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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운동
    예수운동의 탐구와 새로운기독교적 정체성의 모색사회과학부9993184정유진1.서론1.1 예수운동 크게 보기예수운동은 1세기 역사적 예수를 따르던 무리가 아니다. 예수운동은 신약학계에서 어떤 특정한 현상을 가리키는 하나의 기술적 전문용어(technical term)로 통한다. 1 지리적으로 팔레스틴에 있었고,2 시간적으로 역사적 예수(30년경) 이후 부터 대략 마가복음 출현(70년경) 까지의 약 40년 동안 존재했던 가장 초기의 예수 신앙인(공동체) 이다. 그리고 3 그들은 반드시 예수의 행적이나 가르침을 신앙과 신학의 준거로 삼았기에 예수전승을 남긴 사람들이다. 예수운동은 따라서 바울의 회중과 같이 그리스도 케리그마에 입각하여 밀의종교와 유사해져 가는 헬레니즘 세계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들과 대비시키는 개념이다. 예수에 대한 역사적 관심을 기각한 바울과 달리, 예수운동을 오직 예수 의 말씀이나 예수 에 관한 말씀만을 신학과 목회의 전부로 삼았고 또 예수전승을 담지했던 공동체인 것이다.역사적 예수로부터 마가복음에 이르는 잊혀진 사십 년의 탐구는 억압당한 예수전승의 복원을 위한 실험이며 상실된 원초적 예수기억의 떠올림이다. 예수운동과 관련하여 가장 최근의 신약학 논의는 특히 공관복음 분야에서 매우 괄목할 만한 실험과 발전을 이룩해 왔는데, 이러한 노력은 역사적 예수의 생생한 음성을 복원하고 또 팔레스틴에 있던 최초의 교회들(예수운동)이 그것을 어떤 메시지로 받아들였는가를 알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되었기에, 예수운동의 여러 갈래를 역사적으로 복원하는 데에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이러한 노력과 성과 배후에는 두 사람의 거인 신약학자가 서 있다. 제임스 로빈슨(James M. Robinson)과 헬뭇 쾨스터(Helmut Koester)인데, 이들은 이미 70년대 초 『초기 그리스도교의 트러젝터리』(Trajectories through Early Christianity,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1)를 공저하였다. 그들은 이 책에서 )에 관하여 의외로 다양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하나의 단적인 예로, 그들의 이름을 열거한 목록은 마가복음 3장 16-18절, 마태복음 10장 2-4절, 누가복음 6장 14-16절, 사도행전 1장 13절에 나타나지만, 그 명단을 결코 통일되어 있지 않다.성서의 어떤 기자들은 그들을 열두 제자 라 부르고 또 어떤 저자는 열두 사도 라 부르지만, 다른 기자들은 다른 관행을 보이기도 한다.결론을 간단히 말하자면, 그 열둘 이 하나의 독특한 제도적 집단으로서 역사적 예수에게서 시작하여 초창기 예루살렘교회에까지 도달하여 권위를 확립했고, 또 거기에는 종말론적 의미 함축이 반영되어 있다. Q는 제자들 에 관하여는 침묵하나 그 열둘 에 대하여는 매우 초기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바울은 초대 교회가 그 열둘 의 부활 체험 위에 근거하고 있음을 전제한다. 마가에서는 그 열둘 과 제자 라는 용어가 결합되는 일이 결코 없으며,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그 열둘 이 포함될 수는 있지만 후자만이 예수에 의해 특별하게 선택받고 비밀스런 가르침을 얻으며 공식적인 위임을 받고 또 보냄받는다. 반면에 누가는 그 열둘 을 제자들로부터 구분하며 오히려 그들을 사도 라 부른다. 즉 사도는 예수에 의한 특별한 선택 그리고 그의 삶과 사역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 등을 필수로 한다. 그러나 마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열두 사도 와 열두 제자 개념을 동일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예수의 제자를 열두 명으로 한정한다.2.3 갈라디아 논쟁을 통해 예루살렘교회 살펴보기60년대에 초기 수난사화를 산출하기까지 예루살렘교회는 예수전승을 남기지 않은 듯하다. 그 열둘 의 관련 이외에도 특히 40년대와 50년대의 예루살렘교회 역사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실마리는 존재하는가? 그들은 어떻게 예수를 신앙하였으며, 그들의 특정한 신앙 유형은 그들의 문화적 종교적 배경 및 지리적 위치 들과 관련되었을까?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가장 유용한 단서는 바울의 갈라디아 논쟁이다. 바울에 의해 50년대 초반에 기록된 갈라디아서는, 30년대 중. 관록의 그 열둘 은 기각되고, 도리어 열등한 여인들과 자격 없는 자들 그리고 예수의 가족들이 정통한 계승자로 남는다. 이들은 그 훌륭한 자들을 비웃고 있다. 산 허리에 선 우매한 소가 동네의 양반들을 욕하기라도 하듯, 생래적으로, 초기 수난사화의 예수운동은 그토록 믿음 좋은 바울류의 신학보다는 그에게 늘 일방적으로 비난과 정죄만 받든 예루살렘교회의 그 믿음 없는 자들에게서 왔다. 이 초기 예수운동에는 그러므로 언제나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는 우리 그리스도교 지성의 교만과 독선을 지적하며 비웃는 해학과 해석학이 존재하는 것이다.또한 분석적/신학적으로, 초기 수난사화는, 소위 케리그마와 무관한 죽음의 예수 신학이 만발한 채, 우리에게 그 엄숙하고 장엄한 자태를 드러낸다. 한 죄 없는 사람의 그 저항 없는 죽음이 그리고 이에 대한 성서신학적 사변이, 많은 이들의 생명을 기약한다. 