슴지 않고 행하는 용병의 민족에게 귀 의 정의는 영수증이었다. 또한 귀 는 변진수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매개체이며 동시에 과거에 끔찍했던 월남전의 기억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갖추어야할 최소한의 것마저 저버린 채로 살인을 저지른 대가. 바로 그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 귀 이었으며 때문에 변진수에게는 혼돈 속에 빠지게 될 때마다 자신의 존위를 확인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평화를 지키기 위한 십자군(?)우리나라의 수많은 군인들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십자군이 아니라. 돈에 팔려온 단순한 용병이었다. 자국의 경제부흥을 위해 젊은이들이 몸을 던진 것이었다. 이런 용병을 바라보는 배트남인들의 눈은 우리가 과거에 미군을 바라봤던 것과 같을 것이다. 또한 전에 우리에게 보여 진 미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기주는 베트남 어린이를 보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한기주의 어린 시절에는 전쟁 직후 미군을 따라다니며 먹을 것을 구걸하던 자신의 모습이 있다. 자신의 앞에서 자신들의 식량인 소를 죽인 것을 배상하라고 소리치는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과 그 사람들 안에서 유난히 소리 지르며 까불다가 머리채를 휘어 잡히는 베트남 소년은 자신을 구해준 한기주에게 고마워하지만 한기주가 자신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자 욕을 하며 돌아선다. 한기주 역시 미군들을 따라다니던 시절에 던져진 것이 빈 곽임을 알고 미국인에게 욕을 하던 모습이 생각한다. 미군을 따라다니며 먹을 것을 구걸하던 우리의 모습은 우리 군인들에게 손을 벌리며 따라다니는 베트남 아이들과 겹친다. 하얀 전쟁은 우리에게 그러한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의 과거를 상기시켜 준다.영화에서는 우리나라 부대원들의 성적 욕구를 풀기 위하여 베트남 여인들에게 돈을 주고 섹스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부대원들에게 시위하는 마을 주민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베트남 여인들의 모습이다. 베트남의 여인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은 바로 영옥이다. 6.25 전쟁 당시 미국인들에게 몸을 팔던 여인들을 있었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나라 부대원들에게 몸을 팔던 베트남 여인들이나, 미국인들에게 몸을 팔던 우리나라 여인들이나 같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당했던 자들이 행한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군과는 다르다. 그것을 단 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한기주의 주위를 맴도는 변진수이다. 그는 베트남 전쟁으로 인하여 상처받은 사람을 보여준다. 변진수의 모습은 베트남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상처를 가장 크게 드러낸다. 베트남 전 당시 그는 밝고 장난스런 모습이었다. 대장의 동생과 펜팔을 하기 위해 팔 없는 장애인의 모습을 흉내 내면서 구걸하는 시늉도 하고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던 그는 전쟁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미쳐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어국문학과 98601029 이덕우Ⅰ. 서 론는 29살 난 미혼의 여자 셋이 모여서 섹스에 관해 거리낌 없이 수다 떠는 것을 세 번의 저녁식사를 통해 보여준다. 세 여성은 친구사이지만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각기 다른 위치에 있으며 무엇보다도 섹스를 경험하고 자신의 육체를 운용하는 면에서 서로 다른 인물이다. 영화는 이들 세 여성이 자신의 성과 육체를 다루는 방식을 어느 정도 순차적으로 또 균등하게 나누어 느슨한 서사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세 여성 인물들을 자신의 성과 육체를 운용하는 방식이 아주 다른 인물들로 뚜렷이 구분된다는 점이다. 여성친구 사이에서 가능한 서로에 대한 배려나 간섭 등 서로 영향을 주며 인간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는 여성간의 관계를 보여주기보다는 상이한 세 인물을 한 공간 안에서 또 다른 시·공간 속에 제시해주고 있다. 자신의 성과 육체를 운용하는 방식이 다른 세 여성에 대한 유사기록물이다. 