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르포르타주1) 르포르타주의 정의2) 르포문학에 대하여2. 다큐멘터리1) 다큐멘터리의 정의2) 다큐멘터리의 종류3) 다큐멘터리의 목적4) 다큐멘터리의 특성3. 보도사진1) 보도사진의 정의2) 보도사진의 장르4. 포토저널리즘1) 포토저널리즘의 정의2) 포토저널리즘의 진실성1. 르포르타주1) 르포르타주의 정의어원은 보고(報告:report)이며 ‘르포’로 줄여 쓰기도 하는데, 어떤 사회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가 아니라 보고자(reporter)가 자신의 식견(識見)을 배경으로 하여 심층취재하고, 대상의 사이드 뉴스나 에피소드를 포함시켜 종합적인 기사로 완성하는 데서 비롯되었다.한편, J.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10일 간:Ten Days that Shook the World》(1919), E.M.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Im Westen nichts Neues》(1929)와 E.P.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1938), G.오웰의 《카탈루냐(카탈로니아) 찬가 Hamage to Catalonia》(1938) 등은 대표적 기록문학으로 꼽히는데, 이로 볼 때 픽션을 배제하는 논픽션만이 기록문학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르포르타주는 신문의 보도기사와 기록문학 사이의 영역을 메우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여기에도 ‘기자(記者)의 르포’와 ‘소설가의 르포’가 독자적인 특색이 있음을 강조하는 설도 있어 그 한계가 명확하지는 않다.2) 르포문학에 대하여오늘날은 르포, 다큐멘터리의 시대이다. 지난 시대의 정치적 이면을 표면화한 정치비화나 폭로물 등 범람하였고 80년대 이후 르포는 사회 전반에 커다란 영향력 발휘하였다. 사회 각 부문 운동권의 자생적 발표매체도 한 몫을 하고 있고 1983년 실천문학사 1, 2집을 발간하였다.오늘날 르포가 성행하는 이유로는 첫째, 정보에 대한 욕구: 사회현실을 객관적으로 알고자 하는 욕구가 크기 때문이다. 제도 언론의 왜곡, 편파적, 일방적 보도 태도에 대한 불신을 갖고, 제도권 언론의 반민주멘터리는 크게 '다큐멘터리 드라마'와 '베리테'(verite)로 나눌 수 있다.'다큐멘터리 드라마’는 다큐멘터리를 드라마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하며 이는 드라마제작에 동원하는 대본과 연기와 연출 등을 다큐멘터리에 적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1930년대 다큐멘터리 운동시기에 등장했던 '이야기 다큐멘터리'형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야기 다큐멘터리는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화자를 통해 이야기로 전달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경우 이야기 자체는 사실이지만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식은 화자에 의한 허구적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허구적 구성은 사실을 둘러싼 다양한 상황에 직접 접근하기 어려운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도입됐다. 이는 역사다큐멘터리의 경우에서처럼 이미 사라진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물리적 제약 때문에 카메라가 직접 촬영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한 묘사 등 기술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다. 다큐멘터리 드라마는 이런 허구적 구성의 불가피성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개발한 경우이다. 이것은 전문배우를 등장시켜 사실과 사건을 완전히 재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장르가 갖고 있는 서사구조의 동적인 특성이 나타나는데 이는 특히 다큐멘터리에 심미적 성격을 부여하는 기능을 한다. 다큐멘터리에 있어 이 같은 심미적 성격은 시청자가 실제 사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심각하지 않고 보다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정서적 바탕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 다큐멘터리 드라마는 다큐멘터리를 대중화할 수 있는 전략적 방법 중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다큐멘터리가 드라마형식을 채용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사실의 흥미롭고 특징적이고 인상적인 성격을 두드러지게 보여주자는 의도를 깔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다큐멘터리 드라마의 본격적인 등장은 1960년대의 사실주의 드라마의 발전과 관계가 깊다. 제2차대전의 후유증이 가시고 냉전체제가 안정적으로 구축됨에 따라 서구사회의 경제는 급격한 발전을 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성장은 당연히 사회구조의 변화를 초 영국이 핵전쟁에 휩쓸림으로써 초래하게 되는 재앙을 목격하는 미래의 증인의 입장에 놓고 드라마를 끌어갔다. 특히 핵 공격에 대한 광적인 대비에서부터 핵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육체적 심리적 황폐화 및 사회적 공동화현상을 기록영화의 기법, 뉴스 인터뷰기법 등 다양한 저널리즘양식을 동원해 표현했다. 이 프로그램은 외양은 드라마의 틀을 갖고 있지만 디테일에 있어서는 이야기구조에 무게중심을 두는 전통적인 드라마가 아니다. 즉 드라마적 표현양식만 빌어 사건의 현장을 정확하게 재구성해 보여주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이야기구조를 갖는 다큐멘터리 드라마와 달리 드라마적 표현양식만 빌린다는 점에서 차라리 다큐멘터리기법을 모방한 드라마처럼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단순한 다큐멘터리기법을 빈 드라마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이 작품이 초지일관 견지하고 있는 역사적이며 동시에 동시대적인 제작자의 관점이 배어있다는 점 때문이다. 여기다 가상의 사건을 드라마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전에 철저한 조사를 실시한 점은 이 프로그램이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제작당시 BBC에서 방송되지 못한 채 몇몇 극장에서 상영되는데 그쳤다. BBC가 방영을 거부한 것은 당시로서는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지금에서야 드러냈지만 영국정부의 핵 억지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 때문이었다.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의 내용과 그와 관련된 주제를 포함한 다큐멘터리는 이처럼 때로는 사회적 반발, 또는 관련자들의 반대를 불러오는데 이는 다큐멘터리장르가 안고 있는 대사회적 관계를 보여주는 일면이라고 할 수 있다.'베리테'는 일종의 미니멀리즘 다큐멘터리다. 기획자나 연출자 등 제작자의 작가적 관점을 통한 개입이나 해설은 물론 심지어는 사건관련자의 인터뷰까지 배제한 채 그야말로 사실 그 자체만 보여주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연출자는 자신의 관점이 프로그램에 개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방에서 카메라만 남기고 모두 철수하기도 한다. 