그러나 이 예루살렘 예수운동의 해석학적 메시지가 예수 수난으로 하여금 그들의 생명을 마술적으로 구원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수난과 죽음에 직면한 예루살렘의 그 예수 신앙인들에게 그것을 정면으로 맞서도록 용기와 담력을 주고 있다. 그 예수운동은, 그런 죽음이야말로 그 수난의 주인공 예수의 길이었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쟁력의 신화를 신봉하고 성공 신화의 노예가 되어 있는 우리들 현대 그리스도교 지성에게 말할 수 없는 도전이 된다.2.5 예루살렘 예수운동의 역사30년대 초반에는 의심할 것 없이 그 열둘 이 예루살렘 예수운동의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의 신학적 이념은 묵시종말주의였다. 대부분의 소종파주의(sectarianism)가 그러하듯이, 그들이 지도하던 그 예수운동은 모든 지배적 계급구조가 사라지고 메시아 왕국을 본받아 평등주의적 이상을 실현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사도행정이 보도하듯, 그들은 모든 여성과 남성이 동일하게 성령으로 충만하였고 또 그 능력으로 영광 스런 나날을 살고 있었다(행 2:1-41). 그들의 식탁은 사회의 높은 계층이나 낮은 계층이나유로 이 예수운동에 대대적인 박해를 가했고 급기야 주의 형제 야고보를 투석형에 처했다. 초기 수난사화가 잉태된 것은 이 때였다. 초기 수난사화가 식민 제국주의 로마에는 친밀한 감정을 그리고 동족민 유대(교)인들에게는 극단적 적개심을 표출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유대교의 이 박해와 예루살렘 예수운동의 이러한 반작용으로 인하여 유대교와 예수운동의 관계는 완전히 깨어졌다. 정치/사회적 상황이 갈수록 불안정해지면서 예루살렘교회는 멸절의 위기에 처하였고, 교회는 마침내 유대 전쟁(67-70년) 이전에 데카폴리스 가운데 하나였던 펠라(Pella)로 이주하엿다. 예루살렘 예수운동은 이렇게 수난과 비극으로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그 열둘 의 예루살렘 예수운동을 예수 가르침의 담지자로서 또 그의 종말론적 계승자로서 역사의 한 막을 화려하게 비추고 있다. 야고보와 예수의 가족이 이끈 예루살렘의 예수운동은 바울의 때까지 아니 그 이후까지도 초대 교회의 적자로서 역사의 한 대목을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모두 실패자가 되어 역사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찬연히 비추다가도 명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열둘 에서 야고보와 그 가족들에게로, 또 예루살렘과 팔레스틴 예수운동에서 헬레니즘 세계의 바울과 그의 케리그마적 그리스도교로 주도권을 넘겨줄 수 밖에 없었던 역사의 갈림길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에게서 계승해야 할 어떤 점을 찾을 수 있을까? 예루살렘 예수운동의 그 사연 많은 역사 앞에 선 우리는 잠시 탐험 을 멈추고 사색에 잠기지만 물음은 끝이 없다. 아니 그 물음은 마치 오늘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 보는 듯하다.2.6 선언문 이야기의 양식과 태너힐의 유형론경전 이전의 예수전승은 말씀 전승(예수의 말씀)과 내러티브 전승(예수에 관한 말씀)으로 양분할 수 있다. 내러티브 전승에는 수난사화와 기적 이야기가 포함된다. 말씀 전승에는 예수의 비유(형식은 내러티브이지만, 예수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예수의 말씀이다), 접경(국경) 지역의 보통 사람들로서 이들은 사회적 정체성이 비교적 유연했고, 민족적/유대교적 경계를 분명히 하고 또 제의적 정결을 엄격하게 준수하고자 했던 바리새적/사제적 관심에 대항하였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제자들의 역할도 특기할 만하다. 그들은 모든 것을 희생하고 예수를 따른 사람으로 기억되며, 예수를 향한 적합한 신앙과 고백을 바탕으로 따른 사람으로 기억되며, 예수를 향한 적합한 신앙과 고백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한 사람들로 기억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율법에 해박하고 또 예수의 비유를 온전히 깨닫는 서기관 들로 묘사되고 있다. 제자 라는 말은 학생 을 뜻하는 학교 용어임을 주목해야 한다. 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말씀, 하나님의 율법과 그의 뜻 등이 선언문 이야기의 이 예수운동에게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면, 서기관으로서의 제자들의 역할은 말할 수 없이 중요했을 것이다.가장 괄목할 만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여인들이다. 일반적으로 철저한 가부장 문화 속에서 여성은 언제나 침묵하는 자이며 존재를 부인당하는 자이다. 그러나 그들은 양적으로도 마가복음의 선언문 이야기(칭찬 및 간청)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질적으로도 가장 모범적인 행위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순수한 나드 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를 향한 존경을 낭비 한 그 여인의 행위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함께 이야기되고 영원토록 기념 될 것이다(막 14:3-9, 칭찬). 기념돼야 할 분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도리어 한 여성이다.결론적으로 예수운동을 구성한 사람들은 소수의 지식인으로 인도되는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이다. 물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 대하여는 우리가 알 수 없다. 그러나 제자들 및 서기관의 역할로는 이 예수운동체의 지도자들이 대표된다. 그 외의 모든 사람들, 즉 여성과 부정한 사람 그리고 어린아이는 예외 없이 열등한 사람들이다. 이것은, 칭찬 이야기에서 그 사회적 강자(예를 들면 마가복음 2장 1-12절의 다른 서기관이나 마가복음 10장 17-22절의 한 부자 청년)이다.