이 세 명의 처녀들을 통해 영화를 살펴보자.Ⅱ. 본 론1. 호정 - 여성의 탈을 쓴 명예남성첫 번째 여성 호정은 언제든 만나서 섹스를 나눌 수 있고 또 사랑한다고 말하는 애인이 있지만 누구와도 섹스를 거리낌 없이 즐긴다. 호정은 경제적으로 자립했고 성공적인 사업체를 꾸려나가는 능력 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때로는 불쌍하다는 생각에 유부남과 섹스를 하기도 하고 연하의 부하직원과도 거리낌 없이 섹스를 즐기며 자신의 요구를 채운다. 연하의 남자가 말했던 섹스를 하고 나서고 존경심을 잃지 않은 여자 라는 것이 그녀가 남자와의 섹스나 관계에서 원하는 핵심이다. 그러나 그녀는 간통죄로 기소되고 자신의 사업체를 잃게 되며 형사나 검사가 아랫도리를 관리하지 않는 프랑스로 떠나기로 결정한다. 호정은 일단 색다른 여성상을 보여주었다는 데 그 의의가 크다. 카사노바의 여성적 발현이라고나 할까? 계속되는 다양한 남성과의 섹스. 그러나 그녀가 여성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에 부족했다. 첫 번째 이유는 내면연기의 결핍이다. 그녀의 섹스에 대한 탐닉이 그녀의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 때문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그녀는 결국 대안적 여성상이 아니라 결국엔 여성의 탈을 쓴 명예남성일 뿐이다.2. 연이 - 가야금 뜯기두 번째 여성 연이는 영작이라는 애인이 있고 만족스럽지는 못 하지만 섹스를 정기적으로 하면 산다. 직업은 호텔 웨이트리스이며 호정의 집에 집세를 내면서 살고 있다. 오로즈가즘에 오르지 못해본 그녀는 그녀만의 환상, 남자를 가야금으로 삼고 한번 타보고 거기서 오로즈가즘을 꿈꾼다. 그녀는 결혼을 통해서 만족스럽지는 않은 직업으로부터 벗어나고 또 한 남자와의 행복한 생활을 꿈꾸지만 현재 애인 영작은 결혼에는 생각이 없으며 그녀를 떠난다. 연이는 우연히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성적으로는 또한 오로즈가즘에 오르지도 못했지만 그 남자에 한동안 집착한다. 마지막에 그녀는 그녀만의 애인이 아닌 남자 영작을 상대로 결국 가야금 타서 오로즈가즘에 오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과정은 너무나도 불필요하게 세세하고 지루하다. 다만 그녀가 벌거벗은 채 창 밖을 향해 가쁜 숨을 내쉬는 마지막 장면은 호정이 바라는 파리 행, 정치적 망명보다 더 상징적이다. 영화의 시작에서 뚜렷하게 자신의 욕망을 설정하는 인물은 연이다. 가야금을 타는 환상이란 욕망 혹은 목표로 말이다. 수동적이고 자신의 욕망을 솔직히 드러내지 못하는 그녀는 그녀들의 저녁식사에 항상 동참하는 영작이란 인물의 시선을, 다시 말해서 남성의 시선을 내성화 하고 있는 인물이다.3. 순이 - 자궁의 이미지세 번째 여성 순이는 식물을 연구하는 대학원생이다. 요가로 아침을 맞고 산을 탄 것을 즐기며 요리하기를 즐기는 여자 순이는 남자와의 관계는 가진 바 없으며 섹스에 대한 욕구를 스스로 자위를 통해 해결한다. 아이를 낳아 혼자 키우고 싶어 하다가 자신이 선택한 남자와의 단한번의 관계를 통해 임신하게 된다. 하지만 산행 중에 홍수를 만나게 되고 유산을 하게 된다. 대학원생이라는 설정만큼 지적이고, 나름대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욕을 소화해내는 인물이다. 영화 내에서 비중은 적지만 그녀의 타인을 품는 넉넉함은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제나 호정과 연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감싸 안는 것은 순이다. 그녀는 임신을 위한, 성을 생각하는 유일한 인물로 자궁의 이미지를 갖는다.4. 솔직한 여성들의 수다영화에서 여성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운용했다는 점은 꼭 지적하고 싶다. 여성의 능동적인 성 행위, 가부장제의 통념에 대한 거부, 남녀의 주도권의 뒤바뀜 등이 제한적 효과를 창출해냈다. 여성인물들의 성에 대한 솔직한 수다가 남성의 지배적 권력에 저항하는 대항 담론의 기능을 제시했다. 가 기존의 남성영화와 변별되는 점들을 남성주도의 시선 대신 여성들의 시선 교환, 관음증에 저항하는 풀 쇼트의 이용, 사실적인 섹스 장면, 여성상에 대한 탈신비화, 여성들의 육체에 대한 관심, 그리고 자매애의 재현 등을 통해 논한다. 호정이 실천하는 쾌락이 단지 성기중심의 쾌락에 초점이 맞추어진 해방적 실천이라는 것이며 이것이 여성을 새로운 성적 주체성으로 구성해낼 수 있는가를 질의한다. 순이의 경우에는 지배당하지 않은 육체의 소유자의 이미지로 그려지며 이는 신체를 단순한 도구로 사용한 형식들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모습이다. 이 긍정적이고 새로운 여성상으로서의 순이의 모습은 가부장제의 남성의 권력과, 육체를 둘러싼 투쟁의 장을 펼치고 있다. 마지막으로 연이의 경우, 그녀의 중간적인 위치와 취약한 주체성은 두 친구와의 관계에서 여성관객을 대변해 반응하고 전이하는 역할을 한다.