때문에 비간섭주의적이며 관찰주의적 방법론이라고 할 됐다. 경우에 따라서는 프로그램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를 신경을 쓸 필요도 없게 됐다. 대신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장소에 카메라를 두고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화면에 담아내는데 집중해야 했다.일상적인 상황에 접근할 수 있다는 베리테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1981년에 제작된 BBC의 '폴리스'와 같은 해에 제작된 미국의 독립방송인 PBS가 제작한 '미들타운'을 들 수 있다. '폴리스'는 런던의 BBC본사가 아닌 서부지역 총국격인 'BBC 웨스트'가 제작한 작품으로서 권력이 집중된 '중심부'가 아니라 항상 '대상'으로만 여겨져 온 '주변부'에서 이루어졌다는 점부터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이는 '사회'나 '역사'와 같은 거시적 대상에만 관심을 가져온 정통 다큐멘터리와 달리 일상생활이라는 미시적 대상에 관심을 두는 베리테의 성격과 일맥상통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폴리스'는 점증하는 일반 시민의 야만적인 폭력의 증가현상으로 인해 법과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시민과 맞서야하는 새로운 상황에 처한 경찰관이 시민의 보호자라는 전통적인 경찰에 대한 자화상 사이에서 겪는 딜레마를 다루었다. 혼란을 겪고 있는 기존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하는 영국경찰의 모습을 일선경찰관의 현장근무상황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모두 13회에 걸친 시리즈로 방송된 '폴리스'는 베리테가 엄청난 설득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형식이 진실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폴리스보다 3개월 뒤에 방송된 '미들타운'은 베리테의 또 다른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인디애나주의 작은 소도읍인 '먼치타운'을 모델로 삼아 모두 6부작으로 제작된 이 프로그램은 일면 정치캠페인을 집중 조명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점에서는 고등학교의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십대의 하위문화를 다룬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철저히 사회학적 관점에 근거해 제작됐다. 6편의 시리즈 모두 먼치타운의 주요대학인 볼 스테이트 대학자들에게 예상을 넘어서는 충격을 주는 의외성을 지닌다.이와 같이 비디오다큐멘터리의 구성은 3가지 특성을 갖추었을 때 다큐멘터리로서 생명력을 갖게 될 것이다.3. 보도사진1) 보도사진의 정의‘보도사진’이란 사진을 보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취재 분야를 말한다. 사회현상이나 자연계의 현상을 보도라는 목적의식에서 포착한 사진이다. 광의로는 신속한 보도를 목적으로 하는 신문사진을 포함하나, 협의로는 사진가의 독자적인 문제의식이나 주장을 바탕으로 한 '카메라 아이(camera-eye)'에 의하여 사회현상이나 자연현상을 보도하는 '포토 에세이(photo-essay)'를 뜻한다. 그것은 1장의 사진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장의 사진을 조합하여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후자의 경우를 조사진(組寫眞) 또는 그래프 사진이라 부른다. 본래는 1920년 후반 독일의 노동자사진가연맹의 기관지 《노동자 사진가》를 통하여 제창된 '르포르타주 포토(reportage photo)'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나, 미국에서는 이를 대신하여 다큐멘터리 포토, 또는 픽처 스토리, 포토 에세이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며, 주로 《라이프》지(誌)를 중심으로 활약한 매그넘(Magnum) 집단에 속하는 사진가들에 의한 포토 에세이가 그 주류를 이룬다.보도사진은 사진의 발명 직후부터 신문사진으로서 등장하여, 1930년대 이후 그래프 저널리즘의 융성을 배경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높여 왔으나, 1960년 후반 이후 텔레비전 등의 발달로 그 성격과 의의가 새로운 측면에서 검토되고 있다.2) 보도사진의 장르첫 번째로는 스파트 뉴스 사진이 있다. 뛰어난 이것을 얻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르게 현장에 도착하는 것이다. 즉 스파트 뉴스사진은 시의성을 생명으로 하는 사진이다. 이러한 종류에 속하는 소재로는 인질극이나 범죄, 화제, 사고 등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로는 일반 뉴스 사진이 있는데, 사진 가운데는 다소 진부하고 지루하지만 꼭 싣는 주제들이 많다. 정치인의 동정이나 선거유세, 시상식, 회의 같은 것은 신문에서 기사와.
1. 작품세계1) 시적 순수성의 옹호김춘수 시인은 춤의 언어와 보행의 언어 사이에서 단연 춤의 언어에 몰두한 시인이다. 시는 언어의 기호들이 만들어 내는 환상의 세계일 뿐 어떤 목적에 도달하려는 의도적인 실체가 아니라는 인식이다. 시인은 이를 '꽃'에 비유하여 얘기한 바 있다. 우리가 시에서 꽃을 말할 때 그것은 잎과 줄기와 꽃잎과 뿌리를 가진 하나의 생물학적 식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꽃이라는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세계, 즉 하나의 이데아를 지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그에 의하면 언어는 사물을 지칭한다기 보다 오히려 그 상투성과 낡음 때문에 사물을 왜곡하거나 사물의 본질을 사라지게 하는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언어만으로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시는 언어 밖의 세계를 지칭하는 공리적인 언어들의 조직이 아니라 '말의 긴장된 장난'이자 정신적 유희의 산물이라는 의지이다.시인은 '크래프트', '트릭', '메이크업' 등 기존의 한국시론에서는 다소 낯선 표현들을 즐겨쓰며 이 같은 자신의 시외 시론을 구축해 왔다. 그의 시적 태도는 미학적 예술의 첨병인 반면 문학과 삶은 동궤라는 입장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다.그는 현실과 실천의 맥락을 담지 않는 시, 일견 진공 속에 존재하는 것 같은 절대언어, 시의 순수성을 옹호했다. 그래서 '시는 언어의 예술, 그 이상의 무엇도 담을 수 없다'는 확고한 인식을 지닌 김춘수의 시는 의미에서는 해방되었을지라도 무의미에 유폐되었고, 미학적 예술론을 표명하면서도 동시에 극단적으로 치달은 실험에 갇힌 격이 되었다.그는 언어유희를 견인한 시인이지만 기교와 실험에 빠진 수인이기도 한, 양가적 위상에 놓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2) 의미와 무의미를 선회하는 시 세계열다섯 권에 이르는 시집에는 머무르지 않는 정신 편력과 거듭되는 회의 정신이 잘 드러난다. 시의 궤적은 의미에서 무의미로 그리고 다시 의미로 선회하는 노정이라고 약술할 수 있다.'왜 지금 나는 여기서 이러고 있는가', 시인의 글에서 자주 발견되는 이 독백은 자의식의 환기이자 시적다. 