    인문/어학| 2001.06.16| 15페이지| 1,000원| 조회(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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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그리고 sex 평가A좋아요
    사랑과 sex, 이 둘의 관계는 긍정적으로 상호보완적일 수도 있고 혹은 서로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부정적인 관계일 수도 있다. 두 관념이 속하는 가장 큰 범주인 성 자체에 대하여 폐쇄적이었고 금기시 했던 과거에 비하여 비교적 여러 부분에서 개방되고 자유로워진 요즘, 이와 관련된 주제들에 대하여 다양한 계층에서 많은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어떤 관점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판이한 주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이 주제에 대하여 지금 현재 시점의 우리사회의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1. 남자와 여자의 차이, 그 차이를 이해하기 위하여사랑과 sex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것에 가장 밀접하고 그 행위의 주체인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이해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겠다. 성 을 금기시 했던 과거 우리 사회의 영향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성에 대하여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성에 대하여 남자와 여자는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성 에 대해 여자에 비하여 훨씬 개방되어 있다. 역사 동안 성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 여자에 절대적 우위를 차지해 왔으며 육체적 힘으로 여자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여자들은 성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 최대한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최근 들어 여자들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오기는 하지만 여전히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남자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이러한 차이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천 년 이상이나 각각 달랐기 때문인데, 특히 남성에 의한 지배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견해에 따른다면,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남성의 지배가 원인이 되어 남녀가 함께 입게 된 타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남자는 자기 자신을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으면 만족을 모르고 무한한 성욕을 지닌, 독립된 존재이며 행위에 있어서 지배하는 자 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는 집안에서 갇혀 살고 있으니까 자기 자신을 연약하고 의지할 데 없는 가련한 신세라고 느낀 나머지 남성에 의한 감정적 지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신체를 아름답게 꾸미기에 여념이 없고 지배당하는 자 의 역할을 담당한다.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과거의 유물이 되어 얼마 후에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은 주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은 이러한 구시대적 성 의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좋은가,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차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좋은가, 그 해답을 쓰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남녀간의 차이점을 진지하게 다루어 연구하려고는 하지 않고, 그 불합리한 점만을 역설하려고 한다.과연 그래도 좋은가? 