1910년대 문학신소설이란 우리 국문학사에만 장르의 명칭이다. 신소설이란 어휘는 말 그대로 사회 근대화과정의 사회 사상적 하나의 반영인 동시에 이 기형적인 사회발전의 배경 속에서 소산된 한국문학의 비전통적 소산물임을 뜻한다. 신소설을 특히 개화사상, 미신탑파, 신교육사상등을 주제로 한 것이라 할 때 그것은 표층적 주제에 불과하고, 이면적 주제에서 고대소설 특히 귀족적 영웅소설의 충실한 연속이라고 파악된다. 개화기 공간의 이야기 형태는 1.구소설 2. 정치소설 3. 신소설등 세 분류로 나뉘어진다. 신소설에 이인직이 깊이 관여한 점만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이인직의 소설에 대한 생각과 그 생각의 줄기를 우리가 정밀하게 검출할 수 있다면 신소설의 특수성의 일단을 일층 날카롭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메이지 시대의 일본 특유의 ?정치소설?과 그것에 크게 영향을 받은 곳으로 보이는 이인직의 소설을 비교해봄으로서 이인직 소설의 특수성을 알 수 있다. ?정치소설?에의 미달 형태로서의 우리 신소설을 살피는 일이다. 정치소설이란 일본 매이지 시대의 일본 특유의 정치소설에서 연유된 것을 의미한다. 이인직과 정치소설의 관계는 경쟁관계에 있었다. 이인직의 소설은 두 가지 계열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하나는 「혈의 누」와 속편 격인「모란봉」.「은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정치소설의 결여 형태로서의 계열이며, 다른 하나는 「귀의 성」등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가부장제에 바탕을 둔 고대소설의 연장선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인습형의 계열이다. 정치소설의 결여형태로서의 성격은 첫 소설 「혈의 누」가 친일적인 사상, 탐관오리로 표상 되는 구 정치인에 대한 혐오사상, 신교육 사상에 대한 긍정이라는 3가지 골격은 그가 당시 한국적 현실을 가장 실리적인 측면에서 파악한 탓이다. 「혈의 누」의 하편 격인「모란봉」에 이르면 고대소설의 수준으로 후퇴한다. 「은세계」는 서민들의 민요를 삽입, 민중의식이 특출난다.의회정치는커녕 바야흐로 일본의 통감정치가 시작된 한국에 있어서는 일본과 같은말로 ?무정?의 진취성이자 순진성의 한 속성이다. 그것은 오직 교사 의식의 회복에서 가능하고, 또 달성되는 것이다. 춘원에 있어, 그리고 이 시대에 있어 가장 정결한 것, 신성한 것은 오직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만 있었음을 이 작품이 증거하고 있다.?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만이 순수하고, 그 관계만이 진정한 관계이며, 그것만이 민족과 시대의 운명이며 또한 개인의 운명도 된다는 사상, 이것이 ?무정?이 가진 힘 중의 힘이다.Ⅳ. 정결성 : 누이 콤플렉스의 구조??무정?의 세번째 구조층은 순진성 혹은 정결성이다.?‘누이’라는 이미지와 순결성은 동일한 것이면서 또한 생명의식 그것과 같이 정신을 앙양케 하고 감정을 고조시키는 것으로 표현된다.?이형식에 있어 누이 콤플렉스는 순결성의 상징이다. 이 누이 콤플렉스는 고아로 자란 춘원의 전기적 사실에 깊이 뿌리 내려진 것.?이 관념은 두 가지로 분석된다. 하나는 영채의 구도덕으로 대표되는, 節을 지킨다는 유교적인 것의 으뜸 덕목에 연결되는 것이며, 기독교 특히 한국이나 일본 등 후진국에 들어온 기독교의 청교도주의적 덕목인 순결성과 연결됨이 그 다른 하나이다.?누이 콤플렉스가 순결성, 순수성에 근거된 것이며, 그것은 또한 새로운 세계의 우주관을 여는 열쇠이다.?계향과, 박진사의 무덤은 둘다 가장 정결하고 순수한 것이며 동시에 신성한 그 무엇이었다.Ⅴ. 한의 구조?네번째 구조층은 한이라 규정된다.?한은 배학감이나 김현수는 양심상 조금도 잘못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과 이형식의 무력함으로 고조된다.?망국 7년째를 맞는 조선천지는 1. 배학감 김현수로 대표되는 훼손된 가치의 세계 2. 박영채로 대표되는 능욕 당한 본래적 가치의 세계 3. 이형식으로 대표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애매한 미정형의 가치의 세계로 대별될 수 있다.Ⅵ. 문체와 그 주변적 문제??무정?이 꾸며낸 이야기보다는 작가 자신의 26년간의 전생애를 그대로 투입하였다.?박영채의 모델은 1. 박찬명 대령의 딸 예옥, 2. 삼종제 누이들, 3. 외갓집 먼본의 낭만주의 예술관이었다.?언문일치에 갇혀 버렸다.?‘머리속 소설’(구상은 일본어로 하니까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것)과 실제의 소설을 구별하는 이중성에 부딪힘?김동인이 강조한 것은 1.시제에 있어 현재사를 과거사로 바꾼 점, 2.3인칭 단수 대명사를 ‘그’라고 한 점, 3.용어의 문제이다.Ⅲ.인형 조종술과 단순성의 논리?그는 일본의 근대소설의 묘사법. 작법과 동일한 수준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주장.?김동인은 도도한 인형 조종술을 창작 정신으로 삼았다. 