시인은 시적 혜안을 열어 준 존재로 릴케를 꼽는데 이 운명적인 계기가 종국에 그의 시적 방향을 계시하는 것이기도 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즉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시라는 것을 릴케 시의 '햇살, 꽃눈보라, 기도, 날개, 꽃피어 있는 영혼' 등의 표현들로 각인하고 이런 언어에 매혹되어 시 쓰기로 들어선다.그의 초기 시는 이런 인식의 세례 아래 쓰여진 다소 감수성 짙은 시들이 주조를 이룬다. 이후 시인인 '비로소 나만의 시를 쓰게 되었다'고 기억하는 꽃에 관한 일련의 시들은 이른바 대표작이다. 김춘수만큼 '꽃'이라는 대상에 관념의 무게를 얹은 시인이 드물 정도로 의미가 과부하된 시들이다.꽃이라는 존재가 인격화되고 극대화된 이 시들은 인식론적 깊이, 존재론적 탐구, 이데아의 세계관으로 해석되는 관념과 비의의 시 세계이다.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꽃을 위한 서시」중에서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내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꽃」중에서꽃은 제 존재만으로 충만하고 아름다우며, 실존하는 모든 가치 있는 존재들을 상징한다. 그러면서도 꽃은 소용되는 쓰임새는 없는 무용지용한 존재라는 점에서 시 혹은 예술과 닮았다. 이 시들에서 시인은 꽃이 지녀온 관습적인 언어의 질감을 지우고 관념화된 꽃을 통해 존재의 현현과 실존의 체득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다. 이후 시인은 시의 가장 기본적인 질료인 언어의 문제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데, 현재의 언어로는 사물의 절대성과 본질적 의미에 가 닿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다다른다.언어의 낡아버린 옷과 상투성으로는 대상의 본질 혹은 순수에 절대적으로 도달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시인은 새로운 '기교'로 나아가는데 이것이 묘사주의 이다. 시인은 대상을 의미에 종속시키거나 도구화하지 않으며 시인의 주관적인 의미를 거두어 나가는 방식으로 사물을 극대화하는 묘사주의를 지향한다.언어를 도구삼아 시인의 감정이나 관념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주관적인 의미나 습관화된 판단을 중수 시의 순수성이다.눈 속에서 초겨울의붉은 열매가 익고 있다.서울 근교에서는 보지못한꽁지가 하얀 작은 새가그것을 쪼아먹고 있다.월동하는 인동 잎의 빛깔이이루지 못한 인간의 꿈보다도더욱 슬프다.-「인동잎」전문김춘수의 많은 시들은 그 일상적 맥락이 쉽게 와 닿지 않는다. 불연속적 이미지의 병치, 절제된 표현과 정제된 언어로 이룬 언어의 금욕주의, 너무 많은 공정을 거쳐 깎아지른 듯한 언어, 심상이나 비유에서 환기되는 비일상적인 정경들이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언어로부터 의미를 거두어 내고 그리하여 삶과 일상, 현실과 역사를 거세해 내려는 시인의 의지가 단계적으로 전개되어 가는 시기라 할 수 있다.타령조 연작과 이중섭 연작은 그의 시가 극단적인 무의미 시로 막 진입하려는 지점에 씌어진 시들이다. 이 시들에는 육체성이 두르러지는데 그간 시인이 벗어버리지 못한 순결 콤플렉스가 다소 극복되는 양상이 엿보인다. 감상과 이데올로기적 관념을 거세해 온 그의 무의미 시는 조금 더 실험적인 단계로 들어선다.돌려다오불이 앗아간 것, 하늘이 앗아간 것, 개미와 말똥이 앗아간 것,여자가 앗아가고 남자가 앗아간 것,앗아간 것을 돌려다오.불을 돌려다오. 하늘을 돌려다오.개미와 말똥을 돌려다오.여자를 돌려주고 남자를 돌려다오쟁반 위에 별을 돌려다오.돌려다오.-「처용단장 2-1」중에서언어의 의미란 본디 끝없이 차연되고 미끄러지는 것이기에 기표가 실로 더 우세하며, 의미는 없으되 음악이나 주문 같은 원초적인 생명력을 지닌 언어만이 완벽하게 순수한 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의미의 계기성 없는 소리의 반복과 리듬의 환기, 또 심리적 박동의 고조만으로 구체적인 현존을 느끼게 하며, 쓸모와 도구성을 내던져 버린 언어의 몸짓으로 현기증 나는 긴장 상태와 열락을 이루는 것, 이것이 무의미의 절정이라 확신한다.시인은 이 시들을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 악보 같은 시, 추상화 같은 시로 완성했다. 그러나 이 단계는 트릭의 정점인 동시에 한계와 맞닥뜨린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몰아 간 무의미 시에서 숨줄글로띄어쓰기와구두점을무시하고동사를명사보다앞에놓고잭슨플록을앞질러포스트모더니즘으로존케이시를앞질러소리내지않는악기처럼미국의한병사가갖다준내쓸개한쪽서럽고도서럽던-「처용단장 3-28」중에서ㅜㅉ ㅣ ㅅ ㅏ ㄹ ㄲ ㅗ ㅂ ㅏ ㅂ ㅗ ㅑㅣ 바보야,역사가 ㅕ ㄱ ㅅ ㅏ ㄱ ㅏ 하면서ㅣ ㅂ ㅏ ㅂ ㅗ ㅑ- 「처용단장 3-39」중에서통사적 질서를 와해해 정연한 문장으로는 드러낼 수 없는 시인의 심리적 억압과 고통의 자취를 드러낸 시들이다. 의미의 세계보다 소리의 세계를 더 믿는 시인의 태도는 여전하지만, 시를 통해 의미의 본질을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하는 만큼, 언어를 통해 무의미를 실현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 또한 불가능한 것임을 자인하게 된다.'무의미 시를 30년이나 고집해 왔지만 결국 이처럼 허사였다'는 시인의 고백에 이르러 마침내 의의와 한계에 동시에 다다른 격이 되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몰아세운 의미의 거세에서 놓여나 시인은 자기 시를 패러디하거나 의미의 음영을 드리우는 방식으로 시세계를 선회해 나간다.시인이 무의미 시를 회의하게 된 것은 탈수된 언어와 소리의 소용돌이가 공소하게 느껴진 탓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관념은 시인이 언어를 버리지 않는 이상 사실 완벽하게 도피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미 또한 부정하고 배제한다고 해서 비워 낼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며, 관념이나 의미의 부재는 이미 또 다른 관념이나 의미를 배태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2) 무의미에서 의미로무의미 시는 부단히 실험적인 시도 끝에 이루어 낸 절대 언어의 세계였지만 어느 사이 의미를 끝내 버리지 못한 앙상한 골격의 언어들로 남게 되었다. 시인은 자기모순을 거치고 또다시 언어에 길항하면서 무의미의 세계로부터 의미의 세계로 선회한다. 긴장된 끈을 놓고 의미 혹은 관념을 노출하게 되는데, 의미의 질곡을 다스리는 것만큼이나 의미를 놓아 버린 언어의 자유를 다스리는 일 또한 지난한 것을 아는 그는 설명적 해석이나 감상을 드러내는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인간과 역사, 인간과 세계의 갈등도 있다.성서에 적힌 그대로무리를 이끌고 나는 바다로몸 던질 수 있다.말하자면 나는죽음을 이길 수 잇따그러나그 다음이 문제다 내 눈에는그 다음이 보이지 않는데,썰렁하구나나에게는 스승이 없다1872년 3월 1일-「사족」전문어떤 늙은이가 내 뒤를 바짝 달라붙는다. 돌아보니 내 조막만한 다 으그러진 내 그림자다. 늦여름 지는 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 산보길」전문시인은 여전히 역사에서 악의 의지를 먼저 읽고 개인과 역사 간의 갈등에 고민한다. 그러나 한결 느려진 박동수로 완급을 조절해 가며 산문의 어법으로 삶의 풍경과 심리적 갈등을 묘사한다. 시인이 도스토예프스키에 '들려' 있는 이유는 그의 주인공들이 인간의 죄의식과 갈등을 가장 절실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 인물들에게 자신의 삶의 역정을 투사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굴욕적인 체험이 상기될 때마다 자존을 버리지 못해 평생을 괴로워했던 시인은 이제 '밥 달라고 꿀꿀거리는 돼지가 되어 간들간들 꼬리를 칠 수도 있겠다고 말하며 안쓰러운 내 그림자를 '혼신의 힘을 다해' 받쳐 주는 '늦여름 지는 해'를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얻는다.나의 시를 고급장식품이라고 누가 말했다고 한다. 잘한 말이다. 오스카와이드는 장식품을 고 말했는데 그렇다. 의롱에 앉은 백동나비는 술어가 없다. 하늘에 뜬 해와 달이 그렇듯 나의 시는섭씨 39도에도 나의 시는 옷깃을 여민다.-「바꿈노래- 나의 시」전문3할은 알아듣게아니 7할은 알아듣게 그렇게말을 해가다가 어딘가얼른 눈치 채지 못하게살짝 묶어두게살짝이란 말 알지펠레가 하는 몸짓 있잖아뒤꼭지에도 눈이 있는 듯귀뚜라미 수염같은그리고절대로 잊지말 것넌 지금 거울 앞에 있다는인식거울이 널 보고 있다는 그인식-「시인」중에서이는 무의미에서 의미로 선회한 김춘수의 인식을 잘 드러내는 메타적 성격의 최근 시들이다. 그의 시를 두고 '고급장식품'이라고 말했다는 것은 어쩌면 비난 섞인 평가였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인은 '어떤 의미에 의해서도 손상되지 않는다'는 가치 때
