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사회학 보고서만약 그때 내가여는 글너무 짧은 세월을 살았기에 아직은 인간의 삶에 대한 평가나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인생'에 대해 사실 잘 알지 못한다. 더구나 이를 한 사회나 그 변화에 적응 시킨다는 작업은 애시당초 학부생인 나에게 어울리지 못하는 것일 것이라 생각한다.하지만 본능적이랄까 살면서 간혹 아 이런 경우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친구에게, 동료에게서, 때로는 선배, 교수님, 부모님의 경우까지 우리 사회의 특성상 개인적인 부분을 말하기 꺼려하는 문화 때문인지 그러한 속사정을 아는 경우라면 대부분 소주와 깃들여져 가슴 아픈 사연으로 들려오곤 한다. 개인은 사회에 대항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를 그저 향수나 지난 과거의 아픔 정도로 덮어두곤 하는 모습은 늘 안타깝기까지 했다. 이 안타까움을 핑계로 때로는 인간미에서, 학술적인 가치를 떠나지 않는 소재로 글을 풀어 보겠다.먼저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내 개인적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모두 사실임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사람에게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듯이 그 분과의 만남은 아직도 엊그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마치 언젠가 이러한 글을 쓰게 될꺼라고 예상했던 것처럼. 아니 어쩌면 난 이야기를 내 자식들에게 내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었다. 우리의 역사, 우리의 민족사가 그 분을 통해 온 몸으로 대변하여지지 않을까.어쩌면 허구라고 치부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난 내가 겪었던 일을 적을 것이며, 이 경험은 분명 사실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때는 새 천년의 희망이 가득 찼던 2000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8월 초여름, 한 여름의 피크였고 학교와 직장 때문에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우리 가족은 간만에 함께 여름 휴가를 강릉으로 떠났다.하지만 피서철의 절정의 더위만큼 당시 대관령을 넘어 강릉까지 진입하기 조차 너무 힘들었고 우리 가족은 겨우 겨우 대관령 넘는데만 5-6 시간을 소비하여 겨우 강릉에 도착하였을때는 이미 밤 8시가 훌쩍 넘어 어두워질려 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특별히 예갇혀 있어 너무 배가 고파 서둘러 저녁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특히 공무원이신 아버지는 늘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시기 때문에 몹시 시장하여 운전하는 나를 재촉하였다.나는 지난 동아리 모임에서 잠시 머물렀던 곳을 기억해 냈고 우리는 서둘러 다시 양양으로 향했다.( 강릉에서 설악산이나 낙산해수욕장 방면으로 가기 위해 중간에 거쳐 가는 곳이 양양이다)양양에서 속초를 눈 앞에 두고 작으마한 포구가 형성되어 있는데 바로 '물치 항'이라는 곳이였다. 우리 가족은 일단 그곳에서 저녁을 해결했지만 식사후 이미 10시가 넘어선 시간에 숙박 장소가 큰 문제였다. 호텔이나 모텔 등은 이미 방이 가득찼고 그렇다고 가족 여행단이 어디 러브호텔 같은 곳에서 쉴 수도 없고 (아마 그랬다면 스트레스만 더 받을 것 같았다.)역시 이번에도 아들인 내 몫이였는데 당시 TV 뉴스 등지에서는 동해안 숙박료가 천정지부로 뛰는 모습을 보여줄 때라 정말 적절한 가격에 숙박 장소를 구하는건 너무 힘들었고 고민끝에 차라리 민박다운 민박집이 가장 적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곧 민박집을 수소문 했는데 문제는 우리 가족 6 명이 쓰기에는 다들 작은 방이라는 것이였다.또한 민박 역시 하루 가격이 엄청나서 6명이면 30 만원은 족히 줘야한다는 것이였다. 돈을 떠나서 그러한 폭리가 몹시 마음 속상해 뒤돌아 서는데 어떠한 분께서 '혹시 가족일행' 이냐고 물어보시는 것이었고 곧 어떤 집으로 우리 가족을 소개해 줬다.그리고 그 분을 만났다.그 분의 첫 인상은 머랄까 그냥 보통 시골 할아버지였다. 어쩌면 젊었을적 사기라도 치지 않았을까 라는 웃긴 상상을 하게끔 만드는 어쩌면 믿음직스럽지 않은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 분은 우리에게 집을 내어주었고 자신은 혼자 사니깐 작은 방에서 자겠다고 하시며 가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5-6 만원 정도 주었던거 같다.일단 방을 잡았고 우리 가족은 서둘러 씻고 방에 들어가 편안 옷으로 갈아입는 등 부산을 떨었는데 그러고 보니 12시가 넘었다. 그 분에게 왜 혼자 사시냐고 물어보니 혼자가 안 들어올꺼라는 것이었으며 그리고 그 긴 이야기가 이런 사소한 질문에서 시작되어 버렸다.본래 오늘 서울에 있는 아들내미가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길이 너무 많이 막힌다고 하여 올 여름 피크가 끝나면 온다며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방을 놀리기도 머해서 민박을 쳐본다는 것이었다. 그 분 말씀에 따르면 아들내미가 서울에 집도 있고 잘사는 편인데 봉고를 갖고 오니깐 집앞 뜰도 주차할수 있게 치워놨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주차장이 생겨버렸지만 그 아들내외 덕분에 우리는 겨우 하루 신세질수 있었던 것이었다.아버지와 나는 맥주 한 잔 정도를 할 요량으로 거실로 나와 그 분과 상을 차려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분의 말씀은 매우 믿기 어려울 만큼 충격적이었다.'아. 이곳에서 오래 사셨나 봐요. 고향이 원래 이곳이세요 ? '' 아. 아니 이곳에 산지는 어디보자 대략 30년 됐고 본래 고향은 만주야. '그 분의 말씀에 따르면 자신은 만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사실 정신이 들만한 나이때부터 이미 고아여서 사실 고향이 어딘지, 부모가 누구인지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였다.그럼 어린 시절 어떻게 사셨어요 ? 라는 질문에만주 어느 곳이였던 마을에 열차역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구걸도 하며, 도둑질도 하며 어떻게 어떻게 굶주리며 컸으며 한때 역 주변 거지패나, 건달패 같은 곳에서 같이 살아보기도 했는데 너무 많이 때리고 구걸한 것도 다 빼앗기고 해서 더 힘들어서 도망쳐 나오기도 하며 컸다는 것이였다.' 아. 그런데 이곳은 어떻게 오신거예요? 해방되고 오신거예요 ? '' 아. 아니야. 사실... 6.25 때문였지 '즉, 그 분이 어린 시절을 지나 좀 컸을 무렵 조국이 해방되었다 하여 중국인들이 횡포가 무척이나 심한 그 땅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었단다. 그런데 고국으로 돌아갈려면 기차를 타던 해야하는데 도대체 한 푼도 없는 그가 고국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더라는 것이였다.그러던 때에 열차 역이 있었던 마을에 한 일단의 중국군이 들이 닥쳤고(그 분 말씀의 홍의군이라 한슴)군인들에게 어떻게 머라도 얻어 먹어볼까라고 생각했던 그에게 너도 조선족이 아니냐?,하며한 군인이 자신은 조선족인데 조국을 해방하러 간다.너도 같이 가지 않을래 ? 라고 제의하여 군인들 틈에 끼여 신의주를 통해 처음으로 고국 땅을 밟아 보았다고 하였다.( 당시 중국군은 한국전쟁 참여를 위해 많은 조선족을 참여 시켰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 북한군과의 통역을 위해서였다고 한다. )만약 그때 내가 ...따라가지 않았더라면...그 분은 무척이나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북한 땅에 도착한 이후 본 것은 온통 처참하고 망가지고 부서진 것들 뿐이였다고 기억했다. 