작가는 곧 예술가이면 신이란 생각. 이러한 생각이 자기를 작품 속에서 이상화하는 창작방법을 낳게 된다.??약한자의 슬픔?에서 새롭다고 자부한 ‘묘사법과 작법’은 일본 근대 소설의 그것이다.?작가는 신인만큼 작중인물을 놀리듯 해야 한다는 것을 김동인은 리얼 문학이라 하고, 이를 근대소설이라 주장하였다. 그렇게 하는 방식을 단순화에서 찾았음.?‘단순화’에 이르는 과정을 김동인이 ‘묘사법’에서 이룩해 내었다는 점이야말로 그가 말한 리얼 문학이 우리 근대 소설에 끼친 가장 큰 흔적이다.Ⅳ. 시점 A 형식의 사상?김동인은 소설 작법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소설의 ‘문체’ 항목을 ‘구성’과 구별하여 강조해 놓았다. 구성이란 작법에, 문체란 묘사법에 각각 대응된다. 그는 묘사법을 일원 묘사, 다원 묘사, 순객관적 묘사로 가르고 이중 일원 묘사에 큰 비중을 두었다.?일원 묘사의 A 형식이란 “가치든 정서든 심리든 작중 주요인물의 눈에 비친 것에 한하여 작가가 쓸 권리가 있지-주요인물의 눈에 벗어난 일은 아무런 것이라도 쓸 권리가 없는 그런 형식의 묘사”라고 정의. 다시 그는 “‘나’라는 것을 주인공으로 삼은 일인칭 소설에 그 ‘나’에게 어떤 이름을 붙인자”라고 해설해 놓고 있다.?김동인에 있어 최대의 관심이자 근대 소설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의 근거가 오직 형식의 창조에 있다고 판단.??마음이 여튼자여?의 문학사적 사건 - 시점상에서 고백의 형식이 이루어진 점. 고민에 관한 것?A 형식으로 말해지는 시점이란 저 내면 세계를 드러내3. ‘彼’라든가, ‘불상한 症’등의 용어를 상용한 점. 이런 것은 우리말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다. 이 역시 제도적 장치가 앞에 있고 그것이 만들어낸 것이지 염성섭이 고의로 창조한 것이 아니다. 작가는 다만 어떤 제도적 장치에 이끌려, 그 하수인의 노릇을 충실히 하고 있는 형국이다.?그 ‘제도적 장치’의 하나가 아리시마 다케오(有島武郞)의 소설 ?출생의 고뇌?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 염상섭은 다만 ?출생의 고뇌?가 보여주는 몸짓과 육체와 형식을 ‘세계의 자체’로 본 것이며, 그것에서 벗어나는 일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처지에 있는 셈이다. 초기의 염상섭은 ?출생의 고뇌?라는, 또는 일본의 다이쇼 기간의 근대 문학이라는 제도적 장치에 의거하여 소설을 썼을 따름이다.?처음 염상섭에게 현실이란 서양 문학 및 서양화된 일분의 메이지 기간의 소설이었던 것이다.Ⅲ. 제도적 장치로서의 소설의 인식 과정?‘彼의 일생에 처음 경험하는 눈물’을 흘린 까닭은 일차적으로 예술의 세계를 탐구함에서 오는 고통과 비애의 눈물, 다시 말해 눈물적 삶과 예술적 삶이 나란히 갈수 없음에 대한 괴로움과 비애에서 나온 눈물이라 말해 볼 수가 있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출생의 고뇌?를 읽음에서 나온 눈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암야?의 내용 자체는 모방이 아니고 염상섭이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따라서 자생적인 것이다.?근대 혹은 서구(일본)적인 제도적 장치에 의해 글이 씌여진 것은 몇 단계를 거쳐 왔다.1. 이인직의 신소설 : ?혈의 누?는 앞에것과 뒤에 것 사이에 차이가 있다. 국한 혼용체에서 국문체로 변한 것인데 국한 혼용체는 일본식 표기 방법이다. 이인직이 일본의 정치소설이라는 일종의 제도적 장치에 노출2. 이광수의 ?무정? : 일본의 언문일치운동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육당. 춘원의 언문일치운동이 따르고 있는 형국. 교육의 차원에서 멈춤.3. 김동인이 일본어로 소설을 구상하는 일 : 김동인은 순문학을 내세우고자 한 ‘창조파’의 핵심인물.4. 염상섭Ⅳ. 고백체(내정치적 운동의 한 형식이었음과 깊은 관련이 있다.?20년대 한국문학사에는 정치적 대응물로서의 이데올로기는 두 가지가 크게 떠올랐으니 민족주의 문학론과 계급주의 문학론이다.Ⅱ. 조직론과 이데올로기적 성격?문학예술 및 문학예술가의 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마르크스주의 사상이 던진 충격의 뚜렷한 한 가지 형식이다.1.염군사 (1922. 9)?프로문학은 운동의 형식으로 나타났음 (조직론을 바탕) 이 단체의 강령은 ‘해방 문화의 연구 및 운동을 목적으로 함’이다.(이효적. 이호. 김홍파. 김득수. 최승일. 심대섭. 김영팔. 송영 등 조직)2. PASKYULA?1923년에 박영희. 안석영. 김형원. 이익상. 김팔봉. 김복진. 연학연 등의 이름의 머리자를 따서 지은 이름. 사회적으로 이름난 문사들로 조직. 문학강연회3. KAPF?염군사와 파스큘라의 합동 단체. 부의 구성. 소련의 RAPP, 일본의 NAPF와 같은 계열.4. 제 1차 방향전환(1927. 9. 1)?맹원 총회를 거쳐 문호개방과 조직확대를 감행한 제 1차 방행전환은 자연발생적인 단계에서 목적의식으로 나아간 것인 만큼 특별한 의의가 있다.?