Ⅰ. 서론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잔혹한 수탈 속에서도 인간의 기본권으로서 자유와 생존권을 외치던 조명희. 그는 의 주요활동가로서 1920년대 조선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발생과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진보적인 작가이며 동시에 재소련한국인문학에 초석을 놓은 개척자에 해당한다. 조명희가 이러한 창작을 하게 된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많은 내적 투쟁과 모색이 동반되면서 탄생된 것이다. 또한 그의 작품과 생애는 일치를 이룬 채 이념과 의식의 변천과정을 반영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1920년대 식민지 시대의 한 사상사적 변모의 증언이기도 하다.카프 초기에 활동한 작가이면서 소련으로 망명을 하였고, 스스로 떠났던 소련의 감옥에서 총살을 당한 조명희의 기이한 삶은 우리의 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조명희는 자연발생적 경향문학에서 목적의식이 뚜렷한 프로문학으로 방향전환을 하는 데 큰 공을 남긴 작가이며 그의 문학사적 위상은 소설 뿐 아니라 시, 희곡 등에서도 의미를 남겼다.지금부터 이처럼 문학사적으로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는 조명희에 대하여 더욱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Ⅱ. 조명희에 대한 고찰1. 작가 조명희(趙明熙.1894.8.10∼1942.5.11)소설가ㆍ극작가이다. 호는 포석(抱石)이며, 충북 진천(鎭川) 출생이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요(東洋)대학 동양철학과에서 수학했다. 1923년 [동명]에 , [개벽]에 등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데뷔하게 되었다.문학활동은 (1921) (1923) 등 현실과 인간성의 문제를 다룬 희곡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이어 등 서정시를 쓰다가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에 가담, 1927년 대표작 을 발표하였다. 1928년 소련을 동경하여 망명, 니콜스크에 살면서 대작 을 썼다. 1937년 소련 헌병에게 끌려가 1942년 하바로프스크 감옥에서 총살된 것으로 전한다.조명희는 충북 진천에서 가난한 양반의 아들로 태어났다. 3ㆍ1운동에 참가했다가 투옥당하기도 하고, 일본에 유학을 하기도 했다. 1925년 카프(KAPF)에가한 그는 이기영, 한설야와 함께 사회주의를 공부하기도 하고, 바로 그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1928년 소련에 망명하기 전까지 그는 짧은 3년 동안 사실주의와 낭만주의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소설 기법을 활용하여 프로문학의 제2기를 이루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그는 망명 이후 조선인 교포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고, 때마침 소련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문학운동에 참가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그 당시에 이란 장편소설을 썼다고 하나 전하지 않고 있다. 그는 1942년 망명지인 소련에서 죽었다. 그가 죽은 원인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스탈린의 탄압 정책으로 감옥에 갇혀 지내다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의 생애와 작품 활동에 대해 평론가 임헌영은 이렇게 말한다.“조명희의 일생은 편의상 동경 유학 시절과 후의 서울 시대, 그리고 망명 시대로 나눠 보면,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즉, 동경 유학 시대는 시와 희곡이 전부였고, 서울 시대는 주로 소설이, 망명 시대는 모든 분야의 글들이 있긴 하지만 서울 시대의 작품에서 더 진전된 것이 없다고 볼 수 있다.”이처럼 그는 식민지에서 태어나 민족의 해방과 가난한 농민들의 참된 삶을 추구하는 소설을 썼으나 그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쫓기듯 떠나야 했다. 거기서도 그는 또 좌절을 겪고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한마디로 비운의 작가라 하겠다.그는 프로문학에 뛰어들어 농촌 현실과 식민지 모순을 경향성 짙게 묘사해 나간 작가이다. 예술성보다는 이념성과 주제적 측면에 치중한 문학 세계를 보여주었다.조명희의 시집으로는 (1924.춘추각)이 있고, 소설로는 (1925.개벽), (1926), (1927), (1927), (1927) (1928) (1928)등이 있다. 소설집으로는 가 있으며, 희곡(1921) (1923)를 발표했다.2. 상실의 체험으로 인한 유년시절의 상처조명희는 1894년 8월 10일 충청북도 진천읍 벽암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농촌에 은둔한 청렴한 학자였는데 조는 아버지가 칠순이라는 나이에 얻은 늦둥이였고, 그의 아버지는 4살 때 돌아가신다.아버지는 한 가정의 기둥이며 자식에게 정신적인 지주의 역할을 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아들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성 역할의 대상이며, 아버지의 행동을 모방하면서 자아를 확립해 나간다. 하지만 조명희에게는 그러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부재하게 되는데, 이러한 이상적인 모델의 상실은 그에게 방황의식으로 나타난다.그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하여 배다른 형제인 맏형 조공희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조공희는 한학자로서 한시에 조예가 깊었으며 일제 강점기 시절 수십 년 간 지리산 중에서 칩거하면서 조국의 망국적인 운명을 개탄했는데, 형의 이러한 우국적인 항일정신은 나이 어린 조명희에게 자극을 주어 어려서부터 일제에 대한 증오심을 품게 되었다고 보여 진다.또한 아버지의 부재에 이어 정신적 지주인 형마저 자신을 떠나버렸으며 무의식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던 ‘조국’마저 상실하게 되는 체험을 겪음으로써 조명희는 너무나도 크고 다양한 종류의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그의 초기 시편들을 보면 이러한 모습이 드러나 있는데, 이는 바로 부친의 사망과 맏형의 가출이라는 사건에서 받은 상처의 여파가 아닌가 생각된다. 