특히 미국의 '이이잉 비행기 - ( 아마 폭격기나 전투기를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닐까 ) 때문에 낮에는 가지 못하고 오직 밤에 숲으로만 다녔다고 했다. 멀쩡한 길을 두고 숲으로만 걸어서 걸어서 전쟁이 벌어진 전선까지 걸어 갔다는 것이였다. 당시 중국군은 매우 들떠 사기 충전되어 있었으며 조선을 해방시키러 왔다는 분명한 명분에 조선인에게 매우 호의적이며, 어떠한 사명감에 몹시 친절했다고 기억했다.그리고 벌어진 전투는 어떠한 고지에서 벌어졌는 매우 치열했다고 했다. 그리고 전투가 벌어지기 전 자신이 따랐던 조선족 형은 곧 전투가 벌어질꺼라 말하며 그곳에 꼭 있으라고 말하고 사라졌고, 날이 밝아 눈을 떠보니 온통 땅이 뒤헤어져 있고 중국군 시체들과 함께 자신이 그 한복판에 있더라는 것이였다.그리고 미군에게 생포되었다.미군을 자신을 심문했는데 직접한 것이 아니라 한국군인이 통역을 해주면 어떤 미군 장교가 그것을 받아적고 조치를 취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분은 자신은 '만주태생'이며 한국 사람이다고 하자 미군 장교는 '나이'를 물었고 자신의 나이를 밝히자, 자신을 북한군 포로와는 옆 떨어진 곳에 혼자 수용하였다고 한다. 그때 생각에 미군은 참 착한 사람이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리고 곧 작은 소동이 터졌다.옆에 좀 떨어진 작은 막사에서 미군 장교가 중국군 고급 장교를 심문하는데 한국군인이 통역을 하지 못하는 것이였다. 즉,는 것이였다. 당시 전투 중이었으며 중국군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그 중국군 고급 장교의 정보는 전투의 승패 혹은 또다른 전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급한 상황이었으므로 다들 부산하게 대응책을 찾고 있을때, 그 분이 나섰다.만주 태생이었던 그 분은 한국말보다 중국말에 더 유창해, 심문을 도왔고 그 정보는 곧 상급 부대로 전달이 되어 당시 부대장은 그를 일반 포로에서 풀어주고 같이 도와 달라고 제의하였다. 그리고 그 분은 미군 부대의 통역 맡아 전선을 따라 다녔다. 당시 그는 미군의 식사를 같이하여 매우 행복했는데 미군들은 각자 조금씩 잔돈을 걷어 월급날이면 그에게도 작은 월급 ( 사실 그는 매우 큰 돈이라 하였다. 당시 한번 걷은 돈으로 라디오를 살 정도였다고 한다. ) 이 생겼고, 특히 장교들이나 조금 나이든 군인들은 자식 같다거나 귀엽다고 매우 편하게 있을수 있다고 했다.그 분 기억에 당시 미군은 군인 같지도 않다고 했는데 심지어 전투가 벌어지기 전 참호 속에서 담배를 피며, 술을 마시거나 농담하며 웃기까지 했는데 도대체 당시 이해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했다.그렇게 한국 전쟁이 끝나 같이 있었던 미군 부대는 작전이 끝나 철수하는데 도대체 그는 갈 곳이 없었던 것이었다. 무작정 인천까지 따라갔고 그곳에서 잠시 그를 돌보아 주었던 그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다시 그분은 살기위해 부두에서 노역자로 일을 하곤 했는데 그나마 미군에게서 받은 몇 푼과 노역으로 번 돈은 도박으로 번번히 탕진해버리고, 시간이 지나 60년대 경제개발이 시작되자 연고지 없는 자신의 신세에서 벗어나 무언가 해보고 싶어 당시 아내의 연고지 였던 강릉으로 오게되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친정으로 와도 달라지는 것 없고 오히려 눈치만 보여 다시 북쪽으로 옮겨 이곳으로 왔는데 이 곳에서 뱃일도 하며, 농사도 지어 작은 집도 마련하는 듯 했으나, 당시 그곳에서 정치를 한다고 정치패에 뛰어들어 바람잡이 역활도 하며, 무슨 무슨 대회가 있을때마다 읍내에 나가 술 진창 마시고 돌아오는 등 다시 집안 형편이 어려.
토론 내용 정리전동녕 >~양 비디오 혹은 ~양 사진이 왜 사회적 파장일까요? 일례로 얼마전에는 또 SES의 유진양 사진이 시끄럽게 됐지요. 근데 막상 경찰에서 수사를 해보니 같이 어울렸던 '남자' 쪽에서고의적으로 유출한게 아닌지에 촛점을 맞춰 수사중이라고 하는군요. 즉, 유진양과의 모호한 포즈의 사진이 화제를 낳을걸로 예상하고 유진양에 비해 덜 인기있는 자신의 인기나 혹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던게 아닌가하고 수사한답니다.저는 딱히 그러한 개인적 사생활이 알려지면 남자는 무조건 괜찮다라고 또 상관없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사생활이 무차별다수에게 알려지는건 큰 상처겠지요. 그런데 왜 ~양 이라고 해서 '여자쪽' 이름을 딸까요? 그건 아무래도 여자쪽 정보에 더 관심이 많다는 거 아닐까요? ~ 군 비디오 보다는 ~양 비디오가 훨씬 상품 가치가 있는...그렇다면 그러한 비디오나 사진을 원하는 층이 남성들이 더 많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치 포르노 주고객층이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많듯이 또한... 음 우리에게 이미지화되고 부호회된 여자 탤런트 및 가수 등의 이미지가 실제 그들의 모습과 상당히 괴리됐기 때문에 그것을 깨부시는데 통쾌한 것도 있겠지요? 단순히 사회적 파장이 아니라.. 그동안의 조작된 이미지가 깨지는 통쾌함거짓됨을 진실로 확인하고 더구나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자기 정체성의 재확인 등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왜 여자의 이름을 붙일까요? 왜 여자가 피해자라고 울까요?( 머 남자도 피해자지만 구태어 언론에 나와 울고 그러지는 않던데..)임정환 >저는 여성 연예인에 대해서 그렇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여자연예인이라는 존재가 "순결한 이미지"라는 등식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께서 말씀하신 "뭔가 다가 갈 수 없는 존재" 라는 것은 저에게 있어 그들과 저의 삶이 교차하는 점이 없기 때문에 나와는 관계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구요. 여자 연예인이란 존재가 저에게는 무덤덤한 존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보면 ~ 양 비디오는 언론의 조작과 남성위주 소비집단이 만들어낸 자본주의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그런데 ~양 비디오라는 사건이 터질때마다 거의 대부분 여자 연예인들에게만 비난의 화살이 날아가더라구요. 상대 남자가 누구인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왜 여자만 피해자일까를 생각해보면... 전에 H양 비디오 사건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스포츠 신문에서 단지 사람 전체도 아닌 부분 사진이 실린 일이 한 여자연예인을 지목하고, 이 사람은 기자회견장에서 실신할 정도로 속된 말로 "오버한다."고 볼 정도로 자기는 그런 사실이 없음을 부인해야만 했습니다. 그전부터 ~양 비디오가 나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상황에서, 기자의 어처구니 없는 어떻게 보면 무책임한 행동하나가 여자 연예인을 기자회견장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상황으로까지 몰고 갔을까요? 아마도 당하는 입장에서는 자신이 연예활동은 불고하고 사회적인 매장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양 비디오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 또한 여자 연예인에게만 초점을 맞출뿐 상대 남자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관심을 두더라도 별로 적대적이지 않다고 할까요? 이는 여자 남자의 도덕관념에 대한 사회적인 시각에 기인한다고 생각됩니다. 여자는 순결의 징표에서 창녀로 전락하는데 반해, 남자는 그럴 수도 있지(개인적으로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관대하게 보는 시각이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잣대라고나 할까요. 