현 단계의 정치적 목적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치’라는 점, 민족 단일 단체(곧 신간회)에 호응 한다는 점(계급적 자기 소외에서 벗어남), 예술은 정치 투쟁의 무기라는 점 등을 명시.5. 제 2차 방향전환?1913년 볼셰비즘으로 기울어 ?전투하는 계급의식?을 내세워 비로소 ‘당의 문학’이란 용어를 사용. ‘전위의 눈으로 사물을 보아야 된다’는 극좌파 이데올로기를 품은 동경의 소장파들이 주축이 되어 KAPF를 장악한 것이 제 2자 방향전환이다.6. 해산 과정?KAPF 제 1.2차 검거가 진행 감행되자 KAPF 해산 논의가 자체내에서 나오기 시작하여 전향논쟁이 벌어진다.Ⅲ. 내적 형식의 발견1. 시가 형식의 발전?임인식의 ?우리 오빠의 화로?는 평론가 김팔봉에 의해서 ‘단편서사시’라 불리었던 것이며, 프로 시가가 나아갈 가장 확실한 형식이라고 주장.?단편서사시란 김팔봉이 제기한 이.
Ⅰ.서 론1976년 부산. 가난한 장의사집 외아들 동수, 폭력조직의 두목을 아버지로 둔 준석, 모범생 상택, 떠버리 중호, 네 녀석들은 늘 붙어 다니는 흔히 말하는 불알친구다. 도색잡지를 보며 여자의 알몸에 대한 호기심을 나누기도 하고, 이소룡의 쌍절곤을 보며 침을 삼키기도 하는 네 소년. 네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20년의 시간을 함께 부딪치고 질주해온 네 친구의 가슴 벅찬 이야기가 영화 친구이다. 곽경택의 세 번째 영화 친구는 그리 멀지 않은 시대를 배경으로 아련한 향수와 진심과 좌절을 담았다. 영화 친구는 서로 다른 컴플랙스를 안고 서로 다른 인생 궤도를 타며 원하지 않는 배신을 저지르는, 깡패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친구를 그리워하는 감독의 무의식적 개입과 여러 가지 심리학적인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 이러한 심리학적 요소들을 영화 친구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Ⅱ.본 론1. 아버지의 부재 - '고아의식'영화 친구의 주인공들에겐 아버지가 없다. 육친이나 스승, 조직의 보스 할 것 없이 여기 나오는 모든 아버지들은 무관심하거나 폭력적이거나 무기력하거나 부패해 있으며 기껏해야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들이다. 네 친구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도 각각의 아버지들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의 존재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거울" 이라고 제시한 것이다. 영화에서 살펴보면,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교탁 주변에 서서 "아버지 뭐하시노? " 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으며 따귀를 맞는다. 아버지의 직업과 성적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준석은 자신의 방황이 아버지의 부재 때문이라고 말한다. 무기정학을 당한 후 상택이 찾아오자 아버지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원망한다. 가출을 했는데도 꾸짖지 않는 아버지와 삼촌들을 원망한다. 또, 부친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고아라고 이야기한다. 이 같은 '고아 의식' 은 주인공 세대의 한국인들에게 공통적인 것이다. 군사독재 정권 시대를 살던 젊은이들에게 기성세대의 이미지는 부패와 폭력, 타락과 비겁함으로 비추어졌다. 아버지 세대를 부인하고 자신들의 길을 독립적으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했으며, 따라서 이들 세대의 자아 이미지는 외롭고 비장한 것이었다. 아버지 즉, 기존 질서로부터 존재의 안정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까, 의리, 친구라는 연대의식에 집착하는 것 같다. 그런데 주인공들이 스스로 성인이 되자 목숨처럼 여기던 '친구' 관계 역시 '아버지' 만큼이나 허약하고 무의미해 진다. 동수는 의리를 져 버려서 칼을 맞아 죽고, 준석은 동수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2. 컴플랙스1)2인자 컴플랙스(동수, 부산, 현재를 살아가는 386세대 남성들...)영화 친구는 서로 다른 컴플랙스를 안고 서로 가른 인생 궤도를 타며 원하지 않는 배신을 저지르는 영화이다. 서로 다른 컴플랙스들이 뒤엉키어 영화를 이끌어간다. 첫 번째로 영화 친구는 2인자의 이야기이다. 오랜 친구이면서 2인자였던 동수는 1인자인 준석과 다른 조직으로 옮겨가면서 맞서다가 1인자의 칼에 맞아 죽는 이야기이다. 동수는 처음부터 준석에게 2인자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었다. 항상 동수 뒤가 그의 순서였다. 