남녀간의 차이는 확실히 몇 천년 동안 내려온 역사와 남성 지배에 의한 억압의 산물이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겨우 지난 10여년 동안에 일어난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자연스럽고 영구적으로 보이는 현상일지라도 언젠가는 그렇게 사라지고 말 것이다. 여성과 남성의 사랑과 sex에 대해 탐구하기 위해서는 표면적인 상태에 매달리기 보다 그 안의 내용을 살펴보아야 한다. 기존의 편견에 가득 차 있고 성 차별적인 시선에서부터 최근의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서로 동등한 위치에 서서 상대방의 역할을 해 볼 필요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녀가 지닌 특성, 남녀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2.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성성 에 대한 주제를 놓고 여러 명의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다보면, 주로 보수파 와개방파 로 나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보수파 는 성에 대한 금기가 있고, 이를 지켜야 한다는 주의인데, 순결을 지켜야 한다 는 정도의 말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보수파 의 입장이 될 것이다. 보수파 는 현재 우리 사회의 성 문제는 성적으로 문란하고 타락해가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개방파 는 성에 있어 보다 자유로와져야 한다는 입장으로, 성관계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다 식의 생각을 피력한다. 개방파 쪽에서만 보았을 때, 우리 사회의 성문제는 성이 억눌려왔다는 데에 있다.두 입장은 각각 주장의 근거에 있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내용과 어긋나는 부분을 가지고 있다. 성적으로 문란하고 타락해가는 사회의 정화를 위하여 성윤리를 회복하자는 보수파 의 주장은 그들의 그 성윤리 가 성 차별적 시각에 입각한 여성의 성에 대한 제재를 통해 성립되어 왔다는 점에서 동의 할 수 없다. 보수파 와는 지향하는 것이 전혀 다르다고 외치는 개방파 의 입장이 억눌린 성을 밖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라면, 그들의 시각에서 결여된 것은 바로 어떻게 억눌렸는가 이다. 억눌림은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여성의 성을 통제하기 위한 억눌림이다. 이는 여성의 성적 지위 축소와 남성의 성에 대한 과장으로 왜곡되는 효과를 가져왔고, 남성의 여성에 대한 성적 지배/종속의 관계로서 일방적인 권력 관계를 설정해 왔다. 이러한 구조를 깨뜨리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성문제의 해결이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성에 있어서의 여성 과 남성 간의 권력 관계를 무시한 채 성의 억압을 논하는 개방파 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구조를 들여다볼 수 없다. 따라서 성의 개방 이 성의 해방 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문제는 이렇게 보수/개방 으로 양분되어지는 성담론에서 또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는 것은 종종 쉽게 무시되곤 한다는 점이다. 그 다른 견해가 여성들의 시각이며, 그 견해가 공론화되지 못하고 묻혀버리곤 하는 이유도 그것이 여성들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성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여성들은 여성과 남성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성윤리라고 답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시각에는 성에 있어서의 여성 과 남성 간의 불공평한 관계, 즉 권력 관계 가 상정되기 때문이다.여성의 관점으로 바라보았을 때, 앞의 두 관점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우리 사회 성문화의 형성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사회의 성을 이야기하려면, 바로 그 지금까지 무시되어왔던 여성의 관점으로 성문화와 성윤리를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성의 문제를 바라볼 때 공평성과 차별성을 감지하는 것, 성의 영역에서 권력구조를 읽어내는 것. 그것은 더 이상 무시되어서는 안되는 관점이며, 성에 대한 기존의 보수/개방 식의 양분화 된 가치가 해결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성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관점으로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3. 사랑과 sex, 그 조화로운 결합을 위하여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공적인 장소에서 성 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을 금기시 해왔다. 늘 으슥한 뒷골목에서 비밀스럽게 이야기 해 왔던 것이다. 다양한 집단들간의 자연스러운 교류를 통해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성의식이 형성되지 못하고이중적이고 오랜 고정관념에 얽매여 있는 잘못된 성의식이 깊게 뿌리내리게 되었다.