이외에도 남성들의 순결한 이미지가 깨지는 것에 대한 배신감 또는 순결한 것을 깨뜨려서 느끼는 쾌감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또한 수업 시간에서도 나왔지만 남성 응시 중심의 연예인 문화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요.한윤구 >첫 번째로 생각해 본 이유는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응시'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양 비디오'라고 이름 붙여져야만 포르노 상품의 소비에 있어 대다수를 차지하는 남성들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렇다고 남성들만 '∼양 비디오 기준으로 상품을 만들어내는 상업적인 면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두 번째는 '순결 이데올로기'와 관련지어 생각해 봤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 연예인이 성관계를 하는 장면을 본다.'는 것이 '연예인도 저렇구나. 별 수 없네.'라는 반응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은 남성 연예인이 성관계를 하는 장면을 본다.'는 것은 순결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의식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는 혼전순결에 대해서 '정말 사랑한다면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라는 대답이 절반을 훨씬 웃도는 비율로 나타나는데요. 아직까지 일반 대중으로서 겉으로는 관대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비난의 화살을 던지고 있는 이중잣대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남성이 아닌 여성이 성관계를 통하여 순결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에는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금기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양 비디오'와 같은 경우도 연예인이자 한 여성으로서 순결을 잃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것이 남성이 순결을 잃는다는 것에 비해 더 큰 호기심과 자극과 비난의 여지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대중들에게는 '∼군 비디오' 보다는 '∼양 비디오'가 그들이 더 쉽게 비난하고 대상을 끌어내림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느낄만한 소재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이창원 >최근 모병헌씨와 모혜교양의 연예설이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그들이 잘 나가는 한 드라마의 상대역으로 출연했고, 연예설이 있은 직후 그들의 소속사도 알지 못하게 그들만의 밀월여행(?)을 가서 사실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졌었습니다. 두사람의 기획사에서 연예설에 대한 입장을 밝혔는데 남자측 기획사에 비해 여자측 기획사에서 이 일을 더욱 당황스럽게 여겼습니다. 특히 재미있는 일은 그들이 한국에 같이 돌아왔을때 벌어졌습니다. 두사람이 같이 입국하게 될 것이다(이말은 그들의 사귐이 사실이다라는 것이겠죠?)말이 거의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던 때 두 사람이 도착할 공항에 남자측 기획사에서는 많은 사람이 나와서이 욕망하는 그런 이미지로 만들어 놓았는데 그것이 한 순간 물거품이 되어버린다면 그들이 감당해야할 손실은 엄청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에게 속한 여자 연예인을 피해자가 되지 않게, 그녀의 사생활을 ‘예쁘게’봐 달라고 호소하는 것일 겁니다.즉 여자연예인의 행보를 놓고 벌이는 연예일간지나 사이버상의 말들은 여성연예인의 순결한 이미지를 가지고 싶으나 가질 수 없는 남성대중의 욕망삭제 노력과 그것을 방어하고자하는 기획사의 줄다리기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최근 H양으로 한 여성을 지목해낸 남성대중과 그렇게 지목된 한 여성연예인이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울먹이며 실신하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너무나 남성적 공간인 연예계에서 자신의 직업을 가지는 여성연예인은 공인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사생활까지도 감시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왜 여성이 피해자인가라는 논의보다, 남성이 가해자로서 담당하는 부분을 확인해보는 것이 낫지 않을 까? 다시말해서 남성성으로 완벽히 만들어진 연예미디어의 구조와 여성 연예인과의 관계에서 그들의 행보를 단순히 지켜보는 행동은 정말 innocent한것인가? ~양 비디오로 인해 주변으로 밀려나고 그들을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게 되는 대중으로서의 자신이 보이는, 보이지 않는 정치적 행위는 없는 것일까?홍혜영 >음... 마지막 질문을 보고 가만 생각해 봤는데요...지금까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연예인의 ~양 비디오들의 경우를 보면...우선 주인공인 여자 연예인들은 인지도가 높고 한창 주가를 올리던 인기 연예인이었던 데 반해 상대 남자들은 유명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자쪽이 피해가 더 클 수 밖에 없었구요...우리 사회에서 '그런 사생활'이 폭로되었을 경우 손해보는 것은 여자 쪽이잖아요..(사실 한국이 좀 심하다고는 하나 어느 사회나 특히 아시아권에서는 기본적으로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 당사자였던 여자 연예인이 기자회견에서 울면서 이렇게 말했던 게 기억나네요. "저는 이제 여자로서의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라구요.먼저 한 도덕적 신념이 강요되어 왔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상황에서 'O 양 비디오'의 등장은 한국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에게 각기 다른 담론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남성들은 평소 '순수함과 순결함, 아름다움'의 이미지로 대변되었던 톱스타 '오현경'의 정사 비디오를 통해 천사로서의 연예인을 창녀화시키는 것에서 오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그들에게 있어서 여성의 영역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어머니와 여자친구, 부인으로 대변되는 일상적 여성집단과, 대중적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톱스타 연예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있어서 성적 도구화되어 있는 이른바 '창녀'집단이 바로 그것이다. 이 중에서 그들이 가장 신비화, 상징화, 우상화 하고 있는 집단은 두 번째 경우이다. 톱스타로 대변되는 여성 연예인의 이미지는 그들에게 여성에 대한 '순수함과 아름다움'의 판타지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남성들이 흔히 그들의 이상형이라 말하는 여자 연예인이 비슷한 것도 바로 이러한 신비화의 결과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상형으로 삼고 있는 대상은 현실에서 만나보기 힘들거나 불가능한 여성 부류이다. 결국 그들의 근원적 욕망인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에는 불가능한 대상인 것이다. 이러한 남성들에게 'O양 비디오'를 통한 탤런트 오현경의 '창녀화'는 '순수함과 순결'의 대명사였던 이상화된 여성을 세 번째 부류인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물화·도구화 시킴으로써 그들의 성적 정복욕을 충족시키는 데에 기여한다. 이것이 그들에게 '훔쳐보기'를 통한 성적 카타르시스를 만들어 내는 데에 사용되는 것이다. 반면, 여성들은 '순수함과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남성들에게 우상화되어 있는 여자 연예인의 이미지에 대한 상대적인 열등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열등감은 여자 연예인들의 옷차림이나 머리스타일 등을 모방하고 따라하는 것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여성들은 우상화·신비화 되어있는 여성 연예인들의 모습을 닮아감으로써 남성중심적 시각이 상정하고 있는 여성스러움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 된다.