성적 때문에 선생님께 꾸중을 듣다가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준석이 교실을 박차고 나갈 때 준석의 말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동수를 뒤따른다. 그러던 동수는 자기가 좋아하는 진숙을 상택이에게 소개시켜주자 처음으로 반항을 한다. "내가 니 시다바리가?" 라며 대항을 하지만,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만다. 동수는 결국 1인자인 준석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다른 조직을 선택하고, 동수에 대항하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2인자성은 영화바깥에서고 찾을 수 있다. 이 영화의 중요한 공간적 배경은 전 인구의 4분의 1이 모여 사는 서울, 전 인구의 반이 모여 사는 수도권이 아니라,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이다. 서울 사람들이 서울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에 비해 부산 사람들이 부산에 느끼는 감정은 특별하다. 더군다나 항상 주류를 이루던 정치판도가 김대중정권 이후, 이전에 광주 사람들이 느끼던 소외감이 전이되면서 부산이라는 지역성은 더욱 특별하게 나타난다. 또한 2000년에 주류를 이루던 여성취향의 감상적 멜로물들이 넘쳐나던 개봉 당시에, 영화, 연극, 드라마 등에서 상대적으로 소외감, 또는 박탈 감을 느끼던 남성들에게 사나이들의 의리를 강조함으로써 '2인자성'을 극적으로 공명시켰다.2) 반부(反父) 컴플랙스- 오이디푸스 컴플랙스영화의 주인공들의 삶에서 출발점은 아버지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고 앞에서 이야기했다. 이러한 아버지의 거부감은 오이디푸스 컴플랙스로 설명할 수 있다. 준석의 아버진 폭력조직의 보스였다. 어릴 적부터 집에는 삼촌이라고 불리는 조직원들과 함께 성장했다. 영화처음에 등장한 고급승용차에 대한 거부감은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다. 어린아이에게 외제 승용차는 큼 호기심을 같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준석은 차에 타기를 거부한다. 아버지가 조직폭력배라는 것에 대항하는 준석은 결국엔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게된다. 동수도 아버지에 대한 반항 거부감을 강하게 나타낸다. 동수의 아버지의 직업은 장의사이다. 어릴 적부터 놀림을 받고, 장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거부의식 때문에 아버지의 존재를 거부한다. 직업 때문에 아버지의 존재를 거부하는 점에서 준석과 같다. 하지만 동수는 아버지의 존재를 거부하려고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의 그늘을 그리워하고 항상 주변에 맴돈다. 두 인물 다 아버지에 대한 거부감으로 자신의 거울인 아버지를 부정한다.3) 감독의 시각 = 상택의 시각이미 여러 지면들을 통해 밝혀졌듯이 친구는 실제로 곽경택 감독 자신의 기억 속에 고여 있는 이야기들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감독은 자신의 대리인으로 상택을 내세워 자신과 관련된 그 아련한 과거를 마치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친구는 감독의 욕망-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 미해결의 갈등을 주인공과 환경, 사건에 투영시켰다. 상택을 통해 어떻게 영화에 투영되었는지 살펴보면, 상택은 기억들을 거둬들일 뿐 그것을 꿰뚫어보지는 못하는 인물이다. 영화의 주 배경인 조직세계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택의 시선이 감독의 시선이다. 상택은 지각적인 면에서 거의 방관한다고 할 정도로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인식적인 면에서는 언제든 자신의 친구들과 혹은 지나간 추억과 감정적으로 동화할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는 비록 준석만큼 친구니 우정이니 하는 단어를 자주 입 밖에 내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는 친구들 사이의 결합을 바라고 그들 사이의 결별을 아쉬워하는 인물이다. 감독도 그들만의 세계에는 들어갈 수는 없지만 친구이기 때문에 항상 아쉬워하고 관찰자로 이방인으로 산 자신, 안타까웠던 자신의 심경을 영화에 그대로 표현하였다. 영화 마지막 장면이 생각나는데, 타이어 고무에 매달린 채 먼 바다로 나왔던 네 꼬마 중에 누군가가 말했다.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이제 돌아가자" 아마도 감독이 친구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돌아갈 수 만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감독의 마음일 것이다.