「누구를 찾아」라는 시를 보면 그에게는 애틋하게 찾을 대상도 없고 반갑게 맞아줄 고향도 없었다. 또한 「혈면오음」에서는 사람도 대지도 그를 안온하게 감싸주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다. 그를 안착시킬 상대는 어디에도 없는 부재의 상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그는 이러한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청년시절, 우발적으로 중앙고보를 중퇴하고 북경사관학교로 가려고 했다.조명희는 아버지와 형님의 영향으로 인하여 애국적인 공적을 세운 영웅에 대한 전기소설을 탐독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 민족이 일제에게 짓밟혀 수난 당하는 것이 너무나도 화가 나고 울분이 나서 다니던 중학교를 도중에 그만두고 '영웅'이 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영웅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현실과 부딪치게 되자 조명희자기의 목표를 문학으로 전환하게 된다.3. 헤어날 수 없는 가난의 문학적 접근1919년 포석은 동경으로 건너가게 된다. 조명희는 부유한 가문을 배경으로 태어났다. 또한 든든한 가문과 더불어 경제적으로도 굉장히 부유한 편이었다. 그러나 조명희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하여 그의 가문은 망하게 된다. 동경에 가고 싶으나 여비가 없어 학비를 벌기 위하여 뽕나무 장사도 하고 금광을 찾아 다니기도 했다는 그의 회고로 보아 조명희는 유년기 이후로 궁핍한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생활기록의 단편-문예에 뜻을 두던 때부터-」란 글에서는 동경에서 너무나 가난하여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노동인가? 문학인가?" 를 고민할 정도였다. 그에게는 정말로 지긋지긋할 정도의 가난과 빈곤이 늘 따라다녔던 것이다.이 시기의 빈곤했던 삶은 그의 단편소설에 드러나 있으며 그의 초기 시에서 보여주는 개인적인 궁핍함과 사상적 혼란의 모습은, 조명희라는 인물이 살던 시대가 한 인물의 삶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고 파괴하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가난에서 헤어날 수 없었던 고통은 그로 하여금 현신을 혐오하고 허무의식으로 치닫게 만들었다.5년여 동안 동경생활을 한 후 귀국한 후 그를 맞이한 것은 자신이 성공하여 돌아온 줄 아는 가족들이었으며, 그 책임을 조명희가 고스란히 맡게 된다. 그는 1924년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왔으나 가난에 힘들어하는 삶을 벗어나지는 못한 채 늘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귀국 후 고향생활에 대해서는 「땅속으로」에서 잘 모사해주고 있다. 또한 아내를 매춘으로 내몰 만큼 빈궁한 처지를 보여주는 「마음을 갈아먹는 사람」은 당시 포석 조명희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만큼 그의 삶은 비참하고 가난하였다.소련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는 경제적 빈곤을 그는 소설에서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식인 계층의 빈곤한 삶을 통해 사회체제의 모순과 가혹한 식민지배정책의 불합리함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에 바탕을 둔 경험이 강하게 표출되는 부분이다.그의 후설은 개인적인 체험을 넘어서 농촌과 도시빈민에의 관심이 나타난다. 민중들을 논의의 중심으로 등장시켜서 식민지 지배의 가혹함에서 우리 민족이 겪어야 하는 극도의 불행함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소설 「洛東江」, 「농촌 사람들」에서 보여주는 민중의 조직적인 저항과 일제의 식민지배에 대한 민족의 저항과 선동을 장려하는 것을 보면 그의 문학적 세계관이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4. 망명으로 인해 되찾은 여유와 문학을 무기 삼은 투쟁조명희는 1928년 7월에 체포와 투옥으로 인한 신변의 위협으로 인하여 소련으로 망명하게 된다. 조명희는 소련에 망명을 간 뒤에 교편을 잡고 시, 수필, 동요, 희곡, 평론 등을 창작하였다. 그 후 1936년부터 하바롭스크市에서 소련 작가 동맹 원동지부 지도부에서 사업하였으며, 노력자의 조국 책임 편집위원을 맡는다.그는 연해주로 건너가서 일제의 억압으로 인해 조국에서 자유롭게 하지 못했던 창작사업을 계속 하였으며, 조선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문학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투쟁하였다.조명희가 연해주로 망명하기 전까지 생활고로 인하여 힘들게 살았던 것과는 달리, 소련에서의 삶에는 배가 고파서 허기진 배를 움켜잡을 필요도 없었으며, 일제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지 않았기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평온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의 작품경향이 다시 ‘시’라는 장르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조명희는 망명 후 소련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사상을 남김없이 발표할 수 있게 된다. 소련으로 망명을 간 후 사망을 할 때까지 그는 2편의 장편소설과 7편의 산문시, 기타 수필, 평론 등을 썼으며 그중 처음 발표된 것은 1928년 가을에 나온 산문시인「짓밟힌 고려」이다. '짓밟힌 고려'는 그의 문학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한글 문학권을 소련으로까지 확대시켰다는 점으로 보나, 망명 저항 문학의 성격을 띤 최초의 근대 시인이었다는 점으로 보나, 일제의 식민지 체제에 대한 가장 비판적이고 구체적인 한글 문학작품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다.
1. 작가황순원은 1915년 3월 26일 평안남도 대동(代同)에서 태어났다. 1929년 평양 숭덕소학교(崇德小學校)를 나와 같은 해 정주(定洲) 오산중학교(五山中學校)에 입학, 다시 평양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로 전학했다.1930년부터 동요와 시를 신문에 발표하기 시작, 이듬해 시 《나의 꿈》을 《동광》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1933년 시 《1933년 수레바퀴》 등 다수의 작품을 내놓고, 이듬해 숭실중학을 졸업한 뒤 일본 도쿄[東京] 와세다 제2고등학원[早稻田第二高等學院]에 입학했다. 이 무렵 도쿄에서 이해랑·김동원 등과 함께 극예술연구단체인 '학생예술좌(學生藝術座)'를 창립, 초기의 소박한 서정시들을 모아 첫 시집 《방가(放歌)》(학생예술좌)를 출간했다.1935년 동인지 《삼사문학(三四文學)》의 동인으로 시와 소설을 발표, 다음해 와세다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하고 모더니즘의 영향이 짙은 제2시집 《골동품(骨董品)》(학생예술좌)을 발간했다. 이해 동인지 《창작》을 발행하고 시와 소설을 발표했으며, 1939년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다.1937년부터 소설 창작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단층(斷層)》의 동인으로 주로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발표하다가, 첫 단편집 《늪》(1940)의 발간을 계기로 소설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이후 《별》(1941), 《그늘》(1942) 등의 환상적이며 심리적인 경향이 짙은 단편을 발표했다.1957년 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1980년부터 '문학과 지성사'에서 《황순원전집》이 간행되었다. 