(Max Weber:1864~1920)제출자 : 9784242, 전동녕사회학을 전공한다지만 베버의 원서는 한번도 읽지 못했었다. 그러던 중 레포트라는 형식으로 비로써 베버와 기다리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저신은 베버의 저서 중 가장 대중적이며, 유명한 역작이다. 또한 그래서인지 가장 많이 본문의 내용이 알려져 있으며, 실제 교회의 목사들도 역시 본문의 내용을 많이 인용하기도 한다. 물론 그 사상적 배경이나 이론적 지식과는 별개로 말이다. 아마 베버가 가장 우려했던 것이기도 한 결과이다. 베버는 본문 처음에서부터 그러한 부분을 많이 경계하였다. 즉, 자신이 속한 문화와 역사적 환경 속에서의 성찰과 연구라는 점을 몇 번 강조하였다. 베버는 지독히도 자신의 견해가 왜곡되는 것을 지나치게 경계하였다. 본문을 읽으며 느꼈던 것은 많은 내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지금 현실에서 베버는 서구 우월주의자 혹은 종교를 세속의 영역으로 끌어내린 악역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물론 교회에서는 자신의 종교를 믿으면 현실에서 많이 유용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형태가 되어 버렸고 말이다.1. 당시 베버는 ?집필 당시 베버는 하이델베르크대학 재직중에, 심한 신경쇠약에 걸려 사표를 제출하였으나 쉽게 수리되지 않았고 유럽 각지에서의 투병생활 끝에 1902년경부터 다시 연구생활에 들어갔다. 병후에는 《사회과학 및 사회정책 잡지》의 편집을 맡아보고, 〈사회과학적 및 사회정책적 인식의 객관성〉(1904)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1904∼1905) 등의 논문을 집필하였다. 당시 독일은 늦은 산업화를 이루어 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에 나타난 역사적 맥락은 저서가 만들어졌던 1905년의 역사적 상황에서 유추해보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베버의 역사적 시각은 기능적 형태의 역사관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신역사학파와의 오랜 논쟁에서 나타나듯 베버는 역사는 지속적인 대화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문제제기는 자본주의 정신의 기원을 캘빈교에서 거의 정확하게 발전되어진 종교윤리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곧 자본주의 정신을 비롯해 천직이라는 관념의 토대인 합리적 생활방식은 기독교 금욕주의 정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저서는 엥겔스가 프로테스탄티즘을 자본주의 초기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경제적 변동의 이데올로기적 반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것과는 다른 방식에서 접근한 것으로 그는 이러한 사실을 분석하기 위해 역사성에 기초한 이념형을 사용하였다.[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박성수 옮김. 1988. 문예출판사오늘의 역사에서 가장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왜 서구에서 발생하게 되었는가 자본주의 경제란 교환기회를 이용하여 예상되는 이윤을 추구하는 데 있다. 즉 평화적인 영리추구의 기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자본주의 특징인 엄밀한 자본계산은 자유노동에 의한 합리적 노동조직 하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서구적 합리주의의 고유한 특질과 그 기원을 해명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근대적 대기입에서 자본가나 경영 및 고급노동에 참여하는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은 다른 교파의 신자들보다 많다. 그것은 그 부모들이 자산이 많았거나 특유의 종교적 태도로 자녀교육에 더 열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테스탄트에게는 경제적 합리주의의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그 원인은 그 신앙의 내면적인 특성에서 찾아야 한다.금욕과 종교적 경건성 등의 특징과 자본주의적 영리추구의 깊은 연관관계를 가진 것이 아닐까. 자본주의 정신은 어떤 면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전부터 존재한 셈인데 이 경우 관념적이라는 상부구조는 물질적 토대를 반영할 뿐이라는 말로는 해명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문화의 대표적인 특징인 직업에의 헌신과 '천직'이라는 관념을 낳게 한 그 특유의 합리적 사고와 생활은 어떤 정신의 소산이었는가? 독일어의 '직업(Beruf)'이라는 단어 속에는 이미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이라는 종교적 관념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은 성서 번역자 루터의 정신에서 유래한 것이다. 루터는 세속.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은 재산이 있다고 노는 것과,부의 향략과 태만 등을 도덕적으로 죄악시했다.시간낭비는 가장 큰 죄악이었으며 건강에 필요한 시간 이상의 수면조차 비도덕적인 것으로 배척되었다.시간은 너무나 비싼 것이다.손실된 시간만큼 신의 영광을 위한 노동을 못하기 때문이다.노동은 금욕의 수단으로서 중요할 뿐 아니라 신이 명한 생활일반의 자기목적이다.-'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재산이 있는 자라도 일해야만 했다.청교도 교리가 촉직한 직업분화는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일반적 복지를 높여주었다.직업의 가치는 사경제수익성에 의해서도 결정된다.'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주지 않고 합법적으로 다른 방법보다 많은 이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신이 계시할 때 이를 거절하는 것은 너에 대한 소명을 어기는 것이다.'-유태교는 모험가적 자본주의에 속하며 그 성격이 천민자본주의적이나 청교도주의의 성격은 합리적이며 시민적인 경영과 노동의 합리적 조직화였다.특히, 칼뱅적 프로테스탄티즘의 내용을 베버가 연구한 바대로 요약하면, 첫째, 칼뱅주의의 '예정설(豫定說)'은 인간은 최초에 신의 뜻에 따라 구원 또는 영벌(永罰)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 둘째, 신자들이 자신도 선택된자들 가운데 들어 있는가의 확인의 문제이다. 셋째, 이에 대한 일반 신도들의 해답은 기독교적 소명(召命)에 따른 직업 활동으로 경쟁에서 이기고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바로 하느님에 의해 선택된 자가 되는 현세적 징후라고 생각하였다. 