Ⅰ. 서 론정치란 무엇인가? 처음엔 정치란 우리와는 상관없는 정치인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이번 한 학기동안 영화로 보는 정치 수업을 들은 후 정치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란 우리가 하고싶은 일은 하기 위해 행동하는 행위이다. 이 정치란 것을 영화라는 것에서 찾고 배우는 일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 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였다. 이젠 영화를 단순히 보고 웃고, 희열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가에 집중을 하게 되었다.영화에선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서로 다르게 표현하고 말하기도 한다. 〈블레이드러너〉와〈은하철도999〉를 비교하여 미래에 싸이보그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이 두 영화에선 싸이보그가 등장한다. 영화에선 아주 허황 된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란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한다. 지금 복제양 둘리의 성공이후 복제인간에 대한 찬반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SF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아무래도 복제인간의 논쟁 중 핵심은 "복제인간도 인간이냐?"라는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성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어쩌면 이 영화와 애미매이션 에서 찾아볼 수 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 본격적으로 두 영화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Ⅱ. 본 론Ⅱ-1. 블레이드 러너누구나 '블레이드 러너'라는 이름은 다 들어보았을 것이다. 리들리 스콧의 대표작을 꼽는다면 블레이드 러너는 꼭 들어가게 되어있다. 영화의 분위기가 암울해서 배경도 이렇게 해 봤는데 괜찮을까 모르겠네... 어쨌든 블레이드 러너는 SF 컬트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영화는 저예산 영화다. 그래도 뒤떨어지지 않는 영상미를 갖고 있는 이 영화는 1982년에 완성되었지만, 그 때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E.T.의 해였다. 스필버그가 놀면서 제작한 영화.. 결국 그에 의해서 블레이드 러너는 제작비 2천 8백만 달러 중 수입은 2천 7백만 달러를 벌어들여 흥행참패를 당하고야 만다. 암울한 배경과 미래사회 때문에 당시 영화평론가 레너드 말틴은 별 한 개 반을 주었다고 한다. 솔직히 그 당시 극장판은 상영시간이 90분이었고, 데커드가 레플리컨트라는 암시를 주지 않았다. 또 마지막에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레이첼과 데커드가 자유로운 곳을 향해서 가는 장면말이다. 물론 이 장면이 행복하니까 좋기는 하다. 하지만 정작 감독 리들리 스콧은 이 영화를 해피엔딩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워너브라더스의 압력으로 결국 제작사가 돈과 권력의 힘으로 장면을 자기 마음대로 편집 해 버린다. 그리고 영화는 참패한다. 하지만 이렇게 멸시와 냉대를 받는 걸작을 매니아들과 SF 팬들은 발견하고 만다. 블레이드 러너가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10년 후, 리들리 스콧은 기다렸다는 듯이 '블레이드 러너: 감독판'을 내놨고, 그제서야 평론가들에게 제대로 된 평가를 받게 된다. 특수효과와 암울한 미래상도 좋지만 음악도 뛰어난데 음악은 반젤리스가 맡았다. 하지만 82년워너의 극장판 편집에 항의한다고 OST를 내지 않겠다고 저항을 했다. 결국 10년 후, 감독판이 개봉되고 뒤늦게 94년에야 블레이드 러너의 OST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반젤리스는 흥행 쪽 영화의 음악은 그리 많이 맡지 않은 것 같다. '불의 전차'라면 모를까... 거의 작품성 쪽의 영화를 많이 맡았던 것 같다1) 블레이드 러너의 줄거리.2019년, 타이렐 사는 레플리컨트를 넥서스 6기 까지 발전시키는데 성공한다. 레플리컨트는 인조인간으로 감정도 가지고 있고 인간과 동등했지만 고통을 잘 참는 것과 힘은 인간보다 더 뛰어났다. 그래서 레플리컨트는 세상과 격리된 곳에서 중노동을 하거나 위험한 곳에 탐사용으로 쓰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지에서 레플리컨트 6명이 유혈폭동을 일으키고 난 뒤, 레플리컨트가 지구에 살고 있는 것은 불법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만약에 대비해서 레플리컨트 전문 처리 경찰인 '블레이드 러너'가 조직되었고 블레이드 러너들은 레플리컨트가 지구에 살고 있는 경우, 무조건 사살하라고 명령받았다. 