아시아자유문학상, 예술원상, 3·1문학상, 대한민국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1942년 이후 일제의 한글말살정책으로 평양에서 향리 빙장리로 지냈다. 《기러기》 《병든 나비》 《애》 《황노인》 《머리》 《세레나드》 《노새》 《맹산할머니》 《독 짓는 늙은이》 등의 단편과 시 《그날》 등 많은 작품을 써두고 8·15광복을 맞았다.1946년 서울중학교 교사를 역임, 이 무렵 《술》(1947), 《목넘이 마을의 개》(1948), 장편 《별과 같이 살다》(1947) 등을 충실하게 살려놓으면서 일제강점기로부터 이른바 근대화가 제창되는 시기에까지 이르는 긴 기간 동안의 우리 정신사에 대한 적절한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황순원의 작품에는 이밖에도 《돼지계》(1938), 《암골》(1942), 《모자》(1950), 《간도삽화》(1953), 《윤삼이》(1954), 《필묵장수》(1955), 《소나기》(1959), 《마지막 잔》(1974), 《나의 죽부인전》(1985), 《땅울림》(1985) 등이 있다.2. 사실 구조1) 인물먼저 주인공 박 훈에 대해서 살펴보면, 지주의 아들로 지주가 된 전형적인 지식인이다. 결벽한 양심주의자이고 관조적인 사랑의 소유자이나 삼촌의 죽음을 계기로 행동형의 인간인 카인으로 변모하여 도섭영감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그에게 칼을 들고 덤벼드는 동적 인물이다. 도섭 영감은 원래 부유한 집 아들이었으나 가산을 탕진하고 떠돌아다니다가 훈의 집에서 열심히 일을 하여 마름이 된다. 해방 후 토지개혁에 앞장서서 지주인 훈을 배신하고 자신의 이득을 추구해나간 동적인물이며 냉혈한 기회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오작녀는 어린 시절부터 훈과 좋아하는 관계였으나 신분적인 차이로 최가에게 결혼했다가 남편의 구박을 견디지 못하고 친정으로 돌아온 여인이다. 아버지의 권유로 훈이 돌아온 뒤에 그의 수발을 헌신적으로 들어준다. 나중에 훈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와 함께 양짓골을 떠나는 정적 인물이다. 사랑하는 박 훈에게는 온순하고 헌신적이면서, 박 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모든 위험에 용감하게 맞서는 당찬 여인이다.그 외의 인물들 중 오작녀의 남편은 건달이면서도 나름대로 멋과 의리를 지닌 사내다. 박훈의 삼촌 용제 어른은 토지를 몰수당하고 끌려가 광산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주도해 건설하다가 끝을 맺지 못한 상태로 있는 저수지를 못 잊어서였다. 어떤 사업을 일으키면 거기 속속들이 빠져들고야 마는 뛰어난 장인(匠人) 같은 인물이다. 용제 어른의 아들이며, 박 훈의 사촌 동생인 혁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행동어려웠다. 그런데, 단행본에서는 야학이 공작 대원에게 접수되는 과정을 먼저 서술함으로써 현실과 비현실이 명확하게 구별되기에 이른다.꿈속에서 오작녀는 박 훈의 성적 욕망의 대상인 것처럼 보인다. 비록 육체적 관계를 맺고 있지 않더라도 박 훈은 삼 년 여에 걸친 오작녀와의 동거 생활에서 적지 안ㄹ은 위안을 얻고 있었던 까닭에 이러한 욕망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뿐만 아니라 박 훈은 오작녀의 ‘타는 듯한 눈’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정념으로 가득찬 오작녀의 눈빛은 박 훈의 정신과 육체를 사로잡는다. 박 훈이 스물아홉 해 동안이나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온 결정적인 이유도 바로 오작녀의 눈빛 때문이었다. 그런데, 박 훈은 이러한 자신의 욕망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의 상반된 감정을 분석함으로써 박 훈의 내밀한 의식 세계에 접근해볼 수 있다. 박 훈이 오작녀에 대한 욕망을 억압해야 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 제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작녀는 비록 남편으로부터 소박을 맞은 상태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결혼한 여성이다. 따라서 당대의 도덕적 규범으로 볼 때, 남편이 있는 오작녀와의 결합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박 훈과 오작녀 사이에는 신분적 차이가 게재되어 있어서, 큰아기바윗골 전설과 마찬가지로 현실화되기 어렵다. 박 훈이 만약 신분적 차이와 윤리적 제약을 무시한다면 사회적인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박 훈을 지탱하는 도덕적 우월감, 곧 ‘교사’로서의 지위는 위협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녀에 대한 욕망을 억압하고 은폐할 수밖에 없다. 그가 오작녀의 남편을 만나 끊임없이 자신과 그녀가 관계없음을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사회적 제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그러나 박 훈이 오작녀에 대한 욕망을 억압해야 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이러한 사회적 제약이나 신분적 차이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인 계기에서 찾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오작녀는 박 훈에게 있어서 어머니와 훈의 내면은 오작녀와 도섭 영감 간의 삼각 구조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오작녀는 박 훈에게 있어서 억압된 성적 욕망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공포스러운 현실을 앞둔 채 머뭇거리는 심리적 퇴행의 은신처로서의 모성적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도섭 영감은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현실적인 힘을 획득한 부성적 존재인 셈이다. 그런데, 예전과 마찬가지로 헌신적인 보호자의 자세를 보여주는 오작녀와는 달리 도섭 영감은 새롭게 변화한 현실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면서 박 훈을 압박해 들어온다. 결국 그는 도섭 영감에 대한 배신감에서 복수를 꿈꾼다. 하지만, 그녀와의 결합을 향한 욕망이 모순된 감정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그의 오이티푸스적 반란은 끝까지 유보된다. 오작녀를 봄으로 해서 자기의 마음이 헝클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겁났던 것이다. 그녀의 남편의 죽음과 함께 도덕적 구속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녀와 함께 월남하겠다는 결심을 굳히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도섭 영감에 대한 복수를 시도함으로써 그는 퇴행적인 모성적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된다. 박 훈은 오이디푸스적 반란을 통해서 성숙한 개인으로서, 온전한 주체로서 당당히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2) 배경『카인의 후예』는 비로 토지 개혁령이 발표된 직후의 평양 근교의 한 농촌을 배경으로 한다. 