넷째, 칼뱅주의 윤리관에는 근면, 검소, 성실 등 '세속적 금욕주의'를 강조하였다. 따라서, 이윤을 저축하고 생산 활동에 재투자하여 부를 축적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더욱 굳어졌다. 이것이 서구인의 직업 의식과 자본주의 정신의 합리화 원인이 되었다.(김경동, 현대의 사회학, 박영사, 1980, pp. 550-551)베버의 이런 논리가 만약 그렇다면 베버는 분명 프로테스탄티즘의 직업 윤리라는 형태로 분석한 것이다.. 즉,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의 이념, 즉근대기업가와 노동을 소명으로 생각하는 근대노동자를 창출함으로써 자본주의의 형성과 발전을 촉진한 것이다.3.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종파와 계층지방의 직업 통계를 보면 특히 한 가지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그 현상은 자본 소유자와 높은 기술적, 또는 상인적 훈련을 받은 구성원들이 매우 현저한 프로테스탄트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곧 다음과 같은 역사적 질문이 발생한다. 경제적으로 발전된 지역이 특별히 종교개혁을 받아들일 소지를 가졌던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리고 이에 대한 답변은 우선 생각하듯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역사적인 사실을 볼 때 우리는 일관된 이유를 찾지 못한다. 따라서 행동상의 차이를 낳는 원인은 대체적으로 종파가 그 때 그 때 처하는 외적인 역사적-정치적 상황에서가 아니라 지속적인 내적 특성에서 찾아져야만 한다. 피상적인 관찰과 몇 가지 근대적 인상에 입각해서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대립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즉 카톨릭의 강한 비세속성, 카톨릭의 최고 이상인 금욕적 성격이 신자들로 하여금 현세의 재물에 대해 보다 강한 무관심을 보이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 설명은 오늘날 두 종파가 상대방을 평가하는 데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도식과 일치한다. 프로테스탄트 측에서는 이러한 견해를 카톨릭적 삶의 영위가 갖는 금욕적 이상에 대한 비판에 이용하며 카톨릭 측은 프로테스탄티즘에 의한 모든 삶의 내용의 세속화 결과로 주장되는 물질주의에 대한 비난으로 말한다. 그러나 과거에는 상황이 달랐다. 즉 영국, 네덜란드, 미국의 청교도들에게는 주지하다시피 현세적 쾌락과는 정반대 되는 것이 특징적이었으며 나중에 다시 보게 되겠지만 이는 우리가 매우 중요시해야 할 그들의 특징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이러한 평행관계가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소위!) 카톨릭의 비세속성이나 프로테스탄티즘의 유물론적인 세속성 따위처럼 애매한 표상으로는 이 문제 해결에 아무런 출발점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몇 가지 매우 외적인 측면 종교적 성격에서 찾아야만 한다.자본주의 정신본 연구의 제목에는 약간 야심적인 듯이 보이는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그 개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러한 역사적 개념은 내용에 있어 자신의 개별적인 특성 때문에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현상에 관련되는 것이므로, 최근차+종차라는 도식에 따라 정의될 수는 없고 오히려 역사적 현실에서 취해질 개별적 구성요소로부터 점차로 합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개념에 대한 확정적인 파악은 탐구의 시초가 아니라 탐구의 마지막에서 얻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이 자리에서 자본주의 정신으로 뜻하는 것이 어떤 식으로 가장 잘 정식화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논의가 진행됨에 따라, 그리고 그 논의의 본질적인 결과가 지적하는 바에 따라 정해질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 추진력에 대한 문제는 우선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화폐재고의 원천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정신의 발달의 문제였다. 그 정신이 개화하여 작용하는 곳에서는 그 정신이 화폐재고를 자신의 작용수단으로 변형시켰다는 것이며 그 반대가 아니다. 현재의 경제에 고유한 구조와 기업형태를 가진 지금과 같은 정치, 사법, 유통제도 아래서는 흔히 말해지듯 자본주의 정신은 순수한 적의의 산물로 이해될 수 있을지 모른다. 자본주의적 경제질서는 화폐증식의 직업에 대한 이러한 몰두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몰두는 현 경제구조에 매우 적합하고 경제적 생존경쟁에서의 승리와 밀접히 관련된 재화취급태도이기 때문에, 그러한 화폐증식적 생활방식이 현재 어떤 통일적 세계관과 필연적 관련이 있다고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다. 즉 그러한 생활방식은 더 이상 어떤 종교적 힘에 의해 승인 받을 것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교회규범에 의한 경제생활의 간섭은 국가 간섭과 마찬가지로 장애라고 여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상업정책적, 사회정책적 이해관계의 상황이 세계관을 결정하는 것이다. 생활방식을 자본주의적인 성공조건에 적응시키지 못한 자는 몰락하거나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근대다.
시작하는 글자본주의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굴러가듯이 광고는 자본주의 손에 의해 굴러간다. 광고에 대한 비판이 비관론이나 허무주의로 빠지기 쉬운 것은 광고가 자본주의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태생적 한계만을 논한다면 광고에 관한 모든 논의가 무의미해진다. 광고가 문화 산물로서 대중 문화의 이미지와 담론을 대표하고 있는 현 실정에서 광고를 단지 마케팅의 산물일 뿐이라고 단정한다면, 그것은 광고가 갖는 영향력을 간과하는 것이고 광고의 파급력을 지나치게 폄하하는 것이다. 광고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하이퍼리얼리티를 형성하고 우리의 삶의 태도와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비록 세대간의 문제 일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세대와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 일치점을 갖고 있는가?. 자본주의 꽃 혹은 자본주의의 홍위병이라 불리는 광고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그것이 과연 어떻게 세대 갈등과 연관성을 갖는지를 분석하였다.- 본 론 -지금 우리에게 광고는 무엇인가?1) 광고를 말하려 한다.현대 광고는 이미 개인의 언어가 아니라 공동체의 언어가 된 것이다. 우리는 공동체의 언어로 작용하는 광고의 작동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드라마의 소품이나 대중 스타의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든 광고! 우리는 언제나 광고에 노출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광고를 자본주의의 꽃'이라 부른다. 산업 사회의 도래로 인해 자본주의가 발달하자 자본가들은 광고를 상품 판매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소비자들은 광고 속에서 상품에 대한 정보를 얻고 욕망을 구체화하는데, 이 과정에서 광고는 자본조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회 제도로 자리잡게 되었다. 