이런 행위를 사형, 처형 같은 거라고 부르지 않았다. '폐기'라고 불렀다. 2019년 11월, 로스앤젤레스는 스모그와 매연에 의해 산성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일본이 세계 제일이 된다. 미국 사람들도 이제는 일식 우동과 초밥을 먹는다. 광고도 무조건 일본 광고. 타이렐 사에서는 지금 보이트-캄프 검사를 하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인 홀든은 리온을 검사 중이다. 그리고 보이트-캄프 검사를 통해 리온이 레플리컨트인 것을 알아낸다. 그걸 안 리온이 총으로 홀든을 쏴 버린다. 그리고 화면은 타이렐 사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거리로 바뀐다. 지금은 산성비가 내리고 있다. 전자대리점 앞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는 곧바로 포장마차에 가서 우동을 먹는데, 개프가 나타난다. 데커드는 은퇴를 했는데 결국 개프는 데커드를 스피너에 태워서 경찰서로 간다. 그래서 브라이언트 경찰 서장을 만나게 되는데 브라이언트는 가짜 인간 4명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고 한다.(원래는 한 명이 더 있었는데 이름이 Mary 랍니다. 하지만 전기장에 걸려서 죽었죠.)그리고 데커드 보고 인조 인간 4명을 사살 해 달라고 한다. 하지만 데커드는 거부 하고, 뒤에 있던 개프가 닭 종이접기를 한다. 결국 서장의 협박(?)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사살하게 된 데커드. 그리고 타이렐사에서 보이트-캄프 검사를 하는데 여기서 새로 만들어진 신제품 레플리컨트, 레이첼을 검사하게 된다. 그리고 검사를 통해서 레이첼이 레플리컨트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데커드는 본격적으로 레플리컨트 사살에 나서게 된다. 클럽에 가서 뱀쇼를 하려던 조라를 보게 되고, 조라가 레플리컨트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자 조라는 데커드를 치고 도망가게 된다. 데커드는 쫓아가서 조라를 죽이고 리온이 그 광경을 보게 된다. 그리고 리온은 데커드를 패는데 그 순간, 타이렐사를 나왔던 레이첼이 데커드의 총을 집어 리온을 쏜다. 그 때 부터 데커드와 레이첼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남은 레플리컨트는 2명. 로이와 프리스는 애인 사이다. 그들은 세바스찬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타이렐사에 잠입하는데 성공하고 엘든 타이렐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 인조인간은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게 되고, 대신 수명을 늘릴 수는 없냐고 하자 그것도 안 된다고 한다. 결국 분노한 로이는 자신의 창조자를 죽여 버리고야 만다. 세바스찬은 도망가고... 한 편, 데커드는 조사를 위해서 세바스찬의 아파트로 가게 된다. 한 편, 프리스는 데커드 없애려고 기계인형들 사이에서 인형 비슷하게 신부 분장을 하고 데커드를 기다린다. 데커드가 오자 데커드를 패는 프리스. 하지만 바보같은 프리스가 뛰어갔다가 결정타 날리려고 재주넘기를 하다가 데커드의 총에 맞아서 쓰러지고 막 발광하듯이 날뛰게 된다. 그러자 데커드가 총을 한 번 더 쏘고, 프리스는 죽고야 만다. 뒤늦게 도착한 로이가 데커드를 공격하고 로이는 프리스의 시체를 보고 흐느끼게 된다. 그리고 데커드를 죽이려고 쫓아온다. 어쨌든 데커드는 힘이 빠져, 잡고 있던 기둥을 놓치려고 하고, 로이는 그런 데커드를 죽이려고 한다. 그 순간, 데커드가 떨어지고 로이가 손을 잡아준다. 그리고 데커드를 살려준다. 데커드는 로이를 피하려 하고, 로이는 영화는 끝이 난다.2) SF영화의 묘미영화는 현실을 재현하는 수단이자 불가능한 일을 사실처럼 보여주는 눈속임이기도 하다. 특히, SF 영화는 '사실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눈속임'을 벌이기 위해 상상력에서 모든 것을 시작한다. SF는 과학기술이 궁극적으로 문명의 진보를 보장하리라는 전망, 즉 유토피아적 전망과 묵시록적 예측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 두 가지는 흔히 같은 영화에 함께 나타나기 마련이다. SF가 특수효과에 의한 '구경거리'라는 측면과 묵시록적 예측의 이러한 두 갈래 긴장은 서로 관련을 맺으며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이중성에 따라 SF는 단일 장르에 고착하지 않고 다른 장르와의 끊임없는 결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같은 SF영화 중에서 필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