토지 개혁령이 발표되면서 평화롭던 양짓골은 순식간에 긴장 속으로 빠져든다. 당에서 파견된 공작대원에의해 야학이 접수되고, 농민위원장이었던 남이 아버지가 피살되며, 박 훈은 보안서로 불려가 개털오바 청년에게 의심을 받는다. 「카인의 후예」는 이처럼 토지개혁을 둘러싼 갈등이 점차 현실화되는 긴장된 분위기에서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좇아 몇 개의 집단으로 나뉘게 된다. 자신이 소유한 땅을 지키기 위한 윤 주사, 김 의사, 용제 영감 같은 지주의 노력, 도섭 영감과 같이 세계질서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하여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중간 계층의 활동, 그리고 토지개혁을설적 구체성을 만들어 내고 있다.『카인의 후예』에서는 이런 구체적 상황을 바탕으로 역사현실이 인간을 어떻게 타락시키는가, 그리고 이전과 같은 순수성을 회복할 수는 없는가 하는 점을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결국 ‘인간성의 타락과 이의 구원’이라는 보편적이고 휴머니즘적인 주제가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이 작품은 실제 역사적 현실을 소설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황순원의 이전 소설과 구별된다. 이전 소설이 ‘근원적인 인간애와 생명존중사상’을 바탕에 두고 토속적이고순수성이 살아있는 공간을 그렸다면, 『카인의 후예』는 냉엄한 역사적 현실과 구체적 상황에 그 바탕을 둔다. 작품의 이러한 성격은 이전에 그가 지닌 서정성의 세계로부터 냉엄한 서사의 세계로 눈을 돌린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카인의 후예』가 북한의 토지개혁이라는 구체적 역사를 소설적 상황으로 취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제적, 배경적 의미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것은 이 작품에 있어 역사와 현실이 어디까지나 순수성을 파괴시키는 외형적인 힘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지 그 자체의 본질과 실체를 밝히는 데 있지 않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서사성을 추구하면서도, 시적 서정성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것이다.이 작품에 나타나는 역사성은 이러한 성격을 잘 규명해준다. 역사적 현실은 인물의 행동과 행위로부터 구현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순수한 삶의 세계에 어쩔 수없이 다가온 것이며, 인간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과정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의 토지개혁은 단지 변화하는 역사 속에 인간의 변모 양상, 인간관계의 속성을 드러내는 배경적 역할만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런 바탕 하에 소설은 파괴된 순수성의 세계를 아쉬워하면서, 역사 자체가 인간을 어떻게 변모시키는가, 그리고 순수성의 세계로 복원할 가능성은 없는가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3) 주제『카인의 후예』는 소설의 주제를 강하게 암시하는 제목이다. 카인은 하느님이 창조한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의 두 아들 중 맏이이다다.
1. 작가김동리의 본명은 시종(始鍾)이고 경상북도 경주(慶州) 출생이다. 경주제일교회 부설학교를 거쳐 대구 계성중학에서 2년간 수학한 뒤, 1929년 서울 경신중학(儆新中學) 4년에 중퇴하여 문학수련에 전념하였다. 박목월(朴木月)·김달진(金達鎭)·서정주(徐廷柱) 등과 교유하였다.1934년 시 《백로(白鷺)》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함으로써 등단하였다. 이후 몇 편의 시를 발표하다가 소설로 전향하면서 19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화랑의 후예》,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화(山火)》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서의 위치를 다졌다.1947년 청년문학가협회장, 1951년 동협회부회장, 1954년 예술원 회원, 1955년 서라벌예술대학 교수, 1969년 문협(文協) 이사장, 1972년 중앙대학 예술대학장 등을 역임하였고, 1973년 중앙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1년 4월 예술원 회장에 선임되었다.순수문학과 신인간주의(新人間主義)의 문학사상으로 일관해 온 그는 8·15광복 직후 민족주의문학 진영에 가담하여 김동석(金東錫)·김병규와의 순수문학논쟁을 벌이는 등 좌익문단에 맞서 우익측의 민족문학론을 옹호한 대표적인 인물이다.이때에 발표한 평론으로, 《순수문학의 진의》(1946) 《순수문학과 제3세계관》(1947) 《민족문학론》(1948) 등을 들 수 있다. 작품 활동 초기에는, 한국 고유의 토속성과 외래사상과의 대립 등을 신비적이고 허무하면서도 몽환적인 세계를 통하여 인간성의 문제를 그렸고, 그 이후에는 그의 문학적 논리를 작품에 반영하여 작품세계의 깊이를 더하였다. 6·25전쟁 이후에는 인간과 이념과의 갈등을 조명하는 데 주안을 두기도 하였다.김동리의 민족문학론은 ‘동서양 정신의 창조적 지양’을 통해 세계문학의 보편성을 견지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1939년부터 ‘생의 구경 탐구’라는 주제로 기성문단과 대립하면서 ‘순수문학’을 주장하였고, 해방기의 좌우익 이데올로기 대립장에서는 문학의 자율성에 대한 옹호를 내세우며 ‘본격문학과 인간》(1948), 시집으로 《바위》(1936), 수필집으로 《자연과 인생》 등이 있다. 예술원상 및 3·1문화상 등을 받았다.2. 사실구조1) 플롯김동리의 소설이 가지는 공통점은 늘 플롯이 선명하다는 점이다. 플롯의 중요성이 소설 장르상의 특징을 유지하는 문학관의 표현이라고 볼 때 그의 소설은 소설의 구비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플롯이란 넓은 의미로는 성격 설정과 배경 들 소설의 모든 의도를 지정하는 것이나, 일반적으로 좁은 의미로 말하여지는 플롯의 개념은 '스토리를 이어가는 기술' 즉 사건의 전개와 행동 구조를 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플롯이란 주제를 전달하기 위란 행동의 배열이라고 할 수 있다.이 작품은 유대 날을 배경으로 하고 예수의 傅道期間 약 3년간이란 짧은 기간을 시간으로 하고 있어, 역사저인 변천을 보여주기가 매우 어렵다고 본다. 3년간이란 橫的時間에 사반을 등장시켜 사건을 전개하였고, 예수의 행적은 신약에 나오는 것을 그대로 받아 들였으니 결국 사반의 행적이 주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고 예수의 신앙적 무저항주의에 대하여 독립을 위한 사반에 투쟁의 연속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러한 대립족 행동이 바로 테마와 연결된다고 볼 때, 이러한 반복된 사건과 투쟁은 변화 있는 사건과 투쟁이었으므로 의미 있는 플롯으로 받아들여야하겠다.이 작품은 먼저 그 나라와 儀를 구하려는 靈的승화로 천사의 영광을 추구하여 인간 구제를 성취하려는 예수와 '땅 위에서 맺은 것은 땅위에서 맺게 하소서'하고 지상의 낙원을 실천하려는 사반의 병립의 양상, 오늘의 부조리의 벽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의 민족적 영광을 성취하려는 예수를 같은 축으로 하는 개혁적 집단과의 현실을 지속하려고 온갖 간교와 억압을 일삼는 사제장과 로마를 한 축으로 하는 통치적인 집단의 대립 양상으로 갈등 구조를 이룬다.