우리들은 하루에도 수천 가지의 광고에 둘러싸여 살아간다.2) 광고에게 우리는 무엇인가?현대 광고는 상품과 서비스의 판매 촉진에만 머무르지 않고 대중의 의식과 가치관, 그리고 생활 양식까지도 변화시킨다. 인간의 인지 능력뿐만 아니라 지적 사고와 관련된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인 의식에 미치는 광고문화적 수준을 총체적으로 대변하며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하기도 한다. 이처럼 광고는 소비 상품으로서 지닌 브랜드 매력으로 보나 다른 대중 문화에 미치는 비중 있는 영향력으로 보나 대중 문화의 제 1 원소임이 분명하다.( 크리스 모스델 '광고, 그리고 문화' 1999 : 김홍탁 '광고, 대중문화의 제1원소' 2000)3) 광고의 본질은 자본의 본질광고의 본질을 생산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라면,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광고를 '소비'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이해한다. 현대 광고는 편재성과 가시성 때문에 비판과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광고가 다양한 상징 조작과 기술적 조작을 통하여 무차별적인 소비자 설득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특히 심각한 우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러한 견해가 현대의 소비자를 능동적인 수용자로 보지 않고 수동적인 수용자로 이해한 데에서 비롯된 오해라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광고가 문화 산업인 동시에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한다.4) 그들은 어떻게 광고를 말하는가?광고의 필연성 : 자본주의 생산 양식은 대량 소비를 유도한다. 소비자 주권과 시장 경쟁 원리가 적용되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광고가 소비행위의 강력한 매개체로 자리 잡게 된다. 대량 소비가 불가능 하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은 유지되기 어려운 법인데, 이때 대량 소비를 부채질하는 것이 광고이다. 소비 행위와 소비주의는 명백해 구분할 필요가 있다. 소비 행위가 대중 문화의 형성에 꼭 필요한 소비의 필수 요소라면, 소비주의는 소비 그 자체를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입장이다. 우리는 광고가 소비 행위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소비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에 쏠려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맑스 전통의 경제학에서는 생산을 경제학의 핵심 요소로 파악하면서도 소비는 항상 주변 요소로 간주하는 실수를 범했다. 그러나 상품의 사용 가치는 항상 소비 행위에서 파생된다. 광고는 소비 행위에 항상 영향을 미쳤는데 이때 광고가 하는 역할유롭다. 그들은 그 숨은 뜻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자신이 열광하는 H.O.T의 의미 따위에 집착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그들은 데리다를 몰라도, 해석학이나 해체철학을 몰라도 일찌감치 나름대로 해석의 자유를 구가하고 있다. 이들은 영상세대, 러시코프의 용어를 빌면 뉴타입 세대들이다.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의 이해'에서 말해듯이 문자시대와 비교해서 영상시대는 탈전테적이고, 해석의 다양성이 열려 있는 시대이다. 쿨-미디어는 낮은 정세도로 인하여 참가, 보완의 정도가 높고 감정 이입이 쉽다. 또한 '메시지의 의미는 메시지가 이미지 속에서 만들어온 제 나름의 서사를 통해 그 안에서 새로운 메시지를 생성한다. 영상언어의 문법과 체계 때문에 이들의 이미지 서사는 선형적으로 이해해서는 해독이 안된다. '처음 만나는 자유'라는 TTL의 광고는 여러 상징을 유용하지만 이런 상징의 의미가 궁금하다면 융의 '인간과 상징'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상징의 비밀 등을 섭렵할 필요가 없다. 해석은 자유.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성대로 느끼고 해석하면 그만이다.2) TTL광고의 여파는 어디까지?이러한 이미지 잔치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판매증가와 시장의 확산이다. 광고의 환상과 꿈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면 자본의 회전에 눈이 부시다. TTL이 등장하기 전, 2천만 개인이동통신 가입자중 10대, 20대가 차지하는 있는 비율은 20 %에도 못 미쳤지만, 이후 몇 년 사이 팽창할 대로 팽창한 국내 개인 이동통신 시장의 신규 가입자는 신세대 층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기성세대는 광고나 판촉에 따라 휴대전화를 자주 바꾸지 않으므로 신세대들이 주 공략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 동안 20 대 가입자 비율이 가장 낮았던 SK 텔레콤은 이 광고를 통해 한 달여만에 가입자 20여만명을 돌파했고 4배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이러한 광고는 단순히 SK 텔레콤 뿐만 아니라 KTF의 NA 광고 혹은 LG 텔레콤은 홀맨과 같은 후속 광고를 낳게 되었다.3) TTL 은 차별화 마케팅TTL의 컨셉은특별한 011이라는 이미지는 젊은층을 위한 배타적인 혜택이 담긴 브랜드일 것이라는 기대감을 전달하게 된 것이다.즉, 매우 높은 배타성과 복제성을 지닌 차별화 전략였다. 주제로 설정한 스무살 심리 내면의 모습은 비정형성, 비설명성, 비논리적, 비주입식으로 정의하였다.4) 근데 이게 왜 문제야?왜 유독 이동통신 광고를 대상으로 삼았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이동통신 상품은 통화 말고 다른 가치가 있다. 다시 TTL의 예를 든다면 단순히 통화하기 위해 TTL을 이용하는 어리석은 고객은 없다는 것이다. 브랜드 가치와 더불어 이동통신은 커뮤니케이션을 기본 전제로 하는 상품이다. 따라서 10-20대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독특한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TTL의 서비스는 독창적인 별도의 홈페이지를 통해 관리되며, 이를 통한 회원들을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그들은 별도의 카드를 통해 구매하거나 포인트를 적립하고 할인 받거나 무료 이용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TTL 존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통해 그들만의 배타적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 받는다. 물론 이러한 형태가 곧 KTF의 NA 상품에 의해 모방되었지만 분명 TTL 서비스대의 연령층의 고객에게는 TTL은 또다른 가치를 부여한다. (최근의 통화 품질은 특별한 차이가 있는가? 만약 또 다른 가치가 없다면 비싼 가격의 TTL을 구매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와 같은 고객을 세분화하여 차별화시키는 마케팅은 기존의 동일 경험을 바탕으로하는 나이를 중심으로하는 세대 구분에서 더욱 세분화되고 복잡화된 문화와 자본의 논리에 의해 규정지어지게 되는 경향을 띄어 가고 있다. 