    사회과학| 2001.06.16| 3페이지| 1,000원| 조회(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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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문제의 이해 평가B괜찮아요
    1 서론인류사회가 국가사회로 발전됨에 따라 사회는 그 구조와 기능과 제도가 복잡해지고 구성원의 수도 크게 증가할 뿐만 아니라 이들의 생각과 행위도 다양해지고 복잡해져 여러 가지의 사회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18세기 이후 산업화라는 획기적인 생산양식의 변화가 진행되어 왔고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사회, 경제 및 정치 체제에 대한 상이한 이데올로기가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다. 따라서 각각의 사회는 상이한 산업화의 정도와 상이한 이데올로기의 틀 속에서 발전하면서 다양한 사회문제를 파생시키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현대의 모든 사회에서는 종류의 다양성과 문제의 심각성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빈곤문제, 실업문제, 청소년 비행문제, 마약문제, 성차별 문제, 성폭력 문제, 가족문제, 노인문제, 아동학대 문제, 환경문제 등 많은 사회문제들이 신문, 방송, 잡지 등의 뉴스로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사회에서 많은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발생하고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음을 잘 입증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회문제는 한 국가사회의 존속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은 국가의 사회적 및 정치적 과제가 되고 있다.2 사회문제의 이해2.1 사회문제의 개념사회문제 라는 말은 사회과학의 여러 학문분야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하는 경우가 더 많아 지금까지 이에 대한 통념이나 합의적인 개념이 형성되어 있지는 않다.사회문제 란 사회 와 문제 의 합성어로서, 사회적 차원의 문제를 말하다. 이때 사회적 이라는 말은 자연현상과 구분되는 의미를 지니기도 하고, 개인적 차원과 구분되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문제 란 어떤 현상이나 사람들의 행위가 일정한 가치나 기준에서 보았을 때 기대에 어긋나거나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따라서 문제 는 객관적 상황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면에서는 주관적 판단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이다(고영복, 1991: 18-20).장인협과 최성재의 연구(1987: 19-22) 에서는 사회문제에 관한 Rubington과 Weinberg(1981), Merton(1971), Horton과 Leslie(1955), Etzioni(1976) 등의 개념정의를 종합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즉 사회문제란1 사회적 가치에서 벗어나고,2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 현상으로 인하여 부정적이 영향을 받고 있으며,3 그 현상의 원인이 사회적인 것이며,4 다수의 사람들이나 일부의 영향력있는 사람들이 그 현상을 문제로 판단하고 있으며,5 사회가 그 현상의 개선을 원하고,6 그 현상의 개선을 위해서는 집단적인 사회적 행동이 요청되는 사회적 현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이러한 정의에서 제시된 1∼6은 사회문제로서 규명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들 여섯가지 조건 가운데 몇 가지 조건만 갖추어도 사회문제로서 정의될 수 있다(이혜원 1996, 55).2.2 사회문제 연구의 목적사회문제를 연구하는 목적은 개인에 따라 다양할 수 있지만 대체로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1) 사회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의 유발2) 사회문제에 대한 일반적 이해의 증진3) 이론과 실제의 관계 확인 및 이해4)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필요한 지식 제공5) 개인적인 호기심이나 관심의 해결(최일섭, 최성재 1995)2.3 사회문제와 이론적 시각사회문제에 대한 접근방법은 사회문제를 보는 이론적 기본시각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이론들을 조직한 접근 틀이 있다. 각 이론적 시각들이 사회문제의 생성원인, 현상규명, 존재이유 등에 대해서 독특한 설명을 갖는다는 것은 그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에도 독특한 처방을 제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대표적인 세 가지 이론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먼저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사회문제가 존재하는 주요 이유는 사회가 계속 변화하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데, 성공적으로 적응을 하지 못할 때에 사회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능주의적 관점에서는 사회제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방안을 강구하려고 한다.갈등론적인 관점에서는 사회는 계급, 인종, 성별, 연령별, 기타의 조건에서의 불평등에 따른 갈등이 있다고 보며, 다양한 집단들은 자기네들 나름의 가치를 갖는다고 본다. 사회문제는 다양한 가치관과 힘을 가진 집단들이 서로 맞부딪쳐 경쟁함으로써 파생된다고 보는 것이다. 갈등론적 관점에서의 문제해결 방안은 자원의 배분에 있어 소외와 착취를 당하는 집단들의 분배몫을 증대시키려고 하는 것이다.상호작용주의에서는 일탈이나 사회문제에 관한 사회적인 정의는 어디까지나 주관적(subjective)인 것으로 보고, 비행자와 정상인을 구분하는 것은 그들이 무슨 행동을 하느냐에 따르는 것이 아니고 사회가 그들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는 어떠한 행동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각하게 되면 그러한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간주(labeling)해 버림으로써 사회문제가 발생된다고 본다. 상호주의적 관점에서의 문제해결방안은 일탈자들로 하여금 사회가 용납하는 행동양태에 접촉을 증대시킴으로써 재사회화 (resocialize)를 추구하며, 사회제도의 엄격성을 유연하게 하고, 일탈에 대한 사회의 규정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이다(최일섭, 최성재 1995, 438-439).이외에도 다양한 관점이 있고, 또 그 강조점에 있어서 각각이 다소 차이가 있다. 현실적으로 보면, 어느 하나의 이론적 관점이 사회문제해결의 유일한 접근방향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것은 이론과 현실세계의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회가 어느 이론적 시각을 중심으로 정책을 수립하느냐 하는 것은 다시 그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과학| 2001.06.16| 3페이지| 1,000원| 조회(1,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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