예수와 사반의 병립적 갈등과, 예수 사반의 개혁적 집단 그리고 바리새교인, 사제장, 로마의 治者의 통치적 집단과의 갈등 양상은 서로 혼합과 상호 견인(牽引)작용을 하면서 플롯의 긴장과“그대는 스스로 자기를 살아 있다 생각하나 그대의 삶은 죽음보다 나을 것이 없도다.”라고 예수는 말한다. 마지막 십자가 처형 때 사반은 “비겁한 자여, 너는 유대 나라와 너의 생명을 버리고 어디다 낙원을 찾고 있느냐?”고 소리쳐보지만 예수는 묵묵부답이다. 그에게 모든 것은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이 두 인물과 다른 유의 인물이 점성술사 하닷이다. 그는 「무녀도」의 모화와 닮은 점을 가지고 있다. 별로 점을 친다든지, 운명을 예언한다든지 하는 일은 무당, 즉 김동리가 말한 ‘신과 같은 인간’의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가 있다. ‘신비하고 아름다운 눈과 샘물같이 맑고 싸늘한 목소리’를 가진 그의 딸 실바아도 신비스러운 존재다. 이런 점에서 하닷은 ‘모화보다 더 발전된 인간상’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모화와는 달리 하닷은 사건의 중심인물이 아니고 따라서 그 역할도 모화만큼 크지 않다.‘사반’은 로마에 대항하여 유대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비밀 결사 조직인 ‘혈맹단’의 단장이다. 그는 열여덟 살에 집을 나와 혼자서 무술을 배워 로마군과 싸운다. 그러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아라비아 점성술사인 ‘하닷’을 갈릴리 호수 근처의 한 굴에서 만나 자신의 운명에 대한 예언을 듣는다. 하닷에 따르면 사반은 ‘암별’인데 ‘수별’을 만나야만 비로소 활동을 할 수 있으며, 그 수별을 만나기 전까지 사반은 칠 년 동안 굴 속에서 준비를 해야하는데 낮에는 숨고 밤에만 이름과 얼굴을 숨기고 나다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사반은 비밀 결사 조직인 혈맹단을 조직하고 자기를 도울 수별을 기다리게 된다. 그는 수별을 ‘모세와 같은 권능을 지닌 메시아’라고 단정한다. 사반은 하닷의 아름다운 딸 실바아와 결혼하고, 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자와 정을 통하며 지낸다.유대 땅에 선지자 세례 요한이 나타나지만 조사해보니 그가 기다리던 메시아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는다. 사반은 그를 메시아라고 생각하여 혈맹단원인 도마와 유다를 예수의민족의 해방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세례 요한을 만난 이후로 인류의 구원이라는 더 높은 차원에 서게 된다는 내용 설정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예수는 사반의 단계를 이미 뛰어넘은 상태였던 것이다. 김동리의 예수의 가치관에 대한 공감은 그의 ‘순수문학’ 논리와 연결시켜볼 수 있다.그는 좌익 계열과의 논쟁에서 문학이 현실의 논리나 사회적인 가치, 정치적인 목적에 이용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런 만큼 현실에 집착하여 정치적 혁명을 꿈꾸는 사반의 시각은 부정될 수밖에 없다.김동리가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사반이다.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하늘에서 이루어질 그것은 무슨 의미를 가질 것인가? 그것이 사반과 함께 김동리가 예수에게 제기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또한 무엇인가? 땅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고통받고 있는 유대 민족을 외세로부터 구원해내는 일이다. 그러나 사반이 집착하고 있는 것은 그의 권력이지 유대 민족의 고통이 아니다. 이때 메시아란 사반을 도와 그를 왕위에 오르게 해야 할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반은 천지인(天地人)이 어울려야 왕이 될 수 있다는 동양 사상을 대표하는 인물이지 고통받고 억압받는 인간성을 해방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인물이 아니다. 김동리의 땅은 결국 왕도(王道)의 땅이지, 민주주의의 땅은 아니다. 그는 왕도를 휴머니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사반의 십자가』는 김동리 개작 장편소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개작 전체에서 인물이 성격이 변화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반의 부하로서 사반의 배를 노 저어 주는 인물로 처음 등장하는 야일이 그러한 경우이다. 초간본에서 그는 단순 무식한 성격이었으나 개작본에서는 이성적 논리를 갖춘 인물로 변한다. 그래서 초간본에서는 세례 요한의 일(유대 나라의 분봉왕 헤롯 안디바가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을 세례 요한이 비난하고 다닌 죄로 감금된 일)이 도마의 진술을 통해 소개되지만 개작본에서는 야일의 진술을 통해 소개된다. 혈맹단의 정체에 대해 상술하는 역할도 야일이무에 대한 강조는 심화된다. 초간본과 개작본 둘 다 유대 나라의 분봉왕 헤롯 안디바가 동생의 아내를 취한것을 세례 요한이 비난하고 다녔다는 것은 공통적이다. 개작본에서는 헤롯 안디바의 행동에 대한 윤리적 책무와 관련하여 그것이 ‘불의(不義)’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와 관련해서 변한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사반이 세례 요한을 함께 구출하자는 나바티야의 왕의 제안을 보류하기 위해 자기를 찾아온 밀사 아굴라를 두 번째로 만나러 가는 대목은 없던 것인데 개작본에서는 4페이지 분량으로 삽입되어 있고 협공 제안에 대한 망설임 또한 더 부각되어 있다. 초간본에서보다 예수가 메시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예수와 관련된 변화 가운데 두 번째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의 행적과 관련한 것이다. 사반에게 보고하는 유다의 말 중에서 예수가 성전에서의 장사행위를 불경스럽다고 하며 상인들을 내쫓는 일, 가르침을 받으러 온 니고데모에게 예수가 거듭임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대목,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청하며 생명수의 비유로 거듭남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대목 등을 죽은 자를 살려 낸 일, 옥중에 있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를 만나 메시아인지의 여부를 묻는 내용으로 교체하여 예수의 이적을 불가해한 것으로 기적화하고 있으며 예수가 메시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있다.‘제3장 사반과 예수’부터는 예수와 관련하여 세례 요한의 가르침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던 것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전체적으로 세례 요한을 만난 예수의 심리변화가 상술되어 있는데 신성(神性)보다 인성(人性)이 강조된 형국이다.‘제4장 실바아와 마리아’가 개작본에서 달라진 것은 나바티야 왕의 제안에 대한 사반의 입장이 결정되지 않았음이 상세화된 것, 실바아를 납치하는 아굴라의 입장이 상세화된 것이다. 그리고 초간본에서는 사반이 실바아를 구출하기 위해 나바티야성 안으로 들어간다고 하자 마리아가 반대하여 사반이 그녀의 뜻을 따르는데 개작본에서는 마리아가 만류하자 사반은 더 이상 마리아와 이야기를 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