같은 연령대의 세대에게는 높은 가치를 지닌 TTL을 이용하고 싶어도 이용할 수 없는 배타성을 지니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일으키거나 다른 연령대에서는 기존에 존재하는 갈등 예를 들면 품질보다는 소비 지향적이다라는 인식을 강화시키면서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갈등이 결국 심리적 요인에 기반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5) 당신은 어느 세대세대 구분의 일차적 기준은 생물학적 기준이지만 X세대, N세대 등의 구분은 사회 구성원의 심리적 특성에 기초한 사회적 문화적 측면의 변화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개념은 결국 상업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부호이며 이러한 개념은 결국 이러한 세대의 특징을 부각시키는데 사용될뿐 철저히 자본의 수동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결과를 만들었다.지금 우리에게 자본은 무엇인가? (2. 기존 갈등의 증폭)1) 속도의 광고'빛의 속도'가 주는 희열은 이 시대에서 가장 값진 교환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교환가치는 필연적으로 소외를 생성해낸다. '속도'의 희열은 곧 '속도'에 대한 강박과 소외를 낳는다. 목도하다시피 정보망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소비재이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하며 계속되는 통신망의 광고는 빠른 정보통신망을 이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의심없이 주입시키며 우리를 그 선두에 서게끔 유도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다른 형태의 소외를 만들어낸다. 즉, 정보통신에 익숙하지 못한 연령대는 반복되며 이미지화되는 광고를 통해 심한 두려움과 동시에 지나친 열등 의식과 그에 따라가지 못함에 따른 다른 형태의 소외를 낳게된다.-> 일찍이 프로이트는 '문명과 그 불만'에서 문명의 발달은 인간을 더욱 억압시키는 기제라고 갈파했다.2) 무선통신의 특성무선의 시대는 인간을 동선과 신체를 확장한다. 관심 없는 일로부터는 스스로를 차단시키기 때문이다. 발달한 커뮤니케이션 기기는 한편으로 소외를 낳는다. 즉, 그 커뮤니케이션에 가입되었는가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문제부터 개인 이동통신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예전보다 훨씬 심각한 걱정과 단절감, 조급증을 낳는다. 결국 네트와 문명의 이기가 발전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 만큼 소외가 커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촉진하는 역할이 바로 광고이며 커뮤니케이션의 설정 역시 자본의 논리에 철저히 따라 진다는 것이다.3) 지금 우리에게 자본은 무엇인가?여기서 언급한 대표적인 몇가지 세대갈등과 관련된 광고와 마케팅 활동각하다
사회 문제 (1)제출자 : 9784242 전동녕최근에 개봉한 영화 '살인의 추억'의 비평가의 견해를 일부 인용하며 영화 속에서 '사회문제'가 어떻게 그려졌는지, 그리고 그것이 해결되는 방향과 나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2가지의 이야기를 하나의 묶음 속에서 최근 개봉된 영화를 바탕으로 분석하도록 하겠습니다.사회문제 [ 社會問題 , social problems ] 란사회제도나 사회구조의 결함, 모순에서 생기는 문제 국가정보원장 지명자 인사청문회를 보다얼마 전 국가정보원장 지명자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국회 정보위 의원들은 대통령이 지명한 원장 지명자에 대하여 입을 모아 반대했다. 사상과 이념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의 주된 일이 북한의 간첩을 잡는 것인데 간첩을 풀어주자고 주장했던 사람을 어떻게 임명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가 친북 좌파의 성향을 보이는 인물이라고 단정지었다.정보위 소속 국회의원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듯 보였다. 북한의 사주를 받은 인물들이 민주투사로 위장하고 있음을 주장했던 이도 있었다. 자신들이 국정원이나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에 있어 보았기 때문에 잘 안다고 했다. 그들 중 누구는 80년대 안기부의 핵심 요직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북한의 대남적화야욕을 분쇄하고자 용공조직 적발과 검거에 헌신했다고 한다. 그는 80년대는 그렇게 음지에서 몸을 바쳐 일한 공직자들이 있었기에 나라가 유지되었다는 자부심을 피력했다.내가 기억하는 80년대내가 기억하는 80년대는 D-데이의 시대였다. 교실 게시판에는 항상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 같은 행사의 '며칠 전'을 알리는 달력이 붙어 있었고, 시시때때로 `그 대회들과 관련하여 글짓기를 하거나 포스터를 그려야 했다. 조기청소라는 이름으로 일주일에 한번은 아침 일찍 일어나 터미널 앞이나 시청 앞을 쓸기도 했다. 그곳에는 커다란 탑이 세워져 있었고 꼭대기 전광판의 숫자는 날마다 줄어들었다. 가끔은 전교생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감옥에 갔지만, 여전히 대학생들은 데모를 하는 모양이었다. 뉴스에서는 그들이 분신자살을 했다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었다.'데모를 하는 대학생들을 북한으로 보내버리면 될텐데...'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대한민국 최초의 연쇄강간살인사건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반경 2Km 이내에서 6년 동안 10차례의 강간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71세 노인에서부터 13세 여중생까지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발생한 대한민국 최초의 연쇄 살인사건은 아직도 이런 저런 '설'만 분분한 채 영구미결사건으로 남아 있다. 여자들만 골라 참혹하게 강간 살해한 이 엽기적 범행이 알려지면서 당시 경기도 남부 일원의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사건을 담당한 형사들은 몇 년 동안 밤잠을 설쳐야 했다. 봉준호 감독은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보낸 80년대의 공기를 영화 속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은 연쇄살인사건을 다큐멘터리처럼 구성하여 보여주지는 않는다. 실제 사건 스토리와 영화 속의 스토리가 다 일치했다는 것이 아니다. 즉 화성연쇄살인사건을 기본으로 그 사건에 대한 성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했지만, 영화는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수사일지를 그대로 복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감독은 여기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낸다.영화는 단지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스릴러나 두 명의 형사들을 주인공으로 한 버디액션 영화도 아니다. 오히려 전체적인 톤은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그래서 일단 재미있다. 죄 없는 여인들이 무참히 살해된 사건들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 끊임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율배반적 상황이다. 그 웃음은 대사에서도 나왔지만, 인물들이 보여주는 상황 자체의 어이없음과 아이러니 속에서 주로 터져나왔다. 86년부터 6년간 10여명의 여인들이 같은 지역에서 같은 방법으로 죄 없이 살해당했고 일선 형사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은 범인을 잡기 위해 숱한 고생을 했다. 그러는 동안 80년대는 부천 성고문 사건, 아시안 게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6.29선언,있다.영화를 자세히 보면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과 야유가 곳곳에 숨어 있다. 예컨대 박두만과 서태윤이 책상에 엎어져 잡히지 않는 범인으로 인해 서로의 심정을 나누는 장면. 그 사이에 잡지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잡지에는 당시 영부인 사진이 커다랗게 실려 있었다. 또한 연쇄살인사건의 기사가 실린 신문 사회면을 비출 때 바로 옆면에는 커다랗게 '현대노조 협상거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다.작업장 앞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에는 납품기한 단축하여 보람찬 조국건설을 촉구하는 문구가 실려 있었고 대통령의 지방순시를 환영하려던 길가의 여고생들은 한복을 입은 채로 비를 쫄닥 맞는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20여 년도 채 안된 시절의 일상적 풍경이었다.'시위진압 나가느라 수원서에 전경이 하나도 없다'는 대답을 듣는 신 반장이 나오는 장면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80년대의 성격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조용구 형사가 백광호의 고깃집에서 부천 성 고문 사건 뉴스로 여대생과 시비가 붙어 싸움이 나고 그와 상관없던 박두만과 서태윤이 오히려 조용구 대신 식당의 남자들과 싸우는 장면에서 "네가 경찰이면 나는 안기부다"라고 태권도복의 남정네가 두 형사들에게 내뱉은 한마디도 인상적이었다. 경찰을 팰 수 있는 조직. 경찰보다 위에 있는 조직. 그 시절의 평범한 사람들도 그렇게 안기부를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 대사였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고 체제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안기부는 당시 권력의 최고에 있었다. 그 권력을 통제하거나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경찰들이 살인 용의자 하나 못잡는 그 당시에도, 간첩을 잡아들인다는 이유로 수많은 용의자들을 검거했고 그 많은 사람들을 거의 예외없이 감옥으로 보냈다.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비록 서울에서는 아시아인 몇 만이 모여서 체육대회를 하고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를 외치며 올림픽을 준비하던 시절이었지만, 내 기억에 의하면 서울 외의 수도권 변방 도시는 아파트 한 채 변변한 곳이 드물었다. 그런 곳에서 유년을 보냈기 때문에 에 대한 분노로 눈빛이 달라진다. 이 소녀가 살해되기 전에 서태윤은 소녀로부터 제보를 듣고자 학교로 찾아가는 장면이 있었다. 서태윤이 운동장으로 들어설 무렵 학교 운동장에서는 전교생들이 나와 민방위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초등학교 시절 북괴의 전투기가 폭격을 할 경우를 대비해 땡볕의 운동장에서 하루종일 민방위 훈련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국가는 북한의 침략에 대비하여 어린 학생들에게 한 달에 한 번씩 꼬박 꼬박 민방위 훈련 시간을 마련해주었고 운동장에 나가 일렬로 앉아 머리를 숙이고 있거나 책상 아래 들어가 숨죽이고 있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때마다 느꼈던 심리적 공포감이 다시 상기되었다. 문제는 북한의 침략에 대비는 하면서도 정작 내부에서 일어나는 흉악한 범죄들에 대해서 국가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방위 훈련에서 열심히 들것을 나르던 그 소녀는 결국 범인의 표적이 되어 무참하게 살해된다.일선의 경찰들은 그 범인을 잡기 위해 부적까지 만들어 보았지만 결국 범인의 흔적도 찾지 못한다. 국가의 최고 정보수사기관은 그 범죄에 대하여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영화의 주인공 박두만과 서태윤은 성격 자체도 대립적이고 환경 자체도 대립적이다. 둘은 결국 수사과정을 통해 상호 변환된다. 박두만은 오히려 차분히 사건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고 합리적이 되어가는 반면, 서태윤은 반대로 용의자에 대한 분노로 점점 폭력적이고 감정적으로 변해간다. 이 둘의 상호변환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오리무중의 범인이었다. 그 범인에 대한 '분노'였다. 한 명은 분노가 커질수록 침착해지고 한 명은 분노가 커질수록 평정을 잃어간다. 영화는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될 수 있는 상징들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 주인공 박두만과 서태윤의 상호 변환을 비롯하여 결국 발을 잃게 되는 조영구 형사, 해결의 단초를 제공하면서도 여전히 커피만 타야 하는 여경, 목격자 백광호의 어이없는 죽음, 허허로운 들판 한가운데 서 있는 육중한 공장, 마지막 장면의 터널 신 등. 장면과 인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지난 80년대를 반성하지 않는다. 지난 그 시대를 결코 성찰하거나 되돌아보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킨다. 아직도 21세기의 대한민국 한켠에서 진행중인 80년대의 한 모습이다. 영화는 그런 지금의 모습 역시 환기시켜내는 복심을 가지고 있었다.관객들이 공포영화를 마음놓고 즐길 수 있는 이유는 그 공포가 자신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픈 기억이나 충격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될 수 있는 것도 그러한 '거리두기'에 있을 것이다. 영화 은 80년대 악명 높은 살인사건이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되살려냈다. 끔찍한 살인사건이지만, '추억'이라는 단어가 붙을 수 있는 이유는 아마 20여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기 때문일 것이다. 폭력적이며 고문을 자행하는 시골 형사(박두만)와 증거 위주의 서울 형사(서태윤)가 등장하지만, 결국 사건의 잔인함으로 '이성'의 절대성이 허물어지는 순간, 서태윤은 박두만보다 더한 폭력성을 드러낸다. '고문해서라도 자백만 받으면 된다'는 말을 중얼거리고, 자신이 치료한 여고생이 시체로 발견되자, 혐의자를 찾아가 총을 겨누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 순간 '이성과 광기'라는 책제목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성이 곧 평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이성이 곧 비폭력은 아니라는 것, 이성 속에 스며든 폭력성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80년대는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시대였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명 판결(?)이 나왔던 것처럼, 과정보다 결과가 선과 악을 구분했다. 형사들이 혐의자를 수없이 구타하고, 고문해도 괜찮았던 것은 '범인만 잡으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범인만 잡으면 모든 죄가 용서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문당한 혐의자와 고문한 형사가 TV드라마 '수사반장'을 자연스럽게 감상하고 함께 자장면도 시켜먹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인권이 참담하던 시절, 형사 일개인의 역할이란 것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비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